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맹호 자서전 책
박맹호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 삶읽기 267



‘서울대·술·족벌’ 빼고는 이야기가 없을까

― 책, 박맹호 자서전

 박맹호 글

 민음사 펴냄, 2012.12.7. 18000원



  민음사라는 출판사를 연 박맹호 님이 쓴 《책, 박맹호 자서전》(민음사,2012)을 읽었습니다. 출판사를 열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고, 곁님이 얼마나 알뜰히 살림을 도와서 출판사를 버틸 수 있었으며, 첫 책을 내고 새로운 책을 꾸준히 내는 동안 둘레에서 얼마나 따스히 돕는 손길이 있었는가를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비룡소’가 성장해 감에 따라 이제 비룡소라는 보은의 작은 마을은 전국 단위 혹은 글로벌 차원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셈이다. (7쪽)


후일 출판사 이름을 ‘백성의 소리’라는 뜻의 ‘민음사’로 지은 것도 《수호지》의 영향이 컸다. (21쪽)



  《책》을 읽으면서 ‘비룡소’라고 하는 이름을 어린이책 출판사 이름으로 붙인 까닭도 헤아려 봅니다. 작은 시골마을에 있는 못이었다고 하니 ‘비룡못’이었을까요. 《책》이라고 하는 책은 ‘책’ 만드는 일을 하던 한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을 보여준다고 할 만할 텐데, 다른 분은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그리 재미나게 읽지는 못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책을 짓는 보람’이나 ‘책에 깃든 이야기’보다는 ‘책을 얼마나 많이 팔았는가’ 같은 이야기가 이 《책》을 거의 다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요가》로 얼마간 모아 놓은 돈까지 모두 날려 버렸다. 다시 신동문의 소개로 일본에서는 큰 인기를 끌었다는 5권짜리 《서유기》를 무단으로 번역해 출간했지만 그것마저 나가지 않았다. (62쪽)


좋은 책은 언젠가 독자들이 알아줄 것이고 반드시 팔리게 마련이라는 소극적 사고방식으로는 격류를 헤쳐 나갈 수 없었다. 좋은 책을 출판하는 것은 훌륭한 출판사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그 책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필사적인 노력을 통해 충분조건을 채우지 않으면 출판사는 좋은 책을 출판하고도 오히려 쇠퇴하기 쉽다. (119쪽)



  박맹호 님은 ‘좋은 책 내기’보다는 ‘책을 널리 팔기’에 더 무게를 둡니다. 아무래도 이런 생각으로 그동안 ‘책 짓기’ 아닌 ‘책 만들기’를 한 터라, ‘엄청난 선인세’를 내놓는 다툼을 벌이기까지 하고 말았을 테지요. 바깥으로 알려지기는 ‘엄청난 선인세’ 몇 가지일 터이나, ‘엄청나지 않아도 대단한 선인세’를 치르고서 ‘선인세 값을 거두어들이려’고 광고를 얼마나 많이 해야 했을까요.



그때 민음사에 들어와서 나를 경영 면에서 돕고 있던 장남 근섭이 대표를 맡아서 두 해 동안 운영했는데, 전문가들의 평은 좋았으나 시장에서 독자를 설득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고급 아동 도서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209쪽)


근섭은 민음사의 현대화를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자회사인 황금가지를 맡아 몇 해 동안 계속해서 밀리언셀러를 쏟아내 민음사 출판 그룹의 재정을 탄탄하게 받쳐 주었다. (213쪽)


사이언스북스는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 대학원에서 미디어아트를 공부한 막내 상준이 맡아서 의욕적으로 일들을 벌여 나가고 있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민음사 총괄 사장으로 임명되어 민음사 사업도 함께 돌보고 있다. (221쪽)



  박맹호 님은 이녁 아이들한테 출판사를 ‘물려주었다’는 이야기를 《책》 곳곳에 적습니다. 그리고 박맹호 님은 ‘서울대 출신’이라는 대목을 너무 자주 되풀이해서 밝힙니다. 더욱이 ‘서울대 불문과’가 아닌 ‘서울대 문리대 불문과’라고 따로 ‘문리대’라는 이름을 더 넣어서 이녁 학력을 적어요.


  《책》이라고 하는 책은 ‘어떤 책을 만든 발자국’을 적바림했다고 할 만할까요. 이 책은 앞으로 사람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물려줄 만하다고 할 만할까요.


  책 한 권을 알뜰히 사랑하면서 독자와 만나는 이야기는 《책》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책 한 권을 가슴으로 사랑하면서 작가와 어울리는 이야기는 《책》에서 만나기 어렵습니다. 이름난 몇몇 작가나 정치인하고 어울리던 술자리 이야기는 《책》에서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를 둘러싼 인맥과 학맥 이야기는 《책》에서 퍽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민음사라는 출판사가 내놓은 책으로 목록을 꾸며도 낱권책 하나가 나올 만큼 되는데, 민음사라는 출판사가 걸어온 길에서 ‘책’을 말하는 일이란, ‘회장’이라는 이름과 ‘출판 재벌’이 되고팠던 마음에서는 좀처럼 쉽지 않았네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책을 둘러싼 이야기는 그야말로 아주 많고 넘칠 텐데요. 2016.8.29.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의 서재 - 정여울 감성 산문집, 개정판
정여울 지음, 이승원.정여울 사진 / 천년의상상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 삶읽기 262



한 손은 텃밭 일구고, 다른 한 손은 마음밭 가꾸고

― 마음의 서재

 정여울 글

 이승원·정여울 사진

 천년의상상 펴냄, 2015.2.9. 15000원



  시골집에서 귀를 기울이면 새벽부터 밤까지 온갖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여름에는 몇 가지 도드라진 소리가 있으니, 새벽부터 해거름까지 들리는 헬리콥터 소리입니다. 시골에 뭔 헬리콥터 소리가 나느냐 하면, 나날이 시골마을 어르신들은 몸소 농약을 뿌리기 어렵다 보니, 농협 무인헬리콥터를 빌어서 농약을 뿌립니다. ‘항공방제’를 하는 소리가 새벽부터 들려요.


  농약철이 되어 곳곳에 농약바람이 불면서, 이 마을 저 마을 항공방제를 하는 무인헬리콥터가 수없이 뜨면, 그야말로 귀가 따갑고 눈이 따가울 만합니다. 그런데 항공방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항공방제를 하기 앞서 하늘을 신나게 가르던 제비가 자취를 감추고, 해오라기도 부쩍 줄며, 숱한 멧새도 더는 마을로 내려오지 않습니다. 잠자리하고 나비도 줄어들며, 귀뚜라미와 개구리 울음소리도 감쪽같이 사라지지요.



나는 잠시 새로운 책에 대한 조바심을 내려놓고 오직 내가 읽은 책들로만 이루어진 작고 아름다운 마음의 도서관을 가꾸기로 했다. (20쪽)


눈에 보이는 공간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관계의 빈 공간’이 필요하다. (67쪽)



  여름이 한창 무르익는 요즈음 새벽부터 해거름까지 온갖 소리를 듣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나 스스로 마을 언저리에서 퍼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그 소리에 사로잡힙니다. 나 스스로 아이들을 더 살가이 바라보면 아이들 말소리 웃음소리 노랫소리만 귀에 들립니다. 바깥소리가 안 들려요.


  부엌에서 도마질을 하면 내 귀에는 도마질 소리가 들립니다. 여름이라 아이를 무릎에 앉히기는 힘들지만, 대청마루에 나란히 앉아서 그림책을 넘기면 종이가 팔랑 넘어가는 소리만 들려요. 그리고 아무리 항공방제가 춤을 추더라도 우리 집 마당하고 뒤꼍을 찾아오는 온갖 멧새가 있어요. 모과알이 굵는 소리라든지, 석류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풋감이 떨어지며 지붕을 때리는 소리라든지, 물까치가 무화과를 쪼는 소리도 들을 수 있어요. 바야흐로 하얗게 터지려는 솔꽃(부추꽃) 소리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정여울 님이 쓴 《마음의 서재》(천년의상상,2015)를 읽으면서 문득 ‘마음으로 듣는 소리’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정말 우리는 사돈의 팔촌보다 더 머나먼 연예인들의 정보는 샅샅이 꿰고 있으면서 정작 주변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경험을 듣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 것 같다. (118쪽)


우리가 누군가에게 기적 같은 사랑을 베풀 수 있다면, 그건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신성한 힘’이 아닐까. (134쪽)



  책을 바탕으로 가벼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마음의 서재》는 정여울 님 스스로 ‘더 많은 책을 소개하는 정보’가 아니라 ‘마음으로 읽은 책을 홀가분하게 이야기로 엮자’는 생각으로 쓴 글이라고 합니다. 새로 쏟아지는 수많은 책을 가리거나 훑어서 들려주는 이야기도 나쁘지 않을 테지만, 누구보다 ‘책을 좋아하는 내(정여울) 마음’을 읽으면서, 이 마음결에 기쁨이 솟도록 북돋우던 책에 서린 숨결을 말해 보자는 뜻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서재》라고 하는 책은 우리한테 넌지시 말하는 셈입니다. ‘더 많은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를 굳이 찾아서 읽지 않아도 된다’고, ‘바빠서 한 주에 책 한 권 못 읽어도 된다’고, 그예 홀가분한 넋을 고요히 바라보면서 살림을 즐겁게 짓는 길을 걸으며 책 한 권을 곁에 두자고 하는 이야기인 셈이에요.



인어공주는 신분상승을 위해 목숨을 거는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아니라, 모두가 ‘이룰 수 없다’고 말하는 꿈, 누가 봐도 불가능한 꿈을 향해 묵묵히 전진하는 사람들의 영원한 친구다. (153쪽)


괴물과 마주친 자들은 그를 목격하자마자 냅다 도망치거나 다짜고짜 공격한다. 괴물의 겉모습을 볼 수 없었던 눈먼 노인만이 그의 대화 상대가 되어 준다. (204쪽)



  나는 바람소리를 들으려고 시골에서 삽니다. 자동차나 손전화나 텔레비전 소리를 들으려고 시골에서 살지 않습니다. 나는 깊은 숲에서 솟는 맑고 시원한 골짝물을 마시려고 시골에서 삽니다. 댐에 가둔 물을 시멘트관으로 수백 킬로미터를 이어서 흐르도록 하는 수돗물을 마시려고 시골에서 살지 않아요. 나는 손수 밭을 가꾸면서 풀·흙·꽃·나무를 보살피려는 마음으로 시골에서 삽니다. 유기농도 화학농도 아니라, 손수 짓는 살림을 꿈꾸며 시골집을 보듬으려 합니다.


  이리하여 내가 손에 쥐어 읽는 책은 바로 시골바람을 기쁨으로 북돋우는 길동무 같은 책입니다. 내가 나한테 사랑스러운 이웃님한테 건네거나 선물하고 싶은 책은 늘 숲바람이 시골에서 도시로 불어서 우리 모두 맑은 숨을 쉴 수 있도록 이끄는 파란하늘 같은 책이에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은 ‘TV에 나오는 맛집’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손님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영업시간에는 촬영을 금지할 정도로 고객중심주의를 고수한다. (252쪽)


제대로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인간의 영혼은 병들게 되어 있다는 것을. 너무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면 관계가 파탄 날 수 있고, 너무 간접적으로 에둘러 표현하면 솔직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어렵다. (277쪽)



  가만히 헤아립니다. ‘맛집’에서 가서 ‘맛밥’을 먹는 일은 나쁘지 않아요. 그러나 나로서는 우리 보금자리를 ‘사랑집’으로 일구면서 ‘사랑밥’을 먹는 살림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 맛나거나 좋은 밥보다는, 즐겁거나 기쁨이 샘솟는 웃음으로 누리는 밥을 지어서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어떤 책을 읽을 적에 마음을 곱게 살찌울 만할까요? 아마 모든 사람한테는 다 다른 책이 걸맞으면서 아름답겠지요? 다른 사람 앞에서 뽐내려는 서재가 아니라 ‘마음을 스스로 가꾸는 서재’일 적에 아름답습니다. 《마음의 서재》라는 책에서도 밝히듯이,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마음을 가꿀 수 있도록 생각을 일깨우는 책 한 권을 곁에 두면 됩니다. 한 손에는 책을 쥐고, 한 손에는 호미를 쥡니다. 한 손으로 텃밭을 일구고, 한 손으로 마음밭을 일굽니다. 2016.7.29.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 세상에서 제일 작은 서점 울랄라의 나날
우다 도모코 지음, 김민정 옮김 / 효형출판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60



책에 담은 마음을 사랑하는 작은 헌책방

―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우다 도모코 글

 김민정 옮김

 효형출판 펴냄, 2015.11.25. 13000원



  오키나와에 있다는 작은 헌책방 ‘울랄라’를 꾸리는 아가씨가 틈틈이 쓴 ‘헌책방 일기’를 엮은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효형출판,2015)라는 책이 있습니다. 글을 쓴 우다 도모코 님이 아니더라도 오키나와에는 헌책방이 있었고, ‘일본에서 가장 작은 헌책방’은 이녁이 아닌 이녁보다 앞서 그곳에서 헌책방을 연 분이 한동안 꾸리셨다고 해요.


  그런데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어서 꾸린 이야기’를 헌책방지기가 스스로 쓴 일은 아마 거의 없었지 싶습니다. 우다 도코모 님은 한 해 반 즈음 헌책방을 꾸리면서 겪거나 듣거나 마주한 이야기를 조그마한 책에 조촐하게 담아요.



오키나와의 특산물은 망고와 진스코뿐만이 아니다. 오키나와에 관한 책을 빼놓을 수 없다. (11쪽)


아시아와 일본 무역의 중계지였던 류큐 왕국. 그런 류큐 왕국을 닮은 서점을 만들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류큐 왕족이나 호족에게 야단을 맞으려나. 어쨌거나 즐거운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26쪽)



  ‘오키나와’라고 하는 이름은 ‘일본’에서 붙였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오키나와가 아닌 ‘류큐’라는 이름으로 살아왔어요. 일본은 그곳 사람들을 식민지처럼 다루었고,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서 진 뒤에 류큐라고 하는 오키나와를 미국한테 ‘미군 기지’이자 ‘미국 땅’으로 내주었어요. ‘오키나와’가 ‘일본 본토’로 다시 들어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오키나와를 ‘똑같은 일본’으로 여기지만, 오키나와는 ‘일본하고 말도 사람도 삶도 살림도 무척 다릅’니다. 일본이면서도 일본하고 멀고, 일본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터이나 일본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러니까 오키나와다운 이야기가 물씬 흐르는 오키나와예요.



“왜 헌책방을 열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일반 서점은 취급하는 책이 정해져 있어요. 오키나와 책은 일반적인 경로로는 유통되지 않거나 절판된 책이 많은데 일반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어서 아쉬웠어요.” (61쪽)


처음엔 누군가에게 야단을 맞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는데 금세 당당하게 읽게 되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시장의 거리에 앉아 책을 읽는 것도 일종의 독서 캠페인이 아닐까. 물론 그 효과는 미지수겠지만. (144쪽)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를 쓴 젊은 아가씨는 씩씩한 헌책방지기입니다. 이러면서 책을 사랑합니다. 즐겁게 읽고, 즐겁게 다루며, 즐겁게 팔아요. 즐겁게 새 헌책을 장만하고, 즐겁게 새 손님을 맞이하며, 즐겁게 새 이야기를 누립니다.


  헌책방이 조그맣게 깃든 저잣거리에서 이웃 아저씨나 아주머니하고 살가이 어울립니다. 헌책방을 지키면서 즐거이 책을 읽을 뿐 아니라, 노래 공연도 더러 꾀하고, 여러모로 아기자기한 일도 벌입니다. 저잣거리 한쪽에서 젊은 이야기꽃을 새삼스레 터뜨립니다.


  한국에서도 이처럼 젊은 아가씨가 씩씩하게 헌책방을 열 만할까요?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가 아니라, 보은이나 장흥이나 성주 같은 작은 시골에서 헌책방을 열 만할까요? 신안에 있는 작은 섬에서, 또는 제주나 울릉 같은 섬에서, 아니면 지리산이나 오대산이나 계룡산 같은 짙푸른 숲을 둘러싼 멧골에서 이쁘장하게 헌책방을 열면서 책손을 기다릴 수 있을까요?



모두 새 책처럼 깨끗했다. 책을 소중하게 다루는 사람이구나. 아는 사람한테서 책을 사는 게 가장 어렵다. 애써 가져온 성의에 답하면서 나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얼마가 적당한지 고민해야 한다. (163쪽)


기사에 손님이 나올 때가 있어 꼭 훑어본다는 얘기를 듣고 감탄했다. 미용실에는 다양한 손님이 찾아올 것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자 스태프가 미용실에서 구독하는 잡지 《BRUTUS》의 ‘책방이 좋다’ 특집을 들고 왔다. “오키나와 책방이 세 곳이나 소개되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상기된 얼굴이었다. (175쪽)



  고작 두 평짜리 헌책방이라고 하지만, 크기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두 평이 아닌 스무 평쯤 되어야 훌륭하지 않아요. 스무 평도 아닌 이백 평쯤 되어야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만한 곳이 되지 않습니다. 이백 평이든 스무 평이든 두 평이든, 이러한 헌책방을 가꾸는 일꾼이 스스로 즐거움과 웃음과 사랑으로 살림을 돌볼 적에 비로소 사람들 발길이 이어져요. 더 많은 책을 갖추지 않더라도 괜찮지요. 책방지기 스스로 알차게 가꾸고 매만지고 돌보고 아끼는 책방일 적에 책손은 꾸준히 그곳을 찾아갈 수 있어요.


  헌책방은 아니지만 독립책방이 꾸준히 늘어요. 마을마다 있던 작은 마을책방이 거의 다 사라졌지만, 예전과 다르면서 새로운 책쉼터(북카페)도 꾸준히 늘어요. 책만 팔아서 장사를 할 만한지는 아직 잘 모른다고 여길 만하지만, 책사랑 이 마음을 고이 이어갈 수 있으면 전국 어느 곳에서나 아름다우면서 살뜰한 책마을이나 책터가 생길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3년간 탄 자전거는 이미 세 번이나 펑크가 난 터라 그다지 소중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3개월 전에 큰 바구니로 바꾸고 나서 애착이 좀 생겼다. 자전거에 책을 많이 실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야 헌책방 주인용 자전거 같다고 혼자 들떠 있었다. 내 자전거는 누가 가져간 것일까? 애들 장난일까? 아니면 지나가던 사람이 화가 나서 어딘가에 버린 것일까? (185쪽)


손님은 정년까지 신문사에서 일했다고 한다. 25일에 월급을 타면 바로 책을 사러 갔다. 책장을 채워가는 즐거움에 가슴이 벅찼다고 한다. “책에는 사람의 마음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직접 저자를 만나러도 가는 거지요.” (190쪽)



  글쓴이는 한 해 반 즈음 헌책방지기로 일하면서 작은 책 하나를 써냈으니, 앞으로도 헌책방 일기를 꾸준히 쓰면서 새로운 책을 찬찬히 내놓을 만하리라 봅니다. ‘헌책방 10년’ 일기도, ‘헌책방 20년’ 일기도, 또 ‘헌책방 30년’ 일기나 ‘헌책방 40년’ 일기도 오키나와 한쪽 저잣거리 조그마한 헌책방에서 태어날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종이에 담은 이야기를 아끼고, 종이로 빚는 살림을 사랑하며, 종이로 나누는 꿈을 노래하는 크고작은 수많은 헌책방이 새롭게 빛을 볼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6.7.13.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사진은 효형출판에서 고맙게 보내 주었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쟁터로 간 책들 - 진중문고의 탄생
몰리 굽틸 매닝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58



군대에서 책보다 값어치 있는 것은 없었다

― 전쟁터로 간 책들

 몰리 굽틸 매닝 글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펴냄, 2016.6.25. 15000원



  미국이 독일하고 일본과 전쟁을 치르던 1940년대에 책 한 권이 전쟁터 군인한테 어떤 구실을 했는가를 살핀 《전쟁터로 간 책들》(책과함께,2016)을 읽습니다. 이 책을 쓴 몰리 굽틸 매닝 님은 그무렵 벌어진 전쟁과 얽힌 자료를 꼼꼼이 다루면서 ‘진중문고’ 이야기를 씁니다.


  1940년대 미국 군부대에서는 처음에 ‘승리도서’를 모았다고 합니다. 전쟁터에 있는 군인이 마음을 쉬거나 달래도록 도울 만한 책을 ‘민간 기부’라는 틀로 그러모아서 보내 주었다고 해요. 수만 권도 수십만 권도 아닌 수백만 권을 모아서 전쟁터로 책을 보냈다는데, 한국 역사를 헤아린다면 꿈만 같은 숫자이자 이야기로구나 싶습니다. 더구나 한국 사회에서는 1940년대 첫무렵에 ‘사람들한테 책을 읽히자’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아직 어렵기도 하지요. 그때에는 식민지살이를 하며 ‘말’마저 빼앗겼으니까요.



동유럽에서 로젠베르크 부대는 무려 375개의 문서 보관소, 402개의 박물관, 531개의 연구소, 957개의 도서관을 불태워버렸다. 나치는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에서는 모든 책의 절반, 러시아에서는 5500만 권의 책을 불태운 것으로 추정된다. (33쪽)


책은 치료 효과를 발휘하여 병사들이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과 비극을 더 잘 견디게 해 주었다. 육군의 정신과 의사들은 책이 병사들의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불안과 긴장으로부터 위로를 준다고 동의했다. (77쪽)



  독일은 1930∼40년대에 이웃 여러 나라로 쳐들어가면서 그 나라 도서관이나 박물관을 그야말로 아작을 내었다고 합니다. 독일이 내세우는 제국주의하고 어긋나는 생각을 다룬 책은 샅샅이 캐내어 불살랐다지요. 책을 불사르면 사람들을 ‘독일주의’로 이끌 수 있다고 여겼구나 싶어요. 책을 없애고 학교에서 제국주의를 가르치면 사람들을 모두 바보로 길들일 수 있다고 여긴 몸짓이라고 느낍니다.


  미국은 독일하고 맞서는 전쟁을 치르면서 거꾸로 ‘새로운 책을 엄청나게 찍으려’ 했답니다. 다만, 전쟁을 치르면서 자원을 모조리 전쟁에 쏟아붓느라 나라마다 ‘책을 찍을 종이나 천’가 모자랐다고 해요. 이때에 ‘새로운 페이퍼백’을 생각해 냈고, 아주 적은 돈과 종이를 써서 아주 많은 책을 찍는 길을 새롭게 열었다고 합니다.



군인들은 주머니에 담배를 가득 챙기고 초코바를 한 움큼씩 집어갔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물건은 뭐니 뭐니 해도 진중문고였다 … 마침내 상륙함에 타게 되었을 때 자신의 배낭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깨달은 군인들은 부두 근처에 불필요한 물건들을 내버리고 휴대물품을 가볍게 했다. 이렇게 버려진 물건들이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쌓였지만, 그 지역을 청소한 군인들은 그 물건들의 무더기들 사이에서 “진중문고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147쪽)



  《전쟁터로 간 책들》 끝자락을 보면, 전쟁 끝무렵 연합군한테 포로가 된 독일군 이야기가 나옵니다. 독일군 포로는 수용소에서 ‘미국에서 찍은 영어로 된 진중문고’를 읽으면서 시름을 달래기도 했답니다. 전쟁터에 나간 미국 군인한테 둘도 없는 벗이 된 책일 뿐 아니라, 연합군한테도, 또 독일군한테마저 ‘책’은 더없이 살가운 벗이 되었다고 하는군요.


  전쟁터 군인들이 얼마나 이 책(진중문고)을 아꼈는가 하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벌일 적에도 다른 물품은 버리더라도 책은 거의 안 버리더라고 합니다. 가까스로 바닷가에 닿아 포격을 겨우 벗어나기는 했으나 몸이 다쳐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군인은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고 그 자리에서 책을 읽었다고 해요. 병원으로 실려가서 수술을 받을 적에도, 수술을 받고 아픈 몸을 달랠 적에도, 책은 늘 군인 곁에서 가장 가까운 벗으로 있어 주었다고 합니다.



일부 군인들은 영어로 된 책이나 낯익은 잡지를 보고 큰 위로를 받았으며 그리하여 이후 평생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167∼168쪽)


“도서관에 진중문고 한 상자가 들어오자 수병들은 초콜릿 상자를 받은 아이들처럼 좋아하며 책을 집어들기 시작하더군요. 진중문고는 바다를 항해하던 많은 나날 동안 수병들을 행복하고 즐겁게 했습니다.” 또 다른 수병은 이런 글을 남겼다. “입대한 이후 저는 진중문고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177쪽)



  오늘날 한국 군대는 어떠한지 잘 모릅니다. 나는 내가 군대에 있을 무렵을 떠올려 보기로 합니다. 나는 1990년대에 군대에 있을 적에 한 달에 한 번씩 ‘책 태우기’를 했습니다. 군대에서는 흔히 ‘관물 검사’를 하는데, 이때에 웬만한 책은 거의 ‘불온도서’ 딱지를 받습니다. 이런 책을 쓰레기하고 함께 태우도록 시켜요.


  책은 그냥 태우면 잘 타지 않으니 북북 찢어서 태워야 합니다. 옆에서 중대장은 책을 제대로 찢어서 제대로 태우는가를 지켜봅니다. 등에 따가운 눈길을 받으면서 책을 찢어서 태우다가도 중대장이 자리를 비우면 잿더미에 몇 가지 책이나마 슬쩍 숨겨서 다 태운 척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책을 잿더미에 묻은 뒤 밤에 몰래 내무반에 돌릴라 해도 중대장은 불쏘시개로 잿더미를 구석구석 뒤지기 일쑤라, 책을 제대로 안 태웠다고 한소리를 듣고 얼차려를 받곤 했습니다.


  책이란 읽지 말고, 책하고는 담을 쌓으며, 그저 위에서 시키는 짓만 하라는 한국 군대나 사회였다고 느낍니다.



이등병이 말했다. 고작 8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포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포탄이 “머리 위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상황을 바꾸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신 그는 “운명에 자신을 맡기고” 책장을 넘기면서 주변 환경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책에 빠진 그는 차분하게 그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190쪽)


“영국 친구들은 미국 군인들이 받는 대우에 놀라면서 자기 나라에 불만을 토로하더군요.” 많은 영국 군인은 왜 정부가 페이퍼백을 제공함으로써 영국군의 사기를 북돋우지 않는지를 의아해했다. (226쪽)



  전쟁터로 간 책들은 전쟁이 아닌 평화를 꿈꾸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쟁터로 간 책들은 전쟁터에서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던 젊은이들한테 꿈을 꾸는 마음을 심어 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록 눈앞에서 삶과 죽음이 엇갈리더라도 책 한 권을 뒷주머니에 꽂으면서 다시금 기운을 차려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되새겼구나 하고 느껴요.


  참으로 큰 몫을 맡은 책이로구나 싶은데, 책이 이런 큰 몫을 맡는다면 전쟁터 아닌 여느 삶터에서도 똑같이 큰 몫을 맡을 만하리라 봅니다. 시름을 달래어 주고, 꿈을 지피도록 북돋우고, 사랑을 그리도록 이끌고, 생각을 새롭게 가꾸도록 돕는 책이니까 말이지요.


  어리석은 전쟁을 멈추고, 어리석은 전쟁무기를 만들지 않으면서, 삶자리와 마을에 아름다운 꿈이 흐를 수 있기를 빕니다. 총을 들지 않고 책 한 권을 들 수 있기를, 철조망이나 탱크가 아니라 도서관을 세울 수 있기를, 군부대가 아니라 평화로우면서 사랑스러운 마을을 가꾸는 데에 힘을 쏟을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2016.7.8.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 테리 이글턴의 아주 특별한 문학 강의
테리 이글턴 지음,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 삶읽기 233



아름다운 삶을 문학에서 읽는 눈

―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테리 이글턴 글

 이미애 옮김

 책읽는수요일 펴냄, 2016.1.15. 16000원



  우리 생각이나 느낌을 글로 아름답게 빚으면 이를 ‘문학’이라고 합니다. 그냥 쓰는 글로는 아름다운 숨결이 되지 않아서 문학이라 하지 않아요. 이를테면, 병뚜껑에 적힌 ‘돌리세요’ 같은 글이라든지, 과자 봉지에 적힌 ‘뜯는 곳’ 같은 글은 따로 문학이라 하지 않습니다. 자전거나 선풍기를 새로 장만할 적에 받는 설명서를 놓고도 문학이라 하지 않아요. 지식이나 정보를 들려주기만 하는 글은 그냥 ‘지식 글’이나 ‘정보 글’이에요.


  그렇다고 문학에서 지식이나 정보를 안 다루지는 않습니다. 문학이라는 이름이 붙는 글은 지식이나 정보조차 아름답게 다루는 글이라 할 수 있어요. 정치나 경제 이야기도 아름다움이 흐르는 문학으로 빚을 수 있습니다. 수학이나 과학도 얼마든지 아름다움이 숨쉬는 문학으로 엮을 수 있어요.



텍스트의 해석에 옳은 방법과 그릇된 방법이 있습니까? 어떤 해석이 다른 해석보다 더 타당하다고 입증할 수 있을까요? (19쪽)


어쩌면 이 시는 여기서 가을을 묘사하면서 부지불식간에 그 자체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61쪽)



  2013년에 “How to Read Literature”라는 이름으로 나왔다고 하는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책읽는수요일,2016)을 읽습니다. 영어로 나온 책이름을 곰곰이 헤아린다면 “어떻게 문학을 읽는가”나 “문학을 어떻게 읽는가”라 할 만합니다. 한국말로 나온 책에서는 ‘어떻게’가 빠졌어요. 다시 말하자면,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이라는 책은 ‘독자’라는 눈을 넘어서 ‘비평가’라는 눈으로 문학을 바라보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글을 읽을 적에 ‘독자 자리’에 얌전히 머물지 말고, ‘우리 스스로 저마다 다른 비평가 자리’에 서서 바라보자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수 있어요.



이 연극은 우리에게 어떤 진실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존재의 환영적 속성에 관한 진실입니다. (97쪽)


많은 사실주의 소설은 독자가 그 인물들과 동일시하기를 요청합니다. 독자는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떠할지 느끼리라고 예상합니다. (145쪽)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을 쓴 테리 이글턴 님은 ‘비평가 눈’은 한 갈래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책에서는 테리 이글턴이라고 하는 분 눈길로 ‘문학을 읽는 길’을 보여주는데, 우리는 ‘테리 이글턴처럼’ 문학을 읽을 수도 있고, ‘테리 이글턴이 안 하듯이’ 문학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대학교수처럼 읽을 수 있어요. 누군가는 중학생처럼 읽을 수 있어요. 누군가는 시골지기처럼 읽을 수 있어요. 누군가는 청소부로서 읽을 수 있고, 누군가는 의사나 간호사로서 읽을 수 있어요. 시장으로서 읽을 수 있고, 전업주부로서 읽을 수 있어요.


  그러면 가장 나은 눈은 있을까요? 문학을 읽는 가장 훌륭한 길은 있을까요? 문학을 비평하고, 문학을 말하며, 문학을 다루는 가장 놀라운 눈이 따로 있을까요? 문학을 이야기하는 가장 재미나거나 즐거운 길이 참말 따로 꼭 한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작가는 사적 경험을 맹목적으로 숭배해서는 안 됩니다. 작가가 되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끌어 내라는 조언을 이따금 받습니다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 작가는 글을 쓰는 행위 너머의 그 어떤 경험도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가 기록하는 고뇌의 감정은 순전히 허구적일 수도 있지요. (254, 255쪽)



  문학책이 아닌 만화책을 읽을 적에도 ‘한 갈래 눈’으로만 읽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마다 다 다르게 읽기 마련입니다. 나이에 따라서 다르게 읽기 마련이고, 살아온 발자국에 따라서 다르게 읽기 마련이에요. 같은 만화책을 놓고도 가시내하고 사내가 다르게 읽겠지요. 군인과 민간인이 다르게 읽을 테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하고 평화를 안 믿는 사람은 또 다르게 읽을 테지요.


  그런데 우리가 문학을 어떻게 읽든 문학은 늘 문학입니다. 내가 이 문학을 썩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하더라도 이 문학은 언제나 이 문학 그대로예요. 내가 이 문학을 몹시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이 문학은 늘 이 문학 그대로입니다. 남들이 어느 문학을 손가락질하거나 깎아내린다고 하더라도 늘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 생각’일 뿐입니다.


  문학은 추켜세울 수도 없고 깎아내릴 수도 없습니다. 잘 쓴 글이나 못 쓴 글이 있다기보다 ‘잘 썼다고 여기는 눈’이 있고, ‘못 썼다고 여기는 눈’이 있을 뿐이에요. ‘즐겁게 바라보는 눈’이 있고, ‘안 즐겁게 바라보는 눈’이 있어요. 그리고, 이처럼 사람들마다 다르게 읽을 수 있기에 문학은 비로소 문학다우리라 느껴요. 문학을 가리켜 ‘생각과 느낌을 아름답게 빚은 글’이라고 할 적에는 참말 사람들마다 다 다른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슬픔이나 짜증이나 보람이나 사랑을 문학에서 맛볼 수 있기 때문이지 싶어요.



가창 독창적이지 못한 비평 양식은 작품의 줄거리를 그저 다른 말로 바꿔 얘기하는 것입니다. (280쪽)


각각의 예술 작품은 기적과 같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그것은 신의 세계 창조 행위의 모방이자 반복이지요. (329쪽)


이누이트족의 풍부한 시를 탐구하는 데 몰두한 영국인 독자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양쪽 모두 다른 문명의 예술을 즐기려면 자신의 문화 환경 너머로 나아가야 합니다. (345쪽)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을 쓴 테리 이글턴 님도 이야기하듯이, ‘작품 줄거리’를 읊는 글은 비평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글은 그저 ‘줄거리 소개글’일 뿐입니다. 줄거리를 늘어놓기만 한다면 ‘줄거리 늘어놓는 글’이에요.


  비평이라는 눈으로 바라보자면, ‘작가 스스로 작가 나름대로 품은 생각과 느낌을 담은 글’을 읽은 ‘비평가 스스로 비평가 나름대로 품은 생각과 느낌을 담아서 말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작가는 작가대로 작가 목소리를 내야 ‘창작’이요, 비평가는 비평가대로 비평가 목소리를 내야 ‘비평’이라고 하겠지요.


  그러니까 목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내 목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내 삶을 내가 스스로 노래할 수 있는 목소리가 있어야 해요. 내 꿈을 내가 손수 밝혀서 드러낼 수 있는 목소리가 있어야지요. 내 사랑을 내가 기쁨으로 나누려고 하는 목소리가 있어야 하는구나 싶어요.


  문학을 빚는 사람은 이녁 나름대로 이녁 삶을 글로 아름답게 빚습니다. 문학을 누리는 사람은 이녁 나름대로 이녁 삶을 문학이라는 글에 비추어 새롭게 읽습니다. ‘문학쓰기’는 작가 나름대로 펼치는 ‘삶쓰기’라면, ‘문학읽기’는 비평가(또는 독자) 나름대로 즐기는 ‘삶읽기’라고 할까요.


  작가 한 사람은 삶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길을 걸으면서 문학을 빚는다고 봅니다. 비평가(또는 독자) 한 사람은 삶을 아름답게 지으려는 길을 바라보려고 문학을 읽는다고 느낍니다. 작가와 비평가는 서로 아름다움으로 만나고, 우리는 이 아름다움을 기쁘게 마음밥으로 먹으면서 문학책 한 권을 손에 쥡니다. 2016.2.23.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