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밥하기와 책읽기


 새벽에 쌀을 씻어서 불린다. 아침에 아이 오줌기저귀를 간다. 어느덧 아이는 잠에서 깬다. 아이가 일어나면 당근을 갈아서 한 그릇 내민다. 아이는 만나게 한 그릇 금세 비운다. 옆지기가 소금을 뿌리면 더 잘 먹을 수 있대서 소금을 살짝 곁들인다.

 간 당근을 다 먹으면 이제 밥에 불을 넣는다. 밥에 불을 넣으며 오늘 아침에는 무슨 국이나 찌개를 끓일까 생각한다. 어제와 똑같이? 어제와 다르게? 어제 먹다 남은 국을 덥히고 건더기를 더 넣어서?

 오늘은 미역을 끊어서 불린다. 아침에 아이한테 당근을 갈아서 줄 때에 강판을 닦으며 당근찌꺼기가 살짝 가라앉은 물에 미역을 넣는다. 2008년에 첫째를 낳기 앞서까지는 가위로 미역을 끊었는데, 가위를 쓰지 말래서 이때부터 손으로 끊는다. 첫째를 낳기 앞서부터 미역을 얼마나 많이 끊었을까. 가위를 쓸 때하고 손을 쓸 때하고 견주면 맛이 얼마나 다를까. 나로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느낌이 같지는 않다. 손으로 끊은 미역을 불려서 끓이는 국은 가위로 끊은 미역을 불려서 끓이는 국하고 같지 않다고 몸과 마음으로 느낀다.

 옆지기가 생협 먹을거리나 똥오줌 거름을 쓴 먹을거리를 쓰자고 이야기하는 까닭이 다른 데 있겠나. 내 몸으로 들어오는 밥인데 아무 밥이나 먹을 수 있겠는가. 나는 아직 살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앞으로도 한참 멀었다. 살림은 머리로 외는 지식이 아니라 마음을 따사롭게 보듬으면서 몸으로 기쁘게 움직여 꾸리는 내 나날이다.

 표고버섯을 송송 설어 넣자고 생각한다. 감자도 썰어 넣자고 생각한다. 단출하게 국으로 끓이자고 생각한다. 마늘을 빻아서 넣고, 오이도 씻어서 썰어야지. 어제까지 여러 가지 반찬을 했기에 오늘은 따로 아침에 반찬을 하지 말고, 저녁에 새 반찬 하나를 마련하자고 생각한다.

 반찬 하나 하는 데에도 꽤 품과 손이 들지만, 밥을 하고 국을 끓이면서 요모조모 더 마음을 쓰면 한 끼니에 새 반찬 하나 하기란 하나도 힘들지 않고 바쁘지 않다.

 아이는 아버지 등에 업히느니 무어니 하다가 그예 책 하나 펼쳐서 읽어 준다. 몹시 고맙다. 아버지도 책을 읽고 싶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책을 읽을 수 없구나. 아버지도 아침에 책을 좀 읽고 싶으나, 네가 책 읽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좋구나. 아마, 네가 책을 펼치는 모습을 사진으로 바지런히 한두 장 찍고는 밥물을 살피고 국이나 찌개 물을 돌보는 나날이 내 삶책이 되어 줄 테지. 어머니하고 종알종알 떠드는구나. 떠들면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어라. 이십 분만 있으면 아침은 다 된다. (4344.4.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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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4-06 22:54   좋아요 0 | URL
ㅎㅎ 따님이 점점 더 귀여워 지네요.그나 저나 이젠 사진을 찍히는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숲노래 2011-04-07 07:01   좋아요 0 | URL
늘 잘 찍혀 주니 고맙답니다~
 



 머리끈과 책읽기


 아이가 일어난다. 어제도 늦게까지 안 자고 버티며 놀겠다 하던 아이였지만, 오늘도 아침에 일찌감치 일어난다. 어쩔 수 없지, 아이로서도 따스한 봄날 일찍 일어날밖에 없지, 늦게까지 잠들라 할 수 없지 않겠나.

 아이한테 쉬해야지 하고 말하며, 아빠는 응가하러 나갔다 온다. 아이는 쉬를 한 번 했고, 이내 응가까지 한다. 응가가 마려워 오늘은 더 일찍 일어났나?

 아이는 틀림없이 아침부터 뭔가를 먹고프다 할 테니까, 당근을 갈아서 주기로 한다. 아이한테 물을 한 모금 마시라며 물병을 건넨다. 아이는 물을 조금 마신다. 당근을 갈아 작은 밥그릇에 담아 내민다. 자, 바지 입고 앉아서 먹어야지.

 아이는 금세 한 그릇을 비운다. 오늘은 벌써부터 아침을 마련해서 차려야 하나. 아이는 방울 둘 달린 머리끈을 가져와서 내밀며 “아버지, 미끈.” 하고 말한다. 히유, 가늘게 한숨을 쉬며 “빗, 빗 가져와야지.” 하고 대꾸한다. 아이를 뒤로 앉힌다. 머리를 빗질한다. 뒤에서 한 갈래로 묶으려 하는데, 아이가 그러지 말라며 머리를 왼쪽으로 숙인다. 오른손으로 오른머리를 짚는다. 오른쪽에만 묶어 달란다. 아직 머리숱이 안 많아 힘들 텐데? 게다가 네 아버지는 두 갈래로 따로 묶기를 아주 못하거든?

 어머니는 꽤 잘할 텐데 하고 생각하다가, 아버지로서 두 갈래 묶기를 영 못한다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못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생각하며 해 보기로 한다. 못한다지만 날마다 자꾸자꾸 해 버릇하면서 해 줄 수 있어야 할 테니까.

 그렇지만 영 삐뚤빼뚤이다. 머리카락이 요리조리 삐죽삐죽이다. 내 머리도 잘 못 묶는데 아이 머리라고 잘 묶기란 힘든지 모른다. 아이는 마냥 좋다며 웃지만, 이 엉터리 머리끈을 어쩌나. 아버지는 아침에 일을 해야 하니까 건드리지 말라 말하지만, 아이는 아버지 무릎에 올라타고 등에 업힌다. 곁에서 책 하나 꺼내어 아이한테 내민다. 무릎에 앉은 아이를 들어서 옆에 앉힌 다음 이불을 덮는다. 아이는 몇 번 스윽 넘기더니 “책 다 봤어.” 한다. 그래, 그게 다 읽은 꼴이니. 에이그, 너 참 잘났다.

 아버지는 이제 아침일을 그쳐야 할까 보다. 아침을 마련해서 차려야지. 너는 또 반찬 나르기와 상차리기를 거든다며 “내가 할게요!” 하고 옆에서 종알종알 부산을 떨겠지. 행주로 밥상을 닦을 때에도 “내가 닦을게요!” 하면서 끝없이 행주질을 해대겠지. (4344.4.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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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읽기 5


 어머니는 뜨개책을 펼치고 아버지는 만화책을 펼친다. 아이는 어머니 등을 타다가 아버지 등을 타다가, 슬그머니 그림책을 하나 집어 펼친다. 조금 뒤, 아이는 제가 보던 그림책을 들고 아버지한테 와서 그림책에 춤 추는 언니가 나왔다면서 뭐라뭐라 종알종알 한참 떠든다. 아버지한테 책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소리인지, 아버지한테 책을 읽어 주겠다는 모양인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아이가 저랑 안 놀아 준다며 꾀 부리듯이 아버지 얼굴에 책을 디밀다가는 까르르거리며 웃는다. 책을 쥐고 아버지 얼굴에 들이미는 아이를 덥석 안아 함께 뒹군다. (4344.4.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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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하고 책읽기


 빨래를 할 때에 아이는 곁에서 물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물놀이를 할 때면 으레 옷을 다 적시니까 싫어하지만, 아이가 놀고 싶어 하는 데에 차마 말리지 못합니다. 가장 좋은 길이라면, 빨래를 할 때에 아이가 씻도록 하는 일이 될 테지요. 집에서 물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날을 맞이해서 얼른 이처럼 빨래하며 물놀이 어린이를 바라볼 수 있는 날을 손꼽습니다.

 빨래기계를 쓰면 손빨래 일감을 크게 줄입니다. 빨래기계를 쓰면 한 시간쯤을 손빨래 일에서 벗어납니다. 하루에 한 시간 빨래하기에 들인다 하더라도 한 달이면 하루 하고도 한 나절 남짓을 빨래에 쏟는 셈입니다. 밥을 하고 치우느라 날마다 두 시간쯤 쓴다면 다달이 이틀이나 사흘쯤은 밥하기에만 보내는 셈입니다. 따지고 보면, 하루 1/3은 잠을 자는 데에 쓰니까, 이렇게 내 겨를을 헤아리는 일은 좀 부질없습니다.

 아직 집에서 빨래를 할 수 없어, 다른 집에서 물을 얻어 쓰면서 빨래를 하다가, 다른 집 씻는방에 놓은 빨래기계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텅텅텅 소리를 내는 커다란 빨래기계에 든 빨래감은 내 오늘 빨래감보다 적어 보입니다. 그런데 빨래기계가 빨래를 해내는 데에는 저보다 훨씬 오래 걸립니다. 아마, 기계는 사람보다 물과 전기까지 훨씬 많이 먹을 테지요.

 손빨래를 하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내가 빨래기계를 써서 날마다 한 시간쯤 다른 데에 내 겨를을 쓸 수 있다면, 이만 한 겨를에 나로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나로서는 날마다 한 시간을 더 누리면서 물과 전기를 더 쓰는 일을 더 보람차거나 알차게 누릴 수 있을까 하고.

 손빨래를 안 하고 빨래기계 장만해서 쓴다면 집살림을 조금 더 알뜰히 돌보는 내 삶이 될까요. 빨래기계 쓸 만한 녀석을 장만하자면 거의 100만 원 가까운 돈을 장만해야 하는데, 나는 1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어떻게 무슨 일을 하면서 벌어야 할까요. 오늘날 같은 누리에서 빨래기계 안 쓰는 사람은 바보이거나 멍청이라 할 만할까요.

 어제 하루 새삼스레 찬물로 빨래를 합니다. 물을 얻어 쓰는 데에서 따신 물이 안 나왔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는 기름으로 보일러를 돌리니까, 빨래를 하며 따신 물을 쓰자면 이웃 기름을 내가 더 써야 합니다. 내 집 보일러를 돌려 따신 물을 쓰면 내 집 기름을 쓰니까 걱정스럽지 않지만, 이웃 씻는방에서 빨래를 할 때에는 되게 미안합니다. 빨래기계는 따신 물 아닌 차가운 물로 얼마든지 잘 빨아 주니까 빨래기계를 쓰면 기름을 안 먹으니까, 빨래기계가 전기랑 물을 쓰더라도 똑같은 셈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빨래를 마칩니다. 마무리지은 빨래는 물병과 함께 가방에 넣습니다. 자전거 수레 뒤쪽에 10리터들이 물통을 넣습니다. 아이를 수레에 앉힙니다.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몰아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이는 자전거를 타며 좋아합니다. 빨래를 하면서 아이가 곁에서 물놀이를 하도록 하거나 씻기자면 품과 겨를을 더 들여야 합니다. 그렇지만,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라면, 이 몫을 마땅하면서 거뜬히 즐길 노릇이리라 생각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물통을 내려놓고 빨래를 넙니다. 다 마른 빨래를 걷습니다. 아이하고 빨래를 개려 했지만, 몸이 고단해 한동안 드러눕습니다. 허리를 폅니다. 책을 몇 쪽쯤 읽고 싶었지만, 눈이 따끔거려 아예 한 쪽조차 펼치지 못합니다. 책으로 태어나도록 하는 글을 쓰는 사람은 어디에서 누구하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헤아리며 까무룩 잠이 듭니다. 아이가 종알종알 노래 부르는 소리를 꿈결처럼 듣다가 햇볕이 차츰 수그러들기에 깜짝 놀라듯이 깨어납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저녁밥을 짓습니다. (4344.4.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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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4-05 10:14   좋아요 0 | URL
아이가 참 이뻐요. 옆에서 돌아가고 있는 세탁기 소리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모든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숲노래 2011-04-05 13:56   좋아요 0 | URL
고마운 삶은 참으로 마땅한 나날이기에,
이 고마운 삶을 늘 고맙게 받아들이려고
오늘도 더 즐겁게 생각하며 힘을 씁니다..
 



 자전거와 책읽기


 자전거를 즐겨타는 사람 가운데 자전거 이야기를 다루는 책을 읽는 사람인 퍽 드물다. 자전거 장비를 다루는 잡지를 보는 사람은 곧잘 있다.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을 스스로 글로 풀어낸다든지, 다른 사람이 쓴 ‘자전거와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담은 글을 기꺼이 읽는 사람이 꽤나 드물다. 자전거 이야기를 글로 쓴다 할 때에도 ‘장비를 어떻게 사거나 급수를 올리는가’를 쓸 뿐이요, 조금 나아가면 ‘자전거 여행을 서울에서 길 떠나는 틀에 맞추어’ 쓰기만 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 해서 틀리지 않다. 사진 찍는 즐거움이나 사진 나누는 기쁨을 적바림한 글을 찾아서 읽으려는 사진쟁이나 사진즐김이는 꽤 드물다.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을 찍는 즐거움과 기쁨을 몸소 글로 써 보자고 하지 못하기 일쑤이다.

 책을 읽는 사람도 다르지 않다. 책을 읽는 즐거움이나 보람이나 아름다움을 글로 손수 쓰거나 나누거나 하는 사람은 생각 밖으로 참 드물다. 책 이야기를 글로 쓰더라도 서평이나 신간소개나 독후감에 그칠 뿐, 내 삶을 담는 느낌글이나 말 그대로 ‘책 이야기’를 못 쓰기 마련이다.

 며칠 내리 자전거를 퍽 오래 타고 돌아다녀야 하면서 날마다 땀을 몇 바가지 흘렸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15분 동안 오르막을 오르며 땀이 비오듯 줄줄 흘렀고, 15분 동안 낑낑대며 오른 오르막을 고작 1분 남짓 내달리면서 이마에 흐르던 땀은 금세 말랐다. 15분 오르막에 1분 내리막이라니. 그런데 고작 1분 내리막이면서 15분 오르막이 서운하지 않다. (4344.4.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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