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휴가 나와 책읽기


 군대에 들어가서 책을 읽는 아이가 더러 있다. 군대에 들어간 다음 휴가를 얻어 나왔을 때에 책을 읽는 아이가 아주 더러 있다. 군대에 들어가기 앞서 책을 읽는 아이가 몹시 더러 있으며, 군대에서 나온 뒤에 책을 읽는 아이가 참으로 더러 있다.

 읍내에 식구들이 함께 나간다. 가락국수집에 들어가서 늦은 낮밥을 먹는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듯한 한 사람과 또래동무 한 사람이 들어온다. 밥집에 들어설 때부터 입에 욕지꺼리를 붙인 아이 둘은 손전화를 켜고 군대에 있는 다른 또래동무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첫인사부터 욕으로 열어 이야기 거의 모두를 욕으로 채우는 아이들은 둘레에 저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어른만 있는 줄 생각하지 않는다. 얼굴을 마주보는 둘하고 손전화로 얘기 나누는 다른 하나만 생각한다.

 아이들은 군대에 들어가기 앞서부터 욕을 했을까. 아이들은 몇 살 적부터 욕을 들었을까. 아이들은 언제부터 모든 말끝마다 욕을 붙일까. 이 아이들은 제 어버이 앞에서도 욕을 일삼을까. 이 아이들은 할머니나 할아버지하고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욕을 달까. 어쩌면 제 어버이나 할머니나 할아버지하고는 마주하거나 마주보거나 어울리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러면 제 여자친구하고는 어떤 말을 섞을까. 여자친구한테도 욕을 쉬 내뱉으며, 여자친구도 이 아이한테 욕을 거침없이 쏘아붙일까.

 내가 군대에 끌려들어가 스물여섯 달을 지내는 동안 내가 있던 강원도 양구 깊은 멧골짜기 군부대로 면회롤 오는 숱한 사람들을 보았다. 나한테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너무 외진 곳이라 아버지 어머니한테 오지 말라고 하셨지만 아버지 어머니는 한 번 찾아와 주셨다. 이때에 나도 한 번 외박을 할 수 있었는데, 외박을 한 번 나와 보니 외박이나 외출이라는 제도가 왜 있는지를 알 만했다. 다른 군부대는 어떠한지 모르나, 내가 있던 군부대에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나 애인이 찾아올 때에만 외박을 시켜 준다. 여느 ‘남자’친구가 오면 외출만 되는데, 양구 읍내에서 내가 있던 군부대까지는 한참을 들어와야 한다. 우리가 휴가를 받아 밖으로 나가자면, 새벽 여섯 시 십 분에 중대장신고를 하고 여섯 시 반에 대대장신고를 한 다음, 여섯 시 사십 분에서 오십 분쯤에 연대본부로 편지나 물품을 받으러 떠나는 짐차에 얹혀 타고 나가야 한다. 이때에 대대 짐차 짐칸에 짐짝으로 실려 연대에 닿으면 한 시간인가 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시골버스를 기다린다. 연대본부에 닿는 때는 으레 일곱 시 반이나 사십 분쯤이고, 여덟 시인가 여덟 시 반에 시골버스를 탔으며, 읍내에 닿기까지 한 시간 즈음 달린다. 읍내에서 서울 가는 버스를 타자면 열 시 반 차였고, 새벽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으니 늦은아침이나 이른낮밥을 먹어야 할 텐데, 이무렵 문을 연 밥집이란 거의 없다. 쭐레쭐레 읍내를 돌아다니다가 구멍가게에 들러 술 몇 병과 과자부스러기를 사서 버스를 기다리며 마시다가는, 고참들이 열한 시 반이나 열두 시 반 버스를 타자 하면서 이곳에서 밥 먹으며 술 한잔 하자면 이렇게 하곤 한다.

 서로서로 욕밖에 할 말이 없나 싶은 아이 둘 말소리가 꽤 크게 들리는 바람에 지난날 군대에 붙들리며 지내던 나날 일 몇 가지가 떠오른다. 나는 군대라는 데에 끌려가지 않았으면 욕지꺼리를 한 마디도 안 하거나 못 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사회도 군대하고 마찬가지이니까, 사회살이를 하면서도 얼마든지 욕지꺼리를 배워 내 입과 손을 욕지꺼리로 물들였을 테지 싶기도 하지만, 슬픈 사회 슬픈 사람들하고는 등을 진 채 착한 사회 착한 사람을 찾아 조용한 곳으로 숨어들지는 않았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이 사회 이 나라에서 살아가자면 군대에 끌려가서 욕지꺼리를 실컷 배우거나 욕지꺼리판에서 살아남는 길을 익혀야 하는지 모른다. 나 스스로 더 모진 욕지꺼리를 내뱉는 사람이 되든지, 둘레에서 온갖 욕지꺼리를 퍼붓더라도 그러려니 하며 한귀로 흘리도록 마음을 닦을 노릇인지 모른다.

 한 걸음을 떼고 두 걸음을 떼면서도 모든 말마디에 욕이 붙는 아이들로서는 욕이 욕 아닌 여느 말투인지 모른다. 이 아이들한테 욕이란 아주 다른 말씨이거나 훨씬 거칠며 끔찍한 말마디로 튀어나올는지 모른다.

 이 아이들은 제 짝꿍하고 사랑놀이를 해서 아이를 낳을 때에 제 새끼를 보면서 “야 이 개새끼 존나 더럽게 귀엽네.” 하고 말하려나. 욕하는 아이들은 어떤 집에서 어떤 살붙이하고 어떤 살림을 꾸리면서 살아가려나. 욕하는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어떤 교과서를 배우고 어떤 책을 읽었으며 어떤 동무나 어른을 사귀었으려나. 욕하는 아이들 마음을 따사로이 보듬으며 씻어 줄 책을 조용히 일굴 어른은 우리 둘레에 있을까. (4344.3.1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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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덤가에서 책읽기


 무덤자리는 으레 볕이 잘 들고 바람 살랑살랑 부는 자리에 씁니다. 무덤자리는 살림집 얻어 지내기에도 퍽 좋은 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무덤자리는 풀이 알맞게 자라도록 돌보기 마련이고, 꽤 이름난 분들 무덤자리는 꽤 크기 마련이라, 이 너른 무덤자리 잔디밭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기에 괜찮겠구나 싶습니다.

 철없는 아이들이랄는지 철 덜 든 아이들이랄는지 ‘신채호’가 누구인지 아는가 모르는가 아랑곳하지 않으며 무덤자리 언덕받이에서 끝없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풀밭미끄럼놀이 하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이 아이들한테 신채호라고 하는 한 사람은 ‘풀밭미끄럼놀이 재미나게 하는 무덤자리 어르신’으로 자리잡을까요. 아니, 이런 어르신 이름조차 모르고 오늘 하루 또 신나게 놀았다며 가끔 떠올릴 만할까요.

 어른한테 무덤가란 식구들이 함께 찾아들어 절 몇 번 하고 나서 도시락 펼쳐 젯밥이랑 술 한잔 나누기에 좋은 자리이면서, 한동안 드러누워 낮잠 자기에 좋은 자리요, 낮잠에서 깨어났다면 책 한 권 펼쳐 읽기에 좋은 자리입니다. 어쩌면, 무덤자리를 퍽 좋은 볕자리에 마련하는 까닭은, 여느 때에는 쉬 만나지 못하던 살붙이들이 도란도란 어울리면서 이야기꽃 피울 좋은 만남터가 되도록 하려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4344.3.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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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책과 사진책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3.9.



 나는 도서관을 열면서 ‘사진책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처음부터 ‘사진책 도서관’을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문득 사진책으로 도서관을 꾸려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사진책을 즐겨 사서 읽지만, 사진책만 즐겨 사서 읽지 않는다. 인문책이든 국어사전이든 과학책이든 문화책이든 만화책이든 어린이책이든 환경책이든 믿음책이든 교육책이든 딱히 가리지 않는다. 내가 읽어야 할 책이라고 여기면 기꺼이 사서 읽는다. 내가 굳이 안 읽어도 될 책이라면 애써 사지 않으며, 내 삶하고 동떨어진 이야기를 다룬다면 애써 읽을 까닭이 없다고 여긴다.

 그런데 왜 사진책이었을까. 더구나 왜 인천이었을까. 사람들은 내 ‘사진책 도서관’에 찾아오면서 “책이 많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다른 책도 많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진책 도서관이기에 사진책만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진책 도서관이 아니라 그림책 도서관이라 하더라도 그림책만 갖출 수 없다. 그림책 하나가 이루어지기까지 읽으며 받아들일 수많은 책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 다만, 그림책 도서관이라면 한복판에는 그림책을 놓겠지.

 사진을 하는 사람들이 만들거나 읽는 사진책이란 사진을 담은 책이다. 사진을 담은 책을 들여다보면 ‘사진으로 무언가 찍어야’ 이 책이 태어난다. 그러면, 사진쟁이는 무엇을 찍는가. 사진쟁이가 찍는 사람이나 자연이나 사물은 어떤 사람이나 자연이나 사물인가.

 사진쟁이는 사진기를 쥐기 앞서 오롯한 한 사람으로서 온누리를 껴안아야 한다. 내 사진감이 될 사람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리하여 사진쟁이는 여러 가지 사진책뿐 아니라 인문책과 문학책을 읽어야 한다. 어린이를 사진으로 담으려 하는 사람이 어린이 넋과 삶과 꿈을 모르고서 어린이를 사진으로 찍을 수 있겠나. 그저 예쁘장한 모습을 담으려 한다면 어린이 삶을 모르고도 찍을 수 있을 테지만, 어린이 삶을 모르며 찍는 예쁘장하기만 한 사진도 사진이라 일컬을 수 있을까 궁금하다.

 내 도서관에는 사진책 옆에 만화책이 놓인다. 인천에 있을 때에도 사진책 곁에 만화책이 있었고, 옆에 그림책이 있었으며, 한쪽에 국어사전 수백 가지하고 인문책이 나란히 놓였다. 왜냐하면 사진길을 걸어가면서 이 모든 책을 두루 살피지 않고서야 사진쟁이 꿈을 이루지 못하니까.

 멧골자락으로 옮긴 뒤에도 사진책 옆에는 만화책이 놓인다. 이웃한 이오덕학교 어린이들은 사진책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아마, 사진책이 있는 줄조차 못 느끼리라. 어린이들은 만화책만 읽는다. 앞으로는 그림책이나 동화책도 읽을 테고, 다른 글책도 읽을 테지.

 아마 내 도서관에 찾아올 사진쟁이라면 사진책만 보일 텐데, 사진책과 함께 만화책도 읽을 수 있을까. 만화에 담는 꿈과 넋과 눈길을 곰곰이 살피면서, 사진으로 담는 꿈과 넋과 눈길이 어떠할 때에 더없이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울는지를 느낄 수 있을까.

 도서관을 인천에서 연 까닭은 내 고향이 인천이기도 했지만, 예전에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일할 때에 낸 통계를 보면, 우리 나라에서 책을 가장 안 읽는 곳이 인천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지지리도 안 읽는 인천사람한테 책 선물을 하듯이 책 나눔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새책이든 헌책이든 그닥 장만하여 읽지 않는 인천사람인 탓에 도서관을 연대서 더 즐거이 찾아와서 책하고 사귀지는 못할 수밖에 없다. 언제나 서울 등쌀에 시달리고, 늘 서울 들러리 노릇을 하는데다가, 좁은 우물인 인천을 벗어나 큰물인 서울에서 놀고픈 인천사람인 나머지, 인천이라는 터전을 고이 사랑하면서 인천사람 넋을 키우기란 만만하지 않다. 그래도 인천에서 예쁘게 뿌리내리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한테는 책이라는 씨앗 하나가 깃들었을까. 나는 내 고향마을 이웃한테 책씨 하나 남기고 멧자락으로 도서관을 옮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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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3-11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인천의 배다리 헌책방골목에 된장님의 도서관을 보고 방문하려다 문이 닫혀 못간적이 있습니다.근데 충주로 이사를 가셨다는데 아직도 인천에서 도서관을 운영하시는지 궁금해 지네요.지난주인가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 갔는데 된장님의 도서관을 못본것 같아서요^^

숲노래 2011-03-12 07:04   좋아요 0 | URL
인천에는 이제 없고 충주에만 있습니다~
 



 발톱과 책읽기


 예전이라고 말하기보다 혼자서 살던 때에는 책방마실을 하거나 책을 읽느라 바쁜 나머지 손톱·발톱 깎기를 으레 잊고 지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요즈음이라기보다 아이를 낳고부터 여러 해째 아이를 돌보거나 집살림 꾸리랴 바쁜 나머지 손톱·발톱 깎기를 늘 잊는다. 웬만큼 자라다가도 빨래를 하며 닳아서 없어지고, 때로는 톡톡 부러지기도 한다. 아이 손톱·발톱을 바지런히 깎아 주지만 막상 내 손톱·발톱은 깎지 못하고, 내 손톱·발톱을 깎자고 생각할 즈음은 언제나 잠자리에 뻗어 오늘 하루 또 어떻게 지나갔나 하고 해롱해롱 돌아보는 무렵. (4344.3.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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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는 책읽기


 나라밖으로 나가서 여러 겨레 여러 사람을 만나면 온누리를 바라보는 눈이 넓어진다고 이야기합니다. 틀리지 않는 말입니다. 넓은 곳을 둘러본 사람치고 눈이 넓어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조그마한 시골자락에서 살면서도 이 시골자락 구석구석 못 밟은 곳이 많습니다.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던 때에도 날마다 몇 시간씩 온갖 골목을 두 다리로 누비면서도 미처 밟지 못한 길이 있습니다. 게다가 날마다 같은 멧길이나 골목을 다니더라도 날마다 새롭게 마주하거나 느끼는 이야기가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나라밖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이야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을 언저리에 머물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이야기를 익힐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씩 날아도 배우고, 배를 타고 몇 시간씩 물살을 갈라도 배우며,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몇 시간씩 달려도 배웁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몇 시간을 다닌다든지 두 다리로 등성이 하나 골짜기 하나 가로지르면서도 배웁니다.

 집에서 아픈 옆지기와 함께 살아가면서 어린 아이를 돌보다 보면 읍내마실조차 버겁습니다. 읍내마실조차 버거운 만큼 하는 수 없이 누리책방에서 책을 사곤 합니다. 그렇다고 자주 사지는 못하고 한 달에 서너 번쯤 삽니다. 그동안 사서 그러모은 책을 다시 읽기도 하고, 아이 보랴 살림 하랴 밥 하랴 빨래 하랴 바쁜 겨를에 치여 책줄 하나 못 읽기도 합니다.

 홀로 살아가며 책줄을 뒤적일 때에는 책줄을 뒤적이면서 배웠습니다. 둘이 살아가며 나 혼자 좋을 대로 살아갈 수 없을 때에는 나와 다르면서 같이 지내는 한 사람 눈썰미와 눈높이를 돌아보면서 배웠습니다. 셋이 작은 집에서 아옹다옹 살아가는 오늘날은 셋이 얼크러지거나 복닥이는 고단하며 지치는 나날을 그대로 배웁니다. 시나브로 네 사람이 이 멧골자락 작은 집에서 부대낄 때에는 또 이대로 무언가를 배우겠지요.

 사람은 나라밖마실에서도 배우고, 헌책방마실에서도 배우며, 대학교에서도 배웁니다. 초등학교만 다녀도 배우고, 학교를 안 다녀도 배우는 한편, 흙을 일구며 살아도 넉넉히 배웁니다. 군대처럼 끔찍한 죽임터에서도 배울 테고, 회사나 공공기관처럼 틀에 박힌 데에서도 배울 테지만, 집에서도 배우겠지요. 나랑 같이 놀자며 눈빛을 말똥말똥 빛내는 아이와 마주하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비행기를 타고 핀란드에 가든 백만 권에 이르는 책을 읽든 하버드대학교를 1등으로 마치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4344.3.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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