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을 매기는 책읽기


 사람들이 값을 매깁니다. 사람들이 책방에 값을 매기고, 사람들이 책에 값을 매깁니다. 돈을 치러 사고파는 물건이라면 마땅히 값을 매겨야 합니다. 책마다 값이 얼마라고 붙어야 비로소 사고팔 만합니다.

 내 가슴을 건드리거나 움직이는 좋은 책을 만났다고 하는 이들은 ‘이 책 하나는 어떤 큰 돈을 받아도 팔지 않는다’라든지 ‘이 책 하나를 사는 돈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여깁니다. 사랑스럽거나 아름답거나 훌륭하거나 좋은 책은, 겉에 적힌 숫자(책값)가 부질없습니다.

 때때로 ‘책값이 아깝다’고 느끼는 책을 만나곤 합니다. 책이 책이 아니라 물건이 되고 말기에 책값이 아깝다고 느낍니다. 책이 책다울 때에는 나무를 베어 만든 종이에 글을 찍은 종이뭉텅이가 아닙니다. 책이 책다울 때에는 만 원이요 십만 원이요 백만 원이요 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책이 책다울 때에는 살아숨쉬는 이야기요 싱그럽거나 해맑거나 착한 삶을 북돋우는 길동무입니다.

 사람들이 값을 매깁니다. 별 몇 개를 잣대로 삼아, 이 찻집은 별 몇 개짜리이고, 저 헌책방은 별 몇을 붙일 만하다고 값을 매깁니다.

 저마다 다 다르게 느꼈을 테니, 누군가한테는 이 찻집이 참으로 아늑했을 테고, 누군가한테는 저 헌책방이 꽤 좋았을 테지요. 누군가한테는 이 찻집에서 내어준 차가 맛났을 테며, 누군가한테는 저 헌책방에서 사들인 헌책이 값싸며 훌륭했다고 느꼈을 테지요.

 그런데, 우리는 무엇에 값을 매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왜 값을 매겨야 하나요. 내 아이가 오늘 얼마나 말썽을 피우는가를 값으로 매겨서 꾸짖거나 토닥여야 하는지요. 오늘 차린 밥상은 맛이 어떠한가를 별점으로 매겨야 하는지요. 하늘빛을, 바람세기를, 새봄 새싹을, 새벽을 깨우는 새소리를 값으로 매기며 들여다보아야 할까요.

 사람한테는 값을 매길 수 없고, 사람이 하는 일에도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뭇 짐승한테는 값을 매길 수 없으며, 어떤 풀과 나무라 하더라도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책이든 헌책방이든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값을 매기려 한다면, 값을 매기는 사람부터 늘 값으로 매겨 돌아본다는 소리입니다. 책이 아닌 값을 보고, 이야기가 아닌 값을 느끼려 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값있는 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나는 내가 만난 모든 책들에 저마다 다른 값이 깃든다고 느낍니다. 더 거룩한 값이라서 더 좋아하지 않습니다. 더 어설픈 값이라서 막 다룰 만하지 않습니다. 더 높은 값이니까 고이 아낄 까닭이 없고, 더 낮은 값이니까 불쏘시개로 써도 되지 않습니다. 책은 그저 책이고, 사람은 그예 사람입니다. (4344.3.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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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스타이그


 윌리엄 스타이그 님 그림책을 들여다볼 때마다 이분이 얼마나 전쟁을 싫어하는지를 느낍니다. 윌리엄 스타이그 님 그림책을 펼칠 때마다 이분이 ‘전쟁이 몹시 좋아하는 나머지 전쟁무기 만들기와 전쟁하기를 그치지 않는 미국’이라는 나라와 ‘미국을 닮은 나라’를 얼마나 미워하는지를 느낍니다.

 그런데 윌리엄 스타이그 님 그림책에는 미움이나 짜증이나 싫음이나 괴롭힘 따위는 조금도 깃들지 않습니다. 참으로 너그러운 사랑과 더없이 우스꽝스러운 괴물만 나옵니다. 너그러운 사랑은 우스꽝스러운 괴물을 감싸고, 우스꽝스러운 괴물은 고이 흙으로 돌아가 너그러운 사랑 손길로 어루만지는 거름이 됩니다.

 사랑이란 전쟁이 아닙니다. 무기를 든 사랑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랑은 따뜻합니다. 차가운 사랑이란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랑에는 진보가 없고 보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진보나 보수로 나누지 못합니다. 사랑은 오로지 사랑입니다. 사랑이기에 그예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마음이기 때문에 밥 굶는 사람 누구나 이웃으로 여겨 따뜻한 밥그릇을 건넵니다. 밥 굶는 사람이 진보라서 한 술을 더 뜨거나 밥 굶는 사람이 보수라서 한 술을 덜지 않습니다. 밥 굶는 사람이 전태일이기에 반찬을 열 가지 더 내놓는다거나 밥 굶는 사람이 전두환이라서 굶어죽으라고 걷어차지 않습니다.

 사랑은 예쁜 꽃한테도 햇볕을 나누어 주고, 사랑은 미운 꽃한테도 햇볕을 펼쳐 줍니다. 사랑이기에 누구나 떠 마실 수 있는 시원한 물입니다. 사랑인 까닭에 누구라도 기쁘게 숨쉴 수 있는 맑은 바람입니다. (4344.3.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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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고 미츠아키


 이와고 미츠아키(岩合光昭) 님 고양이 사진은 한국에도 제법 알려졌습니다. 이와고 미츠아키 님으로서는 이와고 미츠아키 님이 사귀거나 마주하는 고양이를 담을 뿐인데, 이와고 미츠아키 님이 담은 고양이 사진을 보는 사람 가운데 ‘고양이를 가장 잘 찍는’ 사진쟁이라는 이름이나 ‘골목고양이를 가장 잘 담는’ 사진쟁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와고 미츠아키 님이 고양이나 골목고양이만 사진으로 찍을 턱이 없습니다만, 널리 알려진 당신 사진은 고양이요, 이 가운데에서도 골목고양이입니다. 그런데 이와고 미츠아키 님 사진에 나오는 고양이들은 여느 길고양이나 골목고양이하고 사뭇 다르곤 합니다. 바닷가에 사는 바다고양이가 있고, 시골에 사는 시골고양이가 있어요. 다만, 들고양이는 없지 않느냐 싶은데, 한국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일본 사진책으로는 들고양이 사진 또한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와고 미츠아키 님 사진에 나오는 고양이 가운데에는 집고양이도 제법 있습니다. 그런데, 집고양이이든 길고양이이든 골목고양이이든 바다고양이이든 시골고양이이든 똑같이 고양이입니다. 고양이 삶을 고양이 눈높이에서 바라보며 고양이 사랑과 꿈을 사진이야기로 살포시 옮깁니다.

 이와고 미츠아키 님이 동네사람이든 마을사람이든 시골사람이든 도시사람이든 찍는다면 여느 사람 눈길이나 손길하고 사뭇 다를 테지요. 당신은 당신대로 사람을 사랑하는 결이 다르니까요. 더 가까이 다가선다든지 조금 멀찍이 떨어진다는 대목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과 사람으로 마주하는 매무새일 뿐입니다. 고양이와 사람은 똑같은 목숨이고, 사람과 사람도 한결같은 목숨입니다. 가난하든 가멸차든 서로 마찬가지인 사람이며, 잘났든 못났든 사랑스러운 사람입니다.

 고양이 삶자락을 빌어, 서로 사랑하며 어울리는 예쁘며 고마운 다 다른 이야기를 사진으로 그리는 사람이 이와고 미츠아키 님이라고 말해야, 조금이나마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4344.3.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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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가를 닦으며 책읽기


 두 달쯤 뒤에 태어날 아이를 생각합니다. 첫째 아이를 잠자리에 재우고 나서 볼과 이마에 뽀뽀를 하고 머리와 이마를 쓸다가는 가슴을 살포시 토닥이면서 생각합니다. 잠들기 앞서 방바닥에 곯아떨어진 아이를 품으로 바싹 안아들어서 옆방으로 옮기기 앞서 오줌그릇에 앉혀 쉬를 누도록 합니다. 아이는 자는 채로 쉬를 눕니다. 쉬를 누이기 앞서는 아이 코를 뚫고 입가와 얼굴을 소금물로 닦았습니다. 코에 물을 넣고 손수건으로 킁킁 하도록 했으나 코가 나오지 않아 솜막대기를 콧구멍에 넣고 살살 돌립니다. 요즈막에는 아이가 흥 하고 코풀이를 제법 하지만, 코풀이를 하더라도 안 나오는 코딱지가 안쪽 콧등에 붙기 일쑤입니다. 굵직한 건더기가 하나씩 묻어 나옵니다. 아이 코를 뚫기 앞서는 아버지가 하는 일인 1인잡지 만들기를 하느라 헌책방 길그림 하나를 그린다며 책상맡에 앉았습니다. 아이는 아버지가 하는 양을 바라보며 저도 공부한다며 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더니 아버지가 옆에서 책을 읽자 저도 제가 좋아하는 책을 무릎에 올려놓고 몇 장 펼칩니다. 이에 앞서는 밥을 차리고 새 반찬 한 가지를 해서 아이하고 저녁을 먹었습니다. 아이는 밥을 안 먹고픈지 자꾸 땡깡을 부리는데, 새 반찬으로 삶은달걀이랑 능금을 잘라 넣고 말린포도와 땅콩을 넣은 다음 상추를 썰어 버무림을 했기 때문에, 이 반찬으로 살살 부르니 아이는 저녁을 맛나게 먹어 줍니다.

 아이는 새근새근 잠들었습니다.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겨우 한숨을 돌립니다. 아침부터 씨름하던 아이는 이제 꿈나라로 빠져들었습니다. 아버지는 기지개를 켜면서 비로소 아버지 일을 할 만합니다. 아이가 깬 동안에는 참말 아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바야흐로 봄이니, 아이가 깬 동안에 논둑이나 멧자락을 따라 함께 거닐며 봄풀을 뜯어 새 반찬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저께 논둑을 두리번두리번 살필 때에는 아직 뜯을 만한 풀이 잘 안 보였습니다.

 잠든 아이 곁에서 공책에 글을 몇 줄 적습니다. 글을 몇 줄 적은 다음 책을 두어 권 조금씩 읽습니다. 그제부터 야금야금 읽던 책 하나는 이제 마무리짓습니다. 아이 낳기 앞서 얼른 읽을 책은 아직 다 못 읽었습니다. 새로 맞이할 이듬날에는 이불을 다 끄집어내어 털고 온 집안을 쓸고 닦으며 치우자고 생각합니다. 이러다 보면 아버지는 책읽기나 글쓰기는 영 할 수 없겠지요. 아버지로서 할 일이란 집살림하고 아이하고 놀기가 될밖에 없겠지요.

 그래, 아이 낳아 살아가는 아버지로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려면 발버둥을 쳐야 합니다. 그야말로 악을 써야 합니다.

 그렇지만, 발버둥을 치는 삶이어야 한다지만, 발버둥으로 허우적거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쳐 나가떨어지는 나날이 되풀이되지만, 그냥 지쳐 나가떨어지고만 싶지는 않습니다. 악을 쓰듯 버티지 않고서야 책 한 줄 읽을 수 없습니다만, 악을 쓰면서 책을 읽고 싶지는 않습니다. 용을 쓰고 견디지 않는다면 글 한 줄 쓸 기운을 내지 못합니다만, 그렇다고 용만 쓰는 글이란 나부터 그닥 재미나거나 신나거나 아름답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아이를 씻기고, 아이한테 밥을 먹이고, 아이한테 말을 가르치고, 아이하고 손을 잡으며 멧길을 거닐고, 아이하고 하늘을 바라보고, 아이를 수레에 태워 자전거마실을 다니고 하면서, 오늘 하루 고마운 나날이었다고 돌이키며 ‘히유우, 힘들구나. 그래도 오늘 그림책 하나 함께 읽고 잠자리에 들자꾸나.’ 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읽기를 잇고 싶습니다. 오늘은 아이가 고단하다며 이닦이마저 안 하고 잠들었으니 그림책조차 읽히지 못하는데, 곯아떨어진 아이 볼을 이리저리 살피며 소금물로 얼굴닦이를 했으니, 이 귀여운 얼굴이 꿈나라를 예쁘게 누비다가는 또 새 하루 새 아침에 싱긋방긋 웃으며 치마 입혀 달라고 달려들겠지요. (4344.3.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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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베개를 하고 책읽기


 저녁이 깊어집니다. 잠자리에 아버지가 먼저 누워 아이를 부릅니다. 아이한테 치마는 이제 벗고 이듬날 아침이 되어 다시 입자고 말합니다. 한손에 그림책을 들고 아이를 눕힙니다. 아이는 아버지 곁에 찰싹 달라붙습니다. 그림책 하나를 읽습니다. 날마다 이렇게 하면 좋으련만, 날마다 하자니 몸이 받치지 못한다며 자꾸 미루곤 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힘들거나 지치더라도 하루에 다문 한두 줄이라도 책을 읽자고 다짐한다면, 이렇게 아이를 팔베개하고 눕혀서 그림책 읽히는 일 또한 다문 몇 분만 들이면 될 일인데 못할 까닭이 있겠느냐 싶습니다. 둘째를 밴 옆지기 등허리나 팔다리를 주무르는 일 또한 몇 분만 들이면 되니까, 날마다 얼마든지 조금 더 마음을 기울이고 몸을 움직이면 될 노릇입니다.

 팔베개를 하고 책을 읽히고 좀 드러누우면서 허리를 폅니다. 누운 채 동시 하나를 욉니다. 내가 욀 줄 아는 동시는 얼마 없어서, 언제나 노래로도 부르는 이원수 님 동시 〈겨울 물오리〉를 두 낱말씩 끊어서 외다가는 두어 낱말을 묶어 토막토막 다시 욉니다. 아이는 이제 제법 잘 따라합니다. 숫자말을 하나부터 스물까지 셉니다. 아직 아이가 몸을 덜 움직였나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잡고 춤을 추듯 하면서 숫자를 스물까지 세다가는 서른 마흔으로 넘어가 백을 세고, 이때부터는 하나씩 낮추어 아흔아홉 아혼여덟 아흔일곱을 셉니다. 그런 다음에는 할머니 두 분 할아버지 두 분, 여기에 이모와 외삼촌과 큰아버지 이름을 하나하나 읊습니다.

 여기까지 하고는 아버지는 이내 곯아떨어집니다. 얼핏 눈을 뜨니 옆지기가 실감기를 방으로 들어와서 하고, 아이한테 기저귀를 대 줍니다. 그 뒤로 아이도 아버지랑 같이 곯아떨어졌는지, 더 칭얼칭얼 놀다가 잠들었는지는 모릅니다. 밤 한 시가 조금 지날 무렵 옆지기도 잠자리에 드는가 싶었는데, 이때에 아이는 옆으로 굴러서 머리를 아버지 옆구리에 박습니다. 자면서도 몸을 얌전히 있지 못합니다. 제 아버지는 잠자리에 들면 거의 죽은 듯이 한 자리에 꼼짝을 않으면서 곯아떨어지는데. (4344.3.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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