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1등만 떠올리는 얄딱구리한 한국 사회에서는 대통령뽑기가 아주 대단한 일이라 여긴다. 한 표 때문에 갈리든 열 표 때문에 엇갈리든, 한국에서는 오직 1등만 모시거나 섬기는 뒤틀린 얼거리를 보여주기에,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를 뽑는 일마저 몹시 커다란 일이 된다고 여긴다.


  나는 2012년 12월 대통령뽑기에 눈길이 가지 않는다. 이쪽도 저쪽도 그쪽도 ‘내 쪽’이 아니니까. 나는 내 쪽에 있는 사람한테 한 표를 주고 싶지, 내 쪽에 없는 사람한테 한 표를 주고 싶지 않다. 내 쪽에 없는 사람한테 한 표를 주었을 때에 어떤 일이 생기는가를 여러 차례 겪었으니, 이제는 바보짓을 할 마음이 없다. 사람이라면, 한 차례만 스스로 겪었어도 깨달아야 하는데, 여러 차례 바보짓을 하며 바보스러운 삶을 느끼고서도 바보짓을 한다면 사람으로 살아갈 까닭이 없으리라 본다.


  10월이 저무는 2012년 한자락, 심상정 님이 대통령 후보로 나선다. 나는 심상정 님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기를 여덟 해 기다렸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말든 내가 스스로 내 보금자리 깃든 마을에서 잘 살아가면 될 노릇인데, 굳이 대통령 한 사람을 뽑아서 무언가 맡기려 한다면, ‘정치를 할’ 사람이 아닌 ‘일을 할’ 사람이 대통령을 해야 한다고 느낀다. 어느 쪽 대통령 후보는 ‘여자 대통령’이라고까지 말하는데, 참말 여자 대통령이라 하면 그분만 ‘여자’는 아니리라. 그런데 대통령 될 사람이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대수로운가. 사람다운 사람이어야지,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하는 대목으로 금긋기를 하는 뜻이 있을까.


  사람다움이 없으면 남자이건 여자이건 똑같다. 여당 대통령이 되건 야당 대통령이 되건 대수롭지 않다.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할 뿐이다.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들 말과 삶과 넋을 골고루 살피면서 말다움과 삶다움과 넋다움을 알아채는 ‘사람다운 사람’ 눈길이 되어, 아이들을 마주하고 내 하루를 누리며 생각을 살찌운다면 이 나라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문득 헤아려 본다. 나는 ‘여자 대통령’이 나오기보다는 ‘아줌마 대통령’이 나오기를 바란다. 나는 ‘똑똑한 대통령’이 나오기보다는 ‘슬기로운 대통령’이 나오기를 바란다. 전태일하고 벗하고 전우익하고 벗하며 아이들하고 예쁘게 벗하는 여느 아줌마가, 아이들한테 젖을 물려 사랑을 나누어 주었으며, 아이들한테 맛난 밥을 사랑으로 차려 주던, 이 나라 아줌마가 대통령 일을 즐거이 맡을 수 있기를 바란다. (4345.10.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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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꾼 ‘싸이’ 독서량 0

 


  노래하는 사람 ‘싸이’는 “독서량 0”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 가운데 “독서량 0”인 사람이 노래꾼 싸이뿐일까 궁금하다. 참 많은 사람들이 “독서량 0”이라고 느낀다. 대통령 뽑는 날이 다가온다 하는데,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이들은 책을 얼마나 읽을까. 아니, 책을 읽을 틈을 내기는 할까.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이름과 얼굴을 알리는 데에 바쁜 나머지, 스스로 삶과 넋과 꿈을 북돋우는 책을 어느 만큼 읽을는지 알쏭달쏭하다.


  그런데, “독서량 0”이 아닌 “독서량 1”이면 어떠할까. “독서량 2”나 “독서량 3”은 어떠한가. 0과 1는 얼마나 다르고, 1와 2은 얼마나 다른가. 차근차근 이어 5과 6은, 9과 10은 얼마나 다를까. 더 이어 생각한다. 열한 권 읽는 사람과 열두 권 읽는 사람은 어떻게 다르려나. 열두 권과 열세 권, 열세 권과 열네 권, …… 아흔아홉 권과 백 권, …… 구백아흔아홉 권과 천 권, 이렇게 저렇게 읽는 책 숫자는 서로 얼마나 다르다 할까.


  다른 금이 있을까. 다르다 할 대목이 있을까.


  “읽은 책 없음”과 “읽은 책 한 권”이 그리 다르지 않다면, “읽은 책 없음”과 “읽은 책 만 권” 또한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 곧, 책은 ‘숫자’로 읽지 않는다. 책은 책으로 읽는다.


  사람은 사람으로 읽는다. 사귀거나 만나거나 아는 사람 ‘숫자’가 많대서 동무가 많거나 이웃이 많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귀거나 만나거나 아는 사람이 서로서로 얼마나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운가를 살펴야 비로소 ‘사람읽기’가 어떠한가를 헤아릴 수 있다.


  어떤 책을 한 권 읽거나 백 권 읽는가를 돌아보아야지 싶다. 저마다 읽은 책을 어떻게 곰삭혔는가를 살펴야지 싶다. 책 한 권 읽은 뒤로 삶과 넋과 꿈이 어떻게 거듭나거나 새롭게 꽃피었는가를 톺아보아야지 싶다. 종이로 된 책을 안 읽었거나 적게 읽었대서 대수롭지 않다. 종이로 된 책을 많이 읽었거나 꾸준히 읽는대서 대단하지 않다.


  삶을 생각할 노릇이라면, 달삯을 얼마 버는가 하는 숫자나 종이책 몇 권 읽었나 하는 숫자에서 홀가분해져야지 싶다. 한 마디로 간추리자면, 대학교 졸업장으로 ‘어느 한 사람 삶이나 넋이나 꿈’을 읽을 수 있거나 살필 수 있거나 가를 수 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대학교 졸업장은 그예 졸업장일 뿐, 이 졸업장이 한 사람을 보여주지 못한다. ‘한 사람이 읽은 책’ 또한 그저 읽은 책일 뿐, 이렁저렁 읽은 책이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을 밝히지 못한다.


  겉으로 내세우는 이름은 모두 덧없다. 여러 가지 좋다거나 훌륭하다거나 멋지다거나 하는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좋아지거나 훌륭해지거나 멋져지지 않는다. 스스로 좋게 살아갈 때에 좋을 뿐이요, 스스로 훌륭하게 생각하며 살아갈 때에 훌륭하고, 스스로 멋지게 생각하고 꿈꾸며 삶을 일굴 때에 멋지다.


  나는 노래꾼 싸이 님이 어떤 삶길을 걸었는지 모르고, 둘레에 어떤 이웃이나 동무를 사귀는지 모른다. 무엇을 얼마나 배웠고, 이녁 동생이나 아이한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는지 또한 모른다. 그러나, 누가 누구한테 지식이나 정보를 가르치는 일도 부질없다. 게다가, 지식이나 정보를 가르친대서 삶을 배우지 못한다. 오직 온몸으로 삶을 보여주면서 느끼도록 할 뿐이다.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아이를 낳아 돌보지 않는다. ‘읽은 책 권수와 가짓수’가 많아야 아이들을 슬기롭게 가르치거나 이끌지 않는다. 사랑이 있을 때에 아이들한테 사랑을 보여주며 가르치고 물려준다. 꿈이 있을 때에 아이들한테 꿈을 보여주며 가르치고 물려준다. 이렇게 살아가면 넉넉하지 않을까? ‘종이책 독서량 0’이 무슨 대수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메마른 사람들이 딱하지, ‘종이책 읽은 권수가 없’는 사람이 딱하지 않다. (4345.10.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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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풀빛,1984)을 다시 읽는다. 이 알쏭달쏭한 시집을 단숨에 다시 읽는다. 나는 《노동의 새벽》이라는 묵은 시집을 헌책방에서 마주할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곤 한다. 오윤 님 판화가 ‘질 다른 종이’로 붙을 뿐더러, 책날개에 찍히는 ‘풀빛 판화시선’ 알림글이 다르고, 책을 찍은 종이가 달라 두께가 달라지는데에도 웬만한 책은 모두 ‘초판’이기 일쑤이다. 《노동의 새벽》 2쇄나 3쇄나 중쇄를 만나기란 아주 힘들기에 알쏭달쏭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노동의 새벽》을 어떻게 알았을까. 글쎄. 1991년에 《머리띠를 묶으며》(미래사)라는 시집이 나온 적 있다. 이무렵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인천 중구 인현동에 있는 〈대한서림〉에서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을 보면서 한 권씩 사서 읽곤 했는데, 100인선집이라 하고서는 101번과 102번이 있었고, 102번으로 박노해 님 시집이 있어 퍽 재미있다고 여겼다. 백 사람을 골랐다면서 백둘째 사람이 있으니 아리송했지만, 어쨌든 나는 102번째 《머리띠를 묶으며》를 맨 처음으로 장만했고, 학교로 걸어가는 길에 이 시집을 다 읽었다.


  고등학교에서는 곧잘 ‘소지품 검사’를 했기에, 이 시집을 가방에 챙겨 학교에 간 날은 몹시 조마조마했다. 가방에 챙겨 학교에 갔어도 교실에서는 섣불리 꺼내어 읽지 못했다. 학교로 가는 길, 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때에 비로소 책을 꺼내어 읽었다. 고등학생 때 ‘걸어서 학교를 오가는 겨를’조차 아깝다 여겨 책을 읽으며 살았다. 이때 이 시집을 몇 차례쯤 읽었을까. 스무 차례? 쉰 차례? 백 차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헌책방을 다닌다. 언제였는지 잘 모르겠는데, 아마 고등학교 2학년 겨울이나 고등학교 3학년 봄 무렵에 《노동의 새벽》을 헌책방에서 만났지 싶다. “머리띠를 묶으며”라는 책이름만으로도 학교에 책을 들고 가기 두렵다고 여겼기에, “노동의 새벽” 같은 책이름으로는 자칫 소지품검사에 걸리면 크게 말썽이 생겨 학교에서 쫓겨날 수 있겠다고 느꼈다. 이 시집은 집에서도 꽁꽁 숨기며 읽었다. 다른 책 뒤에 몰래 숨겼다. 헌책방에서 이 시집을 장만하던 날 가슴이 얼마나 벌렁벌렁 뛰었는지 모른다.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지켜보며 “학생, 가방 좀 봅시다.” 하고는 나를 붙잡을는지 모를 노릇이기 때문이다. 늦은 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며 이 시집을 읽는데, 책등이 안 보이게 하며 읽으려고 몹시 애를 썼다.


  이제 2012년. 헌책방 어느 곳을 가더라도 《노동의 새벽》은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다. 요즈음 이 시집을 애써 들추거나 살펴서 읽으려고 하는 손길은 거의 없지 싶다. 알쏭달쏭한 간기(판권)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노동의 새벽》은 헌책방에서 ‘고서’ 대접조차 못 받는다. 헌책방에 많이 들어오더라도 사는 손길이 드물다며 애물단지라 일컫기까지 한다.


  큰 문방구를 찾아가야 하기에 고흥 읍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간다. 큰 문방구를 들른 다음 순천 저전동 헌책방 〈형설서점〉에 들른다. 두 가지 판본 《노동의 새벽》이 보인다. 판본은 두 가지인데 간기는 ‘찍은 날’이 같다. 나는 소장품으로 살 마음이 아니라 읽을 책으로 살 마음이기에 조금 더 깨끗한 책으로 고른다.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거리낌없이 시집을 펼친다.


  문득 생각한다. 고흥에서 자라다가 학교는 중학교도 미처 끝마치지 못한 채 열다섯 나이로 서울 어느 공장에 공돌이로 떠나야 하던 넋이 있는데, 이 넋이 빚은 빛글 한 자락이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으로 돌아간다. 순천을 떠난 시외버스는 벌교를 지나고 동강과 남양을 지나 과역에 선다. 과역을 다시 떠나 점암을 스치며 고흥읍에 닿는다. 나는 고흥읍에서 택시를 불러 포두를 지나고 도화로 들어선다. 내 사랑스러운 살붙이들이 기다리는 동백마을로 돌아온다.


  집에서 아이들은 늦게까지 잠들려 하지 않는다. 밤 열 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두 아이가 하나씩 곯아떨어진다. 너희들은 참말 대단하구나. 아니, 너희들은 참말 놀려고 이 땅에 태어났구나. 아니, 너희들은 이 좋은 어린 날 끝없이 놀고 뛰고 달리고 날아야 비로소 가장 빛나는 목숨이로구나.


  고등학생 때 박노해 님 시를 읽으며 한 가지만 생각했다. 나는 이 나이에 고등학교를 다니며 이 시집을 손에 쥐었다는 까닭 하나로 학교에서 쫓겨날까 벌벌 떠는데, 그러면서 마음 한켠으로는 학교에서 쫓겨나 이 숨막히는 제도권 울타리에서 홀가분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학교 교칙으로는 ‘불온도서’로 손꼽히는 박노해 시집을 일부러 가방에 자주 챙겨서 갖고 다니며 읽는데, 이런 내 나이에 공장에서 공돌이로 일하던 마음은 어떠했을까, 참으로 궁금했다. 내가 열일곱 나이에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아닌 공돌이 ‘3년차’라 한다면 어떤 나날을 살아갈 수 있을까, 더없이 궁금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살면서, 신문사지국 한쪽에 드러누워 《노동의 새벽》을 숱하게 다시 읽는다. 바야흐로 나도 신문배달 ‘일꾼(노동자)’ 마음으로 시를 마주한다. 신문배달을 하는 마음을 시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 하고 헤아려 본다. 이러던 1998년, 무기징역수로 감옥에서 옴쭉달싹 못하던 박노해 님이 풀려난다. 이른바 ‘사상전향서’를 쓰고 감옥에서 풀려났으니 변절을 했다느니 몹쓸 사람이 되었다느니 하는 손가락질이 곳곳에서 솟구쳤다. 학생운동을 하는 동무나 후배들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는 소리를 곁에서 듣는다. 나는 내 동무와 후배한테 시집을 한 권씩 사서 선물해 주었다. 대학교 둘레 헌책방 책시렁에 아무렇게나 꽂힌 채 찾아 주는 손길 없던 《노동의 새벽》을 삭삭 훑듯 모조리 사들여 선물한다. “얘들아, 우리 이 시집을 읽어 보고 나서 이야기하자, 응?”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 《머리띠를 묶으며》나 《노동의 새벽》을 나한테서 빌려 읽으려 하던 동무는 딱 하나 있었다. 다른 동무들은 ‘무서워’ 하며 아예 못 본 척하거나 고개를 홱 돌리곤 했다. 대학교에서는 학생운동을 하건 문학을 하건 뭐를 하건 시집을 읽으려는 벗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나를 잘 따르던 후배 몇은 내가 내미는 시집을 받아들고는 머리를 낑낑거리기는 하되, 이 시들이 무얼 말하는지를 하나도 못 느끼겠다고 했다. 삶이 달라 시를 못 읽을까. 생각이 없어 시를 받아들이지 못할까.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박노해’ 이름을 넣어 살핀다. “《머리띠를 묶으며》에 이르기까지 초기 시 세계는 현실의 사회 제도와 이념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투쟁적이고 선동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에 비해 수필집 《사람만이 희망이다》 이후에는 생명과 포용과 화해의 길을 찾으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예술성과 정치성을 겸비한 대표적 노동자 시인으로 일컬어져 왔으나, 《사람만이 희망이다》 이후 그의 세계관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같은 대목을 읽는다. 그런데, 인터넷 백과사전을 엮은 이는 박노해 님 시를 읽기는 읽었을까. 시집 《노동의 새벽》이나 《머리띠를 묶으며》가 ‘선동’하는 시이거나 ‘저항’하는 시이거나 ‘투쟁’하는 시일까.


  곰곰이 돌이키니, 내 둘레에서 오직 한 사람만 박노해 님 시집을 읽고는 ‘사랑’을 노래한다고 말했다. 그래, 맞아, 박노해 님 시는 ‘사랑’을 말해. 투쟁도 혁명도 파업도 분노도 저항도 아니야. 사랑이야.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 아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하는 노래는, 그래 노래는, 그예 사랑이야. “네가 손꼽아 기다리며 동그라미 쳐논 / 빨간 휴일날 아빠는 특근을 간다.” 하는 노래는, 온통 사랑이야. “푸른 제복에 갇힌 3년 세월 어느 하루도 / 헛되어 버릴 수 없는 고귀한 삶이다.” 하는 노래는, 그야말로 사랑이야.


  삶을 사랑하고 고향을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했기에 시를 쓸 수 있겠지. 감옥에서 풀려난 뒤 오래도록 입을 꾹 닫고 슬프게 살다가, 레바논도 아체도 이라크도 찾아다니면서 눈물바람이 되었기에 비로소 다시 시를 쓸 기운을 찾았겠지. 일하는 사람들한테 새벽은 쓰린 찬소주와 같이 고달프지만, 사랑을 생각하며 다시금 기운을 내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새 햇살이야. (4345.9.1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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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1일에 쓴 글. 예전 글을 갈무리하며 곰곰이 되읽다가 걸쳐 본다. 아마 웬만한 사람들은 권정생 할아버지 이 같은 모습을 잘 모르지 않을까?

 

..

 


 권정생


  인터넷 살펴보기를 하며 자료를 찾다가 ‘권정생’ 이름 석 자를 치니 여러 가지 신문·잡지 기사가 뜹니다. 이 가운데 2005년 8월 26일치 〈한겨레21〉에 실린 ‘우토로 살리기 캠페인 모금’이 눈에 띕니다. 국회의원 남경필(20만 원), 익살꾼 김미화(30만 원), 사계절 출판사 사장 강맑실(100만 원), 노래꾼 윤도현(30만 원) 들도 이 자리에 돈을 냈군요. 그런데 경상도 안동 조탑마을 조그마한 방에서 홀로 살아가는 권정생 할아버지도 10만 원을 냈습니다.


  그 시골구석에서, 몸 움직이기 수월하지 않다는 분이, 우체국까지 손수 찾아가서 10만 원을 부쳤을 일을 생각해 봅니다.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서, 마을 어귀 시골버스 타는 데로 간 다음, 두 시간에 한 번쯤 지나가는 시골버스를 타고는 읍내나 면내 우체국으로 갔겠지요. 우체국에서 종이쪽에 슥슥 글을 적어 돈 조금 부쳤겠지요. 가슴이 짠해 눈물을 찔끔하다가, 이처럼 한결같이 이웃사람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려는 모습을 가만히 그립니다. 돈이 많아야 이웃사랑을 할 수 있지 않아요. 100만 원을 내거나 1만 원을 내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마음이 반갑고 고맙습니다.


  이밖에 어느 ‘수재 의연 모금’에도 돈 10만 원을 낸 자국이 보입니다. 나는 신문도 잡지도 따로 읽지 않으니, 이런저런 데에서 돈을 모아 이웃돕기를 한다 할 때에 누가 얼마나 내는가를 모릅니다. 아주 뜻밖에 이런 이야기를 ‘권정생’ 이름 석 자를 인터넷창에 넣어 자료를 찾다가 알아보았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권정생 할아버지는 ‘나 아직 우체국으로 버스 타고 나가서 이렇게 돈 부칠 수 있을 만큼 몸 튼튼해요’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셈 아닌가 싶습니다. 적잖은 사람들이 당신 몸이 아픈 일을 걱정하지만, 그런 일을 걱정하지 말고 좋은 꿈을 생각하라는 속삭임이리라 느낍니다.


  어떻게 살아갈 때에 좋을까요. 아름답게 살아갈 때에 좋겠지요. 어떻게 살아가야 즐거울까요. 사랑스레 살아갈 때에 즐겁겠지요. 밥상을 차려 밥을 먹으면, 배부른 일이 고맙고 기쁘다고 느낄 수 있을까요. 내 배가 불러 느긋하게 잠들 수 있으면, 내 이웃도 배가 불러 느긋하게 잠들 때에 즐거운 줄 알까요. (4338.10.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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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돌

 


  노래하는 한돌 님 노래를 테이프나 레코드로 듣기는 쉽지 않습니다. 시디로 듣기 또한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을 살펴 디지털파일로 몇 가지 찾아 들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 내가 고이 건사하며 하루에 몇 차례 듣던 노래테이프는 어디론지 사라져 없는데, 내가 참 듣고 싶은 노래는 디지털파일로 없습니다. 노래 한 가락에 600원씩 주고 장만해서 듣다가 가만히 생각합니다. 〈먼지 나는 길〉이라는 노래는 앞으로 디지털파일이 나올 수 있을까요. 누군가 이 노래를 다시 불러 널리 알릴 수 있을까요. 시이기에 노래이고, 노래이기에 삶인 〈먼지 나는 길〉 노랫말을 찬찬히 되새깁니다. 시를 쓰기에 노래를 짓고, 노래를 짓기에 삶을 누린 한돌 님 노랫가락을 하나하나 돌아봅니다. 나는 시를 쓰면서 삶을 짓고 싶습니다. 나는 삶을 지으면서 사랑을 누리고 싶습니다. 나는 사랑을 누리면서 꿈을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꿈을 나누면서 이야기를 엮고 싶습니다. (4345.5.27.해.ㅎㄲㅅㄱ)

 


먼 길을 지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때가 묻었지
때 묻은 내 모습 바라보며 사람들은 놀려댔지
내 모습 보고 싶어 나를 만나고 싶어
슬픈 내 이름을 불러 본다 오늘도 먼지나는 길

 

천국이 어디냐고 길을 묻는 사람이 있어
십자가의 종소리는 오늘도 주님을 믿으라 하네
주님은 어디 계신지 어디서 무얼 하는지
하늘엔 하느님이 너무 많다 오늘도 먼지나는 길

 

선생님 우리들의 선생님
가르침도 배움도 아니었어요 어느 길로 가야 하나요
선생님의 눈물 속에 맴도는 우리의 모습
길마다 공사중인 내 나라는 오늘도 먼지나는 길
먼지나는 이 길 위에
우리가 빗물이 되어
어린 햇살 반짝이는 그 마음에
비 개인 아침이 되자

 

(한돌 님 이야기책 하나가 있는데, 참 검색하기 힘들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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