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에 다녀온 이야기를

2022년 6월에 이르러

비로소 갈무리합니다

<책대로>는 그동안 바깥하고 안쪽이

꽤 많이 바뀌었습니다


.. .. ..



숲노래 책숲마실


우리대로 살림대로 (2021.10.17.)

― 제주 〈책대로〉



  제주에서 바깥일을 마칩니다. 애월에서 제주시로 건너왔고, ‘예정대로 공인중개사’ 앞에 닿습니다. 일부러 ‘부동산’을 찾아갔어요. 이곳 지기님은 ‘부동산 일’을 볼 책상 하나를 남기고 몽땅 책집으로 바꾸었거든요.


  어느 곳에나 손님이 여럿 깃들게 마련이고, 손님은 으레 기다립니다. 이동안 느긋이 앉아 책을 읽도록 판을 꾸린 〈책대로〉요, 땅이나 집을 사고팔거나 빌리는 일이 아니어도 사뿐히 찾아와서 책을 누리는 쉼터로 꾸민 얼거리입니다.


  그런데 10월 17일에는 일찍 닫으셔야 한다는군요. 〈책대로〉 지기님은 “멀리서 오셨는데 제가 아이를 보러 가느라 일찍 닫아야 하는데 어떡하지요?” 하고 고개를 숙입니다. “저는 이튿날에도 제주에 있어요. 이튿날에는 언제 여시려나요?” “이튿날에는 아침 11시에 열어요.” “그러면 전 오늘 일찍 쉬고 이튿날 아침에 올게요.” “그래도 될까요?” “네, 책집 손님보다 지기님 아이가 먼저예요. 저도 아이 둘을 돌보는 어버이라서 늘 아이를 먼저 바라봐요. 얼른 아이한테 가셔요. 저는 길손집으로 가면 됩니다.”


  길손집을 미리 잡지는 않은 터라 빈자리를 찾으려고 한참 애먹었으나, 이럭저럭 하루를 잘 쉰 이튿날 아침, 다시 자전거를 끌고 〈책대로〉에 옵니다. 〈책대로〉에는 아침부터 집을 사고팔려는 손님이 여럿 드나듭니다. 이분들은 책은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이렇게 책이 한가득 둘러싸는데 땅·집을 사고팔려는 사람들 눈에는 책이 아예 안 보이는구나?’ 싶어 조금 놀랍니다.


  그러나 그리 놀랄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나라 곳곳에 마을책집이 수두룩하지만, 마을에 책집이 있는 줄 스무 해나 마흔 해 넘도록 못 알아채는 분도 많아요. 저는 저대로 읽으면 됩니다. 그대는 그대대로 읽으면 돼요. 우리는 우리대로 읽으면서, 책을 책대로 사랑하는 마음씨앗을 찬찬히 심으면 즐겁습니다.


  엊저녁에 책을 샀다면 아침에 우체국에서 집으로 부쳤을 텐데, 우체국에서 짐꾸러미를 한바탕 부치고 온 길이라, 오늘은 셋만 고릅니다. 이제부터 자전거로 여러 곳을 빙그르르 돌 텐데 등짐이 너무 무겁거든요. ‘공인중개사’ 일터를 마을책집으로 꾸릴 수 있다면, 시골은 면사무소나 우체국 한켠을 마을책집으로 꾸릴 만합니다. 시골 벼슬터(공공기관)는 꽤 넓거든요. ‘스스로 빨래집(무인빨래방)’ 한켠을 책집으로 꾸밀 수도 있겠지요. 경찰서나 검찰 한켠을 책집으로 꾸미면 어떨까요? 배움터에도 ‘배움책집(학교책방)’을 꾸미면 알차리라 생각합니다. 말도 안 된다고 여기기보다, 우리 생각(사고방식)하고 틀(법)을 바꾸면 모두 이룰 만합니다.


《나를 숲으로 초대한 동물들》(V.N.쉬니르니코흐 글/한행자 옮김, 다른세상, 2004.9.1.)

《연필로 쓰기》(김훈 글, 문학동네, 2019.3.27.)

《미안함에 대하여》(홍세화 글, 한겨레출판, 2020.8.28.)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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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오래글 (2022.1.22.)

― 서울 〈글벗서점〉



  무슨 책을 늘 그렇게 사대느냐고 묻는 이웃님이 많아서 “읽을 책을 삽니다.” 하고 짧게 끊습니다. “그러니까 뭐 하러 그렇게 사서 읽느냐고요?” “아이들한테 물려줄 책을 사서 읽습니다.” “기준은요?” “아름다운 책이건 안쓰러운 책이건, 우리가 삶을 갈무리해서 얹은 이야기꾸러미인 책을 손으로 만지면서, 앞으로 새롭게 지을 이야기하고 책에 밑거름이 될 숨결을 헤아립니다.”


  모든 책은 손길을 타면서 빛납니다. 아직 손길을 타지 않으면 빛나지 않습니다. 모든 책은 우리가 손으로 쓰다듬기에 이야기가 흐릅니다. 아직 손으로 쓰다듬지 않으면 아무런 이야기가 싹트지 않아요.


  오늘날에는 ‘식물학자·생물학자·과학자’란 이름이 붙어야 풀이름·꽃이름·나무이름을 지을 수 있다고 여기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모든 풀꽃나무 이름은 먼먼 옛날부터 ‘숲을 품고서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 즐겁게 살림을 가꾸던 수수한 사람들이 가만가만 지었’습니다. 나무이름을 알고 싶으면 나무를 안아 보셔요. 풀이름을 알고 싶으면 풀잎을 훑어 혀에 얹어 보셔요. 꽃이름을 알고 싶으면 코맞춤을 하면서 마음으로 물어보셔요.


  모든 책마다 새롭게 품는 숨결입니다. 장삿속에 사로잡힌 책이건, 사랑을 오롯이 사랑으로 풀어내는 책이건, 다 새롭게 흐르는 숨결입니다. 아무리 봐도 딱한 글치레가 흘러넘치는 책을 눈앞에서 볼 적에 생각하지요. “이런 글치레 장사꾼 바보짓이 먹힐 만큼 우리는 이제껏 바보로 살아왔구나.” 여태 숨죽이며 빛을 못 보고 묻힌 책을 코앞에서 비로소 만나며 생각합니다. “내가 오늘 만났으니 나부터 사랑으로 품고서 느낄게. 오늘부터 함께 웃고 놀자.”


  마음으로 그리지 않으면 빈자리가 없습니다. 마음으로 그리기에 ‘없는 빈자리’ 한켠에 틈새자리가 나타납니다. 겨울은 봄으로 나아가는 길목이고, 봄은 여름으로 뻗는 너울목이고, 여름은 가을로 자라는 여울목이요, 가을은 겨울로 잠드는 나들목입니다. 오늘 선 이곳은 어떤 목인지요?


  하늘빛으로 살아가려고 우리말꽃을 짓고, 글을 여미고, 집안일을 합니다. 물빛으로 살림하려고 풀내음을 맡고, 이따금 낫을 쥐어 풀을 벱니다. 숲빛으로 감겨들려고 이야기를 펴고, 이웃을 만납니다. 오늘길을 차근차근 나아갑니다. 오늘 곁에 둘 오래책을 생각하면서 오달진 마음으로 서려 합니다.


  서울 〈글벗서점〉에 찾아들 적마다 쌈지를 탈탈 텁니다. ‘책숲마실 = 쌈지털이’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먼 앞날 아이들이 누릴 책밭·책뜰을 가꾸는 일이에요.


《아리랑 고개의 여인》(고준석 글/유경진 옮김, 한울, 1987.9.5.)

《佛敎 第三十七號》(권상로 엮음, 불교사, 1927.7.1.)

《あひるのアレックス》(三浦貞子·森喜朗 글, 藤本四郞 그림, フレ-ベル館, 2005.2.)

《The Grizzly Bear Family Book》(Michio Hoshino 글·사진/Karen Colligan Tayor 옮김, Picture Book Studio, 1993)

《廣辭林 新訂版》(金澤壓三郞 엮음, 三省堂, 1921.9.25.첫/1938.9.18.490벌)

《小學館世界の名作 11 フランダ-スの犬》(ウィ-ダ 글·森山京 엮음·いせひでこ 그림, 小學館, 1998.9.20.)

《舍廊房 이야기》(김영홍과 일곱 사람, 의학동인사, 1979.5.1.)

《杏林散稿》(강진성과 아홉 사람, 의학동인사, 1978.11.1.)

《나라건지는 교육》(최현배, 정음사, 1975.12.10.)

《영혼의 푸른 상처》(사강 글/이환 옮김, 서문당, 1972.7.25.첫.1977.7.10.5벌)

《新綠禮讚》(이양하 글, 범우사, 1976.6.25.)

《서울의 異邦人》(유진오 글, 범우사, 1977.4.5.)

《Pyramid Series 14 Grimm's Fairy Tales》(양병택 풀이, 계원출판사, ?)

《Pyramid Series 16 Biographical Stories》(양병택 풀이, 계원출판사, ?)

《이명박, 핵심 인맥 핵심 브레인 1》(중앙일보 정치부, 중앙books, 2008.1.3.)

《샘터 181호》(김재순 엮음, 샘터, 1985.3.1.)

《新東亞 359호》(권오기 엮음, 동아일보사, 1989.8.1.)

《아비 그리울 때 보라》(김탁환, 난다, 2015.9.15.)

《철학의 기초이론》(편집부 엮음, 백산서당, 1984.3.20.)

《韓國現代詩文學大系 8 李陸史 尹東株》(김종철 엮음, 지식산업사, 1980.11.25.첫/1984.11.25.4벌)

《신앙과 달란트 사상》(김재명, 태화출판사, 1970.10.30.)

《金南祚 詩集》(김남조, 서문당, 1972.10.25.첫/1978.3.25.중판)

《理性과 革命》(H.마르쿠제/김종호 옮김, 문명사, 1970.3.15.)

《‘아이큐 점프’ 1991년 20호 별책부록 1 드래곤볼 제2부 27》(서울문화사, 1991)

《‘아이큐 점프’ 1992년 1호 별책부록 1 드래곤볼 제2부 35》(서울문화사, 1992)

《‘아이큐 점프’ 1992년 47호 별책부록 1 드래곤볼 제2부 80》(서울문화사, 1992)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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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길 (2022.3.20.)

― 서울 〈서촌 그 책방〉



  사랑은 ‘사랑’이고, 책임은 ‘책임’이라는 대목을 제대로 갈라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숱하기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인 허울로, 사랑이 아닌 굴레를 씌우”게 마련입니다. 사랑과 책임은 다릅니다. 둘이 같다면 “똑같은 말”을 쓰겠지요. ‘애완동물’하고 ‘반려동물’은 틀림없이 다르기에 이름을 갈라요.


  예전 우리 살림(문화)은, “서울(도시)에서 살더라도 마당 있는 집”일 적에만 ‘곁짐승(반려동물)’을 돌보았습니다. 이제는 이 살림이 아주 사라져서 “마당은커녕 풀포기 없고 흙조차 못 밟는 ‘서울잿빛(도시 아파트 문명)’ 한복판”에서조차 곁짐승을 자꾸 기릅니다. “서울(도시)에서 곁짐승을 돌보는 길(에티켓)”을 다루는 길잡이책이 나오기도 합니다.


  어른인 두 사람은 “사랑하려고 아이를 낳을” 뿐입니다. “책임지려고 아이를 낳지 않”아요. 사랑하는 아이를 낳으면 ‘맡아서(책임)’ 돌보려고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책임지려고 아이를 낳는다”는 생각은 먼저 있지도 않고, 앞서서도 안 될 노릇이에요. ‘숨결(생명)’을 낳는데 ‘사랑’이 없이 ‘책임’만 생각한다면 ‘짐승우리(동물원)’에 가두듯 아이를 배움터(학교·학원)에 가두면서 “책임·의무를 다한다”고 말할 테니까요.


  사랑하고 책임은 다릅니다. 사랑이기에 아이를 낳고 풀꽃나무를 품고 곁짐승을 돌볼 줄 압니다. 이 다른 결을 짚으며 서울 서촌 골목을 빙그르르 헤매다가 문득 〈서촌 그 책방〉에 닿습니다. 그동안 이 앞으로 두어 걸음 찾아온 적이 있으나 그때에는 닫혔는데, 오늘은 땀을 살짝 빼면서 서울골목을 헤매다가 깃드는군요.


  해가 잘 드는 골목 안쪽 책집은 호젓합니다. 나들이하는 젊은 물결은 이곳까지 스치지는 않는 듯합니다. 해랑 바람을 머금으면서 책빛을 보듬으려는 손길이 살그마니 이리로 닿는구나 싶어요.


  길잡이가 있기에 길을 찾지 않습니다. 스스로 길눈을 틔워서 부딪히고 넘어지고 헤매고 막히는 사이에 시나브로 길을 익힙니다. 해주기에 넉넉한 살림이 아닌, 스스로 짓기에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삶입니다. 나는 나처럼, 너는 너처럼, 우리는 우리처럼, 이 하루를 바라보고 스스로 꽃이 되는 다 다른 사랑입니다.


  우리는 초라하지도 않지만 우람하지도 않습니다. 크기·부피·세기는 허울입니다. 살림·삶·사랑이 알맹이입니다. 조그맣게 처음 여는 발걸음은 늘 새롭고, 이 작은 첫걸음은 스스로 나를 찾는 삶길입니다. 책집지기님 밑줄이 그득한 책을 살살 넘기면서 손빛을 느낍니다. 손빛을 받기에 모든 책이 새삼스레 다시 태어납니다.


《아내의 시간》(이안수 글·사진, 남해의봄날, 2021.11.30.)

‘서촌 그 책방’ 읽기모임에서 나눈 책이름을 새긴 천바구니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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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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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빛깔 무지개로 (2022.6.2.)

― 서울국제도서전 2022 스무빛깔



  어른은 가르치는 사람일 수 없습니다. 아이야말로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어릴 적부터 이 대목을 알았어요. 그냥 저절로 알아요. 왜냐하면 어릴 적에 저는 ‘아이’였잖아요. 모든 아이는 “우리가 스스로 아이라서 어른을 일깨우고 가르치는 줄 압니”다. 아이는 아이다운 눈빛으로 보면서 말하지요. “저 어른은 있잖아, 말로는 착한 척하지만 뒤에서 구린 짓을 하더라.” “저 어른은 우리더러는 하지 말라고, 하면 나쁘다고 하면서, 그 나쁜짓을 혼자 다 하더라.” “저 어른은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몽둥이를 휘두르면 나쁘다고 말을 하는데, 그러면서 우리(아이)를 왜 때려? 참 못난 사람이야.” “저 어른은 늘 혼자만 떠들어. 우리 얘기는 하나도 안 들어. 우리 얘기를 안 듣는 사람은 어른 같지 않아.” “우리(아이)더러 지켜야 한다고 외치지 말고, 어른부터 스스로 잘 지키면, 우리는 어른을 보면서 잘 따라갈 텐데, 어른들은 스스로 안 지키는 일을 언제나 말로만 우리한테 시켜.”


  책이 태어나자면 여러 사람 손길이 듭니다. 이야기를 쓰거나 짓는 사람이 있고, 이야기를 살피고 받아들여서 여미는 사람이 있고, 여민 이야기를 읽기 좋도록 다듬는 사람이 있고, 읽기 좋도록 다듬은 이야기를 종이에 앉히는 사람이 있고, 이야기를 앉힌 종이를 추스르는 사람이 있고, 이야기꾸러미를 실어나르는 사람에 헛간에 건사하는 사람이 있고, 책집이란 이름으로 이야기꾸러미인 책을 맞아들여서 이웃한테 다리를 놓는 사람이 있고, 이야기꾸러미인 책을 알리는 사람이 있고, 이야기꾸러미인 책을 오래오래 건사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숲이 있어요. 해바람비를 곱고 푸르게 머금은 우람한 나무가 몸을 바쳐야 종이를 얻어요. 저도 책을 써내는 사람입니다만, 저 혼자 훌륭하기에 책을 쓰지 않습니다. 숱한 이웃님 손길을 사랑으로 받을 뿐 아니라, 이 푸른별에서 해바람비를 노래하는 숲한테서 사랑을 받기에 책을 쓰는 사람으로 섭니다.


  서울도서전은 ‘잘난이(유명작가)’ 서너 사람 이야기꽃(강연)을 넓게 펼치는 듯합니다. 그런데 ‘잘난이’를 모신 탓에 너무 커요. 잘난이를 보려고 사람들이 몰리니 책잔치판이 어수선합니다. 모름지기 책잔치라면 다 다른 책이 나란히 빛나도록 꾸릴 노릇이에요. 백이나 이백 사람까지 앉아서 잘난이 말을 듣기보다는, ‘꼭 스무 사람까지만 듣는 작은 책수다’를 ‘두 시간마다 스무 자리씩 작게 꾸린다’면, 하루에 ‘지음이(작가) 백 사람’이 ‘백 가지 책수다꽃’을 피울 만합니다. 닷새라면 자그마치 오백 지음이가 오백 가지 책노래를 부를 만해요. 지은이·엮은이·펴낸이·꾸민이·책집지기·책숲지기·책손·책마을 일꾼·말글지기·옮김빛·글바치(기자)가 고루 만나는 “스무빛깔 책무지개”로 거듭나길 빕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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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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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달 호호 (2022.6.2.)

― 서울국제도서전 2022 나는별



  혼자 잘난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잘났어요. 혼자만 대단한 사람은 없어요. 모든 사람은 다 다르게 대단합니다. 우리가 마을을 이루거나 고을이며 나라라는 한결 너른 울타리로 살림을 할 적에는 저마다 다르게 잘나고 대단하고 아름답고 훌륭한 빛을 나눈다는 뜻이라고 여길 노릇이라고 느껴요.


  혼자 잘난 사람은 안 배웁니다. 혼자 대단한 사람은 이웃이 들려주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혼자 떠듭니다. 서로 다르게 빛나는 줄 아는 사람은 오순도순 살림을 나누면서 하루하루 새롭게 이야기하지요. 서로 다르게 아름답다고 깨닫는 사람은 아이어른 사이에는 사랑 하나가 있을 뿐, 나이나 몸집이나 돈이나 이름값 따위로 가를 수 없는 줄 알아요.


  2022년 서울도서전을 둘러보면서 “왜 크고작은 칸으로 갈라야 할까?” 아리송했어요. 다 다르게 아름다운 책이라면 큰펴냄터(대형출판사)도 작은펴냄터(소형출판사)도 똑같은 크기인 칸(부스)을 얻어서 꼭 그만 한 자리에 맞게 책을 고르고 뽑고 추려서 놓을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책잔치(도서전)는 ‘잘난책 자랑질’이 아니라 ‘다 다른 책이 어우러지는 놀이마당’일 테니까요.


  올해에는 유난히 재미없는 자리라고 느껴 일찌감치 떠나려고 하다가 ‘호호아’가 생각났습니다. 옮김빛(번역가) 황진희 님이 새로 낸 책을 막바로 만날 수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러나 ‘호호아’ 이름이 적힌 칸은 없습니다. 왜 없나 하고 한참 빙글빙글 돌다가 ‘나는별’ 칸에 살그마니 책을 놓기만 한 줄 알아차립니다.


  작고 알차며 사랑스러운 ‘나는별’ 그림책은 나라 곳곳 여러 마을책집을 다니면서 늘 봅니다. 곰곰이 생각하자니, 저는 ‘나는별’ 그림책을 으레 여러 고장 다 다른 마을책집에서 하나씩 천천히 장만하면서 읽었어요.


  묵직한 책짐을 짊어지고서 고흥으로 돌아가려던 숲노래 씨는 조금 더 깃들기로 합니다. 이러다가 ‘나는별’ 칸에는 ‘달달북스’가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며 있는 줄 깨닫습니다. 작은펴냄터 둘이 손잡고서 작은펴냄터 한 곳을 품은 셈이로군요. 작기에 서로 바라보고, 작으니 서로 돌보고, 작으면서 서로 반짝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 다른 마음과 사랑으로 책을 읽는다고 생각합니다. 겉보기로는 크거나 작을 테지만, 속빛을 헤아린다면 크기란 없이 다 다르게 꽃으로 피어나는 사랑을 줄거리로 여미어서 담을 뿐인 책입니다.


  너울치는 바다는 고요하게 돌아가고. 이 고요한 바다는 다시 너울쳐요. 바다를 낀 인천에서 나고자란 뒤, 바다를 품은 고흥에서 시골내기로 살아가기에, 노상 바다노래를 부릅니다. 사람바다인 책바다 사이에서 ‘나는꽃’이 되어 봅니다.


《우리는 서로의 그림책입니다》(황진희, 호호아, 2022.6.30.)

《별일 없는 마을에 그냥 웜뱃》(이달 글·박지영 그림, 달달BOOKS, 2021.3.20.)

《우리는 단짝》(미겔 탕코/김세실 옮김, 나는별, 2022.6.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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