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씨 한살이를 사진으로 담는 손길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1 : 카타노 타카시, 《새빨간 딸기》(한솔교육,2005)



 일본 ‘Child Honsha(チャイルド本社)’에서 1999년에 내놓은 《いちごのたね》를 옮긴 《새빨간 딸기》는 2005년 4월에 ‘한솔교육’이라는 곳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과학 그림책”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옵니다. 겉장까지 모두 스물여덟 쪽짜리인 사진책이기에 ‘과학 그림책’이라는 이름은 걸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린이한테 읽히는 ‘과학 그림책’ 가운데에는 사진으로 엮은 책이 꽤 많고, 이들 사진책을 가리켜 사진책이라 하는 일은 없습니다. 거의 언제나 그림책이라고만 이야기하고, 책을 나눌 때에도 그림책 갈래에만 넣습니다.

 도서관에서든 새책방에서든, 어린이책을 살필 때에 ‘사진책’을 따로 마련하는 곳은 없습니다. 도서관 분류법이 이와 같이 되었기에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갈래가 없다 할는지 모르는데, 막상 ‘어린이 도서관’에서조차 사진책을 따로 나누지 못합니다. 어린이 도서관이라 하더라도 어른 도서관에서 쓰는 나눔법을 쓰니까, ‘어린이책 빛깔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나눔법’이 되고 말아요.

 생각해 보면, 도서분류법이라는 나눔법에서는 ‘어린이책’은 아예 살피지 않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어린이책은 책으로 여기지 않는다 할 수 있고, 어린이가 읽는 책을 돌아보지 않는다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뿐 아니라 꽤 예전부터 ‘새로 나오는 책’ 가운데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책은 어린이책이지만, 정작 어린이책을 어떻게 나누고 갈라서 자리를 잡도록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온누리 수많은 어린이가 읽거나 즐기는 책을 어떻게 바라보거나 느끼면 좋을는지는 헤아리지 않는다고 하겠어요.

 한글판으로는 《새빨간 딸기》로 옮긴 사진책은 일본판으로는 《딸기씨》입니다. 일본에서 나온 책이름은 ‘딸기씨’이지 ‘빨간 딸기’도 ‘새빨간 딸기’도 아닙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새빨간 딸기》를 넘기면, 딸기 겉에 씨앗이 어떻게 붙었으며, 씨앗은 몇 알이나 되고, 이 씨앗을 흙에 떨어뜨려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는 흐름에다가, 씨앗 하나에서 딸기가 어떻게 꽃을 피운 다음 열매를 맺는가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빛깔이 빨간 딸기라는 열매’가 아니라 ‘씨앗 하나와 딸기가 얽힌 삶’을 보여주는 사진책입니다. ‘딸기는 빨갛다’를 보여주는 사진책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먹는 딸기 또한 씨앗 하나에서 태어난다’를 보여주는 사진책입니다.

 한글판 《새빨간 딸기》를 살피면, 책 뒤쪽에 붙인 간기에 ‘한글로 옮긴 사람과 한국 출판사 일꾼 이름’만 잔뜩 적습니다. ‘이 사진책에 사진을 넣은 사진쟁이 이름’조차 ‘한글로 밝히지’ 않습니다. 그래도 영어로 ‘Takashi Katano and others’라고 적었기 때문에 ‘카타노 타카시’라는 이름을 찾을 수 있습니다만, 일본사람 이름을 한자로 함께 밝히지 않으면, 이이가 누구인가를 알아보기 몹시 힘듭니다.

 어른책을 만드는 사진쟁이라 할 때에도 이렇게 사진쟁이 이름을 안 밝힐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만든 어린이 사진책이라 할 때에도 이처럼 사진쟁이 이름을 안 밝혀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아이하고 《새빨간 딸기》를 즐겁게 읽었습니다. 아이는 혼자서도 책을 넘깁니다. 이 사진책을 보면 소담스러운 딸기를 냠냠짭짭 하고 싶으나, 아직 우리 시골마을에서도 딸기는 멀었습니다. 이제 겨우 3월을 살짝 넘었으니, 지난해 멧딸기가 내린 씨앗이 새봄에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새 줄기를 올리어 꽃을 피우기까지 꽤 기다려야 합니다. 아이한테 이야기합니다. “딸기를 먹고 싶어도 우리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해. 앞으로 한두 달 있으면 멧자락마다 가득 핀 딸기꽃을 만날 수 있어.”

 《새빨간 딸기》는 딸기가 먹음직스럽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일본판 《いちごのたね》라는 이름 그대로 ‘딸기씨’를 차근차근 살펴보는 ‘과학 그림책’입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어린이책 나눔법이 제대로 자리잡는다면 ‘과학 사진책’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마땅한데, 이 사진책은 ‘아이들한테 과학이란 무엇이며 자연이란 어떠하고 사람은 또 어떠한가’를 하나하나 느끼도록 돕습니다. 지식이나 이론으로 보여주는 과학이 아닙니다. 정보나 학습으로 머리속에 집어넣는 책 또한 아닙니다. 짤막한 글줄 몇에 두 쪽을 가득 채우는 큼지막한 사진을 하나둘 보여주면서 ‘내 둘레 흔하거나 너른 자연 터전’을 곱게 껴안을 수 있기를 바라는 사진책입니다.

 딸기씨 이야기는 글로도 알뜰히 적바림해서 나눌 수 있습니다. 딸기씨 한살이는 그림으로도 알뜰살뜰 그려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책 《いちごのたね》처럼 오로지 사진으로 가만히 나눌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글이나 그림보다 사진으로 보여줄 때에 가장 어울린다고 느끼기에 이렇게 사진책으로 묶었다 할 만합니다. 글도 좋고 그림도 좋으나, 딸기씨 한살이 이야기는 사진일 때에 가장 아름다우며 사랑스럽다고 여기며 ‘어린이 사진책’을 일군다 하겠습니다.

 마크로렌즈가 달린 사진기여야 딸기 한 알을 더 낱낱이 찍을 수 있는지 모릅니다. 여느 사진기로는 딸기 한살이를 담기 어려울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딸기씨를 아주 크게 보이도록 잡아당긴 사진 한두 장을 빼고는, 이 사진책에 실린 사진은 모두 ‘여느 값싼 사진기’로도 얼마든지 찍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어린이도 손쉽게 다룰 만한 여느 값싼 사진기’로 딸기씨 한살이 이야기를 담아서 신나게 나눌 수 있겠지요.

 딸기씨를 맺기 힘들다 하지만, 딸기씨를 심어 딸기씨가 뿌리를 내려 잎을 틔우는 삶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어미그루 줄기를 옮겨심어 딸기를 키워 볼 수 있습니다. 들판이나 멧자락에서 자라는 들딸과 멧딸을 찾으러 다닐 수 있습니다. 어린이 눈높이와 어린이 마음밭과 어린이 삶자락으로 어우러질 때에, 어린이부터 어른 누구나 살가이 즐기며 껴안을 좋은 사진책 하나 태어납니다. 사진책 《새빨간 딸기》 또한 멋스러운 다큐사진입니다. (4344.3.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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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1-03-0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 딸기가 저렇게 열리는군요. 저도 처음 봤네요. 이 책은 시리즈일까요? 좋은 사진책이네요.

숲노래 2011-03-07 10:47   좋아요 0 | URL
좋은 시리즈인데.. 다 일본책이랍니다 ㅠ.ㅜ
고래 사진책은 얼마나 훌륭한지 모릅니다.
게다가... 학습지 별책부록 같은 거라서,
헌책방에서만 사서 볼 수 있어요...
 

사진읽기 삶읽기 사람읽기 3
― 일본 사진책, 한국 사진책


 일본 사진쟁이 ‘시노야마 기신(篠山紀信)’ 님이 담은 《실크로드》 여덟 권을 봅니다. 일본에서 1982년에 나온 여덟 권짜리 사진책에 붙은 일본 이름은 《シルクロ-ド》(集英社)입니다. 우리는 ‘비단길’이라 일컫는 문화흐름이 어디에서 비롯하여 일본까지 닿았는가를 밝히는 사진책입니다.

 사진책 1권은 “일본”이고 2권은 “한국”이며 3권과 4권은 “중국”입니다. 파키스탄과 이란과 이라크와 이집트와 아프가니스탄과 터키 들을 거쳐 그리스와 이탈리아로 가며 마무리를 짓습니다. 책은 한 권에 5800엔. 요즈음 돈으로 친다면 6만 원 꼴이라 할 텐데, 책 크기와 무게와 엮음새와 사진결을 보았을 때에, 2011년에 이 책을 새로 찍는다면 아무래도 1만 엔, 곧 10만 원이 웃도는 값이 붙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진책 여덟 권이면 자그마치 100만 원 가까이 되는 셈이겠다고 느낍니다.

 일본에서 만든 ‘비단길 사진책’이 100만 원쯤 된다면, 이러한 사진책을 거리낌없이 즐겁게 장만할 한국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있을 수 있을까요. 아니, 이러한 사진책은 한국땅 새책방 책꽂이에 보란 듯이 꽂힐 수 있는가요. 한국땅 도서관 가운데 100만 원쯤 될 일본 사진책 여덟 권을 기쁘게 맞아들여 갖춘 다음, 널리 읽도록 알리거나 보여줄 곳이 있으려나요.

 헌책방에서 시노야마 기신 비단길 사진책을 15만 원을 치르며 삽니다. 매장에서 구경할 수 있는 헌책방이 아닌 인터넷에 목록만 올려진 헌책방에서 삽니다. 매장에서 이 사진책을 보았다면 15만 원이라는 값이 대단히 싸게 붙인 책값이라고 느낍니다. 인터넷에서 목록으로만 보니, 책크기를 알 수 없고, 쪽수도 모르며, 엮음새를 알 길이 없는데다가, 어떤 사진을 담았는지조차 모릅니다. 시노야마 기신이라는 분이 찍은 사진을 생각한다면 이 사진책을 15만 원 들여 장만한다 하더라도 아쉽다 여길 일이 없을 테지만, 오래도록 망설이거나 머뭇거려야 했습니다.

 한국사람이 한국 모습을 담아 큼직한 판으로 내놓는 사진책에 붙는 값을 돌아봅니다. 그다지 사랑스레 찍지 못한 작품밖에 안 되는 녀석을 ‘사진’이라 이름붙이며 거들먹거리는 숱한 사진책을 곱씹습니다.

 시노야마 기신 님 비단길 사진책 가운데 2권인 “한국”을 읽습니다. 옆지기하고 아이하고 셋이 함께 책을 펼쳐 읽습니다. 제법 잘산다 싶은 사람들 살림집이 많이 나오지만, 잘산다 싶은 사람이건 가난하다 싶은 사람이건, 꾸밈없이 마주하거나 들여다보면서 사진으로 담는 한국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사람을 사진으로 못 담거나 안 담습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사람 스스로 잘사는 한국사람이든 못사는 한국사람이든 그럭저럭 살아가는 한국사람이든 굶주리는 한국사람이든 사진으로 못 담거나 안 담습니다.

 사진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다음 다시 읽으며 생각합니다. 한국사람 눈으로 볼 때에 이 사진책에 나오는 한국사람은 먹고사는 걱정을 그렇게까지 크게 안 하는 사람이라 여길 만하지만, 일본사람 눈으로 보았을 때에는 ‘퍽 가난한’ 사람이 되겠지요. 한국사람이 비싼 요리집 같은 데에 어떻게 섣불리 들어가겠습니까. 1982년에 사진책이 나왔고, 책에 실린 사진은 1970년대 끝무렵부터 1980∼1981년 사이에 찍은 사진이리라 봅니다. 요즈음에도 일본돈과 한국돈을 견줄 때에 한국돈 값어치는 일본돈보다 크게 낮지만, 지난날에는 한국돈 값어치가 더욱 낮았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나 더 생각하고 살피면, 시노야마 기신 님은 한국사람 삶자락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흑백필름’을 하나도 안 씁니다. 모조리 ‘무지개빛필름’만 씁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시노야마 기신 님이 바라보는 모습은 오로지 ‘무지개빛필름’에 담겨요.

 사진을 함께 보던 옆지기가 문득 말합니다. “이 사람은 예쁘게 찍는 사람이네.”

 사진책을 세 번째 다시 읽습니다. 옆지기가 문득 뱉은 말을 되새깁니다. 그래, 문득 뱉은 말이란 사진을 보면서 저절로 느낀 이야기입니다. 저절로 느끼기로 “예쁘게 찍힌 사진”이라면, 시노야마 기신이라는 사진쟁이는 한국을 찍든 일본을 담든 파키스탄을 돌아보든, ‘예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터전을 예쁜 모습과 예쁜 이야기 그대로 담아서 나누고픈 마음’이겠구나 싶습니다. 스스로 예쁘게 살아가고픈 마음이기에, 사람들을 마주할 때에 늘 예쁜 매무새요, 이 예쁜 매무새대로 사람들한테 다가서면서 ‘예쁘구나’ 하고 느낄 만한 사진을 낳는구나 싶습니다.

 옆지기는 “한국” 사진 가운데 무엇보다도 ‘아기를 안을 때에 쓰는 포대기 빛깔’을 눈여겨봅니다. “여태까지 포대기 사진을 칼라로 찍은 사람을 못 봤어요.” 하고 말합니다. 옆지기가 이렇게 말하기 앞서까지 나부터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을 찍은 사진을 수만 장, 아니 수십 수백만 장을 보았을 텐데, 이들 사진 가운데 무지개빛 감도는 필름이든 메모리카드로 담은 사진쟁이는 아직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예전에는 무지개빛필름이 꽤 비쌌기 때문에 흑백필름을 쓴다고도 했지만, 사진쟁이로서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삶’을 담으려 할 때에는 무지개빛필름을 써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골목 안 풍경》을 담은 김기찬 님도 그지없이 아름다운 골목사람 골목삶을 마주할 때에는 차마 흑백필름을 쓰지 못했어요. 김기찬 님 또한 무지개빛필름으로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담았어요.

 일본 사진쟁이는 한국을 사랑하는 넋으로 사진책을 일굽니다. 한국 사진쟁이는 일본을 사랑하는 얼로 사진책을 일구지 못합니다. 일본 사진쟁이는 일본이든 한국이든 당신들 스스로 사랑하는 결을 고이 아끼면서 사진을 찍어 사진책을 엮습니다. 한국 사진쟁이는 한국이든 일본이든 우리 스스로 사랑하는 무늬를 좀처럼 못 느끼는 나머지 사진이든 사진책이든 너무 어둡거나 한쪽으로 치우치고 맙니다.

 사진은 사랑입니다. 사진책은 사랑으로 맺은 열매입니다. 사진은 사랑씨앗입니다. 사진책은 사랑씨앗이 새롭게 뿌리를 내리며 줄기를 올리고 잎을 틔운 다음 피우는 남다른 꽃봉우리예요.

 한국 사진쟁이가 찍은 아름다운 한국사람 ‘이야기’를 만나고 싶습니다. 예쁜 마음과 착한 손길과 고운 넋과 참다운 매무새로 한국사람이 어디에서 어떻게 복닥이거나 어깨동무하면서 웃고 우는 이야기를 이루는지 사진으로 고마이 만나고 싶습니다. (4344.3.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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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삶읽기 사람읽기 2
― 사진책 함께 읽기


 책이든 먹을거리이든 뜨개바늘이든 자전거이든 ‘함께 사기(공동구매)’를 하는 분들이 무척 많습니다. 여럿이 한꺼번에 장만한다 하면 조금 더 값싸게 살 수 있다고 해서 ‘함께 사기’를 합니다.

 사진책이 너무 비싸다며, 사진책 하나 장만하기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작고 값싸게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이 사서 읽도록 해 준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작고 값싸게 만든 사진책조차 사진을 찍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겁게 장만해 주지 않기 일쑤입니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사진책은 몹시 안 팔리는 책이다 보니, 사진책 만들어 내놓는 데에 돈이 많이 들고, 이렇게 많이 드는 돈 걱정을 하는 한국에서는 사진책이 참 비싼 책이라고 느낄밖에 없습니다.

 꼬인 실타래를 누군가는 풀어야 할 텐데, 좀처럼 풀릴 낌새가 보이지 않습니다. 더 수수하며 더 알차며 더 옹근 사진책을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조금 비싸거나 조금 짐스럽거나 조금 벅차더라도 푼푼이 돈을 그러모아 한 달에 한 권쯤 사진책을 장만하는 손길을 만나기 힘듭니다.

 꽤 값나가는 사진책이라 하더라도 한 권에 5∼7만 원입니다. 날마다 이천 원씩 모으면 다달이 한 권쯤 장만할 수 있습니다. 나라밖 좋은 사진책 가운데에는 만 원을 살짝 넘는 책부터 삼사만 원짜리 책이 꽤 많습니다. 이제는 인터넷책방에서 나라밖 책 주문을 잘 받아 주니까, 인터넷책방에서 이런저런 나라밖 사진쟁이 이름을 살피면서 한 권씩 받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사진쟁이 백 사람 사진책을 하루아침에 사들이려 하면 살림이 무너집니다. 사진쟁이 백 사람 사진책을 한꺼번에 장만한다 해 보았자, 이 사진책을 하나하나 살피거나 받아들인다 할 수 없습니다.

 없는 살림에도 더욱 힘을 쏟아 다달이 서너 권이나 대여섯 권씩 사진책을 장만할 수 있겠지요. 없는 살림이니까 한 달에 한 권씩만 장만할 수 있겠지요. 있는 살림이라면 날마다 한 권씩 장만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이 사서 읽는다고 ‘사진 읽는 눈’이 훨씬 훌륭해지지 않으며, 더 적게 사서 읽기에 ‘사진 읽는 마음’이 더 얕지 않습니다. 사진책 한 권을 읽더라도 내 마음가짐과 매무새가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살림이 넉넉하다면 다달이 여러 권을 사서 여러 권을 가만히 견주면서 읽습니다. 살림이 팍팍하다면 다달이 꼭 한 권만 사서 이 한 권을 한 달 내내 구석구석 샅샅이 살피면서 서른 번이고 삼백 번이고 거듭거듭 읽습니다.

 여러 가지 사진책을 나란히 놓고 견주어 읽을 때에는 이렇게 읽는 대로 ‘사진 읽는 눈썰미’를 키웁니다. 한 가지 사진책을 오래도록 살피며 파헤칠 때에는 이렇게 읽는 대로 ‘사진 읽는 마음결’을 가다듬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람을 같은 사진기로 찍어도 저마다 다 다른 사진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같은 사진책을 같은 자리에서 읽어도 사람마다 다 다른 사진넋을 품겠지요.

 나는 내 나름대로 좋은 알맹이를 얻으면 됩니다. 나는 내 깜냥껏 사랑스러운 열매를 맺으면 됩니다. 내 나름대로 붙잡은 사진감에 따라 사진책을 만들고 싶은 꿈은 ‘사진책 백 권을 만들어’ 이룰 수 있는 한편, ‘사진책 한 권을 만들어’ 이룰 수 있습니다.

 사진책을 백 권 만들어 내야 훌륭하다 할 수 없습니다. 사진책을 한 권 만들었기에 어설프다 할 수 없어요.

 사진책을 천 권이나 만 권 장만하여 읽었기에 더 깊거나 어여쁜 사진눈을 북돋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진책을 백 권이나 다문 열 권을 읽었으니까 더 어수룩하거나 못난 사진눈으로 나뒹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는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목숨이나 자연이나 풍경이나 물건과 마주하는 내 삶을 찍습니다. 사진책을 읽을 때에도 이와 같습니다. 언제나 내 삶에 따라 사진을 찍고 사진을 읽습니다. 내 삶을 찍으며 내 삶을 읽습니다. 내가 오늘 선 자리를 돌아보고, 내가 어제 길은 길을 되씹으며,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나날을 꿈꿉니다.

 요즈막은 사진찍기에 크게 마음을 쏟아 신나게 사진을 즐기다가, 나중에 하루이틀 흘러 사진이 재미없다고 느끼면 사진기를 팔아치울 수 있습니다. 사진기를 샀다가 파는 사람이 꽤 많아요. 인터넷을 뒤지면 새 사진기를 팔겠다고 내놓는 수많은 사람들 글을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마, 온누리에 손꼽힌다는 분들 아름다운 사진책을 샀어도 이 사진책을 ‘누구 사 갈 사람 없어요?’ 하며 내놓는 분이 퍽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한 번 헤아려 봅니다. 사진을 좋아하려다가 사진하고 멀어진다고 해서 나쁜 일이 되지 않습니다. 좋다는 사진책을 애써 장만했다가 팔려고 내놓는 일은 슬픈 일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좋다는 사진책을 누군가 애써 장만했’기 때문에, 이 사진책을 헌책방에 내놓든 인터넷장터에 내놓든, 우리 나라에 ‘좋다는 사진책 한 권’이 더 돌고 돌 수 있습니다. 새책으로 사서 헌책으로 내놓아 주는 사진책인 만큼, 두 번째로 이 사진책을 사서 읽을 사람은 조금 값싸게 사서 읽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 세 번째나 네 번째로 사서 읽을 사람이라면 다문 100원이나 500원이라도 조금 더 값싸게 사서 읽을 수 있겠지요.

 누군가 내놓을 사진책을 조금 더 값싸게 사들이자며 기다리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저, 이렇게 기다리더라도 나부터 ‘내가 사진책 한 권 한 달에 한 권쯤’ 사서 읽으며, 이 사진책을 스스럼없이 헌책방에 슬쩍 내놓을 수 있는 매무새가 되어 본다면 퍽 즐거우며 아름다우리라 느낍니다. (4344.2.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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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으로는 무엇을 담을 수 있는가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16] 후타가와 유키오(二川幸夫), 《日本の民家》(A.D.A. EDITA Tokyo,1980)



 사진기를 늘 갖고 다닌다 해서 내가 바라거나 꿈꾸는 온갖 모습을 사진으로 이루지는 못합니다. 사진기를 어디에나 들고 다닌다 해서 대단하거나 놀랍거나 훌륭하다 싶은 모습을 사진으로 일구지는 못합니다.

 사진기를 언제나 갖고 다니는 사람은 나 스스로 바라보거나 부대끼거나 겪거나 느끼는 삶을 차근차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사진기를 어디에서나 손에 쥐는 사람은 내 삶에 어떤 이야기가 깃드는가를 가만히 느끼면서 이 삶이야기를 사진이야기로 다시 태어나도록 이끕니다.

 사진이란 그리 멋진 일이 아닙니다. 글이나 그림이 그다지 멋스러운 일이 아니듯, 사진 또한 썩 멋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진은 그저 사진이고, 글은 그저 글이며, 그림은 그저 그림입니다. 사진이라서 더 손꼽을 만한 문화이지 않고, 글이라서 더 돋보이는 예술이 아니며, 그림이라서 더 아름다운 갈래가 아닙니다. 우리가 저마다 꾸리는 하루하루를 가만히 담는다든지 차분히 엮는다든지 알알이 빚도록 돕거나 이끄는 문화이면서 예술이고 삶입니다.

 어린이문학을 하던 권정생 님은 ‘동화 쓴다고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보지 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한테 손꼽히는 작품이 몇 가지 있다 해서 당신이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이 당신 작품을 좋아하건 말건 그리 대수롭지 않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정작 대수로이 여길 대목은 나 스스로 내 삶을 얼마나 알차며 아름다이 일구느냐일 뿐입니다. 남들이 나를 우러르거나 섬긴다 해서 내가 똑바르거나 훌륭하거나 사랑스럽거나 믿음직할 수 없습니다. 남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깎아내리거나 손가락질한대서 내가 멍청하거나 어리석거나 덜 떨어질 수 없습니다.

 나는 나요, 내 사진은 내 사진입니다. 나는 내가 즐기는 사진을 할 사람이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삶을 일굴 사람입니다.

 가장 뛰어난 글이나 그림은 없습니다. 가장 뛰어난 사진은 없습니다. 때때로 ‘광고사진 가장 잘 찍는’이라든지 ‘사람사진 가장 잘 찍는’이라든지 ‘다큐사진 가장 잘 찍는’처럼 어이없는 꾸밈말을 앞에 붙이는 사진쟁이가 있습니다. ‘가장 잘 찍는’이란 참 쓸데없는 말이지만, ‘아주 잘 찍는’이나 ‘참 잘 찍는’도 참 부질없는 말입니다. 그냥 ‘찍는’ 사진이지, 잘 찍는 사진이 될 수 없습니다. 그예 하루하루 살아가는 내 나날이지, 잘 살거나 못 살거나 가를 수 없는 내 내날입니다.

 기쁜 날은 기쁜 대로 좋습니다. 슬픈 날은 슬픈 대로 좋습니다. 어느 날은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지겠지요. 어느 날은 밥을 태우겠지요. 어느 날은 목돈이 들어와 마음껏 돈을 쓰겠지요. 어느 날은 살림돈이 바닥나서 혼쭐나겠지요.

 어떠한 나날일지라도 내 삶이요 어떠한 모습이더라도 내 얼굴입니다. 틀이 조금 기울어지거나 초점이 살짝 어긋나더라도 내 사진입니다. 빛이 조금 안 맞거나 무언가 밍숭맹숭하더라도 내 사진입니다. 어떠한 모습이든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살포시 담을 때에 비로소 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가만히 담지 못하면서 틀이 빈틈없거나 초점이 또렷하거나 빛이 잘 맞거나 꽉 짜인 작품이라 한다면, 이때에는 무슨무슨 겉치레 작품은 되겠으나, 사진이 되지는 않습니다.

 후타가와 유키오(二川幸夫) 님이 사진을 찍고 이토 테이지(伊藤ていじ) 님이 글을 넣은 두툼한 사진책 《日本の民家》(A.D.A. EDITA Tokyo,1980)를 봅니다. 제주섬 제주시청 둘레 이도1동에 자리한 헌책방 〈책밭서점〉에서 만난 이 사진책을 장만하느라 25만 원을 썼습니다. 헌책방 헌책 하나 값이 25만 원이기에 놀랄 분이 있으리라 보는데, 이 사진책 하나는 25000엔이기도 합니다만, 25만 원이 아닌 50만 원 값을 붙이더라도 제값을 톡톡히 하는 사진책이라고 느껴 주머니를 탈탈 털었습니다. 헬무트 뉴턴 님 사진책보다 값이 더 비싼 이 사진책을 장만하면서 생각합니다. 헬무트 뉴턴 님 사진책은 돈이 되면 언제라도 살 수 있습니다. 후타가와 유키오 님 사진을 담은 《日本の民家》는 돈이 있어도 두 번 다시 사기 어렵습니다. 일본 헌책방이라면 이 사진책을 찾을 만할까요. 한국 헌책방에 이 사진책이 언젠가 다시 한 번 들어올 날이 있을까요.

 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으레 서양 사진쟁이 서양 옛집 사진만을 놓고 생각합니다. 으젠느 앗제가 찍은 파리라든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찍은 뉴욕이라든지 하면서, 이들 작품을 일컬어 ‘세계 사진이 흘러온 발자취’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 사진 발자취’ 곁에 ‘세계 사진 발자취’ 꽁무니에도 끼지 못한다는 “일본 여느 살림집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습니다. 후미진 골목이나 으리으리한 도심지하고는 동떨어진, ‘흙하고 벗삼아 조용히 살아오던’ 사람들 시골집이나 멧골집이나 바닷가집 사진이 있습니다.

 도시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자취입니다. 시골은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손때입니다. 도시는 어느 만큼 흐르고 나면 옛집이 스스로 무너지거나 사람손으로 허뭅니다. 도시에서 무너지거나 허무는 집이란 건축쓰레기입니다. 시골은 어느 만큼 흐르면 흙으로 고스란히 돌아갑니다. 시골에서 허물어지거나 허무는 집이란 쓰레기 아닌 거름입니다.

 아주 마땅합니다만, 도시에서 도시사람들 도시 살림살이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는 도시 내음과 도시 빛깔이 깊이 배어듭니다. 시골에서 시골사람들 시골 살림살이를 사진으로 실을 때에는 시골 내음과 시골 빛깔이 깊이 스며듭니다.

 사진으로 스미는 내음이요 빛깔이면서, 사진기를 쥔 사진쟁이한테 함께 배는 내음이면서 빛깔입니다. 이는 사진을 읽는 사람한테도 나란히 스미거나 뱁니다. 도시사람 도시 이야기를 바라보는 사람한테는 도시 내음과 도시 빛깔이 스밉니다. 시골사람 시골 이야기를 마주하는 사람한테는 시골 내음과 시골 빛깔이 뱁니다.

 사진쟁이가 사진기를 들고 다니면서 손에 쥐는 곳에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사진쟁이는 사진에 담을 사람들 삶자락 이야기를 언제 어디에서 어느 만큼 사람들하고 사귀거나 만나는가에 따라, 곧 ‘사진기 쥐고 움직이며’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깊이와 너비에 걸맞게 사진을 낳습니다. 사진기만 쥐면서 막상 사람들하고 사귀지 못한다면, 이러한 몸가짐과 삶자락이 사진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사진기를 쥐면서 사람들하고 오붓이 어깨동무를 한다면, 이러한 매무새와 삶무늬가 사진에 남김없이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사진기를 느끼지 않을 만큼 사람들 사이에서 녹아들어 함께 지내는 이웃이 되어 살아간다면, 이러한 모양새와 삶결이 사진에 알알이 깃듭니다.

 사진책 《日本の民家》는 “일본 살림집”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붙여야 할 만한, 붙일 수 있을 만한 사진책입니다. ‘세계 사진 발자취’에서 이 사진책을 끼워 주든 안 끼워 주든 이 사진책은 ‘사람이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어 살림을 꾸리는 나날’을 사진으로 알뜰살뜰 적바림한 빛살 좋은 사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나저나, 이웃나라 일본에는 “일본 살림집” 사진책이 제법 있습니다만, 이 나라 한국에는 예나 이제나 아직 “한국 살림집”을 말하는 사진책은 거의 안 보입니다. 안승일 님이 일군 《굴피집》(산악문화,1997)을 빼고는 좀처럼 “한국 살림집”다운 한국 살림집 이야기를 펼친다 싶은 한국 사진책은 마주하기 힘듭니다. 도시 골목동네 살림집이든, 도시와 시골을 뒤덮은 아파트 살림집이든, 시골에서 흙을 일구거나 고기를 잡는 사람들 살림집이든, “여느 사람 보금자리”를 여느 사람 눈썰미와 손길과 다리품으로 담는 사람은 도무지 찾아보기 힘듭니다. (4344.2.2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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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책방에 안 들어가는가 보다. 하는 수 없이 마이페이퍼로 띄운다) 



 인천 동구에서 공장을 찍은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14] 김보섭, 《시간의 흔적, 동구의 공장들》(성광디자인,2010)



 인천 동구에는 공장이 참 많습니다. 인천 중구에도 공장이 참 많고, 남구에도 공장이 몹시 많습니다. 인천 부평구에도 공장이 있을 테지요. 그러면, 인천시청 둘레에는 공장이 얼마나 있을까요. 인천 연수동이나 계산동이나 구월동이나 송도처럼 아파트가 잔뜩 들어선 곳 둘레에는 공장이 어느 만큼 있으려나요.

 인천 동구나 중구나 남구에 깃든 공장들은 으레 살림집 옆에 담벼락을 드리우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인천 동구나 중구나 남구에 깃든 공장들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공장 둘레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할 만하고, 가난하고 힘여린 사람들 살림집 있는 동네 한복판이나 기스락에 공장이 생겼다고 할 만합니다.

 오늘날 우리 터전에서는 공장이 없으면 하루도 도시살림을 꾸릴 수 없습니다. 여느 시골살림이라면 경운기·콤바인·트랙터·짐차가 없어도 흙을 일굴 수 있습니다. 기계가 없으면 낫과 호미와 괭이와 보습을 쓰면 됩니다. 전기 없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시골이요 꾸릴 수 있는 시골살림입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전기 없이는 하루는커녕 한 시간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서울이나 부산처럼 큰도시에서 전기가 한 시간만 끊어진다고 생각해 보셔요. 아마 어마어마하게 끔찍스러운 싸움판이 벌어지겠지요. 은행이 멈추고 전철이 멎으며 지하상가 불이 꺼지고 높은건물 승강기를 못 타며 백화점이 깜깜해지면 어찌 되겠습니까. 회사마다 컴퓨터로 모든 볼일을 볼 텐데 어떻게 되지요. 공장은 또 어찌 되려나요.

 전기를 먹으면서 살아가고, 전기를 먹으려고 끝없이 석유나 우라늄을 때며, 석유나 우라늄을 때자면 지구별 땅속 깊이 자꾸자꾸 파야 하고, 땅속 깊이 파헤친 터전은 환경이 무너질 뿐 아니라 석유나 우라늄을 태우며 엄청나게 많은 재와 쓰레기가 새로 나옵니다. 도시에서는 쓰레기봉투를 쓴다지만 쓰레기봉투도 비닐이요, 분리수거를 한다지만 제대로 나누어 버리지 못할 뿐더러, 페트병에 붙은 종이딱지를 벗겨 페트병 안쪽을 씻고 뭐를 하자면 다시 쓰거나 살려서 쓸 때에도 돈이 참 많이 듭니다. 이리 보든 저리 보든 도시살림이란 돈 놓고 돈 쓰기입니다. 인천 동구·중구·남구처럼 지붕낮은 골목집들 오글오글한 둘레에 깃든 우람한 공장을 쉼없이 돌려야, 도시는 숨을 트고 도시는 살아나며 도시는 꿈을 꿉니다. 공장 없는 도시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요즈음, 공장은 시골로 옮깁니다. 아니, 진작에 공장들이 시골로 옮겼습니다. 우리 식구들 살아가는 멧골자락 둘레에도 빈틈없이 공장이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땅값이 오르며 변두리 골목동네나 달동네라 하던 곳조차 아파트가 들어서야 하니까 공장이 쫓겨납니다. 나라밖에서 우리와 살빛이 비슷한 구리빛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여 시골자락에 가두어 놓듯 하면서 공장을 돌립니다. 이렇게 해도 공장 임자는 돈벌이가 시원찮으니 아예 중국에 공장을 지어 더 싼 일삯으로 더 많은 일꾼을 한꺼번에 부려 더 크게 돈벌이를 하고자 꾀합니다.

 그렇지만, 시골이나 중국에 공장을 잔뜩 지었어도, 인천에는 공장이 꽤 많이 남습니다. 왜냐하면 인천 곁에는 서울이라는 엄청나게 큰 도시가 있고, 서울이라는 도시와 둘레에는 ‘흙을 일구어 먹을거리를 마련하거나 공장을 돌려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얼마 없거나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인천시청이나 연수동이나 송도 같은 데에 공장이 깃들지 못하듯, 서울시청이나 광화문이나 종로나 강아랫마을이나 송파구 같은 데에 공장이 깃들지 않습니다. 인천 동구·중구·남구 공장들은 인천 동구·중구·남구 골목집들한테는 매캐한 먼지 섞인 바람과 물을 베풀면서 인천땅 아파트사람하고 서울땅 아파트사람한테 값싼 물건을 베풉니다.

 이러한 공장 자리를 오래도록 가만히 바라본 인천 사진쟁이 한 사람이 인천에 깃든 공장 가운데 동구에 있는 공장 몇 군데를 하나하나 살피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책 《시간의 흔적, 동구의 공장들》이 태어났습니다.

 공장 둘레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공장 둘레에는 반드시 사람이 있습니다만, 공장 사진에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공장은 기계로만 돌아가지 않습니다. 기계를 움직이는 사람이든, 공장을 돌리며 돈을 버는 사람이든 꼭 있습니다. 그러나 공장 안팎에 어떠한 사람이 얼마나 있고, 어떤 모습으로 일하거나 쉬거나 놀거나 살아가는지를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커다란 공장 굴뚝뿐 아니라 공장 담벼락과 설비에 묻혀 사람 그림자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도 이 커다랗거나 우람하거나 으리으리하거나 대단한 공장 기계와 설비는 사람들 손길이나 손때를 타며 만들어졌습니다. 한 해 두 해 흘러 첨단사회가 되는 동안 이 도시에 있던 공장은 저 시골로 가고, 저 시골에 있던 공장마저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동남아시아로 옮기지만, 공장은 어김없이 있습니다. 도시가 커지면 커질수록 공장은 더 커져야 하고, 공장을 굴리는 사람들은 더 돈을 벌어야 합니다.

 공장은 돈을 거머쥔 사람들 살림집하고는 자꾸자꾸 멀어집니다. 아파트를 지으려 해도 중장비뿐 아니라 중장비를 써서 붓고 붙이며 날라야 하는 시멘트며 원자재며 쇠붙이 들이란 공장에서 다듬거나 만듭니다. 몇 억이나 수십 억에 이르는 비싸다는 아파트에 들여놓는 텔레비전이나 냉장고는 누가 어디에서 만들까요. 아이들한테 사먹이는 과자 한 봉지는 누가 어디에서 만드나요. 가난한 사람이 먹어야 한다는 값싼 라면은 어디에서 만들지요. 무슨무슨 폰인지 하는 손전화는 누가 어디에서 만들려나요. 밥그릇은, 젓가락은, 옷가지는, 신은, 자동차는, 자전거는 다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요.

 공장은 공장에서 만드는 물건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살림집 가까이에 있어야 합니다. 발전소는 전기를 많이 써야 하는 사람들이 지내는 보금자리 둘레에 있어야 합니다. 쓰레기를 파묻거나 태우는 곳은 시골이 아니라 도시여야 합니다. 공장과 발전소와 쓰레기터는 왜 아파트 둘레에 놓지 않을까요. 공장과 발전소와 쓰레기터는 왜 가난한 사람들 살림집 둘레나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들 논밭 둘레에 마련해야 하나요.

 내 어린 날을 더듬어 보면, 나와 동무들 살던 동네 옆에는 늘 공장이 있었습니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 옆에는 언제나 공장이 가득했습니다. 학교로 오가는 길 사이사이 숱한 공장을 지나야 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앞서부터 이 공장들은 움직였고, 내가 고향집을 떠나 시골로 옮겼어도 이 공장들은 우람한 굴뚝에서 매캐한 연기를 내뿜고 옆구리로는 코를 찌르는 물을 내놓습니다.

 오늘날 인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인천에 공장이 얼마나 많고, 이 많은 공장들이 골목집 둘레에 얼마나 가까이 맞닿았는가를 헤아리거나 깨닫거나 느끼는 사람은 얼마쯤 되려나 궁금합니다. 인천에도 아파트가 참 많고, 새로 짓는 아파트 또한 많으며, 이제는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투성이라 할 텐데, 아파트 유리창 하나를 어디에서 만들고, 아파트 유리창을 만드는 공장 둘레에서 살던 사람은 빨래를 어떻게 널어야 했는지를 돌아볼 만한 가슴이나 마음을 건사하는 사람은 얼마쯤 있으려나 궁금합니다.

 공장에서도 시간이 흐른 자국을 찾습니다. 공장은 시골이나 중국으로 많이 떠나기도 했지만, 인천땅 동구와 중구와 남구 곳곳에 아직 참 많이 남았습니다. 이 공장들 가운데에는 돈벌이가 안 맞아 멈춘 기계도 제법 있으나, 힘차게 돌아가는 기계 또한 많고, 힘차게 매연과 쓰레기물 내놓는 기계도 몹시 많습니다.

 인천 동구에 있는 공장을 인천 연수동에서 살아가는 사진쟁이 한 사람이 알뜰히 담아서 찬찬히 보여줍니다. 사진쟁이 김보섭 님은 사진책 첫머리에서 말합니다. “인천은 서울의 주변도시로서 많은 공장들이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타 지역과 달리 공장과 갯벌이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1957년에 설립된 한국유리(판유리)가 군산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공장이 철거되었다. 우리의 삶과 밀접한 인천의 상징인 슬레이트 구조물이 부서지는 것을 1년 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굴뚝과 공장과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이 독특한 바닷가 공장 지대를 자연과 어우러진 문화지역으로 재탄생시킬 수 없을까 생각해 본다.” (4344.2.16.물.ㅎㄲㅅㄱ)


― 시간의 흔적, 동구의 공장들 (김보섭 사진,성광디자인 펴냄,2010.3.10./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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