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책읽기


 아프니까 쓰러지고, 지치니까 드러눕는다. 아프니까 쉬고 싶다. 지치니까 눈을 감고 싶다.

 아픈 몸을 일으킨다. 아픈 몸으로 생각한다. 아, 내가 이렇게 아프면 집일은 어떻게 하나. 집살림까지 바라지 못하더라도 아프면 어쩌나.

 아픈 몸을 일으켜 움직이니 어지럽다. 그런데 이렇게 아픈 채 몇 시간 힘겨이 움직이고 보니 어느새 아팠던 곳이 사라진다. 잊었을까. 아픔을 잊었을까.

 지치니까 드러눕는다. 드러누운 몸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자빠진 채 있으면 집안일은 누가 하나. 일어난다. 온몸에서 두두둑 소리가 난다. 끄응 하면서 집일을 붙잡는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나 애 어머니 허리나 허벅지나 다리를 주무른다. 지쳐 드러누웠을 때에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는데, 용하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며 주무를 수 있다.

 아파서 아무것 못할 수 있다. 참말 많이 아픈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마음은 하고 싶어도 몸이 따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아플 때에는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아픈 몸을 어찌저찌 움직이고 보면, 내 몸이 참 대단히 고맙게도 잘 움직여 준다. 빠릿빠릿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어느 만큼 집일을 할 수 있도록 움직여 준다.

 사람 몸뚱이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일까. 아니, 기계이더라도 사랑을 실으면 따뜻해질 수 있을까.

 그래, 아프니까 더 잘 살아가려고 꿈을 꾼다. 아프니까 아픈 몸으로 책을 펼친다. 힘드니까 더 웃고 싶어서 빙그레 얼굴꽃을 피운다. 힘들기에 힘든 몸으로 책을 한 쪽이라도 읽는다. (4344.3.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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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눈과 책읽기


 겨울나무 새눈을 사진으로 담은 일본 어린이책을 보았다. 일본사람은 참 대단하고, 일본 어린이는 온갖 이야기를 책으로 만날 수 있으니 좋겠다고 느끼는 한편, 굳이 이런 이야기까지 책으로 담아야 할까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그런데, 책이라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좋을까. 어린이책이라 한다면 무슨 이야기를 펼쳐야 즐거울까.

 곰곰이 생각하면, 겨울나무 새눈이란 사진으로나 그림으로나 글로나 아기자기하게 담을 만큼 아름다우며 귀엽고 좋은 이야기라 할 만하다. 추운 겨울을 견디거나 온몸으로 받아들인 겨울나무마다 나뭇가지에 다 다른 크기와 모양과 빛깔로 새눈을 틔우는 모습이란 얼마나 훌륭하며 거룩하고 사랑스러운가.

 똑같은 나뭇잎이란 한 닢조차 없다. 모양이든 무늬이든 빛깔이든 어느 나뭇잎이든 다 다르다. 얼핏 보기에는 똑같다 할 만하겠지. 그러면, 나뭇가지를 털어 나뭇잎을 견주면 된다. 은행나무에 붙은 수만 닢이 되는 나뭇잎을 모조리 뜯어서 살펴보라. 똑같은 잎은 하나조차 없다.

 똑같은 잎이 없으니 똑같은 새눈이란 있을 수 없다. 똑같은 사람이나 똑같은 손그림이란 있을 수 없다. 다 다른 사람이고, 다 다른 나무이며, 다 다른 잎이다. 소나무이든 느티나무이든 밤나무이든 똑같은 나무란 없다. 감나무에 맺히는 감 열매 가운데 똑같이 생긴 감이 한 알이라도 있을까.

 아이들한테 겨울나무 새눈 사진책을 보여준 다음 멧길에 구르는 나뭇가지 몇을 주워서 함께 들여다본다. 아이들이 놀다가 부러뜨린 나뭇가지가 있고, 짐승이 풀을 뜯어먹는다며 멧길을 오르내리다가 부러뜨린 나뭇가지가 있다. 아무튼 시골에는 나뭇가지란 흔하다. 나뭇가지에 맺히려는 겨울 새눈한테는 안 된 일이지만, 모든 새눈이 씩씩하게 살아남지 못한다. 멧개구리가 막 겨울잠에서 깨어나 비탈논과 멧자락 사이를 오가려 하다가 사람들이 낸 찻길에서 자동차에 치이거나 깔려서 죽을밖에 없듯, 숱한 나뭇가지가 뜻하지 않게 꺾이거나 잘리며, 수많은 새눈이 새잎이 되지 못한 채 사라진다.

 새로 난 가지이든 오래된 가지이든 새눈이 달린다. 새눈은 그야말로 작다. 돋보기로 들여다보아야 알아볼 만한 새눈이 많다. 큼지막한 새눈도 더러 있지. 그러나 웬만한 나무들 새눈은 참으로 작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봄이 왔다고 봄 얘기를 나누는 도시사람 가운데 겨울을 이긴 나무들 새눈을 들여다보면서 ‘아, 봄이네.’ 하고 느낄 사람은 얼마나 될까. 겨울나무 새눈이 새잎으로 트는 모습을 날마다 새삼스레 지켜보며 놀라워 하거나 기쁘게 여기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봄에는 봄나무, 여름에는 여름나무, 가을에는 가을나무, 겨울에는 겨울나무인데, 이들 나무를 나무 그대로 마주하거나 껴안으며 나무 같은 품으로 살아가려는 도시사람은 우리 나라에 얼마나 있을까. (4344.3.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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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병우


 공병우 님하고 함께 살았던 집식구는 공병우 님을 어떻게 바라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공병우 님이 살던 무렵에 만나뵌 일이 없을 뿐더러, 공병우 님이 쓴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공병우 님 집식구를 알 수 있지는 않으니까요. 그저, 공병우 님이 남긴 글과 사진을 돌아보면서 당신 삶결을 더듬을 뿐입니다. 아마, 앞으로 쉰 해나 백 해쯤 뒤라면 공병우 님 집식구 이야기를 알 길이란 오늘보다 훨씬 적을 테며, 이백 해나 오백 해 뒤에 공병우 님을 되새길 사람들은 당신 글과 사진으로만 당신을 읽거나 살피겠지요.

 사진밭에서 공병우 님을 생각하거나 말하는 일은 대단히 드뭅니다. 공병우 님을 생각하거나 말하는 자리는 안과 의사인 공병우 박사와 세벌식 한글타자기를 만든 한글운동꾼 공병우 님입니다. 그러나 공병우 님은 짧고 굵게 사진쟁이로 살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나이 일흔을 넘긴 때에 누구도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던 사진일을 했습니다.

 공병우 님이 누구보다 거룩하거나 대단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또한, 공병우 님한테는 의사나 한글운동꾼이나 사진쟁이라는 이름이 그다지 걸맞지 않구나 싶습니다. 그저 공병우 님은 당신 삶을 좋아하면서 아름다운 길을 걸으려고 온힘을 쏟은 멋진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신 목숨을 고마이 여기며 기쁜 나날을 마음껏 누리려고 온땀을 바친 착한 사람이 아니랴 싶어요. (4344.3.2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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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3-22 23:18   좋아요 0 | URL
공병우님이란면 세벌식 타지기를 만드신 그 안과 의사분이신가요?

숲노래 2011-03-23 07:42   좋아요 0 | URL
네.. 글에 썼잖아요. ㅋㅋㅋㅋ

카스피 2011-03-23 22:1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런^^;;;;
 



 내가 좋아하는 책을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3.18.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즐겁게 찾아 읽습니다. 나는 내가 즐겁게 찾아 읽은 책으로 내 도서관을 열었기 때문에, 내 도서관 책꽂이 짜임새는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틀에 맞춥니다. 십진분류법이라든지 여느 사람들이 바라는 찾기법에 따라 책을 꽂지 않습니다. 더욱이, 십진분류법으로는 사진책을 갈무리하거나 가눌 수 없어요. 사진책을 알맞게 나눌 만한 나눔법이란 아직 없습니다.

 사람들이 내 도서관에 찾아와서 어느 책이 어디에 꽂혔는지 모르더라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도서관이 지식 책터가 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그때 보면서 마음에 드는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운 책을 알아보기를 바랍니다. 이름난 사람들 책만 보면 된다거나, 널리 알려진 책을 보면 즐겁다고 하는 틀이 슬픕니다. 왜 우리는 틀에 갇힌 넋으로 책을 만나려 하나요. 왜 우리는 아름다운 삶을 놓치며 딱딱한 틀에 따라 책을 사귀려 하지요.

 그러나 목록 없이 꾸리는 도서관이기 때문에, 나조차 내가 좋아하는 책이 어디에 꽂혔는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나는 그다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책이 그럭저럭 있던 때에는 목록 따위야 없어도 돼, 하고 생각했는데, 요즈음 들어서는 책꽂이마다 목록표를 붙여야 하나 생각해 보곤 합니다.

 목록표 붙일 힘이 있으면 새로운 책을 하나 더 사서 읽거나, 못 찾은 그 책을 다시 사서 보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보스러운 생각이고 바보스러운 삶인데, 거듭 생각하면, 참 바보스럽게 살아왔으니 내 돈으로 장만한 내 아까운 책으로 누구나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을 열었겠지요.

 아직 많이 추워 도서관에서는 손이 얼어붙으니 책 보러 마실 오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아직 많이 추우니 도서관 책이나 짐을 살뜰히 치우지도 못했습니다. 삼월을 넘었는데 이렇게 손가락이 얼얼해도 되나 생각하지만, 시골이요 멧자락이니까 마땅한 노릇 아니겠느냐 하고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얼얼한 손가락으로 ‘일본 보육사(保育社)’에서 펴낸 손바닥책인 ‘color books’를 만지작거립니다. 이 조그마한 손바닥책을 예나 이제나 도서관 한켠 썩 잘 보이는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알아보는 사람은 기쁘게 알아보고, 못 알아보는 사람은 쥐어서 내밀어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일본사람은 “빛깔 있는 책들”을 이처럼 앙증맞으며 값싸게 꾸준히 내놓으면서 일본 책밭을 일구었습니다. 이 책들은 책밭뿐 아니라 사진밭까지 알뜰히 일구는 밑거름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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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 책읽기


 아이가 잠든다. 히유. 아니, 아이가 잠든다기보다 아빠가 잠든다. 아침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쉬지 못하며 몰아친 아빠가 아이를 팔베개를 하면서 “아빠 좀 안아 줘.” 하고 말하면서 먼저 잠든다. 아이는 무척 졸립지만 더 놀고프다며 이불을 발로 걷어차다가는, “아빠 좀 안아 줘.” 하는 말에 얌전히 아빠를 안아 준다. 아빠는 조곤조곤 속삭인다. 하루 내내 말 안 들으며 땡깡쟁이로 놀던 아이였으나 이렇게 말을 잘 듣는 아이인걸, 하면서 이렇게 착한 아이는 둘도 없으리라 다시금 속삭인다. 그러고는 까무룩 잠들었다. 문득 팔이 몹시 저리며 뻣뻣하다. 팔이 저려서 잠에서 깬다. 아, 나도 이렇게 잠들고 말았네, 하고 혼잣말을 하며 팔을 살살 뺀다. 찌릿찌릿하다. 기저귀를 들고 아이한테 채우려 한다. 아이도 살짝 깨며 웅얼웅얼한다. 그러나 기저귀를 채우고 이불을 다시 덮으며 토닥토닥하니까 아이는 이내 잠든다. 이제부터 아빠도 홀가분하게 글쓰기를 하든 책읽기를 하든 할 수 있다. 오늘은 글쓰기를 거의 못했으니까 글을 좀 만진 다음에 집을 치우고, 책도 조금 읽다가는 다시 아이 옆에 누워서 깊디깊이 밤잠을 자야겠다. (4344.3.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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