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72] 버스터·기차터



  노는 곳은 놀이터입니다. 일하는 곳은 일터입니다. 낚시를 하기에 낚시터이고, 쉬는 곳이기에 쉼터입니다. 책이 있으면 책터이고, 살림을 꾸리는 곳이라서 살림터입니다. 우리가 삶을 가꾸는 곳이라면 삶터가 되고, 나룻배가 오가는 곳은 나루터예요. 그래서, 한국에 처음 기차가 들어왔을 때에 ‘기차터’가 생길 만했습니다. 한국에 처음 버스가 다닐 적에 ‘버스터’가 생길 만했습니다. 그러나, ‘기차터·버스터·택시터·비행기터’ 같은 이름은 생기지 않았고 쓰이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는 기차를 타는 곳을 두고 ‘기차역(驛)’이라 하며, 버스를 타는 곳을 두고 ‘버스터미널(terminal)’이라 합니다. 하나는 한자이고 하나는 영어입니다. 그런데, 영어에서는 ‘station’도 있어요.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아무래도 먼먼 옛날부터 시골사람은 먼 데까지 말을 타고 다닌다든지 다른 탈거리를 얻어서 다닌 일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시골사람이 시골말로 ‘나루터’를 지은 까닭은 시골사람은 냇물이나 바닷물을 건너려고 배를 탔기 때문입니다. 신분과 계급 때문에 시골사람은 말을 타지 못했으니 ‘말터’ 같은 낱말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이리하여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널리 퍼진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는 곳’을 가리키는 이름이 ‘驛’이라는 한자로 처음 붙었을 테고, 해방 뒤에는 ‘terminal’이라는 영어를 받아들였지 싶어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지식인과 권력자는 한자를 썼고, 해방 뒤 지식인과 권력자는 영어를 썼으니까요. 나는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며 시골버스를 탑니다. 그래서 나는 시골말로 ‘버스터’와 ‘기차터’라는 낱말을 살며시 지어서 조용조용 읊어 봅니다. 4347.10.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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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71] 글버릇



  한국말사전에 ‘말버릇’은 있으나 ‘글버릇’은 없습니다. 언제쯤 이 낱말이 한국말사전에 실릴까 까마득한데, 이 낱말이 한국말사전에 안 실렸어도 나는 씩씩하게 붙여서 한 낱말로 삼습니다. 글을 쓰는 버릇이니 ‘글버릇’이에요. 손버릇과 말버릇과 입버릇처럼 우리는 저마다 버릇이 있어요. 공을 차는 운동선수나 발을 많이 쓰는 사람이라면 ‘발버릇’도 있어요. 춤을 추는 사람한테는 ‘춤버릇’이 있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한테는 ‘노래버릇’이 있습니다.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사람마다 ‘밥버릇’이 있어요.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책버릇’이 있겠지요. 즐겁게 몸에 밴 버릇이라면 마음껏 누립니다. 어쩌다가 몸에 밴 버릇인데 달갑지 않다면 차근차근 가다듬어 털어냅니다. 4347.10.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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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70] 푸름이



  ‘어린이’라는 낱말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습니다. 어려운 때에는 아이들이 더 어려운 터라, 일제강점기에 아이들이 제대로 사랑받으면서 자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어린 사람”을 뜻하는 ‘어린이’라는 낱말을 방정환 님이 지었어요. 오늘날 사회에서는 어린이 나이를 지나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나이가 되면, 여러모로 고단하면서 힘겹습니다. 한창 자라면서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무렵에 입시지옥에 시달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회 흐름을 살피던 사람들이 ‘청소년’ 나이에 이른 푸른 숨결을 나타낼 만한 ‘푸름이’라는 낱말을 지었어요. 어느 한 사람이 지은 낱말이라기보다 곳곳에서 한꺼번에 터져나온 낱말입니다. 푸르게 자라고, 푸르게 생각하며, 푸르게 꿈꾸고, 푸르게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넋을 담았어요. 다만, ‘푸름이’라는 낱말은 아직 한국말사전에 안 실립니다. 이러한 낱말을 모르는 청소년이나 어른이나 교사가 많습니다. 꼭 어떤 낱말이나 이름을 잘 지어야 제대로 사랑받거나 자랄 수 있으리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만, 열네 살부터 열아홉 살 사이를 살아가는 고운 넋이 맑으면서 푸르게, 풀과 나무처럼 푸르며 넉넉하게 사랑과 꿈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0.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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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69] 이웃님



  한국말에는 ‘님’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낱말이라고 느낍니다. 가만히 헤아려요. 하느님, 땅님, 바다님, 숲님, 들님, 꽃님, 풀님, 비님, 눈님, 밭님, 흙님, 나비님, 제비님, 곰님, 여우님, 이렇게 ‘님’을 붙이면 이야기가 확 달라집니다. 아우님, 형님, 동무님, 이웃님, 이렇게 서로 ‘님’을 붙일 적에도 이야기와 마음이 사뭇 거듭나요. 우리 겨레가 예부터 쓰던 이런 낱말은 서로 아끼면서 사랑하던 숨결을 담았구나 하고 느낍니다. 다른 어느 것을 안 붙이고, 그저 ‘님’이라고만 부를 수 있어요. 님아, 님이여, 하고 불러 보셔요. 곁님이라 부르고 사랑님이라 불러 보셔요.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즐거운 이웃이기에 이웃님입니다. 이 지구별에서 서로 아끼고 돌보면서 기쁘게 웃을 이웃이기에 이웃님입니다. 이 마을에서 오순도순 이야기꽃 피우면서 노래잔치를 누리고 싶은 이웃이기에 이웃님입니다. 4347.9.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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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68] 풀밭길



  도시에서는 왜 ‘보도블럭 까뒤집기’ 같은 바보짓을 하면서 돈은 엉터리로 쓰고, 사람들은 으레 공무원 바보짓을 손가락질을 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이 다니는 거님길 보도블럭도 자꾸 갈지만, 자동차가 오가는 찻길도 자꾸 갈아요. 이러면서 돈이나 자원을 끝없이 들이고, 사람들은 짜증이 생깁니다. 나는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기에, 시골사람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숲길이나 멧길은, 그러니까 사람이 두 다리로 조용히 오가는 들길이나 흙길은 아무도 손질하지 않습니다. 숲길·멧길·들길·흙길은 돈이나 자원을 하나도 안 들이지만, 망가지지 않아요. 게다가, 이 길을 걷는 사람은 누구나 즐겁습니다. 이런 길은 아이들이 뛰노는 자리, 다시 말하자면 놀이터가 됩니다. 숲길·멧길·들길·흙길이란 ‘풀밭길’입니다. 풀이 없이 휑뎅그렁한 곳은 사람이 두 다리로 지나가도 발자국이 남고 땅이 패이고 비가 오면 쓸립니다. 그러니까, 들길이어도 풀이 없는 들길은 들길답지 않습니다. 참다운 숲길이나 흙길이란, 풀이 자란 길입니다. ‘풀밭길’일 때에 싱그럽고 아름다우면서 즐겁고 사랑스러운 길이 되고 놀이터가 돼요. 거님길이 풀밭이나 풀숲이 되도록 한다면, 돈이나 자원을 함부로 버릴 일이 없고, 공무원을 나무랄 일이 없으며, 걷기 좋도록 풀을 알맞게 다스려야 하니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도시 곳곳이 딱딱한 시멘트 보도블럭이 아닌 풀밭길이나 풀숲길이라면, ‘풀숲거님길’이나 ‘풀밭거님길’이 되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울까요. 4347.9.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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