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92] 차돌



  “너는 돌이야!” 할 적에 기쁘게 맞아들일 사람이 있고, 섭섭하게 맞아들일 사람이 있습니다. 기쁘게 맞아들일 사람이라면, 돌처럼 단단하고 오래가면서 씩씩하다는 뜻으로 맞아들일 테고, 섭섭하게 맞아들일 사람이라면,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어리석다는 뜻으로 맞아들일 테지요. 그러면 “너는 차돌이야!” 할 적에는 어떻게 맞아들일 만할까요? 나는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에 ‘차돌’이라는 이름을 아주 기쁘면서 반갑고 멋있는 이름으로 맞아들였습니다. 다만, 나는 이런 이름을 들은 일이 없습니다. 나는 “너도 차돌처럼 튼튼해서 아픈 곳이 없으면 좋겠다.” 같은 말만 들었어요. 내 동무 가운데에는 ‘차돌’이라는 이름을 받은 아이가 있고, 이 아이들은 그야말로 단단하고 야무지면서 똘똘하고 씩씩해요. ‘나도 차돌 같은 아이가 되고 싶어’ 하고 생각하면서 ‘차돌’ 같은 동무하고 놉니다. 함께 놀면서 다시금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참말 야무지구나, 참말 씩씩하구나, 참말 기운차구나, 그래 이러니 그야말로 이 아이는 차돌이지. 어느덧 하루하루 흐르고 흘러 나는 두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로 지냅니다. 나는 아직 차돌 같은 몸이 아니지만, 우리 아이들은 한겨울에도 맨발로 마당에서 뛰놀 만큼 다부지고 씩씩합니다. 쉬지 않고 뛰놀며, 겨울에도 마을 빨래터에서 물놀이를 합니다. 차돌순이요 차돌돌이입니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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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91] 살림지기



  나는 집에서 집일을 도맡습니다. 집일과 집살림을 모두 합니다. 내가 가시내였으면, 아마 내 둘레에서는 나를 두고 ‘주부(主婦)’나 ‘가정주부(家庭主婦)’라 가리켰으리라 느낍니다. 나처럼 집일과 집살림을 맡는 사람은 ‘직업’으로 ‘주부’나 ‘가정주부’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한겨레는 예부터 가시내만 집일이나 집살림을 맡지 않았습니다. 가시내와 사내가 함께 집일과 집살림을 나누어 했습니다. 임금이나 양반이나 사대부는 종과 밥어미와 일꾼과 머슴을 두었으나, 여느 시골마을 수수한 시골집에서는 사내와 가시내가 다 같이 온갖 집일과 집살림을 맡아서 했습니다. 시골지기는 흙지기이면서 살림지기였어요. 시골사람은 흙사람이면서 살림꾼이었습니다. 이러던 우리 삶터인데, 다른 물질문명이 쏟아지듯이 파고들면서 삶과 문화와 말이 많이 바뀌었어요. 사회가 바뀌었으니 말도 바꾸어서 쓸 만하다 여길 수 있는데, 그러면 ‘주부’나 ‘가정주부’라는 이름은 얼마나 알맞거나 아름다울는지 궁금합니다. 이 같은 말을 우리가 굳이 써야 할는지, 아니면 예부터 우리 스스로 살림을 가꾸고 사랑하면서 보살피던 손길을 헤아리면서 ‘살림꾼’이나 ‘살림지기’라는 이름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할는지, 찬찬히 두 가지 말을 견주며 생각합니다. 나는 살림지기요 시골지기요 아이지기요 사랑지기요 숲지기요 책지기요 꿈지기요 이야기지기요 놀이지기로 내 삶을 가꾸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삶지기로 내 마음과 몸을 가꾸고 싶습니다. 4347.1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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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90] 섞어밥



  우리 집 밥순이와 밥돌이한테 먹이려고 날마다 밥을 짓습니다. 밥순이와 밥돌이는 밥을 참 잘 먹습니다. 풀밥을 차리든 풀볶음밥을 내주든 아주 잘 먹습니다. 낮잠까지 거르면서 신나게 뛰놀며 하루 내내 배고프다고 노래하는 아이들한테 한두 시간마다 무어 먹을거리를 차리자니 저녁에는 그만 기운이 빠집니다만, 한 그릇 더 먹이면 틀림없이 곯아떨어지리라 생각하며 ‘섞어밥’을 짓기로 합니다. 밥 끓이는 냄비에 미리 씻어 불린 누런쌀과 보리를 잔잔히 깔고, 고구마 한 뿌리, 감자 한 알, 당근 반 토막, 양송이버섯 아홉, 마늘 여섯 알을 넣은 뒤 끓입니다. 물이 끓기 앞서 소금을 알맞게 넣어 짭조름하게 간을 맞춥니다. 밥돌이는 ‘섞어밥’을 곧 말끔히 비우더니 “나 졸래, 잘래.” 합니다. 이를 닦이고 자리에 눕히니 곧바로 곯아떨어집니다. 밥순이는 혼자 이를 닦은 뒤 한참 자리에 누워 뒤척이다가 조용히 곯아떨어집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나도 비로소 섞어밥을 한 숟가락 먹는데, 내가 끓인 밥이면서도 참 맛납니다. 이레에 한 차례쯤 섞어밥을 지을 만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맛나도 날마다 지으면 물릴 수 있으니까요. 4347.1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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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89] 잘 있어



  나는 어릴 적부터 ‘안녕(安寧)’이라는 인사말을 즐기지 않았습니다. 그때에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에 어른들이 흔히 쓰기에 나도 얼결에 따라서 쓰던 ‘바이바이’도 나중에 중학교에 가서 영어를 배운 뒤에야 말뜻을 알고는 참으로 부끄러웠던 일을 떠올립니다. 왜냐하면, 인사말을 하면서 인사말이 어떤 뜻인지 모르는 채 그저 읊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녕’이라는 한자말이 나쁜 말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인사말을 쓰는 어른들은 말뜻을 알려주지 않았고, 나도 어릴 적에는 말뜻을 스스로 알아보려고 마음을 쏟지 못했어요. 이와 달리 “잘 있어”나 “잘 가”라고 할 적에는 말뜻이나 느낌이 또렷했어요. ‘잘’과 ‘있다’와 ‘가다’라는 말마디를 읽으면, 서로 다른 자리에 서면서 새롭게 짓는 삶을 그릴 수 있어요. 언젠가 어느 동네 할배가 “살펴 가” 하고 들려준 인사말을 듣고는 머리 한쪽이 확 열렸어요. ‘살펴’ 가라니, ‘살피다’란 무엇인가 하고 갑자기 온갖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렇구나. 우리가 가는 길을 우리가 손수 ‘살필’ 수 있어야 하는구나, 생각을 살피고 마음과 삶과 보금자리 모두 살필 수 있어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나마스떼’ 같은 말을 우리가 읊기도 하고, ‘샨티’라는 이름을 우리가 즐겁게 쓰기도 하듯이 ‘안녕’이나 ‘바이바이’도 얼마든지 쓸 만하다고 느껴요. 그리고, 이런 온갖 아름다운 인사말과 함께, 우리가 예부터 이곳에서 즐겁고 사랑스레 나누던 인사말 “잘 있어” “반갑구나” “잘 가” “살펴 가셔요”도 빙그레 웃음지으면서 노래합니다. 4347.1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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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88] 사랑손



  아픈 이를 따스하게 돌보면서 어루만지는 손길을 ‘약손(藥-)’이라고 일컫습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어루만지면서 약손이 되고, 아이도 어버이를 살살 어루만지면서 약손이 됩니다. 서로 약손이고, 서로 따순 손길입니다. 서로 고운 손길이며, 서로 사랑스러운 손길입니다. 그런데, ‘약손’은 우리 겨레가 ‘藥’이라는 한자를 받아들인 뒤에 나타난 아름다운 낱말입니다. ‘藥’이라는 한자를 아직 한겨레가 받아들이지 않던 때에, 또 이런저런 한자를 모르던 시골사람이 살던 곳에서, 우리는 어떤 이름을 썼을까요? 아마 그냥 ‘따순 손’이나 ‘사랑스러운 손’이라 했으리라 느껴요. 아픔을 달래는 손길은 반가우면서 고맙습니다. 아픔을 달래려는 손길은 따스하면서 아늑합니다. 반가우면서 고마운 손길에서 사랑이 피어나고, 따스하면서 아늑한 손길에서 자랑이 자라납니다. 그래요, 우리가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손길은 ‘사랑손’입니다. ‘사랑꽃’을 피우고 싶은 ‘사랑빛’이고, ‘사랑꿈’을 키우고 싶은 ‘사랑넋’입니다. ‘사랑살이’로 가꾸고 싶은 ‘사랑노래’요, ‘사랑살림’을 일구려는 ‘사랑집’입니다. 4347.1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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