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와 책읽기


 풀이 고기보다 몸에 좋은 먹을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풀은 풀대로 좋은 먹을거리이고, 고기는 고기대로 좋은 먹을거리라고 생각합니다. 고기를 꼭 먹어야 하거나 고기를 굳이 안 먹어도 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고기는 그저 고기라는 먹을거리입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풀을 자주 먹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풀은 쉽게 얻을 수 있으니까요. 사람이 키우지 않아도 스스로 돋아나는 풀이든, 사람이 애써 심어서 거두는 푸성귀이든, 풀은 우리한테 살아갈 힘을 북돋아 주는 좋은 먹을거리입니다.

 고기를 먹자면 ‘고기가 될 짐승’한테 풀을 먹여야 합니다. 풀을 먹고 살아가는 짐승을 여러 해쯤 ‘꽤 많은 풀을 먹인 다음’에야 잡아서 고기로 먹습니다. 고기는 풀처럼 금세 얻지 못할 뿐 아니라, 풀을 꽤 많이 들이고 난 다음 먹을 수 있습니다.

 예부터 고기를 드물면서 고마운 먹을거리로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짐승을 키우는 데에는 풀이며 품이며 많이 드니까요. 그러나 오늘날에는 고기란 그다지 드물거나 고마운 먹을거리가 아닙니다. 참 흔하면서 값싼 먹을거리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고기가 되는 짐승’은 풀을 먹지 않기 때문이요, ‘여러 해에 걸쳐 풀을 많이 먹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학방정식으로 만든 값싼 사료를 먹여 얼른얼른 잡아 죽인 다음 얻는 고기이기 때문에, 오늘날 고기값은 대단히 쌉니다. 고기값이 싸다 보니까 풀값하고 견주면 풀값이 외려 참 비싸다 느낄 만합니다. 어쩌면 풀을 뜯거나 거두어 얻을 때보다 짐승을 잡아 고기로 마련할 때에 드는 돈과 품이 적게 드는지 모릅니다.

 사료와 항생제를 써서 후딱후딱 해치우든 하루아침에 만들어 내는 먹을거리가 되고 만 짐승고기가 사람몸에 좋을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들판이나 마당에서 호젓하게 뛰어놀며 살던 닭을 잡아서 고기로 먹을 때하고, 닭공장에서 부화기로 깨어나게 해서 사료만 조금 먹이다가 채 한 달이 안 되어 잡아서 고기로 먹을 때하고 맛이 같을 수 없습니다. 고기값도 다를 테지요.

 고기는 고기다와야 하고, 풀은 풀다와야 합니다. 사람은 사람다와야 합니다. 삶은 삶다와야 하며, 책은 책다와야 합니다. 책에 담을 이야기는 책에 담을 이야기다와야 합니다.

 엉터리로 키워 엉터리로 먹는 짐승고기는 발굽병이니 무어니 하면서 말썽이 생깁니다. 엉터리로 엮어 엉터리로 내놓는 책은 사재기니 거짓말이니 눈속임이니 무어니 하면서 말썽이 터집니다. 겉으로는 예뻐 보이는 글을 쓰던 사람들 가운데 돈과 이름값과 힘에 따라 갈아타기를 하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나는 고기를 굳이 싫어하지 않습니다. 나는 풀이라서 더 좋아하지 않습니다. 모두 나한테 고마운 먹을거리입니다. 모두 나한테 제 목숨을 기꺼이 바쳐 주기에, 나는 오늘 하루 즐거우며 고맙게 살아숨쉴 수 있습니다. 나한테는 더 좋거나 덜 좋은 책이 없습니다. 하나같이 고마우며 아름다운 책이라고 받아들입니다. (4344.3.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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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모임 소식지에 넣는 글을 하나 쓰다. 


 함께 읽는 책 1 : 삶을 일구는 결대로 책을 사랑합니다


 첫째 아이를 낳던 지난 2008년에 《티베트 의학의 지혜》(다이쿠바라 야타로 씀,박영 옮김,여강 펴냄,1991)라는 책 하나를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두 어버이한테서 사랑으로 받은 목숨을 두 사람이 또 다른 사랑으로 이루려 했던 첫째 아이 목숨이기에, 사람을 돈값으로 헤아리면서 갖은 항생제와 예방주사와 처방전만을 쓰는 병원에서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던 우리 식구한테 이 책은 여러모로 고마웠습니다. 판이 끊어져 헌책방 아니고서는 찾아볼 길이 없는 책이지만, 오래도록 헌책방마실을 즐긴 터라, 반가우면서 고맙게 맞아들였습니다.

 둘째 아이를 낳을 올 2011년을 앞두고 《아기가 온다》(실러 키칭거 씀,강영숙 옮김,하늘출판사 펴냄,1995)라는 책 하나를 또 헌책방에서 만납니다. 첫째 아이를 집에서 낳으려 했으나 끝내 집에서 못 낳고 병원으로 실려 갔으나, 둘째 아이는 집에서 즐겁게 맞이하고 싶어 이 책을 읽습니다. 둘레에서 집에서 아이를 낳으라 하는 사람이 없을 뿐더러, 집에서 아이를 낳으면 끔찍하거나 나쁜 일이라도 일어날 듯 여기는 터라, 할머니한테든 할아버지한테든 도움말을 듣거나 도움을 받기 퍽 어렵습니다. 사람한테서 ‘아이 낳는 슬기’를 귀담아듣기 힘들다면 책을 살피며 ‘아이 낳을 슬기’를 우리 스스로 깨우쳐야 합니다. 비록 책 하나 읽는다고 모든 일을 알뜰히 해낼 수 있지는 않고, 책 하나에는 모든 자리 모든 때를 밝히는 이야기를 담을 수 없지만, 몸으로 부대낀다 하더라도 모든 자리 모든 때를 스스로 빈틈없이 깨닫거나 깨우치지는 않습니다. 내가 미처 살피지 못하거나 돌아보지 못하는 대목을 새삼스레 알아채거나 느끼는 길잡이가 됩니다.

 인터넷에 ‘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이 있습니다. ‘안예모’라고 찾기창에 적어 넣으면 손쉽게 찾아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방접종이 그저 안전하다고만 여기는 분이 참으로 많은데, 예방접종이란 병이 일어나기 앞서 병원균을 화학조합으로 만들어 사람들 몸에 미리 집어넣는 일입니다. 살아숨쉬는 목숨인 병원균이 아니라 화학조합으로 만드는 죽은 병원균입니다. 오늘날 환경재앙을 걱정하면서 라면이나 과자에 엠에스지를 안 넣는다고 다들 떠들썩하게 밝히지만, 엠에스지는 안 넣으면서 다른 화학조합물은 엄청나게 넣습니다. 아마, 아이 키우는 어버이들은 엠에스지 같은 화학조합물 깃든 먹을거리를 아이한테 안 먹이겠지요. 그러면 예방접종은? 예방접종을 아이한테 거의 어김없이 맞히면서 예방접종 성분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어버이는 몇 사람이나 될까요.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스테파니 케이브 씀,차혜경 옮김,바람 펴냄,2007) 같은 책이 하나 있는데, 이 책을 읽은 사람을 아직 제 둘레에서 만나지 못했습니다. 의사로 일하든 간호사로 일하든 아이를 낳아 키우든 환경운동을 하든 진보나 개혁을 외치든 지식인이라 하든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든, 예방접종이 무엇인지 옳게 헤아리는 분을 만날 수 없습니다.

 스물세 권에 이르는 만화책 《우주소년 아톰》(데즈카 오사무 그림,박정오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1)이 있습니다. 이 만화책을 찬찬히 새겨읽은 분이 얼마나 있을는지 모릅니다. 아이한테 이 만화책을 사 주는 어버이가 있을는지 모르고, 이 만화책을 제대로 즐기는 어린이나 어른이 얼마쯤 있을지 또한 모릅니다. 1951년부터 그렸다는 만화 《우주소년 아톰》이니, 우리로 보자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나온 로봇만화입니다. 옆에서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마당에 일본에서는 ‘뭐 저놈들은 1950년대에 2000년대 공상과학만화 따위나 그리며 키득키득거린담?’ 하고 여길 만한지 모르지만, 데즈카 오사무 님은 일본이 전쟁미치광이 짓을 하던 때에 군수공장으로 끌려가 억지로 일을 해야 하면서도 틈틈이 땡땡이를 치며 만화를 그렸습니다. 꿈도 삶도 평화도 사랑도 사람도 아무것도 없이 메마르며 팍팍하고 슬픈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당신 스스로 꿈과 삶과 평화와 사랑과 사람과 모두를 보듬으면서 아끼고픈 마음으로 만화를 그렸습니다. 《우주소년 아톰》은 바로 이 모두를 풀어서 보여주는 따스한 열매입니다. 일본사람이 《우주소년 아톰》을 그토록 사랑할밖에 없던 까닭은 오직 하나입니다. 아무도 사랑을 말하지 않던 때에 배를 곯으며 사랑 담는 만화를 그렸고, 누구도 평화를 외치지 못하던 때에 가난에 찌들면서 평화를 외치는 만화를 그렸어요.

 지난겨울에 나온 《텃밭 속에 약초》(김형찬 씀,그물코 펴냄,2010)를 진작 장만했지만 아직 한 쪽조차 못 펼쳤습니다. 겨우내 읽었으면 곧 맞이할 봄에 온 들과 멧자락에 돋을 봄나물을 둘러보며 우리 멧골집 둘레 좋은 풀을 사귈 수 있을 텐데, 집살림하고 아이돌보기 하면서 좀처럼 이 책을 펼칠 짬을 못 냅니다. 그러나, 이렇게 책상맡에 얌전히 모셔 놓았으니 언제라도 읽을 수 있겠지요.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아이하고 함께 즐길 책을 찾아서 읽고 같이 보듬습니다. 아이를 낳은 옆지기하고 나란히 살아가기에 옆지기하고 서로 즐길 책을 장만해서 읽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웁니다. 누구나 살아가는 대로 일하고 놀며 책을 읽습니다. 삶에 따라 책을 느끼고, 삶을 일구는 결대로 책을 사랑합니다. (4344.2.11.쇠.ㅎㄲㅅㄱ)


《티베트 의학의 지혜》(다이쿠바라 야타로 씀,박영 옮김,여강 펴냄,1991)
《아기가 온다》(실러 키칭거 씀,강영숙 옮김,하늘출판사 펴냄,1995)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스테파니 케이브 씀,차혜경 옮김,바람 펴냄,2007)
《우주소년 아톰 1∼23》(데즈카 오사무 그림,박정오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1)
《텃밭 속에 약초》(김형찬 씀,그물코 펴냄,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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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하고 책읽기


 요사이 아이한테 책 읽어 주기를 제대로 못한다. 그래도 어제에는 두 가지 책을 읽어 주었는데, 이 살림 저 일에 치이면서 기운이 쪼옥 빠지니까, 책을 못 읽어 주기 일쑤이다.

 아이는 아버지가 책을 읽어 주지 못하지만, 스스로 책을 쥐어 읽는다. 제 무릎에 책을 올려놓고는 펼친다. 이제 그림을 제법 볼 줄 알 뿐 아니라 글씨도 큼직한 녀석은 읽어 보려 한다. 그림인지 글씨인지 어렴풋하게나마 가를 줄 아는구나 싶다.

 아이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붙어 지내자면 그야말로 힘이 송두리째 빠진다. 아이한테 어버이 힘을 모조리 바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 얼굴을 보면 한결같이 맑으며 밝거나 보드랍다.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못 받은 아이들은 푸석푸석하거나 그늘지거나 슬프다. 사랑받는 아이들은 제 어버이 사랑을 듬뿍 받는다. 사랑을 나누는 어버이는 제 살을 깎으며 사랑을 나눈다. 둘째를 밴 옆지기는 이제 눈썹이 거의 다 빠졌다. 아이를 배어 낳는 어머니들은 뼈와 살뿐 아니라 머리카락과 눈썹까지도 제 아이한테 바친다. 아이를 낳은 어머니들은 예전보다 힘을 못 쓴다든지 몸에 아픈 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이를 밸 무렵부터라도 집일을 더 많이 해야 하며, 아이하고 훨씬 오래 놀고 어울리며 삶을 물려주어야 한다.

 아이한테 돈을 쥐어 준들 아이가 돈을 쓸 수 없다. 아이가 돈을 안다 치더라도 아이 스스로 어디에 가서 이 돈을 쓰겠는가. 아이가 까까를 먹고 싶다 하든 얼음과자를 먹고 싶다 하든, 아이 스스로 사다 먹는다기보다 어른이 가게에 가서 돈을 치러 사다가 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아이한테 주는 사랑이란 돈이 아닌 말 그대로 사랑이다. 아이한테는 돈으로 사랑을 나누어 주지 못한다.

 어버이 손길 한 번이 사랑이다. 아이들 머리카락을 곱게 쓸어 주고 빗으로 예쁘게 빗어 주는 일이 사랑이다. 번쩍 안아올린다든지, 등으로 업는다든지, 손을 맞잡고 춤추며 노래부른다든지 할 때에 사랑이다.

 반드시 아이한테 책을 읽혀야 하지 않으며, 꼭 아이한테 좋은 책을 많이 읽혀야 하지 않다. 어떤 책이든, 아이를 무릎에 앉히거나 뉘인 채 함께 읽으면 된다. 몸이 많이 고단하면 자리에 드러눕고 아이한테는 팔베개를 하라며 눕혀서는 모로 몸을 기울인 채 책을 함께 읽으면 된다.

 아이는 그림책이든 동화책이든 줄거리를 받아들이기도 할 테지만, 책을 읽는 어버이 목소리를 받아먹는다. 책을 쥐고 저(아이)를 품에 안은 어버이 살결과 살내음을 빨아먹는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모든 사랑을 바칠밖에 없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온갖 기운을 다 뽑아내어 줄밖에 없다. 어버이는 지친다. 어버이는 힘들다. 그런데 용케 이듬날 다시금 일어나서 밥을 차리고 아이하고 놀며 이렁저렁 일로 복닥인다. 밤나절이면 죽은듯이 쓰러지면서, 용하게 다시 기운을 차리는 날이 되풀이된다. (4344.3.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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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어사전 빌려주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3.2.


 이오덕학교에서 중국말을 가르치는 분이 있다. 중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시집을 온 분이다. 중국에서 살았기에 중국말을 할 줄 알며, 조선족이니까 조선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살며 쓰던 조선말은 남녘나라 말하고는 적잖이 다르다. 맞춤법이며 띄어쓰기이며 꽤 많이 다르다.

 중국 연변땅이나 북녘에서는 띄어쓰기가 퍽 홀가분하다. 남녘에서는 웬만하면 거의 모두 띄도록 하지만, 북녘에서는 남녘처럼 낱낱이 띄어서 쓰도록 하지 않는다.

 된소리를 적는 말값이라든지, ㄹ을 낱말 앞쪽에 둘 때에 적는 법이라든지, 이모저모 파고들면 꽤나 다른 말이라 할 만하다. 가만히 생각한다면, 남녘말과 북녘말은 독일말과 네덜란드말처럼 서로 이웃하면서 다른 말로 여겨야 하지 않느냐 싶고, 북녘말하고 중국 연변말은 스웨덴말과 노르웨이말처럼 가까이 잇닿은 말로 여기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큰 테두리로 보자면 모두 ‘한겨레 말’이지만, 저마다 홀로서는 말로 삼아야 한다고 느낀다.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겨레가 쓰는 말을 바라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남녘과 북녘과 중국 학자는 ‘한겨레 말을 하나로 모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생각은 잘못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서로 한 가지 틀에 따라 말을 하거나 글을 써도 좋으리라 본다. 그렇지만 서로 나뉘어 지낸 지 쉰 해 예순 해가 지났고, 일흔 해가 가까운데, 갑작스레 한 갈래 말로 모두기란 만만하지 않다. 또, 애써 모두어야 할까 궁금하다.

 남녘땅 말마디를 헤아릴 때에, 강원말과 전라말을 똑같이 맞추어야 할 까닭이 없다. 제주말과 부산말을 하나로 뭉뚱그려야 하지 않다. 평안말과 해주말을 하나로 갈무리해야 할까. 함경말과 연변말을 똑같이 쓰도록 맞추어야 할까.

 고장에 따라 다른 말이요, 나라에 따라 다른 말이다. 한겨레이니까 한 가지 말을 써야 한다 외칠 수 있지만, 굳이 한 가지로 뭉뚱그리지 않더라도, 남녘사람이 북녘책이나 일본책이나 중국책을 읽을 때에 ‘아예 못 알아듣지’ 않는다. 북녘사람이나 중국사람 또한 남녘책을 읽을 때에 ‘영 못 알아채지’ 않는다.

 우리들은 슬프며 아픈 역사 때문에 이렇게 찢기거나 갈린 채 살아가지만, 어떻게 보면 이러한 역사 그대로 차분히 받아들이면서, 우리 겨레가 나아갈 새로운 말밭과 말삶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느냐 생각한다.

 이오덕학교에서 중국말을 가르치는 분이 ‘맞춤법과 띄어쓰기 공부를 할 만한 책’을 빌려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1970∼80년대에 미승우 님이 쓴 책은 있으나 1989년부터 맞춤법하고 띄어쓰기가 바뀌었다. 1989년에 바뀐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풀이하거나 일러 주는 마땅한 책은 떠오르지 않는다. 계몽사 편집부에서 ‘책 만들 때에 도움이 되도록 엮은 맞춤법·띄어쓰기 책’이 하나 있다. 아마 1995년 무렵에 나왔지 싶은데, 이 책을 빌려주면 될까 생각하다가 그만두기로 한다. 2002년에 찍은 《푸르넷 초등 국어사전》과 《뉴에이스 국어사전》을 빌려주기로 한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다루는 책치고 쉬우며 알뜰히 풀어서 이야기하는 책은 아직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으리라 본다. 너무도 딱딱하며, 지나치게 골이 아프다. 사람들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옳고 바르게 익히면서 즐겁고 신나게 말하거나 글쓰도록 북돋우지 못한다.

 이런 지식책을 읽으며 억지스레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외우도록 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때그때 ‘내가 아는 낱말’이든 ‘내가 잘 모르는 낱말’이든 국어사전을 뒤적이며 말풀이하고 보기글을 읽을 때가 낫다고 느낀다. 그렇다고 국어사전이 말풀이라도 제대로 한다고 여길 수는 없으나, 맞춤법책이나 띄어쓰기책보다는 낫겠지. 게다가, 맞춤법책이나 띄어쓰기책은 이들 국어사전을 바탕으로 쓴다. 그러니까, 아예 처음부터 국어사전을 읽으면 된다.

 국어사전을 어떻게 읽느냐 생각할 사람이 있겠지. 그런데 국어사전 읽기는 그리 힘들지 않다. 초등 국어사전은 고작 1000쪽조차 안 되고, 어른 국어사전도 3000쪽이 안 된다. 웬만한 문학책이 300쪽 안팎이고, 초등 국어사전은 글씨가 크니까, 문학책 한 권쯤 읽는 품이면 다 읽을 수 있다. 어른 국어사전은 《태백산맥》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어렵잖이 읽는다.

 터무니없는 꿈일는지 모르나, 한국사람이라면 마땅히 국어사전을 한 번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 싶다. 비록, 국어사전이 제대로 국어사전답게 엮이지 못했달지라도, 우리가 쓰는 말마디를 국어사전에서 어떻게 다루며, 우리가 알거나 모르는 낱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깨달아야 한다고 느낀다. 한국사람이면서 한국말을 살피거나 배우는 데에 우리들은 너무 모자라거나 사랑이 없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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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즈키 시게루


 한국에 ‘미즈키 시게루’라는 이름이 제대로 알려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 들어온 일본만화치고 제대로 만화쟁이 이름이 알려진 작품이 몇이나 되었던가. 웬만한 일본만화는 ‘한국 삶에 맞추어야 한다’면서 땅이름·사람이름·물건이름·가게이름을 모조리 바꾸어 내놓았으니까. 더구나, 마치 한국사람이 그린 만화라도 되는 듯 일본 만화쟁이 이름을 가리거나 숨겼으며, 어느 때에는 아예 한국 만화쟁이 이름을 집어넣기까지 했다.

 한국에서 만화책을 낸 출판사는 일본만화를 몰래 펴내면서 얼마나 많은 돈을 ‘아꼈’을까. 아니, 얼마나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을까.

 요사이 ‘미즈키 시게루’ 님 만화책과 만화영화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1980년대에 그토록 자주 보며 좋아하던 요괴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 님 만화였는 줄 안 지는 이태쯤 되었다. 예전에는 누구 만화인지 몰랐고, 그저 어느 한국 만화쟁이가 그렸겠거니 여겼다. 《드래곤볼》이라든지 《슬램덩크》 같은 만화는 해적판이 나돌았을지라도 만화쟁이 이름을 밝혔고, 1960년대부터 번안만화로 들어온 아톰 만화 또한 만화쟁이 이름을 밝혔지만, 미즈키 시게루 님 요괴 만화만큼은 한국 출판사에서 이름을 밝힌 적이 없다.

 지난 2009년 《게게게의 기타로》 일곱 권이 우리 말로 처음 나오면서 ‘미즈키 시게루’ 님 이름이 제대로 붙는다. 2010년에는 《농농 할멈과 나》라는 만화책이 나온다. 그렇지만 이 만화책들은 그다지 널리 읽히거나 팔리지는 못하는 듯하다. 문득 궁금해서 일본 만화영화가 있나 살펴보았더니, 자그마치 100편이나 되는 동영상이 뜬다. 네 살 아이랑 집에서 하나씩 보는데, 아이는 하나도 안 무서운지 눈알 한 번 꿈쩍꿈쩍 하지 않으면서 빠져든다. 100편째 만화영화를 보면 “게게게 기타로 40돌”을 기리는 글월이 큼직하게 뜬다. 마흔 돌? 만화책 《게게게의 기타로》를 펼친다. 미즈키 시게루 님은 당신 요괴 만화를 1965년부터 그렸다고 한다. 아, 어느새 마흔여섯 돌이구나. 네 해만 있으면 벌써 쉰 돌이 되네.

 《농농 할멈과 나》는 미즈키 시게루 님 어린 나날을 들려주면서, 당신이 요괴 만화를 그릴 수 있는 밑거름이 된 ‘농농 할멈’과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러니까, 미즈키 시게루 님은 농농 할멈한테서 요괴 이야기를 들었고, 농농 할멈은 또 어린 날 당신 어머니와 할머니한테서 요괴 이야기를 들었겠지.

 미즈키 시게루 님은 농농 할멈 마음에 아로새기진 책을 하나하나 받아먹으면서 자랐고, 나중에 만화쟁이가 되어 만화책을 낳았으며, 농농 할멈은 글을 쓰거나 책을 낸 적은 없으나 이야기와 삶과 웃음과 눈물로 책삶을 일군 셈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둘레에 농농 할멈 같은 분이 매우 많다. 어쩌면, 이 나라 이 땅 모든 할머니는 농농 할멈과 같은 분이 아닐까. 모두들 가슴속에 깊디깊은 이야기를 꼬옥 품으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그러나, 할머니한테서 당신 살아온 이야기하고 옛이야기를 즐겁거나 기쁘게 들으며 받아먹는 아이는 없거나 드물지 않나.

 미즈키 시게루 님이 일본뿐 아니라 나라밖으로도 손꼽히면서 이름을 날릴 만큼 사랑받은 만화쟁이가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당신이 어린 날부터 아끼고 좋아하며 모시고 섬긴 농농 할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알고 보면, 미즈키 시게루 님 게게게 이야기는 농농 이야기이고, 농농 이야기는 모조리 게게게 이야기이다. (4344.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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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1-03-02 00:42   좋아요 0 | URL
재미있겠어요. 전 미즈키 시게루도 미즈키 시게루의 만화도 기억에 없는데, 저 그림체만은 기억이 나네요. 오랜만에 보관함에 담아봅니다.

숲노래 2011-03-02 07:03   좋아요 0 | URL
요괴 만화는 으레 이분 만화를 몰래 훔쳐서 쓴 우리 나라 예전 만화잡지와 학생잡지였기에, 이분 이름이 낯익은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러나 어른들도 이분 만화를 보여 드리면 '어디에선가 본 듯하다'는 말을 으레 하더군요.

한번 읽어 보시면 1960년대부터 이런 만화를 그린 만화가가 참 놀라우며, 이분을 키운 농농 할멈이라는 사람은 또 얼마나 대단했던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