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5


 어머니는 뜨개책을 펼치고 아버지는 만화책을 펼친다. 아이는 어머니 등을 타다가 아버지 등을 타다가, 슬그머니 그림책을 하나 집어 펼친다. 조금 뒤, 아이는 제가 보던 그림책을 들고 아버지한테 와서 그림책에 춤 추는 언니가 나왔다면서 뭐라뭐라 종알종알 한참 떠든다. 아버지한테 책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소리인지, 아버지한테 책을 읽어 주겠다는 모양인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아이가 저랑 안 놀아 준다며 꾀 부리듯이 아버지 얼굴에 책을 디밀다가는 까르르거리며 웃는다. 책을 쥐고 아버지 얼굴에 들이미는 아이를 덥석 안아 함께 뒹군다. (4344.4.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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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하고 책읽기


 빨래를 할 때에 아이는 곁에서 물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물놀이를 할 때면 으레 옷을 다 적시니까 싫어하지만, 아이가 놀고 싶어 하는 데에 차마 말리지 못합니다. 가장 좋은 길이라면, 빨래를 할 때에 아이가 씻도록 하는 일이 될 테지요. 집에서 물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날을 맞이해서 얼른 이처럼 빨래하며 물놀이 어린이를 바라볼 수 있는 날을 손꼽습니다.

 빨래기계를 쓰면 손빨래 일감을 크게 줄입니다. 빨래기계를 쓰면 한 시간쯤을 손빨래 일에서 벗어납니다. 하루에 한 시간 빨래하기에 들인다 하더라도 한 달이면 하루 하고도 한 나절 남짓을 빨래에 쏟는 셈입니다. 밥을 하고 치우느라 날마다 두 시간쯤 쓴다면 다달이 이틀이나 사흘쯤은 밥하기에만 보내는 셈입니다. 따지고 보면, 하루 1/3은 잠을 자는 데에 쓰니까, 이렇게 내 겨를을 헤아리는 일은 좀 부질없습니다.

 아직 집에서 빨래를 할 수 없어, 다른 집에서 물을 얻어 쓰면서 빨래를 하다가, 다른 집 씻는방에 놓은 빨래기계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텅텅텅 소리를 내는 커다란 빨래기계에 든 빨래감은 내 오늘 빨래감보다 적어 보입니다. 그런데 빨래기계가 빨래를 해내는 데에는 저보다 훨씬 오래 걸립니다. 아마, 기계는 사람보다 물과 전기까지 훨씬 많이 먹을 테지요.

 손빨래를 하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내가 빨래기계를 써서 날마다 한 시간쯤 다른 데에 내 겨를을 쓸 수 있다면, 이만 한 겨를에 나로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나로서는 날마다 한 시간을 더 누리면서 물과 전기를 더 쓰는 일을 더 보람차거나 알차게 누릴 수 있을까 하고.

 손빨래를 안 하고 빨래기계 장만해서 쓴다면 집살림을 조금 더 알뜰히 돌보는 내 삶이 될까요. 빨래기계 쓸 만한 녀석을 장만하자면 거의 100만 원 가까운 돈을 장만해야 하는데, 나는 1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어떻게 무슨 일을 하면서 벌어야 할까요. 오늘날 같은 누리에서 빨래기계 안 쓰는 사람은 바보이거나 멍청이라 할 만할까요.

 어제 하루 새삼스레 찬물로 빨래를 합니다. 물을 얻어 쓰는 데에서 따신 물이 안 나왔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는 기름으로 보일러를 돌리니까, 빨래를 하며 따신 물을 쓰자면 이웃 기름을 내가 더 써야 합니다. 내 집 보일러를 돌려 따신 물을 쓰면 내 집 기름을 쓰니까 걱정스럽지 않지만, 이웃 씻는방에서 빨래를 할 때에는 되게 미안합니다. 빨래기계는 따신 물 아닌 차가운 물로 얼마든지 잘 빨아 주니까 빨래기계를 쓰면 기름을 안 먹으니까, 빨래기계가 전기랑 물을 쓰더라도 똑같은 셈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빨래를 마칩니다. 마무리지은 빨래는 물병과 함께 가방에 넣습니다. 자전거 수레 뒤쪽에 10리터들이 물통을 넣습니다. 아이를 수레에 앉힙니다.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몰아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이는 자전거를 타며 좋아합니다. 빨래를 하면서 아이가 곁에서 물놀이를 하도록 하거나 씻기자면 품과 겨를을 더 들여야 합니다. 그렇지만,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라면, 이 몫을 마땅하면서 거뜬히 즐길 노릇이리라 생각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물통을 내려놓고 빨래를 넙니다. 다 마른 빨래를 걷습니다. 아이하고 빨래를 개려 했지만, 몸이 고단해 한동안 드러눕습니다. 허리를 폅니다. 책을 몇 쪽쯤 읽고 싶었지만, 눈이 따끔거려 아예 한 쪽조차 펼치지 못합니다. 책으로 태어나도록 하는 글을 쓰는 사람은 어디에서 누구하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헤아리며 까무룩 잠이 듭니다. 아이가 종알종알 노래 부르는 소리를 꿈결처럼 듣다가 햇볕이 차츰 수그러들기에 깜짝 놀라듯이 깨어납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저녁밥을 짓습니다. (4344.4.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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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4-05 10:14   좋아요 0 | URL
아이가 참 이뻐요. 옆에서 돌아가고 있는 세탁기 소리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모든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숲노래 2011-04-05 13:56   좋아요 0 | URL
고마운 삶은 참으로 마땅한 나날이기에,
이 고마운 삶을 늘 고맙게 받아들이려고
오늘도 더 즐겁게 생각하며 힘을 씁니다..
 



 자전거와 책읽기


 자전거를 즐겨타는 사람 가운데 자전거 이야기를 다루는 책을 읽는 사람인 퍽 드물다. 자전거 장비를 다루는 잡지를 보는 사람은 곧잘 있다.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을 스스로 글로 풀어낸다든지, 다른 사람이 쓴 ‘자전거와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담은 글을 기꺼이 읽는 사람이 꽤나 드물다. 자전거 이야기를 글로 쓴다 할 때에도 ‘장비를 어떻게 사거나 급수를 올리는가’를 쓸 뿐이요, 조금 나아가면 ‘자전거 여행을 서울에서 길 떠나는 틀에 맞추어’ 쓰기만 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 해서 틀리지 않다. 사진 찍는 즐거움이나 사진 나누는 기쁨을 적바림한 글을 찾아서 읽으려는 사진쟁이나 사진즐김이는 꽤 드물다.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을 찍는 즐거움과 기쁨을 몸소 글로 써 보자고 하지 못하기 일쑤이다.

 책을 읽는 사람도 다르지 않다. 책을 읽는 즐거움이나 보람이나 아름다움을 글로 손수 쓰거나 나누거나 하는 사람은 생각 밖으로 참 드물다. 책 이야기를 글로 쓰더라도 서평이나 신간소개나 독후감에 그칠 뿐, 내 삶을 담는 느낌글이나 말 그대로 ‘책 이야기’를 못 쓰기 마련이다.

 며칠 내리 자전거를 퍽 오래 타고 돌아다녀야 하면서 날마다 땀을 몇 바가지 흘렸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15분 동안 오르막을 오르며 땀이 비오듯 줄줄 흘렀고, 15분 동안 낑낑대며 오른 오르막을 고작 1분 남짓 내달리면서 이마에 흐르던 땀은 금세 말랐다. 15분 오르막에 1분 내리막이라니. 그런데 고작 1분 내리막이면서 15분 오르막이 서운하지 않다. (4344.4.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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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하루 책읽기


 아이는 하루하루 새롭게 자랍니다. 아이는 하루하루 새말을 익힙니다. 아이는 하루하루 새로운 몸짓으로 신나게 뛰어다닙니다.

 아이를 보살피는 몫을 맡는 어버이는 하루하루 나이를 먹습니다. 어버이는 날마다 새롭게 밥을 차리고 새롭게 빨래를 합니다. 아이하고 보내는 나날이 하루하루 늘면서 아이가 어떤 느낌·생각·마음인가를 눈빛이나 낯빛으로 차근차근 알아챕니다. 아이가 품는 모든 느낌·생각·마음을 낱낱이 알아챈다고는 여기지 않으나 나날이 하나하나 받아들입니다. 새근새근 잠든 맡에서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는가를 느끼고, 밥을 먹고 나서 배부르다며 먼저 일어나서 노래하며 노는 모양을 보며 얼마나 즐거워 하는지를 헤아립니다.

 아이는 똑같은 그림책을 무릎에 얹고 펼치더라도 날마다 새로 읽는 책입니다. 어제는 어제대로 어제까지 살아온 넋에 따라 책을 들여다보고, 오늘은 오늘대로 오늘까지 살아온 얼에 발맞추어 책장을 넘깁니다. 어버이는 똑같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펼치더라도 날마다 새로 앉혀 날마다 새로 읽는 그림책입니다. 아이는 날마다 조금씩 크고 아이는 나날이 조금씩 말수가 늘어납니다. 아이는 어제와 달리 오늘 더 많은 이야기를 그림책 하나에서 끄집을 줄 알고, 아이는 오늘까지 살아온 바탕으로 하루를 새로 자고 다시 맞이할 때에는 또다른 이야기를 길어올릴 줄 알겠지요.

 아이는 이제 혼자서 창문도 잘 열고, 창턱에 두 다리를 꼿꼿이 버티고 서서는 차츰차츰 푸른빛으로 물드는 멧기슭을 바라봅니다. 멧새 소리를 듣고, 도랑에 흐르는 물소리 졸졸졸 맞아들입니다. 햇볕이 방으로 스며듭니다. 하루하루 조금씩 따사로운 날씨입니다. (4344.3.3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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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삶읽기 사람읽기 6
― 사진을 배우러 떠나다



 적잖은 분들이 사진을 배우러 길을 떠납니다. 어떤 이는 고등학교 적부터 사진을 배우다가 대학교 사진학과에 들어갑니다. 어떤 이는 미국이나 프랑스나 독일이나 영국 같은 나라로 사진을 배우러 떠납니다. 사진을 배우러 떠나는 이들이 일본으로 가는 일은 꽤 드문데, 곰곰이 살피면 한국땅에 머물면서 사진을 배우겠다고 하는 사람은 훨씬 드뭅니다.

 사진이라는 갈래는 프랑스에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사진 특허를 사들였을 때에 몇몇 사람이 홀로 차지하며 권리를 누리도록 하기보다는 누구나 마음껏 사진을 즐기면서 사진꽃이 피기를 바라며 ‘특허권을 없앴다’고 합니다. 참말 프랑스라는 나라는 사진뿐 아니라 그림이든 연극이든 영화이든 남다른 나라요 남다른 빛깔과 숨결과 소리가 넘치는 나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프랑스 같은 나라로 사진을 배우러 길을 떠나서 여러 해 프랑스 숨결을 들이마시는 이들은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국 사진꽃을 한결 흐드러지게 피우도록 이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미국으로 사진을 배우러 간 이들이든, 독일이나 영국으로 사진을 배우러 간 이들이든, 일본으로 사진을 배우러 간 이들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저마다 다 다른 길을 걸으며 저마다 다 다른 사진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 모두 훌륭하며 아리따운 사진밭을 일구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이 지구별에서는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만 사진을 하거나 예술을 하기에는 무대가 참말 좁다 할 만합니다. 온누리에 선보이며 온누리에 이름을 떨칠 사진이나 예술을 한다면 더욱 빛난다 할 만합니다. 어차피 품는 꿈이라면 더욱 크며 더 예쁘게 보듬을 만하겠지요.

 나라밖으로 사진을 배우러 가든 경제학을 배우러 가든 철학을 배우러 가든 노래나 춤을 배우러 가든, 나라안에서는 내가 바라거나 뜻하는 대로 배우기 힘들기 때문에, 돈과 품과 겨를을 들여 비행기를 타고 길을 나섭니다. 낯설고 물선 나라에서 밑바닥부터 바둥거리든, 내 어버이한테 돈이 많아 돈 걱정 없이 복닥이든, 나라밖에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이들은 언제나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이야기를 마주합니다.

 사진이든 예술이든, 내가 걷는 사진길이나 예술길은 ‘남이 걸어간 길을 따라 걷는 길’이 될 수 없습니다. 나는 나 스스로 내 길을 걸어가면서 내 뜻과 꿈을 이룰 뿐 아니라, 내 밥벌이 또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라밖으로 배움나들이를 가려 하는 까닭이란, 이 작은 나라에서는 ‘남이 걷지 못한 내 새 길을 찾기 힘들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눈을 트도록 도움을 받거나 깨우치거나 생각문을 열고자 나라밖으로 나들이를 가곤 합니다.

 그런데, 나라밖으로 애써 배움나들이를 떠났으나 막상 아무것도 못 보는 사람이 어김없이 있습니다. 외려 외롭거나 힘들거나 지치면서 몸과 마음이 늙은 채 돌아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때로는 겉멋이 들거나 ‘한국이란 참 어설프고 못났지’ 하며 콧대가 높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사진은 남한테서 배울 수 없습니다. 삶은 남한테서 배우지 않습니다. 문화이든 예술이든 남한테서 배워 내 문화나 내 예술을 꽃피우지 않습니다. 언제나 내 안에서 샘솟는 사진이고 삶이며 문화랑 예술이라고 느낍니다. 내 몸을 내 마음에 따라 내 손발을 놀려 움직이는 동안 찬찬히 일구는 사진이거나 삶이거나 문화이거나 예술이라고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벽만 바라보고 가만히 앉아서 깨달음을 찾으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 한 푼 없이 빈몸으로 뚜벅뚜벅 걸어서 이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며 깨달음을 얻으려 합니다. 어떤 이는 여러 날 밥굶기를 합니다. 어떤 이는 높은 산을 오릅니다.

 어떻게 무엇을 어디에서 하든, 모두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면서 내 마음결을 다스리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진을 배우든 철학을 배우든 정치를 배우든, 누구한테서 무엇을 배워야 깨닫거나 알아채는 사진이나 철학이나 정치가 아닙니다. 누구한테서 따로 배우지 않더라도, 또 어떤 대단한 책이나 교재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내 가슴속에 고운 사랑씨나 삶씨나 사진씨나 배움씨가 있을 때에 나 스스로 내 사랑이나 삶이나 사진이나 배움이 일어선다는 소리입니다.

 사람들이 으레 나라밖으로 배움나들이를 떠나는 까닭은 내 가슴속에 깃든 사진씨를 나라안에서는 좀처럼 건드리지 못할 뿐 아니라 잠을 깨우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더 큰 자극’이나 ‘더 센 자극’이나 ‘더 남다른 자극’을 받아 내 넋이 알을 깨어 우뚝 일어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배우는 나들이를 생각하는 분이라면 이 대목을 먼저 짚어 주면 좋겠습니다. 알을 깨어 나올 병아리는 늘 제힘으로 알을 깨야 합니다. 어미가 부리로 알을 조금이라도 깨 주면 병아리는 얼마 못 살고 죽습니다. 병아리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 크고 단단한 알을 그 여린 주둥이로 깨고 나오겠습니까마는, 참말 그 여린 주둥이와 그 여린 힘으로도 크고 단단한 알을 스스로 깨고 일어서야 병아리는 제 목숨을 고맙게 선물받은 그대로 살아낼 수 있습니다.

 나라밖으로 배움나들이를 떠날 생각이라면 그야말로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나라밖 배움나들이에 드는 돈과 품과 겨를이란 몹시 큽니다. 내 어버이한테 돈이 많아 돈 걱정이 없달지라도 내 어버이는 내가 배움나들이를 떠난다고 할 때에 배움삯을 대려고 허리가 휩니다. 나 때문에 허리가 휠 어버이를 떠올리면서 ‘큰짐을 짊어졌다는 무게’가 아닌 ‘이 고마운 선물을 흐뭇하며 신나게 누려서 내 삶을 알차게 일구어야겠다는 보람’ 으로 되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한 가지를 더 곰곰이 헤아립니다. 나는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내 값싸며 자그마한 사진기로 노상 들여다보고 단추를 찰칵찰칵 누르면서 내 사진길을 나 스스로 배우며 살아왔다고 곰곰이 헤아립니다. 참말, 저는 따로 누구한테서 사진을 배운 적이 없고, 사진학교나 사진강좌나 사진학과 같은 데를 다닌 적이 없습니다. 어떤 교재나 책을 읽어 사진찍기나 사진읽기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사진길을 걸었고, 나중에 사진책을 이것저것 사서 읽으며 내 사진길 곁에서 또다른 사진길을 걷는 숱한 사진동무를 느꼈습니다. 나한테는 사진스승이란 없습니다. 오로지 사진동무만 있습니다. 브랏사이라 하든 브레송이라 하든 이해선이라 하든 임응식이라 하든 모두 내 사진동무일 뿐입니다. 저마다 다른 삶을 저마다 다른 손길로 사랑하며 사진을 붙잡은 어여쁜 사진동무일 뿐입니다.

 모두들 목돈을 모아 여섯 달이든 한 해이든 몇 해이든 사진 배움길을 떠나려고 하는데, 애써 모은 목돈으로 나라밖 사진책 장만하는 데에 쓴다면, 그러니까 사진책 장만하는 데에 삼천만 원이든 오천만 원이든 쓰면서 나 스스로 사진책을 읽거나 살피거나 헤아리는 눈길을 기르는 데에 여섯 달이든 한 해이든 여러 해이든 써 보는 사람이 다문 하나라도 있으면 어떠하랴 싶어요. 똑같은 배움길이 아니라 새로운 배움길을 찾으면서 즐거우리라 봅니다. 내 나름대로 스스로 할 만한 배움길을 찾아보아도 퍽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자전거 한 대를 장만해서 한 해 동안 자전거로 우리 나라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또다른 틀에서 사진 배움길을 거닐 수 있어요.

 좋은 책은 좋은 벗입니다.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랑입니다. 좋은 삶은 좋은 꿈입니다. 목돈을 모아 나라밖 배움나들이를 다녀와도 즐겁고, 목돈으로 한국땅 곳곳을 오래오래 누비면서 내 겨레말을 함께 쓰는 사람들 삶과 하나로 녹아들면서 배움삶을 누려도 기쁩니다. 한국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며 한국사진을 하기 때문에 꼭 한국땅 곳곳을 누비며 한겨레 이웃을 마주해야 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며 한국사진을 하더라도 얼마든지 일본에서건 미국에서건 사진을 배우고 돌아와도 됩니다. 내 넋이 참말 내 넋이면서 내 뜻이고 내 길이어야 합니다. 내 사진길은 내 사진길이지, 남한테 기대거나 남 뒤꽁무니를 좇는 사진길이 될 수 없습니다. (4344.3.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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