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62] 배움잔치



  배우는 일은 즐거움이었습니다. 예부터 무엇 하나 새로 배울 때마다 삶을 즐겁게 가꾸었습니다. 아이들이 뒤집기를 배우고, 기어다니기를 배우고, 일어서기를 배우고, 말을 배우고, 걷기를 배우고, 손에 쥐기를 배우는 모든 일이란 즐거움이었습니다. 호미질을 배우고 낫질을 배우며 새끼꼬기를 배우는 일도 즐거움이었습니다. 나무타기를 배우고 헤엄치기를 배우며 절구질을 배울 적에도 즐거운 노래였어요. 그런데 이제 ‘배우는 즐거움’이 차츰 사라집니다. 대학입시를 바라보는 ‘학습 훈련’만 넘칩니다. 시험문제를 더 잘 풀도록 길들이기만 합니다. 이리하여, 요즈음에는 ‘학교’라는 건물이나 시설은 있되, 배우는 터인 ‘배움터’는 없다고 할 만합니다. 배움터가 없다 보니 배우는 일이 즐거움이 아니요, 배우면서 누리는 잔치도 없구나 싶어요. 가르치거나 배우는 사람들은 날마다 잔치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삶을 느끼기에 잔치입니다. 날마다 새로 태어나면서 바라볼 수 있기에 잔치입니다. 배움잔치인 삶입니다. 배움잔치인 삶을 누려야 사랑을 일굽니다. 배움잔치를 누리며 사랑을 일구어야 꿈을 키웁니다. 4347.8.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이랑 놀자 61] 고운소금



  나는 왜 언제부터 ‘가는소금’이라고 말했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퍽 어릴 적이었지 싶은데, 불쑥 ‘굵은소금·가는소금’을 말하다가 동무가 퉁을 놓았지 싶어요. “얘, ‘가는소금’이 어디 있니? ‘고운소금’이지!” 이러구러 몇 해 지나 어느 날 또 ‘가는소금’이라고 말했는데, 어머니가 ‘고운소금’으로 바로잡아 줍니다. 얼마 뒤 또 ‘가는소금’을 말하고, 이웃 아주머니가 ‘고운소금’으로 바로잡아 줍니다. 한참 여러 해가 흐르고 흐른 요즈음, 우리 집 곁님이 ‘고운소금’ 이야기를 꺼냅니다. 곰곰이 돌이키니, 나는 어릴 적부터 참 끈질기게 ‘가는소금’이라 말했구나 싶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곱다’라는 낱말을 ‘아름답다’라는 뜻으로만 써야 한다고 잘못 알기 때문일까요. 어쩌다 입에 한 번 붙은 말씨가 안 떨어지기 때문일까요. 소금도 밀가루도 잘게 빻을 때에는 ‘곱다’라고 가리킵니다. ‘가늘다’라 가리키지 않습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굵은소금·가는소금’이 올림말로 나오고, ‘고운소금’은 올림말로 없습니다. 그러나, 내 어릴 적 동무와 이웃을 비롯해 우리 곁님과 곁님 어머니 모두 ‘고운소금’만 말합니다.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해 보지만 실마리를 알 길은 없습니다. 4347.8.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이랑 놀자 60] 미리끊기



  ‘미리끊기’라는 말은 내가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안 짓지도 않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미리끊다’라는 말을 아주 익숙하게 들었습니다. 먼저, 버스표를 미리 끊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다음으로 기차표를 미리 끊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고, 다음으로 극장표를 미리 끊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큰 놀이공원이라든지, 어디에 들어가는 표도 미리 끊어야 한다는 말을 익히 들었습니다. 다만, 둘레 어른들이 “미리 끊어야겠어” 하고 말하면서도 좀처럼 ‘미리끊기’ 같은 낱말은 지어서 쓰지 않았습니다. 나는 딱히 한국말을 아주 사랑하는 티를 내려는 뜻이 아니고, 그냥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다들 표를 미리 끊는다고 말하니까, 내 입에서 저절로’ “미리끊기 했니?”나 “미리끊기 하셨어요?”와 같은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둘레에서 다 잘 알아들었어요. “그래, 미리끊기를 해 두었지” 하는 대꾸를 들었습니다. 때와 곳에 따라서는 ‘미리끊기’뿐 아니라 ‘먼저끊기’를 할 수 있고, ‘나중끊기’를 할 수 있습니다. ‘먼저끊기’란 남보다 먼저 표를 끊을 수 있다는 뜻이요, ‘나중끊기’는 결재는 나중에 하되 자리만 먼저 잡는다는 뜻입니다. ‘미리끊기’는 어떤 날을 앞두고 일찌감치 표를 끊는다는 뜻입니다. 굳이 ‘선불예약’이나 ‘후불예약’처럼 어렵게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4347.8.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이랑 놀자 59] 한가위



  나는 어릴 적부터 ‘한가위’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내 입으로도 ‘한가위’라는 말을 읊었습니다. 그러나, 적잖은 둘레 어른들은 ‘추석(秋夕)’이나 ‘중추절(仲秋節)’ 같은 한자말을 즐겨썼습니다. 올 한가위를 앞두고 기차표를 끊어야겠구나 하고 느껴 ‘한가위 기차표’로 인터넷에서 살피는데, 이렇게 살펴서는 아무것도 못 찾습니다. 왜 이런가 하고 한참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아하 하고 깨닫습니다. ‘추석 기차표’로 말을 고쳐서 살피니, 비로소 기차표를 어떻게 미리 끊을 수 있는지 나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엮은 《표준국어대사전》을 살펴봅니다. 한국말 ‘가위·한가위·가윗날’을 살피니, “= 추석”으로 풀이합니다. 한국말을 다루는 사전에서 뚱딴지처럼 한자말 ‘추석’만 풀이말을 달고, ‘가위·한가위·가윗날’은 풀이말을 안 달아요. 학자와 정부부터 한국말을 알뜰히 여기지 않습니다. 이러니, 공무원도 한국말을 살뜰히 돌보지 않겠지요. 이러니, 작가와 기자도 한국말을 따스히 보듬지 않겠지요. 하기는, 어느 때부터인가 한가위를 앞두고도 ‘한가위’라 하기보다는 ‘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이라 말하는 사람도 제법 늘었습니다. 서양 종교를 믿건 안 믿건 대수롭지 않습니다만, 서양에서 ‘가을걷이를 기쁘게 누리며 고마워 하는 날’이란, 한겨레한테는 ‘한가위’입니다. 4347.8.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이랑 놀자 58] 두 그릇 (2인분)



  읍내마실을 하면서 밥집에 들릅니다. 아이 둘을 데리고 밥을 시킬 적에는 ‘세 그릇’을 시킵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 아이마다 ‘한 그릇’씩 따로 시키지 않습니다. 작은아이가 제법 자라면 ‘네 그릇’을 시킬 테지만, 그때까지는 앞으로 여러 해 남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밥집에 따라 어떤 찌개나 밥은 ‘두 그릇’ 넘게 시켜야 합니다. 식구가 여럿이니 ‘두 그릇’ 넘게 시키는 밥을 먹기도 하고, 때로는 ‘세 그릇’을 다 다른 밥으로 시키기도 합니다. 집에서는 집밥을 즐겁게 먹습니다. 바깥으로 나들이를 나오면 바깥밥을 고맙게 먹습니다. 저마다 제 밥그릇을 하나씩 밥상맡에 놓으면서 수저를 뜹니다. 4347.8.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