쿠루네코 4
쿠루네코 야마토 글.그림, 박지선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761



고양이랑 있으면 되네

― 쿠루네코 4

 쿠루네코 야마토/박지선 옮김

 중앙북스, 2010.5.12.



2월 22일은 고양이의 날이라지만, 굳이 따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요? (86쪽)



  만화책 《쿠루네코 4》(쿠루네코 야마토/박지선 옮김, 중앙북스, 2010)을 읽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집고양이를 아끼는 마음을 고이 읽을 만합니다. 따로 고양이날이 없어도 한 해 내내 고양이날이라 할 만한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 만화책에는 다른 이야기는 없습니다. 일을 하고 느긋이 쉬고 밥을 먹고 살림을 하고 마실을 다니는 동안 이 고양이를 그리는 마음을 들려줍니다.


  한 마디로 ‘고양이랑 있으면 되네’ 하는 줄거리입니다. 더 갖추려 하지 않고, 더 줄이려 하지 않습니다. 꼭 이만큼이면 넉넉한 하루라고 합니다. 오늘 여기에서 즐겁게 살아가려고 할 적에는 바로 이만큼이면 된다고 합니다. 2018.3.22.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읽기 2018.3.19.


《겨울나기》

이수호 글, 삼인, 2014.6.9.



  아이들 귀를 파고 손발톱을 깎을 적마다 어쩜 이렇게 작으며 이쁠까 하고 생각한다. 일거리가 많은 나머지 두 아이 귀를 파다가 등허리가 몹시 결리다고 느낀 적이 더러 있었지만, 이제는 퍽 수월하게 귀를 파고 손발톱을 깎는다. 우리 어머니도 내 귀를 파고 손발톱을 깎을 적에 이처럼 느끼셨을까. 하나씩 배우고 깨달으면서 자라기에 사람이고, 사람꼴을 갖추면서 어버이 구실을 바라볼 수 있지 싶다. 이수호 님이 쓴 시집 《겨울나기》를 읽으니, 손수 할 줄 아는 일이 드물어 곁님이나 딸아이가 없이는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는 모습이 고이 흐른다. 이를 수수하게 밝히는 글이 상냥하기는 한데, 앞으로는 스스로 어수룩한 모습에서 거듭난 이야기를 시로 담을 수 있다면 더욱 상냥하겠지. 봄을 꿈꾸며 겨울을 나듯이, 여름을 바라보며 봄을 나고, 가을을 기다리며 여름을 난다. 그리고 겨우내 푹 쉬려고 가을을 나겠지. 아버지가 부엌에서 밥을 하는 동안 손이 심심한 아이들이 부엌이며 마루를 쓸고 닦는다. 같이 먹고서 같이 치우고, 설거지를 마친 자리도 제법 깔끔하게 건사할 줄 안다. 하루가 새삼스럽다. 부쩍 자라면서 씩씩하게 팔다리를 펴는 아이들이 새롭다. 작은아이 몽당연필하고 내 긴연필을 바꾼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학동네 시인선 101
문태준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노래하는 말 328


우리가 사랑하는 일에는 끝이 없어요
―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태준
 문학동네, 2018.2.10.


아름다운 바퀴가 굴러가는 것을 보았네
내 고운 님의 맑은 눈 같았지
님의 가늘은 손가락에 끼워준 꽃반지 같았지
대지에서 부르던 어머니의 노래 같았지
아름다운 바퀴가 영원히 굴러가는 것을 보았네
꽃, 돌, 물, 산은 아름다운 바퀴라네
이 마음은 아름다운 바퀴라네 (일륜월륜/12쪽)


  시집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문태준, 문학동네, 2018)를 읽습니다. 책끝에 붙은 시집 추천글을 보면 문태준 시인이 훌륭한 ‘서정시인’이라고 나옵니다. 문득 ‘서정’이라는 말이 궁금해서 사전을 살핍니다. ‘서정시(抒情詩)’를 “[문학] 개인의 감정이나 정서를 주관적으로 표현한 시”로 풀이합니다. 그런데 어느 시나 글이든 글쓴이 느낌(감정)이나 마음(정서)을 스스로(주관적) 그리기 마련입니다. 딴 사람이 느끼거나 생각하는 이야기를 그리는 시나 글이라면, 이때에는 아무개 시나 글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모든 시는 밑바탕이 서정시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참말로 그렇습니다. 시뿐 아니라 글도 모두 ‘서정글’이 되겠지요. 우리 나름대로 느끼거나 생각한 이야기를 밝히는 글일 테니까요.

  문태준 시인이 훌륭한 서정시인이라 한다면, 다른 누구보다 문태준 시인은 이녁 느낌이나 마음을 안 숨길 줄 안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제 느낌이나 마음을 살뜰히 시로 그릴 줄 안다는 뜻이 될 테고요.


내 어릴 적 어느 날 외할머니의 시 외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노랗게 익은 뭉뚝한 노각을 따서 밭에서 막 돌아오셨을 때였습니다
누나가 빨랫줄에 널어놓은 헐렁하고 지루하고 긴 여름을 걷어 안고 있을 때였습니다
외할머니는 가슴속에서 맑고 푸르게 차오른 천수(泉水)를 떠내셨습니다 (외할머니의 시 외는 소리/16쪽)


  시를 쓰거나 읽기 어렵다면 아무래도 이 대목 ‘우리 느낌이나 마음’을 어떻게 보거나 다루어야 하는가를 모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거꾸로 우리 느낌이나 마음을 꾸밈없이 그리거나 즐거이 담아낼 수 있다면,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다는 뜻이 되지 싶어요.

  글솜씨가 훌륭해야 시인이 되지 않습니다. 갖가지 표현기법을 잘 살려야 훌륭한 시인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느낌을 우리 목소리로 살릴 때에 비로소 시인이 되지 싶습니다. 우리 마음을 우리 삶에 담아서 우리 손으로 풀어낼 줄 안다면, 시인이란 이름이 없어도 시를 쓰고 비평가란 이름이 없어도 시를 읽을 만하리라 봅니다.


만일에 내가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창백한 서류와 무뚝뚝한 물품이 빼곡한 도시의 캐비닛 속에 있지 않았다면
맑은 날의 가지에서 초록잎처럼 빛날 텐데
집밖을 나서 논두렁길을 따라 이리로 저리로 갈 텐데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39쪽)


  문태준 님은 어릴 적 외할머니가 읊은 샘물 같은 시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외할머니만 맑은 샘물 같은 시를 읊지 않았겠구나 싶어요. 어머니도 누나도 참말로 그윽한 시를 읊었네 싶습니다. 어머니는 늙은오이를 따는 시를, 누나는 여름 빨래를 널고 걷는 시를 읊습니다.

  그리고 문태준 님은 맑은 날 푸르게 빛나고 싶은 나뭇가지 같은 마음으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하루를 노래하고 싶다는 시를 읊습니다. 서류도 강단도 떠나, 조용히 흙을 만지고픈 나날을 꿈꾸며 시를 읊어요.


따라붙는 동생을 저만치 떼어놓을 때
우는 내 동생의 맑은 눈물이 또르륵 굴러떨어져 피어난 꽃아 (별꽃에게 2/78쪽)


  우리가 사랑하는 일에는 끝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흙을 짓는 하루도 끝없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서류에 파묻혀 회사일에 얽매이는 하루도 끝없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찬비를 맞거나 봄비를 맞거나 소나기를 맞으며 밭을 매는 하루도 끝없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루 내내 쉴새없이 나오는 갓난쟁이 오줌기저귀를 갈아대는 하루도 끝없이 사랑할 수 있어요. 고단한 출퇴근 버스길이나 전철길도 끝없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시 한 줄은, 스스로 사랑하는 삶에서 터져나옵니다. 시 두 줄은, 스스로 사랑하는 하루에서 샘솟습니다. 시 석 줄은,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하고 마음으로 어깨동무하는 자리에서 태어납니다. 시 넉 줄은, 스스로 사랑하는 꿈길을 걷는 동안 시나브로 자라납니다.

  시인이 어린 날, 우는 동생 볼을 타고 흙바닥으로 떨어진 눈물이, 오늘 별꽃으로, 그러니까 곰밤부리꽃으로 피어난다고 해요. 참말로 새봄에 피어나는 온갖 꽃송이는 우리가 흘린 눈물이 자라난 숨결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기쁘게 얼싸안으면서 놀고 노래하다가 지은 웃음에서 이어진 숨결일 수 있어요. 매화내음이며 동백내음이 마을에 가득한 삼월 한복판입니다. 2018.3.2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읽기 2018.3.18.


《꼴뚜기는 왜 어물전 망신을 시켰을까?》

정인수 글·최선혜 그림, 분홍고래, 2018.2.25.



  어린이 인문책을 읽는 어른으로 살아가며, 어른 인문책하고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새롭게 배운다. 어른 인문책은 거의 모두 학문으로 다가선다면, 어린이 인문책은 이 땅에서 지구라는 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어린이가 무엇을 찬찬히 헤아리며 제대로 알 적에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설 만한가를 들려준다. 더구나 이런 이야기를 쉽게 풀어야 하기에, 말하는 눈높이를 새삼스레 돌아볼 수 있는데, 이밖에도 오늘 어른으로 살아가는 내가 무엇을 얼마나 모르거나 아는가를 가만히 되새긴다. 《꼴뚜기는 왜 어물전 망신을 시켰을까?》를 쓴 분은 처음에 시골 닷새저자를 거의 몰랐다고 한다. 저잣거리에서 쓰는 오랜 말도 마땅히 몰랐을 테지. 그렇지만 서울을 떠나 곡성이란 시골에서 살며 저잣거리를 드나드는 동안 새롭게 저잣말을 익히고 저잣살림을 헤아렸단다. 이러면서 책까지 한 권 써낸다. 오늘을 살아가는 어린이한테 들려주는 옛살림 이야기책이면서, 글쓴이 스스로 이제껏 잊거나 잃은 채 살던 이웃살림 이야기책이기도 하다. 즐겁게 읽는다. 오늘이 일요일이던가. 고흥 읍내에 가 보면 숯불에 물고기를 구워서 판다. 고흥에는 오징어는 없고 갑오징어만 있는데 숯불구이 갑오징어를 저잣마당에서 장만해서 저녁을 차리고 싶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야의 헌책방 - 모리오카 서점 분투기
모리오카 요시유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한뼘책방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201


책 하나 쥐고 가볍게 이야기꽃
― 황야의 헌책방
 모리오카 요시유키/송태욱 옮김
 한뼘책방, 2018.1.25.


나는 생활비를 삭감하더라도 예산을 초과해서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에도 시대의 책이 길거리에 나뒹굴고 있는 진보초는 그것만으로도 굉장하다. (43쪽)

카페 리오의 종업원에게 임시 수입 5만 엔이 생겨 전부터 구하고 싶었던 책을 구입한 경위를 이야기하니 의외로 “그렇게 책을 사 읽어서 무얼 하려고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48쪽)


  일본 도쿄에서 ‘모리오카 서점’을 꾸리는 분은 처음부터 ‘책 한 가지만 파는 곳’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처음에 온갖 책을 잔뜩 들여놓지도 않았다고 해요. 처음에는 책하고 오랜 골목길을 좋아하는 나날을 누렸고, 이러다가 도쿄 진보초에서 오래된 헌책집에서 일자리를 얻어 여러 해 동안 책집지기 일을 익혔다고 합니다. 이 같은 길을 거쳐 혼자 책집을 내려는 뜻을 펴 보았고, 유럽으로 날아가 ‘책집에 놓을 사진책을 짐수레 가득 장만해’서 일본으로 돌아오기도 했다지요.

  그렇지만 책장사는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손님이 너무 없을 뿐 아니라, 다달이 달삯을 치러야 할 날은 참 빠르게 다가왔대요.


(잇세이도 서점에) 입사하고 나서 일주일쯤은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일찌감치 가게 하나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부하고 있었지만 통하지 않았다. 가끔 물어오는 책 제목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104쪽)

전무에게 의논하자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겸허하게 말할 수 있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네. 동서고금의 책 중에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것은 1퍼센트도 안 되거든.” 하며 깨우쳐 주었다. (118쪽)


  《황야의 헌책방》(모리오카 요시유키/송태욱 옮김, 한뼘책방, 2018)은 ‘한 번에 한 가지 책만 파는 곳’으로 모리오카 서점을 꾸리기까지 책집지기로서 어떤 삶을 일구었나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 까맣게 모르던, 아니 아예 생각조차 않던 젊은이가 만난 사람하고 지켜본 오랜 골목길을 이야기합니다. 으레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고, 돈이 생기면 헌책집에 들러 값싸게 하나둘 사서 모으는데, 이러다가 1941년에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즈음 그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궁금해서 옛 신문을 뒤적여 보면서 지난날 그대로 따라해 보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따라하던 때에, 일본에 진주만에 폭탄을 떨구기 하루 앞서 나온 신문에 ‘잇세이도 서점’이라는 곳에서 “헌책 삽니다”라는 광고를 실은 모습을 보았대요. 일본이란 나라는 전쟁 한복판에서도 책을 사서 읽고 내고 썼을 뿐 아니라, 헌책집에 책을 내놓고 사러 갔구나 싶어 모리오카 요시유키 님 스스로도 무척 놀랐다고 합니다.


“여기서 고서점을 하고 싶습니다.” 그 사람은 생각했던 대로 가게 주인 우치다 씨였다. 우치다 씨는 “이 건물은 쇼와 2년, 그러니까 1927년에 세워졌는데 이곳에서 고서점을 한다면, 하기에 따라서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153쪽)


  도쿄에 있는 커다란 헌책집에서 일하는 동안 ‘도무지 모르고 낯선 책’이 너무 많아 한동안 어쩔 줄 몰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책’이란 손에 쥐는 모래알처럼 아주 적기 때문에, 모르면 모른다고 밝히면서 새로 배우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군요.

  오늘날 같은 모리오카 서점이란, 이 책집지기가 이제껏 마주한 사람과 삶과 책과 마을이 모두 어우러져서 비롯했구나 싶습니다. 온누리 모든 책 가운데 알 수 있는 책이란 매우 적으니, 이 매우 적은 책 가운데 책집지기가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책 하나를 두는 곳으로 꾸리면서, 이 책집을 전시관으로 함께 삼을 수 있다지요.

  뭔가 더 많이 갖다 놓지 않고, 뭔가 더 단출히 꾸미면서 책과 삶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이끈다고 할 만합니다. 더 많이 읽거나 갖추기보다는 우리 눈앞에 있는 책과 삶을 더 찬찬히 지켜보면서 아끼자는 뜻이기도 하리라 봅니다.


서점을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나자 내 표정에는 완전히 패배감이 떠돌았다. 입을 벌려 웃을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역시 너무 조급하게 일을 진행한 것이다. 계획성이 없었다. 손님이 오지 않으니 당연히 책도 팔리지 않았다. (184쪽)


  처음부터 모두 알 수는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처음에는 마냥 즐거운 길을 찾아서 오랜 골목을 거닐고, 곁일을 하며 번 돈으로 책 몇 권을 장만합니다. 옛 신문을 도서관에서 복사해 읽다가 얼결에 커다란 헌책집 일꾼 가운데 하나로 뽑혀서 한동안 일합니다. 책을 좋아하던 때에 마주하던 책하고는 달라도 너무 다른 헌책집 책을 만지면서 ‘모르는 것투성이’라서 늘 배워야 하는 줄 깨닫고, 손수 헌책집을 차리고 보니 미처 살피지 않은 대목이 참으로 많아서 이리 부딪히고 저리 깨지면서 시나브로 길을 찾습니다.

  《황야의 헌책방》이라는 이름은 아무것도 없다 싶은 벌판에 선 모습을 빗대지 싶은데, 아무것도 없다 싶은 벌판이기에 지쳐서 쓰러져도 혼자 쓰러지면 될 뿐이라는 마음으로 무엇이든 차근차근 지어 보는 삶도 함께 빗대었구나 싶습니다.

  아직 아무도 해 보지 않았어도 되어요. 그렇게 해서는 돈을 못 번다는 소리를 들어도 되어요. 헌책집 한쪽을 전시관으로 삼아도, 이러다가 ‘한 번에 한 가지 책만 파는 곳’으로 바꾸어도 되지요. 다만 숱한 가시밭길을 거쳐서 여기에 이릅니다.


오후부터 저녁까지 기본적으로 가게를 보는 일에는 변함이 없지만, 전시회도 열자 매일 사람들이 가게를 찾아오게 되었다. 거기에서 대화가 이어지기도 했다. 개업 초기 손님이 아무도 오지 않을 때는 창밖으로 흐르는 가메지마가와를 바라보며 갈매기에게 땅콩을 던져주며 마음을 달랬는데 상황이 크게 변했다. 손님 중에는 회화나 조각, 도예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 그리고 카메라맨이나 디자이너가 많았다. 손님이 전시 장소로서 가게에 흥미를 보이게 되었고, 가게 안의 갤러리는 손님의 다음 스텝을 위한 발판 역할을 했다. (202쪽)


  한국에서 마을책집이 하나둘 늘어납니다. 더 많은 책을 건사하지 않는 작고 상냥한 마을책집입니다. 큰책집은 자꾸 더 커다란 책집이 되려 하고, 전국 곳곳에 새끼가게를 줄줄이 엽니다만, 전국 마을책집은 골목 귀퉁이라 할 만한 데에 조그맣게 문을 엽니다.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이란 바로 ‘더 큰, 더 많은, 더 이름난’이 아닌 ‘알맞은, 상냥한, 즐거운’인 줄 느끼는 분들이 새로운 책살림을 짓는구나 싶습니다.

  언뜻 보면 쓸쓸하거나 거칠거나 터무니없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알맞고 상냥하며 즐거운 마을책집에는 골목이며 마을을 천천히 거닐어 사뿐사뿐 다가오는 이웃이 책손으로 깃들 수 있습니다. 아직 장사는 만만하지 않을 수 있지만, 더 키워서 더 팔아서 더 드날리려는 물결에 휩쓸리면 이웃을 만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책집지기로서도 골목이나 마을하고 이웃이 되지 못합니다.

  따뜻하며 싱그러운 바람이 책집 골목에 붑니다. 이 바람을 품고서 이웃님이 책손으로 찾아갑니다. 두 손 가득이 아닌, 한 손에 가볍게 책 하나를 쥐고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2018.3.20.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