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67] 안 뛰었는데요



  걷지 않고 언제나 뛰거나 달리면서 움직이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예전 일을 떠올립니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여덟아홉 살쯤일 텐데, 학교에서 교사들은 우리더러 “복도에서 뛰지 말 것!” 하고 으레 윽박질렀어요. 그러나 우리들은 어른들이 안 보인다 싶으면 언제나 골마루를 싱싱 달리면서 놉니다. 아이들더러 달리거나 뛰지 말라는 말은 도무지 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던 어느 날 어느 교사가 나를 불러세웁니다.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했잖아!” 다른 아이도 함께 골마루에서 달리며 놀았는데 나만 붙잡았으니, 어쩐지 시큰둥합니다. “전 안 뛰었는데요? 달렸는데요?” 말을 마치기 무섭게 찰싹 하고 빰을 때립니다. 틀린 말을 하지 않았으나, 그무렵 어른이라는 사람은 아이들을 아주 쉽게 손찌검으로 윽박질렀습니다. 아이들이 틀린 말을 하지 않았어도 어른들은 도무지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생각해 보셔요. 어른들은 골마루에서 ‘뛰지’ 말라고 했어요. 우리들은 골마루를 ‘달리면’서 놀았습니다. ‘뛰다’는 ‘제자리뛰기’처럼, 발을 굴러 하늘로 솟구치듯이 오르려고 하는 몸짓입니다. ‘높이뛰기’나 ‘멀리뛰기’처럼 도움닫기를 하면서 날아오를 때에 ‘뛰다’예요. 걸음을 빨리하는 일은 ‘달리기’입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이 싱그럽게 웃고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곳에서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거나 달립니다. 아이들이 주눅들거나 따분해 하거나 괴로운 곳에서는 아이들은 조금도 못 뛰고 못 달립니다. 4347.9.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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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66] 글그림



  어릴 적부터 만화책을 즐겁게 보았어요. 나이가 들어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삶을 일구면서, 아이들과 그림책을 즐겁게 봅니다. 요즈음 그림책을 보다가 문득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그림책을 그리는 어른 가운데 글과 그림을 함께 짓는 분이 있어요. 이때에는 으레 ‘글·그림’이라 적습니다. 내가 어릴 적에 보던 만화책에도 으레 ‘글·그림’이라 적었지요. 글이랑 그림이 한데 어우러지는 만화책이요 그림책이니, 한 사람이 두 가지를 함께 하면 언제나 ‘글·그림 아무개’라 했어요. 그런데 예나 이제나 ‘글·그림’을 빚는 이들을 가리켜 ‘작가’라는 한자말을 흔히 써요. ‘글쓴이·그린이’라는 한국말을 즐겁게 쓰는 사람은 꽤 드뭅니다. 책에 적기로는 ‘글·그림’이지만, 입에는 이러한 말마디가 익숙하지 않은 셈일까요. 4347.9.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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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65] 놀이집



  어른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일집’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는 즐겁게 놀 수 있는 ‘놀이집’이 있어야 합니다. 일집이나 놀이집은 꼭 커야 하지 않습니다. 일하거나 놀 적에 즐거울 만한 넓이나 크기라면 됩니다. 놀이집은 어른이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놀이집은 아이가 스스로 나뭇가지나 풀줄기를 엮어 기둥과 벽과 지붕을 세워서 지을 수 있습니다. 멧골에 있는 굴을 놀이집으로 삼을 수 있고, 비나 해를 가릴 수 있는 데라면 단출하게 놀이집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천막이 놀이집이 될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 놀이만 생각하면서 놀이를 즐기고 놀이를 사랑하면서 하루를 마음껏 누릴 수 있으면 멋지고 아름다운 놀이집이 됩니다. 4347.9.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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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64] 찻잔치



  아이들한테 만화영화를 하나 보여줍니다. 다른 나라에서 만든 만화영화이기에 외국말이 흐르고, 한국말은 글씨로 찍힙니다. 나는 내 일을 하면서 띄엄띄엄 만화영화를 들여다보는데, 문득 ‘찻잔치’라는 글씨가 흐릅니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동그란 밥상에 둘러앉아서 차를 함께 마십니다. 아하, 이 모습을 한국말로 옮기려 하면서 ‘찻잔치’라 했군요. 가만히 보니, 한국에서는 차를 함께 마시는 조촐한 잔치는 거의 없지 싶어요. 서양 여러 나라에서는 이를 영어로 ‘티 파티(a tea party)’라 말합니다. 영어사전을 살피면, 이 영어를 ‘다과회’로 옮기기도 하는데, 참말 ‘차잔치(차 잔치)’라 할 만하고, ‘차모임(차 모임)’이라 해도 되겠구나 싶습니다. 밥을 나누어 밥잔치가 되고, 노래를 즐겨 노래잔치가 됩니다.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이야기잔치가 되고, 춤을 신나게 추면서 춤잔치가 됩니다. 4347.9.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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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63] 한집



  서로 한몸처럼 움직일 때에는 마음이 잘 맞습니다. 한마음이기에 한몸이 되어 움직입니다. 마음이 맞아 몸이 하나가 된듯이 움직인다면, 사랑도 함께 가꾸는 따사로운 숨결이 될 테지요. 한사랑이면서 한꿈입니다. 즐겁게 삶을 노래하려는 한마음입니다. 기쁘게 삶을 나누려는 한빛입니다. 반가우며 애틋한 사람들과 한집을 이룬다면 그야말로 날마다 환하게 웃겟지요. 한결같이 흐르는 한넋입니다. 4347.9.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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