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파고들면 (2019.7.4.)

― 광주 〈광일서점〉



  광주 계림동은 오래도록 이름난 헌책집거리였습니다. 광주라는 고장뿐 아니라 전라남도를 통틀어 글을 배워 글꽃을 피우고 싶어하던 사람들한테 아늑한 쉼터이자 배움터이면서 만남터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이제 광주 계림동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광주에서 나고자란 분이 보기에도 그렇고, 이 거리에서 책집을 지키는 분이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광주는 뒤늦게 돈을 조금 들여서 이 책집거리를 살려 보겠노라고 말하는 듯하지만, 가게 얼굴(간판)을 바꾸는 시늉으로는 하나도 이바지하기 어렵습니다. 책집거리를 살리고 싶다면 길은 아주 쉬워요. 광주지기(시장)부터 이 책집거리를 날마다 드나들면 됩니다. 광주 벼슬꾼부터 이곳 헌책집에서 날마다 책을 한두 자락씩 장만해서 읽고 배우면 되고, 광주에서 길잡이(교사)로 일하는 사람들도 같이 책을 사서 읽고 배우면 됩니다. 벼슬꾼(구청장·국회의원·공무원)도 책집거리를 드나들면서 책을 사고, 저마다 읽은 책을 이웃이나 아이들한테 건네거나 다시 헌책집에 내놓으면서 이곳을 살릴 만합니다.


  헌책집·헌책집골목·헌책집거리가 힘들다면 ‘책이 안 도는 탓’이에요. 책이 왜 안 도느냐 하면 ‘책집에 와서 책을 사서 읽고 다시 파는 걸음’이 확 줄어든 탓이지요. 길바닥을 갈아엎거나 문화예술가를 부른다거나 이름난 글꾼·노래꾼을 불러서 깜짝잔치를 해본들 그날 하루뿐입니다. 한 해 내내 이 거리를 느끼고 돌아보면서 사랑할 만한 길은 아주 쉬워요. 오직 ‘책’을 ‘보면’ 됩니다.


  헌책집은 빌림터(대여점)도 책숲(도서관)도 아닌 책집입니다. 사람들 손길을 타고서 새롭게 빛날 책을 다루는 터전입니다. 같은 책 하나가 돌고돌면서 여러 사람 손빛을 두고두고 타며 이야기가 새롭게 자라는 자리입니다. 어느 갈래를 깊이 파거나 널리 짚으면서 곰곰이 배우고픈 이들이 찾아드는 책쉼터이자 책마당이라 할 헌책집이에요. 딱히 다른 이바지를 안 해도 되어요. ‘광주 계림동 헌책집에서만 쓸 수 있는 책꽃종이(도서상품권)’를 광주사람이며 전남사람한테 나누어 주어도 반갑겠지요. 이렇게만 하면 알아서 달라집니다.


  큰길은 찻소리가 시끄럽지만 〈광일서점〉으로 들어서니 조용합니다. 책집은 어둑어둑하나, 책은 어둡지 않습니다. 헌책집지기 일터이자 살림터는 넓지 않으나 아늑합니다. 책을 만진 손마디마다 굳은살입니다. 묵은 책에는 더께가 좀 앉았으나, 더께는 닦으면 되고, 때로는 더께가 있어 손빛책이 돋보입니다. 파고들면 보는데, 안 파고들면 못 봐요. 사랑하면 보는데, 안 사랑하니 안 봅니다.


ㅅㄴㄹ


《절약생활 아이디어 399집》(편집실, 여성중앙, 1980)

《최신 생활기록부 기입자료, 용어별 실례편》(정문사, 1966)

《꾸짖지 않는 교육》(霜田靜志/박중신 옮김, 문화각, 1964)

《인문계 고등학교 국어 2 교사용》(문교부, 1970)

《신 세계사 지도》(조의설, 장왕사, 1962)

《고1 Summit 영어단어숙어집》(명보교육, 1991)

《피터 프램턴》(마셔 댈리/이은애 옮김, 은애, 1981)

《발표샘 웅변샘》(류제룡, 문화연구원, 1982)

《보우네 집 이야기》(김옥애, 세종, 1984)

《새로운 독서지도》(대한교육연합회, 1976)

《1만년 후》(애드리언 베리/장기철 옮김, 과학기술사, 1977)

《구국의 얼을 우리 가슴에 새겨준, 문열공의 생애와 업적》(나주군교육청, ?)

《김일성의 ‘조선로동당 건설의 력사적 경험’에 대한 비판》(허동찬, 경북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1987)


2019년 여름에 찾아간 이야기를

2022년 봄에야 마무리를 짓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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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어린이하고 (2022.1.20.)

― 군산 〈그림산책〉



  작은아이는 숲노래 씨를 따라나서며, 숲노래 씨는 작은아이를 이끌면서 군산을 처음으로 디딥니다. 아이하고 다니면서 아이 짐은 웬만하면 숲노래 씨가 챙겨서 짊어집니다. 아이는 그림살림이나 놀이살림에 스스로 더 챙기고픈 몇 가지를 살피라고 얘기합니다. 무럭무럭 자라서 숲노래 씨하고 나란히 설 만한 키에 이른다면, 이때에는 아이 옷가지에다가 마실살림을 조금 나누어 주자고 생각합니다.


  부릉이로 다니면서 둘레를 보는 눈이랑, 두 다리로 걸으면서 둘레를 마주하는 눈은 아주 다릅니다. 바퀴걸상으로 다닐 적에도 다르고, 아기를 안고 다닐 적에도 다릅니다. 앞선나라로 일컫는 곳에서는 웬만한 벼슬꾼한테 부릉이를 내어주지 않습니다. 더 쉽고 빠르게 달리도록 하기보다는, 천천히 마을빛을 두루 맞아들이면서 마을사람을 마주하도록 헤아립니다.


  우리나라 고장지기(지자체장) 가운데, 또 벼슬꾼(국회의원·공무원) 가운데 부릉이를 안 몰고 두 다리로 일터를 오가는 사람은 몇쯤 될까요? 걷거나 자전거로 집하고 일터를 오가면서 마을을 온몸으로 한 해 내내 느끼고 만나는 일꾼은 몇쯤 있을까요? 이 나라에는 부릉이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나라지기·고장지기·벼슬꾼도, 여느 사람들도 부릉이를 너누 자주 몰아요. 지기·일꾼이란 자리를 맡을 사람한테는 튼튼한 신발하고 자전거를 내어줄 노릇입니다. 책꽃종이(도서상품권)를 다달이 30만 원어치씩 주면서 늘 책을 곁에 두며 스스로 익히도록 이끌어야지 싶어요.


  군산버스나루부터 걸어서 〈조용한 분홍색〉에 갔으나 겨울쉼입니다. 다시 걸어서 〈그림산책〉으로 옵니다. 오늘 연 책집을 드디어 만납니다. 〈그림산책〉은 그림책하고 어린이책을 느긋하게 펼쳐놓습니다. 책걸상도 느긋합니다. 이 그림책을 펼쳐서 읽다가 덮고, 글꾸러미를 꺼내어 생각을 적고, 저 그림책을 펼쳐서 읽다가 덮고, 새로 글꾸러미를 뒤적이며 생각을 갈무리하면서 한때를 누립니다.


  사람은 하루에 책을 몇 자락쯤 읽으면 넉넉할까요? 열이나 스물쯤 읽으면 될까요? 서른이나 마흔쯤 읽으면 어떨까요? 책으로 징검다리가 되어 사람하고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는 책을 얼마나 더 놓을 적에 아름다울까요?


  겨울이라 찬바람이라면, 봄이라 산들바람이요, 여름이라 땡볕바람이고, 가을이라 열매바람입니다. 겨울에 눈바람이고, 봄에 꽃바람이며, 여름에 잎바람이고, 가을에 무지개바람입니다. 우리 어린씨는 집에서 보던 그림책을 책집마실을 하는 길에 새삼스레 읽습니다. ‘집에 없는 책을 살피고 찾는’ 쪽은 어버이라면, ‘집에 있는 책을 살피고 찾는’ 쪽은 아이입니다. 보고픈 책을 새로 읽으니 더 즐겁겠지요.


ㅅㄴㄹ


《프랭클린의 날아다니는 책방》(젠 캠벨 글·케이티 하네트 그림/홍연미 옮김, 달리, 2018.8.16.)

《빠앙! 기차를 타요》(마세 나오카타 글·그림/정영원 옮김, 비룡소, 2019.11.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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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2022.2.16.)

― 부산 〈비온후〉



  부산 살림길을 밝히는 책을 꾸준히 펴내는 ‘비온후’에서 가꾸는 책집 〈비온후〉입니다. 〈동주책방〉부터 걸어가는 골목에 부릉이가 줄잇습니다. 사람도 집도 넘치는 고장은 골목을 걸을 만하지 않습니다만, 부릉부릉 모는 분들은 골목으로 밀고 들어서지 않기가 어려울는지 모릅니다. 어른뿐 아니라 아이도 걷거나 뛰놀거나 쉴 틈이 없고, 할매할배도 천천히 걷거나 해바라기할 자리가 없어요.


  우리 작은아이랑 이웃 아이는 ‘책읽기’보다 ‘그림놀이’가 즐겁습니다. 우리 작은아이조차 하룻내 온갖 부릉소리에 시달렸고, 제대로 뛰거나 달릴 틈을 못 누렸다 보니, 왁자지껄 웃으면서 놉니다. 책집이기도 하지만 펴냄터이기도 하기에 어버이로서 쭈뼛쭈뼛하다가 마침 고흥부터 챙긴 《책숲마실》이 하나 있어 “아이들하고 시끄럽게 누려서 잘못했고 고맙습니다” 하는 마음을 건네자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미리맞기(예방접종·백신)를 안 합니다. 두 아이가 갓 태어날 적에 돌봄터(병원)에서 어버이한테 알리지도 않고서 꽂은 바늘 탓에 뒤앓이를 씻느라 대여섯 해 남짓 걸렸어요. 바늘을 몸에 꽂아야 마음이 놓이는 분이라면 미리맞기를 하면 되고, 여리고 작은 몸으로 태어나는 아이한테는 함부로 바늘을 꽂을 일이 아닙니다. 어른도 아이도 바늘질이 아닌 풀꽃나무로 우거진 숲에서 샘물하고 푸른바람을 누리면서 맨발로 뛰놀 적에 튼튼몸으로 피어난다고 느낍니다.


  〈비온후〉에 들르면 ‘비온후’에서 낸 책을 장만하자고 생각했으나 ‘비온후’ 책은 못 찾고 다른 책만 골랐습니다. ‘비온후’가 낸 책이 아니어도 빗방울 숨결이 묻어난 꾸러미일 테지요. 이곳에 건사한 책에는 빗살무늬가 흐르겠지요.


  모든 고장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실컷 걷고 달리면서 고장숨빛을 가만히 품을 수 있기를 바라요. 야무지며 즐거운 아이로 북돋우는 밑거름이란, 놀이랑 숲이랑 마을이라고 느낍니다. 배움터를 마치면 주는 종이(졸업장)에는 삶이 없습니다.


  저는 일본스러운 한자말 ‘인문·인문책’을 안 씁니다. 모든 아이가 알아듣도록 ‘살림·살림책’이란 말을 씁니다.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이 드무니, 이웃고장 아이들이 곧잘 묻습니다. “‘살림’이 뭐야?”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즐겁게 어우러지면서 살아가도록 하루를 돌보거나 살피는 길이 살림이야. 어른은 살림을 하고, 어린이는 소꿉을 하지. 아저씨는 어른이지만 아직 살림보다는 소꿉이야.”


  미리 잡은 길손집을 찾아 광안바다로 갑니다. 그런데 오늘(16일) 아닌 이튿날(17일)로 미리 잡았네요. 아차쟁이로군요. 아차 싶은 일을 또 저질렀어요. 만 원 더 치르고서 자리를 얻습니다. “아버지, 더 천천히 하셔요.” “그러겠습니다.”


《작은 풀꽃의 이름은》(나가오 레이코 글·그림/강방화 옮김, 웅진주니어, 2019.2.25.)

《도서정가제가 없어지면 우리가 읽고 싶은 책이 사라집니다》(백원근 글, 한국출판인회의, 2020.10.8.)

《1951, 소년만화가열전》(박기준·안지혜 글, 강설송 그림, 해성, 2020.12.10.)

《수수하지만 위대한 흙 이야기》(후지이 가즈미치 글/홍주영 옮김, 끌레마, 2019.8.13.)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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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짬 (2021.10.9.)

― 인천 〈딴뚠꽌뚬〉



  인천에서 나고자라다가 스무 살을 앞두고 인천을 떠났고, 서른 몇 살에 인천으로 돌아와서 큰아이를 낳고는, 어릴 적에 늘 뛰놀던 골목을 새삼스레 걷다가, 전남 두멧시골로 터전을 옮겨 조용히 살아갑니다.


  인천에서 ‘인천’이란 이름은 그리 오래지 않고 좁습니다. 요즘은 부평·부개·강화·검단·소래·옹진·산곡·연수·주안까지 ‘인천’으로 묶지만, 예전에는 중·동구만 인천으로 여기고, 다른 곳은 인천이 아니었습니다. 중·동구에서조차 ‘인천’은 더욱 좁았어요. 다른 곳은 늘 그곳 이름인 부평·부개·강화·검단·소래·옹진·산곡·연수·주안이었습니다.


  전남 고흥에서 살고 보니, 저희가 깃든 도화면 사람들은 “‘고흥’에 간다”고 할 뿐, “‘읍내’에 간다”고 하지 않습니다. 면소재지뿐 아니라 마을로 갈라요. 이른바 ‘리’를 놓고 딴사람입니다. 인천으로 보자면 주안은 ‘주안’일 뿐, ‘인천’이 아닙니다. 서울에서 마포는 ‘마포’일 뿐 서울이 아니요, 부산에서 수영은 ‘수영’일 뿐 부산이 아닙니다.


  이렇게 마을을 살피는 눈은 갈라치기가 아닙니다. 다 다른 마을하고 고을이 다 다른 빛과 숨결로 살아가는 길을 보자면 다 다른 이름에 다 다른 바람을 읽을 노릇이에요. 뭉뚱그려서 ‘인천·서울·부산·고흥’이랄 수 없습니다. 저는 인천 도화1동 수봉산 기스락 골목집에서 태어나고서 주안동하고 신흥동에서 자라다가 연수구로 옮겨 푸른배움터를 두 해 다니고서 인천을 떠났습니다.


  주안은 매우 넓습니다. ‘주안8동’까지 있으니 엄청나지요. 이 가운데 옛 ‘시민회관’ 곁은 또 다르고, 이 둘레에 연 〈딴뚠꽌뚬〉이 무척 궁금했어요. 주안에는 극장도 많았고, 책집도 아직 여럿 있으나 인천사람은 주안을 거의 ‘술집·학원·여관·교회·지하상가 골목’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안골은 수수한 사람들이 조촐히 살림을 짓는 조용하면서 따사로운 마을이에요. 인천에 볼일이 있어 갈 적마다 주안에 내려 〈딴뚠꽌뚬〉 앞에 왔는데, 다섯걸음 만에 드디어 속을 들여다본 이날, 이다음에 갈 곳에 얼른 달려가야 해서 부랴부랴 나와야 했습니다. 뭐, 느긋이 깃들 다음날이 있을 테지요. 신흥동에서 7∼17살 나이를 살았는데, 이동안 집부터 주안까지는 늘 걸어서 오갔습니다. 철길도 마을길도 더없이 사랑스러웠거든요.


  배움터에서 얻어맞거나 골목에서 양아치한테 돈을 빼앗긴 날은 어김없이 주안까지 철길을 걸었습니다. 울면서 걷다가 어느새 조용히 노래를 불러요. 옛날 소금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하늘을 보고 마을을 보기에 책을 곁에 놓고서 읽습니다.


ㅅㄴㄹ


《위안부 문제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까?》(히라이 미쓰코/윤수정 옮김, 생각비행, 2020.3.25.)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살림 기획·허주영 엮음, 호랑이출판사, 2018.5.7.)

《새러데이 인천 1호》(진나래 엮음, Chur Chur press, 2018.12.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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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받는 (2021.7.29.)

― 부산 〈고서점〉



  책은 늘 장만하고 읽고 나눕니다. 하루라도 책을 안 읽는 날은 없습니다. 어린배움터에 들어간 여덟 살부터 날마다 무엇이든 읽었고, 둘레에서 흐르는 이야기에 귀기울였습니다. 서른 살을 앞두고 첫 책을 선보이고서 꾸준히 책을 내놓습니다. 이웃이 짓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스스로 살림하는 나날을 이웃한테 들려줍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아이하고 생각을 주고받습니다. 아이 생각을 듣고 어버이 생각을 들려줍니다. 아이가 들려주는 말을 곱씹고, 아이가 되씹을 말을 속삭입니다.


  시골은 책집이 없으니 멀리 마실을 가야 책을 구경합니다. 그런데 큰고장에 살 적에 종이책만 읽지는 않았습니다. 큰고장에서는 골목이라는 책하고 자전거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책집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시골에서는 숲이라는 책에 풀꽃나무라는 책을 읽습니다. 마당으로 찾아오는 멧새라는 책을 읽고, 풀잎을 갉는 풀벌레라는 책을 나란히 읽습니다. 바람·해·별도 언제나 읽는 시골스러운 책입니다. 빛줄기는 춤짓으로 밝게 흐르는 책이라면, 그림자나 밤은 고요와 어둠으로 그윽한 책입니다.


  부산 〈고서점〉 지기님이 일제강점기에 나온 《한글》이 들어왔다면서 알려줍니다. 2001∼2003년에 〈보리 국어사전〉 엮음빛(편집장)으로 일할 적에 이 묵은 달책(잡지)을 일터 곁책(소장자료)으로 삼은 적 있으나, 제 곁에는 못 놓았습니다. 드디어 제 곁에도 《한글》을 놓는구나 싶어 기꺼이 부산으로 달려갑니다.


  책이야 책집지기님한테 부쳐 달라 할 수 있습니다만, 하루를 들여 찾아가면 더없이 즐겁습니다. 손빛책을 건사한 책집지기님 얼굴을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한자리에서 숨결을 느끼면서 오늘을 새록새록 돌아볼 만해요. “뭘, 책 몇 자락 산다고 요즘 같은 때에 돌아다니나?” 하고 핀잔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요즘 같은 때이기에 더더욱 조용히 책숲마실을 다니면서 서로 마음을 달래는 눈빛을 나눌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꾸합니다.


  우리는 아무도 따질(검사·검열)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억누르거나 얽맬(구속·통제) 까닭이 없습니다. 누구라도 홀가분하게 춤추고 노래하면서 얼싸안는 마을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부산에서 살며 우리말을 살핀 들꽃님이 건사하던 오랜 책을 쓰다듬습니다. 다른 여러 책도 어루만집니다. 어쩌면 ‘책 장만’은 핑계요, ‘책집수다’를 함께 누리고 싶어서 사뿐사뿐 책숲마실을 간다고 할 만합니다.


  사랑하며 살림하는 삶이기에 글을 씁니다. 글 한 줄에 생각을 고이 얹으니 책을 짓습니다. 마음으로 사귀려는 눈빛이기에 책집지기랑 책손으로 마주합니다.


《한글 3권 8호》(이윤재 엮음, 조선어학회, 1935.10.1.)

《한글 4권 8호》(이윤재 엮음, 조선어학회, 1936.9.1.)

《한글 11권 1호》(조선어학회 엮음, 한글사, 1946.4.1.)

《한글 12권 3호》(김병제·조선어학회 엮음, 한글사, 1946.7.12.)

《한글 109호》(최현배 엮음, 한글학회, 1955.6.1.)

《한글 123호》(정재도 엮음, 한글학회, 1958.10.9.)

《한글 125호》(정재도 엮음, 한글학회, 1959.10.9.)

《第一回全國兒童 현상작문선집》(아동문예춘추사 엮음·조선어학회 정인승 교정, 금용도서문구주식회사, 1946.7.16.)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계몽교본 1962》(유광렬 쓰고 엮음, 성화사, 1961.12.19.)

《平和定着을 위한 또 하나의 決斷, 유엔軍司令部에 관한 6·27外務部長官聲明의 背景》(홍보조사연구소 엮음, 문화공보부, 1975.6.27.)

《세계의 책축제》(이상, 가갸날, 2019.11.25.)

《月刊 야구 20호》(월간야구사 편집실, (주)문화잡지, 1983.6.1.)

《만화동산 2 오리발 훈장님》(이두호, 한국학력개발원, 1983.4.1.)

《韓國戰爭戰鬪史 4 人川上陸作戰》(최형곤 글,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1983.12.15.)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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