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찾는 책은 (2021.10.29.)

― 서울 〈글벗서점〉



  모든 책은 스스로 찾아나서는 사람한테 문득 눈에 뜨이면서 손에 쥘 만합니다. 스스로 찾아나서지 않는 사람한테 덥석 안길 책은 없습니다. 마음을 열고, 눈길을 기울이고, 생각을 쓰고, 품을 바치고, 돈하고 말미를 들이기에 비로소 책 하나를 건사해서 새롭게 읽어 오늘을 노래한다고 느낍니다.


  빨리 죽을 생각은 없는 터라 책을 빨리 읽지 않습니다. 둘레에서 저더러 “글을 빨리 쓴다”고 말합니다만, 저는 글을 빨리 안 씁니다. 제 머리를 거치고 마음을 지나 눈빛에 닿고 손끝으로 옮겨서 반짝반짝 글씨로 태어날 때를 기다리다가 넌지시 샘물처럼 길어올릴 뿐입니다.


  오랜 벗님이 제가 그자리에서 덥석덥석 손으로 쉬잖고 한 쪽을 다 채우는 글쓰기를 보시더니 “숲노래 씨는 옮겨쓰기(필사)를 하는 사람보다 빨라요. 이야기를 새로 쓰는 사람이 어떻게 더 빠르지요?” 하고 묻습니다. 곰곰이 생각했어요. 저도 ‘옮겨쓰기’입니다. 이 푸른별에 늘 흘러다니는 빛줄기를 글로 담고 싶구나 하고 생각하면 어느새 글감이 머리에 마음에 눈에 손에 쏟아져요. 저 혼자만 알아보기를 바라지 않기에 되도록 반듯반듯 옮겨적으며 아이들도 읽기를 바라고, 이 글을 글판으로 두들겨서 여러 고장 이웃님도 넉넉히 읽도록 풀어놓습니다.


  틀림없이 ‘글쓴이 이름 : 숲노래’일 테지만, 저는 제가 쓴 글을 혼자 썼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풀꽃나무가 곁에서 속삭이고, 멧새가 옆에서 노래합니다. 곁님하고 아이들이 보금자리에서 신나게 놀면서 웃음빛으로 알려주고, 숱한 이웃님이 이녁 삶으로 일깨울 뿐 아니라, 온나라 모든 책집에서 알뜰히 건사해서 징검다리로 이어주는 책을 만나니 느긋이 배우면서 ‘옮겨쓴다’고 여깁니다.


  서울 이웃님 한 분한테 서울에 있는 아름책집 몇 곳을 알려주려고 〈글벗서점〉을 함께 찾아갔습니다. 따지자면 모든 마을책집이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꼭 어느 책집을 자주 찾아가야 하지 않습니다. 가벼운 차림새로 가까이 드나들 마을책집을 자주 오가면 즐거워요. 전남 고흥 두멧시골에서 사는 저로서는 어디나 다 먼길이라 며칠치 길삯하고 책값을 모아서 한꺼번에 돌아볼 뿐입니다.


  요즈막에 새로 태어나는 적잖은 마을책집 책차림은 꽤 엇비슷합니다. 처음에는 이렇더라도 하루하루 흐르는 사이 스스로 다 다른 눈썰미를 펼쳐서 여러 해 뒤에는 그야말로 다 다른 책차림으로 빛난다고 느낍니다. 처음부터 책을 다 알거나 잘 알아서 책집을 여는 분은 없고, 읽님(독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르’기에 찾아서 읽고, 찾도록 다리를 놓으며, 찾도록 글을 새록새록 쓰기도 합니다.


ㅅㄴㄹ


《러시아의 역사》(C.H.스이로프/기연수 옮김, 동아일보사, 1988.9.15.)

《인부수첩》(김해화, 실천문학사, 1986.9.30.)

《우리들의 사랑가》(김해화, 창작과비평사, 1991.6.5.)

《咸錫憲 全集 5 西風의 노래》(함석헌, 한길사, 1983.9.30.)

《왜 뱀은 구르는 수레바퀴 밑에 자기머리를 집어넣어 말벌과 함께 죽어버렸는가?》(강경화·김유신·신승철·강창민·마광수·안경원, 유림, 1978.12.25.첫/1988.10.31.넉벌)

《追憶祭》(강은교, 민음사, 1975.6.15.)

《미국노동운동비사(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리처드 O.보이어·허버트 M.모레이스/박순식 옮김, 인간, 1981.5.7.)

《조선 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곽차섭, 푸른역사, 2004.1.10.)

《600년 서울 땅이름 이야기》(김기빈, 살림터, 1993.12.30.)

《내가 만드는 요리》(김성수 엮음, 소년생활사, 1979.1.15.)

《新註 墨場必携》(洛東書院, 1930.2.15.첫/1941.10.15.넉벌)

《Better English everyday Junior 2》(홍봉진, 일심사, 1956.3.20.첫/1959.4.10.넉벌)

《체육 6》(교육부 엮음,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7.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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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2022.1.21.)

― 서울 〈소요서가〉



  서울에서 ‘을지로’는 고구려사람 ‘을지문덕’을 딴 땅이름입니다. 옛사람 ‘을지’는 마땅히 한자 이름이 아닌 우리말 이름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땅이름을 보면 ‘乙支’란 한자를 그냥 붙이고, 옛이름 ‘을지’를 오늘날 어떤 이름으로 새롭게 읽어서 새겨야 하는가를 풀어내지 못하거나 않습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손수 살림을 짓고 사랑을 아이한테 물려주던 수수한 시골사람이 스스로 지었습니다. 글이나 책이 아닌 삶으로 물려준 말입니다. 이런 우리말은 조선 무렵에 몹시 억눌렸고, 일본이 총칼로 쳐들어와 짓밟으면서 숨이 막혔는데, 1945년 뒤에는 남·북녘으로 갈린 틈바구니에 미국이 끼어들었고, 1950년부터 1987년까지 새로운 총칼나라(군사독재)였기에 그야말로 ‘삶말·살림말·사랑말’은 어깨는커녕 기지개조차 켠 적이 없습니다.


  여느 자리에서는 그냥 ‘인문책’이라 말합니다만, 이 ‘人文學’도 일본사람이 지은 한자말입니다. 굳이 일본을 미워할 까닭은 없되, 총칼찌꺼기(일본제국주의 잔재)는 이제라도 좀 씻거나 털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마음을 밝혀야지 싶습니다. 아무튼 저는 ‘삶책’이라고 말합니다.


  서울 을지로 삶책집 〈소요서가〉에 찾아갑니다. 작은아이는 삶책집으로 가는 길에 얼음이나 눈을 만날 적마다 바작바작 소리가 나도록 밟으면서 놉니다. “아버지도 밟아 보지요?” 하고 웃는 아이한테 “응, 마음껏 밟으셔요.” 하고 얘기합니다. 너희 아버지도 어릴 적에 얼음하고 눈을 엄청나게 밟으며 놀았단다. 그러고 보니 저도 어릴 적에 어머니한테 “어머니도 얼음 밟아 봐요! 재밌어요!” 했고, 우리 어머니는 저한테 “많이 밟아! 어머닌 어릴 적에 많이 밟아 봤어!” 했습니다.


  종로나 청계천이 아닌 을지로에 깃든 삶책집은 새삼스럽습니다. 곰곰이 보면 어느 곳이든 책집이 깃들기에 어울립니다. 숲은 숲대로, 시골은 시골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섬은 섬대로, 서울은 서울대로, 또 이 복닥거리는 가겟거리 한복판은 가겟거리 한복판대로 사람들 누구나 숨돌리면서 마음을 틔울 책집이 있을 만해요.


  스스로 삶을 짓는 사람은 스스로 사랑을 짓습니다. 스스로 사랑을 짓기에 스스로 아이를 낳아 스스로 지은 삶에 따라 여민 말을 스스로 즐거이 물려줍니다. 예부터 어버이는 아이한테 “말을 가르치지 않았”어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말을 물려주었”습니다. 아이는 어버이 삶말을 물려받아 스스로 새롭게 짓는 살림을 보태어 가다듬었고, 이 물줄기가 오늘로 잇습니다. 어제 태어난 책을 오늘 만나고, 오늘 읽는 책을 바탕으로 모레에 아이들한테 물려줄 이야기를 새롭게 엮습니다.


ㅅㄴㄹ


《역사의 천사》(브루노 아르파이아 글/정병선 옮김, 오월의봄, 2017.10.23.)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김엘리 글, 동녘, 2021.6.30.)

《철학과 물리학의 만남》(W.하이젠베르그 글/최종덕 옮김, 한겨레, 1985.3.10.첫/1988.11.5.8벌)

《있음에서 됨으로》(일리야 프리고전 글/이철수 옮김, 민음사, 1989.3.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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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나무 (2022.1.20.)

― 익산 〈두번째집〉



  작은아이하고 책집마실을 하려고 새벽에 시골집을 나서면서 물어보았습니다. “광주로 버스를 타고 가서 군산으로 넘어갈까, 순천으로 버스를 타고 가서 기차로 익산으로 건너갈까?” 어느 쪽이든 한나절 남짓 길에서 보냅니다. “음, 기차로?” “그래, 그럼 기차를 타고 익산으로 먼저 가자.”


  숲노래 씨는 시외버스하고 기차에서 글을 씁니다. 산들보라 씨는 노래를 듣다가 창밖을 보다가 잡니다. 마을 앞 첫 시골버스는 07시 05분인데 새벽 03시부터 깨서 “아버지, 언제 나가요?” 하고 내내 물었거든요. 오늘은 여느 날보다 늦게 새벽 3시부터 일어나 말꽃엮기(사전집필)를 했습니다만, 열 시를 넘어가니 살짝 졸립니다. 익산에서 기차를 내리니 택시를 타는 곳에 줄이 무척 깁니다. 시내버스를 탈까 하고 걷다가 길을 잘못 든 줄 뒤늦게 알아차립니다. 그렇지만 마침 택시가 우리 앞으로 하나 옵니다. “어쩜, 우리가 더 헤매지 않도록 이렇게 찾아와 주네!”


  먼저 찾아간 〈그림책방 씨앗〉은 낮에 연다고 해서 책집 앞에서 해바라기를 하고서 〈두번째집〉 쪽으로 걷습니다. 둘이서 천천히 걷는 길에 산들보라 씨가 속삭입니다. “길에 있는 나무 힘들겠다.” “왜?” “자동차가 이렇게 많고 밤에도 불이 환하니까.” “그래. 서울이나 큰고장에서는 길나무가 힘들겠지. 시골에서도 똑같잖아. 그런데 우리가 길나무 곁을 지나가면서 따스히 바라보면, 나무가 ‘힘든 하루’를 다 씻어내.” “응. 알아.” “산들보라 씨가 나무를 따스히 바라보시면서 쓰다듬어 주셔요.”


  익산 골목을 걷고 큰길 거님길을 걷는데 곳곳에 부릉이가 함부로 섭니다. 아니, 부릉이는 골목을 두 줄로 차지하고, 거님길로 휙 올라앉습니다. 부릉이도 ‘사람이 타고 몰’ 테데, 왜 이 쇳덩이를 골목하고 거님길에 세울까요? 나라(정부·지자체)는 왜 ‘거님길에 함부로 세운 부릉이(무단주차 차령)’를 그냥 둘까요?


  두 아이를 낳아 돌보며 늘 업거나 안으며 살았습니다. 그때에도 모든 길에 부릉이가 넘쳐서 이리 에돌고 저리 비켜야 했습니다. 아기를 낳는 젊은 가시버시가 부릉이를 장만하려는 마음을 물씬 알 만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아기를 낳으려는 젊은이가 줄어들 만합니다.


  등에 땀이 돋을 즈음 〈두번째집〉 앞에 이릅니다. 그런데 1·2월에는 나무날(목요일) 쉰다고 합니다. 저런. 가는 날이 저잣날이네요. 우리는 다시 걷기로 합니다. 큰길을 걷고 골목길을 걸어 버스나루에 닿습니다. 군산으로 가는 버스를 탑니다. 산들보라 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꿈나라로 갑니다. 포근히 자렴. 이따 또 걷자.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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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아침에 (2022.1.20.)

― 익산 〈그림책방 씨앗〉



  언제나 아이들한테 묻습니다. “같이 갈래?” 아이들 스스로 생각해서 말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안 갈래.” 하든 “갈래.” 하든 아이들 스스로 짓는 하루를 지켜봅니다. 한자말 ‘육아’를 우리말로는 ‘아이돌봄’으로 옮길 만한데, ‘돌보다’는 ‘돌아보다’를 줄인 낱말입니다. 돌아가듯 보는, 두루 보는 결이 ‘돌아보다·돌보다’예요. “아이를 돌보다 = 아이한테 뭘 시키거나 해주는 길이 아닌, 아이가 스스로 그리고 생각해서 짓는 소꿉살림을 사랑으로 지켜보기”라고 할 만해요.


  아이를 돌아보는 동안 어버이로서 어떻게 하루를 그리고 지어서 살림을 일굴 적에 즐거우면서 아름다운가 하고 읽어냅니다. 어버이란 “즐겁고 아름답게 살림짓는 자리”라고 느껴요. 즐겁고 아름답되 사랑으로 가기에 어버이예요.


  작은아이하고 새벽바람으로 길을 나섭니다. 읍내를 거쳐 순천으로 가고, 칙칙폭폭 갈아타고서 익산에서 내립니다. 버스하고 택시를 망설이다가 조금 걷자니 택시가 척 옆에 섭니다. 그래, 택시로 가자.


  아침에 일찍 〈그림책방 씨앗〉에 닿습니다. 책집은 아직 안 엽니다. 요즈음에는 느긋이 여신다는 얘기를 나중에 듣습니다. 미리 여쭙고 마실을 한다면 헛걸음을 안 할 테지만, 딱히 헛심을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책집을 둘러싼 마을이 아침빛을 어떻게 머금는가를 헤아렸고, 책집 곁에서 서성이며 다리를 쉽니다.


  새벽부터 아침 사이에 길에서 ‘태우다·잠깨비·코흘리개·텃씨’ 이렇게 노래꽃을 넉 자락 지었습니다. “산들보라 씨, 이 넷 가운데 씨앗지기님한테 어떤 노래꽃을 드릴까요?” “음, ‘코흘리개’?” 산들보라 씨가 뽑은 대로 노래꽃판을 책집 여닫이 손잡이에 슬그머니 꽂습니다. 이따가 책집을 열려 나오실 적에 즐겁게 맞이하면서 책집아이가 함께 누리고, 책집손님도 나란히 누리기를 바랍니다.


  이제 어찌할까 하고 생각하며 걷습니다. 해가 드는 자리를 골라서 걸으려는데, 골목에도 길가에도 부릉이가 넘칩니다. 거님길을 온통 가로막는 부릉이입니다. 부릉부릉 다니는 사람은 안 걸어다니기에 아무 데나 세울는지 몰라요. 아니, 부릉부릉 다닐 적에는 해도 바람도 비도 눈도 잊기 쉬우니 커다란 쇳덩이를 길가에 부리고서 잊겠지요.


  거님길에는 부릉이가 아닌 들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야지 싶습니다. 거님길은 골목을 이루고 마을살림이 빛나야지 싶어요. 이곳 마을아이도 저곳 마을동무도 마음껏 뛰고 달리고 소리치고 춤출 만한 골목일 적에 우리 삶터가 살아나리라 생각합니다. 어린이를 헤아리지 않는 나라는 숲을 잊고 말아 죽음길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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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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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차림 (2022.1.20.)

― 군산 〈마리서사〉



  서울에서는 어디나 가깝습니다. 서울에서는 모든 시골로 길을 뚫어요. 시골에서는 어디나 멉니다. 시골에서는 이웃 시골로조차 길이 없곤 합니다. 서울살이란 모든 새살림(현대문명)을 듬뿍 누리는 길입니다. 시골살이란 웬만한 새살림을 등지면서 숲살림을 느긋이 누리는 길입니다.


  이쪽이 낫거나 저쪽이 나쁘지 않습니다. ‘낫다·나쁘다’는 말밑이 ‘나’로 같고, ‘너·나’로 가르면서 ‘나·남’으로도 가르며, ‘날다·남다’를 이루는 말밑이에요. 아주 마땅히 ‘나’란 말밑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고, 오롯이 ‘나’라는 숨결을 그립니다. ‘나누다·노느다’ 말밑도 ‘나’인걸요.


  서울은 서울대로 재미납니다. 시골은 시골대로 신나요. 서로 다르면서 새롭게 어우러지기에 시골살림을 지으면서 이따금 서울마실을 합니다. 저한테 아직 아이들이 안 찾아오던 지난날 혼자 날마다 책집마실로 살아가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던 무렵에 제 등짐이며 손짐은 온통 책입니다. 걸으면서 읽고, 자전거를 달리다가 다리를 쉬며 읽고, 자다가 읽어나서 읽고, 먹으면서 읽습니다. 일터에서 일하다가 읽고, 모임(회의)을 할 적에도 으레 책을 펴고, 이야기(강의)를 듣는 자리에서도 노상 딴 책을 펴서 함께 듣고 읽었습니다.


  군산을 밝히는 〈마리서사〉는 조촐하면서 가볍게 짠 책주머니를 내놓았고, 겉에 “패션의 완성은 손에 책”이란 글씨를 새겼습니다. “책차림은 멋차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많이 읽거나 늘 읽어서 멋스럽지 않습니다. “책읽기 = 이웃 생각을 귀담아듣기 + 동무 마음에 눈빛 틔우기 + 푸른별 새길을 사랑으로 찾기”를 밑바탕으로 놓는다고 여겨요. 문득 《남성복을 입은 여성들》을 읽습니다. 옷이란 그저 옷이요, 우리말 ‘바지·치마’는 순이나 돌이가 입을 옷으로 안 가릅니다. 발을 넣고 여미기에 바지요, 통으로 두르기에 치마입니다. 오랜 우리말을 곰곰이 읽으면 ‘순이돌이 어깨동무 발자취’를 물씬 익히면서 새길을 찾을 만해요. 우리말은 ‘어버이(어머니 + 아버지)’에 ‘가시버시’입니다. 늘 순이가 앞입니다.


  이른바 ‘사내옷(남성복)’은 그저 사내가 입는 옷이라기보다 ‘사내힘(남성권력 + 가부장권력 + 통치권력)’이지 싶습니다. 순이가 굳이 멋없는 사내차림을 한 까닭은 사내끼리 바보스레 울타리를 세운 그악스런 가시울타리를 허물려는 뜻이라고 느껴요. 저는 곧잘 치마차림을 합니다. 돌이로서 ‘순이차림’ 아닌 ‘치마차림’을 하면서 “옷이란 모두 옷일 뿐, 껍데기 아닌 알맹이에 흐르는 사랑어린 삶을 보자”는 뜻을 보이는 셈입니다. 오늘 작은아이하고 군산마실을 처음으로 하면서 높다란 잿빛집하고 다르게 조촐히 여미는 골목집에 깃든 책빛을 듬뿍 누렸습니다.


《오직 하나뿐》(웬델 베리/ 배미영 옮김, 이후, 2017.9.7.)

《womankind vol 14》(나희영 엮음, 바다출판사, 2021.2.5.)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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