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부르는 소리 

 좋은 책이 사람을 부른다. 좋은 책들이 사람들을 부른다. 나를 얼른 읽어 달라고 부르며, 나를 알뜰살뜰 읽어 달라면서 부른다. 책들이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가난한 책쟁이 주머니를 안 털 수 없다. 가난한 책쟁이 주머니이지만, 이 책들을 하나하나 장만하여 가방에 차곡차곡 쟁인다. 어깨가 눌리며 아프지만, 꾸욱 참으로 집까지 들고 돌아온다. 살림돈이 바닥나니 하루살이 같은 살림살이 걱정이 큰데, 이달은 또 어떻게 살림돈을 마련해야 하나 시름시름 앓는다. 책을 사서 읽는다고 돈이 나오지 않는데, 돈은 얼마 없으면서 그예 책을 자꾸 사들인다. 이제까지 사들인 책을 다시 읽어도 되는데, 또 새로운 책을 사들인다. 책은 꾸준히 새로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삶을 일구면서 새로운 글을 써서 새로운 책을 내놓기 때문이다. 

 아이가 부른다. 착한 아이가 아빠를 부른다. 고운 아이가 아빠가 저랑 놀아 주기를 바라면서 부른다. 아빠는 이 일을 해야 하고 저 일을 해야 한다며 아이랑 잘 안 놀아 준다. 그러나 아이는 아빠를 또 부르고 다시 부른다. 이렇게 착한 아이하고 안 놀면 착한 아빠가 될 수 없다. 아빠는 일손을 붙잡으며 이맛살을 찡그리지만, 이내 두 손을 들어야 한다. 그래, 일이야 아이가 잠들고 나서도 할 수 있으며, 깊은 새벽에 조용히 일어나서도 할 수 있잖아. 아이야, 모자라고 바보스러운 아빠가 네가 깬 동안 제대로 놀아 주지 못하니 아빠가 참 잘못했구나.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자. 아빠 무릎에 앉아 그림책을 함께 읽자. 그림책을 읽으며 너는 새로운 말을 배우고 새로운 사랑을 받아먹어라. 

 옆지기가 부른다. 옆지기가 마음속으로 부른다. 우리가 시골집에서 조용하면서 오붓하게 잘 살아가자면서 부른다. 집다운 작은 집을 우리 손으로 알차게 보듬으면서 우리가 이 시골자락에서 예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아빠는 첫째와 곧 태어날 둘째를 먹여살릴 근심으로 이 글도 쓰고 저 사진을 찍는다며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단다. 노상 핑계를 댄다. 그러나, 집이 집다웁지 않고서야 글을 글답게 여밀 수 있겠나. 아이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귀담아들으면서 어여삐 살아갈 길을 찾아야지. (4344.2.1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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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가락과 책읽기 

 차디찬 물로 빨래를 하는 동안, 손끝과 손가락과 손등과 손바닥 모두 꽁꽁 얼어붙는다. 덜덜 떨리는 손을 팔뚝이며 볼에 대며 녹인다. 얼얼한 손으로 비비고 헹구다 보면 저절로 끙끙 소리가 터져나온다. 겨우 마친 빨래하고 물통을 들고 집으로 내려오면 내 손이 내 손 아닌 듯하다. 그러나 젖은 빨래를 착착 펴서 빨랫대에 넌다. 부들부들 떨면서 빨래를 널고 몇 가지 집일을 하고 나면 손이 차츰차츰 녹으면서 찌릿찌릿 아프다. 쩡 하고 골이 울린다. 흑흑 속으로 흐느낀다. 입에서는 아이고 소리 새어나온다. 한 시간쯤 지나 비로소 손이 풀리지만, 손톱 둘레는 욱씬욱씬 쑤신다. 꾹꾹 누른다. 왼손으로 오른손 손톱을, 오른손으로 왼손 손톱을 주무른다. 아아, 한숨이 나오고 한 시간쯤 더 있은 뒤에야 바야흐로 몸이 풀리, 이제는 책을 손에 쥘 만하다. (4344.2.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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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책방에 안 들어가는가 보다. 하는 수 없이 마이페이퍼로 띄운다) 



 인천 동구에서 공장을 찍은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14] 김보섭, 《시간의 흔적, 동구의 공장들》(성광디자인,2010)



 인천 동구에는 공장이 참 많습니다. 인천 중구에도 공장이 참 많고, 남구에도 공장이 몹시 많습니다. 인천 부평구에도 공장이 있을 테지요. 그러면, 인천시청 둘레에는 공장이 얼마나 있을까요. 인천 연수동이나 계산동이나 구월동이나 송도처럼 아파트가 잔뜩 들어선 곳 둘레에는 공장이 어느 만큼 있으려나요.

 인천 동구나 중구나 남구에 깃든 공장들은 으레 살림집 옆에 담벼락을 드리우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인천 동구나 중구나 남구에 깃든 공장들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공장 둘레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할 만하고, 가난하고 힘여린 사람들 살림집 있는 동네 한복판이나 기스락에 공장이 생겼다고 할 만합니다.

 오늘날 우리 터전에서는 공장이 없으면 하루도 도시살림을 꾸릴 수 없습니다. 여느 시골살림이라면 경운기·콤바인·트랙터·짐차가 없어도 흙을 일굴 수 있습니다. 기계가 없으면 낫과 호미와 괭이와 보습을 쓰면 됩니다. 전기 없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시골이요 꾸릴 수 있는 시골살림입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전기 없이는 하루는커녕 한 시간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서울이나 부산처럼 큰도시에서 전기가 한 시간만 끊어진다고 생각해 보셔요. 아마 어마어마하게 끔찍스러운 싸움판이 벌어지겠지요. 은행이 멈추고 전철이 멎으며 지하상가 불이 꺼지고 높은건물 승강기를 못 타며 백화점이 깜깜해지면 어찌 되겠습니까. 회사마다 컴퓨터로 모든 볼일을 볼 텐데 어떻게 되지요. 공장은 또 어찌 되려나요.

 전기를 먹으면서 살아가고, 전기를 먹으려고 끝없이 석유나 우라늄을 때며, 석유나 우라늄을 때자면 지구별 땅속 깊이 자꾸자꾸 파야 하고, 땅속 깊이 파헤친 터전은 환경이 무너질 뿐 아니라 석유나 우라늄을 태우며 엄청나게 많은 재와 쓰레기가 새로 나옵니다. 도시에서는 쓰레기봉투를 쓴다지만 쓰레기봉투도 비닐이요, 분리수거를 한다지만 제대로 나누어 버리지 못할 뿐더러, 페트병에 붙은 종이딱지를 벗겨 페트병 안쪽을 씻고 뭐를 하자면 다시 쓰거나 살려서 쓸 때에도 돈이 참 많이 듭니다. 이리 보든 저리 보든 도시살림이란 돈 놓고 돈 쓰기입니다. 인천 동구·중구·남구처럼 지붕낮은 골목집들 오글오글한 둘레에 깃든 우람한 공장을 쉼없이 돌려야, 도시는 숨을 트고 도시는 살아나며 도시는 꿈을 꿉니다. 공장 없는 도시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요즈음, 공장은 시골로 옮깁니다. 아니, 진작에 공장들이 시골로 옮겼습니다. 우리 식구들 살아가는 멧골자락 둘레에도 빈틈없이 공장이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땅값이 오르며 변두리 골목동네나 달동네라 하던 곳조차 아파트가 들어서야 하니까 공장이 쫓겨납니다. 나라밖에서 우리와 살빛이 비슷한 구리빛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여 시골자락에 가두어 놓듯 하면서 공장을 돌립니다. 이렇게 해도 공장 임자는 돈벌이가 시원찮으니 아예 중국에 공장을 지어 더 싼 일삯으로 더 많은 일꾼을 한꺼번에 부려 더 크게 돈벌이를 하고자 꾀합니다.

 그렇지만, 시골이나 중국에 공장을 잔뜩 지었어도, 인천에는 공장이 꽤 많이 남습니다. 왜냐하면 인천 곁에는 서울이라는 엄청나게 큰 도시가 있고, 서울이라는 도시와 둘레에는 ‘흙을 일구어 먹을거리를 마련하거나 공장을 돌려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얼마 없거나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인천시청이나 연수동이나 송도 같은 데에 공장이 깃들지 못하듯, 서울시청이나 광화문이나 종로나 강아랫마을이나 송파구 같은 데에 공장이 깃들지 않습니다. 인천 동구·중구·남구 공장들은 인천 동구·중구·남구 골목집들한테는 매캐한 먼지 섞인 바람과 물을 베풀면서 인천땅 아파트사람하고 서울땅 아파트사람한테 값싼 물건을 베풉니다.

 이러한 공장 자리를 오래도록 가만히 바라본 인천 사진쟁이 한 사람이 인천에 깃든 공장 가운데 동구에 있는 공장 몇 군데를 하나하나 살피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책 《시간의 흔적, 동구의 공장들》이 태어났습니다.

 공장 둘레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공장 둘레에는 반드시 사람이 있습니다만, 공장 사진에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공장은 기계로만 돌아가지 않습니다. 기계를 움직이는 사람이든, 공장을 돌리며 돈을 버는 사람이든 꼭 있습니다. 그러나 공장 안팎에 어떠한 사람이 얼마나 있고, 어떤 모습으로 일하거나 쉬거나 놀거나 살아가는지를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커다란 공장 굴뚝뿐 아니라 공장 담벼락과 설비에 묻혀 사람 그림자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도 이 커다랗거나 우람하거나 으리으리하거나 대단한 공장 기계와 설비는 사람들 손길이나 손때를 타며 만들어졌습니다. 한 해 두 해 흘러 첨단사회가 되는 동안 이 도시에 있던 공장은 저 시골로 가고, 저 시골에 있던 공장마저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동남아시아로 옮기지만, 공장은 어김없이 있습니다. 도시가 커지면 커질수록 공장은 더 커져야 하고, 공장을 굴리는 사람들은 더 돈을 벌어야 합니다.

 공장은 돈을 거머쥔 사람들 살림집하고는 자꾸자꾸 멀어집니다. 아파트를 지으려 해도 중장비뿐 아니라 중장비를 써서 붓고 붙이며 날라야 하는 시멘트며 원자재며 쇠붙이 들이란 공장에서 다듬거나 만듭니다. 몇 억이나 수십 억에 이르는 비싸다는 아파트에 들여놓는 텔레비전이나 냉장고는 누가 어디에서 만들까요. 아이들한테 사먹이는 과자 한 봉지는 누가 어디에서 만드나요. 가난한 사람이 먹어야 한다는 값싼 라면은 어디에서 만들지요. 무슨무슨 폰인지 하는 손전화는 누가 어디에서 만들려나요. 밥그릇은, 젓가락은, 옷가지는, 신은, 자동차는, 자전거는 다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요.

 공장은 공장에서 만드는 물건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살림집 가까이에 있어야 합니다. 발전소는 전기를 많이 써야 하는 사람들이 지내는 보금자리 둘레에 있어야 합니다. 쓰레기를 파묻거나 태우는 곳은 시골이 아니라 도시여야 합니다. 공장과 발전소와 쓰레기터는 왜 아파트 둘레에 놓지 않을까요. 공장과 발전소와 쓰레기터는 왜 가난한 사람들 살림집 둘레나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들 논밭 둘레에 마련해야 하나요.

 내 어린 날을 더듬어 보면, 나와 동무들 살던 동네 옆에는 늘 공장이 있었습니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 옆에는 언제나 공장이 가득했습니다. 학교로 오가는 길 사이사이 숱한 공장을 지나야 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앞서부터 이 공장들은 움직였고, 내가 고향집을 떠나 시골로 옮겼어도 이 공장들은 우람한 굴뚝에서 매캐한 연기를 내뿜고 옆구리로는 코를 찌르는 물을 내놓습니다.

 오늘날 인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인천에 공장이 얼마나 많고, 이 많은 공장들이 골목집 둘레에 얼마나 가까이 맞닿았는가를 헤아리거나 깨닫거나 느끼는 사람은 얼마쯤 되려나 궁금합니다. 인천에도 아파트가 참 많고, 새로 짓는 아파트 또한 많으며, 이제는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투성이라 할 텐데, 아파트 유리창 하나를 어디에서 만들고, 아파트 유리창을 만드는 공장 둘레에서 살던 사람은 빨래를 어떻게 널어야 했는지를 돌아볼 만한 가슴이나 마음을 건사하는 사람은 얼마쯤 있으려나 궁금합니다.

 공장에서도 시간이 흐른 자국을 찾습니다. 공장은 시골이나 중국으로 많이 떠나기도 했지만, 인천땅 동구와 중구와 남구 곳곳에 아직 참 많이 남았습니다. 이 공장들 가운데에는 돈벌이가 안 맞아 멈춘 기계도 제법 있으나, 힘차게 돌아가는 기계 또한 많고, 힘차게 매연과 쓰레기물 내놓는 기계도 몹시 많습니다.

 인천 동구에 있는 공장을 인천 연수동에서 살아가는 사진쟁이 한 사람이 알뜰히 담아서 찬찬히 보여줍니다. 사진쟁이 김보섭 님은 사진책 첫머리에서 말합니다. “인천은 서울의 주변도시로서 많은 공장들이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타 지역과 달리 공장과 갯벌이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1957년에 설립된 한국유리(판유리)가 군산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공장이 철거되었다. 우리의 삶과 밀접한 인천의 상징인 슬레이트 구조물이 부서지는 것을 1년 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굴뚝과 공장과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이 독특한 바닷가 공장 지대를 자연과 어우러진 문화지역으로 재탄생시킬 수 없을까 생각해 본다.” (4344.2.16.물.ㅎㄲㅅㄱ)


― 시간의 흔적, 동구의 공장들 (김보섭 사진,성광디자인 펴냄,2010.3.10./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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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마실과 책읽기


 서울마실이나 인천마실을 할 때면 늘 아이를 데려가든지 집식구 모두 움직인다. 마실을 가는 길에 책을 두 권쯤 꼭 챙긴다. 이렇게 챙긴 책을 꺼내기는 꺼내고 들추기는 들춘다. 그렇지만 제대로 읽어내기란 참 힘들다. 시외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읽고, 전철에서 아이를 안은 채 읽는다. 한 쪽을 읽든 두 쪽을 펼치든 어찌 되든 한 번은 꺼내어 펼친다.

 오늘 서울마실을 한다. 옆지기가 아이하고 시골집에 남는다고 한다. 지난주부터 같이 가기로 얘기하고서 어떻게 짐을 꾸리며 챙길까 하고 생각하면서 집에 남는 먹을거리가 없도록 밥을 해 왔는데, 이렇게 되면 걱정스럽다. 옆지기가 밥을 아예 못하거나 몸을 조금도 못 움직이지는 않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둘째를 밴 뒤로 뜨개질로 하루하루 몸을 버티며 마음을 다스리는 터에, 혼자 아이를 이틀씩 건사할 수 있을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방방 뛰며 놀아도 지치지 않고 낮잠조차 없는 아이를 옆지기 혼자 돌볼 수 있으려나.

 아이 없이 홀로 서울마실이나 인천마실을 한다면, 나로서는 시외버스에서든 전철이나 버스에서든 마음을 툭 놓고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내내 시골집 식구들이 근심스러운 나머지, 읽다가 자꾸 덮고 읽다가 또 덮는다.

 식구들 함께 움직여도 가방에 넣은 책을 꺼내지 못하지만, 홀가분하게 돌아다녀도 가방에 넣은 책을 제대로 넘기지 못한다.

 지난밤 잠자리에서 생각한다. 옆지기와 내 삶을 거꾸로 놓고 생각해 본다. 내가 옆지기요, 몸이 아프면서 거의 꼼짝 못하며 지내는 삶이고, 옆지기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집살림 꾸리는 한편 돈도 번다면, 나는 내 옆지기한테 무어라 말을 하려나. 내 옆지기한테 어떻게 하라고 말을 하려나.

 집안에서도 집밖에서도 더 힘내어 알차게 살아야 한다. 집안에서도 나는 나대로 내가 할 몫을 하면서 아이와 옆지기하고 나란히 할 몫을 알뜰히 해야 한다. 게으를 겨를이란 없지만, 손을 놓는다든지 풀이 죽는다든지 기운이 꺾인다든지 할 수는 없다. 늘 더욱 힘을 내어 씩씩하고 튼튼하게 살아야 한다. 책을 손에 쥐었으면 신나게 읽고, 책을 손에서 내려놓았으면 밥하기이든 설거지이든 빨래하기이든 비질이든 즐거이 하면 된다. 오늘 함께 마실을 간다면 얇은 책으로 두 권, 오늘 혼자 마실을 간다면 두꺼운 책으로 두 권을 챙기련다. (4344.2.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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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들이 사는 집’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


 ‘작가들이 사는 집’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을 읽다. 읽었다기보다 두 해 동안 책시렁에 얌전히 모시다가 엊그제 후다닥 읽어치웠다.

 책을 읽어치우기를 몹시 싫어하지만, 때때로 책을 읽어치우고 만다. 내 둘레 책시렁에 책이 너무 쌓이다 보면, 이제 더 쌓이도록 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한꺼번에 열 권 스무 권 서른 권 마흔 권 닥치는 대로 후다닥 읽어치워서 도서관으로 옮긴다.

 허접한 책이라면 구태여 장만하지 말았어야 한다. 어떻게 본다면 허접한 책마저 이 책에서도 얻을 대목이 있으니까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참말 허접하다는 책이든 아름답다는 책이든 우리한테 이야기를 건넨다. 이 이야기에 귀를 살살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작가들이 사는 집’ 이야기는 허접한 책이었을까. 글쎄, 허접한 책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에 글을 싣고 사진을 담은 사람이 조금 더 깊이 헤아리지 못해서 슬펐다. ‘작가들이 사는 집’에서 다룬 작가들은 꼭 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 책을 많이많이 팔아서 돈을 많이많이 벌어 마치 귀족이라도 되는 듯이 집을 꾸미면서 살았기 때문이요, 글쓴이는 이러한 대목에 지나치게 많이 마음을 썼기 때문에 슬펐다.

 나도 우리 시골집을 고쳐서 쓰는 날을 꿈꾼다. 얻어 지내는 이 춥고 더운 시골집을 이래저래 고치자면 천만 원쯤 들어야 한단다. 내가 뭐 손재주가 좋아 이리 뜯고 저리 손질할 수 있지 않다. 나무 베고 흙 주워서 뚝딱뚝딱 고칠 수 있는 집이 아니다. 얻어 쓰는 이 시골집 말고, 바로 곁에 빈 살림집 하나를 요모조모 고치고 보일러 들이고 뭐 하자면 그쯤 든단다. 그러니까,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니, 내가 살아가는 집을 누군가 이야기하려 한다면, 아마 ‘아무개 씨도 돈 얼마를 무슨무슨 책을 팔아 얻은 돈으로 요모조모 꾸몄다’ 하고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란 무슨 보람이나 뜻이나 값이 있을까.

 ‘작가들이 사는 집’ 이야기를 읽을 때, 내가 딱 하나 눈여겨본 대목은, 사랑소설을 쓴 사람이든 어린이문학을 한 사람이든 학문하는 글쓰기를 한 사람이든, 모두 도시를 떠나고 사람들 발길이 쉬 닿지 않는 외딴 시골이나 멧골에 집을 마련해서 자연이랑 벗삼으며 흙을 일구는 나날을 즐긴 대목. 이 가운데 꼭 한 사람, 돈을 못 번 한 사람(돈을 못 벌었다기보다 버는 족족 술값으로 퍼부었단다)만 시내에서 살았는데, 이 시내라 해 보았자 우리로 치면 바닷가 면내나 읍내쯤 되고, 이이는 얻어 지내는 집에서 늘 술에 절어 살았단다. 이이는 벌어들이는 돈이 있으면 몽땅 술 마시는 데에 쓰고 집식구 아닌 바깥여자랑 바람 피우는 데에 썼단다.

 ‘작가들이 사는 집’이 오직 돈을 많이 벌어야 얻을 수 있는 집이라면 끔찍하다. ‘작가들이 사는 집’이 조용하면서 스스로 땀흘려 흙을 일구어 살아가는 집이라면 아름답다. ‘작가들이 사는 집’이 으리으리한 건물과 장식품을 이웃이나 동무한테 뽐내려고 사람들을 부르는 집이라면 무섭다. ‘작가들이 사는 집’이 살가운 이웃이나 동무하고 밥 한 그릇 나누어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는 집이라면 즐겁다.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글쟁이나 사진쟁이나 그림쟁이는 흙을 사랑한다. 흙을 사랑하듯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듯 목숨을 사랑하며, 목숨을 사랑하듯 집과 글과 사진과 그림을 사랑한다. (4344.2.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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