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집》 읽기


 모두 아홉 권으로 된 《초원의 집》 가운데 둘째 권을 읽기로 한다. 로라 잉걸스 와일더 님이 일군 아름다운 옛이야기를 담은 책이기에 후딱 읽어서 치울 수 있으나, 퍽 천천히 읽으려 생각했기 때문에 지난해에 첫째 권을 읽었고 올해 들어 비로소 둘째 권을 펼친다. 내 마음 같아서는 올해에는 둘째 권 이야기만 읽으며 곰삭인 다음 이듬해에 셋째 권을 읽고 싶다. 한두 해 만에 써 내려간 책이 아니라 온삶을 일군 땀방울을 알알이 담은 책인 만큼 금세 읽어치울 수 없다. 나는 아홉 해에 걸쳐 해마다 한 권씩 읽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으리라 생각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랑 씨름하며 비로소 아이를 재운 뒤 고단한 몸으로 《아기가 온다》(실러 키칭거 씀)를 펼친다. 오뉴월에 태어날 둘째를 생각하면 진작에 다 읽었어야 할 책이지만 아직 못 끝냈다. 읽기가 너무 더디다. 몸이 너무 고단해서 그런가 싶어 책을 덮는다. 《초원의 집》 둘째 권인 “대초원의 작은 집”을 펼친다. 마흔다섯 쪽을 훌쩍 넘긴다. 한참 책에 빠져들다가 흠칫 놀란다. 책을 덮는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더 즐길밖에 없다지만, 《초원의 집》만 이토록 빨리 읽으면 어떡하나.

 이듬날, 《아기가 온다》를 다시 펼친다. 이 책 또한 한꺼번에 다 읽어치울 수 없는 책이지만 너무 더디 읽어도 안 되는 책이다. 하루에 스무 쪽이나 서른 쪽쯤은 읽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한다. 날마다 꼭 이만큼씩 읽으며 내 생각과 삶을 찬찬히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고 돌아본다. 책에서는 책대로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헤아리고, 삶에서는 삶대로 우리 집식구 살림살이를 살펴야겠지.

 오늘 아침에는 갈치조림국을 끓인다. 조림도 국도 아닌 어설픈 조림국을 끓인다. 감자와 무를 바닥에 깔고 토막갈치를 얹은 다음 버슷과 봄동을 더 얹은 국이다. 갈치는 감자와 무가 어느 만큼 익은 다음 얹었어야 했는데, 함께 끓여도 되겠거니 하고 생각하다가 그만 갈치를 너무 끓이고 말았다. 감자와 무는 한결 맛나게 되었으나 갈치는 살짝 퍽퍽하다. 그래도 아이와 옆지기가 갈치하고 감자하고 무하고 버섯하고 봄동하고 잘 먹어 주니 고맙다.

 날마다 온갖 반찬과 찌개를 끓일 수는 없다. 그저 날마다 한 가지씩 알뜰히 차리는 밥살림만큼은 할 수 있다. 더 못하지만 조금씩 하는 살림을 꾸려야지. 집안 치우기를 말끔히 해내지 못할지라도 아주 어질러지지 않도록 갈무리하면서 쓸고닦기쯤은 바지런히 해야지.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돌봐야지. 우리 집에도 내 마음에도 내 가슴과 머리에도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손길을 잘 추슬러야지. (4344.3.1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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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자력발전소와 책읽기


 일본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하나가 터졌다. 원자력발전소가 말썽이라기보다 지진과 큰물결에 휩쓸리면서 원자력발전소 하나가 터졌다. 지진과 큰물결 때문에 무너지거나 망가지는 시설과 물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련만, 다른 무엇보다 원자력발전소 터지는 일이 말썽이 된다. 원자력발전소는 우라늄을 써서 전기를 얻도록 한다. 우라늄을 쓰면 방사능이 새어나온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 방사능을 두려워 한다. 방사능으로 물과 바람과 흙이 더러워지면 사람 삶터는 종잡을 수 없다. 그런데 방사능에 앞서 전기를 쓰지 못한다. 방사능도 방사능일 테지만, 앞으로 어느 곳에서건 원자력발전소이든 다른 발전소이든 걱정일밖에 없다. 오늘날 도시 삶터는 전기 없이는 돌아가지 못한다. 전기 없는 도시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전기 없으면 아무런 기계도 건물도 움직이지 못한다. 전기 없이는 공장을 돌리지 못하고, 공장을 돌리지 못하거나 기계를 쓰지 못하면 석유를 뽑아올리지 못할 뿐더러, 석유를 뽑아올리더라도 기계를 움직일 기름을 거르지 못한다.

 머지않아 종이책은 사라지고 전자책이 태어난다고들 말한다. 틀림없이 전자책이 눈부시게 태어날 뿐 아니라 널리 사랑받으리라 본다. 그런데 전자책은 어떻게 읽지? 전기가 없이도 전자책을 읽을 수 있나. 전기가 없으면 손전화나 셈틀을 쓸 수 있나. 전기가 없으면 도시사람은 무엇을 하지. 전기 없는 시골에서는 어떤 기계를 써서 흙을 일구지. 사람이 손으로 조그맣게 일구는 논밭이라면 전기 먹는 기계를 다루지 않아도 된다만, 더 값싸게 얻는다는 푸성귀나 곡식을 얻자며 기계를 써야 하는 농사일은 어찌 될까. 똥거름 먹을거리 아닌 화학농 먹을거리는 앞으로 얻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중국에서 값싸게 사들일 수조차 없을 텐데, 이때에 이 나라 사람들은 아파트에서 회사를 다니며 무슨 삶을 일굴 수 있는가. 은행계좌에 돈은 넘칠 테지만 밥 한 그릇 먹을 수 없는 노릇인데, 전자책이란 우리한테 무슨 마음밥이 되거나 어떤 이야기보따리가 될까.

 전자책이 훨훨 날아도 종이책을 밀어낼 수 없다. 그런데, 종이책이 전자책에 밀리지 않고 살아남더라도, 전기이며 석유이며 쓰지 못하는 나날에는 종이책 또한 무슨 쓸모가 있을까 궁금하다. 몸을 쓰고 손을 놀려야 하는 사람이 되기 앞서 책을 읽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4344.3.1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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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 날갯짓과 책읽기


 봄날 깨어난 나비 날갯짓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바야흐로 봄이 되었고, 이 봄에 숱한 나비들 날갯짓을 볼 수 있다면서 기뻐할 수 있다. 나비 날갯짓을 바라보는 사람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을 때에 나비 날갯짓을 담으려고 할 테지.

 봄이고 여름이고 가을이고 겨울이고 자가용을 몰며 오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가용 창밖으로 마주하는 모습이 두 눈으로 들어오고, 이러한 모습에 따라 삶을 느낄 테며,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이러한 눈길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지.

 더 많은 책이란 참 부질없다. 더 좋은 책 또한 몹시 덧없다. 더 아름다운 책이든 더 놀라운 책이든 더 훌륭한 책이든 얼마나 쓸모있을까.

 나한테는 더 많은 돈이나 더 나은 이름값이나 더 큰 힘이 보람찰 수 없다. 고운 사랑 나눌 살붙이가 보람찬 삶이며, 고운 손길로 고운 풀숲을 마주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보람찬 나날이다. (4344.3.1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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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치며 책읽기


 토요일 낮, 음성 읍내 빵집에 찾아간다. 빵집에서 빵 한 조각 산다. 내가 셈할 때 어느 아가씨가 내가 셈한 빵조각을 옆으로 밀치며 당신 초콜릿을 셈하자며 내민다. 이 아가씨와 내가 거꾸로일 때 아가씨는 어떤 느낌 무슨 생각일까.

 책방에서 앞사람 셈이 끝나지 않았을 때에 밀치며 파고들 사람이 있던가 떠올려 본다. 꽤 드물지만 아주 드물게 겪은 적 있다.

 앞사람을 밀치거나 새치기를 해서라도 먼저 볼일 마치려는 사람은 어떤 책을 읽으려는 사람일까. 이이는 책을 얼마나 빨리 읽을 수 있으며, 남보다 먼저 읽은 책으로 어떤 삶을 꾸릴 수 있을까.

 나는 누군가를 밀치거나 새치기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고, 한집에서 같이 살 수 없다. 아마 우리 옆지기도 내가 이처럼 남을 밀치거나 새치기를 일삼는다면 따로 살자 얘기할 테지.

 남을 밀치거나 새채기하는 사람은 어떤 짝꿍을 만나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떠한 나날을 보내며 한삶을 꾸릴까. (4344.3.1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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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삶읽기 사람읽기 4
― 세계문학전집 말고 사진책을



 집에서 아이 어머니하고 함께 사진책을 보는데, 아이 어머니가 불쑥 한 마디를 합니다. “사람들이 읽지도 않는 세계문학전집을 장식용으로 꽂아 두지 말고 좋은 사진책을 장식용으로 꽂아 두면 더 좋을 텐데요.”

 사진책을 ‘책꽂이 꾸미기’로 꽂는 일은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 어머니 말을 듣고 보니, 사진책만큼 ‘사람들한테 그럴싸해 보이도록 꽂을 만한 책치고 사진책만큼 좋은 책’이 없겠다고 느낍니다. 게다가 글로만 이루어진 세계문학전집을 들여놓아 이 책을 다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만하지만, 사진책을 ‘책꽂이 꾸미기’로 가득 꽂는다면, 가끔은 그냥 주루룩 넘기기라도 할 테니까 ‘장식용 사진책은 이래저래 어떻게든 다 훑는’ 일이나마 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사진책은 값이 싸지 않습니다. 책을 사서 읽으려는 사람과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한테 주머니가 탈탈 털리도록 하는 비싼 책입니다. 그러나 좋은 사진책 때문에 주머니가 탈탈 털리더라도 마음이 다친다거나 살림이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어떻게든 살림돈은 다시 벌기 마련이요, 책값으로 돈을 쓴 만큼 내 마음밭이 한결 기름질 수 있습니다.

 책꽂이를 꾸민다며 책을 들이는 사람한테는 글책이든 사진책이든 그림책이든 매한가지입니다. 사람들한테 자랑하려고 책꽂이를 마련하는 이들한테는 천만 원이나 이천만 원은 돈이 아닙니다. 몇 천만 원이나 몇 억에 이르는 자가용도 쉽게 뽑으니까요. 이렇게 돈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좋으며 값나가는 사진책’을 몇 천만 원어치 장만해서 집안 마루 한쪽을 ‘놀랍고 대단한 사진책’으로 꾸미는 일이란, 어떻게 보니 대단히 괜찮은 일이 될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첫째, 보기에 좋습니다. 둘째, 자랑할 만합니다. 셋째, 손님이든 집임자이든 ‘글 읽느라 애먹지 않으면서(?) 책 문화를 맛봅니다. 넷째, 나중에 책이 짐스러워 내놓으려 할 때에 다른 사람이 고맙게 넘겨받는다든지 헌책방으로 흘러들면서 좋은 사진책을 우리처럼 가난한 사진쟁이들이 값싸게 사서 즐길 수 있습니다.

 다섯째를 덧붙인다면, 사진을 모르는 집임자라 하더라도 좋은 사진책을 가끔 들추면서 천천히 ‘사진 보는 눈’과 ‘사진으로 우리 터전 읽기’를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어요.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제가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가끔가끔 마주하는 나라밖 좋은 사진책들은 어쩌면 돈있는 누군가가 집안 책꽂이를 꾸미려고 장만하던 책일 수 있습니다. 한때는 집안 책꽂이를 이런저런 돋보이는 책으로 꾸미다가 나중에 지겹거나 취미가 바뀌어 내놓은 책일는지 모릅니다. 헌책방이란, 이렇게 흘러드는 책이든 저렇게 나오는 책이든 좋은 새 임자를 만날 수 있게끔 다리를 놓기 때문에, 돈있는 이들이 좋으면서 값나가는 책을 처음에 기쁘게 장만해 줄 수 있으면, 뭇사람한테 고마운 선물이 됩니다. 또한, 퍽 비싼 값이 붙어 나오는 사진책을 돈있는 사람들이 꾸준히 사들여 준다면, 애써 사진길을 걸어가며 좋은 사진을 이룩하자고 하는 사람들한테 보탬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 어머니는 사진을 모르는 사람이지만 삶을 아는 사람입니다. 삶을 알기에 삶을 돌아보면서 사진책 또한 조용히 돌아보아 줍니다. 저는 아이 아버지 되는 사람으로서 사진을 찍거나 읽는다며 버둥거리는데, 사진만 읽으려 애써 본들 사진조차 제대로 못 읽기 일쑤입니다. 아이 어머니처럼 삶을 먼저 튼튼히 다스리면서 읽는 매무새를 길러야겠다고 새삼스레 다짐합니다. 돈없는 사람은 푼푼이 그러모아 한 달에 한두 권씩 사진책을 장만하면 되고, 돈있는 사람은 집안을 예쁘게 꾸미도록 한꺼번에 목돈을 들여 책꽂이 채울 사진책을 마련하면 됩니다. (4344.3.1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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