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40] 천바구니 (천가방)


  내 가방에는 언제나 천바구니(또는 천가방)가 여럿 있습니다. 자전거로 마실을 다닐 적에도 천바구니를 늘 챙깁니다. 비닐봉지를 쓰고 싶지 않을 뿐더러, 어쩔 수 없이 받는 비닐봉지조차 너무 많이 쌓이니, 천으로 된 바구니나 가방을 씁니다. 지구별을 생각하거나 환경을 헤아린다는 대단한 마음까지는 아닙니다. 천바구니가 훨씬 많이 담고 튼튼하며 들기에 낫습니다. 옷이든 책이든 먹을거리이든 비닐봉지에 담고 싶지 않아요. 보드라운 천으로 짠 바구니나 가방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오고 싶습니다. 우리 식구 둘레에도 천바구니나 천가방을 챙기는 이웃이 많습니다. 우리 이웃은 언제나 ‘천바구니’나 ‘천가방’이라고 말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 이름을 안 쓰고 ‘에코백(ECO-BAG)’이라는 영어를 쓰는 이웃이 늘어납니다. 요새는 ‘에코백’이라는 이름이 아니면 못 알아듣는 이웃마저 있고, 백화점이든 누리책방이든 온통 ‘에코백’이라고만 말합니다. 앞으로는 ‘환경책’이라는 말조차 없애고 ‘에코북’이라 하겠구나 싶습니다. 가만히 보면, 그리 지구별을 사랑하지 않는 곳에서까지 무턱대고 ‘에코’를 앞세웁니다. 그렇잖아요. 이 나라에서 아이들과 함께 나눌 사랑과 꿈이라면 ‘에코’가 아닌 ‘푸른 별’을 아끼려는 넋을 담는 말이어야 맞잖아요. 4347.6.1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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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39] 다음살이


  우리들은 오늘을 삽니다.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 목숨을 고이 건사합니다. 오늘을 살기에 ‘오늘살이’입니다. 오늘 저녁에 새근새근 잠을 자면 이튿날 어떻게 될까요. 우리들은 즐겁게 다시 눈을 뜨면서 새 하루를 맞이할까요, 아니면 반갑지 않다는 투로 또 하루가 이어지는구나 하고 여길까요. 불교에서는 사람살이를 놓고 ‘오늘살이’ 다음에는 ‘내세(來世)·내생(來生)·후생(後生)’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을 살다가 죽은 사람이 다음에 다시 태어나서 누리는 삶을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해요. 한자로 지은 이름인데, 이런 저런 그런 이름을 곱씹으면서 내 다음 삶은 어떠할까 하고 그려 봅니다. 나는 다음에 다시 태어날 적에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나는 다음에 새로 태어날 적에 얼마나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요. 다음에 다시 맞이할 삶이니, 나로서는 ‘다음살이’가 되리라 느낍니다. 내 다음살이는 환한 웃음과 기쁜 노래가 어우러진 이야기잔치가 되면 참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다음살이를 즐겁게 그리면서, 내 오늘살이부터 알뜰살뜰 눈부시게 가꾸자고 다짐합니다. 4347.6.1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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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38] 사름빛


  우리 집 큰아이 이름은 ‘사름벼리’입니다. ‘사름’과 ‘벼리’를 더한 이름이고, 둘로 나눈 이름은 저마다 ‘사름빛’과 ‘벼리빛’으로 쓸 수 있어요. ‘사름’은 “옮겨서 심은 모가 뿌리를 내려 푸르게 맑은 기운”을 가리켜요. 갓 심은 모에서 퍼지는 푸르면서 맑은 빛이라는 뜻으로 ‘사름빛’을 쓸 만해요. “물고기를 잡을 때에 쓰는 그물에서 위쪽 코를 꿰어 놓은 줄”을 가리키는 ‘벼리’이기에, 이 낱말은 그물이 바닷빛을 머금으면서 환한 결이나 무늬를 나타내려는 뜻으로 ‘벼리빛’을 쓸 수 있습니다.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내 마음속에서 어떤 숨결이 곱게 빛난다고 느낍니다. 그래, 그렇지요. 아이들은 ‘아이빛’이요, 어른들은 ‘어른빛’입니다. 사람은 ‘사람빛’이고, 모든 목숨은 ‘목숨빛’이 있어요. 지구별은 ‘지구빛’이 있을 테지요. 햇빛과 달빛처럼 말예요. 내 넋은 어떤 빛일까 헤아려 봅니다. 내 얼은 또 어떤 빛일까 곱씹어 봅니다. 4347.6.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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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37] 바뀐 날씨



  날씨가 바뀝니다. 해마다 꽃이 일찍 피고, 해마다 더위가 일찍 찾아오면서 늦게 끝납니다. 해마다 봄가을이 줄어들면서 여름겨울이 늘어납니다. 해마다 소나기가 사라지는 한편, 막비가 나타나요. 여름과 가을을 흔들던 거센 비바람이 한국에 찾아오는 일이 드물면서, 때 아닌 비바람이 찾아들곤 합니다. 예부터 네 철이 뚜렷하던 날씨였으나, 시나브로 철을 잃거나 잊는 날씨로 바뀝니다. ‘바뀐 날씨’예요. 그런데, 어른들은 바뀐 날씨를 안 느끼거나 못 느낍니다. 어른들은 바뀐 날씨를 바로잡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바뀐 날씨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마당이나 골목이나 들에서 놀지 못하면서 학교나 학원에 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면서 학문과 정치로 ‘기후변화(氣候變化)’를 말하거나 따져요. 몸으로 ‘바뀐 날씨’를 느끼지 못하면서 머리로 ‘바뀐 날씨’를 어떻게 맞아들일까요. ‘제철 날씨’가 사라지는 흐름을 읽지 못하면서 학문과 정치로만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면 우리 삶터를 어떻게 바로세울 수 있을까요. 4347.6.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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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과 큰아버지를 만납니다. 나한테는 언니이고 아이들한테는 큰아버지입니다. 아이들은 큰아버지를 좋아하면서도 정작 큰아버지와 있을 적에 딴 놀이만 실컷 했고, 큰아버지와 헤어질 무렵 뒤늦게 무엇인가 깨닫습니다. 울먹울먹합니다. 얘들아, 그러니까 큰아버지 계실 적에 함께 놀며 웃었어야지. 아직 아이들은 뒷북스럽습니다. 뒷북아이입니다. 어른인 나는 다른 데에서 가끔 뒷북어른이 되곤 해요. 뒷북말을 하고 뒷북짓을 합니다. 뒷북노래를 부르거나 뒷북꿈을 꾸기도 해요. 어느 날 아침에 생각합니다. 자, 이제부터 뒷북질은 그치고 앞북질을 하자. 앞북걸음으로 살자 하고요. 4347.6.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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