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읽기
― ‘찰칵’ ‘철컥’ 하는 사진 소리

 


  필름에 앉히는 사진기를 쓰는 분들은 ‘찰칵’이나 ‘철컥’ 하는 사진 소리를 듣습니다. 디지털에 앉히는 사진기를 쓰는 분들도 이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요즈음 디지털사진기는 ‘찰칵’이나 ‘철컥’ 하는 사진 소리가 안 나기도 합니다. 아마 앞으로는 이 소리가 없는 사진기만 나올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예전 만화를 보면, 사진을 찍는다는 대목에서 으레 ‘찰칵’이라 적었습니다. 참말 사진을 찍을 때에 기계가 움직이며 빛이랑 그림자를 필름에 앉힐 때에 이러한 소리가 났으니까요. 요즈음 만화를 보면, 사진을 찍는다는 대목에서 거의 ‘아무 소리’가 없습니다. 으레 디지털로 찍으니까요. 더구나 손전화 기계는 사진을 찍으며 어떠한 소리도 안 납니다. 일부러 ‘필름사진기 쓸 때 나는 소리’를 흉내내곤 하지만, 디지털사진기나 손전화 기계는 ‘소리 없는’ 사진기라 할 만합니다.


  다만, 디지털사진기라 하더라도 렌즈를 갈아끼우는 기계는 소리가 납니다. 왜냐하면, 사진기 몸통에 따라 끼우는 렌즈를 쓸 때에는 빛과 그림자가 들어와 내 눈에 보이도록 하는 거울과 판이 있거든요. 막을 열었다 닫고 거울과 판을 톡톡 치면서 여러 가지 소리가 납니다. 또한, 손잡이를 돌려 필름을 감을 때에 여러 가지 소리가 납니다. 다 찍은 필름을 되감을 때에도 여러 가지 소리가 납니다.


  사진은, 눈으로 바라본 모습을 내 마음으로 삭힌 이야기로 빚는 삶입니다. 사진은 눈으로 보고 눈으로 찍으며 다시 눈으로 보며 눈으로 새깁니다. 사진은 소리를 찍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진은 냄새를 찍지 않는다고 합니다. 얼핏 생각하자면, 이와 같은 말은 한편으로는 맞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이러한 말이 마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소리가 떠오르고 냄새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한테건 사진을 보는 사람한테건 소리와 냄새가 깊이 아로새겨집니다.


  이를테면, 내가 내 눈으로 바라보고 내 머리에 담은 어떤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어요. 내가 눈으로 바라볼 때에는 온갖 빛깔과 무늬를 비롯해 온갖 소리와 냄새가 한데 얼크러집니다. 내가 귀를 닫더라도 이 자리에서 이렇게 할 때에는 이런 소리가 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저 자리에서 저런 밥을 끓일 때에는 저런 냄새가 나겠구나 하고 느껴요. 사진 한 장에도 풀내음이 배어요. 그림 한 장에도 풀내음이 깃들어요. 글 한 줄에도 풀내음이 감돌아요. 사진 한 장에도 새소리가 들려요. 그림 한 장에도 개구리소리가 울려요. 글 한 줄에도 벌레소리가 노래해요.


  이 글을 쓰는 2012년 6월 15일에 곰곰이 생각합니다. 2022년이 되고 2042년이 되면 온누리 삶터는 매우 크게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또는 하나도 안 달라질는지 모르며, 또는 아주 뒤바뀔 수 있어요. 어떻게 될는지는 모르나 생각할 수 있어요. 1822년 사람들이 1922년 사람들 삶을 알 수 없으나 생각할 수 있었듯, 1912년에 사진을 하던 사람들이 2012년에 어떤 사진누리가 펼쳐질까 알 수 없으나 생각할 수 있었듯, 나는 2012년 사람으로서 2112년 사진누리는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 백 해인데, 백 해까지 바라보지 않고 고작 열 해나 스무 해 뒤만 바라보더라도, ‘사진 기계 문화’는 더할 나위 없이 바뀌거나 새롭게 거듭나리라 느껴요. 앞으로도 필름사진 찍는 분이 어김없이 있을 테지만, 앞으로는 사진을 말할 때에 디지털사진만 생각하리라 느껴요. 그러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빨래를 한다 하면 기계로 하는 빨래만 생각해요. 기계빨래를 ‘기계빨래’라 말하지 않고 그냥 ‘빨래’라고만 말해요. 손으로 빨래하는 삶은 따로 ‘손빨래’라 말해야 알아들어요. 이제 사진을 찍는다 하면 누구나 ‘디지털사진’이라 여겨요. 스스로 ‘필름사진’이라 덧붙이지 않으면 이제는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어요.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가 어쩌다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마실을 나가 보면, 이 작은 시골마을에서도 중·고등학교 푸름이들은 이른바 ‘반짝반짝하는 새 손전화 기계’를 씁니다. 어른도 이와 같아요. 새로운 손전화 기계 이름은 앞으로 수없이 바뀌고 또 바뀌리라 느끼는데, 인터넷도 하고 노래도 듣고 작곡도 할 수 있으며, 악기를 타고 켜는 소리까지 똑같이 나면서 사진뿐 아니라 영화마저 찍을 수 있을 만한 오늘날 손전화 기계는 그야말로 ‘아무 소리’도 없이 모든 일을 척척 해냅니다. 하루하루 지나고 더 지나면, 앞으로는 ‘아무 소리’뿐 아니라 ‘아무 무게’를 느끼지 못할 만한 손전화 기계나 사진 기계가 나올 만하다고 느껴요.


  이는 쉽게 알 수 있겠지요. 1912년이나 1888년에 사진을 하던 이들은 얼마나 무거운 기계를 썼습니까. 1952년 사진 기계도 그리 가볍지 않았어요. 2052년까지 아니더라도 2032년만 되더라도 ‘아무 무게’를 못 느끼도록 작고 가벼운 사진 기계가 나올 수 있어요. 나는 1982년 국민학교 1학년이던 때에 ‘안경 사진기’를 생각한 적 있어요. 겉보기로는 그냥 안경이지만, 내가 눈을 깜빡이면 사진이 찍히도록 하는 기계를 그무렵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안경 사진기’는 그야말로 ‘아무 무게’도 없이 내 눈길을 더 넓히는 연장이면서 사진까지 찍고, 동영상이든 영화이든 마음껏 찍을 수 있어요. 이렇게 하면서도 필름이나 메모리카드 같은 녀석이 없어도 돼요. ‘안경 사진기’에서 쓰는 저장장치는 모래알갱이보다 훨씬 작을 뿐더러 ‘원격 조정’으로 집에 있는 내 셈틀로 곧장 옮겨지니까요.


  천천히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합니다. 오늘날 2010년대 사진은 ‘소리 없는’ 사진인데, 앞으로 2040년이나 2080년쯤 되면 어떤 사진이 될까 생각을 합니다. 사진을 말하는, 곧 ‘사진 비평’이나 ‘사진 평론’은 오늘날뿐 아니라 앞날에 어떤 노릇 어떤 몫 어떤 이야기 어떤 사랑 어떤 꿈을 들려줄 만할까 생각을 합니다.


  작품 하나를 말하고, 흐름 하나를 짚으며, 사상이니 철학이니 무엇이니 하고 밝힌다거나 이런저런 은유라느니 비유라느니 하고 들추는 비평이나 평론은 오늘날이나 앞날이나 얼마나 값할 만한가 생각을 합니다.


  나는 내 목숨이 얼마나 오래도록 살가우며 따사로이 이어질는지 모릅니다. 다만, 내가 쉰 살을 살건 백 살을 살건,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살아가리라 느껴요. 내가 쉰 살이 될 즈음, 그러니까 2012년부터 헤아리면 열두 해 남은 2024년이요, 내가 백 살이 될 즈음, 그러니까 2012년부터 꼽자면 2075년이 될 즈음, 이때까지도 누군가 필름을 만들어 주면 나는 틀림없이 필름사진을 찍습니다. 이때까지도 ‘A/S’라고 있어, 내 낡은 캐논450D 기계가 또 망가졌을 때에 부속을 바꾸어 고쳐 주는 곳이 있다면, 나는 어김없이 낡은 디지털기계로 디지털사진을 찍습니다. 왜 ‘낡은’ 기계로 사진을 찍느냐 하면, 필름사진 뒤를 이은 디지털사진에서는 ‘필름사진 기계에 깃들던 눈썰미(화각)’를 살려 주지 않습니다. 오늘날 디지털사진 기계에 깃들 눈썰미(화각) 또한 새 앞날 디지털사진 기계에서는 살려 주지 못하리라 느껴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진기로 여러 사람이 사진을 찍어도 똑같은 사진이 나오지 않아요. 같은 자리에서 필름사진기와 디지털사진기로 사진을 찍을 때에 똑같은 사진이 나오지 않아요. 저마다 눈썰미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몸도 마음도 삶도 다르기 때문이에요. 나는 내 삶을 사랑하면서 내 삶을 담으려고 사진을 찍기에, 케케묵었다 하는 필름사진기 한 대와 꽤나 낡고 닳아 또다시 해롱거리는 디지털사진기 한 대를 씁니다. 아이들 노랫소리를 좋아하고, 제비들 노랫소리를 좋아하기에, 나는 먼먼 옛날부터 아이들과 제비들이 어떤 결과 무늬로 노래했을까를 헤아리면서 내 오래된 사진기를 만지작거립니다. (4345.6.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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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5 12: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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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5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진찍기
― 아이들은 어떤 이웃인가

 


  사진을 찍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사진감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한테는 글감이 있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한테는 그림감이 있듯, 사진을 찍는 사람은 스스로 온 사랑과 믿음과 꿈을 담는 사진감이 있습니다.


  내 사진감은 ‘헌책방’입니다. 나는 1999년부터 헌책방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헌책방을 처음 다닌 때는 1992년인데, 1998년 봄과 여름에 비로소 사진을 배우고서는 가끔 헌책방 언저리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다가, 1999년이 되어 내 삶을 들일 내 사진감은 헌책방으로 삼을 때에 가장 즐겁다고 깨달았습니다. 여섯 달 즈음 이곳도 찍고 저것도 찍으며 어느 사진감을 붙잡아야 할까 하고 살폈는데, 막상 나한테 가장 즐거운데다가 사랑스러운 사진감은 가장 가까이 있는 줄 뒤늦게 알아차렸어요.


  네 식구 살아가는 시골마을에서도 내 사진감은 늘 헌책방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헌책방을 찾아갈 일은 아주 드물어, 몇 달에 한 번 나들이를 할까 말까 싶습니다. 그래도 나로서는 내 사진감이 헌책방이라 말합니다. 어제 모처럼 헌책방마실을 하며 사진기 두 대를 기쁘게 챙깁니다. 헌책방에 닿아 홀가분하게 책을 살피며 사진을 찍습니다. 오랜만에 왔으니 신나게 찍자고 생각하려는데, 사진기 단추를 얼마 안 누릅니다. 자주 다니며 자주 찍으면 나로서도 내 사진감을 한껏 북돋운다 할 텐데, 뜸하게 다니며 몇 장 못 찍으면 내 사진감을 이래저래 북돋우기 어렵다 할 텐데, 이 모습 저 모습 닥치는 대로 찍고 싶지는 않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시골집으로 돌아옵니다. 시골집에서는 언제나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아이들과 마을 곳곳을 걸어다니며 사진을 찍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는 어느 결에 ‘아이들’이 내 새 사진감이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던 지난날에는 아주 저절로 ‘골목길’이 내 새삼스러운 사진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을 때를 돌이키고, 골목길을 사진으로 옮길 적을 헤아립니다. 나는 언제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모습을 내 가장 좋은 사랑을 기울여 사진으로 빚습니다. 아이들 사진을 함부로 찍지 못합니다. 우리 집 아이라 하더라도 아무렇게나 찍을 수 없습니다. 더 살피고 더 헤아리며 더 아끼는 손길로 사진을 찍습니다. 내 보금자리 깃들던 골목동네 또한 이 삶터를 사랑하며 좋아하는 눈길로 사진을 찍습니다. 골목길을 추억이나 개발이나 소외나 변두리 같은 이름표를 붙이며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내 꿈을 즐겁게 이루는 좋은 벗으로 여기는 사진감입니다.


  문득 아이를 바라봅니다. 시골마을 어디에나 흔하게 피고 지는 들꽃을 한손 가득 꺾어 손에 쥐고 놉니다. 다섯 살 아이는 묻습니다. “나는 왜 꽃을 좋아해요?” 이 아이가 여섯 살이 될 때에는 어떤 말을 물을까 궁금합니다. 열다섯 살이 되고 스물다섯 살이 되면 또 어떤 말을 물을까 궁금합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나는 늘 아이 곁에서 아이를 사랑스레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나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이 한결같다면, 걱정할 일도 근심할 까닭도 없겠지요. 나는 늘 내 가장 빛나는 사랑으로 우리 집 빛나는 아이 삶빛을 사진으로 옮길 테고, 드문드문 헌책방마실을 하더라도 내 가장 반가운 웃음으로 내 더없이 아름다운 헌책방 책시렁을 사진으로 아로새길 테지요. (4345.6.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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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urquoi28 2012-06-13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어여쁩니다~
맑고 밝고 따스한 기운이 저에게로 스며듭니다..^^

숲노래 2012-06-13 23:23   좋아요 0 | URL
모든 아이들은 모두 어여쁜데,
너무 많은 어버이들은
이녁 아이들이 얼마나 어여쁜 줄을 잘 모르는 듯해요.
가만히 바라보면
날마다 얼마나 놀라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데요...
 

(더없이 마땅하지만, 이 사진책은 여느 새책방에서 살 수 없고, 도서관에도 없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사진은 ‘돈이 될’까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32] 한국연합광고, 《全斗煥 대통령》(문화공보부,1982)

 


  “‘世界 속의 韓國’을 向한 意志와 獻身”이라 하는 이름이 붙은 사진책 《全斗煥 대통령》은 문화공보부에서 펴냈습니다. 이 사진책에 사진을 넣은 사람들 이름은 따로 나오지 않습니다. 신문사 사진기자가 찍은 사진인지, 문화공보부 사진기자나 공무원이 찍었는지, 청와대 사진기자나 공무원이 찍은 사진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오래 묵은 사진은 헌책방으로 흘러들곤 합니다. 나는 아직 헌책방에서 ‘이승만 대통령 사진’을 구경해 보지 못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사진이 헌책방에 나오면 이 사진도 퍽 돈이 될 만하다고 여길는지 어떠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헌책방을 다니다가 ‘김대중 대통령 사진’이라든지 ‘노무현 대통령 사진’이라든지 ‘이명박 대통령 사진’은 곧잘 구경합니다. 그런데 이 세 대통령 사진은 아직 돈이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들에 앞선 ‘김영삼 대통령 사진’도 돈으로 치지 않습니다. 누군가 달라 하는 사람이 없으면 폐휴지에 섞어 동네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드리면서 고물상으로 가져가도록 한답니다.


  그런데, 이 나라 숱한 대통령 가운데 ‘박정희 대통령 사진’이 헌책방에 흘러들면, 이 사진만큼은 제법 돈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대통령으로 지낸 나날이 길 뿐더러, 정치 홍보 사진이 많은 터라 헌책방으로 흘러들 만한 사진도 많은데, 다른 어느 사람보다 박정희 대통령 사진만큼은 돈값이 쏠쏠하다고 합니다.


  1980년부터 1987년까지 대통령 노릇을 한 전두환이라는 분 사진은 어떤 값어치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우표도감을 살피면,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세 분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 자주 얼굴을 보여줍니다. 우리 옆나라에서도 이와 같다 하는데, 민주정권 아닌 독재정권을 꾸린 이들은 ‘우표에 얼굴을 자주 선보인다’고 해요. 이를테면, 북녘나라에서 정치권력을 거머쥔 분도 북녘 우표에 참 자주 얼굴을 선보여요. 다만, ‘우표에 얼굴을 자주 선보이는 정치 지도자는 독재자’라고 하는 이야기를 헤아린다면, 영국 여왕은 어떤 사람이라 할 만한지 알쏭달쏭하곤 합니다. 영국 우표에 영국 여왕 옆얼굴이 참 많이 나오거든요. 그 나라에서도 여왕이 독재자이기 때문에 우표에 자주 나타나는지, 아니면 다른 뜻에서 널리 우러르기 때문에 우표에 자주 나타나는지 아리송합니다.

 

 

 

 


  전두환이라는 분 뒤를 이어 대통령 자리를 지킨 노태우라는 분은 ‘기념우표에 꼭 한 번만 얼굴을 내밉’니다. 내가 한동안 우표를 곧잘 모았기 때문에 이 같은 얘기를 들었는지 모릅니다만, 1988년부터 대통령 자리를 물려받은 분은 ‘우표에 얼굴 자주 내미는 일은 독재정권 지도자나 하는 짓’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이러한 ‘국민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서 딱 한 번만 얼굴을 내밀겠다고 밝혔다고 해요.


  사진책 《全斗煥 대통령》을 생각합니다. 이 사진책에서 대통령 이름은 한자로 적고 ‘대통령’은 한글로 적습니다. 문득 떠오르는데, 내가 국민학생이던 1982∼1987년에 ‘대통령 이름을 한자로 적을 줄 알아야 한다’는 숙제를 곧잘 받았습니다. 학교에서 으레 이런 짓을 숙제로 내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世界 속의 韓國’을 向한 意志와 獻身”도 온통 한자투성이입니다. ‘세계 속의 한국’도 ‘의지와 헌신’도 아닙니다. 그예 한자 자랑입니다. 마치 오늘날 대통령이 영어 자랑을 하듯, 1982년 이무렵에는 한자 자랑을 드러냅니다.


  사진책 《全斗煥 대통령》을 넘기면, 미국 레이건 대통령을 만났다는 사진부터 지구별 수많은 나라 정치 지도자를 만났다는 사진이 가득합니다. 한국땅 대통령은 나라밖 수많은 정치 지도자한테 ‘훈장’을 달아 줍니다. 나라밖 정치 지도자보다 ‘키가 작은’ 한국 대통령이기에, 나라밖 정치 지도자는 한국 정치 지도자 앞에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경제를 살리고 복지를 살찌우며 민주를 이루겠다는 세 가지 뜻을 밝힌다는 전두환 대통령이라 하는데, 사진책 《全斗煥 대통령》에 나오는 모습 가운데 95%는 나라밖 정치 지도자하고 손을 맞잡거나 푹신한 걸상에 다리 벌리고 앉아 웃는 모습입니다.


  틀림없이 누군가 사진을 찍었고, 틀림없이 누군가 책으로 묶었으며, 틀림없이 누군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이 사진책을 비매품으로 널리 뿌렸으니까, 이 사진책은 스무 해를 흐르고 흘러 헌책방 책시렁에 꽂힙니다. 어쩌면 이 사진책은 앞으로 스무 해가 더 흐르도록 ‘애써 장만하는 사람’ 없이 먼지만 먹을 수 있으나, 어떤 쥐대기를 만나 조용히 사고팔릴 수 있어요.

 

 

 

 


  내가 떠올리는 전두환 대통령 사진으로는, 예전 〈중앙일보〉 사진기자였던 오동명 님이 찍은 ‘술에 절어 고래고래 소리지르던 모습’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기자한테 필름 아끼라고 소리지르면서 2차이고 3차이고 더 술을 푸러 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또렷이 떠올라요. 참 마땅한 노릇인데, 전두환 대통령도 노태우 대통령도, 또 박정희 대통령이나 이승만 대통령도 사람이에요. 게다가, 이들 모두 할아버지예요. 어여쁜 손자가 있겠지요. 사랑을 물려주고픈 아이들이 있을 테지요.


  그러면, 당신들은 이와 같은 사진책, 나라돈으로 찍고 나라돈 받는 공무원이 널리 퍼뜨린 《全斗煥 대통령》 같은 사진책을 당신 귀여운 손자한테 어떻게 보여줄 만할까요. 백 해나 이백 해쯤 흐른 뒤, 이 나라에서 살아갈 뒷사람은 이 사진책을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들추며 무엇을 생각할 만할까요. 이 사진책 귀퉁이에 적힌 대로 ‘1980년대 대통령 전두환 씨는 나라를 지키고 살찌우며 일으킨 멋진 군인’으로 되새길 만한가요.


  아마, 앞으로 이백 해쯤 흐른다면, 전두환 대통령 사진도 이럭저럭 돈이 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온누리 모든 물건은 ‘나이를 먹으’면 돈이 된다 하니까요.


  그나저나, 1980년부터 1987년까지 전두환 대통령 곁에서 ‘대통령 사진’을 찍은 사람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이들은 이동안 대통령 사진을 찍으면서 돈을 얼마나 벌었을는지 궁금합니다. 이들은 이무렵 대통령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밭에서 권력이나 권위를 내세웠을까요, 아니면 당신 이름을 숨겼을까요.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원이나 이런저런 정치권력자 곁에서 사진을 찍은 이들이 제법 많을 텐데, 이들 이름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사진을 찍으며 돈을 벌던 사진기자나 사진 공무원으로는 누가 있었을까요. 너무 배고픈 나머지 식민지 제국주의자 돈이든 독재정권 대통령 돈이든 어쩔 수 없이 받으면서 사진을 찍어야 했다 할 수도 있는데, 이런 사진 저런 사진을 찍던 그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분들은 오늘날 어떤 마음으로 사진기를 쥐며 당신 뒷사람한테 사진삶을 물려주는가요.

 

 


  1980년대에 전두환 대통령을 찍던 분은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마음이었을까요. 당신 사진이 묶여 사진책으로 태어났을 때에 당신 벗님들한테 ‘자, 보라구, 내 사진으로 이런 사진책이 나왔다구.’ 하면서 선물할 수 있었을까요. 독재정권을 휘두르는 자리에 있던 사람이랑 독재정권을 휘두르는 자리에 있던 사람 곁에서 사진을 찍던 사람은, 어떤 꿈을 꾸면서 사진기를 손에 쥐었을까요. 이분들은 사진 한 장에 사랑을 담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삶인 줄 조금이나마 헤아린 적 있을까요. (4345.5.29.불.ㅎㄲㅅㄱ)

 


― 全斗煥 대통령 (한국연합광고 엮음,문화공보부 펴냄,1982.12./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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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기
― 아버지 좀 찍어 주어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젊은이가 거의 없는 탓에 시골마을 어른들이 논이나 밭에서 일할 적에 논밭을 뒹굴거나 가로지르며 뛰노는 아이들이 참말 없습니다. 우리 집 아이는 어디에서나 거의 혼자 뒹굴거나 뛰어놉니다. 마늘을 캐고 엮어 경운기에 실은 마늘밭은 차츰 넓어지지만, 이 덩그러니 드러난 흙밭을 뒹굴 놀이동무가 따로 없습니다. 아이는 놀이동무가 딱히 없지만, 스스로 놀이동무를 찾습니다. 나무하고 놀고, 풀이랑 놉니다. 고욤나무 밑에서 고욤꽃송이 주워 놉니다. 고추꽃을 바라보고, 돌 틈 마삭줄에 맺힌 하얀 바람개비꽃을 들여다봅니다.


  아이 아버지가 아이를 부릅니다. “아버지 일하는 모습 좀 찍어 주어.” 다섯 살 아이는 아버지 사진기를 들고 마늘밭 귀퉁이에서 사진 여러 장 찍습니다. 꼭 여섯 장 찍고는 사진기를 내려놓습니다. 잘 찍어 주었나. 잘 찍었겠지, 하고 믿으며 하던 일을 마저 합니다.


  이윽고 이웃집 마늘밭 일손 거들기를 마칩니다.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이는 이내 아버지 손을 놓고 먼저 저 앞으로 힘차게 달음박질을 합니다. 달리고 또 달려도, 뛰고 또 뛰어도 기운이 넘칩니다. 좋구나, 좋은 삶이고 사랑이구나, 하고 느끼며 아이 뒷모습을 기쁘게 사진으로 담습니다. 아이하고 살아가며 아이 뒷모습을 참 자주 찍습니다. 아이는 제 어버이한테 뒷모습을 자주 보여줍니다. 씩씩하게 달리는 뒷모습을 보여주고, 꽃밭이나 풀밭에 옹크리고 앉아 꽃이랑 얘기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4345.5.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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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기
― 버스 뒷거울 사진찍기

 


  아이들과 읍내마실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길입니다. 옆지기와 아이 하나씩 안고 헐레벌떡 오릅니다. 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버스를 겨우 잡아탑니다. 마침 자리가 둘 비어, 두 사람은 자리 하나씩 아이를 안고 앉습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무릎에 앉은 아이를 토닥이는데, 고단한 아이는 어느새 새근새근 잠듭니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깨지 않도록 가슴을 새삼 토닥토닥 하며 건너편 두 사람을 바라봅니다.


  한참 달리던 버스에서 문득 운전사 뒷거울을 봅니다. 운전사가 버스 안쪽을 살피는 뒷거울에 두 사람 모습이 비칩니다. 어, 건너편에 앉은 우리 식구가 보이네. 내 무릎 아이가 깨지 않게끔 살살 사진기를 쥡니다. 목걸이처럼 목에 건 사진기를 슬그머니 한손으로 쥡니다. 왼손은 아이 머리를 받칩니다. 오른손으로 덜덜 떨며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퍽 어렵습니다. 운전사 뒷거울로 보이는 두 식구 모습이 어여쁘다 싶을 때에는 버스가 덜덜 떨려 사진기 단추를 누르기 힘들고, 누군가 내리는 사람 있어 버스가 멎을 때에는 두 식구 바깥을 내다 보며 고개가 저쪽으로 갑니다.


  몇 차례 흔들리거나 심심하다 싶은 사진을 찍고서 한 장쯤 얻습니다. 나는 이 한 장 얻으면서 좋습니다. 사진으로 드러나는 두 식구 모습이 그렇게까지 ‘대단히 돋보이’지 않으나 좋습니다. 우리들이 마실을 다니던 발자국 하나를 사진으로 곱게 갈무리할 수 있으니 좋습니다.


  자가용 없는 우리 살림이기에 늘 버스나 기차를 탑니다. 늘 버스나 기차를 타니, 네 식구는 언제나 서로 바라보고 서로 얘기합니다. 나는 자가용 손잡이를 붙잡을 일 없으니 으레 사진기 단추를 누를 수 있습니다.


  꼭 사진을 찍을 마음으로 자가용을 안 몰지는 않습니다만, 내가 자가용을 모는 어버이로 살아간다면, 사랑스러운 우리 살붙이들 고운 삶 한 자락 사진으로 담아내지 못하며 지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사진을 못 찍는 만큼 몸은 한결 느긋하게 더 멀리 나다니겠지요. 그저, 사진을 못 찍는다뿐 아이들 옷가지와 기저귀에 가방 묵직하게 땀흘리며 나들이할 일이 없겠지요.


  나는 자가용을 몰지 않기 때문에 아이 하나를 품에 안으며 사진기는 목에 걸 수 있습니다. 나는 자가용을 몰지 않는 만큼 짐 가득 실은 가방을 멘 채 땀 뻘뻘 흘리지만, 우리 아이들은 신나게 땅을 박차며 뛰놀고, 이렇게 뛰노는 모습을 언제라도 기쁘게 사진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우리 살붙이 삶자락을 사진책으로 묶어도 참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따로 사진책을 묶지 않더라도 언제나 새롭게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 즐겁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적바림(기록)하는 사진은 아닙니다. 노상 서로 마주볼 수 있는 사진입니다. 조잘조잘 떠들듯 찰칵찰칵 찍습니다. 도란도란 어우러지듯 슬쩍슬쩍 찍습니다. (4345.5.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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