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삶
 ― 사진에 찍히다


 늘 세 식구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아버지입니다. 모처럼, 아주 모처럼 아이 어머니가 아버지 사진을 찍습니다. 둘째를 품에 안고 첫째랑 노닥거리자면 아버지는 사진기를 손에 쥘 수 없습니다. 뜨개질을 하던 어머니가 뜨갯감을 살짝 내려놓고는 ‘어머니를 뺀’ 세 식구 노닥거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진으로 찍히면서 ‘아, 나도 이렇게 사진으로 찍히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 어머니가 바라보는 아이 아버지는 어떤 모습 어떤 이야기가 될까? 아니, 내가 저 사진기 빛을 잘 맞춰 놓았나?

 

 나는 디지털사진기도 수동으로 맞춰서 찍습니다. 언제나 빛과 그늘을 살펴 조리개값과 셔터빠르기뿐 아니라 화이트밸런스나 색감까지 그때그때 바꾸면서 찍습니다. 마침, ‘아버지를 뺀’ 세 식구 복닥이는 모습을 찍은 지 얼마 안 된 때에 ‘어머니를 뺀’ 세 식구 노닥거리는 모습을 찍는 터라, 아이 어머니가 사진기를 그냥 들어 그냥 찍어도 빛이 잘 맞습니다.

 

 사진으로 찍히면서 고맙습니다. 사진으로 찍히면서 즐겁습니다. 몇 천 장 넘는 아이들 사진이 나올 때에 아주 드물게, 용케 한두 장 섞이는 아버지 사진을 아이들도 나중에 들여다보겠지요. 우리 아이들은 어머니 옛날 모습은 차근차근 사진으로 바라보겠지만 아버지 예전 모습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을 텐데, 이렇게 가까스로 한두 장 섞인 사진을 ‘알뜰히’ 느껴 줄까요. 내가 찍힌 우리 식구 사진을 바라보고 또 바라봅니다. (4344.12.1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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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으로 보는 삶
 ― 남기고 싶은 사진


 아이 어머니가 아이 사진 한 장 찍어 달라 이야기합니다. 아이 사진을 찍어 달라 이야기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아주 오랜만에 사진을 찍으라 이야기합니다. 아이 아버지가 늘 먼저 느껴서 사진으로 담으니 애써 말하지 않아도 된달 수 있지만, 아이들 자라나는 모습은 그때그때 스치고 지나가며 새롭게 거듭나는 만큼, 1분이나 1초를 놓치면 이 어여쁜 오늘 이곳 모습을 남기지 못합니다.

 둘째 갓난쟁이는 어머니 무릎에 누워서 잠듭니다. 졸리면서 좀처럼 잠들지 못하다가 어머니 젖을 물고 곯아떨어집니다. 바닥에 내려놓으면 또 잠이 깰 테지요. 아이 어머니는 뜨개질을 합니다. 뜨개질하는 어머니 무릎에 누운 채 둘째 갓난쟁이가 새근새근 잡니다.

 첫째가 둘째만 하던 나이에 아이 어머니는 매듭을 지었습니다. 첫째는 갓난쟁이일 때에 어머니 매듭 짓는 어머니 무릎에서 새근새근 꿈누리를 누볐습니다.

 아이 아버지가 사진기를 들고 두 사람 모습을 담습니다. 어머니가 다시 이야기합니다. “내(아이 어머니)가 바라보는 자리에서 보이는 아이 모습”을 찍어 달라고 합니다.

 뜨개질하는 아이 어머니 뒤에 서서 아이를 내려다봅니다. 무릎에 아이를 눕히고 아이를 바라보는 눈높이에서 아이 사진을 얼마나 담아 보았나 곰곰이 떠올립니다. 아이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라는 자리에서 아이들을 바라볼 뿐이겠지요. 이 사진기를 어머니가 쥐어야 어머니 눈길이 될 테지요.

 한식구가 담는 한식구 사진은 말 그대로 한식구 눈높이와 눈길과 눈썰미입니다. 이웃이나 동무가 담는 어느 한식구 사진은 말 그대로 이웃이나 동무가 담는 눈높이요 눈길이며 눈썰미예요. 다큐사진을 찍는 사람은 다큐사진 찍는 눈높이와 눈길과 눈썰미일 테지요. 패션사진을 하는 사람은 패션사진을 하는 눈높이와 눈길과 눈썰미일 테고요.

 누구나 저마다 살아가는 결에 따라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누구든 저마다 사랑하는 매무새 그대로 담는 사진이면서 즐기는 사진이에요.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삶을 사진으로 남깁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오늘 이 보금자리 꿈을 사진으로 영급니다. 나한테 가장 보배스러운 사랑을 담는 글이고 그림이며 사진입니다. (4344.1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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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한 장 보면서 눈물 흘리기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41] 《the children of this world》(stern,1977)



 사진책만큼 안 팔리거나 사랑 못 받는 책이 드뭅니다. 사람들이 사진기를 장만하려고 여러모로 알아본다든지 돈을 모은다든지 하는 일을 돌아본다면, 사진기를 장만해서 ‘사진찍기 즐기려’는 사람들이 ‘사진을 사랑하는 길’에서 자꾸 엇나가는 셈 아닌가 싶어 슬픕니다.

 어느 사진쟁이는 ‘다른 사람 사진은 안 본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 사진을 보면 ‘내 사진을 찍는 길이 흔들리거나 다른 사람이 사진 찍는 길이 스며들’기 때문이랍니다. 사진쟁이 아닌 여느 사진즐김이 가운데 ‘훌륭하다는 사진을 본들 따라갈 수 없고, 내가 작가로 살아갈 마음이 없으니 구태여 사진책까지 사서 볼 까닭이 없다’고 말하는 분이 제법 많습니다.

 이런 말 저런 까닭을 들며 사진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참말, 사진책 하나 장만하지 않으면서 사진을 찍는다거나 사진잔치에 마실을 가는 사람이 많아요.

 사진책이 하나 태어나기까지 돈이 적잖이 듭니다. 사진책치고 값싼 사진책은 얼마 안 됩니다. 사진기 하나 장만하는 데에도 살림돈이 휘청거리는데 사진책을 어떻게 사느냐 한숨을 쉴 만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 도서관 가운데 사진책 알차게 갖춘 데는 없습니다. 만화책과 문학책 갖추어 빌려주는 대여점은 있고, 어린이가 즐길 그림책을 갖추는 어린이책 도서관이 새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어린이나 푸름이나 어른 누구나 ‘사진을 즐기거나 누릴 도서관’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온갖 사진책 골고루 갖추어 사진을 곱게 즐기도록 돕는 책쉼터는 찾아보기 어려워요.

 사진책 도서관을 여러 해 꾸리는 사람으로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나라고 돈이 많지 않은데다가, 마땅한 돈벌이가 없습니다. 나는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요 사진을 찍는 사람이기에 사진책을 꾸준히 살피고 틈틈이 장만합니다. 여느 사진책 한 권 장만하자면 여느 글책 열 권 장만하는 돈이 들기 일쑤입니다. 어느 사진책 한 권은 여느 글책 스무 권이나 서른 권 값을 하곤 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니, 으레 도시에서 벌어지는 사진잔치에 찾아갈 수 없습니다. 사진잔치에 어쩌다 한두 번 찾아간들, 이 사진잔치가 끝나고 나면 어떤 사진이 걸렸는지를 되새길 수 없습니다. 마치, 연극을 보고 나서 연극이 어떠했는가를 나눌 ‘그림’이 없는 일하고 같습니다.

 사진책은 사진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갈무리하는 책입니다. 글책은 글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갈무리하는 책입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예쁘게 살아가며 일구는 예쁜 이야기를 ‘입으로 주고받다’ 보면 ‘듣는 사람은 어느새 잊’거나 ‘듣는 사람이 되새기더라도 엉뚱하게 되새기’는 일이 잦습니다. 말하는 사람 스스로 잊을 때가 있어요. 이리하여, 입과 입으로 주고받던 이야기를, 가슴과 가슴으로 물림하던 이야기를, 사랑과 사랑으로 나누던 이야기를, 사람들이 글에 알뜰히 담고 종이로 묶어 책 하나로 태어나도록 합니다. 사진책은 사진잔치를 벌이고 나면 잊힐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서로서로 더 따사롭고 더 오래도록 건사하면서 나누고픈 이야기를 담는 책인데, ‘그릇만 사진’입니다.

 《4th world exhibition of photography : the children of this world》(stern,1977)라는 이름이 붙은 사진책을 들여다봅니다. 내 사진책 도서관에는 이 사진책이 하나 있습니다. 2000년 첫무렵이었나, 김기찬 님 사진책 《골목안 풍경》을 어느 분한테 선물로 드리고 나서 이 사진책을 선물로 받은 적 있습니다. 독일 ‘stern’이라는 출판사와 유니세프가 뜻을 모아 마련하는 ‘온누리 사진잔치’ 열매를 그러모은 사진책입니다. 1977년에 넷째 사진잔치를 열었고, 이때 사진감은 ‘어린이’였으며, 모두 아흔네 나라 이백서른여덟 사진쟁이가 일군 오백열다섯 사진을 담습니다.

 《the children of this world》를 들추면 최민식 님이 담은 ‘부산 가난한 어린이’ 사진도 보입니다. ‘Abisag Tulllmann’이라는 사람이 담은 한국땅 구두닦이 사진도 있어요. 일본사람이 담은 일본 어린이 사진이 있고, 서양사람이 담은 중국과 일본 어린이 사진이 있습니다. 웃는 어린이, 우는 어린이, 즐거운 어린이, 슬픈 어린이, 전쟁에 시달리는 어린이, 가난한 어린이, 노는 어린이, 동생을 돌보는 어린이, 일하는 어린이, 배우는 어린이, 태어나는 아기 들이 나옵니다.

 1970년대에 꽃피운 《the children of this world》를 일구던 사진쟁이는 어떤 마음과 매무새로 어린이들 앞에서 사진기를 들었을까 궁금합니다. 2010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사진쟁이는 어떤 사랑과 몸짓으로 아이들 앞에 서면서 사진기를 들는지 궁금합니다. 2010년대 오늘날 한국땅 사진쟁이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에서, 베트남이나 라오스나 필리핀에서, 독일이나 덴마크나 영국에서, 스리랑카나 아르헨티나나 볼리비아에서 …… 저마다 어떤 어린이를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사진을 빚을 만할까 궁금합니다.

 지난달에 헌책방에서 《the children of this world》라는 사진책 한 권을 새로 장만합니다. 한 권 갖추었으나 여러 사람한테 보여주느라 책이 퍽 닳고 찢어지는 바람에 새로 장만합니다. 새로 장만한 헌 사진책 《the children of this world》도 머잖아 닳거나 찢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 사진책을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주어 1970년대 어린이 삶과 꿈과 넋을 헤아리는 길동무로 삼고 싶습니다. 나한테 사진책은 눈물 흘리며 즐겁게 누리는 한삶을 담는 이야기입니다. 나한테 사진책은 웃음꽃 피우며 신나게 즐기는 한삶을 싣는 이야기입니다.

 톨스토이나 윤동주처럼 되고 싶어 톨스토이나 윤동주 문학을 글책으로 읽지 않습니다. 다만, 톨스토이나 윤동주가 일군 글빛을 느끼면서 내 삶빛을 보듬고 싶으니, 이분들 남긴 책을 읽습니다.

 나는 스티글리츠나 앗제나 임응식이나 배병우가 될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이분들이 이룬 사진빛을 느끼면서 내 삶빛을 돌볼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사진책 《the children of this world》를 되읽으며 생각합니다. 나는 이 사진책에 나온 어린이 사진처럼 우리 집 아이들을 사진에 담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예 내가 사랑할 우리 집 아이들을 헤아리고 싶으며, 내가 사랑하며 살아가는 결을 고스란히 싣는 사진을 날마다 기쁘게 찍고 싶어요.

 나부터 내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 태어났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와 옆지기 사랑을 받으면서 태어났습니다. 나는 내 어버이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하루하루 새롭게 일굽니다. 우리 아이는 나와 옆지기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날마다 새롭게 뛰어놉니다.

 좋은 넋이라면 좋은 눈길로 바라보며 좋은 손길로 사진기를 쥘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좋은 얼이라면 좋은 사랑을 담아 좋은 꿈을 북돋우는 사진읽기를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삶이기에 사진책을 마련합니다. 웃음을 짓는 나날이기에 글책을 장만합니다. (4344.12.3.흙.ㅎㄲㅅㄱ)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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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6일에 시간 되는 분 나들이해 보셔요. 류가헌 갤러리라는 곳에 전화로 예약하시면 된다고 하네요. 참가비는 없어요~~ ^^ 



ㄷ. 사진으로 걷는 길
 ― 사진책잔치와 사진책



 ‘광장’ 출판사에서 나온 “한국의 고건축” 가운데 1번인 사진책 《秘苑》이 있습니다. 커다란 판에 얇은 두께로 나온 《비원》은 사진쟁이 임응식 님이 찍은 사진으로 이루어집니다. 임응식 님은 “한국의 고건축” 묶음책으로 《비원》과 《경복궁》과 《종묘》와 《칠궁》을 내놓습니다. 이 책들은 1976년에 처음 나올 때에 4500원이요, 제가 이 사진책을 헌책방에서 2011년에 새로 장만하며 들인 돈은 25000원입니다. 몇 해 앞서 다른 헌책방에서 이 사진책들을 7000원에 장만한 적 있고, 또 다른 헌책방에서 15000원에 장만한 적 있으며, 또 다른 헌책방에서 20000원에 장만한 적 있어요. 워낙 예전에 판이 끊어졌기에 여러 헌책방에서 다리품을 팔아 싼값으로든 비싼값으로든 그때그때 장만합니다. 판 끊어진 사진책을 다시 만날 수 있기만 하다면 참으로 고마우면서 반갑습니다.

 1976년 책값 4500원이라면 오늘날 2010년대에는 25000원보다 훨씬 센 값이라고 느낍니다. 1976년 언저리에는 짜장면 한 그릇 값이 150원 안팎이었다니까, 이때에 사진책 《비원》이나 《경복궁》이나 《종묘》나 《칠궁》을 선뜻 장만할 만한 사람은 적었으리라 봅니다. 그러면, 2010년대에 임응식 님 사진책 《비원》을 3만 원이나 4만 원 값에 다시 찍는다 할 때에, 요즈음 사람 가운데 이 사진책을 선뜻 장만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우리 나라에서 사진책과 만화책은 제대로 사랑받지 못합니다. 사진 찍는 사람이 많아도 사진책 사서 읽으며 나누는 사람이 적습니다. 만화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도 아름다운 만화책이 오래도록 새책방 책시렁에 놓이며 사랑받는 일이 드물어요. 저는 올 2011년에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를 겨우 장만했습니다. 2001년에 처음 나오던 때에는 《불새》가 정식 번역된 줄 몰랐기에, 데즈카 오사무 님 다른 만화책을 이때 장만하면서 《불새》는 놓쳤어요. 《불새》를 사야겠다고 깨달은 이듬해에는 이 책을 찾을 길이 없더군요. 열 해를 기다려 2011년에 드디어 ‘2쇄를 찍어 주었기’에 막바로 장만했어요.

 김기찬 님 사진책 《골목안 풍경》은 예전 판으로 되살아나지 못합니다. 《골목안 풍경 전집》이 새로 나옵니다. 예전 판짜임으로 다시 나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꾸지만, 새판으로 나온 일로도 흐뭇하며 고맙습니다. 에드워드 커티스 님 사진책은 ‘외국책 구매 대행’을 거쳐 웃돈을 얹어 한 권씩 장만했다가 올해에 처음으로 정식 번역된 판이 있어 눈물까지 흘리며 한글판을 장만했어요.

 그러나 유진 스미스 님 사진책이 한글판으로 나오지는 못합니다. 기무라 이헤이 님이라든지 토몬 켄 님 사진책을 한글판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시노야마 기신 님이 1982년에 내놓은 《실크로드》 여덟 권 가운데 2권이 오직 한국 이야기만 다루지만, 이 사진책 하나조차 한글판으로 옮겨지지 못합니다. 어느 출판사에서든, 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든, 이 사진책 하나라도 한글판으로 옮긴다면 참 좋으련만, 이런 일은 꿈꿀 수조차 없다 싶은 한국 사진밭인 터라, 일본판 《シルクロ-ド》(集英社,1982) 여덟 권을 헌책방에서 육십만 원 가까운 돈을 치러 몽땅 장만해서 한국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시노야마 기신 같은 이름이라면 한국에도 제법 알려졌을 테지만, 시노야마 기신 님이 담은 ‘한국 문화 이야기 사진책’을 아는 분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로버트 카파 이야기책은 두 가지 한글판으로 나옵니다. 다만, 로버트 카파 사진책은 앞으로 언제쯤 한글판이 나올는 지 알 길이 없습니다. 슬프지만, 저작권료를 안 물고 내놓던 ‘옛 열화당 사진문고’로 나라밖 사진삶과 사진밭 흐름을 어렵사리 한글판으로 읽을밖에 없던 이 나라 책마을입니다. 에드워드 스타이겐이 일군 《인간가족》마저 1986년에 월간사진사에서 해적판으로 내놓은 조그마한 책 하나만 한글판으로 나왔어요. 정식 번역판이 없습니다.

 저는 지난 2010년에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진책 하나 내놓았습니다. 인천문화재단에서 800만 원을 받고 출판사에서 1500만 원쯤 보태어 빛을 보았습니다. 그나마 지역 문화재단에서 문화예술기금을 보태었으니 빛을 보았지, 이런 돈이 없다면 책으로 태어날 수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유진 스미스도 기무라 이헤이도 로버트 카파도 토몬 켄도 ‘아름다이 엮은 사진책 하나로 한국 사진 즐김이한테 알려지지 못하는’ 흐름인 터라, 홀로 사진길 씩씩하게 걸어가는 사람들 사진책이 선뜻 나오리라 바라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사진책은 하나둘 태어납니다. 아주 훌륭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진책이든, 이게 무슨 사진이냐는 손가락질을 받는 사진책이든, 돈을 참 많이 들인 그럴듯한 사진책이든, 아주 적은 돈으로 빠듯하게 꾸민 사진책이든, 이런 사진책 저런 사진책이 태어납니다.

 이름난 사진쟁이들은 이름난 사진쟁이대로 날마다 새 사진을 빚습니다. 이름 안 난 수수한 사진쟁이들은 이름 안 난 수수한 사진쟁이대로 나날이 새 사진을 이룹니다. 이 사진들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신문·잡지에 실리기도 하지만, 그저 개인컴퓨터 파일로 남기만 하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면서 조용히 꿈을 꿉니다. 시골자락 언저리에서 마땅한 사진잔치 이루어지는 일은 아예 없다 할 만합니다. 시골에서 흙 만지며 일하는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사진잔치에 마실 갈 겨를부터 없다 할 만합니다. 그래도, 시골 흙일꾼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마을회관이나 면사무소 너른터에서 벌어지는 사진잔치에 마실을 가는 일을 꿈꿉니다. 사진잔치까지 아니더라도 사진책 하나 예쁘고 조그맣게 태어나 전국 면사무소나 마을회관에 한 권씩 놓일 수 있는 날을 꿈꿉니다.

 낮에 면사무소에 들르니,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우수교양도서로 뽑아 사들여 전국 시골 면사무소까지 보낸 좋다고 하는 인문책’이 이곳저곳에 놓여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아주머니 아저씨가 읽을 수 있게끔 해 두더군요. 알뜰히 엮은 사진책을 전국 면 단위까지 한 권씩 놓도록 돕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사진길 걷는 젊고 늙은 모든 사진쟁이들 꿈과 사랑을 싣는 사진책을 넉넉히 펴내도록 뒷받침하는 정책이 나온다면, 이리하여 시골사람이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로 가지 않고서야 구경할 수 없는 사진잔치 사진작품을 사진책에 담긴 사진으로 누릴 수 있으면, 이 얼마나 즐거운 사진누리일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지자체나 중앙정부한테 기대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여느 사람인 우리 스스로 저마다 좋아하는 사진책을 마음껏 장만해서 집안을 알차게 보살피는 길을 생각합니다. 내가 즐긴 사진책을 내 아이한테 물려줄 수 있습니다. 내가 즐긴 책을 뒷날 헌책방에 내놓아 앞으로 새로 태어나 살아갈 뒷사람한테 물려줄 수 있어요. 좋은 사진책 구경할 만한 ‘사진책 도서관’이 한 군데도 없는 한국이라, 저는 제가 1998년부터 그러모은 사진책을 바탕으로 2006년에 개인도서관을 열었습니다. 저는 제가 새로 뿌리내린 전라남도 고흥군 시골자락에서 사진책 도서관을 꾸리며 사진빛을 나눠요. 다른 분들은 다른 분들이 살아가는 고향마을에서든,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에서든, 꾸준히 장만해서 건사하는 좋은 사진책으로 벽 하나를 채우면서 자그마한 ‘사진책 도서관’을 이루는 꿈을 펼치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으리으리한 건물을 지어야 도서관이 되지 않아요. 대단하게 손꼽히는 사진책을 수천 수만 권 갖추어야 사진책 도서관이지 않아요. 내가 좋아하며 사랑하는 사진책을 아끼면서 이웃하고 나눌 수 있다면, 어디에나 언제나 살가운 사진책 도서관이라 믿습니다. 사진책 도서관이 서면, 날마다 사진책잔치입니다. 날마다 사진책잔치이면, 이 사진책잔치를 누리는 사람들은 한 달에 한 번쯤 ‘바깥밥 한 끼 사먹을 돈을 아껴’ 아름다운 사진책 한 권씩 장만할 수 있어요. 작은 길은 어디에나 예쁘게 있습니다. (4344.11.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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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어떻게 사진으로 찍어야 아름다운가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17] 주명덕 사진·이상일 글, 《한국의 장승》(열화당,1976)



 오늘이 되어 새 사진이 반짝 하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제가 되어 옛 사진이 반짝반짝 빛나지 않습니다. 글피가 되어 다른 사진이 번쩍번쩍 나타나거나 반짝거리던 빛이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사진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모습이기에 더 빛날 만한 사진이 아닙니다. 골목개를 찍거나 골목고양이를 찍기에 더 예쁘거나 더 남다르지 않아요. 정치꾼들 모습을 찍으니까 더 볼썽사납거나 더 재미없지 않아요. 이름난 사람을 찍으니까 더 돋보이거나 빛나지 않습니다. 이름 안 난 사람을 담기에 덜 도드라지거나 덜 볼 만하지 않습니다.

 이제껏 아무도 사진으로 안 담던 모습이기에, 내가 처음으로 사진으로 담을 때에 빛이 나지 않습니다. 여태껏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으로 담던 모습인 만큼, 나까지 사진으로 담을 때에 따분하거나 틀에 박히지 않아요.

 새삼스럽거나 새롭다 할 만한 이야기를 다룬다 해서 사진답다 하지 않습니다. 낯설거나 놀랍다 할 만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해서 글답거나 그림답지 않듯, 사진답다는 이름은 쉬 얻지 못합니다.

 흔한 이야기라서 흔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보잘것없다고 여긴대서 보잘것없는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눈여겨보는 사람이 드물기에 눈여겨볼 만하지 못한 사진으로 나뒹굴지 않아요. 알아주지 않는 이야기를 찍기 때문에 알아줄 만하지 않은 사진으로 따돌림받지 않습니다.

 주명덕 님이 사진을 찍고 이상일 님이 글을 넣은 《한국의 장승》(열화당,1976)을 읽습니다. 헌책방에서 만난 《한국의 장승》은 1976년에 1쇄를 찍고 1979년에 재판을 찍었다고 나옵니다. ‘재판’은 2쇄를 가리킬는지 3쇄를 가리킬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재판’이나 ‘중쇄’라고만 밝히기 일쑤였거든요.

 《한국의 장승》에 글을 넣은 이상일 님은 “환경이 바뀐 때문에 장승이 아름다움으로 변신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을 것인데,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11쪽/이상일).” 하고 이야기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옳다 할 만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옛날 사람은 장승을 아름답다고 여겼을는지 아름답지 않다고 여겼을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굳이 아름답다고 여기며 장승을 세웠겠습니까. 아름다움을 빛내려고 장승을 세웠겠습니까. 장승은 장승이니까 세워요. 장승은 장승이기에 마을마다 섭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장승을 하찮게 여기거나 나쁘게 여기기에 장승을 꺾거나 분지르거나 뽑아 버리려나요. 장승을 모르니까 아무렇게나 다룰까요. 장승은 쓸데없다고 여겨 함부로 내치는가요.

 1970년대이든 2010년대이든 장승은 ‘사라지는’ 한겨레 삶입니다. 1970년대를 휘몰아치던 새마을운동은 흙으로 짓고 짚으로 이던 작은 시골집을 모두 밀어냈습니다. 시멘트로 벽을 바르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잇도록 했습니다. 마을길도 시멘트길로 바꾸고 아스팔트 고속도로를 쭉쭉 늘렸어요. 곧, 흙도 흙일꾼도 흙삶도 내팽개치는 첫무렵입니다. 이러한 물결에 휩쓸리며 장승이든 나무문이든 짚신이든 고무신이든 빨래방망이든 워낭이든 하나둘 자취를 감출밖에 없습니다.

 장승이 서던 자리에는 신호등이 서겠지요. 장승이 있던 자리에는 마을 이름 굵직하게 새긴 커다란 돌이 들어서겠지요. 장승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바라보겠지요. 장승 앞에서 절을 하던 사람들은 예배당 뾰족탑 앞에서 절을 하겠지요.

 달라지는 삶이요 삶터입니다. 달라진 삶이자 삶터인 만큼 신호등을 사진으로 찍고, 아파트를 사진으로 찍으며,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마을사람 모여 두레를 하고 품앗이를 하며 부르던 노래가 사라지듯, 텔레비전과 라디오와 인터넷을 따라 흐르는 대중노래가 온누리에 넘실거립니다.

 벼베는 기계로 벼를 베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낫으로 벼를 베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우니, 애써 사진으로 찍기도 힘들지만 오늘날 굳이 사진으로 찍을 까닭이 없다 할 수 있습니다. 아마, 낫을 어떻게 쥐고 벼포기를 어떻게 잡으며 낫을 휘휘 쓸어야 하는가를 모르는 사람투성이일 텐데, 낫질하는 모습 사진을 누군가 찍는들, 이 사진에 서린 이야기를 누가 읽거나 느낄 수 있겠습니까.

 《한국의 장승》은 한국땅에서 장승이 재빠르게 사라지던 때에 찍은 사진을 그러모읍니다. 재빠르게 사라지지만 그나마 좀 남던 때에 찍은 사진을 갈무리합니다. 이제 2010년대를 맞이한 오늘날 한국땅에서는 “한국의 장승”이건 “전라도 장승”이건 “경상도 장승”이건, 사진으로 담기조차 빠듯하리라 느낍니다. 어쩌면 이제는 이러한 이름을 붙이는 이야기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할 만하구나 싶어요. 이제는 “전남 영암군 금정면 쌍계사 터 장승”이라든지 “경북 충무시 문화동 장승”처럼 ‘가까스로 살아남았을까 싶은 장승 하나’만 날마다 숱하게 찾아가서 오래오래 바라보면서 ‘장승 하나만을 네 철 삼백예순닷새에 걸쳐 느낀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야 할까 싶습니다.

 ‘열화당 미술문고’ 22번으로 나온 《한국의 장승》입니다. 주명덕 님이 찍은 장승 사진이 이 작은 손바닥책에 모두 담기지는 않았겠지요. ‘열화당 미술문고’ 22번은 이제 찾아볼 길이 없기도 합니다. 지난날 찍었으나 미처 못 담은 숱한 장승 사진에다가, 2010년에 새로 달라졌을 장승 사진을 더할 수 있으면, 그야말로 “한국의 장승”이라는 이름이 걸맞는 사진책 하나 그럴듯하게 태어나리라 생각합니다.

 한겨레가 살아온 발자취가 어떠한지 헤아리고, 한겨레가 살아가는 오늘이 어떤 모습인가를 곱씹으면서, 어제 오늘 글피로 이어지는 삶이란 우리들 저마다 얼마나 값있거나 뜻있는가를 되새기는 사진이야기를 사진쟁이 두 다리 튼튼하게 내딛는 싱그러운 삶길로 보여준다면 참 고맙겠구나 생각합니다. (4344.11.1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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