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


 노래꾼 이선희 님은 〈달려라 하니〉와 〈천방지축 하니〉 노래를 불렀다. 이 만화영화가 나중에 다시 나올 때에는 다른 사람 목소리가 흐르는데, 다른 사람이 이 만화영화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으니, 이선희 님 목소리가 하니 삶하고 얼마나 잘 어울리거나 걸맞는지 새삼스레 깨닫는다. 마음속에서 활활 불타지만 겉으로 보기에 사람들은 하니라는 자그마한 아이 가슴에 무엇이 있는지, 아니 자그마한 아이 하니 가슴이 활활 불타오르는지조차 느끼지 못한다. 이러다가 이 작은 아이가 뜨겁게 활활 불타오르면서 솟구칠 때에 비로소 입을 쩍 벌리며 놀란다. 도무지 삭일 수 없는 아픔과 슬픔과 미움과 기쁨과 괴로움과 힘겨움과 고마움과 안타까움에 꿈과 사랑과 그리움이 뒤엉크러진 불꽃. 이선희 님은 노래를 부를 때에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저 목소리만 남다르거나 돋보이는 노래꾼이었을까. 응어리가 터럭만큼도 남지 않도록 활활 불태우는 노래꾼이었을까. 하니를 마음으로 껴안으면서 사랑하는 노래꾼이었을까. 저 스스로 하니와 같이 살아가며 외치는 노래꾼이었을까.

 “꼭 감은 두 눈 속에, 엄마 얼굴 아른아른, 사실은 보고 싶대. 왼발 깽깽 오른발 깽깽, 그렇게 홀로 선대.”

 기쁜 삶을 기쁜 빛으로 부르고, 슬픈 삶을 슬픈 바람으로 부르며, 즐거운 삶으로 일구는 노래가 가슴 시리도록 좋다. (4344.4.4.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른 책’은 다른 책


 일본이 독도를 일본땅으로 밝힌다고 한 일은 퍽 오래되었다. 이런 이야기가 언론에 뜰 때면 사람들이 크게 성을 내거나 목청을 돋운다. 그렇지만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한테 제대로 따졌다거나 앞으로 이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꾸짖었다는 이야기는 딱히 들은 적이 없다. 일본은 진작부터 정치에서뿐 아니라 교과서나 지도책에서 독도를 일본땅으로 적곤 했다. 한두 해 일이 아니라 쉰 해나 예순 해쯤 된 일이다. 젊은 일본사람뿐 아니라 나이든 일본사람이라면, 역사를 한결 깊이 들여다보면서 올바르게 깨우치자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여느 일본사람으로서는 독도라는 섬이 일본땅 아닌 한국땅이라고 생각하기란 어렵다. 아니, 여느 일본사람이라면 독도 같은 섬이 일본땅인지 아닌지를 살피지도 않겠지.

 일본은 참 무서운 나라이다. 이와 맞물려 한국도 참 두려운 나라이다. 무서운 나라 옆에서 두려운 짓을 고스란히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나라일을 똑바로 하라고 뽑아서 비싼 일삯 주면서 일을 맡기지 않았겠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독도 말썽을 한결같이 들어야 할까.

 아이들 그림책을 살피다가 《꾸러기 곰돌이》(웅진출판사)가 눈에 뜨여 오랜만에 들여다본다. 1985년에 처음 나온 《꾸러기 곰돌이》하고 ‘다른 책’이라 하는 《꾸러기 깐돌이》(지경사)는 1988년에 한국말로 옮겨졌지 싶다. 일본에서는 1976년에 《ノンタン》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나왔다. 지난 2009년에는 《개구쟁이 아치》(비룡소)라는 이름으로 《꾸러기 깐돌이》가 새로 나왔다. 《꾸러기 곰돌이》는 1996년을 끝으로 ‘웅진출판사(웅진닷컴)’에서는 더 펴내지 않은 듯하고, 1998년부터 ‘세상모든책’이라는 출판사에서 새롭게 내놓는데, 2005년에 새판을 찍는다.

 나는 우리 아이한테 어떤 그림책을 보여주어야 좋을까 생각해 본다. 《꾸러기 곰돌이》를 읽혀야 할까, 《꾸러기 깐돌이》를 읽혀야 할까, 《ノンタン》을 읽혀야 할까, 《개구쟁이 아치》를 읽혀야 할까. 《꾸러기 곰돌이》는 곰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세 가지 ‘다른 그림책’은 고양이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네 가지 그림책은 ‘다른 책’이면서 다른 책이 아니다. 네 가지 그림책을 내놓은 사람들은 다 다른 마음이었고,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른 사람들한테 다 다르게 팔리면서 다 다르게 사랑받는다. 일본에서 《ノンタン》은 2800만 부가 넘게 팔렸고, 아직도 널리 잘 팔린다니까, 어쩌면 30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할 만한지 모른다. 내가 가진 2003년 판 《ノンタン》 낱권책 하나는 300쇄를 훌쩍 넘는다. 내가 가진 《꾸러기 곰돌이》 1990년 판은 12쇄인데, 나중에 20쇄를 찍었다는 말을 들었으며, 더 찍었는지 모르고, 출판사를 옮기며 얼마나 더 찍었는지는 잘 모른다.

 한국사람이 먹는 웬만한 과자나 가공식품은 일본에서 나온 웬만한 과자나 가공식품을 베꼈거나 훔쳤다. 한국사람이 어린 날 읽던 숱한 만화는 일본 만화를 베끼거나 훔쳤다. 한국사람이 아이한테 읽히던 예전 그림책은 으레 일본 그림책을 베끼거나 훔쳤고, 요사이는 저작권삯을 치르며 일본에서 사서 옮긴다. 2011년이라는 오늘날, 아직 이 나라 한국에서는 ‘다른 책’이 다르다고 하면서 나온다.

 하기는, ‘새우깡’은 ‘캇빠세우센’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한국에서 ‘새우스넥’이 나왔을 때에 ‘새우스넥’은 베끼기(표절)라면서 판매중지가 되지 않았던가. 나는 일본이 무섭고 한국이 두렵다. 일본사람이 ‘김치’를 ‘기무치’라고 팔아먹는다고 호들갑이지만, ‘초코파이’는 ‘엔젤파이’가 아니었던가. ‘초코파이’는 일본이고 중국이고 ‘초코파이’라는 이름으로 잘도 팔지 않는가. (4344.4.10.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실을 떠나며 책읽기


 어제 마실을 떠나려 했으나 옆지기가 말렸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 움직이기 힘들다고, 허리가 몹시 아프며, 이 비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때문에 방사능 비일 테니까 더 어렵겠다고. 한참 망설이다가 하루를 묵히고 새벽에 마실을 가기로 한다. 옆지기가 둘째를 낳기 앞서 마지막으로 바깥마실을 하며 인천에서 그림 할머님을 뵙고 인사를 여쭈고 싶기도 했다. 나 혼자 마실을 갈 수 없다. 어제 낮, 비가 그칠 듯 말 듯하더니 그예 내린다. 집에 빗물이 조금 스민다. 이 집 지붕을 어떡해야 할까. 어떡하긴 뭘, 손봐야지. 우산을 받고 아이 손을 이끌어 웃마을로 가서 아이 손과 발과 낯을 씻기고 머리를 감긴다. 머리를 감긴 다음 구연산으로 헹궈야 하는데 또 깜빡 잊었다. 아이 다른 옷가지를 조금 빨래한다. 집으로 내려온다. 집으로 와서 밥을 안치고 아이와 옆지기 먹을거리를 마련한다. 이렇게 서너 시간쯤 보내고 나니 허리가 뻑적지근하다. 아이는 밥을 먹다가 꾸벅꾸벅 졸더니 폭 하고 쓰러진다. 그래, 이런 날에는 마실을 나가면 안 되었겠지. 아버지만 생각해서 움직여서는 안 돼. 몸이 아픈 사람한테 맞추어서 움직여야 해. 잊지 말자. 조금이라도 더 몸이 튼튼한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몸이 여린 사람 삶을 헤아려야 해. 새벽 두 시 반, 아이가 오줌 마렵다며 깬다. 아이를 일으켜세워 오줌을 누이고 다시 눕힌다. 새벽 다섯 시 이십 분, 아이가 “벼리 꺼야!” 하고 빽 외친다. 잠꼬대이다. 새벽 여섯 시 오십 분 시골버스를 타야 한다. 깜빡 늦을 뻔했다. 아이 잠꼬대를 고맙다고 느낀다. 이제 짐은 다 꾸렸으니, 잠든 아이한테 옷을 주섬주섬 입히고 꼬옥 안고 길을 나서면 된다. 마실을 가는 길에 읽겠다며 책 두 권쯤 가방에 넣는다. 이 책을 읽을 겨를이 있을까. 글쎄, 아마 한 쪽조차 읽기 어려울는지 모르나, 어찌 되었든 한 쪽이라도 읽고 싶어 두 권을 가방에 넣는다. (4344.4.8.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이 땅 국어교사가 읽었으면 하는 책



 저는 지난 2007년에 인천에서 ‘사진책 도서관’을 열었습니다. 제 도서관은 제가 읽은 책을 그러모아 자그맣게 꾸몄습니다. 지난 2010년에 인천 골목동네를 떠나 충주 멧골자락에 깃든 ‘이오덕학교’ 밑으로 도서관을 옮겼습니다. 새로 옮긴 도서관에 책꽂이가 모자라 아직 바깥사람한테 문을 열지 않고, 이오덕학교 어린이와 푸름이만 드나들며 책을 읽도록 합니다. 사진책 도서관이라면서 멧골학교 어린이와 푸름이가 책을 읽도록 한다니 고개를 갸우뚱할 분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 도서관에는 ‘사진책’을 비롯해 만화책과 그림책과 어린이책과 인문책과 국어사전과 교육책과 문학책과 종교책과 다른 갖가지 책이 골고루 있거든요.

 사진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사진책을 마땅히 읽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사진길을 걷는대서 사진책만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진길을 걷는 착하며 곧은 사람이 되자면, 먼저 ‘좋은 사진쟁이’가 되기에 앞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08년에 첫째를 낳았고, 2011년에 둘째를 낳습니다. 두 아이를 함께 보살피는 아버지로서도 어린이책과 그림책을 즐기지만, 아이를 낳기 앞서도 어린이책과 그림책을 몹시 좋아해서 꾸준히 장만하며 읽었습니다. 여느 사람 앞에서는 사진책 도서관을 꾸리는 한 사람이면서, 헌책방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보일 테지만, 다른 한쪽 모습으로는 어린이책과 그림책을 꽤 즐기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국어교사로 일하는 분도 마찬가지일 텐데, 국어교사로 훌륭히 일하자면 ‘국어 교과목 교재’만 읽을 수 없습니다. 국어교사로서 우리 말글을 다룬 책을 함께 읽으며 배워야 하고, 국어사전도 자주 뒤적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 문학과 나라밖 문학도 꾸준히 읽으며 삭여야 해요. 우리 문학이나 나라밖 문학은 어린이문학부터 푸름이문학을 걸쳐 어른문학까지 골고루 있습니다. 추리문학도 있을 테고 공상과학문학도 있겠지요. 역사소설이나 시조나 하이쿠 또한 있을 테고요.

 소설을 살피면 법이나 의학을 다루는 소설이 있고, 정치나 사회를 다루는 소설이 있습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글을 잘 쓰는 법’이나 ‘말을 다루는 법’뿐 아니라, 이 나라 역사와 사회와 정치와 교육 모두를 잘 살피며 올바로 꿰뚫어볼 줄 알아야 합니다. 곧, 수많은 갈래 수많은 책을 고루고루 마주하며 곰삭일 줄 알아야 합니다. 소설을 읽는 국어교사라 할 때에도 수많은 갈래 수많은 책을 읽을밖에 없습니다.

 이리하여, 사진을 좋아하고 사진찍기를 즐기려 하는 사람이라 할 때에도 ‘사진책’만 읽을 수 없습니다. 사회를 읽는 눈을 기르는 책을 함께 읽어야 하고,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을 다루는 책도 나란히 읽어야 해요. 학교나 집에서 어린이를 사진으로 찍는다 할 때에는 어린이 마음으로 다가서야 할 테니, 어린이책이나 그림책도 가까이하며 지내야겠지요.

 아직, 한국에서는 좋은 ‘어린이 사진책’이 없습니다만, 이웃 일본에는 훌륭한 ‘어린이 사진책’이 대단히 많습니다. 자연과 생태 이야기를 담은 ‘어린이 사진책’이나 ‘어린이 자연백과’를 가만히 살펴보면, 일본에서 나온 책을 옮긴 판이 꽤 많구나 하고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1990년대에 한국말로 나온 《세계의 어린이》 서른네 권은 일본 사진쟁이들이 온누리 서른세 나라 어린이 한삶을 두루 살피며 담아낸 놀라운 사진책이에요. 《세계의 어린이》는 이제 판이 끊어져서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서른네 권이라든지 《웅진 과학 앨범》 84권을 헌책방에서 찾아보면서 찬찬히 사진을 살피고 책 엮음새를 돌아보면, 내가 어느 한 가지 사진감을 골라 사진으로 담는다 할 때에 어떻게 하면 좋은가를 슬기롭게 배울 수 있어요. 《웅진 과학 앨범》 여든네 권 또한 일본 사진쟁이가 여든네 가지 자연 생태계 모습을 골고루 담은 책이고, 일본에서는 1983년에 처음 나왔어요.

 널리 이름나지 않은 사진쟁이였지만, 당신 딸아이가 태어나서 시집을 가는 날까지 꾸준하게 사진으로 담아 책으로 엮은 《윤미네 집》(전몽각 사진,포토넷 펴냄)은 우리 국어교사들한테 적잖이 도움이 되거나 살가운 사랑으로 스며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더 예쁘게 찍는대서 더 좋은 사진이 아니고, 더 멋지게 찍어야 더 돋보이는 사진이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결 그대로 받아들여’ 수수하게 찍으면 돼요. 사진이 꼭 작품이 되어야 하거나, 사진이 반드시 예술이 되어야 하지 않거든요. 지갑이나 주머니에 늘 넣어 다니면서 틈틈이 꺼내어 보는 애틋한 사진을 한 장 찍어서 우리 집식구나 좋은 동무하고 나눌 수 있으면 흐뭇한 사진삶입니다.

 저는 ‘사진삶’이라는 낱말을 제 깜냥껏 지어서 씁니다. 국어사전에는 안 실린 낱말이지만, ‘책삶’이나 ‘사진삶’이나 ‘말삶’ 같은 낱말을 곧잘 써요. 우리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언제나 내 삶인 줄을 느끼자는 뜻입니다. 사진을 좋아하거나 사진찍기를 즐기려는 국어교사라 한다면, 노상 사진삶을 헤아려 주셔요. 사진삶으로 내 삶을 돌이키면서 내 가슴으로 어여삐 스며드는 좋은 사진책을 한 달에 한 권이나 두 권씩 장만해 보셔요. 더도 덜도 아닌 다달이 한 권이나 두 권입니다.

 한꺼번에 더 많이 찾아본대서 내 사진 눈길을 한껏 북돋우지는 못해요. 돈이 많대서 한꺼번에 수백 권을 장만한들 이 사진책을 내 삶으로 삭이기는 어려워요. 다달이 한 권이나 두 권씩 날마다 들추며 기쁘게 배우겠다는 매무새로 사진책을 만날 수 있으면 흐뭇합니다. 한국사람 사진책도 좋고, 나라밖 사진책도 좋아요. 사진책은 값이 꽤 비싸다 할 만하지만, 사진책은 한 번 펼쳤다 덮는 책이 아니라, 적어도 1000번은 되읽는 책이기 때문에 오만 원이든 십만 원이든 하나도 비싼 값이 아니라고 느껴야 즐겁습니다.

 저는 하루나 이틀에 한 권 꼴로 사진책을 사서 읽자고 다짐하며 살아가는데, 자가용을 굴리지 않거나 굳이 적금을 붓지 않으면서 하루하루 내 삶을 돌볼 수 있으면, 날마다 사진책 한 권 사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때로는 헌책방에서 오천 원짜리 사진책을 살 수 있고, 만 원이나 이만 원짜리 사진책을 산다면 다달이 삼사십만 원쯤 책값으로 쓰는 셈이거든요. 자가용을 안 몰면 기름값이 고스란히 책값이 됩니다.

 지난달에는 ‘이와고 마츠아키(岩合光昭)’라는 사진쟁이 사진책 《旅ゆけば猫》(日本出版社)를 인터넷책방에서 외국책 주문으로 샀고, 지지난달에는 ‘안젤 아담스(Ansel Adams)’라는 사진쟁이 사진책 《landscapes of the American West》(Quercus)를 서울 홍대 앞 사진책 전문책방에서 장만했어요. 어린이 놀이를 사진으로 어떻게 담으면 좋을까 아리송하다면, ‘토몬 켄(土門 拳)’이라는 일본 사진쟁이 사진책 《腕白小僧がいた》(小學館)를 찾아보셔요. 편해문 님이 내놓은 《소꿉》(고래가그랬어 펴냄)도 참 괜찮은 사진책입니다.

 사진을 처음 찍으려 하는 분들한테는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안목 펴냄) 같은 책이 퍽 괜찮다 싶은 길동무 노릇을 하리라 생각하는데, 이 자그마한 책을 즐거이 삭이자면 열 달에 걸쳐 열 번쯤 다시 읽으며 천천히 곱씹어야 한다고 느껴요. 열 해나 스무 해에 걸쳐 ‘좋은 사진열매 하나 맺고 싶다’는 꿈을 꾸는 국어교사라면 《농부》(전민조 사진,평민사 펴냄) 같은 사진책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 사진 솜씨가 퍽 모자라다고 느끼거나 쑥쓰럽게 여기는 국어교사라면 《내 멋대로 사진찍기》(김윤기 씀,들녘 펴냄) 같은 사진이야기를 알려주고 싶습니다. 저는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 펴냄)라는 책을 하나 내놓았고, 올해에는 《사진책 읽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새로 하나 내놓을 생각입니다. 제가 쓴 책에 붙인 이름 그대로, 국어교사로 아이들하고 하루하루 즐거이 어깨동무하는 분들이라면, “좋은 내 삶 그대로 좋은 내 사진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좋은 내 아이들하고 좋은 하루하루 만나는 즐거움 그대로 좋은 내 사진이야기를 일구는” 보람을 누리거나 나눌 수 있으면 기쁘겠어요.

 사진길을 걷는 한 사람으로서 내 매무새를 다스리는 길잡이가 되는 책이라면 《우리들의 하느님》(권정생 씀,녹색평론사 펴냄)하고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이오덕 씀,삼인 펴냄)입니다. 먼저 올곧은 한 사람으로서 착하고 참다이 살아가면서, 내 사진빛은 어여삐 보듬고 싶습니다. 먼저 올곧은 한 사람이 되지 않고서 사진빛만 예쁘장하게 꾸민대서 내 사진이 즐겁거나 반갑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먼저 내 오늘과 내 하루를 착하고 참다이 살아갈 때에 내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 모두 아름다이 빛난다고 느낍니다. (4344.4.7.나무.ㅎㄲㅅㄱ)
 

(전국국어교사모임 '함께여는 국어교육'에서 써 달라 하는 글을 하나 적어 보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침 밥하기와 책읽기


 새벽에 쌀을 씻어서 불린다. 아침에 아이 오줌기저귀를 간다. 어느덧 아이는 잠에서 깬다. 아이가 일어나면 당근을 갈아서 한 그릇 내민다. 아이는 만나게 한 그릇 금세 비운다. 옆지기가 소금을 뿌리면 더 잘 먹을 수 있대서 소금을 살짝 곁들인다.

 간 당근을 다 먹으면 이제 밥에 불을 넣는다. 밥에 불을 넣으며 오늘 아침에는 무슨 국이나 찌개를 끓일까 생각한다. 어제와 똑같이? 어제와 다르게? 어제 먹다 남은 국을 덥히고 건더기를 더 넣어서?

 오늘은 미역을 끊어서 불린다. 아침에 아이한테 당근을 갈아서 줄 때에 강판을 닦으며 당근찌꺼기가 살짝 가라앉은 물에 미역을 넣는다. 2008년에 첫째를 낳기 앞서까지는 가위로 미역을 끊었는데, 가위를 쓰지 말래서 이때부터 손으로 끊는다. 첫째를 낳기 앞서부터 미역을 얼마나 많이 끊었을까. 가위를 쓸 때하고 손을 쓸 때하고 견주면 맛이 얼마나 다를까. 나로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느낌이 같지는 않다. 손으로 끊은 미역을 불려서 끓이는 국은 가위로 끊은 미역을 불려서 끓이는 국하고 같지 않다고 몸과 마음으로 느낀다.

 옆지기가 생협 먹을거리나 똥오줌 거름을 쓴 먹을거리를 쓰자고 이야기하는 까닭이 다른 데 있겠나. 내 몸으로 들어오는 밥인데 아무 밥이나 먹을 수 있겠는가. 나는 아직 살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앞으로도 한참 멀었다. 살림은 머리로 외는 지식이 아니라 마음을 따사롭게 보듬으면서 몸으로 기쁘게 움직여 꾸리는 내 나날이다.

 표고버섯을 송송 설어 넣자고 생각한다. 감자도 썰어 넣자고 생각한다. 단출하게 국으로 끓이자고 생각한다. 마늘을 빻아서 넣고, 오이도 씻어서 썰어야지. 어제까지 여러 가지 반찬을 했기에 오늘은 따로 아침에 반찬을 하지 말고, 저녁에 새 반찬 하나를 마련하자고 생각한다.

 반찬 하나 하는 데에도 꽤 품과 손이 들지만, 밥을 하고 국을 끓이면서 요모조모 더 마음을 쓰면 한 끼니에 새 반찬 하나 하기란 하나도 힘들지 않고 바쁘지 않다.

 아이는 아버지 등에 업히느니 무어니 하다가 그예 책 하나 펼쳐서 읽어 준다. 몹시 고맙다. 아버지도 책을 읽고 싶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책을 읽을 수 없구나. 아버지도 아침에 책을 좀 읽고 싶으나, 네가 책 읽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좋구나. 아마, 네가 책을 펼치는 모습을 사진으로 바지런히 한두 장 찍고는 밥물을 살피고 국이나 찌개 물을 돌보는 나날이 내 삶책이 되어 줄 테지. 어머니하고 종알종알 떠드는구나. 떠들면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어라. 이십 분만 있으면 아침은 다 된다. (4344.4.6.물.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카스피 2011-04-06 22:54   좋아요 0 | URL
ㅎㅎ 따님이 점점 더 귀여워 지네요.그나 저나 이젠 사진을 찍히는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숲노래 2011-04-07 07:01   좋아요 0 | URL
늘 잘 찍혀 주니 고맙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