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지기와 장윤정 님

 


  2013년 5월 6일, 서울 홍제동에 있는 헌책방 〈대양서점〉에 들렀다가, 헌책방 일꾼이 켠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노래하는 장윤정 님이 어느 아나운서하고 함께 살아가기로 했는데, 장윤정 님이 ‘남편 월급을 받고 살림을 꾸리겠다’고 이야기를 하더라.


  텔레비전 없이 스무 해 남짓 살아온 터라, 방송에서 연예인 이야기 나와도 들을 일 없고, 찾아 들을 일 또한 없다. 이렇게 헌책방마실을 하다가 뜻밖에 연예인 이야기 한두 가지를 듣곤 한다. 나는 이날 헌책방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장윤정 님 이야기를 듣고는, ‘아니, 장윤정 님이라고 하면 무대와 행사를 어마어마하게 뛰면서 돈을 참 잘 벌 텐데, 오히려 아나운서인 남편이 방송 일 접고 옆지기(아내) 뒷바라지 하는 쪽이 맞지 않을까?’ 하고만 생각했다. ‘아무래도 한국 사회에서는 연예인이 시집을 가더라도 이렇게 여자 쪽에서 이녁 일을 접어야 하는구나.’ 하고만 여겼다.


  그렇게 장윤정 님 혼인 이야기를 듣고는 죽 잊다가, 인터넷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이야기 한 자락을 얼핏 보았다. 깜짝 놀랐다. 여러 날에 걸쳐 장윤정 님하고 얽힌 글을 샅샅이 살피듯 찾아서 읽어 본다. 내 할 일 많고, 쓸 글 많지만, 아이들 모두 잠든 깊은 밤에 날마다 두어 시간쯤 이리저리 살피면서 온갖 글을 다 찾아서 읽어 본다.


  오늘 밤, 이제 장윤정 님하고 얽힌 글은 더 찾아서 읽지 말자고 생각하며 한숨을 쉰다. 오월 첫머리부터 오월 끝무렵까지 터진 온갖 이야기 가운데 ‘어느 한쪽 주장도 편견도 아닌 참(사실)’이라 한다면, 첫째, 장윤정 님은 ‘돈 쓸 겨를조차 없이 이른아침부터 새벽 두 시까지 무대와 행사를 뛰면서 하루 천만 원 벌이’를 하며 지난 열 해를 살았다. 둘째, 방송과 행사를 날마다 8∼12 차례 뛰는 사람으로서 돈 쓸 겨를이 있을 수 없다. 셋째, 장윤정 님 어버이는 살림을 잘 꾸리지 못해 몹시 벅찬 나날을 보냈지만, 장윤정 님이 노래를 불러 모은 돈으로 집을 장만했다. 넷째, 장윤정 님 동생은 축구선수를 하다가 은퇴하고서는 여러 가지 일을 벌일 수 있었다. 다섯째, 장윤정 님 통장에는 10억도 100억도 아닌 ‘-10억’이 있다. 여섯째, 장윤정 님 상견례 하는 자리에 아버지와 소속사 대표가 가고, 어머니와 동생은 안 갔다.


  장윤정 님 평균벌이를 헤아린다면 열흘에 1억, 백날에 10억이리라. 앞으로 석 달 동안 그대로 일하면, 이녁 통장에 찍힌 ‘-10억’은 지워지리라. 이녁 집식구 이야기가 방송을 크게 탄 만큼, 이제 이녁 어머니와 동생이 이녁 통장에서 돈을 함부로 빼내어 쓰지 못하리라. 여기에,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장윤정 님이 어느 아나운서하고 혼인을 한 뒤에 ‘남편 월급으로 살겠다’고 한 말을 아주 잘 알겠고, 아주 잘 느끼겠다. 그래, 혼인을 하는 그날까지는 이녁 통장에 드리운 ‘-10억’을 지우도록 여태껏 일한 그대로 바지런히 뛸 테고, 혼인을 하는 그날부터는 친정하고는 발을 끊고 시댁 식구로서만 살아가려 하는구나 싶다. 그래도, 장윤정 님은 이녁 어머니와 동생을 아낄 테니까, 명절에는 친정에 들러 틈틈이 용돈을 나누어 주겠지. 그리고, 혼인하는 그날부터는 ‘무대와 행사를 뛰는 여왕’ 아닌 ‘하루를 온통 장윤정 님 스스로한테 바치고 아끼는 삶’을 누리겠지. 부디, 이렇게 스스로한테 하루를 온통 바치며 아끼는 삶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하루 빨리 아기를 낳고, 아기를 낳은 뒤에는 모든 행사와 무대를 손사래치면서 아이와 함께 온 하루 한껏 빛낼 수 있기를 빈다. 두 사람 앞날에 아름다운 사랑을 그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가 아름다운 사랑 물려받을 수 있도록 온힘 다하기를 빈다.


  장윤정 님 나이를 살피니, 내 옆지기하고 동무이다. 내 옆지기 살아온 날 더듬고, 장윤정 님 살아온 날 더듬으며, 같은 동무가 이렇게 다르면서 서로서로 아프며 힘든 나날 보냈구나 싶어, 날마다 짠한 마음이었다. 우리 즐겁게 살아요. 장윤정 님은 이제 어머니와 동생한테 ‘돈’은 주지 마셔요. 돈이 아닌 ‘사랑’만 주면서 지내셔요. 장윤정 님이 통장정리(-10억을 0으로 바꾸는 통장정리) 끝내면, 더는 ‘돈 버는 일’ 안 하면 돼요. 시간 좀 걸리겠지요. 아마 열 해나 스무 해 걸릴 수 있어요. 장윤정 님이 낳을 아이가 스무 살 되면, 저희 어머니가 어떤 삶 일구면서 저를 사랑했는가 깨닫도록 잘 보살펴 주셔요. 4346.5.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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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5 08:23   좋아요 0 | URL
정말 안타까운 일이에요.
저도 장윤정님이 진정 즐겁고 행복한 삶, 살아 가시길 빕니다.

숲노래 2013-05-25 08:29   좋아요 0 | URL
많은 사람들 걱정과 바람을 맞아들여
두 분 모두 즐겁게 살아가시리라 믿어요.

그리고, 다른 두 사람도 즐거운 삶 깨달아
돈은 그만 내려놓기를 빌어요.

무지개모모 2013-05-26 01:48   좋아요 0 | URL
저는 옆지기라는 말을 처음 들어요.
내 옆을 지키는 사람이라... 멋진 표현이네요~*^^*

숲노래 2013-05-26 06:38   좋아요 0 | URL
집안 식구뿐 아니라, 살가운 벗들도
모두 옆지기가 된답니다~
 

배우 김남주, 애 엄마 김남주

 


  배우 김남주라는 분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나는 1991년부터 텔레비전을 안 보며 살았고, 1994년부터 텔레비전 없는 집에서 살았다. 얼핏설핏 다른 사람들 수다 사이에 섞인 이름으로 ‘김남주’를 듣기는 했지만, 나한테 익숙한 ‘김남주’란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나 자라며 시를 깨달아 시골 흙일꾼 마음으로 싯노래 읊은 투박한 아저씨이다.


  배우 김남주라는 분이 어떤 배우하고 만나 혼인을 했는지, 또 아이를 낳았는지, 이런 말 저런 얘기 들은 일이 없고, 내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런데 책방마실을 하다가 아주 뜻밖에 ‘애 엄마’인 김남주 님을 만난다. 배우 김남주 님이 내놓은 책은 《김남주의 집》이지만, 나는 이 책을 책방에서 만나며 ‘어, 육아일기 책이네.’ 하고 느꼈다.


  책을 사 놓고 두 달 남짓 묵힌다. 애써 장만한 책을 두 달씩 묵히고서 읽는 까닭을 ‘애 엄마’인 사람이라면 쉬 알리라 느낀다. 아무리 반갑고 즐겁고 고맙고 신나는 책이라 하더라도 그날 그때 손에 못 쥐기 일쑤이다. 아이들 밥 차려 주고 옷 갈아입히고 몸 씻기고 함께 놀고 글씨쓰기 이끌고 뭣 좀 하다 보면, 어느새 책을 잊거나 잃는다. 사 놓은 책도 어디에 처박혔는지 까마득하다. 누군가 기쁘게 선물한 책조차 어디에 틀어박혔는지 아리송하다. 이러구러 《김남주의 집》을 책방마실을 하며 장만한 지 두 달 지나서야 찾아내어 찬찬히 읽는다. 늦은저녁까지 잠 안 자고 노는 아이들 목소리 뒤로 하고 부엌에 앉아서 2/3쯤 내처 읽는다. 아이 키우는 이야기 사이사이 무슨무슨 살림살이 장만하는 얘기 나오는데, 물건 장만하는 얘기는 설렁설렁 훑고 지나간다. 대문 갈고 샹들리에 체코서 사오고 하는 얘기란 그저 김남주 한 사람 취향인걸. 이녁이 돈이 있어서 대문 갈고 샹들리에 체코서 사온다거나, 또 침대를 프랑스에서 맞춰서 들이고 하지는 않는다고 느낀다. 그저 취향일 뿐 아니라, 아무 물건이나 집안에 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고 느낀다. 갓 배우로 일할 적에 반지하 축축하고 눅눅한 집이 얼마나 안 좋은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잖은가. 그래서 마당 있고 빛 잘 드는 집에서 살아가고픈 꿈을 품으며 푼푼이 돈을 그러모았다잖은가. 쓸 만한 데에 돈을 쓰고, 꾸밀 만한 집을 꾸미는 삶이라고 느낀다.


  책 사이사이 아이들 방 꾸민 모습이 사진 몇 장으로 드러난다. 난 이 사진들 가운데 ‘예쁜 손글씨’로 알록달록 종이에 한글 적어서 한글놀이 함께 하는 모습 살며시 드러나는 사진이 참 좋다. 나도 아이들과 살아가며 느끼는데, 책방에서 한글교본 사서 가르치기보다는, 어버이 스스로 글씨를 정갈하게 써서 한 글자 두 글자 가르칠 적이 훨씬 낫고 즐거우며 재미있다. 어버이부터 글씨를 정갈하게 쓸 때에 아이들도 글씨를 정갈하게 쓴다. 어버이부터 한글을 또박또박 예쁘게 써야 아이들도 한글 처음 익히면서 찬찬히 또박또박 온힘 기울여 쓴다.


  배우 김남주 님 책 《김남주의 집》을 다 읽고 나면 느낌글을 하나 쓸 생각이지만, 배우 김남주 님이 ‘집’을 말하는 책을 내놓은 만큼, 이 다음에는 ‘아이’와 ‘삶’을 말하는 책도 한 권 내놓으면 즐거우리라 생각한다. 아이들과 누리는 이야기를 더 조곤조곤 수다스레 들려준다면 참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아이들 옷가지나 배냇저고리 장만하려고 백화점 들렀을 적에 다른 사람 눈길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마음가짐처럼, 아이들 사진이건 이야기이건, 배우 김남주 님 스스로 즐거운 결 살피면 될 노릇이다. 아이들은 씩씩하고 슬기롭게 살아가리라 믿고 생각하면 된다. 글을 쓰면, 미처 말로는 드러내지 못한 깊은 사랑을 새록새록 적바림할 수 있다. 4346.5.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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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 사진책

 


  그림을 그리려다가 시를 쓰고, 시를 쓰다가 사진을 배우다가는, 사진을 찍으며 시를 쓰는 신현림 님 시집을 읽고 사진책을 읽으며 산문책을 읽는다. 문득 생각한다. 신현림 님은 이녁 스스로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그림과 글과 사진을 생각하는데, 신현림 님 책을 펴내는 출판사에서는 이 그림과 글과 사진을 얼마나 사랑하면서 종이에 앉혔을까. 《사과밭 사진관》 펴낸 책마을 일꾼은 사과밭에서 사과꽃 바라보며 사과내음 마셨을까. 《빵은 유쾌하다》 펴낸 책마을 일꾼은 바닷가에서 바닷바람 쐬며 바닷바람 마시다가는 들판에서 들볕 쬐고 들풀 뜯어 먹으면서 신현림 님 글과 사진을 마주했을까. 글 쓰는 사람하고 함께 들마실 즐기면서 책 엮을 만큼 느긋하며 넉넉한 삶 누리는 책마을 일꾼 늘어나면 좋겠다. 사진 찍는 사람이랑 같이 숲마실 즐기면서 책 빚을 만큼 한갓지며 아름다운 삶 누리는 책마을 일꾼 태어나면 좋겠다. 종이로 묶어 인쇄하고 제본해서 새책방 책시렁에 꽂아야 ‘책’이라 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삶을 수수한 손길로 살가이 쓰다듬을 때에 바야흐로 샘물 같은 이야기 흐르고 새봄 같은 이야기 자란다. 4346.4.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http://blog.aladin.co.kr/hbooks/5204987

(사진책 <사과밭 사진관> 느낌글. 편집이 퍽 아쉽다고 느낀 책이다. 그래서 별점이 셋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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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25 12:38   좋아요 0 | URL
저도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과 더불어 <빵은 유쾌하다>를 즐겁게 읽었어요.
그런데 <사과밭 사진관>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고, 책 제목도 좋았는데 서점에서 이 책을 넘기다 보니 왠지..뭔가 아쉬워서 그냥 나온 기억이 납니다.
정말 편집도 많은 영향을 지니는 듯 해요.

숲노래 2013-04-26 07:08   좋아요 0 | URL
네, 그래요.
사진책뿐 아니라... 시집도 편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읽는 맛이 확 달라지곤 해요.

그렇기 때문에, 책을 빚을 때에는
편집과 디자인에도 여러모로
마음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이지요...
 

사람과 책

 


  시골에서 살아가고부터 누군가를 바깥에서 만날 때면 으레 내 글공책에 글을 짤막하게 적바림한다. 이 글을 일컬어 ‘시’라고도 하지만, 따로 어떤 갈래로 이 글을 넣고 싶지 않다. 글공책에 글을 쓰며 생각한다. 내가 만난 사람들하고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노래’ 부른다고.


  마음노래 몇 줄 적은 뒤에는, 고운 종이를 꺼내어 한 쪽에 찬찬히 옮긴다. 처음에는 뒷종이가 되든 휴지가 되든 아무 종이에나 마음노래 적어서 건넸는데, 이제는 고운 종이꾸러미 따로 마련해서 작은가방에 챙긴다. 마음노래 즐겁게 들으면서 마음밥 맛나게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건네는 마음노래 한 가락 두 가락은 내 머리로 짓는 글일 수 없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서로 다르게 일군 삶을 가만히 헤아리면서 찬찬히 쓸 수 있는 글이다. 사람들마다 나한테 다 다른 삶을 보여주고 다 다른 삶에서 다른 이야기를 듣는다. 낯빛을 보아도 삶과 이야기를 느끼고, 말씨와 손짓을 보면서 삶과 이야기를 느낀다. 이 모두를 아울러 마음노래에 담는다.


  사람은 누구나 책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책 한 권이다. 한 사람 살아온 삶자락 하나 고스란히 책이 된다. 한 사람 생각하고 사랑하며 일군 나날 곱다시 책이다.


  종이에 까만 잉크로 찍으면 종이책이다. 몸과 마음에 이야기 아로새기면 사람책이다. 사람들은 종이책 읽을 수 있다.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는 사람책 읽을 수 있다. 집안에 종이책 잔뜩 건사한대서 책읽기 잘 한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그저 종이꾸러미에 깃든 지식이나 줄거리를 좀 꿴다고 할 뿐이다. 책읽기를 잘 하자면 삶읽기를 잘 할 노릇이다. 종이꾸러미를 엮은 사람들이 글 한 줄에 어떤 이야기를 갈무리했는가 하는 대목을 읽어야 비로소 ‘읽기’요, 종이꾸러미 속내와 꿈을 읽으면 비로소 ‘책읽기’이다.


  누군가는 꽃을 마주하며 꽃읽기를 한다. 꽃읽기는 바로 삶읽기이면서 책읽기이다. 누군가는 호미 쥐어 밭을 일구면서 흙읽기를 한다. 흙읽기는 곧 삶읽기이면서 책읽기이다. 누군가는 밥을 짓고 바느질을 하면서 살림읽기를 한다. 살림읽기 또한 아름다운 삶읽기이자 책읽기이다. 아이들이 마당에서고 집안에서고 콩콩콩 뛰고 달리며 놀이읽기를 한다. 놀이읽기도 재미난 삶읽기가 되고 책읽기가 된다. 4346.4.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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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희 잡화점

 


  그림책 《배꼽손》(한권의책,2013)은 나은희 님 글과 강우근 님 그림이 어우러진다. 글을 쓴 분과 그림을 그린 분은 한집에 살며 머스마 둘을 돌본다. 글을 쓴 나은희 님은 방학동에 있는 도깨비시장에서 ‘창가게(창문 한쪽을 쓰는가게)’를 꾸리기도 한단다. 손으로 빚는 살림살이 판다는 ‘창가게’에서 쓰는 간판을 본다. 창가게 이름은 ‘나은희 잡화점’이고, 간판은 어른 손바닥보다 조그맣다. 창가게라면 참 조그마한 귀퉁이에 마련하는 가게일 테고, 조그마한 귀퉁이 한쪽에 꾸미는 가게에 조그마한 간판을 나무를 깎고 빛깔을 입혀 붙인다 하니까, 이 창가게, 그러니까 쪽가게를 알아보려면 두 다리로 천천히 길을 거닐어야 하고, 두 다리로 걷다가도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커다란 가게에는 자가용 대는 자리 드넓게 여러 층으로까지 있다. 옛 저잣거리 언저리에는 자가용 대기조차 힘들다. 자가용을 모는 이들은 아주 많은 물건을 잔뜩 사들이고도 다리나 팔이 아플 일 없으리라. 그러나, 커다란 가게는 오직 물건만 바라볼 수 있다. 옛 저잣거리라든지 쪽가게에서는 짐을 사람 스스로 들어야 한다. 가방이나 손에 짐을 꾸려 스스로 힘을 써야 한다. 두 다리로 거닐며 장마당 마실을 하는 이들은 그야말로 다리품을 판다. 다리품을 팔면서 가게를 보고 사람을 만나며 날씨를 느낀다. 봄에는 봄내음 맡으며 장마당 마실을 하고, 겨울에는 겨울바람 쐬며 장마당 마실을 한다. 이와 달리, 커다란 가게에는 봄도 겨울도 없고, 여름도 가을도 없다. 커다란 가게에는 오직 물건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자가용 없으면 못 살아가는 숨결이 되었을까. 사람들은 언제부터 두 다리에 힘 주고 이 땅 씩씩하게 밟고 보살피는 마음을 스스로 잃었을까. 4346.4.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가게 간판' 손에 든 분은 그림쟁이 강우근 님.

강우근 님 가슴에는 '갈퀴덩굴' 잎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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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21 11:38   좋아요 0 | URL
방학동 도깨비시장은 친구집 근처에 있어서 저도 몇 번 가보았는데
아 이곳에 이런 예쁜 가게가 있었군요.
다음에 갈 때는 친구랑 '나은희 잡화점'으로 즐거운 나들이 할까 합니다.^^

숲노래 2013-04-21 12:59   좋아요 0 | URL
한 평도 안 되는 '창문'에다 붙이는
그야말로 자그마한 가게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도깨비시장 안 가 보아서 모르겠지만,
눈 크게 뜨고 찾으셔야 한다고 그러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