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82] 멈춤 손잡이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가는 길입니다. 누렇게 고운 가을 들녘을 달리는데 내리막을 만납니다. 빠르기를 줄이려고 자전거 손잡이에 붙은 ‘브레이크’를 잡습니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이때 뒤에서 묻습니다. “아버지 뭘 잡았어요?” “응? 멈추는 손잡이 잡았어.” “멈추는 손잡이?” “응, 멈춤 손잡이.” “아, 그렇구나.” 0.0001초쯤 ‘브레이크’를 잡는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두고, 일곱 살 어린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을 고쳐서 이야기해 줍니다. 자전거를 만드는 회사에서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거의 다 ‘브레이크 레버’라는 영어만 씁니다. ‘브레이크 손잡이’라 말하는 사람을 보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한 걸음 나아가 ‘멈춤 손잡이’나 ‘멈추개’라 말하는 사람은 아예 찾아볼 수조차 없습니다. ‘멈추개’라는 낱말은 한국말사전에도 오르지만, 이 낱말을 제대로 살피거나 익혀서 알맞게 쓰는 사람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이런 말을 안 가르치기 때문일까요.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에서 거의 누구도 이 한국말을 안 쓰기 때문일까요.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안 쓰면, 한국말은 자랄 수 없고 클 수 없습니다. 4347.10.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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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81] 감알빛·감잎빛



  한자를 쓰는 이들은 ‘적색·청색·녹색·황색·백색·흑색’ 같은 낱말을 읊곤 합니다. 한자를 안 쓰는 이들은 ‘빨강·파랑·풀빛·노랑·하양·까망’ 같은 낱말을 읊습니다. 예부터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던 사람들은 한자를 몰랐고, 한자를 알 턱이 없었으며, 한자를 쓸 까닭이 없었습니다. 임금과 신하와 지식인 같은 이들만 중국 한자를 받아들여서 썼어요. 글을 쓰던 사람만 중국글을 빌어서 이녁 마음을 나타냈어요. 그래서, ‘적색·청색·녹색·황색·백색·흑색’ 같은 낱말은 한국말이 아닌 중국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외국말이거든요.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은 ‘빨강·파랑·풀빛·노랑·하양·까망’ 같은 낱말이에요. 가을에 감알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감빛은 ‘감빛’으로 나타냅니다. 살구는 ‘살구빛’이고, 앵두는 ‘앵두빛’입니다. 빨강 하나를 놓고도 수많은 열매마다 다 다른 빛깔과 빛결과 빛무늬를 살펴서 곱게 이름을 붙여서 즐겁게 생각을 나누었어요. 같은 빨강이어도 ‘찔레알빛’과 ‘석류꽃빛’과 ‘석류알빛’은 모두 다릅니다. ‘감잎빛’을 말할 적에도 새봄에 돋는 옅푸른 감잎빛이랑 한여름에 짙푸른 감잎빛이랑 가을에 누렇게 물드는 감잎빛은 저마다 달라요. 그래서, 우리는 ‘봄감잎빛·여름감잎빛·가을감잎빛’ 같은 낱말을 새롭게 지어서 기쁘게 나눌 만합니다. 감알도 풋감과 잘 익은 감알마다 빛깔이 달라, ‘풋감알빛·말랑감알빛·단감알빛’처럼 갈라서 쓸 수 있어요. 둘레를 살그마니 살피면 온갖 빛깔이 살아나고, 갖은 숨결이 피어나면서, 아름다운 말이 태어납니다. 4347.10.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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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80] 삶짓기



  삶을 짓기에 ‘삶짓기’입니다. 나는 내 삶을 손수 짓습니다. 내가 살아갈 길을 스스로 짓습니다. 가슴에 품을 꿈을 손수 짓고, 이웃과 나눌 사랑을 스스로 짓습니다. 밥을 짓고 옷을 지으며 집을 짓습니다.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가 모여 삶짓기가 됩니다. 삶을 짓는 사람은 이야기를 짓습니다. 이야기를 짓는 사람은 노래를 짓습니다. 노래를 짓는 사람은 웃음을 짓고, 때로는 눈물을 짓습니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새롭게 마음을 짓습니다. 생각을 지어 하루를 일굽니다. 생각짓기는 하루짓기가 됩니다. 하루짓기는 달짓기와 철짓기가 될 테고, 달과 철을 차근차근 지으면 어느새 해짓기가 될 테며, 달과 철과 해를 지으니 시나브로 삶짓기로 나아갑니다. 삶을 짓는 사람은 말을 함께 짓습니다. 내가 쓸 말을 내가 손수 짓습니다. 내 이웃도 손수 말을 짓습니다. 나와 이웃은 서로 말을 섞으면서 저마다 손수 지은 말을 주고받습니다. 서로서로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아름다이 말을 짓는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다시금 새삼스럽게 이름을 하나 짓습니다. 서로 동무라 부르면서 넋을 짓습니다. 씩씩하게 한길 걸어가면서 몸을 쉴 보금자리를 짓습니다. 4347.10.2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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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79] 숲책



  도시에서 나고 자라 어른이 되는 동안 이런 일을 하고 저런 책을 읽으면서 으레 ‘환경(環境)’이라는 말을 듣거나 썼어요. 둘레에서 흔히 쓰니 나도 으레 쓸 뿐이었어요. ‘환경’이 무엇인지 제대로 살피거나 헤아리지 않았어요.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여러 해 살면서 비로소 ‘환경’이 무엇인지 느낍니다. 바로 ‘숲’입니다. 오늘날 도시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지키자’고 말하지만, 정작 환경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거의 몰라요. 어린이도 어른도 ‘쓰레기 줍기’나 ‘쓰레기 나누어 버리기’를 해야 환경을 지키는 줄 잘못 압니다. 참말 ‘환경’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더구나 어린이한테도 어른한테도 환경을 제대로 알려주거나 가르칠 사람이 없습니다. 학교를 다니거나 인문책을 많이 읽어도 환경을 올바로 알기 어려워요. 어쩔 수 없을 텐데, 삶은 늘 온몸으로 부대끼거나 겪거나 누리면서 배우기 때문이에요. 지식으로는 알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스스로 깊이 헤아리거나 스스로 시골에서 살아야 비로소 ‘환경’을 바로보면서 제대로 알아차립니다. ‘환경’이 숲인 줄 알려면 시골에서 살아야 하는데, 농약 치고 비료 뿌리는 시골이 아닌, 풀과 나무가 어우러진 맑은 ‘숲’에서 살아야 합니다. 맑은 물과 바람은 바로 숲에서 비롯하고, 집과 밥과 옷은 모두 숲에서 태어나요. 그래서, 우리 터전을 아름답게 지키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라면, ‘숲책’입니다. ‘환경책’이 아닙니다. 숲을 말하고 숲을 밝히며 숲을 노래하는 책일 때라야 비로소 우리 모두를 지키도록 도와줍니다. 4347.10.2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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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78] 고속도로 쉼터 팥빵



  부산에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는 ㅅ쉼터에서 한 차례 멈춥니다. 시외버스를 모는 일꾼도 고단하고, 시외버스를 타는 손님도 고달프기 때문입니다. 15분 쉬는 동안 버스에서 내려 기지개를 켜고 뒷간에 가서 쉬를 눕니다. 아침부터 아직 아무것도 안 먹습니다. 싱싱 달리며 흔들리는 버스에서 속이 쓰릴 듯하기 때문입니다. 마침 고속도로 쉼터에 들른 김에 무엇 하나 재미난 먹을거리 있으면 살까 싶어 둘러보다가 ‘호두과자’를 큰 꾸러미로 장만합니다. 고흥집에 닿아 밥상에 풀어놓으니, 곁님이 먹으면서 “호두과자에 호두가 없어.” 한 마디 합니다. 어라, 그런가, 하고 한 점 집어서 먹으니 참말 팥소만 있고 호두는 작은 알갱이조차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동글팥빵’이지, 호두과자일 수 없습니다. ‘호두맛 과자’조차 아닙니다. 고속도로 쉼터는 길손만 마주하기에 호두과자 아닌 팥빵을 팔았을까요. 고속도로 쉼터는 우리가 다리쉼을 하면서 느긋하게 들를 즐거운 곳이 되기는 어려울까요. 4347.10.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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