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3.29.


《쓸 만한 잡담》

서성자 글, 천년의시작, 2016.10.12.



  고흥읍으로 가는 길에 시골버스가 시끌벅적하다. 이주노동자 한 사람이 시골 할매한테 ‘어디에서 내려야 하는가’를 물은 듯하고, 할매는 손짓 발짓을 다 써서 “여기 아니야. 저 아저씨 내리는 디까지 가서 내려야 해.” 하는 말을 숱하게 한다. 시골버스를 채운 할머니들이 한꺼번에 이렇게 하는 말을 이주노동자는 알아들었을까. 아무튼 마지막까지 가서 내린다. 나는 부산으로 가는 시외버스에 오르고, 시조집 한 권을 천천히 읽고서, 쪽종이에 열여섯 가지 새 이야기를 적는다. 지난겨울에 ‘움직이는 말’을 마무리했고, 요즈음 ‘그리는 말’을 열여섯 줄로 적어 본다. 일본에서 만날 이웃님이 몇 분일까 하고 어림하며 적는데, 앞으로 열네 가지 이야기를 더 써야지 싶다. 짐을 가볍게 하자며 얇은 시조집만 챙겼다. 첫 시집을 선보인 아주머니는 이녁 어머니하고 딸아이 사이에서, 삶하고 살림 사이에서, 또 꿈하고 오늘 사이에서 가만히 오가면서 이야기를 엮는다. 시가 되고 밥이 되는 이야기는 늘 우리 삶자리이다. 스스로 기쁘게 하루를 열고 닫는다면 언제나 스스로 싱그러운 글꽃을 피우겠지. 부산 김해공항은 크지 않아 좋다. 그러나 공항이 낯선 시골 아저씨한테는 모든 것이 쉽지 않네. 생각보다 수월히 일본으로 건너왔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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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노르웨이로 가자
카트리나 데이비스 지음, 서민아 옮김 / 필로소픽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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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42



첼로를 믿고 15000킬로미터 ‘길노래마실’

― 어쨌든 노르웨이로 가자

 카트리나 데이비스/서민아 옮김

 필로소픽, 2015.8.7.




우리 집이 힘들었을 때, 첼로는 나에게 가장 좋은 친구이자 피난처였다. 나는 첼로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다. 혼자서 연습을 하면서 차츰 우울한 곡을 연주하게 되었고… (26쪽)


오슬로 국립극장 지하철역 입구의 커다란 분수 근처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런 다음 그늘진 구석을 찾아 의자를 놓고 앉았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연주는 고사하고, 이 사람들 앞에서 첼로를 꺼낼 엄두조차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남은 날들 동안 오슬로에서 서서히 굶어죽고 싶지 않으면 첼로를 꺼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45쪽)



  첼로를 믿고 길노래를 들려주며 마실을 다니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아니 아예 없다시피 하다고 합니다. 길에 서서 노래를 들려주기에 첼로라는 악기는 썩 안 어울린다고 여길 만할 수 있어요. 들고 다니는 무게도 있을 테지만, 가락도 묵직할 테니까요.


  그러나 어느 악기라도 길노래를 들려주며 마실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타나 플룻만이 아니라, 피리하고 거문고로도 길노래를 들려줄 수 있어요. 피리 가운데 풀피리를 그때그때 얻어서 길노래를 들려주어도 될 테고요.


  길노래를 하기에 어울리는 악기가 있다기보다는, 길에서도 얼마든지 즐겁게 때로는 슬프게 노래를 들려주면서 이웃을 마주하려고 하면 넉넉하지 싶습니다. 어떤 악기를 손에 쥐든 낯선 이웃하고 나누고픈 마음을 노랫가락에 실으면 되지 싶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재즈를 연주한 적이 없었는데, 설사 음을 놓쳐도 어찌어찌 만들어서 연주하면 사람들은 내가 즉흥으로 연주를 하나 보다 생각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71쪽)


“저기, 물을 좀 얻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시지요.” “저쪽에 강이 있어요.” 남자가 말했다. “저는 식수를 구하려고요.” “여기는 잉글랜드가 아니에요. 노르웨이에서는 강물도 마실 수 있어요.” (84쪽)



  《어쨌든 노르웨이로 가자》(카트리나 데이비스/서민아 옮김, 필로소픽, 2015)는 첼로를 노란 승합차에 싣고서 잉글랜드를 떠나 배를 타고 노르웨이로 건너가서 ‘지지 않는 해’를 바라보고 돌아오려 하던 아가씨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잉글랜드 아가씨는 젊은 나이에도 온갖 슬픔수렁에 푹 빠져서 헤어나올 길을 못 찾았다고 합니다. 태어나서 자란 집에서 아늑할 수 없었고, 집을 뛰쳐나와서 지내는 데에서도 마음을 붙일 짝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러다가 가까운 벗이 아주 어처구니없는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었고, 도무지 이 지구라는 별에 왜 태어나서 왜 사는가를 알 길이 없다고 여겨, 더는 제자리(잉글랜드 작은 마을)에 있을 수 없기에 길을 불쑥 나섭니다.



“남자가 해답은 아니었어.” 한나가 난로를 닫으며 말했다. “옷이나 돈도 해답이 아니었지. 내 근사한 아파트도, 내 값비싼 보석도,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였어.” (134∼135쪽)


“어느 곳에 가든 차고 넘치게 많은 사랑을 발견할 수 있어. 사람들은 늘 너를 사랑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지.” (136쪽)



  처음에는 멋모르고 나서는 길입니다. 집에서 홀로 악기를 켜 보기는 했어도 길에서 낯선 사람한테 악기를 켜기는 처음입니다. 게다가 길노래를 켜자니,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외운 노래가 얼마 없는 줄 비로소 깨닫습니다. 다시 말해서 길노래로 들려줄 만한 노래를 몇 가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턱대고 길노래마실에 나선 셈입니다.


  길노래로 돈을 벌어서 기름을 사고, 자동차를 몰기에도 벅찬 나날이었지만, 마실 물을 얻고, 몸을 씻거나 옷을 빨래하기에도 고된 나날이었다지요. 처음에는 길어야 석 달을 헤아렸는데, 어느새 한 해를 훌쩍 넘길 만큼 노르웨이를 거치고 덴마크를 지나 네덜란드를 가로지르고 벨기에를 넘어 독일에 프랑스에 에스파냐에 이르지요. 그리고 포르투갈까지 1만 5천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달리며 길노래로 하루하루 살았다고 합니다.



“잉글랜드로 가야죠.”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잉글랜드에는 왜요?” “떠나온 지 3개월이 됐어요.” 구름이 태양을 피해 지나갔다. “그래서요?” “언제까지나 빈둥거리며 돌아다닐 순 없으니까요.” “그럼 안 되나요?” (167쪽)


“스페인까지 해안을 따라 버스킹을 하면서 가는 게 어때요? 그러면 포르투갈에 갈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은 아무 곳이나 갈 수 있어요. 자유롭잖아요.” (182쪽)



  첼로를 믿고 길을 나선 카트리나 데이비스 님은 ‘남자가 길이 아닌’ 줄 알면서도, 이 길을 어떻게 떨쳐야 하는가를 제대로 몰랐다고 합니다. 어려서 배운 적이 없고, 나이가 들어 가르쳐 준 사람도 없으니까요. 이러던 어느 날 맨몸으로 걷거나 자동차를 얻어 타면서 깊은 숲이나 멧골이나 바다를 누비며 사진을 찍는 여성인 한나를 만나요. 안개 자욱한 노르웨이에서 만난 한나는 카트리나 님한테 ‘삶은 어렵지도 쉽지도 않지’만, ‘삶은 스스로 마음을 품는 대로 흐를 수 있다’고 차근차근 짚어 주었다고 합니다.


  아무쪼록 기운을 잃지 않기를, 헛바람을 피우는 몸짓이 아닌 참다이 씩씩한 마음이 되기를 바랐다고 해요. 첼로하고 낡은 승합차하고 한 해 남짓 살면서 길에서 새로 노래를 익히고, 새로 익힌 노래를 다시 낯선 이웃들한테 들려주고, 손가락이며 몸이며 마음에 차츰 굳은살이 박히는 동안, 카트리나 님은 아주 천천히 꿈길을 헤아려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남이 가르쳐 줄 수 없고, 남이 가르칠 까닭이 없는 삶을,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생각해서 스스로 찾아낼 삶을 비로소 바라보고, 드디어 가슴에 꼬옥 안아 보았다고 해요.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들 주위로 올리브숲과 안개로 흐릿한 하늘이 펼쳐지고, 태양빛은 산봉우리 위로 흘러넘쳐 우리의 얼굴을 따스하게 비추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달큰한 거름 냄새가 느껴졌다. (271쪽)



  《어쨌든 노르웨이로 가자》를 읽는 동안 ‘고작 스물넷’밖에 안 된 젊은 아가씨가 얼마나 삶에 몸부림치는가를 새삼스레 돌아보았습니다. 나이가 아닌 주름진 삶을 돌아봅니다. 이제껏 살아온 나날보다 더 캄캄해 보이는 앞날에 고개를 떨군 모습을 하나하나 돌아봅니다.


  아마 우리도 저마다 고되거나 벅차거나 괴로운 일로 근심걱정에 휩싸인 하루일 수 있습니다. 도무지 뚫고 나갈 길이 안 보이는 어두움에 가로막혔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이때에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마냥 주저앉아야 할까요? 이런 날 무엇을 해야 스스로 수렁에서 벗어날까요? 제자리에 가만히 있어야 할까요?


  삶길에 악기 하나가 곁에 있다면, 누구라도 길노래를 들려주는 마실을 떠날 만하지 싶습니다. 멀리 마실을 떠나지 않더라도 악기를 손에 쥐고 가까운 숲이나 공원에 가서 조용히 노래를 켤 만하지 싶습니다. 악기 하나를 어릴 적부터 익힐 수 있다면, 이 악기를 바탕으로 수렁에서 헤어날 길을 찾기도 하고, 이 악기를 벗님으로 삼아 먼먼 마실길에서 다시 씩씩한 마음이 될 수도 있구나 싶어요.


  어쨌든 노르웨이로 가기로 하면서 묵은 짐을 떨치려 한 카트리나 님이, 앞으로 어떤 새로운 길에 접어들는지, 즐겁게 손뼉을 치면서 손을 흔들어 주고 싶습니다. 2018.3.29.나무.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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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3.28.


《일상에서 생각 깨우기 연습》

안성진 글, 타래, 2018.3.15.



  어제는 마을 빨래터 물이끼를 걷으면서 두 아이가 신을 손수 빨래하도록 이끌었다. 오늘은 나박김치를 담근다. 손이 덜 가는 나박김치라지만 이른아침부터 늦은낮까지 퍽 오래 걸린다. 양념물을 끓여서 식히고 무하고 배추를 절이면서 기다려야 하니까. 모든 밥살림은 이와 같다. 옷살림도 집살림도 그렇지. 품이나 겨를을 들이지 않고는 아무것도 못한다. 그런데 여기에 사랑을 함께 들이지 않으면 제아무리 품이나 겨를을 많이 들여도 헛손이 되기 일쑤이다. 따스한 숨결이 깃들지 않은 밥은 맛없고 더부룩하니까. 포근한 숨결이 흐르지 않는 집은 메마르고 쓸쓸하니까. 여느 회사원인 안성진 님이 쓴 《일상에서 생각 깨우기 연습》을 가만히 읽는다. 이 책은 바로 여느 회사원이라는 자리에서 여느 아버지이자 사람으로서 삶을 돌아보며 쓴 책이기에 수수하면서 즐겁다. 대단한 전문가 한 사람이 이끄는 이야기가 아닌, 수수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겪고 생각하며 배운 이야기를 가만히 들려준다. 오늘날 우리는 마음껏 글도 쓰고 사진도 찍으며 누리집까지 꾸밀 수 있다. 참말 모든 사람이 작가도 예술가도 된다. 뭔가 더 있어야 하지 않다. 사랑이 있고, 이 사랑을 생각하며, 이 생각을 살림으로 옮기면 넉넉하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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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3.27.


《밈 : 언어가 사라진 세상》

앨리너 그래이든 글/황근하 옮김, 겊은숲, 2017.11.30.



  종이책도 사전도 사라진 머지않은 날에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른다고 하는 줄거리가 흐르는 《밈 : 언어가 사라진 세상》이라는 소설이라고 말하니, 곁님이 한 마디를 들려준다. “요즘 사람들은 생각을 하고 사나요?” 먼 앞날이고 자시고 바로 오늘 우리를 둘러싼 삶터를 보면, 어느덧 생각을 잊거나 잃은 사람이 많다. 더 낱낱이 들여다보면 나 스스로도 ‘생각하기를 잊거나 잃을’ 때가 있다. 그러니 손전화보다 더 눈부신 새로운 기계가 나와서 모든 것을 다 해 준다고 하는 앞날에 앞서 우리 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겠다고 다시금 돌아본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휘둘리지도 않고 두려웁지도 않으며 걱정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생각을 잊거나 잃은 사람이라면 두 손에 가득 움켜쥐었어도 걱정하고 두려우며 그저 휘둘리기만 한다. ‘말’이란 생각을 나타내어 나누는 소리이다. ‘글’이란 생각을 나타낸 말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말이 사라질 즈음 글이 사라질 테고, 글이 사라질 즈음 우리가 손수 짓는 살림이 사라질 테지. 아니 삶터는 언제나 나란히 움직인다. 손수 짓는 살림이며 말이며 생각이며 한꺼번에 스러지거나 밀려난다. 대학입시하고 공무원취업에 매달리는 이 땅에는 모든 것이 자취를 감춘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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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3.26.


《피아노의 숲 11》

이시키 마코토 글·그림/문준식 옮김, 삼양출판사, 2005.12.1.



  문득 《피아노의 숲》 열한째 권을 다시 펴 본다. 열한째 권에 나온 어느 낱말이 몇 쪽에 나왔는가를 알아보려고 뒤지는데, 첫 쪽부터 살피다가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찾는다. 이러면서 책 한 권을 새삼스레 되읽었네. 열한째 권이 나온 해가 2005년이니 꽤 되었다. 그즈음에는 다음 권이 언제 나오느냐 기다리느라 서둘러 지나갔다면, 오늘은 퍽 느긋하게 말 한 마디 그림 한 칸 새로 새기면서 돌아보는데,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피아노하고 한몸으로 노래를 탄다는 이야기가 반갑다. 그리고 피아노를 치려면 손놀림뿐 아니라 몸도 튼튼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새롭다. 피아노뿐이랴. 우리가 즐거이 여기는 일을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이 없으면 어떤 일이나 놀이도 얼마 못 하고 끝난다. 힘이 있어야 우리가 사랑하는 일을 사랑스레 다스리고, 힘이 있을 적에 김치 담그기이든 집살림이든 모두 알뜰살뜰 해낼 수 있다. 피아노를 치느라 건초염에 걸린 동무한테 ‘튼튼한 몸’이 되도록 애쓰라고 도움말을 들려주는 카이가 상냥하다. 카이 스스로 겪어서 잘 아는 대목이겠지. 나도 스스로 힘을 새로 길러서 집살림을 비롯한 배움살림도 한결 씩씩하게 걷자고 마음 단단히 먹는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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