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62] 말

 


  옛날 사람 지은 말, 풀·나무·바람·흙·빛·사랑·꿈.
  오늘날 사람 지은 말, 쉼터·나들목·글쓰기·밥집·홀로서기·함께살기·책잔치.
  앞날 사람 지을 말은 어떤 삶이 살가이 이야기타래로 될까.


 

  말은 우리가 스스로 곱게 빚으면 고운 빛이 감돌면서 새로 태어난다고 느껴요. 남이 지어 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내가 쓸 말은 내가 짓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스스로 말을 지어서 썼습니다. 남이 가르쳐 준 말이 아니라, 마을과 보금자리에서 스스로 말을 지어서 썼습니다. 이러한 말은 조그마한 마을마다 다르고, 고장마다 다른 ‘사투리’가 되었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아스라한 옛날 사람들은 ‘풀’이나 ‘하늘’이나 ‘바다’라는 낱말을 지었어요. 오늘 우리는 표준말로 이렇게만 말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풀도 하늘도 바다도 마을과 고장마다 다 다른 말(사투리)로 가리키고 이야기했으리라 느껴요. 곧, 스스로 흙을 일구고 풀을 먹으며 바람과 햇살과 빗물과 나무를 아끼며 누릴 적에 사랑스럽게 말빛을 보듬습니다. 물 건너오는 문명이나 새말 아닌, 삶으로 짓고 삶으로 누리며 삶으로 즐기는 꿈이자 사랑이요 말이면서 넋입니다. 4346.10.1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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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61] 씨앗과

 


  봄부터 가을까지 씨앗들 떨어져
  한겨울 추위를 흙과 가랑잎 사이에서
  다 같이 씩씩하게 맞아들이는구나.

 


  시골에서 살며 지켜보니, 모든 풀과 나무는 가을에 꽃을 마지막으로 피우고 씨를 맺어 흙에 떨구고는, 이 씨앗들이 흙 품에서 겨울을 나도록 해서 봄에 새싹이 돋게 하더라고요. 봄에 피어 여름에 지는 유채풀도, 늦겨울 막바지부터 피는 봄까지꽃이랑 코딱지나물꽃이랑 별꽃도, 여름이나 봄에 씨앗을 흙에 떨구고는 겨울 추위를 견디어야 비로소 새로운 봄에 꽃송이 흐드러집니다. 사람들은 봄이 와야 비로소 손으로 씨앗을 심지만, 여느 풀이나 나무는 모두 가을까지 씨앗을 떨구어 겨울나기를 시켜요. 가을이란, 참 아름다운 철이지 싶어요. 겨울이란, 참 멋스러운 철이지 싶어요. 어떤 씨앗이든 가을을 누리고 겨울을 나야 싱그럽게 푸른 잎사귀를 내놓을 수 있어요. 4346.10.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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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60] 나락 익는 냄새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늙은 시인도 어린 아이도
  함께 가을볕 쬐면서 나락 익는 냄새 맡으면.

 


  시골사람도 도시사람도 나락 익는 고소한 냄새 느긋하게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시골사람은 나날이 나락내음이나 풀내음보다는 농약내음과 비료내음에 길듭니다. 도시사람은 나날이 시골하고 등지면서 나락이 익건 풀에 꽃이 맺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늙어 허리 휘는 시골사람은 힘들다며 비료와 농약만 쓰려 하고, 흙하고 멀리 떨어진 도시사람은 돈벌이에 바쁘다며 길가나 골목 들풀 한 포기조차 바라볼 겨를 없습니다. 하루를 기쁘게 누리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루를 아름답게 맞이하는 삶은 어떻게 거듭날까요. 4346.10.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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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59] 쉼

 


  다리를 쉬며 한결 씩씩히 걸어요.
  눈을 쉬며 더 또렷이 바라봐요.
  마음을 쉬며 더 즐겁게 살아요.

 


  책읽기도 쉬고, 생각도 걱정도 모두 쉬면서, 마음을 곱게 다스립니다. 일을 쉬고, 놀이마저 쉬며, 가만히 앉거나 드러누워서 생각을 맑게 추스릅니다. 다리를 쉬지 않으면 더 못 걷습니다. 눈을 쉬지 않으면 더 못 봅니다. 귀를 쉬지 않으면 더 못 듣습니다. 입을 쉬지 않으면 더 못 먹습니다. 목을 쉬지 않으면 더 노래할 수 없어요. 손을 쉬지 않으면 더 글을 못 쓰고 더 바느질을 못 하는데다가 더 빨래를 못 합니다. 무엇을 하고 싶나요? 느긋하게 쉬면서 마음을 챙겨요. 4346.10.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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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58] 심심하다

 


  느긋하게 누리는 날에는 느긋한 밥,
  사랑스레 빛나는 날에는 사랑스러운 밥,
  즐겁게 웃는 날에는 즐겁게 나누는 밥.

 


  느긋하게 지낼 적에는 짜지도 달지도 맵지도 않은 보드라운 맛을 즐기지 싶어요. 느긋하게 지내지 못할 적에는 짜거나 달거나 맵거나 하면서 보드랍지 못한 맛에 휘둘리지 싶어요. 느긋하게 지낼 적에는 밥 한 그릇 느긋하게 차리지요. 사랑스레 빛나는 날에는 밥 한 그릇 사랑스레 차리지요. 삶에 따라 밥이 달라져요. 삶에 따라 말이 바뀌어요. 삶에 따라 낯빛과 말빛과 몸빛과 마음빛 모두 움직여요. 어찌 보면 ‘심심하다’ 할 만한 맛일 수 있는 느긋한 밥을 즐길 때에 삶도 밥도 마음도 가장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4346.10.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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