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 님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아직 미야자키 하야오 만화영화가 정식 개봉이 되지 못하던 때에, 가까이 아는 분한테서 얻은 디브이디로 〈이웃집 토토로〉를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그릴 줄 아는 사람이 있구나’ 하면서 놀랐다. 한국말 아닌 일본말로 된 디브이디를 보며, ‘아름다운 이야기’는 서로 쓰는 말이 달라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구나 하고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여섯 살 세 살 두 아이와 살아오면서 아이들과 함께 ‘한국말로 된’ 〈이웃집 토토로〉를 비롯해 〈센과 치히로〉에다가 〈코난〉과 〈하이디〉를 수없이 다시 본다. 다시 볼 적마다 참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렸구나 하고 깨닫는다. 그렇지만,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 님 작품에서 언제나 몇 대목이 아리송했다. 아니, 아리송하다기보다, 깊이 파고들거나 넓게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녁은 대단한 사람이기는 하되, 훌륭한 사람은 못 되고, 사랑스러운 사람도 못 되며, 믿음직한 사람도 못 되지 않느냐 하고 생각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님은 요즈음에 새로 내놓은 〈바람이 분다〉라는 작품을 놓고, ‘전쟁 비판’이나 ‘군국주의 비판’을 대놓고 말해야 하지 않다고 이녁 인터뷰 글마다 거듭 밝힌다. 이러면서, “일본은 가난하다” 하는 이야기를 〈바람이 분다〉에 자주 넣은 까닭은 ‘오늘날 아이들이 물질문명사회에서 무너지는 꼴을 볼 수 없다’는 뜻에다가 ‘상업주의 비판’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왜 ‘전쟁 비판’과 ‘군국주의 비판’은 할 수 없을까? ‘전쟁 비판’은 ‘다큐멘터리에서나 할 얘기’라고 미야자키 하야오 님이 인터뷰 글에서 밝히는데(서면 인터뷰), ‘물질문명 소비중심사회 비판’과 ‘상업주의 비판’은 만화영화에 넣어도 되고, ‘전쟁 비판’은 만화영화에 넣으면 안 되는가?


  데즈카 오사무 님이 그린 〈아톰〉을 보면 싸움과 전쟁 이야기가 지나치게 자주 나온다. 아무래도 1950∼60년대 일본 사회는 군국주의 전쟁 뒤끝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이 끔찍한 전쟁과 물질문명을 제대로 비판하고 드러내려는 뜻에서 참 지나치게 싸움과 전쟁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비판’했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런 대목에서 〈아톰〉은 2010년대 요즈음 아이들한테 보여주기에 살짝 어렵다고 할 만하다. 그러면 〈코난〉은? 〈나우시카〉는? 〈원령공주〉는? 이러한 작품에 나오는 싸움과 전쟁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왜 미야자키 하야오 님은 다른 작품에서는, 또 〈붉은 돼지〉에서도 싸움과 전쟁이 얽힌 대목을 보여주면서 〈바람이 분다〉가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와 전쟁 미화’로 흐르는 줄거리를 핑계로만 덮어씌우려고 할까. 그러나, 그동안 미야자키 하야오 님이 내놓은 작품에서 나오는 싸움과 전쟁을 살피면, 미야자키 하야오 님은 싸움과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게 사람을 망가뜨리고 지구별을 무너뜨리는가를 잘 못 느끼지 싶다. 흙을 만지고 아이들 사랑하던 여느 젊은이가 전쟁터에서 총을 손에 쥐면 살인기계 되는 끔찍한 삶을 뼛속 깊이 느끼지는 못했구나 싶다. 사람이 죽는 일과 사람을 죽이는 일, 또 숲을 무너뜨리는 일과 지구별을 어지럽히는 일을 마음 깊이 느끼지는 못했다고 본다.


  남자와 여자 사이 사랑을 애틋하게 그리는 일이 ‘나쁠’ 까닭이 없다. 전쟁통에도 사랑은 싹텄고, 전쟁통에도 아이들은 태어났다. 그래, 전쟁통이건, 제국주의이건 군국주의이건 식민지이건, 사랑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이러한 작품을 왜 그리는가? 제국주의도 군국주의도 싸움도 전쟁도 ‘미화’를 하고 마는 작품을 왜 그리는가? 미야자키 하야오 님은 일본 아이들이 ‘도시 산업사회 물질문명’에 젖어들어 바보스럽거나 어리석거나 버르장머리없거나 엉터리로 자라는 모습을 ‘느껴’ ‘비판해야겠구나’ 하고 느끼는 가슴은 있지만,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전쟁이 사람들 마음과 꿈과 사랑을 얼마나 어지럽히거나 무너뜨리거나 죽이거나 짓밟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데즈카 오사무 님 작품을 보면, 첫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싸움·전쟁·폭력’을 아주 끔찍하게 싫어하면서 비판하는 이야기가 넘친다. 〈레오〉와 〈블랙잭〉과 〈불새〉와 〈사파이어 왕자〉에도 이러한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이 흐른다. 그리고, 데즈카 오사무 님 모든 작품도 고갱이는 ‘사랑’이다. 사람이 사랑스럽게 살아갈 길을 밝히려고 데즈카 오사무 님은 ‘싸움·전쟁·폭력’을 비판하되, ‘싸움·전쟁·폭력’이 없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하는 대목을 함께 노래하면서 그렸다.


  참말 바람이 분다. 여름바람에 이어 가을바람이 분다. 아무쪼록, 미야자키 하야오 님이 싱그러운 가을바람을 쐬면서, 이 바람에 묻어나는 나락내음 풀내음 햇살내음 흙내음 고이 느껴, 이녁 만화영화에 따사롭고 맑게 그려낼 수 있기를 빈다.


  부지런히 일했대서 훌륭할 수 없다. ‘대단할’ 수는 있겠지. 전쟁무기를 부지런히 많이 만든 사람을 놓고 ‘훌륭하다’거나 ‘사랑스럽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엄청난 숫자 앞에서 ‘대단하네’ 하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독일 나치도, 일본 군국주의도 ‘대단하게’ 사람들을 죽이고 지구별 평화를 어지럽혔다. 미야자키 하야오 님은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만들 노릇이 아니라, ‘사랑과 평화’로 작품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4346.8.2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람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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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과 전두환

 


  축구선수 기성용은 예전에 대통령 자리에 있던 전두환이라는 사람을 알까. 군사쿠테타를 일으켜 대통령 자리를 거머쥐다가 물러난 전두환은 축구선수로 뛰는 기성용이라는 사람을 알까. 두 사람은 서로를 알는지 모르고, 서로를 모를는지 모른다. 그런데 두 사람은 한 가지 모습이 꼭 닮았다. 이녁 스스로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퍼지는가를 모르고, 이녁 스스로 하는 일을 스스로 돌아볼 줄 모른다.

  전두환이라는 사람한테 물린 ‘죄값’이나 ‘추징금’은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에 따지지 않았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서 물러나고 한참 지나서야 겨우 따질 수 있었다. 그리고, 전두환이라는 사람한테 물리는 죄값이나 추징금은 아직 ‘시효가 끝나’지 않았다.


  기성용이라는 축구선수가 저지른 ‘잘못’이나 ‘바보스러운 몸가짐’은 이녁이 훨씬 젊거나 어릴 적에 저질렀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도 이러한 잘못과 바보스러운 몸가짐을 되풀이하니까 뭇화살을 맞는다.


  내가 전두환이라는 사람을 봐주느니(용서하느니) 감싸느니 하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전두환이건 누구이건 ‘사람 탓’을 하지 말라는 옛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잘못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렇게 흐르도록 내몬 제도권 톱니바퀴 얼거리를 따질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전두환이라고 하는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은 오늘까지도 예쁘지 않고 착하지 않으며 참답지 않다. 참 슬픈 노릇이다. 스스로 사람다움을 찾지 않으려는 모습은 얼마나 가녀리며 딱한가.


  내가 기성용이라는 사람을 함부로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말할 까닭조차 없다. 그런데 참 안쓰럽고 안타깝다. 그 아름다운 스물너덧 풋풋한 나이에 아름다운 사랑으로 나아갈 낌새가 안 보이니 안쓰럽고 안타깝다. 기성용은 하루빨리 아기를 낳아 아이가 자라 보아야 무언가 깨우칠까. 철없이 살아가면 기성용 스스로한테뿐 아니라, 옆지기와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 모두한테까지 나쁘게 퍼지는 줄 조금도 못 깨달을까.


  글을 아무리 잘 써도 사람됨이 엉망이라면 기쁘지 않다. 그림이 아무리 훌륭해도 착한 넋이 없으면 반갑지 않다. 만화도 사진도 노래도 춤도 이와 같다. 손재주 발재주 몸재주 좋다 한들 무엇이 대수로울까. 아름다운 사랑이 없다면 빼어난 손재주나 발재주나 몸재주는 한낱 ‘다람쥐 쳇바퀴질’에서 그친다.


  기성용도 전두환도 착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나는 국가대표 선수들 공차기보다 동네 아이들 공차기가 훨씬 재미있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그런데, 동네 아이들이 서로 다투고 혼자 공 차지하겠다며 동무한테 건네주지 않고 다툼질을 하면, 동네 아이들 공차기마저 재미없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기성용 선수여, 축구라는 운동경기를 이녁 혼자서 하는가? 전두환 할배여,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이녁 혼자서 맡아 나라를 돌보는가? 제발 제 넋 좀 찾기를 빈다. 4346.7.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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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즈카 오사무

 


  데즈카 오사무 님을 읽는다. 아주 어릴 적부터 마흔을 코앞에 둔 오늘까지 언제나 데즈카 오사무 님을 읽는다. 아이들도 데즈카 오사무 님을 읽는다. 옆지기도 읽고, 우리 집 책꽂이도 데즈카 오사무 님을 함께 읽는다. 며칠 앞서 《테즈카 오사무 이야기》 첫째 권이 한국말로 나왔다. 데즈카 오사무 님이 만화를 그린 발자국을 찬찬히 톺아본 곁동무가 그린 만화책이라고 한다. 나는 이 책이 더없이 반가운 나머지 눈물 살짝 흘리며 장만한다. 토요일 여름날 아침, 우체국 일꾼이 책상자를 가져다준다. 고맙게 인사하며 받는다. 아침을 끓이며 아이들 먹이려 하면서 책상자를 끌른다. 가슴으로 살포시 안고 비닐을 뜯는다. 몇 쪽 읽지 않았으나 다시 눈물 핑 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은 아름다운 시골마을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에 둘러싸여 자랐구나. 데즈카 오사무 님을 낳아 돌본 어머님은 언제나 고운 손길과 눈길로 이녁 아이를 따사롭게 보살폈구나. 일본에서 데즈카 오사무 님이 ‘만화밭 하느님’이 될 수 있던 까닭은 바로 당신 어머님이 있었기 때문이로구나.


  한국에는 어떤 어머님들 있어 어떤 아이들이 자랄까. 한국에는 어떤 시골마을 아름답게 있어 어떤 아이들이 무럭무럭 클까. 숲을 누리고 냇물을 즐기며 나무와 풀과 꽃을 사랑한 데즈카 오사무 어린이는 숲과 냇물과 나무와 풀과 꽃을 따뜻하게 만화로 담은 데즈카 오사무 어른이 되었다. 4346.6.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람과 책읽기)

 

 

 

 

 

 

 

 

 

 

 

 

 

 

..

 

<아톰의 슬픔>이라는 데즈카 오사무 님 산문책 소개하는 느낌글도 한번 같이 읽어 주셔요

http://blog.aladin.co.kr/hbooks/2969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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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2 14:22   좋아요 0 | URL
며칠전, 요코하마 미츠테루의 <사기만화세트> 댓글에
데즈카 오사무의 <붓다>, 소개해주셔서 <붓다>만 검색해 보관함에 담았었는데
오늘 이 책표지를 보다보니..아..<아톰> <밀림의 왕자 레오>를 그리셨던 분이군요..^^;;;
그러고 보니 저희집 책장에도 이분 책이 꽂혀있어서 얼른 꺼내 넘기고 있어요.
<만화가의 길>. 빨간 책표지에 아톰이 귀여운 얼굴로 살짝 웃고 있네요.~

언젠가 읽었던 책이라도, 함께살기님의 마음결, 빛결 담긴 글 읽으면
저도 다시 그 결, 배우고 따라서 기쁘고 예쁜 마음으로 읽게 됩니다.~
감사드리며, <테즈카 오사무 이야기> 담아갑니다. ~

숲노래 2013-06-22 17:58   좋아요 0 | URL
데즈카 오사무 님 산문책이 꽤 번역되었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책에 갑자기 뜬금없이 '데즈카' 아닌 '테즈카'를 쓰더군요.

이제껏 모두 다,
어느 검색에서도 몽땅,
'데즈카'로 썼는데
왜 '테즈카'로 바꾸어야 할까 알쏭달쏭해요.

저는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작품 가운데
<불새>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리본의 기사>는 찾기가 너무 힘들고 ㅠ.ㅜ (복간도 안 되고...)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죽기 앞서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이에요.

전쟁이 무엇이고,
평화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를 살피자면,
<아돌프에게 고한다> 네 권을 읽으면
잘 깨달을 수 있어요.

<블랙 잭>은 <아톰>과 <불새>와 나란히
데즈카 오사무 3대 걸작으로 꼽아요.
인터넷에서 <블랙 잭> 만화영화도 찾아볼 수 있어요.
비록 옛날 만화영화는 못 찾지만,
데즈카 오사무 님이 죽은 뒤 후배들이 그린 작품이 있는데
꽤 잘 그렸답니다.

이밖에 <칠색 잉꼬> 같은 '연극' 주제 만화책 연작도
아주 훌륭하지요... @.@

appletreeje 2013-06-23 00: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함께살기님,
소개해 주신 책들, 행복하고 즐겁게 읽으렵니다. ^^

함께살기님! 편안하고 좋은 밤 되세요. *^^*

숲노래 2013-06-23 01:53   좋아요 0 | URL
네, 조금 앞서 드디어 <이오덕 일기> 1권 느낌글을 다 썼어요.
생각보다 아주 쉽고 부드럽게 느낌글이 나왔네요.

이제 아이들 곁에 누워서 다시 자야지요~
appletreeje 님도 즐겁고 호젓한 밤 누리셔요~
 

시인 김수영

 


  다 읽은 시집을 새로 들추어 읽는다. 다 읽고 집에 있는 시집인데, 책방마실을 하다가 다시 만나면서 새롭게 장만한다. 책방마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새삼스레 또 읽는다.

  아름다운 글을 읽을 때에는 두 번 되읽거나 스무 번 되읽거나 늘 ‘처음 읽는다’는 느낌이다. 사랑스러운 책을 만날 때에는 두 권 되사거나 스무 번 되사더라도 언제나 ‘처음 산다’는 느낌이다.


  시인 김수영 님이 쓴 글자락 그러모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열음사)를 되사면서 되읽다가 생각한다. 시인 김수영 님은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나는 이 제목을, ‘제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는가’로 바꾸어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하고 말한다. 제 마음 똑바로 갖추려면 제 시를 똑바로 쓸 테고, 제 시를 똑바로 쓴다면, 제 삶을 똑바로 살면서, 제 사랑을 똑바로 할 테며, 제 꿈을 똑바로 이룰 테지.


  꿈을 이루는 사람이 사랑을 하고, 사랑을 하는 사람이 삶을 일군다. 삶을 일구는 사람이 시를 쓰며, 시를 쓰는 사람이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마음을 품는다.


  사랑받는 시인이 된다고 할 때에는 사랑할 만한 삶을 찾아 사랑스럽게 하루를 누린다는 뜻이라고 느낀다. 마음을 슬기롭게 갈고닦으면서 사랑 한 자락 빛낸다면, 누구나 사랑받는 시인이 되리라 느낀다. 곧, 마음을 슬기롭게 갈고닦지 않거나 사랑 한 자락 안 빛낸다면, 이름은 널리 알려지고 시집은 꽤 팔리더라도 사랑받는 시인이 될 수 없다고 느낀다.


  문학강의를 한대서 훌륭한 시인이 아니다. 문학상을 받기에 대단한 시인이 아니다. 훌륭한 시인은 훌륭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대단한 시인은 대단한 꿈을 맑고 밝은 마음으로 이루면서 나비춤 추는 사람이다. 그런데, 훌륭함은 무엇이고 대단함은 어디에 있을까. 훌륭함은 아이들 바라보는 따사로운 눈길이요, 대단함은 뙤약볕 받으며 시원스레 그늘 드리우는 나무 한 그루이다.


  풀을 보고 꽃을 보며 아이들을 본다.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며 햇살을 본다. 시인 김수영 님이 죽고 난 뒤 이 나라에서 어떤 시인을 떠올리면서 마음밭에 사랑씨앗 뿌릴 만한지 궁금하다. 4346.6.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람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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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6 21:58   좋아요 0 | URL
저는 <시인이여 침을 뱉어라>만 읽었었고 ,<시인이여 기침을 하라>는 못 읽어봤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다 한 말씀의 맥락이겠지요.
삶을 일구는 사람이 시를 쓰며, 시를 쓰는 사람이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마음을 품는다.-

저도 시란, 그럴듯한 언어로 달짝지근하고 얼핏 보면 이쁜 듯한..그런 이미테이션의 정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모든 삶의 결을 살피고, 느끼며, 성찰하고 그 삶의 고된 행군을..사랑을 일구는 빛으로 치환하여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보다 좋은 삶, 아름다운 삶으로 함께 손잡고 가는..나무를 심는 사람,의 씨앗이라 생각하는 밤이네요.
^^


숲노래 2013-06-16 22:56   좋아요 0 | URL
출판사에서 낸 책 판짜임과 차례가 조금 달라
책이름만 다를 뿐이지 싶어요.
어느 책을 읽거나 만나든
아름다운 마음을 살피면서
좋은 삶밥 받아들이면
우리 스스로 오늘 하루
기쁘게 누리면서 빛낼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이 글은 2005년 2월에 썼어요. 이무렵 '이오덕 둘레' 사람들이 '이오덕 이름'만 빨리 거머쥐어 당신들 이름값 높이려고 눈이 벌개진 모습을 너무 끔찍하게 자주 보다 보니, 참으로 슬퍼 이런 글을 썼어요. 왜 이름값 가로채서 '교수'가 되거나 '학자'가 되거나 '전문가'가 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오덕 선생님은 우리더러 '어떤 이름' 거머쥔 사람 되라 하지 않았어요. 어린이 마음 되어 언제나 즐겁게 살아가자고 이야기했어요. 이런 마음 되기를 바라며 예전에 쓰고 조용히 묵혔던 글 하나 꺼내어 봅니다.

 

..

 

사람들이 이오덕 선생님한테서 배운 것과 못 배운 것

 


  많은 사람들이 이오덕 선생님한테서 무언가 배웠습니다. 그렇지만 못 배운 것이 참 많습니다. 사람들이 이오덕 선생님한테서 배우는 것 거의 모두는 ‘지식’입니다. 이와 달리 사람들이 이오덕 선생님한테서 거의 못 배우거나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은 ‘마음’입니다.


  글쓰기 운동, 교육 운동, 문학 운동, 문화 운동, 어린이문학 비평, 우리 말 운동 같은 ‘지식’은 참 많은 이들이 배웠고 따르는 한편, 이녁 삶터나 일터에서 잘 쓰고 두루 펼칩니다. 그렇지만 이오덕 선생님이 이런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쓴 ‘마음’과 ‘생각’과 ‘뜻’과 ‘얼’까지 두루 살피고 헤아리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머리에 지식이 많이 든 사람들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명제와 이론을 알고, 늘 말하며 다닙니다. 그런데 이런 명제와 이론을 몸으로 옮겨서 펼치거나 나누는 사람은 아주 적은 듯합니다. 무거운 짐을 이고 가는 할머니 옆에서 손을 거드는 지식인이 얼마나 됩니까. 아니, 자가용하고 헤어지는 지식인이 얼마나 됩니까. 늘 자가용을 몰며 돌아다니기에 무거운 짐 짊어진 할머니를 아예 알아보지 못하지요. 스스로 걸어다니지 않으니, 골목길도 모르고 고샅길도 모르지요. 두 다리로 삶을 누리지 않으니 숲도 시골도 까맣게 모르지요. 여기에서 ‘지식인’이라 하는 이름은 좀 배운 사람 모두를 가리킵니다. 초·중·고등학교 아이들도 이 테두리에 들어갑니다. 오늘날 초등학생도 ‘지식인’이 되었어요. 게다가, 오늘날 초등학생도 두 다리로 걷는 일 자꾸 사라져요. 버스를 타고 자가용을 타요. 초등학생조차 마을 할머니 마주칠 일 매우 적어요. 그러니까, 어느 누가 옆에 길 가는 사람이 든 무거운 짐을 같이 들어 주려고 합니까.


  지식은 없거나 적더라도, 마음은 넉넉하고 푸근한 사람들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명제나 이론을 모르거나 안 갖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런 명제와 이론이 없어도 늘 온몸과 온마음으로 사랑과 평화를 나누며 삽니다. 마을길을 가다가 힘겹게 산길을 오르내리는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 같이 짊어지고 걷지요. 자가용을 몰더라도 이웃사람 보면 어여 타시라고 부르지요. 무거운 짐을 든 분이 보이면 들어 주지요.


  저잣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깔보면서 이들이 ‘속여 먹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사꾼들은 몇 푼이라도 에누리를 해 줄 줄 압니다. 생각해 볼 노릇이에요. 지식인 가운데 이녁 지식을 조금이나마 스스럼없이 널리 나눠 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요. 지식도 정보도 혼자 틀어쥔 채 이름값 높이기와 돈벌기에 사로잡히기만 하지 않나요.


  이오덕 선생님이든 다른 분들이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살아가는 이 땅에서 큰 어른이라고 하는 분들, 참 훌륭하다고 하는 분들은 그분들이 남긴 ‘일(업적)’ 때문에 훌륭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책을 남기고 무슨 일을 했다고 우러르지 않습니다. 책을 썼든 일을 했던, 그런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마음이 있고 생각과 뜻과 얼과 넋이 있기 때문에, 훌륭하다고 말하고 높이 삽니다.


  나라를 세운 대통령이라고 하는 이승만입니다. 이 이승만을 우러르는 몇몇 친일독재부역 언론매체와 지식인들이 있습니다. 이런 부스러기들은 저희 밥그릇을 지키려고 바보 한 사람을 우러르거나 높이 사지만, 그런다고 해서 쓰레기가 쓰레기 아닌 것이 되지는 않아요.


  날이 갈수록 ‘어버이다운 어버이’가 많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참으로 많은 사람이 가장 사랑하고 우러르고 떠받드는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해 봐요. 바로 우리를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큰돈을 벌거나 높은 이름을 얻거나 대단히 아름답게 잘생기거나 하지 않고, 뭐 하나 잘난 것도 없어 보이는 수수한 아버지와 어머니이지만, 우리는 으레 나를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장 우러르고 사랑하고 아끼고 보살피고 싶어합니다. 이런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장 깨끗하고 맑고 아름다운 마음과 뜻과 생각과 얼과 넋으로 우리를 낳고 돌보며 키웠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돌본 우리들이 아니라 마음으로 돌본 우리들이에요. 이름값으로 낳은 아이가 아니라 사랑으로 낳은 아이예요.


  곰곰이 살필 대목은 오직 마음입니다. 지식이 아닙니다. 마음이 없이 지식만 얻거나 배우면 남을 등처먹거나 뒤에서 호박씨를 까거나 남이 하는 일에 딴죽을 걸거나 헤살을 놓습니다. 지식이 없고 마음만 있으면 좀 아쉽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 착하고 즐겁게 오순도순 지낼 수 있습니다. 지식이 없이 마음만 있으면 좀 모자라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싸움이나 등치기나 따돌림이나 내빼기 따위는 그 어디에도 움틀 수 없습니다.


  착하고 곧으며 바른 마음을 다진 뒤에 지식을 얻고 키워야 제대로 된 사람이 됩니다. 제대로 된 사회를 꾸릴 수 있습니다. 못된 마음을 품고 지식을 얻어서 하는 짓거리가 무엇입니까. 그 많은 지식으로 남을 괴롭히고 등처먹으며 허튼 짓거리를 일삼는 것들 아닙니까. 이러면서 돈과 힘과 이름을 얻고 떨치면서 우리들 눈과 머리와 귀를 모두 속이고 어둡게 하지 않습디까.


  나부터 좋은 책을 많이 읽고, 내 둘레 사람들 모두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책만 읽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책보다 사람됨을 기르는 일을 먼저 하길 바랍니다.


  밥상에 올릴 밥 한 그릇 얻자면, 먼저 쌀이 있어야 하고, 쌀을 얻으려면 흙을 일구어야 합니다. 착하고 곧게 마음을 다독인 분들이라면 이녁 스스로 읽을 아름다운 책 즐겁게 잘 알아보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러모로 갑갑하고 막힌 구석이 있어, 모든 아름다운 책이 널리 알려지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아름다운 책이 새책방 눈에 뜨이는 진열대에 제대로 못 놓이기도 합니다. 도서관에서조차 아름다운 책을 제대로 안 갖추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 내 일을 하나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이웃들이 즐겁게 알아보면서 누리면 좋을 만한 좋은 책을 맑은 눈길로 살피고 골라내고 가리고 추리고 알리는 노릇을 해 보자, 하고 생각합니다. 애먼 주례사비평 아니라, 책을 삶으로 녹여서 받아들이는 이야기를 쓰자, 하고 생각합니다. 책만 많이 읽자는 소리는 좀 집어치우고, 아름다운 책 하나로 아름다운 삶 꾸리는 기쁨을 말하자, 하고 생각합니다.


  퍽 많은 사람들이 ‘이오덕’이란 이름을 앞에 내걸고 여러 가지 글을 쓰거나 일을 벌입니다. 이런 일 저런 일 가만히 살피며 느낍니다. 이 가운데 제대로 마음을 다스리거나 다지는 분은 얼마 안 보입니다. 지식은 있되 마음은 없어서 그렇습니다. 제아무리 이오덕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오래 모셨다고 한들, 그동안 지식만 받아먹으면서 당신 이름과 힘을 키웠다면, 이오덕 선생님 온 모습 가운데 껍데기만 본 셈입니다. 참다운 속, 깊디깊은 마음을 보지 못한 셈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밭에 고운 님 하나를 모신다고 생각합니다. 그 고운 님은 내 어버이가 될 수 있고, 나 스스로 될 수 있으며, 부처나 예수가 될 수 있어요. 마음밭에 하느님 모실 수 있고, 꽃 한 송이나 나무 한 그루 모실 수 있습니다. 훌륭한 어르신 한 사람 모실 수도 있는데, 누구를 모셔도 좋고 무엇을 모셔도 좋습니다. 내 마음밭에 모신 고운 님을 지식이 아닌 마음으로 바라보고 느끼며 부대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사이좋게 웃고 놀고 어깨동무하면서 술도 한잔 기울이고 노래도 목청껏 부르면서 땀흘려 일하고 땀나도록 신나게 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38.2.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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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06-14 09:37   좋아요 0 | URL
제대로 알고 제대로 배우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깊은 생각이 담긴 좋은 글 뒤늦게나마 잘 읽었습니다.

숲노래 2013-06-14 10:04   좋아요 0 | URL
저는 늘 스스로 제대로 살피고 배우자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 되면... 나부터, 그러니까 남 말에 앞서
나부터 제대로 살피고 스스로 배우면
다 즐겁게 잘 되리라 느껴요..

Nussbaum 2013-06-14 13:29   좋아요 0 | URL

올리신 글 보면서 조용히 이오덕 선생님이 남기신 <우리글 바로쓰기> 와 그 마음을 천천히 보듬어봐야겠습니다.

차분하고 깊이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숲노래 2013-06-14 14:24   좋아요 0 | URL
네, <우리 글 바로쓰기>도 마음을 찬찬히 보듬어 보시면서,
사람들이 잘 못 읽거나 알아보지 못해서 안 읽는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라는 책도
즐겁게 읽어 보시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저는 이오덕 선생님 책 가운데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가 참으로 훌륭하게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