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이야기 6
타니카와 후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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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75



혼잣말로 다독인다

― 솔로 이야기 6

 타니카와 후미코/한나리 옮김

 대원씨아이, 2018.1.15.



‘하지만 그 사람한테 칭찬을 듣고 싶었는걸.’ (9쪽)


‘하지만, 당신이 날 싫어할까 봐 그런 것과 당신이 좋아하는 게 좋아서 그런 것은 비슷하지만, 다른 건지도 모른다.’ (17쪽)


‘혼자 자유롭게 보내는 시간이 편하다. 그런 시간이 있기에 또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그런 느낌이 든다. 비 오는 날 혼자 있으면 바닷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옛날 일을 떠올리거나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조용한 수면에 떨어지는 비는, 물고기에게 어떻게 보일까.’ (29쪽)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나처럼 가끔 추억하고 있을까.’ (119쪽)



  혼잣말을 합니다.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합니다. 차마 입밖으로 낼 수 없기에 혼잣말을 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달래고 싶어서 혼잣말을 합니다.


  생각을 가다듬으려고 혼잣말을 합니다. 스스로 어떻게 하고 싶은 마음인가를 되새기려고 혼잣말을 합니다. 조금 더 씩씩하고 싶기에, 다시 한 발을 내딛고 싶기에, 활짝 웃으며 즐겁게 살아가고 싶기에, 조용히 혼잣말을 합니다.


  《솔로 이야기 6》(타니카와 후미코/한나리 옮김, 대원씨아이, 2018)을 읽다가 문득 헤아리니, 이 만화책에는 혼잣말이 참 자주 나옵니다. 아니 이 만화책은 거의 혼잣말로 꾸렸다고 할 만합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시늉으로 웃는 사람들이 속으로는 무엇을 생각하는가를 가만히 짚어 줍니다. 웃는 낯으로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정작 속으로는 저 말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둘이어도 좋고 혼자여도 좋습니다. 스스로 밝은 마음이라면 둘이나 하나이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둘이어도 외롭고 혼자여도 외롭습니다. 스스로 어두운 마음이라면 둘이든 하나이든 똑같습니다.


  네 마음을 읽으려고 애쓰기 앞서 내 마음부터 읽을 노릇입니다. 네 마음을 알고 싶다고 말하기 앞서, 내 마음부터 말할 노릇입니다. 네가 마음을 열기를 바라기보다는, 내가 어떤 마음인가를 똑똑히 깨달아서 상냥하게 마음을 엽니다. 2018.5.11.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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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흙이 된다는 것 - 제일 2세 김창생 에세이
김창생 지음, 양순주 옮김 / 신생(전망)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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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51


재일2세부터 4세까지, 모두 같은 이웃
― 제주도의 흙이 된다는 것
 김창생/양순주 옮김
 전망, 2018.4.3.


내 모어는 일본어이며 감성 역시 일본어로 형성되었다. 그런 내가 오빠의 강요로 고교 3년간을 민족학교에 다녔다. 본명을 대고 조국의 역사와 언어를 배우는 과정 속에서 나의 뒤틀림이 무지 때문에 생겨난 것임을 알게 되었다. (42쪽)


  1951년에 일본 오사카 이카이노에서 태어난 분은 일본말을 듣고 쓰고 배우면서 자랐다고 합니다. 이녁 어버이는 제주에서 나고 자라며 제주말을 듣고 쓰고 배우면서 자랐다지요. 이녁한테는 손녀가 있고, 손녀는 영화 〈귀향〉에 나왔다고 하는데, 이 영화에는 손녀뿐 아니라 이녁 딸도 나왔대요.

  《제주도의 흙이 된다는 것》(김창생/양순주 옮김, 전망, 2018)을 읽으면 영화 〈귀향〉하고 얽혀서 일본 ‘넷 우익(극우 사이트 사람들)’이 글쓴이를 괴롭히는 이야기가 살며시 나옵니다. 글쓴이는 손녀가 영화 〈귀향〉에 나왔기에 몹시 대견스러우면서 자랑스러웠다고 해요. 우리 아픈 발자국을 돌아보는 뜻있는 영화에 나오며 우리 옛자취를 찬찬히 돌아보고 배우는 손녀가 이뻐 보였다지요.

  그런데 일본 ‘넷 우익’은 영화 〈귀향〉에 흐르는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라고 외치면서, 이 영화에 나오는 글쓴이 손녀가 ‘일본에서 살아가기 힘들’리라는 말을 쏟아내었다고 합니다.

  영화 하나가 달래려고 하는 아픈 넋은 어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에 나와서 오늘 우리한테 무엇을 보고 생각하면서 삶을 새롭게 가꾸어야 할까 하고 밝히는 넋은 오늘 이야기입니다.


재일4세인 나의 사랑스러운 손녀가 (영화 〈귀향〉에서) 주인공 정민 역을 연기했다. 일본 상황을 고려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그 사실을 공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을 들여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손녀가 살아갈 일본의 현실에. 넷 우익의 충실하고 부지런함에……. 치가 떨렸다. (176쪽)


  출입국 심사대에서는 국적을 따집니다. 그 국적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떤 마음앓이를 했는지는 살피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국적을 매기는 정치나 사회를 헤아릴 틈이 없습니다. 지구라는 별에서 나라가 서로 평등하거나 평화로우려면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 돈을 풀어 준다는 외국 관광객한테는 문을 열되, 한겨레한테는 국적 때문에 문을 열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어떤 길을 가는 모습일까요.

  그리고 한겨레가 왜 서로 죽이고 죽어야 했을까요. 모든 사람은 생각도 말도 삶도 다르기 마련일 텐데, 생각이 다르대서 서로 죽이고 죽어야 했던 지난날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을까요. 돈이나 계급이 있고 없고에 따라 사람을 가르던 봉건사회도 어리석지만, 이쪽이냐 저쪽이냐로 갈라서 총칼을 들어야 하던 나날도 어리석습니다. 무엇보다 흙을 가꾸며 살던 이들한테는 이쪽도 저쪽도 없이 ‘마을·보금자리·이웃’이 있을 뿐이었어요. 어느 쪽도 아닌 숱한 사람들은 훤한 낮에 떼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바로 제주에서.


일본인 관광객이 한 해에 2백만 명 이상 방문하는 한국에 조선국적이라는 이유로 조상의 땅을 여지껏 밟지 못하는 재일3세 청년이 있다. (85쪽)

4·3 사건을 직접 겪은 고령자가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보다 더해수다. 그땐 더 심해십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것은 이 영화의 가치를 폄하하는 표현이 아니다. 평소라면 영화관에 올 일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영화관에 찾아오게 만든 업적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100쪽)


  《제주도의 흙이 된다는 것》을 쓴 분은 늘그막에 가시버시 두 사람이 제주로 삶터를 옮깁니다. 글쓴이 어버이가 제주사람이기는 했어도 글쓴이로서는 그 고장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기에 제주에서 누가 이웃이거나 동무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한겨레이지만 한국이라는 터전이 외려 더 낯설 수 있습니다.

  ‘내 뿌리란 무엇인가’ 하고 물으려고 삶터를 옮겼다고 해요. 일본에서 제주로 삶터를 옮긴 ‘재일2세’인 글쓴이는 틈나는 대로 제주 곳곳을 다니면서 1940년대 끝자락에 아프게 살아야 했던 자취를 마주하려고 합니다. 이녁 어버이가 그무렵 어떤 삶을 치러야 했는가를 느껴 보려 하고, 이녁 또래가 그즈음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를 느껴 보려 합니다.

  이러던 어느 날,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터에 들어간 적이 있대요. 해군기지를 막아내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이곳저곳 걷다가 ‘열린 울타리’ 안쪽으로 살며시 걸음을 옮겨 보는데, 테니스 경기장에, 절에, 교회에 갖가지 건물이 늘어섰다지요.


이곳저곳 걷다 보니 보수공사 중인 해군기지에 다다르게 되었다. 자재를 들여오기 위해 펜스를 열어둔 게 아닌가.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몰래 들어갔다. 잔디밭이 깔린 테니스코트, 해군을 위한 사원과 교회가 그 옆에 각각 세워져 있었다. 호도는 거대한 선박 때문에 시야에 가려져 볼 수 없었다. (227∼228쪽)


  재일1세라는 이름을, 재일4세라는 이름을, 앞으로 이어질는지 모를 5세나 6세나 7세라는 이름을 가만히 읊어 봅니다. 앞으로도 이런 이름을 읊어야 할는지, 앞으로는 이런 이름을 털어내고 ‘한이웃’으로 마주할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마을하고 마을 사이에 울타리가 없기를 바랍니다. 고장하고 고장 사이에도, 나라하고 나라 사이에도 울타리가 없기를 바라요. 울타리를 치기에 서로 군대를 두고 으르렁거립니다. 울타리가 없으면 군대가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쳐들어갈 일도 쳐들어올 일도 없을 적에 평화와 민주와 평등이 함께 싹틀 수 있지 싶어요. 군대를 지키는 길이 아닌 평화를 지키는 길에서 따사로이 한이웃이 되어 손을 잡을 수 있지 싶습니다.

  제주에서 흙이 되려고 하는 글쓴이는 평화라는 걸음으로 고이 눈을 감고 싶은 꿈을 꿉니다. 이웃을 아끼려는 마음으로, 이웃이 되려는 마음으로, 남남이 아닌 서로 손을 잡으려는 마음으로 마지막 걸음을 곱다시 딛고 싶습니다. 2018.5.10.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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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5.7.


《out of the shadows a life of Gerda Taro》

Francois Maspero 글, souvenir press, 2006 (2008 English)



  로버트 카파라는 분을 다룬 만화책을 읽으니 ‘게르다 타로’란 이름이 처음부터 끝까지 줄줄이 나왔다. 여태 이 이름은 몰랐기에 한참 들여다보았고, 구글을 거쳐 아마존에서 요모조모 찾아보았다. 참말로 로버트 카파 그늘에 가려 게르다 타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너무 일찍 죽고 말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사진밭에서는 영웅 한 사람을 세워서 기릴 뿐 아닌가 싶었고, 로버트 카파가 연 ‘매그넘’ 힘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 게르다 타로는 여성 보도사진가이기 앞서 ‘사진가’였다고 한다. 로버트 카파가 나서지 않고 싶은 일에서도 씩씩하게 나섰고, 로버트 카파는 담아내지 못한 기운찬 사진을 빼어나게 찍기도 했단다. 로버트 카파는 마흔을 넘긴 나이에 지뢰를 밟고 죽는데, 게르다 타로는 스물을 조금 넘긴 나이에 탱크에 밟혀 죽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2006년에 나오고 영어로 2008년에 나온 《out of the shadows a life of Gerda Taro》를 장만한다. 사진을 담은 책을 장만하고 싶었는데, 게르다 타로 삶을 그린 책이다. 그래도 좋다. 다음에는 사진을 담은 책을 만나리라 생각하며, 이녁 삶을 그린 이 책을 고이 건사해야지. 언젠가 이 책을 한국말로 옮겨 볼 이웃님을 만날 수 있으리라.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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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5.6.


《3월의 라이온 6》

우미노 치카 글·그림/서현아 옮김, 시리얼, 2011.6.10.



여섯 해 만에 《3월의 라이온》 여섯째 권을 집는다. 다섯째 권까지 읽고는 이제 그만 읽을까 싶었다. 지난 여섯 해를 돌아보면 아이들하고 걸어온 길에 ‘책을 차츰 줄이자’는 생각이었다. 줄이고 줄여도 아직 책이 참 많은데, 여섯째 권을 쥐고 나니 일곱째 여덟째 아홉째 …… 잇달아 손에 쥔다. 웬 만화책을 이렇게 한꺼번에 잔뜩 읽어치우는지. 만화로 이야기를 담는 이웃님한테서 어떤 눈썰미나 마음길을 배우려고 만화책을 꾸준히 읽을까? 《3월의 라이온》에 나오는 사람들은 장기판을 둘러싸든, 수수한 살림집에서 길을 찾든, 이 언저리에서 제 넋을 잃으면서 헤매든, 다들 한 가지를 바라본다. 어디로 가야 좋을는지 뚜렷하게 잡아채지는 못하더라도 어디로든 가려고 하는 눈으로 삶길을 바라본다. 때로는 힘있게 제길을 바라보면서 잡아채려 하고, 때로는 뚜렷하게 보았다 싶은 길에서 멍하니 주저앉는다. 때로는 시샘을 하고, 때로는 괴롭히며, 때로는 바보짓을 한다. 서로 착하게 살면 좋으련만 좀처럼 착한 마음을 안 찾는 사람은 무슨 생각인지 아리송하기도 하다. 그러나 착함이란 밖에서 오지 않는다. 착한 마음은 휘둘리지 않는다. 고요히, 고이, 마음자리 거울을 바라보면서 앞길로 한 걸음씩 내딛으려 하면 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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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화의 길 - 나의 삶 나의 영화 일제강점기 새로읽기 1
나운규 지음 / 가갸날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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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49


어릴 적 들은 구슬픈 아리랑을 영화로 담다
― 조선 영화의 길
 나운규
 가갸날, 2018.4.20.


돈으로 꾸며놓는 화려한 작품은 만들기 어려워도, 단 두 사람이 출연하고 오막살이 세트 하나라도, 실력만 있으면 사람의 가슴을 찔러줄 작품은 만들 수 있다. (15쪽)


  《조선 영화의 길》(나운규, 가갸날, 2018)을 읽습니다. 영화감독 나운규 님이 남긴 글로 엮은 책으로는 《춘사 나운규 전집》(집문당, 2001)이 있습니다. 2001년에 나온 책은 500쪽 가까운 두께로 나운규 님 삶을 두루 밝히려 했다면, 2018년에 나온 책은 176쪽 두께로 나운규 님 넋을 찬찬히 살피도록 이끈다고 할 만합니다. 누구나 이름은 익히 들어 보았어도 정작 목소리로는 알지 못하는 영화감독 숨결을 느끼도록 북돋우려는 《조선 영화의 길》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아즈바니, 도사부 잘 드능구마.” 이렇게 써놓으면 타지방 사람은 못 알아보는 모양이다. “아저씨 거짓말 잘하시네.”로 알아들을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느 지방 사람들이나 알아듣도록 고치려고 해 봤으나, 그것도 절름발이가 되는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중앙언으로 해버렸는데, 이렇게 해놓고 보니 지방색이라고는 아주 아니 난다. (28쪽)


  함경도에서 나고 자란 나운규 님한테는 함경말이 텃말이면서 엄마말입니다. 함경도를 터전으로 영화를 찍을 적에 ‘함경말을 쓰고’ 싶었다지만, 막상 함경말하고 서울말(중앙언)이 매우 다를 뿐 아니라, 다른 고장에서 쓰는 말하고도 달라, 영화로 들려주려는 줄거리를 못 읽을 수 있으리라 느꼈대요. 어쩔 수 없이 서울말을 쓰도록 했지만 아주 섭섭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이라면 영화에서는 함경말을 고스란히 쓰되, 글씨를 서울말로 넣을 수 있습니다. 제주사람 삶자리를 담은 영화를 보면 이렇게 하기도 합니다. 더 헤아린다면, 고장마다 다른 사람들이 고장마다 다른 말을 넉넉히 쓰도록 북돋우면서, 영화에 글씨를 붙여 서울말로 알려주어도 됩니다.

  영화감독 나운규 님이 나중에 글로 밝혀 놓기도 했습니다만, 함경도를 터전으로 찍는데 함경말 아닌 서울말을 쓰면 어쩐지 맛이 없겠지요. 말이란 살림살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목소리이거든요.


그는 옛날에는 환영을 받았다. 그렇지만 옛날의 환영이란 얼굴에 대한 환영이 대부분이었다. 인격이나 배우로서의 기량에 대한 환영이 아니었다. (33쪽)

지금 와서 탄식만 한다면 그런 낡은 썩은 옛이야기를 들추어낼 필요가 없다.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은 것만이 개화가 아니다. 역사란 언제든지 움직인다. (43쪽)

그 사람의 신분이 기생이라고 하자. 그러나 막이 열리고 무대에 나온 이상 한 사람의 배우다. (108쪽)


  오늘 우리는 영화감독 나운규 님한테 어떤 마음으로 영화를 찍었느냐고 물을 수 없습니다. 배우는 어떤 눈길이나 잣대로 뽑는지, 배우한테 무엇을 바라는지, 배우는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여러 가지도 물을 수 없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영화를 찍으며 얼마나 고단했는지, 일제강점기에 굳이 영화를 찍으려 한 마음은 무엇인지, 일제강점기라는 그때에 어떤 영화를 어떻게 찍어서 이 나라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었는지, 이런 궁금한 대목도 물을 수 없어요.

  그러나 나운규 님이 드문드문 남긴 글을 한자리에 그러모으니, 어렴풋하지만, 아쉽지만, 더 살펴볼 수는 없지만, 무척 고맙게 마음으로 묻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구나 싶어요. 짤막하게 스치는 듯한 한두 줄에서 떠난 영화감독 한 사람 목소리를 어림해 봅니다. 참말로 짤막한 한두 줄을 되읽고 또 읽고 거듭 읽으면서, ‘식민지 조선에서 영화감독이라는 길을 걷기’란 이와 같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낄 수 있어요.


나는 국경 회령이 내 고향인 만치, 내가 어린 소학생 때에 청진서 회령까지 철도를 놓기 시작하였는데, 그때 남쪽에서 오는 노동자들이 철로 길뚝을 닦으면서 ‘아리랑 아리랑’ 하고 구슬픈 노래를 부르더군요. 그것이 어쩐지 가슴에 충동을 주어서 길 가다가도 그 노래가 들리면 걸음을 멈추고 한참 들었어요. 그러고는 애연하고 아름답게 넘어가는 그 멜로디를 혼자 외워 보았답니다. (148쪽)


  나운규 님은 퍽 젊은 나이에 이슬이 되었다고 합니다. 애써 찍은 영화는 툭하면 가위질이요, 가위질되어 줄거리 앞뒤가 끊어지니 다시 찍느라 돈은 돈대로 들고 품은 품대로 들며 마음앓이는 마음앓이대로 해야 하니 언제나 머리가 지끈거렸대요.

  일본 제국주의는 영화감독 한 사람을 총칼을 휘둘러 죽이지 않았습니다. 영화감독 한 사람은 식민지살이를 하며 영화를 제대로 찍기가 너무 벅차면서 괴로워 그만 갑자기 숨을 거두었대요.

  국경에 있던 회령에서 나고 자라며, 그곳으로 일하러 고향을 떠나 멀리 온 한겨레붙이가 구슬프게 부른 아리랑을 가만히 따라하고 외웠던 작은 아이는, 구슬픈 노랫가락 아리랑을 잊지 않았대요. 이 작은 아이는 어른이 되었고, 어느새 영화감독이란 자리에 서면서, 어릴 적부터 가슴에 고이 담은 구슬픈 노랫가락을 손수 갈무리하고 노랫말을 새로 입혀서 영화에 담았대요.

  애틋하면서 아련하게 부르던 구슬픈 가락에 사람들 눈시울이 젖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해방 뒤에도 전쟁 뒤에도 군사독재 뒤에도, 앞으로 새로 지을 참다운 민주와 평등과 평화가 드리울 나날 뒤에도, 아리랑은 사람들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아름다운 노랫가락으로 흐르겠지요. 2018.5.9.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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