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과 책읽기


 예전이라고 말하기보다 혼자서 살던 때에는 책방마실을 하거나 책을 읽느라 바쁜 나머지 손톱·발톱 깎기를 으레 잊고 지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요즈음이라기보다 아이를 낳고부터 여러 해째 아이를 돌보거나 집살림 꾸리랴 바쁜 나머지 손톱·발톱 깎기를 늘 잊는다. 웬만큼 자라다가도 빨래를 하며 닳아서 없어지고, 때로는 톡톡 부러지기도 한다. 아이 손톱·발톱을 바지런히 깎아 주지만 막상 내 손톱·발톱은 깎지 못하고, 내 손톱·발톱을 깎자고 생각할 즈음은 언제나 잠자리에 뻗어 오늘 하루 또 어떻게 지나갔나 하고 해롱해롱 돌아보는 무렵. (4344.3.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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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는 책읽기


 나라밖으로 나가서 여러 겨레 여러 사람을 만나면 온누리를 바라보는 눈이 넓어진다고 이야기합니다. 틀리지 않는 말입니다. 넓은 곳을 둘러본 사람치고 눈이 넓어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조그마한 시골자락에서 살면서도 이 시골자락 구석구석 못 밟은 곳이 많습니다.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던 때에도 날마다 몇 시간씩 온갖 골목을 두 다리로 누비면서도 미처 밟지 못한 길이 있습니다. 게다가 날마다 같은 멧길이나 골목을 다니더라도 날마다 새롭게 마주하거나 느끼는 이야기가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나라밖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이야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을 언저리에 머물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이야기를 익힐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씩 날아도 배우고, 배를 타고 몇 시간씩 물살을 갈라도 배우며,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몇 시간씩 달려도 배웁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몇 시간을 다닌다든지 두 다리로 등성이 하나 골짜기 하나 가로지르면서도 배웁니다.

 집에서 아픈 옆지기와 함께 살아가면서 어린 아이를 돌보다 보면 읍내마실조차 버겁습니다. 읍내마실조차 버거운 만큼 하는 수 없이 누리책방에서 책을 사곤 합니다. 그렇다고 자주 사지는 못하고 한 달에 서너 번쯤 삽니다. 그동안 사서 그러모은 책을 다시 읽기도 하고, 아이 보랴 살림 하랴 밥 하랴 빨래 하랴 바쁜 겨를에 치여 책줄 하나 못 읽기도 합니다.

 홀로 살아가며 책줄을 뒤적일 때에는 책줄을 뒤적이면서 배웠습니다. 둘이 살아가며 나 혼자 좋을 대로 살아갈 수 없을 때에는 나와 다르면서 같이 지내는 한 사람 눈썰미와 눈높이를 돌아보면서 배웠습니다. 셋이 작은 집에서 아옹다옹 살아가는 오늘날은 셋이 얼크러지거나 복닥이는 고단하며 지치는 나날을 그대로 배웁니다. 시나브로 네 사람이 이 멧골자락 작은 집에서 부대낄 때에는 또 이대로 무언가를 배우겠지요.

 사람은 나라밖마실에서도 배우고, 헌책방마실에서도 배우며, 대학교에서도 배웁니다. 초등학교만 다녀도 배우고, 학교를 안 다녀도 배우는 한편, 흙을 일구며 살아도 넉넉히 배웁니다. 군대처럼 끔찍한 죽임터에서도 배울 테고, 회사나 공공기관처럼 틀에 박힌 데에서도 배울 테지만, 집에서도 배우겠지요. 나랑 같이 놀자며 눈빛을 말똥말똥 빛내는 아이와 마주하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비행기를 타고 핀란드에 가든 백만 권에 이르는 책을 읽든 하버드대학교를 1등으로 마치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4344.3.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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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하고 책읽기


 아침마다 밥을 해서 차리고, 밥을 먹인 뒤 치우며, 밥그릇을 설거지한 다음, 비로소 한숨을 돌리면 어느덧 한낮입니다. 하루란 참 빨리도 흐르는군요. 이렇게 흐르는 나날이 쌓이거나 모이면서 아이하고 함께 살아온 지 세 해가 꽉 차는 올해입니다. 올해에는 첫째 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가 태어납니다. 둘째가 태어나 두 아이와 한 어른한테 밥을 먹이는 살림을 꾸리자면, 아마 겨우 기지개를 켤 만큼 숨돌릴 때란 한낮이 아닌 저녁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기지개를 켤 말미란 한 차례도 없을는지 몰라요.

 두 아이를 보듬는 동안 글조각을 만질 틈이란 하나도 없을는지 모릅니다. 아마, 글조각은커녕 책줄 하나 읽지 못할 수 있겠지요.

 예부터 어르신들은 젊은이한테 말씀했습니다. ‘젊은이들아(또는 아이들아), 눈이 밝을 때에 책을 읽어라.’

 나는 생각합니다. ‘아아아, 아이가 잠들었을 때에 두 눈 부릅뜨고 한 줄이라도 읽어라. 아이가 아직 하나일 때에 두 줄쯤은 읽어라. 아이가 아직 없으면 석 줄은 읽어라. 짝꿍하고 살아가는 살림집이 아니라면 넉 줄은 읽어라. 홀로 바지런히 배우는 나날이라면 백만 줄은 읽어라.’ (4344.3.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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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 친일 작품 2 



 덴마크에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님이 있습니다. 스웨덴에는 아스트리드 안나 에밀리아 린드그렌 님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이원수 님이 있습니다. 이원수 님은 1911년 11월 17일에 태어나서 1981년 1월 24일에 숨을 거둡니다. 숨을 거두기로는 1981년이지만 1970년대 끝무렵부터 몸져누워 손을 쓸 수 없었고, 손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더는 동화이든 동시이든 쓰지 못했습니다. 곁에서 보살펴 주는 당신 딸아이한테 겨우겨우 더듬더듬 하는 말소리를 귀를 대고 읊으면서 몇 자락 옮겨 적도록 해 줄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입으로 쓴’ 마지막 시(동시)가 〈겨울 물오리〉입니다. 아마, 어른 가운데에는 동시나 동화이기 때문에 이원수 님 문학을 가까이하지 않는 터라 〈겨울 물오리〉이든 〈염소〉이든 욀 줄 아는 분이 없겠지요.


.. 엄매애 / 엄매애 / 염소가 웁니다. // 울 밖을 내다보고 / 염소가 웁니다. // “이 문 좀 열어 줘. / 이 문 좀 열어 줘.” // 발돋움질해 봐도 아니 되어 / 뿔로 탁탁 받아 봐도 아니 되어 / 울 안에서 염소는 / 파래진 언덕 보고 / 매애 웁니다. / 잔디밭에 가고 싶어 매애 웁니다. // 민들레도 피었네. / 오랑캐꽃도 피었네. / 보리밭 언덕 너머엔 / 살구꽃도 피었네. // 염소는 애가 타서 / 발돋움질 또 하네. // “염소야, / 염소야. / 봄이 와도 너는 / 놀러도 못 가니?” ..  (1940년, 염소)

.. 얼음 어는 강물이 / 춥지도 않니? / 동동동 떠다니는 / 물오리들아 / 얼음장 위에서도 / 맨발로 노는 / 아장아장 물오리 / 귀여운 새야 / 나도 이젠 찬바람 / 무섭지 않다 / 오리들아, 이 강에서 / 같이 살자 ..  (1980년, 겨울 물오리)



 안데르센 님이나 린드그렌 님이나 이원수 님이나 문학하는 마음은 처음과 끝이 같습니다. 처음과 끝이 다른 문학을 했다면 이분들이 사랑받을 까닭이 없습니다. 처음과 끝이 한결같도록 어린이사랑과 사람사랑과 삶사랑을 이었기에, 이분들은 두루 사랑받을 만합니다.

 이원수 님을 놓고 지난 2002년 즈음부터 ‘친일시 발굴’이라고 하면서 퍽 떠들썩하게 이야기할 뿐 아니라, 이원수 님이 태어난 지 100돌을 맞이한 올해에도 이원수 님을 기리는 잔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합니다. 관청에서는 이원수 님이 훌륭한 길을 걸었든 가난한 길을 걸었든 여태제껏 제대로 돕거나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이제 와서 관청(창원시)에서 어설피 이원수 님을 기리려 하는 일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기리려 했으면 1981년에 숨을 거둘 때부터, 아니 숨을 거두기 앞서부터 기려야 했겠지요. 서른 해나 지나고서야 기린다고 법석을 떤다면 조금도 좋은 모양새일 수 없습니다. 더욱이, 이원수 님이 멍에처럼 짊어지며 살았던 생채기와 아픔이 무엇인가를 살피지 않으면서 기리기만 할 때에는 몹시 슬픕니다. 그리고, 이원수 님 이름 앞에 ‘친일 아동문학가’라는 딱지를 함부로 붙이는 사람들도 참 안타깝습니다. 이원수 님은 어린이문학을 한 사람이지 ‘친일 아동문학가’가 아닙니다. 이원수 어린이문학이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사랑받았는가를 느끼거나 헤아리지 못하니까 그저 이런 딱지붙이기를 하고 마는구나 싶습니다.


.. 깎아지른 돌산 / 삐죽삐죽 내민 바윗돌 모서리 / 반이나 떨어져 나가 / 허연 뼈 살이 바람에 시린 // ― 돌산. / 그 위에 / 오밀조밀 판자집 동네. / 동네 아이들 노는 곳에 / 바로 낭떠러지, / 아, 무서운 벼랑. // 아래에선 오늘도 / 우르릉 광…… / 우르릉 우르릉 …… / 다이너마이트가 산을 깬다. // 화려한 동네를 눈 아래 두고 / 가파른 길을 오르내리는 / 돌산 동네의 아이들은 // 폭음을 배 속에 들이마시며 / 벼랑 위에 자라는 독수리들이다. / 날개가 어려서 아직은 / 부리로 논다 ..  (1967년, 산동네 아이들)

.. 해가 지면 성둑에 / 부르는 소리. / 놀러 나간 아이들 / 부르는 소리. // 해가 지면 들판에 / 부르는 소리. // 들에 나간 송아지 / 부르는 소리. // 박꽃 핀 돌담 밑에 / 아기를 업고 / 고향 생각, 집 생각 / 어머니 생각―. // 부르는 소리마다 / 그립습니다. / 귀에 재앵 들리는 / 어머니 소리 ..  (1946년, 부르는 소리)



 이원수 님이 1961년에 쓴 동화 〈앵문조〉를 읽으면, “어머니, 자유는 귀중한 거라고 우리 선생님도 그러셨는데, 식민지에서 남의 나라 지배만 받고 사는 민족은 참 불쌍하지 않아요? 왜 그런 지배를 받고 견디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원수 님도 친일시를 썼습니다. 기록으로 남았고, 2002년에 앞서 벌써 알려진 일입니다. 그러나 2002년 앞서에는 이원수 님이 쓴 친일시를 놓고 죽은 이 무덤을 파헤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원수 님이 이룬 어린이문학이란 ‘바로 이 친일시 때문에’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일제강점기에 친일시를 쓴 뒤로 해방 뒤부터 독재정권을 거쳐 민주운동 불길이 치솟을 때까지도 권력 그늘에서 맴돌았습니다. 아니, 친일시를 쓴 이들치고 해방을 거쳐 독재정권을 지나 민주운동을 하는 흐름에 걸쳐 참다운 독립과 자주와 평화와 민주를 바라는 일을 한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원수 님은 친일시를 썼으나, 일제강점기에 펼친 어린이문학을 비롯해 해방 뒤부터 독재정권으로 어둡던 때까지 늘 옳고 바르며 착하고 참다운 어린이랑 가난한 사람 자리에 서서 살아왔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이원수 님이 스스로 ‘내가 잘못했다’고 뉘우치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고. 스스로 이렇게 말한 적이 없으니 이원수 님은 그야말로 잘못했다고.

 그래요, 이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이원수 님은 당신 입을 빌어 ‘나는 일제강점기에 친일시를 썼습니다. 이 일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뉘우칩니다.’ 하고 밝힌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스스로 밝힌 적이 없기 때문에 이원수 님이 잘못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글로 밝혀야 한달 수 있겠지요. 그런데,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글로 밝히는 뉘우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원수 님은 사상가나 이론가나 혁명가나 철학가나 교육가나 기자나 지식인이 아닙니다. 이원수 님은 어린이문학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원수 님은 어린이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린이한테 언제나 뉘우쳤습니다. 당신이 몹시 가난하고 힘들게 어렵사리 살림을 꾸리던 일제강점기 막바지에 당신 집식구를 먹여살리면서 친일시를 쓰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친일시를 쓴다 해서 당신 살림이 나아졌다거나 당신 이름이 드높아졌다거나 한 적이 없습니다. 친일시를 쓰라고 떠밀려서 친일시를 썼지만, 막상 밥그릇이 나아지지 못했습니다. 부끄럽게 쓴 시가 더 부끄러워질 노릇이지요. 당신 몸을 팔아 쌀자루나마 얻으려 했는데, 몸만 팔고 쌀자루는 얻지 못했으니까요. 몸 팔린 채 버려지고 말았으니까요.

 아마 이원수 님이 병으로 1981년에 숨을 거두지 않고 조금 더 오래 살아남아 1990년대를 살거나 2000년대까지 살 수 있었다면 ‘사람들이 바라는 뉘우침글’이 나왔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도 해방 뒤에도 늘 빠듯한 살림으로 살아가며 어린이문학을 하던 사람한테 ‘다른 글’을 바랄 수 없습니다. 아니, 다른 글을 바라기 앞서 이원수 님이 쓴 글이 어떤 글인가를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어린이들한테 씩씩하고 꿋꿋하며 참답고 착하게 살아가라고 북돋우는 글을 어떻게 썼는지 읽어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아무리 가난하거나 힘들거나 슬프더라도 기운을 잃지 말라며 쓴 문학에 어떠한 눈물이 깃들었는지 읽어야 합니다.

 가난한 나머지, 굶는 아이들을 소리없이 울면서 바라보아야 하는 나머지, 집안을 이끌 아버지로서 어찌할 바 모르며 헤매던 나머지, 글을 팔고야 마는데, 글을 팔고 난 뒤에도 똑같이 힘겨운 살림이었기에 생채기와 아픔을 더 속으로 파묻을 수밖에 없이 외로이 살면서 어느 권력하고도 가까이하지 않고, 어느 명예하고도 사귀지 않으면서 견딘 가녀린 목숨줄을 읽어야 합니다.

 이원수 님은 숨을 거두기 앞서 비로소 “나도 이젠 찬바람 무섭지 않다” 하고 노래했습니다. 찬바람이 무섭지 않다고 겨우 한 마디를 뱉고 나서는 더는 아무런 말마디를 뱉을 수 없었습니다. 뱉고 싶어도 몸이 따라 주지 못했으니까요. “오리들아, 이 강에서 같이 살자”고 한 마디를 겨우 이었습니다. “얼음 어는 강물”에서 “춥지도 않”은지 “동동동 떠다니는 물오리들”을 떠올리면서, “얼음장 위에서도 맨발로 노는 아장아장 물오리”를 생각하면서, 아 그렇구나 그래 참 그렇지, 나는 밥굶기가 무서워 친일시를 쓰고 말았지만 내 삶에 이렇게 슬픈 얼룩이 지고 말았지만, 나처럼 또는 나보다 더 굶주리던 사람들은 이 춥고 매서운 날에도 얼음과 찬바람에 지지 않고 씩씩하면서 예쁘게 살았구나 하고 느끼며 “귀여운 새야” 하고 노래했습니다.

 어떤 이는 ‘참회록’을 쓰겠지요. 어떤 이는 ‘반성문’을 쓰겠지요. 그리고 이원수 님은 어린이문학을 하는 분이었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겨울 물오리’를 노래했습니다. 다른 사상가나 철학가나 교육가나 혁명가나 운동가나 기자나 지식인들은 ‘참회록’이나 ‘반성문’ 같은 틀(형식)을 바라겠으나, 이원수 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늘 어린이 자리에서 어린이 꿈과 삶으로 지내왔기 때문에, 어린이 목소리와 노래 결에 따라 ‘겨울 물오리’를 노래했습니다. 어린이라면 알아들을 수 있는 쉽고 깨끗한 말글로 가장 쉬우면서 맑은 동시와 동화와 수필을 써서 아이들한테 남겼습니다.

 나는 이원수 님 어린이문학을 읽을 때마다 가슴으로뿐 아니라 볼따구니를 타고도 눈물이 흐릅니다. 이원수 님이 쓴 모든 글마다 당신 지난날을 가슴아프게 뉘우치는 말마디가 깊디깊이 아로새겨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오래도록, 이렇게 꾸준하게, 이렇게 거듭거듭 뉘우치면서 슬퍼한 사람은 이 나라 한국에 아무도 없습니다. 1911년부터 1945년까지 서른다섯 해, 1946년부터 1981년까지 서른여섯 해를 산 이원수 님은, 당신 앞삶 반토막을 되씹으며 당신 뒷삶 반토막을 한길로 걸었습니다.

 이원수 님은 기념관이라든지 문학관 따위에 당신 글과 넋과 꿈이 깃들리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신 글과 넋과 꿈은 오로지 어린이 가슴에 살포시 깃들 수 있으면 고맙겠다고 여겼습니다. 막상 이원수 님이 바라거나 꿈꾸지도 않은 기념관을 놓고 툭탁툭탁 싸우는 어른들이 슬픕니다. ‘친일 아동문학가’라는 딱지붙이기하고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이라는 허울좋은 껍데기를 집어치우고, 이원수 님 어린이문학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읽으며 어린이마음을 예쁘게 보살피면 좋겠습니다. 둘 다 틀렸습니다. (4344.3.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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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 읽는 어린이


 아이는 제 어버이가 장만한 그림책을 사서 읽는다. 아이 스스로 책방에서 고른 그림책을 읽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이는 책방마실을 한달지라도 책을 사거나 읽으러 간다기보다 어디 놀러 가는 마실이기 때문이다.

 어버이는 아이가 읽을 책이며 어버이 스스로 읽을 책을 고른다. 아이는 마냥 뛰어논다. 어버이가 고른 책 가운데에는 아이가 즐겁게 읽는 책이 있으나, 아이가 거들떠보려 하지 않는 책이 있다.

 글만 빽빽하기에 아이가 거들떠보지 않는 책이지는 않다. 아이는 아직 글을 모르기 때문에 글책은 읽을 수 없다. 그러나 요즈음, 아이는 굵고 큰 글씨는 알아보려 하는 듯하다고 느낀다. 지난주에는 《게게게의 기타로》라는 만화책에 적힌 글씨를 하나씩 짚으며 “이게 뭐야?” 하고 물었다. 오늘 새벽에는 《엉망진창 섬》이라는 그림책에 적힌 글씨를 하나하나 짚으며 《이건 뭐야?》 하고 묻는다. 무슨 어린이가 새벽 두어 시부터 깨어서 논다며 이렇게 방방 뛰는지 알 길이 없다만, 나하고 옆지기가 낳은 아이인 만큼 나하고 옆지기가 어린 날 이렇게 방방 뛰듯이 놀았다는 소리가 될 테지.

 만화책 《게게게의 기타로》는 어린이한테 조금 무서울 수 있으나, 무섭다고 해 보아야 1960년대 어린이한테 무서울 만화였고, 2010년대 어린이한테는 그닥 무섭지 않다 할 만한 만화이다. 왜냐하면, 2010년대 일본이나 한국이나 깊은 두메란 거의 사라졌으니까. 요괴이든 도깨비이든 조용히 깃들면서 사람이랑 씨름하며 놀던 시골자락은 이제 없다. 아이는 만화책을 넘기며 기타로이든 요괴이든 귀엽거나 재미있게 여기는지 모른다. 《엉망진창 섬》에 나오는 괴물 그림을 보면서도 무섭다기보다는 재미나거나 남다르다고 느낄까.

 생각해 보면, 윌리엄 스타이그 님은 ‘무서워 보이는 괴물’을 그렸다기보다 ‘저마다 다 다른 괴물’을 그리지 않았는가 싶다. 저마다 다 다른 괴물들이 저마다 다 다른 삶을 사랑하거나 아끼면서 살아가면 좋을 텐데, 이렇게 하지 못하면서 늘 서로 윽박지르며 다투기만 했다는 이야기를 그렸는지 모른다.

 만화책 《게게게의 기타로》도 매한가지이다. 미즈키 시게루 님은 일부러 무서운 요괴를 그리지 않는다. 미즈키 시게루 님이 그린 일본 요괴는 ‘시골에서 오래오래 살아온 여느 사람들 착하고 참다운 터전을 고이 돌보거나 지키며 이웃하던 어여쁜 다른 목숨’이 아닌가 싶다. 착하며 아름다운 사람하고는 이웃이 되고, 못되거나 모진 사람한테는 쓴맛을 보여주는 또다른 님을 보여준 만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는 예쁘장한 그림보다는 제 마음에 끌리는 그림을 반긴다. 아이가 손에 쥔 그림책 그림이 그저 예쁘장하기만 하다면 곁에서 지켜보는 어버이로서 하나도 재미없다. 아이가 손에 쥔 그림책 그림이 예쁘기도 하면서 살가울 때에는 옆에서 바라보는 어버이로서 언제나 새롭거나 새삼스럽다.

 그림책을 그려서 내놓는 어른은 생각해야 한다. 모든 그림책은 아이가 열 해나 스무 해 넘도록 수천 수만 번을 되읽는 책인 줄을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제 어버이만 한 어른이 되어 좋은 짝꿍을 사귄 다음 제 어린 날과 마찬가지인 새로운 어린아이를 낳아 키울 때에 다시금 장만하거나 어릴 적 보던 책을 다시 꺼내어 제 아이한테까지 읽히는 책인 줄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책읽기를 생각하지 않고서 그림책을 그린다면, 또 만화책을 그린다면, 또 글책을 쓴다면, 이런 책은 책이 아니라 돈벌이일 뿐이다. 돈벌이만 하는 사람은 어린이문학을 하는 사람이 아니요, 이에 앞서 책삶을 일구는 사람부터 될 수 없다. (4344.3.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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