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생각
― 사진과 돈



 돈이 있으면 더 나은 장비를 장만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퍽 많은 사람들이 들려줍니다. 돈이 없기에 더 나은 장비를 장만하지 못한다는 이야기 또한 꽤 많은 사람들이 들려줍니다.

 참말로 돈이 있지 않고서야 더 낫다는 사진 장비를 쓸 수 없습니다. 사진기 몸통이든 렌즈이든, 후드이든 필터이든, 세발이이든 가방이든, 빛살피개이든 필름이나 메모리카드이든, 사진 장비를 장만하자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돈이 없는 사람으로서 사진길을 걷는다는 일은 터무니없다 말할 만한지 모릅니다.

 제가 사진길을 처음 걷던 때를 돌이킵니다. 저한테는 사진기가 없었습니다. 다섯 학기를 다니고 그만둔 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사진을 만나 사진길을 걸었는데, 이 대학교에서 보도사진을 배울 때에 강사를 맡은 분은 모든 학생한테 사진기를 하나씩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대학교 앞 신문사지국에서 신문배달을 하며 먹고살던 터라 그야말로 빈털털이였는데, 아버지가 예전에 쓰시다가 망가져서 집안 어디인가를 뒹굴거리던 낡은 자동사진기 하나를 생각해 냈습니다. 주말에 집에 가서 낡고 망가진 사진기를 찾았습니다. 사진관에 수리를 맡기니 한 주쯤 걸리고 삼만 원이 든다 했습니다. 다음 수업에는 사진기를 갖고 갈 수 없습니다. 저는 1회용 사진기를 사서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이듬주에 두 번째 수업에 들어가 보니, 모두들 번들거리며 큼지막한 사진기를 가지고 옵니다. 1회용 사진기를 가지고 온 사람은 저 하나뿐이기도 했으나, 집에서 찾아내어 수리를 맡긴 낡고 값싼 자동사진기를 가져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무렵 필름카메라는 수동사진기에서 전자동사진기로 크게 바뀌던 터라, 수동사진기를 쓰는 사람은 전자동사진기 앞에서 잔뜩 주눅들곤 했습니다. 까맣고 커다란 전자동사진기를 어깨에 걸치거나 큰 가방에 담고 작은 필름사진기를 비웃는 사람도 꽤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없는 살림에 백만 원을 웃도는 사진기를 장만할 돈이 없을 뿐더러, 백만 원이 웃도는 값은 몸통 값일 뿐이요, 렌즈를 따로 사자면 더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는 소리를 듣고는 야코가 죽었습니다. 1998년에 한겨레신문을 230부(하고 스포츠신문·서울신문 곁들여 모두 260부) 남짓 돌리면서 신문배달 일삯으로 한 달에 삼십만 원을 받는데, 이 가운데 십육만 원을 적금으로 넣고 남은 십사만 원으로는 몇 해를 아무 데도 돈을 안 쓰고 모은들 꿈조차 꿀 수 없는 전자동사진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가장 값싸게 살 만한 수동사진기인 미놀타 엑스300마저 십삼만 원을 주어야 했으니, ‘내가 사진을 배우겠다고 나선 일은 참 턱도 없는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사진기를 장만한다 하더라도 필름을 사야 합니다. 신문사지국 작은 방에 얹혀 지내는데 암실은커녕 현상하거나 인화할 장비조차 살 돈이 없습니다. 사진관에 현상과 인화를 맡겨야 하는데, 가장 싼 필름을 알아보아 한 통에 천 원짜리를 어찌저찌 찾기는 했는데, 한 통을 현상·인화 하려면 칠천 원쯤 들었어요.

 사진을 처음 배우던 때, 대학교 강의실에서 값비싼 사진기를 아무렇지 않게 장만해서 값비싼 필름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사람들 웃음소리를 듣기가 몹시 거북했습니다. 이들은 으레 뒷자리에 앉고, 저는 맨 앞자리에 앉습니다. 나는 1998년 이해에 신문방송학과 모든 강의를 다 듣고 대학교를 그만둘 생각이라 모든 강의를 한 마디 한 마디 새겨들으려 했습니다. 등록금은 너무 비쌌고 대학 강의란 덧없다고 느꼈으나, 그만두기 앞서 ‘혼자 책을 읽어서는 알거나 배우기 힘든’ 실기수업은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보도사진 강의를 들었어요. 이때에 보도사진 강사를 맡은 분은 무척 고맙게도 나처럼 1회용 사진기를 쓰거나 아주 싸구려인 낡은 자동사진기를 가진 사람한테 힘이 되는 말을 자주 들려주었습니다. 당신이 미국에서 사진을 배우던 일을 되새기면서, “미국 사진기자는 싸구려 자동사진기로도 특종을 찍지만, 한국 사진기자는 비싼 캐논과 니콘을 가지고 멀리서 망원으로 싸구려 사진을 찍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싸구려 자동사진기를 가진 미국 사진기자는 취재원 코앞으로 다가와서 사진을 찍지만, 비싼 캐논과 니콘을 가진 한국 사진기자는 멋없는 풍경 비스무레한 사진만 수없이 쓰며 필름을 버린다고 덧붙였어요.

 보도사진 강의는 한 학기로 끝납니다. 1998년 가을에는 따로 사진 강의가 없습니다. 더 들을 만한 강의를 찾을 수도 없기에 1998년 12월에 휴학계를 냅니다. 새벽에는 신문을 돌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학교 도서관과 학교 앞 새책방과 서울 시내 헌책방을 쏘다니며 혼자 책을 읽으며 배웁니다. 1999년 여름에 교육책과 어린이책을 내는 출판사에 영업자로 뽑혀 들어갑니다. 이듬해에 이곳을 그만두고 다른 출판사로 옮기는데, 다른 출판사 사장님이 저한테 큰 선물을 하나 해 줍니다. 제가 쓰는 값싸고 낡은 사진기를 보시더니 “얘야, 아무리 그 사진기로 사진을 훌륭히 찍는다 하더라도 장비가 뒷받침이 안 되면 안 된다. 앞으로는 네가 돈을 더 벌어서 더 나은 장비를 갖추더라도, 이제부터 십 년 동안 쓸 사진기를 하나 사 줄 테니까, 나중에 우리 회사를 그만두면 받을 퇴직금으로 생각하고 이 사진기를 써라.” 하고는 캐논 이오에스 5번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신문사지국보다 일삯을 많이 받았습니다. 1999∼2000년에 출판사 영업자로 일하면서 62만 원을 받았습니다. 이 가운데 30만 원은 적금으로 떼고 32만 원을 내 몫으로 썼습니다. 신문사지국을 헤아리면 곱배기를 적금으로 부으면서도 살림돈은 곱배기로 남습니다. 그래도 새 사진기를 장만하기는 벅차요. 사진기를 선물해 주신 새 출판사 사장님은 일삯을 100만 원 주었습니다. 이제 100만 원 가운데 50만 원은 적금으로 부으며 50만 원을 살림돈으로 삼았고, 다달이 십만 원 안팎을 더 덜어 그러모은 다음 새 전자동사진기에 걸맞을 렌즈를 장만합니다. 처음에는 여러 해 손에 익은 사진기가 좋았지만, 차츰 새 사진기에 익숙해집니다. 사진기가 두 대가 되어, 하나는 빛깔사진을 찍기로 하고 하나는 흑백사진을 찍기로 합니다. 이제 막 새 사진기를 얻었기에 이무렵에는 ‘L렌즈’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퍽 값싼 렌즈만 쓰다가 28-105미리 엘렌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이 렌즈를 한 번 빌려서 몇 장 찍고 보니 ‘온누리가 달라 보였’어요.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구나. 나 같은 사람들이 제아무리 값싼 사진기로 용을 쓰고 애를 쓰더라도, 돈이 있는 사람은 이런 장비를 손쉽게 턱하니 장만해서 내가 용쓰고 애쓴 사진을 어렵잖이 찍을 수 있구나.’

 그렇지만, 사진은 장비로 찍지 않습니다. 사진은 몸으로 찍습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이 사진을 찍지, 현장에는 없되 값진 사진기를 갖춘 사람이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넉넉한 돈으로 장만할 수 있는 더 나은 장비가 있을지라도, 나 스스로 어떤 사진을 어디에서 찍으려 하는가를 살피지 못한다면 부질없습니다. 사진기를 쥐어야 할 때를 알아야 하고, 사진기를 내려놓을 때를 알아야 합니다.

 제 사진감은 헌책방입니다. 예나 이제나 헌책방을 사진감으로 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헌책방으로 취재를 나오는 기자들을 만납니다. 이들 신문사 기자나 잡지사 기자는 캐논 이오에스 5번보다 훨씬 빼어나다는 몸통에다가 갖가지 값진 엘렌즈를 붙여서 사진을 찍습니다. 기자들이 헌책방을 취재한다며 사진 찍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불길이 치솟습니다. 이들 기자는 여느 때에는 헌책방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헌책방을 다니지도 않으며, 헌책방이 어떤 곳인지를 마음으로 아로새기지도 않습니다. 슥 한 번 둘러보며 ‘그럴듯한 그림’을 신나게 만들어 냅니다. 값진 사진기와 장비와 렌즈는 ‘몸으로 제 사진감을 겪거나 치르거나 만나지 않’더라도 ‘그때그때 무척 빼어나다 싶은 그림을 손쉽게 선물해’ 줍니다.

 짧으면 5분이나 10분, 길면 30분쯤 ‘풍경 스케치’를 끝내는 사진기자가 돌아가고 난 자리에서 헌책방 책시렁을 뒤적이며 아픈 속을 달랩니다. ‘그래, 저들은 내가 이룰 수 없는 멋져 보이는 풍경 스케치를 놀라운 장비로 놀랍게 만들겠지. 내 사진기로도 어찌저찌 하면 틀림없이 나 또한 사람들한테 멋지게 보일 만한 풍경 스케치를 이룰 수 있는지 몰라. 그렇지만, 나는 풍경 스케치가 싫어.’

 필름을 마련하고 현상·인화를 하면서 다달이 십만 원 남짓 따로 모으려던 돈이 좀처럼 모이지 않습니다. 인화한 사진을 스캐너로 긁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스캐너를 장만하니 목돈이 쉽지 않습니다. 두 해만에 드디어 ‘헌 엘렌즈’ 하나 살 돈이 모입니다. 그러고 또 한 해 다시금 푼푼이 돈을 모아 값싼 미놀타 엑스300을 캐논 에이이 1번으로 바꿉니다. 필름을 긁는 스캐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거듭 돈을 추스르며 한 해 반이 지나 다른 스캐너를 장만했고, 다시 한 해 반이 지난 뒤에 캐논 9900에프 스캐너로 바꿉니다. 이러는 동안 몇 차례 사진기를 도둑맞아 적금을 깨서 사진기와 렌즈를 다시 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진기를 잃었을 때에는 이제 적금이 하나도 남지 않아 까마득했습니다. 그래도 나보고 사진길을 멈추지 말라는 고마운 뜻인지, 형이 살림돈을 보태 주어 디지털사진기로 캐논 450디를 마련하고, 고운 사진벗이 니콘 에프 삼번을 빌려줍니다.

 이리 되든 저리 되든 사진기를 쓰자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돈이 없고서야 사진기를 쓰지 못합니다. 내가 장만하든 남이 빌려주든, 누군가는 적잖이 돈을 치러 사진기를 장만해야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붓이나 연필이나 물감하고 종이를 장만해야 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연필과 종이를 장만해야 합니다. 종이값이나 연필값은 사진기값하고 대면 아주 싸다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종이값이나 연필값이 참말 싼지 잘 모르겠습니다. 없는 살림에는 종이값조차 비싸고 벅찹니다. 있는 살림에는 파노라마사진기마저 대수롭지 않습니다.

 없는 살림에는 종이 몇 장 장만하려면 더 많이 일해야 하고, 종이 몇 장에 글조각 끄적일 겨를을 어렵사리 마련합니다. 있는 살림에는 값진 사진기를 수월히 장만할 수 있고, 이곳저곳 마음껏 돌아다니며 온갖 모습을 담기 마련입니다.

 글을 쓰든 사진을 찍든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더 나은 장비가 있고, 더 나은 장비는 틀림없이 더 빼어난 ‘풍경 스케치’를 베풀어 줍니다. 안젤 아담스가 빚은 사진을 십삼만 원짜리 수동사진기로 빚기란 힘들 뿐 아니라, 빚을 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아니, 이래저래 따라해 볼 수 있는지 모르지요.

 그러니까, 값싼 사진기로는 ‘따라해 볼’ 수 있습니다. 값싼 사진기는 값진 사진기로 빚는 놀라운 풍경 스케치를 따라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사진은 낳지 못합니다.

 사진기는 ‘더 나은 장비가 빚는 더 놀라운 풍경 스케치’를 따라하며 똑같이 빚으라 하는 장비가 아닙니다. 연필과 종이는 ‘더 좋은 연필과 종이로 빚은 더 놀라운 글이나 그림’을 따라하며 똑같이 빚으라 하는 연필과 종이가 아니에요.

 1회용 사진기로는 1회용 사진기로 찍을 사진을 즐겁게 찍으면 됩니다. 십삼만 원짜리 사진기로는 십삼만 원짜리 사진기로 찍을 사진을 신나게 찍으면 돼요. 내 삶이 부잣집 사람들 삶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내 나름대로 내 즐거우며 아름다울 길을 찾는 삶이라면, 내 사진은 내 깜냥껏 가장 즐거우며 가장 사랑스럽다 싶은 아름다운 사진을 찾는 사진삶이 되면 됩니다.

 돈이 없으니, 돈이 없는 대로 나한테 가장 걸맞을 장비를 장만합니다. 나는 나한테 가장 걸맞을 장비를 장만하지 ‘온누리에서 가장 좋거나 훌륭한 장비’를 장만하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내가 ‘온누리에서 가장 좋거나 훌륭한 자전거’를 장만하지 않듯, 나는 내가 타고 다닐 가장 알맞으면서 괜찮은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돌아다닙니다. 돈에 맞추는 삶이 아니라 삶에 맞추는 돈입니다. 돈에 따라 꾸리는 삶이 아니라, 삶에 따라 마련해서 쓰는 돈입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쓰라고 하면 됩니다. 마음이 있는 사람은 마음을 쓰면 됩니다. 돈이 넉넉한 사람은 더 빼어나다는 장비를 홀가분하게 장만하면 됩니다. 사랑을 따스히 나누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랑을 따스히 나누면서 내 삶을 누리면 됩니다.

 좋은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더 좋거나 더 나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저 좋다는 장비로 사진을 찍을 뿐입니다. 좀 허술하거나 값싼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더 나쁘거나 더 훌륭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저 좀 허술하거나 값싼 사진기로 사진을 찍을 뿐이에요.

 우리 집 아이가 입는 옷은 거의 모두 얻어다 입힙니다. 아이 어머니가 뜨개한 옷이 몇 벌 있습니다. 아이는 어느 옷을 입어도 참 어여쁩니다. 아이 아버지는 날마다 아이 옷가지를 손빨래하면서 아이가 기쁘게 입고 예쁘게 뛰놀기를 바랍니다.

 저는 가장 사랑스럽게 손을 뻗으면서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값싼 사진기를 쓰든 값진 사진기를 쓰든, 저마다 가장 사랑스럽게 손을 뻗으면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가장 사랑스레 뻗는 손으로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 값진 사진기로는 참 훌륭하다 싶은 그림이 태어날 테고, 값싼 사진기로는 참 아리땁다는 이야기가 태어나겠지요.

 만 원짜리 안경을 쓸 때보다 십만 원짜리 안경을 쓸 때에 한결 잘 보일는지 몰라요. 삼천 원짜리 고무신을 신을 때보다 십만 원짜리 운동신을 신을 때에 훨씬 잘 달릴는지 몰라요. 온누리를 더 잘 볼 수 있으면 더 좋을 수 있고, 달리기를 더 잘 하면 더 기쁠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아름다운 사람을 아름다운 눈길로 바라보며 아름답게 살고 싶습니다. 내 삶자락을 예쁘게 북돋우며 고운 넋으로 어여삐 살아가고 싶습니다. 1등이나 2등이나 3등이나 아무 뜻이 없습니다. 더 좋아 보이는 사진이란 아무 보람이 없습니다. 마냥 바라보면서 좋은 모습이라면 사진으로 안 담고 내 눈과 내 마음에 담으면 그예 좋습니다. 내가 찍었되 내가 다시 보아도 참 좋아서 틈틈이 다시 보는 사진이라면, 이렇게 사진으로 찍어도 좋지만, 내가 사진으로 찍은 그곳을 틈틈이 다시 찾아가서 맨눈으로 실컷 들여다보아도 좋습니다. 사진으로 찍힌 모습은 늘 한 모습이고, 맨눈으로 보며 마음으로 찍는 모습은 늘 새삼스러운 무지개빛 모습입니다.

 돈이 있으면 한결 돋보인다 싶은 사진을 쉽고 빠르게 얻습니다. 돈이 없거나 적으면 한껏 돋보일 사진을 땀과 사랑과 믿음을 들여 천천히 얻습니다. 어느 사진이든 사진입니다. 어느 쪽 사진이 더 낫지 않습니다. 돈이 많아 온누리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돕는 사람이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돈이 없어 늘 살림돈을 얻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안 훌륭하지 않습니다.

 돈이 있어 하루아침에 값진 사진기를 쉬 장만할 수 있습니다. 돈이 적거나 모라자기에 여러 해에 걸쳐 조금씩 돈을 그러모아 값진 사진기를 장만할 수 있습니다. 돈이 적거나 모자란 나날을 보냈기에, 내가 그리는 값진 사진기를 꿈꾸며 여러 해에 걸쳐 돈을 그러모으며 지내다 보니 ‘여러 해가 흐르는 동안 내가 꿈꾸던 사진기보다 훨씬 기능이 나아진 새 사진기’가 나오기도 하더군요. 그래, 사진기란 돈으로 장만합니다. 돈으로 장만하는 사진기는 한두 해 쓰고 버리거나 바꿀 사진기가 될 수 없습니다. 돈으로 장만하든 선물로 받아서 쓰든, 내가 손에 쥘 사진기는 이제부터 쉰 해쯤 고이 돌보면서 쓸 사진기가 될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4344.4.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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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이 땅 국어교사가 읽었으면 하는 책



 저는 지난 2007년에 인천에서 ‘사진책 도서관’을 열었습니다. 제 도서관은 제가 읽은 책을 그러모아 자그맣게 꾸몄습니다. 지난 2010년에 인천 골목동네를 떠나 충주 멧골자락에 깃든 ‘이오덕학교’ 밑으로 도서관을 옮겼습니다. 새로 옮긴 도서관에 책꽂이가 모자라 아직 바깥사람한테 문을 열지 않고, 이오덕학교 어린이와 푸름이만 드나들며 책을 읽도록 합니다. 사진책 도서관이라면서 멧골학교 어린이와 푸름이가 책을 읽도록 한다니 고개를 갸우뚱할 분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 도서관에는 ‘사진책’을 비롯해 만화책과 그림책과 어린이책과 인문책과 국어사전과 교육책과 문학책과 종교책과 다른 갖가지 책이 골고루 있거든요.

 사진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사진책을 마땅히 읽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사진길을 걷는대서 사진책만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진길을 걷는 착하며 곧은 사람이 되자면, 먼저 ‘좋은 사진쟁이’가 되기에 앞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08년에 첫째를 낳았고, 2011년에 둘째를 낳습니다. 두 아이를 함께 보살피는 아버지로서도 어린이책과 그림책을 즐기지만, 아이를 낳기 앞서도 어린이책과 그림책을 몹시 좋아해서 꾸준히 장만하며 읽었습니다. 여느 사람 앞에서는 사진책 도서관을 꾸리는 한 사람이면서, 헌책방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보일 테지만, 다른 한쪽 모습으로는 어린이책과 그림책을 꽤 즐기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국어교사로 일하는 분도 마찬가지일 텐데, 국어교사로 훌륭히 일하자면 ‘국어 교과목 교재’만 읽을 수 없습니다. 국어교사로서 우리 말글을 다룬 책을 함께 읽으며 배워야 하고, 국어사전도 자주 뒤적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 문학과 나라밖 문학도 꾸준히 읽으며 삭여야 해요. 우리 문학이나 나라밖 문학은 어린이문학부터 푸름이문학을 걸쳐 어른문학까지 골고루 있습니다. 추리문학도 있을 테고 공상과학문학도 있겠지요. 역사소설이나 시조나 하이쿠 또한 있을 테고요.

 소설을 살피면 법이나 의학을 다루는 소설이 있고, 정치나 사회를 다루는 소설이 있습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글을 잘 쓰는 법’이나 ‘말을 다루는 법’뿐 아니라, 이 나라 역사와 사회와 정치와 교육 모두를 잘 살피며 올바로 꿰뚫어볼 줄 알아야 합니다. 곧, 수많은 갈래 수많은 책을 고루고루 마주하며 곰삭일 줄 알아야 합니다. 소설을 읽는 국어교사라 할 때에도 수많은 갈래 수많은 책을 읽을밖에 없습니다.

 이리하여, 사진을 좋아하고 사진찍기를 즐기려 하는 사람이라 할 때에도 ‘사진책’만 읽을 수 없습니다. 사회를 읽는 눈을 기르는 책을 함께 읽어야 하고,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을 다루는 책도 나란히 읽어야 해요. 학교나 집에서 어린이를 사진으로 찍는다 할 때에는 어린이 마음으로 다가서야 할 테니, 어린이책이나 그림책도 가까이하며 지내야겠지요.

 아직, 한국에서는 좋은 ‘어린이 사진책’이 없습니다만, 이웃 일본에는 훌륭한 ‘어린이 사진책’이 대단히 많습니다. 자연과 생태 이야기를 담은 ‘어린이 사진책’이나 ‘어린이 자연백과’를 가만히 살펴보면, 일본에서 나온 책을 옮긴 판이 꽤 많구나 하고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1990년대에 한국말로 나온 《세계의 어린이》 서른네 권은 일본 사진쟁이들이 온누리 서른세 나라 어린이 한삶을 두루 살피며 담아낸 놀라운 사진책이에요. 《세계의 어린이》는 이제 판이 끊어져서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서른네 권이라든지 《웅진 과학 앨범》 84권을 헌책방에서 찾아보면서 찬찬히 사진을 살피고 책 엮음새를 돌아보면, 내가 어느 한 가지 사진감을 골라 사진으로 담는다 할 때에 어떻게 하면 좋은가를 슬기롭게 배울 수 있어요. 《웅진 과학 앨범》 여든네 권 또한 일본 사진쟁이가 여든네 가지 자연 생태계 모습을 골고루 담은 책이고, 일본에서는 1983년에 처음 나왔어요.

 널리 이름나지 않은 사진쟁이였지만, 당신 딸아이가 태어나서 시집을 가는 날까지 꾸준하게 사진으로 담아 책으로 엮은 《윤미네 집》(전몽각 사진,포토넷 펴냄)은 우리 국어교사들한테 적잖이 도움이 되거나 살가운 사랑으로 스며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더 예쁘게 찍는대서 더 좋은 사진이 아니고, 더 멋지게 찍어야 더 돋보이는 사진이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결 그대로 받아들여’ 수수하게 찍으면 돼요. 사진이 꼭 작품이 되어야 하거나, 사진이 반드시 예술이 되어야 하지 않거든요. 지갑이나 주머니에 늘 넣어 다니면서 틈틈이 꺼내어 보는 애틋한 사진을 한 장 찍어서 우리 집식구나 좋은 동무하고 나눌 수 있으면 흐뭇한 사진삶입니다.

 저는 ‘사진삶’이라는 낱말을 제 깜냥껏 지어서 씁니다. 국어사전에는 안 실린 낱말이지만, ‘책삶’이나 ‘사진삶’이나 ‘말삶’ 같은 낱말을 곧잘 써요. 우리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언제나 내 삶인 줄을 느끼자는 뜻입니다. 사진을 좋아하거나 사진찍기를 즐기려는 국어교사라 한다면, 노상 사진삶을 헤아려 주셔요. 사진삶으로 내 삶을 돌이키면서 내 가슴으로 어여삐 스며드는 좋은 사진책을 한 달에 한 권이나 두 권씩 장만해 보셔요. 더도 덜도 아닌 다달이 한 권이나 두 권입니다.

 한꺼번에 더 많이 찾아본대서 내 사진 눈길을 한껏 북돋우지는 못해요. 돈이 많대서 한꺼번에 수백 권을 장만한들 이 사진책을 내 삶으로 삭이기는 어려워요. 다달이 한 권이나 두 권씩 날마다 들추며 기쁘게 배우겠다는 매무새로 사진책을 만날 수 있으면 흐뭇합니다. 한국사람 사진책도 좋고, 나라밖 사진책도 좋아요. 사진책은 값이 꽤 비싸다 할 만하지만, 사진책은 한 번 펼쳤다 덮는 책이 아니라, 적어도 1000번은 되읽는 책이기 때문에 오만 원이든 십만 원이든 하나도 비싼 값이 아니라고 느껴야 즐겁습니다.

 저는 하루나 이틀에 한 권 꼴로 사진책을 사서 읽자고 다짐하며 살아가는데, 자가용을 굴리지 않거나 굳이 적금을 붓지 않으면서 하루하루 내 삶을 돌볼 수 있으면, 날마다 사진책 한 권 사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때로는 헌책방에서 오천 원짜리 사진책을 살 수 있고, 만 원이나 이만 원짜리 사진책을 산다면 다달이 삼사십만 원쯤 책값으로 쓰는 셈이거든요. 자가용을 안 몰면 기름값이 고스란히 책값이 됩니다.

 지난달에는 ‘이와고 마츠아키(岩合光昭)’라는 사진쟁이 사진책 《旅ゆけば猫》(日本出版社)를 인터넷책방에서 외국책 주문으로 샀고, 지지난달에는 ‘안젤 아담스(Ansel Adams)’라는 사진쟁이 사진책 《landscapes of the American West》(Quercus)를 서울 홍대 앞 사진책 전문책방에서 장만했어요. 어린이 놀이를 사진으로 어떻게 담으면 좋을까 아리송하다면, ‘토몬 켄(土門 拳)’이라는 일본 사진쟁이 사진책 《腕白小僧がいた》(小學館)를 찾아보셔요. 편해문 님이 내놓은 《소꿉》(고래가그랬어 펴냄)도 참 괜찮은 사진책입니다.

 사진을 처음 찍으려 하는 분들한테는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안목 펴냄) 같은 책이 퍽 괜찮다 싶은 길동무 노릇을 하리라 생각하는데, 이 자그마한 책을 즐거이 삭이자면 열 달에 걸쳐 열 번쯤 다시 읽으며 천천히 곱씹어야 한다고 느껴요. 열 해나 스무 해에 걸쳐 ‘좋은 사진열매 하나 맺고 싶다’는 꿈을 꾸는 국어교사라면 《농부》(전민조 사진,평민사 펴냄) 같은 사진책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 사진 솜씨가 퍽 모자라다고 느끼거나 쑥쓰럽게 여기는 국어교사라면 《내 멋대로 사진찍기》(김윤기 씀,들녘 펴냄) 같은 사진이야기를 알려주고 싶습니다. 저는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 펴냄)라는 책을 하나 내놓았고, 올해에는 《사진책 읽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새로 하나 내놓을 생각입니다. 제가 쓴 책에 붙인 이름 그대로, 국어교사로 아이들하고 하루하루 즐거이 어깨동무하는 분들이라면, “좋은 내 삶 그대로 좋은 내 사진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좋은 내 아이들하고 좋은 하루하루 만나는 즐거움 그대로 좋은 내 사진이야기를 일구는” 보람을 누리거나 나눌 수 있으면 기쁘겠어요.

 사진길을 걷는 한 사람으로서 내 매무새를 다스리는 길잡이가 되는 책이라면 《우리들의 하느님》(권정생 씀,녹색평론사 펴냄)하고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이오덕 씀,삼인 펴냄)입니다. 먼저 올곧은 한 사람으로서 착하고 참다이 살아가면서, 내 사진빛은 어여삐 보듬고 싶습니다. 먼저 올곧은 한 사람이 되지 않고서 사진빛만 예쁘장하게 꾸민대서 내 사진이 즐겁거나 반갑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먼저 내 오늘과 내 하루를 착하고 참다이 살아갈 때에 내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 모두 아름다이 빛난다고 느낍니다. (4344.4.7.나무.ㅎㄲㅅㄱ)
 

(전국국어교사모임 '함께여는 국어교육'에서 써 달라 하는 글을 하나 적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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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삶읽기 사람읽기 6
― 사진을 배우러 떠나다



 적잖은 분들이 사진을 배우러 길을 떠납니다. 어떤 이는 고등학교 적부터 사진을 배우다가 대학교 사진학과에 들어갑니다. 어떤 이는 미국이나 프랑스나 독일이나 영국 같은 나라로 사진을 배우러 떠납니다. 사진을 배우러 떠나는 이들이 일본으로 가는 일은 꽤 드문데, 곰곰이 살피면 한국땅에 머물면서 사진을 배우겠다고 하는 사람은 훨씬 드뭅니다.

 사진이라는 갈래는 프랑스에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사진 특허를 사들였을 때에 몇몇 사람이 홀로 차지하며 권리를 누리도록 하기보다는 누구나 마음껏 사진을 즐기면서 사진꽃이 피기를 바라며 ‘특허권을 없앴다’고 합니다. 참말 프랑스라는 나라는 사진뿐 아니라 그림이든 연극이든 영화이든 남다른 나라요 남다른 빛깔과 숨결과 소리가 넘치는 나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프랑스 같은 나라로 사진을 배우러 길을 떠나서 여러 해 프랑스 숨결을 들이마시는 이들은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국 사진꽃을 한결 흐드러지게 피우도록 이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미국으로 사진을 배우러 간 이들이든, 독일이나 영국으로 사진을 배우러 간 이들이든, 일본으로 사진을 배우러 간 이들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저마다 다 다른 길을 걸으며 저마다 다 다른 사진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 모두 훌륭하며 아리따운 사진밭을 일구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이 지구별에서는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만 사진을 하거나 예술을 하기에는 무대가 참말 좁다 할 만합니다. 온누리에 선보이며 온누리에 이름을 떨칠 사진이나 예술을 한다면 더욱 빛난다 할 만합니다. 어차피 품는 꿈이라면 더욱 크며 더 예쁘게 보듬을 만하겠지요.

 나라밖으로 사진을 배우러 가든 경제학을 배우러 가든 철학을 배우러 가든 노래나 춤을 배우러 가든, 나라안에서는 내가 바라거나 뜻하는 대로 배우기 힘들기 때문에, 돈과 품과 겨를을 들여 비행기를 타고 길을 나섭니다. 낯설고 물선 나라에서 밑바닥부터 바둥거리든, 내 어버이한테 돈이 많아 돈 걱정 없이 복닥이든, 나라밖에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이들은 언제나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이야기를 마주합니다.

 사진이든 예술이든, 내가 걷는 사진길이나 예술길은 ‘남이 걸어간 길을 따라 걷는 길’이 될 수 없습니다. 나는 나 스스로 내 길을 걸어가면서 내 뜻과 꿈을 이룰 뿐 아니라, 내 밥벌이 또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라밖으로 배움나들이를 가려 하는 까닭이란, 이 작은 나라에서는 ‘남이 걷지 못한 내 새 길을 찾기 힘들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눈을 트도록 도움을 받거나 깨우치거나 생각문을 열고자 나라밖으로 나들이를 가곤 합니다.

 그런데, 나라밖으로 애써 배움나들이를 떠났으나 막상 아무것도 못 보는 사람이 어김없이 있습니다. 외려 외롭거나 힘들거나 지치면서 몸과 마음이 늙은 채 돌아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때로는 겉멋이 들거나 ‘한국이란 참 어설프고 못났지’ 하며 콧대가 높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사진은 남한테서 배울 수 없습니다. 삶은 남한테서 배우지 않습니다. 문화이든 예술이든 남한테서 배워 내 문화나 내 예술을 꽃피우지 않습니다. 언제나 내 안에서 샘솟는 사진이고 삶이며 문화랑 예술이라고 느낍니다. 내 몸을 내 마음에 따라 내 손발을 놀려 움직이는 동안 찬찬히 일구는 사진이거나 삶이거나 문화이거나 예술이라고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벽만 바라보고 가만히 앉아서 깨달음을 찾으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 한 푼 없이 빈몸으로 뚜벅뚜벅 걸어서 이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며 깨달음을 얻으려 합니다. 어떤 이는 여러 날 밥굶기를 합니다. 어떤 이는 높은 산을 오릅니다.

 어떻게 무엇을 어디에서 하든, 모두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면서 내 마음결을 다스리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진을 배우든 철학을 배우든 정치를 배우든, 누구한테서 무엇을 배워야 깨닫거나 알아채는 사진이나 철학이나 정치가 아닙니다. 누구한테서 따로 배우지 않더라도, 또 어떤 대단한 책이나 교재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내 가슴속에 고운 사랑씨나 삶씨나 사진씨나 배움씨가 있을 때에 나 스스로 내 사랑이나 삶이나 사진이나 배움이 일어선다는 소리입니다.

 사람들이 으레 나라밖으로 배움나들이를 떠나는 까닭은 내 가슴속에 깃든 사진씨를 나라안에서는 좀처럼 건드리지 못할 뿐 아니라 잠을 깨우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더 큰 자극’이나 ‘더 센 자극’이나 ‘더 남다른 자극’을 받아 내 넋이 알을 깨어 우뚝 일어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배우는 나들이를 생각하는 분이라면 이 대목을 먼저 짚어 주면 좋겠습니다. 알을 깨어 나올 병아리는 늘 제힘으로 알을 깨야 합니다. 어미가 부리로 알을 조금이라도 깨 주면 병아리는 얼마 못 살고 죽습니다. 병아리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 크고 단단한 알을 그 여린 주둥이로 깨고 나오겠습니까마는, 참말 그 여린 주둥이와 그 여린 힘으로도 크고 단단한 알을 스스로 깨고 일어서야 병아리는 제 목숨을 고맙게 선물받은 그대로 살아낼 수 있습니다.

 나라밖으로 배움나들이를 떠날 생각이라면 그야말로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나라밖 배움나들이에 드는 돈과 품과 겨를이란 몹시 큽니다. 내 어버이한테 돈이 많아 돈 걱정이 없달지라도 내 어버이는 내가 배움나들이를 떠난다고 할 때에 배움삯을 대려고 허리가 휩니다. 나 때문에 허리가 휠 어버이를 떠올리면서 ‘큰짐을 짊어졌다는 무게’가 아닌 ‘이 고마운 선물을 흐뭇하며 신나게 누려서 내 삶을 알차게 일구어야겠다는 보람’ 으로 되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한 가지를 더 곰곰이 헤아립니다. 나는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내 값싸며 자그마한 사진기로 노상 들여다보고 단추를 찰칵찰칵 누르면서 내 사진길을 나 스스로 배우며 살아왔다고 곰곰이 헤아립니다. 참말, 저는 따로 누구한테서 사진을 배운 적이 없고, 사진학교나 사진강좌나 사진학과 같은 데를 다닌 적이 없습니다. 어떤 교재나 책을 읽어 사진찍기나 사진읽기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사진길을 걸었고, 나중에 사진책을 이것저것 사서 읽으며 내 사진길 곁에서 또다른 사진길을 걷는 숱한 사진동무를 느꼈습니다. 나한테는 사진스승이란 없습니다. 오로지 사진동무만 있습니다. 브랏사이라 하든 브레송이라 하든 이해선이라 하든 임응식이라 하든 모두 내 사진동무일 뿐입니다. 저마다 다른 삶을 저마다 다른 손길로 사랑하며 사진을 붙잡은 어여쁜 사진동무일 뿐입니다.

 모두들 목돈을 모아 여섯 달이든 한 해이든 몇 해이든 사진 배움길을 떠나려고 하는데, 애써 모은 목돈으로 나라밖 사진책 장만하는 데에 쓴다면, 그러니까 사진책 장만하는 데에 삼천만 원이든 오천만 원이든 쓰면서 나 스스로 사진책을 읽거나 살피거나 헤아리는 눈길을 기르는 데에 여섯 달이든 한 해이든 여러 해이든 써 보는 사람이 다문 하나라도 있으면 어떠하랴 싶어요. 똑같은 배움길이 아니라 새로운 배움길을 찾으면서 즐거우리라 봅니다. 내 나름대로 스스로 할 만한 배움길을 찾아보아도 퍽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자전거 한 대를 장만해서 한 해 동안 자전거로 우리 나라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또다른 틀에서 사진 배움길을 거닐 수 있어요.

 좋은 책은 좋은 벗입니다.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랑입니다. 좋은 삶은 좋은 꿈입니다. 목돈을 모아 나라밖 배움나들이를 다녀와도 즐겁고, 목돈으로 한국땅 곳곳을 오래오래 누비면서 내 겨레말을 함께 쓰는 사람들 삶과 하나로 녹아들면서 배움삶을 누려도 기쁩니다. 한국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며 한국사진을 하기 때문에 꼭 한국땅 곳곳을 누비며 한겨레 이웃을 마주해야 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며 한국사진을 하더라도 얼마든지 일본에서건 미국에서건 사진을 배우고 돌아와도 됩니다. 내 넋이 참말 내 넋이면서 내 뜻이고 내 길이어야 합니다. 내 사진길은 내 사진길이지, 남한테 기대거나 남 뒤꽁무니를 좇는 사진길이 될 수 없습니다. (4344.3.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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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생각
― 사진과 예술



 사진이 예술인가 예술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사진이 처음 태어나던 때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사진이 예술인가 예술이 아닌가 하고 이야기할 사람이 따로 없다고 느낍니다. 오늘날까지 사진이 예술이니 아니니 하고 따지려 한다면, 이런 사람은 그야말로 바보라 할 만합니다.

 오늘은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사진이 그대로 사진인가, 또는 사진이 그대로 예술인가 하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오늘날 사진을 하는 이들 가운데에는 ‘사진기라는 장비’와 ‘사진이라는 틀’을 빌어 예술을 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이 아닌 예술을 하는 사람이지만, 스스로를 ‘사진작가’라 내세우는 사람조차 있습니다. 붓을 써서 무엇인가를 그린다 하더라도 모두 ‘그림작가’이지는 않습니다. 붓으로 무엇인가를 그리지만 그림작가 아닌 ‘예술가’가 있기 마련입니다. 붓이나 연필을 빌어 필름에 무엇인가를 아로새길 때에도 얼마든지 ‘사진작가’로서 사진을 하는 일이 됩니다. 영어로 ‘비디오아티스트’라 했던 백남준 님 같은 분은 텔레비전이라는 연장을 써서 예술을 했습니다. 백남준 님은 예술을 하고자 텔레비전이라든지 비디오라든지 사진이라든지 여러 가지 갈래를 당신 나름대로 받아들이거나 다루면서 당신 예술을 꽃피웠습니다. 영어로 ‘비디오아티스트’이지만, 우리가 알아들을 말로 하자면 예술가, 또는 예술쟁이입니다.

 그림과 같은 효과를 노리며 사진을 할 수 있습니다. 사진과 같은 효과를 노리며 그림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림을 보면서 느낌을 얻어 ‘그림 같은 사진’을 찍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진을 보면서 생각을 빌어 ‘사진 같은 그림’을 그립니다. 바야흐로 예술이라는 큰 바다 테두리에서 사진과 그림 사이에 무언가 허물어질 만하구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이란 무엇이 그림이고, 사진이란 무엇이 사진이며, 예술이란 무엇이 예술이 될 만할까 궁금합니다. 한때 마침표와 쉼표와 말줄임표와 느낌표와 물음표를 뒤섞으면서 ‘새로운 글쓰기’를 한다던 바람이 불다가 지나간 적 있습니다. 글자만 가득 담긴 글로는 글이 밋밋하거나 따분하다고 여기면서 ‘글을 새로운 예술이나 표현매체’로 삼으려던 흐름이 한동안 있었습니다. 요사이는 손으로 쓰는 글을 놓고 영어로 ‘캘리그래피’라는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남다른 글과 글멋과 글예술을 하고프다는 목소리라고 여깁니다.

 틀림없이 글자만 갖고도 예술이 됩니다. 글예술이라 하면 될까요? 그러나, 글이 글이 되자면 글자가 섞인 모양새로 글이 되지 않습니다. 글에는 이야기가 깃듭니다. 손으로 쓰는 글이든 타자기나 컴퓨터로 찍은 글이든, 이 글에 이야기가 깃들 때에 비로소 글이라 합니다. 이야기가 없는 글이란 글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글이 아니라’ 할 때에는 이른바 ‘문학이 아니라’고 합니다.

 나는 사진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사진은 사진기를 써서 종이에 무언가 빛그림을 남겨야 사진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필름에 빛그림을 앉히든 메모리카드에 빛그림을 남기든 한다고 사진이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바늘구멍을 낸 상자로 빛그림을 남기든 어떤 장비를 써서 어떤 빛그림을 남기든, 또는 인화지에 몸을 뒹굴든 복사기에 내 몸을 올려놓고 빛그림을 찍든, 사진이 사진이 된다 할 때에는 이 사진에 내 이야기가 깃들기 때문입니다.

 보여주기만으로는 글이 되지 않고 그림이 되지 않으며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물이나 대상하고 똑같이 보이도록 나타낸다서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물이나 대상하고 똑같이 보이도록 나타낼 때에는 ‘베끼기(복제)’라고만 합니다.

 예부터 사진을 ‘복제술’이라고 일컬으며 살짝 비아냥거린 까닭이란, 사진이라는 빛그림에 ‘사진을 찍는 사람 이야기’를 제대로 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림도 마찬가지라서, ‘실물과 참말 똑같이 그린 그림’이기에 더 놀라운 그림이 되지 않을 뿐더러, 아예 그림이 안 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그림이라 할 때에는, 이 그림을 그린 사람 넋이 스미어 그림을 그린 사람 이야기가 담기는 한편, 이 넋과 이야기를 그림 하나로 마주할 우리 가슴에 무럭무럭 샘솟아 피어나는 애틋한 눈물과 웃음이 있을 때에 그림이라 합니다. 우리가 사진이라 할 때에도, 이 사진을 찍은 사람 얼이 깃들며 사진을 찍은 사람 이야기가 들어서는 한편, 이 얼과 이야기를 사진 하나로 마주할 우리 마음밭에 몽글몽글 용솟음치며 태어날 아름다운 눈물과 웃음이 있을 때에 사진이라 합니다.

 이리하여, 사진은 처음 태어날 때부터 사진 그대로 사진이면서, 사진은 또다른 예술 갈래 하나였습니다. 사진을 가리켜 예술이니 예술이 아니니 하고 따지던 사람들은 사진도 예술도 보지 못한 셈입니다. 나아가, 오늘날 사진을 사진으로 여기지 못하거나 ‘사진과 사진기를 써서 예술을 하는 사람’이면서 예술을 마치 사진이라도 되는 듯 껍데기를 씌우는 사람들 또한 사진이든 예술이든 참답게 마주하지 않는 셈입니다.

 사진은 사진이고 예술은 예술입니다. 사진은 사진인 한편 예술이고, 예술은 예술인 가운데 사진으로 녹아듭니다.

 우리 삶 모든 이야기는 삶이면서 예술입니다. 날마다 먹는 밥을 차리는 손길 또한 예술입니다. 밥그릇과 수저를 부시는 설거지도 예술입니다.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치는 손길 또한 예술입니다. 논밭에서 일하며 땀방울 똑똑 흘리는 삶자락 또한 예술입니다. 볍씨 하나가 예술이고, 풀씨 하나가 예술입니다. 볍씨 하나는 볍씨 하나대로 예술이면서 볍씨 그대로 볍씨입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 손길이 예술이고, 아이 스스로 땅을 박차며 내딛는 걸음걸이와 웃음꽃이 예술입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사진은 그야말로 사진이면서 사진은 언제나 예술이기도 하다는 넋을 잘 추슬러 주면 좋겠습니다. 사진은 사진일 때에 참말 사진이면서 참으로 예술입니다. 사진은 사진이 아니면서 사진이라는 옷만 걸치려 할 때에는 사진도 예술도 되지 못합니다. 사진은 사진값과 사진빛과 사진밭과 사진꿈 그대로 사진사랑으로 무르익으면서 사진 갈래를 빛내며 예술 누리를 북돋웁니다. (4344.3.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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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삶읽기 사람읽기 4
― 세계문학전집 말고 사진책을



 집에서 아이 어머니하고 함께 사진책을 보는데, 아이 어머니가 불쑥 한 마디를 합니다. “사람들이 읽지도 않는 세계문학전집을 장식용으로 꽂아 두지 말고 좋은 사진책을 장식용으로 꽂아 두면 더 좋을 텐데요.”

 사진책을 ‘책꽂이 꾸미기’로 꽂는 일은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 어머니 말을 듣고 보니, 사진책만큼 ‘사람들한테 그럴싸해 보이도록 꽂을 만한 책치고 사진책만큼 좋은 책’이 없겠다고 느낍니다. 게다가 글로만 이루어진 세계문학전집을 들여놓아 이 책을 다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만하지만, 사진책을 ‘책꽂이 꾸미기’로 가득 꽂는다면, 가끔은 그냥 주루룩 넘기기라도 할 테니까 ‘장식용 사진책은 이래저래 어떻게든 다 훑는’ 일이나마 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사진책은 값이 싸지 않습니다. 책을 사서 읽으려는 사람과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한테 주머니가 탈탈 털리도록 하는 비싼 책입니다. 그러나 좋은 사진책 때문에 주머니가 탈탈 털리더라도 마음이 다친다거나 살림이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어떻게든 살림돈은 다시 벌기 마련이요, 책값으로 돈을 쓴 만큼 내 마음밭이 한결 기름질 수 있습니다.

 책꽂이를 꾸민다며 책을 들이는 사람한테는 글책이든 사진책이든 그림책이든 매한가지입니다. 사람들한테 자랑하려고 책꽂이를 마련하는 이들한테는 천만 원이나 이천만 원은 돈이 아닙니다. 몇 천만 원이나 몇 억에 이르는 자가용도 쉽게 뽑으니까요. 이렇게 돈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좋으며 값나가는 사진책’을 몇 천만 원어치 장만해서 집안 마루 한쪽을 ‘놀랍고 대단한 사진책’으로 꾸미는 일이란, 어떻게 보니 대단히 괜찮은 일이 될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첫째, 보기에 좋습니다. 둘째, 자랑할 만합니다. 셋째, 손님이든 집임자이든 ‘글 읽느라 애먹지 않으면서(?) 책 문화를 맛봅니다. 넷째, 나중에 책이 짐스러워 내놓으려 할 때에 다른 사람이 고맙게 넘겨받는다든지 헌책방으로 흘러들면서 좋은 사진책을 우리처럼 가난한 사진쟁이들이 값싸게 사서 즐길 수 있습니다.

 다섯째를 덧붙인다면, 사진을 모르는 집임자라 하더라도 좋은 사진책을 가끔 들추면서 천천히 ‘사진 보는 눈’과 ‘사진으로 우리 터전 읽기’를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어요.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제가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가끔가끔 마주하는 나라밖 좋은 사진책들은 어쩌면 돈있는 누군가가 집안 책꽂이를 꾸미려고 장만하던 책일 수 있습니다. 한때는 집안 책꽂이를 이런저런 돋보이는 책으로 꾸미다가 나중에 지겹거나 취미가 바뀌어 내놓은 책일는지 모릅니다. 헌책방이란, 이렇게 흘러드는 책이든 저렇게 나오는 책이든 좋은 새 임자를 만날 수 있게끔 다리를 놓기 때문에, 돈있는 이들이 좋으면서 값나가는 책을 처음에 기쁘게 장만해 줄 수 있으면, 뭇사람한테 고마운 선물이 됩니다. 또한, 퍽 비싼 값이 붙어 나오는 사진책을 돈있는 사람들이 꾸준히 사들여 준다면, 애써 사진길을 걸어가며 좋은 사진을 이룩하자고 하는 사람들한테 보탬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 어머니는 사진을 모르는 사람이지만 삶을 아는 사람입니다. 삶을 알기에 삶을 돌아보면서 사진책 또한 조용히 돌아보아 줍니다. 저는 아이 아버지 되는 사람으로서 사진을 찍거나 읽는다며 버둥거리는데, 사진만 읽으려 애써 본들 사진조차 제대로 못 읽기 일쑤입니다. 아이 어머니처럼 삶을 먼저 튼튼히 다스리면서 읽는 매무새를 길러야겠다고 새삼스레 다짐합니다. 돈없는 사람은 푼푼이 그러모아 한 달에 한두 권씩 사진책을 장만하면 되고, 돈있는 사람은 집안을 예쁘게 꾸미도록 한꺼번에 목돈을 들여 책꽂이 채울 사진책을 마련하면 됩니다. (4344.3.1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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