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57] 우수



  1980년대 첫무렵 즈음으로 떠오릅니다. 그무렵 어머니와 저잣거리로 나들이를 다닐 적에 저잣거리 길바닥에서 장사를 하는 할매는 으레 ‘우수’를 말씀했습니다. 더 얹어 주시면서 “이것 우수요.” 하셨어요. 우리 어머니도 “우수 없나요?” 하고 여쭈곤 했습니다. 요즈음은 어디에서도 ‘우수’라는 말을 듣지 못합니다. 아직 이 말을 가슴에 품고 지내는 분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좀처럼 들을 수 없습니다. 다만, 곧잘 ‘덤’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웬만한 곳에서는 영어 ‘인센티브(incentive)’를 듣고, 한자말 ‘성과급(成果給)’을 듣습니다. 나라에서는 ‘인센티브 제도’라든지 ‘성과 제도’를 말합니다. 공공기관이든 회사이든 한국말 ‘우수’나 ‘덤’을 말하는 이는 없습니다. ‘선물’을 말하는 이도 없습니다. 대학교에서는 영어로 강의를 하고, 영어를 모르고서는 회사에 들어갈 수 없으니, 나날이 영어 잘 하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한국에서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슬기롭게 잘 하는 사람은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4347.8.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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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56] 꽃숲



  꽃이 많이 핀 곳을 ‘꽃밭’이라 하고, 풀이 많이 돋은 곳을 ‘풀밭’이라 하며, 나무가 많이 자란 곳을 ‘나무밭’이라 합니다. 나무가 우거진 곳은 ‘나무숲’이라 하고, 풀이 우거진 곳은 ‘풀숲’이라 합니다. 그러면, 꽃이 우거진 곳은 무엇이라고 할 만할까요. 한국말사전을 찬찬히 살피다가 ‘꽃밭·풀밭·나무밭’이라는 낱말은 고루 있지만, ‘풀숲·나무숲’만 있고 ‘꽃숲’이라는 낱말은 없는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왜 ‘꽃숲’은 한국말사전에 없을까요? 우리 집은 책이 많아 ‘책숲’입니다. 크고작은 모든 책방도 ‘책숲’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품고 살아 ‘이야기숲’입니다. 글을 써서 빚는 아름다운 터는 ‘글숲’이 되고, ‘노래숲’이나 ‘사랑숲’을 이루는 이웃이 있습니다. 숲이 되도록 아름다이 일구는 삶이라면,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빛이 되어 환하게 웃음꽃밭이나 웃음꽃숲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4347.8.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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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55] 점점



  일곱 살 큰아이가 어느 만화책을 보면서 노래를 합니다. 초등학교 높은학년 어린이가 보는 만화책을 일곱 살 아이가 읽는데, 이 만화책에 “점점 …….” 하는 말이 자주 나오는 듯합니다. 아마 일곱 살 아이도 열두 살 어린이도, 또 이 만화를 그린 어른도, 이 만화책을 펴낸 출판사 편집부 어른도, 이 만화책을 사 줄 수많은 여느 어버이도 ‘점점(漸漸)’이 어떤 말인지 잘 모르리라 생각합니다. 잘 모르니 섣불리 이런 낱말을 쓸 테지요. 그런데 나도 스물서너 살 언저리까지 ‘점점’이라는 일본 한자말을 멋모르고 썼어요. ‘점점’뿐 아니라 ‘점차(漸次)’도 일본 한자말이고 ‘차차(次次)’도 일본 한자말이에요. 한국말사전에서 이런 낱말을 처음 찾아보았을 때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내 둘레 어느 어른도 이런 대목을 안 짚고 안 가르쳤네 싶어 다시 놀랐어요. 한국말은 ‘자꾸’입니다. 또, ‘차츰’이 있고 ‘조금씩’이 있으며, ‘시나브로’가 있어요. 흐름에 따라 ‘거듭’이나 ‘천천히·찬찬히’를 쓸 수 있어요. 일곱 살 아이는 아직 ‘점점’이나 ‘자꾸’가 어떻게 다른지 모를 만합니다. 어느 쪽 낱말을 쓰든 아이로서는 아이 마음을 담으리라 느낍니다. 다만, 예부터 늘 하는 말,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가 있어요. 우리 마음을 담아서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 넋과 삶이 모두 달라집니다. 4347.8.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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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54] 여름 성경 학교



  온 나라에 예배당이 아주 많습니다. 큰 예배당이 있고 작은 예배당이 있습니다. 예배당마다 여름에는 ‘여름 수련회’를 마련하고, 여름 수련회를 할 적에 어린이나 푸름이한테는 ‘여름 성경 학교’를 연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전에는 이런 이름을 들었어요. 그런데 엊그제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면소재지로 나들이를 갔다가, 면소재지 문방구와 빵집과 몇 군데 가게에 붙은 알림종이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요즈음은 ‘여름 성경 학교’를 안 하더군요. 이러면서 ‘썸머 바이블 엑스포 미션탐험대’를 한다고 해요. 멍하니 알림종이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렇지요. 요즈음 이 나라는 온통 영어로 이야기를 하니까요. 어른도 어린이도, 지식인과 전문가와 공무원도, 시골사람도 도시사람도, 너도 나도 그냥 영어로 이야기를 하지요. 4347.8.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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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53] 흙빛



  흙은 흙빛입니다. 흙은 흙이기에 흙빛입니다. 그런데, 흙빛을 두고 ‘황토색(黃土色)’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고, ‘황갈색(黃褐色)’이나 ‘갈색(褐色)’이나 ‘황색(黃色)’을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도 어릴 적에는 ‘황색’이나 ‘갈색’이란 낱말을 자주 썼어요. 크레파스나 물감에는 이런 낱말만 적혔거든요. 그림을 그리면서 나뭇줄기에 빛깔을 입힐 때에는 으레 ‘갈색’을 쓰라 했고, 흙에 빛깔을 입힐 적에도 ‘갈색’이나 ‘황색’을 쓰라 했어요.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 흙을 흙빛으로 마주한 일이 드물었기에, 어른들이 말하는 대로 따랐습니다. 나는 이제 마흔 살이 넘는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낳고 시골에서 지냅니다. 시골집에서 지내며 우리 집 흙을 바라보고, 숲이나 멧골에 있는 흙을 바라보며, 농약과 비료를 듬뿍 치는 이웃 논밭에 있는 흙을 바라봅니다. 흙은 자리마다 빛깔이 다릅니다. 농약과 비료를 듬뿍 치는 논밭에 있는 흙은 허여멀건 기운이 감도는 옅누른 빛깔입니다. 풀이 우거진 밭이나 숲에 있는 흙은 까무잡잡한 빛깔입니다. 거칠거나 메마른 흙은 누런 빛깔이지만, 풀이 잘 돋고 나무가 우거지는 데에 있는 흙은 차츰 거무스름한 빛깔로 달라집니다. 시골에서 살며 바라보니, 나뭇줄기라든지 가랑잎 빛깔은 꼭 흙빛을 닮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밟거나 만지며 살아가는 사람은 낯이나 손발이나 살갗이 흙빛을 닮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그림을 가르치는 어른들은 한겨레 살빛을 ‘살구알 빛깔’로 그리라고 하는데, 오랜 나날 우리 겨레뿐 아니라 이웃 겨레는 모두 흙빛 살갗이요 얼굴로 시골빛을 가꾸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7.7.3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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