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보기
― 즐겁게 찍은 사진은

 


  두 달에 한 차례 나오는 어느 사외보에 글·사진을 싣습니다. 두 달에 한 번 나오기에 두 달 뒤에 실릴 이야기를 두 달 앞서 쓰는 셈입니다. 8월에 10월을 생각하며 글을 쓰고, 2월에 4월을 헤아리며 글을 씁니다. 그래서 ‘오늘 찍은 사진’을 이곳에 싣지 못합니다. 두 달 뒤란 오늘하고 날씨가 사뭇 다르거든요. 오늘 나는 여름을 누리는데 여름 사진을 ‘가을에 나올 사외보’에 실을 수 없어요. 오늘 내가 가을을 누리지만 가을 사진을 ‘겨울에 나올 사외보’에 싣지 못해요. 곰곰이 생각하다가 지난해에 찍은 사진을 쓰기로 합니다. 지난가을을 헤아리며 올가을 사외보에 실을 사진을 살피고, 지난겨울을 돌아보며 올겨울 사외보에 실을 사진을 돌아봅니다.


  지난해 사진을 살피다가, 지난해 어느 한때 무척 즐겁게 찍은 사진이지만, 그만 하루하루 살림꾸리기에 바빠 잊고 지나친 사진이 꽤 많다고 문득문득 느낍니다. 두 달 걸러 한 차례 나오는 사외보에 글·사진을 싣기로 하지 않았어도 이 사진을 찬찬히 돌아볼 날이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어쩌면 한참 나중에 이 사진들을 알아볼는지 모릅니다. 몇 해나 열 몇 해 지나 이 사진을 돌아본다면 무척 애틋하게 지난 한때를 그릴 수 있겠지요. 고작 한 해 지나고서 이 사진을 돌아보며 ‘내가 나한테 주는 선물과 같다’고 느끼는데, 앞으로 숱한 해가 지난 다음 이 사진을 새삼스레 돌아본다면 얼마나 고마운 선물이라고 느낄까요.


  오늘 찍은 오늘 사진은 오늘 누리는 선물입니다. 오늘 찍었으되 그만 잊거나 바빠 지나친 사진은 앞으로 누릴 선물입니다. 오늘 하루 내 삶을 즐거이 누리기에 오늘 찍는 사진은 모두 선물과 같습니다. 스스로 즐거이 누리는 삶이 아닐 때에는 손에 사진기를 쥐지 못하고, 스스로 즐거이 누리는 삶일 때에는 언제나 손에 사진기를 쥐며 나 스스로 나한테 베푸는 선물을 빚습니다. (4345.8.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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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기
― 마른 손과 젖은 손

 


  내가 쓰는 필름스캐너는 2004년부터 씁니다. 퍽 오랫동안 한 가지 기계로만 필름을 긁기에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즐겁게 쓸는 지 모르는데, 필름 한 통을 다 긁자면 얼추 한 시간 즈음 걸립니다. 그래서 필름 여섯 장을 스캐너에 앉히고서 다른 일을 합니다. 이를테면 방바닥을 비질하고 걸레질합니다. 빨래를 하기도 하고, 밥을 하기도 합니다. 필름 여섯 장이 다 긁힐 무렵 손에서 물기를 텁니다. 다 긁힌 파일을 셈틀에 갈무리합니다. 새로 필름 여섯 장을 앉히려고 아직 덜 마른 물기를 옷에 북북 비비며 닦습니다. 그러나 집일을 하면서 필름을 긁자면 손에서 물기 마를 새 없습니다. 밥을 하거나 빨래를 하며 필름을 앉힐 때면 필름에 물기 묻을까 조마조마합니다.


  필름이 긁히도록 앉히고서 집일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사진관에 필름을 파일로 만들어 달라 맡길 만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진관에서 긁어 주는 파일 크기는 내가 집에서 긁는 크기보다 작습니다. 필름 한 통 긁는 데에 드는 돈도 돈이라 할 테지만, 집일을 하는 틈틈이 필름을 긁는 일을 헤아린다면, ‘필름을 디지털 파일로 만드는 데에 쓰는 돈’은 얼마 안 돼요. 고마운 품값입니다.


  밥을 다 해서 차립니다. 아이들과 옆지기를 불러서 함께 먹습니다. 필름 다 긁힌 소리가 들리면 셈틀 앞으로 달려가 파일을 갈무리하고 새로 필름을 앉힙니다. 이제 스캐너가 드르륵 움직이면 다시 밥상 앞에 앉습니다. 이러기를 여러 차례 되풀이하면 비로소 필름 한 통을 다 긁습니다. 밥을 먹는 동안에는 손에 물기가 안 묻으니 걱정 없이 필름을 만집니다. 집에서 어린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필름을 만지자면 퍽 바쁘며 힘들다 할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참말, 사진을 하건 글을 하건 그림을 하건 무엇을 하건, 집안 어른 한 사람이 어느 전문 일을 할 때에는 그야말로 누군가 곁에서 크게 도와주지 않을 때에는 몹시 벅차겠구나 싶습니다. 그래도 나는 집일을 도맡으며 사진도 찍고, 밥을 차리면서 필름을 긁습니다. 이런 아버지를 바라보던 다섯 살 큰아이가 아버지 곁에 붙어서 부채질을 해 줍니다. (4345.8.1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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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 이야기를 사진으로 엮는다

 


  이야기를 사진으로 엮습니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 내 나름대로 내 이야기책을 엮습니다. 이야기는 글로도 엮습니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적어 내 깜냥껏 내 이야기책을 엮습니다. 내가 그림을 그리거나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라면, 그림이나 만화로도 내 이야기책을 엮을 테지요. 내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면 내가 지은 즐거운 노래 한 가락으로 내 이야기를 펼칠 테고요.


  내가 집에서 살림을 일구는 사람이라면, 내 손길이 닿는 살림살이에는 내 이야기가 사르르 묻어납니다. 내가 들에서 흙을 만지는 일꾼이라면, 들판 풀포기와 흙알 곳곳에 내 이야기가 스르르 묻어듭니다. 내 삶터는 내 일터요 내 놀이터이면서, 내 글터이거나 그림터이거나 사진터가 됩니다. 내 삶터는 내 사랑이 태어나는 사랑터이자 내 믿음이 피어나는 믿음터요 내 꿈이 이루어지는 꿈터입니다.


  이야기를 사진으로 엮습니다. 나 스스로 좋아하는 이야기를 찾아 씩씩하게 살아가는 걸음걸이가 온통 글이나 사진이나 노래로 거듭나면서 이 이야기를 새삼스레 갈무리해서 사진책이나 글책을 엮습니다. 따로 종이로 책을 묶지 않아도 마음속에 이야기를 아로새깁니다. 돌이키면, 먼저 내 마음속에 이야기를 아로새길 수 있어야, 종이에도 이야기를 아로새길 수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아로새기는 이야기가 있기에 내 손가락을 놀려 원고지나 필름에 내 꿈 실은 사진을 빚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엮는 사람은 글쟁이나 사진쟁이가 아닙니다. 어느 누구라도 스스로 이야기를 엮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일 때에 이야기를 글이나 사진이나 노래나 춤이나 그림이나 만화로 엮습니다.


  사진기를 어깨에 걸쳤거나 사진작품을 선보였거나 사진잔치를 열었기에 사진쟁이가 아닙니다. 사진과 함께 살아가면 누구라도 사진쟁이입니다. 사진을 찍어 돈을 버는 사람이라면 사진가라 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어 이름을 얻는 사람이라면 사진작가라 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이런 갈래 나누거나 저런 울타리 세울 까닭은 없습니다. 저마다 스스로 좋아하는 사진삶을 누리면서 사진밭을 일구면 됩니다. 사람이라면 밥을 먹으며 목숨을 잇기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살림꾼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살림꾼이듯, 사람이라면 누구나 글꾼이 될 수 있고, 사진꾼이 될 수 있으며, 그림꾼이 될 수 있어요. 사람이기에 누구나 스스로 일꾼이 되거나 놀이꾼이 됩니다. 곧, 사람일 때에는 누구나 다 다른 빛으로 사랑꾼이 되고 꿈꾼이 되며 이야기꾼이 됩니다.


  나는 내 삶을 즐겁게 돌아보면서 사진 몇 장 그러모아 조그맣게 사진책을 꾸립니다. 이 사진책을 좋아해 줄 이웃도 있을 텐데, 이 사진책은 누구보다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이 좋아하며 곁에 둘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우리 살붙이가 즐겁게 이야기꾸러미로 삼아 언제나 곁에 둔다면, 우리 둘레 좋은 이웃과 동무들도 이 이야기꾸러미를 함께 들여다보면서 맑은 웃음과 고운 노래 길어올릴 수 있겠지요. (4345.8.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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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 마음으로 새기는 사진

 


  해마다 여름이 되면 한겨레붙이는 손톱과 발톱에 봉숭아잎을 빻은 것을 살살 올려놓고는 곱게 감싸사 물을 들인다. 봉숭아물 들이기는 언제부터 했을까. 한겨레붙이는 봉숭아물을 언제 깨달았을까. 물이 곱게 드는 봉숭아잎인데, 옛날 사람은 봉숭아잎을 맛난 푸성귀로 여겼을까, 그저 고운 물 들이는 잎사귀로 삼았을까. 모시풀 줄기로는 실을 얻지만, 모시풀 잎은 맛나게 먹을 뿐 아니라 떡을 찌어 먹기도 한다. 옛날 옛적에는 봉숭아풀을 어떤 이웃으로 두었을까.


  봉숭아물 들이던 이야기는 언제부터 책에 적혔을까. 한겨레가 그림을 그리던 먼먼 옛날 옛적 가운데 어느 때에 봉숭아물 들이기를 그림으로 옮겼을까. 한겨레가 사진을 받아들이던 지난 백 해 사이에 어느 누가 봉숭아물 들이는 살붙이 고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을까.


  우리 집식구는 해마다 봉숭아물을 들인다. 나는 해마다 봉숭아물 들이기를 사진으로 찍는다. 옆지기와 아이들은 해마다 나이 한 살을 더 먹고, 살붙이 한삶을 적바림하는 사진은 해마다 차곡차곡 늘어난다. 사진을 찍기 때문에 사진은 해마다 늘어난다. 사진을 찍든 안 찍든 이야기는 해마다 푼푼이 쌓인다. 사진을 찍어도 그리운 옛이야기를 떠올릴 만하고, 사진을 안 찍어도 마음으로 아로새긴 이야기를 가만히 되새길 만하다. (4345.8.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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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기
― 알아채지 못한 사진

 


  참 좋다고 느낀 삶 한 자락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누리는 즐거운 꿈과 사랑이 있어, 이 꿈과 사랑을 사진으로 적바림합니다. 스스로 느끼는 즐거운 꿈과 사랑이 없다면 내 손에 사진기를 쥘 수 없습니다. 스스로 깨닫는 좋은 웃음과 이야기가 있어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우리 시골집에 찾아온 손님이 있습니다. 손님은 두 아이를 데리고 왔으며, 우리 집에도 두 아이가 있습니다. 서로 얼크러집니다. 참으로 좋네, 하고 느끼며 시골 들길을 거닐며 우리 집으로 가는 뒷모습을 사진 한 장으로 적바림합니다. 손님을 치르고 나서 며칠 지난 뒤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뒷모습 사진이기에 뒷모습을 담습니다. 우리 아이가 등에 뭔가를 멨습니다. 뭔가 하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복주머니’입니다. 옆에 선 언니가 가방을 멨기에 저도 복주머니를 가방처럼 등에 멘 셈입니다.


  나는 우리 아이가 등에 복주머니를 멘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손님네 언니랑 사이좋게 놀면서 언니를 따라합니다. 아이는 즐겁게 놀았겠지요. 어버이가 알아챌 만큼 즐겁게 놀고, 어버이가 미처 못 알아챌 만큼 즐겁게 놀았겠지요.


  사진으로 뒷모습을 찍었기에 나중에 알아보기도 하지만, 사진으로 뒷모습을 안 찍었더라도, 그래서 이런 모습으로 논 줄 몰랐다 하더라도, 아이 얼굴을 보면 웃음이 흐드러지니까 ‘그래, 이런 웃음이 좋아.’ 하면서 새로운 하루를 새롭게 누렸으리라 생각합니다. 웃는 얼굴도 예쁜 뒷모습도 모두 반가우며 즐겁습니다. (4345.7.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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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7-28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언니와 안헤어지려고 하지 않던가요? 저만할 때 언니를 무척 따를 때인데요.
언니 따라 복주머니 멘 것 보고 혼자 상상해봅니다.

<삶말> 잘 받았어요. 고맙게, 잘 읽겠습니다.

숲노래 2012-07-29 07:50   좋아요 0 | URL
놀이동무 곁을 안 떨어지려고 해요.
그래도 씩씩하게 잘 놀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