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주고받는 (2021.7.29.)

― 부산 〈고서점〉



  책은 늘 장만하고 읽고 나눕니다. 하루라도 책을 안 읽는 날은 없습니다. 어린배움터에 들어간 여덟 살부터 날마다 무엇이든 읽었고, 둘레에서 흐르는 이야기에 귀기울였습니다. 서른 살을 앞두고 첫 책을 선보이고서 꾸준히 책을 내놓습니다. 이웃이 짓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스스로 살림하는 나날을 이웃한테 들려줍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아이하고 생각을 주고받습니다. 아이 생각을 듣고 어버이 생각을 들려줍니다. 아이가 들려주는 말을 곱씹고, 아이가 되씹을 말을 속삭입니다.


  시골은 책집이 없으니 멀리 마실을 가야 책을 구경합니다. 그런데 큰고장에 살 적에 종이책만 읽지는 않았습니다. 큰고장에서는 골목이라는 책하고 자전거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책집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시골에서는 숲이라는 책에 풀꽃나무라는 책을 읽습니다. 마당으로 찾아오는 멧새라는 책을 읽고, 풀잎을 갉는 풀벌레라는 책을 나란히 읽습니다. 바람·해·별도 언제나 읽는 시골스러운 책입니다. 빛줄기는 춤짓으로 밝게 흐르는 책이라면, 그림자나 밤은 고요와 어둠으로 그윽한 책입니다.


  부산 〈고서점〉 지기님이 일제강점기에 나온 《한글》이 들어왔다면서 알려줍니다. 2001∼2003년에 〈보리 국어사전〉 엮음빛(편집장)으로 일할 적에 이 묵은 달책(잡지)을 일터 곁책(소장자료)으로 삼은 적 있으나, 제 곁에는 못 놓았습니다. 드디어 제 곁에도 《한글》을 놓는구나 싶어 기꺼이 부산으로 달려갑니다.


  책이야 책집지기님한테 부쳐 달라 할 수 있습니다만, 하루를 들여 찾아가면 더없이 즐겁습니다. 손빛책을 건사한 책집지기님 얼굴을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한자리에서 숨결을 느끼면서 오늘을 새록새록 돌아볼 만해요. “뭘, 책 몇 자락 산다고 요즘 같은 때에 돌아다니나?” 하고 핀잔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요즘 같은 때이기에 더더욱 조용히 책숲마실을 다니면서 서로 마음을 달래는 눈빛을 나눌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꾸합니다.


  우리는 아무도 따질(검사·검열)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억누르거나 얽맬(구속·통제) 까닭이 없습니다. 누구라도 홀가분하게 춤추고 노래하면서 얼싸안는 마을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부산에서 살며 우리말을 살핀 들꽃님이 건사하던 오랜 책을 쓰다듬습니다. 다른 여러 책도 어루만집니다. 어쩌면 ‘책 장만’은 핑계요, ‘책집수다’를 함께 누리고 싶어서 사뿐사뿐 책숲마실을 간다고 할 만합니다.


  사랑하며 살림하는 삶이기에 글을 씁니다. 글 한 줄에 생각을 고이 얹으니 책을 짓습니다. 마음으로 사귀려는 눈빛이기에 책집지기랑 책손으로 마주합니다.


《한글 3권 8호》(이윤재 엮음, 조선어학회, 1935.10.1.)

《한글 4권 8호》(이윤재 엮음, 조선어학회, 1936.9.1.)

《한글 11권 1호》(조선어학회 엮음, 한글사, 1946.4.1.)

《한글 12권 3호》(김병제·조선어학회 엮음, 한글사, 1946.7.12.)

《한글 109호》(최현배 엮음, 한글학회, 1955.6.1.)

《한글 123호》(정재도 엮음, 한글학회, 1958.10.9.)

《한글 125호》(정재도 엮음, 한글학회, 1959.10.9.)

《第一回全國兒童 현상작문선집》(아동문예춘추사 엮음·조선어학회 정인승 교정, 금용도서문구주식회사, 1946.7.16.)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계몽교본 1962》(유광렬 쓰고 엮음, 성화사, 1961.12.19.)

《平和定着을 위한 또 하나의 決斷, 유엔軍司令部에 관한 6·27外務部長官聲明의 背景》(홍보조사연구소 엮음, 문화공보부, 1975.6.27.)

《세계의 책축제》(이상, 가갸날, 2019.11.25.)

《月刊 야구 20호》(월간야구사 편집실, (주)문화잡지, 1983.6.1.)

《만화동산 2 오리발 훈장님》(이두호, 한국학력개발원, 1983.4.1.)

《韓國戰爭戰鬪史 4 人川上陸作戰》(최형곤 글,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198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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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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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꽃책 (2022.2.16.)

― 부산 〈동주책방〉



  2004년에 《곤충·책》이 나온 적 있습니다. 1647년에 태어나 1717년에 눈감은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님이 풀벌레하고 풀꽃나무를 사랑한 숨결을 물씬 느낄 만한 숲책(생태환경책)입니다. 이녁 삶자취는 그림책 《곤충화가 마리아 메리안》이 부드럽고 상냥하게 들려줍니다.


  부산 망미나루 곁에 있는 〈동주책방〉 한켠에 이분 책이 있습니다. 흔한 풀꽃하고 풀벌레를 눈여겨보며 아낀 눈부신 손길이 있기에 오늘날 숱한 사람들이 풀꽃그림이며 풀벌레그림을 노래할 만하다고 느낍니다.


  우람그림책 《Maria Sibylla Merian》을 보면서 이다음에 이 우람그림책을 장만하러 부산에 곧 다시 찾아가자고 생각합니다. 목돈을 모으려고요. 어제오늘은 고흥에도 부산에도 찬바람이 휭휭 붑니다. 이른봄에 꽃이 샘솟도록 부는 꽃샘바람 같습니다. 둘레(사회)에서는 “꽃을 시샘하는 바람”이라고 말합니다만, 2011년부터 두멧시골에 깃들어 풀꽃나무를 날마다 들여다보노라니, ‘꽃샘바람 = 꽃이 샘솟도록 깨우는 바람’이요, ‘잎샘바람 = 잎이 샘솟도록 간질이는 바람’이지 싶어요.


  찬바람 때문에 꽃망울·잎망울이 웅크린다기보다 “드디어 때가 왔구나!” 하고 알려줍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봄맞이꽃은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고 밤에는 아직 추운 끝겨울부터 싹을 틔우고 잎을 내놓고 꽃을 피우거든요.


  돌림앓이 탓에 나라가 멈추고 하늘나루는 거의 닫힙니다. 시외버스는 토막토막 잘려서 이웃고장으로 책마실을 다니기가 무척 버겁습니다. 이 나라(정부)는 모든 사람이 부릉이(자가용)를 몰라고 내모는 듯해요. ‘친환경’이라고 내세우면서 ‘전기차 보조금을 5천만 원씩 준다’고 하는데, 참말로 푸른길(친환경)을 꾀한다면, 부릉이를 안 몰고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버스·전철을 타는 사람마다 5천만 원씩 ‘푸른살림돈’을 주어야 마땅하지 싶습니다.


  차근차근 가꾸며 천천히 이루어 가는 즐거운 쉼터인 마을책집으로 찾아오는 길에 잎샘바람을 실컷 마시면서, 다섯 살 아이를 데리고 마실나온 부산 이웃님하고 골목을 걸으면서 생각합니다. 우리는 꾸밈없이 살아가기에 즐겁습니다. 안 꾸미면서 이야기를 펴기에 반갑습니다. 겨울이기에 찬바람을 먹고, 봄이기에 봄꽃내음을 맡습니다. 마을마다 뿌리내리는 작은책집은 찬바람이 매서울수록 오히려 더욱 반짝이면서 푸르게 피어나리라 봅니다. 빛나는 마음을 그리며 사랑으로 걸어가고 싶어 아이랑 뚜벅뚜벅 걸어서 꽃책을 장만하는 하루입니다. 꽃을 담아 꽃책이고, 꽃다운 숨결로 이야기를 여미어 꽃책이고, 푸른책을 나누는 책집이라서 꽃책입니다.


《쥘 베른의 갠지스 강》(쥘 베른 글/이가야 옮김, 그린비, 2010.7.10.)

《꽃서점 1일차입니다》(권희진 글, 행성B, 2021.4.28.)

《연구가 체질》(이른비 글, 손수펴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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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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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는 책은 (2021.10.29.)

― 서울 〈글벗서점〉



  모든 책은 스스로 찾아나서는 사람한테 문득 눈에 뜨이면서 손에 쥘 만합니다. 스스로 찾아나서지 않는 사람한테 덥석 안길 책은 없습니다. 마음을 열고, 눈길을 기울이고, 생각을 쓰고, 품을 바치고, 돈하고 말미를 들이기에 비로소 책 하나를 건사해서 새롭게 읽어 오늘을 노래한다고 느낍니다.


  빨리 죽을 생각은 없는 터라 책을 빨리 읽지 않습니다. 둘레에서 저더러 “글을 빨리 쓴다”고 말합니다만, 저는 글을 빨리 안 씁니다. 제 머리를 거치고 마음을 지나 눈빛에 닿고 손끝으로 옮겨서 반짝반짝 글씨로 태어날 때를 기다리다가 넌지시 샘물처럼 길어올릴 뿐입니다.


  오랜 벗님이 제가 그자리에서 덥석덥석 손으로 쉬잖고 한 쪽을 다 채우는 글쓰기를 보시더니 “숲노래 씨는 옮겨쓰기(필사)를 하는 사람보다 빨라요. 이야기를 새로 쓰는 사람이 어떻게 더 빠르지요?” 하고 묻습니다. 곰곰이 생각했어요. 저도 ‘옮겨쓰기’입니다. 이 푸른별에 늘 흘러다니는 빛줄기를 글로 담고 싶구나 하고 생각하면 어느새 글감이 머리에 마음에 눈에 손에 쏟아져요. 저 혼자만 알아보기를 바라지 않기에 되도록 반듯반듯 옮겨적으며 아이들도 읽기를 바라고, 이 글을 글판으로 두들겨서 여러 고장 이웃님도 넉넉히 읽도록 풀어놓습니다.


  틀림없이 ‘글쓴이 이름 : 숲노래’일 테지만, 저는 제가 쓴 글을 혼자 썼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풀꽃나무가 곁에서 속삭이고, 멧새가 옆에서 노래합니다. 곁님하고 아이들이 보금자리에서 신나게 놀면서 웃음빛으로 알려주고, 숱한 이웃님이 이녁 삶으로 일깨울 뿐 아니라, 온나라 모든 책집에서 알뜰히 건사해서 징검다리로 이어주는 책을 만나니 느긋이 배우면서 ‘옮겨쓴다’고 여깁니다.


  서울 이웃님 한 분한테 서울에 있는 아름책집 몇 곳을 알려주려고 〈글벗서점〉을 함께 찾아갔습니다. 따지자면 모든 마을책집이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꼭 어느 책집을 자주 찾아가야 하지 않습니다. 가벼운 차림새로 가까이 드나들 마을책집을 자주 오가면 즐거워요. 전남 고흥 두멧시골에서 사는 저로서는 어디나 다 먼길이라 며칠치 길삯하고 책값을 모아서 한꺼번에 돌아볼 뿐입니다.


  요즈막에 새로 태어나는 적잖은 마을책집 책차림은 꽤 엇비슷합니다. 처음에는 이렇더라도 하루하루 흐르는 사이 스스로 다 다른 눈썰미를 펼쳐서 여러 해 뒤에는 그야말로 다 다른 책차림으로 빛난다고 느낍니다. 처음부터 책을 다 알거나 잘 알아서 책집을 여는 분은 없고, 읽님(독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르’기에 찾아서 읽고, 찾도록 다리를 놓으며, 찾도록 글을 새록새록 쓰기도 합니다.


ㅅㄴㄹ


《러시아의 역사》(C.H.스이로프/기연수 옮김, 동아일보사, 1988.9.15.)

《인부수첩》(김해화, 실천문학사, 1986.9.30.)

《우리들의 사랑가》(김해화, 창작과비평사, 1991.6.5.)

《咸錫憲 全集 5 西風의 노래》(함석헌, 한길사, 1983.9.30.)

《왜 뱀은 구르는 수레바퀴 밑에 자기머리를 집어넣어 말벌과 함께 죽어버렸는가?》(강경화·김유신·신승철·강창민·마광수·안경원, 유림, 1978.12.25.첫/1988.10.31.넉벌)

《追憶祭》(강은교, 민음사, 1975.6.15.)

《미국노동운동비사(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리처드 O.보이어·허버트 M.모레이스/박순식 옮김, 인간, 1981.5.7.)

《조선 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곽차섭, 푸른역사, 2004.1.10.)

《600년 서울 땅이름 이야기》(김기빈, 살림터, 1993.12.30.)

《내가 만드는 요리》(김성수 엮음, 소년생활사, 1979.1.15.)

《新註 墨場必携》(洛東書院, 1930.2.15.첫/1941.10.15.넉벌)

《Better English everyday Junior 2》(홍봉진, 일심사, 1956.3.20.첫/1959.4.10.넉벌)

《체육 6》(교육부 엮음,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7.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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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2022.1.21.)

― 서울 〈소요서가〉



  서울에서 ‘을지로’는 고구려사람 ‘을지문덕’을 딴 땅이름입니다. 옛사람 ‘을지’는 마땅히 한자 이름이 아닌 우리말 이름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땅이름을 보면 ‘乙支’란 한자를 그냥 붙이고, 옛이름 ‘을지’를 오늘날 어떤 이름으로 새롭게 읽어서 새겨야 하는가를 풀어내지 못하거나 않습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손수 살림을 짓고 사랑을 아이한테 물려주던 수수한 시골사람이 스스로 지었습니다. 글이나 책이 아닌 삶으로 물려준 말입니다. 이런 우리말은 조선 무렵에 몹시 억눌렸고, 일본이 총칼로 쳐들어와 짓밟으면서 숨이 막혔는데, 1945년 뒤에는 남·북녘으로 갈린 틈바구니에 미국이 끼어들었고, 1950년부터 1987년까지 새로운 총칼나라(군사독재)였기에 그야말로 ‘삶말·살림말·사랑말’은 어깨는커녕 기지개조차 켠 적이 없습니다.


  여느 자리에서는 그냥 ‘인문책’이라 말합니다만, 이 ‘人文學’도 일본사람이 지은 한자말입니다. 굳이 일본을 미워할 까닭은 없되, 총칼찌꺼기(일본제국주의 잔재)는 이제라도 좀 씻거나 털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마음을 밝혀야지 싶습니다. 아무튼 저는 ‘삶책’이라고 말합니다.


  서울 을지로 삶책집 〈소요서가〉에 찾아갑니다. 작은아이는 삶책집으로 가는 길에 얼음이나 눈을 만날 적마다 바작바작 소리가 나도록 밟으면서 놉니다. “아버지도 밟아 보지요?” 하고 웃는 아이한테 “응, 마음껏 밟으셔요.” 하고 얘기합니다. 너희 아버지도 어릴 적에 얼음하고 눈을 엄청나게 밟으며 놀았단다. 그러고 보니 저도 어릴 적에 어머니한테 “어머니도 얼음 밟아 봐요! 재밌어요!” 했고, 우리 어머니는 저한테 “많이 밟아! 어머닌 어릴 적에 많이 밟아 봤어!” 했습니다.


  종로나 청계천이 아닌 을지로에 깃든 삶책집은 새삼스럽습니다. 곰곰이 보면 어느 곳이든 책집이 깃들기에 어울립니다. 숲은 숲대로, 시골은 시골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섬은 섬대로, 서울은 서울대로, 또 이 복닥거리는 가겟거리 한복판은 가겟거리 한복판대로 사람들 누구나 숨돌리면서 마음을 틔울 책집이 있을 만해요.


  스스로 삶을 짓는 사람은 스스로 사랑을 짓습니다. 스스로 사랑을 짓기에 스스로 아이를 낳아 스스로 지은 삶에 따라 여민 말을 스스로 즐거이 물려줍니다. 예부터 어버이는 아이한테 “말을 가르치지 않았”어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말을 물려주었”습니다. 아이는 어버이 삶말을 물려받아 스스로 새롭게 짓는 살림을 보태어 가다듬었고, 이 물줄기가 오늘로 잇습니다. 어제 태어난 책을 오늘 만나고, 오늘 읽는 책을 바탕으로 모레에 아이들한테 물려줄 이야기를 새롭게 엮습니다.


ㅅㄴㄹ


《역사의 천사》(브루노 아르파이아 글/정병선 옮김, 오월의봄, 2017.10.23.)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김엘리 글, 동녘, 2021.6.30.)

《철학과 물리학의 만남》(W.하이젠베르그 글/최종덕 옮김, 한겨레, 1985.3.10.첫/1988.11.5.8벌)

《있음에서 됨으로》(일리야 프리고전 글/이철수 옮김, 민음사, 1989.3.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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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나무 (2022.1.20.)

― 익산 〈두번째집〉



  작은아이하고 책집마실을 하려고 새벽에 시골집을 나서면서 물어보았습니다. “광주로 버스를 타고 가서 군산으로 넘어갈까, 순천으로 버스를 타고 가서 기차로 익산으로 건너갈까?” 어느 쪽이든 한나절 남짓 길에서 보냅니다. “음, 기차로?” “그래, 그럼 기차를 타고 익산으로 먼저 가자.”


  숲노래 씨는 시외버스하고 기차에서 글을 씁니다. 산들보라 씨는 노래를 듣다가 창밖을 보다가 잡니다. 마을 앞 첫 시골버스는 07시 05분인데 새벽 03시부터 깨서 “아버지, 언제 나가요?” 하고 내내 물었거든요. 오늘은 여느 날보다 늦게 새벽 3시부터 일어나 말꽃엮기(사전집필)를 했습니다만, 열 시를 넘어가니 살짝 졸립니다. 익산에서 기차를 내리니 택시를 타는 곳에 줄이 무척 깁니다. 시내버스를 탈까 하고 걷다가 길을 잘못 든 줄 뒤늦게 알아차립니다. 그렇지만 마침 택시가 우리 앞으로 하나 옵니다. “어쩜, 우리가 더 헤매지 않도록 이렇게 찾아와 주네!”


  먼저 찾아간 〈그림책방 씨앗〉은 낮에 연다고 해서 책집 앞에서 해바라기를 하고서 〈두번째집〉 쪽으로 걷습니다. 둘이서 천천히 걷는 길에 산들보라 씨가 속삭입니다. “길에 있는 나무 힘들겠다.” “왜?” “자동차가 이렇게 많고 밤에도 불이 환하니까.” “그래. 서울이나 큰고장에서는 길나무가 힘들겠지. 시골에서도 똑같잖아. 그런데 우리가 길나무 곁을 지나가면서 따스히 바라보면, 나무가 ‘힘든 하루’를 다 씻어내.” “응. 알아.” “산들보라 씨가 나무를 따스히 바라보시면서 쓰다듬어 주셔요.”


  익산 골목을 걷고 큰길 거님길을 걷는데 곳곳에 부릉이가 함부로 섭니다. 아니, 부릉이는 골목을 두 줄로 차지하고, 거님길로 휙 올라앉습니다. 부릉이도 ‘사람이 타고 몰’ 테데, 왜 이 쇳덩이를 골목하고 거님길에 세울까요? 나라(정부·지자체)는 왜 ‘거님길에 함부로 세운 부릉이(무단주차 차령)’를 그냥 둘까요?


  두 아이를 낳아 돌보며 늘 업거나 안으며 살았습니다. 그때에도 모든 길에 부릉이가 넘쳐서 이리 에돌고 저리 비켜야 했습니다. 아기를 낳는 젊은 가시버시가 부릉이를 장만하려는 마음을 물씬 알 만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아기를 낳으려는 젊은이가 줄어들 만합니다.


  등에 땀이 돋을 즈음 〈두번째집〉 앞에 이릅니다. 그런데 1·2월에는 나무날(목요일) 쉰다고 합니다. 저런. 가는 날이 저잣날이네요. 우리는 다시 걷기로 합니다. 큰길을 걷고 골목길을 걸어 버스나루에 닿습니다. 군산으로 가는 버스를 탑니다. 산들보라 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꿈나라로 갑니다. 포근히 자렴. 이따 또 걷자.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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