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 넘어진 듯 보여도 천천히 걸어가는 중
송은정 지음 / 효형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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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28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송은정

 효형출판

 2018.1.20.



바람처럼 등장해 바람처럼 사라진 그를 뒤로한 채 나는 혼자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뒤늦은 부끄러움이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뻗쳤다. 그가 책방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는 순간부터 안으로 들어와 말을 붙이기 전까지 나는, 중국집 배달원이 책을 살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55쪽)


아주머니에게서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젊은 친구가 예쁜 가게를 운영해 준 덕분에 동네 분위기가 밝아졌다는 칭찬이었다. (112쪽)


가고파 미용실 아주머니로부터 묘한 동지애가 느껴졌다. 단 하나의 공통점도 없어 보이던 우리 사이에 다리 하나가 놓였다. 어쩌면 좋아하는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는 건 언제든 다리를 건너 자신에게 오라는 초대장과 같은 게 아닐까. (113쪽)


그저 책방 운영자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이야기 상대가 되어 주고 있다. 이곳이 책방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로부터 한없는 신뢰를 받고 있다. (138쪽)



  책집이 문을 닫는 까닭은 그 책집으로 책을 사러 갈 책손이 줄어든 탓입니다. 아무리 가게삯이 높다 하더라도 책을 신나게 팔면 가게삯 내는 일이란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책집은 어떤 책을 어떻게 갖추어야 책손을 부쩍 끌어모을 수 있을까요? 저마다 다른 사람들 눈맛에 걸맞을 책은 어떤 눈결로 가리거나 찾아서 갖추어야 할까요?


  이 대목에서는 오랜 헌책집지기를 눈여겨보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랜 헌책집지기는 헌책을 다루면서 책을 바라보는 눈결은 꾸준히 키웁니다. 흔히들 헌책집은 오래된 책만 있으리라 잘못 알기 일쑤이지만, 막상 헌책집은 모든 책이 드나드는 곳입니다. 새책집은 새로 나온 책만 드나든다면, 헌책집은 새로 나온 책을 비롯해서 비매품, 보고서, 개인문집, 졸업사진책, 외국책, 보도자료, 논문, 소식지를 두루 아우르며 드나들어요. 그래서 헌책집을 꾸리는 이라면 이 모든 꾸러미를 알뜰히 살펴서 책손한테 어느 책이나 꾸러미가 어울릴까를 살피면서 ‘책맞춤’을 해 줍니다. 그저 책꽂이에 책만 꽂는 헌책집이 아니라, 책손이 새로 바랄 만한 책을 넌지시 책꽂이 한켠에 슬쩍 곁들여서 스스로 알아보도록 이끈다고 할 만합니다.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송은정, 효형출판, 2018)는 독립책집을 꾸린 분이 적은 일기입니다. 책집일기예요. 다만, 이 책집일기는 글쓴이가 독립책집을 씩씩하게 열어서 꾸리다가 그만 문을 닫습니다. 오늘도 문을 열고서 새 책을 살피면서 배우는 길은 그친 일기입니다. 오늘도 새로운 책손을 맞이하면서 새 이야기를 들려주는 길도 그친 일기예요.


  문을 닫고 만 이야기를 다룬 일기라서 어둡거나 무겁지 않습니다. 온누리에는 새로 여는 책집뿐 아니라 문을 닫는 책집도 많습니다. 책집지기가 나이가 들어서 문을 닫기도 하고, 장사가 힘들어 문을 닫기도 합니다. 다른 일을 하고 싶어 그만두기도 하며, 가게삯이 벅차다 싶어 그만두기도 해요.


  책집을 둘러싼 어떤 이야기라 하든, 책을 아끼는 손길로 하루하루 살아낸 발자국은 서로 새마음이 되도록 북돋웁니다. 비록 책장사하고는 멀어졌어도, 책장사를 하며 ‘읽는이’ 아닌 ‘파는이’로서 책을 새로 보던 눈을 배웠고, 책을 좋아하는 이웃을 손님으로 마주할 적에 어떤 눈이 되는가도 배운 나날이에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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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사 - 조금씩, 다르게, 살아가기
요조 (Yozoh) 지음 / 북노마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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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3


《오늘도, 무사》

 요조

 북노마드 2018.6.25.



책방 앞에 두었던 길고양이 밥그릇이 두 번째로 없어졌다. 처음 없어졌을 때에도 어떤 의도를 읽긴 했는데, 이번에 분명해졌다. (119쪽)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소신을 지키며 그림책 출판을 고수하시는 민찬기 대표님의 멋진 고집, 그리고 ‘콘서트’니까 노래도 있어야 하고 춤도 있어야 한다며 뜬금없이 노래를 부르고 시를 짓고 춤도 추셨던 아이 같았던 최종규 작가님, 그리고 아직 풋내기인 나. (143쪽)


유시민 작가님과 정유정 작가님과 나란히 내가 있다! 묻어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영원히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 틈에 묻어 다니고 싶다. (239쪽)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간판이 일부만 떨어져나간 나지막한 제주의 옛 건물이 있다. 누군가 귀띔해 주지 않는다면 그곳이 책방인 줄 모르고 지나갈 법한 공간, 바로 책방 무사다. (248쪽)



  누구나 책집을 열 수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여느 회사원이나 공무원도, 책을 사랑하는 여느 어린이나 젊은이도 책집을 열 수 있습니다. 배우나 시인으로 살다가도 책집을 열 만하고, 시장이나 군수로 살다가도 책집을 할 만합니다. 대통령으로 일하다가 책집을 열어도 되지요.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니까 읽을 수 있지만, 책을 좋아하지 않아도 책을 읽어 배움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숲에서 온 종이로 빚은 책은 사람들 앞에서 금을 긋지 않습니다. 누구한테나 열린 이야기꾸러미인 책이요, 어디에서나 시원스레 트인 이야기보따리인 책입니다.


  《오늘도, 무사》(요조, 북노마드, 2018)는 서울에서 연 책집을 제주로 옮긴 요조 님이 이녁 발자취를 그러모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에 실린 글을 〈책방 무사〉 누리집에서 먼저 읽었습니다. 뭇 책집지기가 저마다 누리집에 올리는 책집 일기를 즐겁게 읽던 터라, 이 일기를 곱게 묶은 책은 늘 반갑게 맞이합니다.


  글쓴이요 책집지기요 노래지기인 요조 님이 이 책에 살풋 쓰기도 했는데, 2016년에 이녁을 인천 어느 책수다자리에서 처음 마주하면서, 이분이 머잖아 책집 일기를 써서 책으로 낼 줄 알았습니다. 이태가 걸렸군요.


  어느 모로 보면 좀 이르게 책집 일기를 낸 셈입니다. 이 책은 이야기보다는 사진하고 빈자리가 좀 많거든요. 그런데 이야기보다 사진하고 빈자리가 많은 일기란, 앞으로 새로 채울 자리가 많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책집(독립책방)은 책시렁을 굳이 빈틈없이 채워야 하지 않습니다. 책집지기가 사랑하는 책, 사랑할 만한 책, 사랑하려는 책, 사랑을 느끼는 책, 사랑을 배우는 책, 사랑을 노래하는 숨결이 반가운 책 들을 천천히 갖추어도 좋습니다. 더 많은 책손한테 더 많은 책을 팔기보다는, 즐겁게 책마실 나서는 이웃하고 상냥하게 책수다를 나눌 만한 책집이 되려는 쉼터 가운데 하나로 뚜벅걸음을 하려는 〈책방 무사〉가 되기를 빕니다.


  서른 해 뒤에도 책집지기일 수 있기를, 쉰 해 뒤에도 책집님일 수 있기를, 일흔 해 뒤에도 책집을 노래할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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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스토리닷 글쓰기 공작소 시리즈 2
이정하 지음 / 스토리닷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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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209


글쓰기를 넘어 ‘책쓰기’로 함께 가요
― 책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이정하
 스토리닷, 2018.4.15.


책은 독자가 책값을 치르고 보는 상품이다. 작가 자신만 읽고 좋으면 그만인 작품이 아닌 까닭에 책은 많은 이들에게 읽힐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내가 책을 쓰면 어떻게,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책을 알리고, 판매까지 이루게 할 것인가.’는 출판사만의 고민이 아니어야 한다. (27∼28쪽)


  ‘글쓰기’라는 낱말이 사전에 오른 지 스무 해가 채 안 됩니다. 스무 해쯤 앞서는 ‘글 쓰기’처럼 띄어서 써야 했습니다만, 이오덕 님을 비롯한 뜻있는 이들이 꿋꿋하게 ‘글쓰기’로 붙여서 썼기에 어느새 한 낱말로 굳으며 퍼졌어요.

  예전에는 ‘글짓기’라는 낱말을 으레 썼는데, ‘글짓기’가 한 낱말이 된 지는 쉰 해가 채 안 됩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거쳐 ‘작문(作文)’이란 한자말이 들어왔고, 해방 뒤에야 이를 ‘글짓기’로 손질해서 쓸 수 있었어요.

  그러면 옛날에는 어떤 말을 썼을까요? ‘글지이’입니다. ‘글지이’는 “글을 짓는 사람”하고 “글을 짓는 일”을 아울렀어요. 먼 옛날에는, 밥이나 옷을 짓듯 글도 마땅히 ‘짓는다’고 여겼습니다.

  이제 오늘 이곳에서 글을 놓고 돌아보면, 글을 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달삯 받는 기자가 아니어도 기사를 쓸 수 있습니다. 따로 글쓴이나 지은이 이름이 없더라고 책을 쓸 수 있습니다. 아직 ‘책 쓰기’처럼 띄어서 써야 한다고 여길 테지만, 머잖아 ‘책쓰기’라는 낱말도 사전에 오르리라 봅니다.


나는 혼자 책을 쓰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수천, 수만 명이 될 수도 있다. 잘하면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이고 해외 사람들도 이 책을 읽는다고 할 때 정성을 들여 쓴 원고와 그렇지 않은 원고는 단박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50쪽)

정작 사람들이 책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책 쓸 시간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기 때문이다. (70쪽)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어쩌면 어떤 정보나 사실을 알기보다는 ‘저 사람(작가)은 어떤 사람일까?’ ‘그가 쓴 책은 어떤 책일까?’ 하고 궁금해서 책을 읽는 것인지도 모른다. (103쪽)


  《책쓰기 어떻게 시작할까》(이정하, 스토리닷, 2018)를 읽으면서 글하고 책이 걸어온 길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한국말사전에 ‘글짓기’조차 오르지 않던 무렵에는 글은 아무나 지을 수 없다고 여겼어요. 학교에서 반공 글짓기를 억지로 시키던 때에 아이들이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하도록 북돋우는 교사가 하나둘 늘면서 ‘글쓰기’를 가르칠 무렵에도 글은 누구나 쓰기 어렵다고 여겼습니다.

  ‘글쓰기’가 차츰 퍼지면서 ‘글쓴이’라는 낱말도 사전에 오릅니다. 예전에는 ‘지은이’조차 사전에 없었고, ‘저자(著者)·필자(筆者)·작자(作者)·작가(作家)’ 같은 한자말만 사전에 있었어요. 이런 한자말만 사전에 오르던 무렵에는 참말, ‘글은 아무나 못 쓴다’는, ‘전문가만 글을 쓴다’는 생각이 감돌았어요. 쉽고 수수한 한국말인 ‘글짓기·지은이·글쓰기·글쓴이’가 하나씩 사전에 천천히 오르는 사이, 누구나 삶을 글로 담아내는 물결이 일었고, 이제는 누구나 삶을 책으로 여미는 터전이 생깁니다.

  《책쓰기 어떻게 시작할까》는 누구나 글을 쓰고 책을 여밀 수 있는 오늘날, 책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엮으며, 어떻게 내고, 어떻게 팔고, 어떻게 알리며, 어떤 이웃님하고 책을 나눌 적에 즐거울까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을, 이제는 ‘책 하나라는 틀’로 헤아리면서 스스로 짜임새있게 써 보자는 이야기를 펴요.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옛말처럼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 그것은 어쩌면 힘들고 듣기 싫은 말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166쪽)

이제 책은 국문과를 졸업하거나 문학창작학과를 졸업한 사람들만 쓰는 시대가 아니다. 원래부터 책이란 그런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192쪽)


  즐거워서 글을 쓰다 보면 글이 꽤 쌓이기 마련입니다. 이레마다 글을 한 꼭지를 쓰더라도 한 해라면 쉰 꼭지가 넘고, 다섯 해라면 이백쉰 꼭지가 넘습니다. 열 해라면 오백 꼭지가 넘을 테지요. 그런데 아무리 즐거워서 글을 쓰더라도 무턱대고 쓰기만 하면 나중에는 잔뜩 쌓여 스스로 헷갈리거나 어지러울 수 있습니다.

  책쓰기란, 책 하나를 헤아리면서 글을 쓰기란, 글머리를 처음부터 또렷하면서 알차게 잡아 보자는 뜻이라고 할 만합니다. ‘어떻게 책을 써요?’ 하고 어려워하기보다는, 길면 열 해, 줄잡아 다섯 해, 짧으면 두세 해쯤 내다보면서 차근차근 글쓰기를 누려 보자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글을 잔뜩 써 놓고 ‘이렇게 글이 많으니 책을 낼 수 있겠지요?’ 하고 묻기보다는, ‘잔뜩 쌓아 놓은 글을 갈무리하거나 고쳐쓰느라 애먹지 말’고, 처음부터 줄거리를 잡아서 ‘글로 담고 싶은 생각’을 차근차근 풀어내 보면 좋다고 할 만해요. 《책쓰기 어떻게 시작할까》는 이 같은 실마리를 풀기 좋도록, 크게 세 갈래로 이야기를 엮습니다. 먼저, 왜 글을 쓰고 싶은가를 스스로 묻자고 합니다. 큰그림을 짜기 앞서는 글을 쓰지 말자고 하지요. 다음으로는, 즐겁게 글을 쓰자고 합니다. 틈틈이 조금씩 쓰고, 모든 글을 빈틈없이 쓰려 하지 말며, 써 놓은 글을 스스로 읽고 되읽자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글벗하고 모여서 함께 써 보자고 해요. 혼자 끙끙 앓기보다는 마음 맞는 글벗하고 글을 돌려읽으면서 서로 도움벗이 되자고 합니다.


“모든 글은 하루만 지나도 옛날 글이 될 테니, 날마다 새롭게 배운다는 마음으로, 출판사하고 여러 차례 글손질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첫 책이 태어났습니다.” (76쪽/인터뷰 최종규)

“사전을 읽어 주셔요. 비록 우리 한국말사전이 거의 모두 엉터리 말풀이로 가득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사전을 읽어 주셔요. 사전에 흐르는 돌림풀이하고 겹말풀이를 깨달으면서 한숨을 쉬어도 좋고, 우리 나름대로 사전 뜻풀이를 바로잡아도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가 쓰는 말을 우리 나름대로 제대로 풀이한 사전’을 공책에 찬찬히 적어서 엮을 수 있어요. 글을 쓰는 사람이 되려면 누구나 ‘내 사전’이 있어야 합니다.” (80쪽/인터뷰 최종규)


  ‘글쓰기’란, 말 그대로 글을 쓰는 일입니다. 살아가는 나날을 꾸밈없이 드러내어 적기에 글쓰기입니다. ‘글짓기’란, 말 그대로 글을 짓는 일입니다. 밥이나 옷이나 집을 지을 적에는 그냥 짓지 않습니다. 얼거리를 살펴서 차근차근 지어요. 참다이 글짓기를 한다면, 글로 밝힐 우리 삶이나 넋을 어떻게 여밀 만한가를 곰곰이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책쓰기, 또는 책짓기라고 한다면, 단출하거나 두툼하게 여밀 책 하나를 헤아리면서, 더하거나 덜어낼 이야기를 알맞게 가누는 길을 찾으려 한다고 할 만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이야기를 책 하나로 어떻게 여미면 좋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물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책 하나로 어떻게 묶으면 좋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멋지게 누린 여행길을 책 하나로 어떻게 담으면 좋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어요.

  글 한두 꼭지로는 마음이 안 차는 이야기라면 홀가분하게 책쓰기를 헤아릴 만합니다. 어떤 전문가가 나서서 써 주기를 바랄 까닭 없이,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배우고 살핀 삶을 즐겁게 풀어내어 책을 쓸 만해요. 글쓰기 한 걸음을 디뎌 민주나 평등이나 평화를 살며시 지폈다면, 책쓰기 두 걸음을 내디디면서 민주나 평등이나 평화를 가만히 꽃피울 만하지 싶습니다.

  이오덕 님은 아이들한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우리 모두 글을 써요, 신나는 글쓰기”라 말씀했어요. 오늘 우리는 책쓰기를 함께하면서 “우리 모두 책을 써요, 아름다운 책쓰기”를 외칠 수 있습니다. 2018.5.7.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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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풀무질 - 동네서점 아저씨 은종복의 25년 분투기
은종복 지음 / 한티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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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204


책도둑이 책손으로 바뀌는 ‘풀집’이 있다
― 책방 풀무질 : 동네서점 아저씨 은종복의 25년 분투기
 은종복 글, 최종규 사진
 한티재, 2018.4.1.


  자그마한 책집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자그마한 곳은 아닙니다만, 참말로 자그마해서 한 사람이 서도 차고, 두 사람이 서면 꽉 차며, 세 사람이 서면 몸을 틀 수 없는데, 너덧 사람이 서면 그야말로 옴쭉달싹 할 수 없던 곳입니다.

  어떻게 자그마한 책집이 책장사로 살림을 꾸릴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천 평이나 이천 평쯤은 되어야 책을 넉넉하게 꽂고 걸상을 널널하게 두어 손님을 잔뜩 끌여들어 장사를 잘할 만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어요.


남쪽은 사회주의를 안을 수 있는 민주정부가 들어서야 하고 북쪽은 자본주의를 품을 수 있는 사회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 둘째는 남북 모두 군대를 없애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미쳤다고 말을 할 것이다. 중미에 있는 코스타리카는 군대가 없다. (210쪽)

코스타리카는 500만 명이 안 되는 작은 나라다. 한반도 남녘은 5천만이 넘고 남북이 갈라져 있어서 그 나라와 똑같이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삶도 바뀌지 않는다. 투표장에 나가는 마음이 기쁘고 즐거우려면 ‘테러방지법’ 같은 백성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법을 더 만들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는 교육이 있어야 한다. (196쪽)


  자그마한 책집을 꾸린 일꾼은, 젊어서 소설쓰기를 꿈꾸었다고 합니다. 자그마한 책집지기는, 마음으로만 소설쓰기 꿈을 품으면서 틈을 내어 쪽글을 씁니다. 원고종이로는 서너 쪽, A4종이로는 한 쪽이 될 글을 씁니다. 짤막하게 쓰니 쪽글이요, 이 쪽글을 100장씩 200장씩 뽑아서 책손한테 나누어 줍니다. 책집 곁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는 책손한테도, 먼길을 마다 않고 찾아오는 책손한테도 쪽글을 건넵니다.

  작은 책집지기가 쓰는 쪽글은 대수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읽을거리가 얼마나 넘치는데요. 신문도 많고 책도 많습니다. 더욱이 책집 곁에 있는 대학교에는 교수님도 많습니다.

  그런데 숱한 신문이며 책이며 교수님이며 지식인이 있으나, 우리 삶터 구석구석을 못 짚을 때가 있고, 안 건드릴 때가 있습니다. 섣부른 소리로 여기거나 이 나라에는 안 어울린다고 여겨서 손사래치는 글도 있어요. 작은 책집지기는 책으로 마주하는 모든 이웃하고 쪽글을 나눕니다. 책을 읽어서 생각을 새롭게 지펴도 좋다고 여기고, 쪽글을 쪽틈 내어 읽고서 생각을 새롭게 밝혀 주기를 바랍니다.


얼마 앞서 프랑스에 다녀온 일이 있었다. 도시 골목마다 책방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프랑스는 완전도서정가제를 20년도 전부터 해 오고 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나라에서는 책방을 새로 열려고 하면 나라에서 우리나라 돈으로 10억 원을 10년 거치, 10년 상황, 무이자로 빌려준다. 책방을 해서 돈을 많이 벌거나 건물을 사는 일은 없지만 책방을 한다고 망하는 일도 없다. (205쪽)

사람이 꼭 책을 읽어야 세상이 맑고 밝아지고, 스스로가 맑고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대학 앞에 책방이 없다는 것은 그 나라가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173쪽)

사람들이 읽지 않으면 책이 더 이상 나오지 않듯이, 사람들이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싸게 사면 동네책방은 사라진다. 동네책방이 사라진 동네, 동네에 복덕방·머리방·소주방·전자놀이방만 보이는 나라는 좀 슬프지 않은가. (174쪽)


  《책방 풀무질》(은종복, 한티재, 2018)을 읽습니다. 서울 성균관대 곁에 있는 책집 〈풀무질〉 이야기를 담은 자그마한 책입니다. 작은 책집 이야기를 작은 일꾼이 쓰고, 작은 출판사에서 꾸렸습니다.

  자그마한 책에 깃든 이야기는 자그마한 목소리입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적은 글이 아니라, 가볍고 산뜻한 봄바람처럼 나긋나긋하게 스며들 만한 목소리로 적은 글입니다.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면서 쓰고 나누는 글이 아닌, 우리가 저마다 제 삶자리에서 조용히 돌아보면서 생각을 밝혀서 우리 보금자리하고 마을을 곱게 지어 보자는 뜻을 나누는 글입니다.


지금 학생들은 돈 많이 주는 기업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영혼도 팔 수 있다고 달려든다. 이것이 노예가 아니고 무엇인가.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이런 노예를 만들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학령공부는 떨어져 대학엔 못 들어간다. 대신 사람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찾는다. 하늘과 바람과 땅과 구름과 강과 바다 속에서 배우며 자라서 아이들 마음은 따뜻하다. (149쪽)


  《책방 풀무질》을 얼핏 읽는다면 목소리가 세지 않느냐고 여길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군대를 없애자’는 이야기라든지 ‘제도권학교로는 안 된다’는 이야기라든지 ‘대학교가 대기업 밑을 핥는 듯한 장사판이 된다’는 이야기는 매우 세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책집 풀무질 일꾼은 왜 이러한 이야기를 쪽글로 써서 책이웃하고 나누려고 할까요?

  풀무질 일꾼 은종복 님은 스스로 ‘풀벌레’라는 이름을 씁니다. 풀벌레로서 풀숲에서 살아가며 바라보는 삶이 있습니다. 풀벌레가 작은 풀잎 하나로 제 숨결을 잇고 풀노래를 부를 수 있듯, 우리가 저마다 어떤 보금자리를 짓고 어떤 마을을 가꾸고 어떤 나라를 품을 적에 늘 아름다울 만한가를 생각해 봅니다. 혼자 풀숲을 차지하려는 풀벌레가 아닌, 온갖 풀벌레가 알맞게 자리를 누리면서 갖은 풀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쁨을 헤아려 봅니다.

  이러면서 묻지요. 군대가 꼭 있어야 하는가 하고, 군대에 얼마나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지를 생각해 보자고, 평화하고 군대는 얼마나 맞닿느냐고, 나라마다 서로 군대를 차츰 줄이거나 아예 없애면 온나라가 얼마나 넉넉한 살림이 되어 즐거울 수 있을까 하고, 못 이룰 만한 일이 아닌 해 볼 만한 꿈이라고 생각해 보자고.


권정생 선생님은 며칠 뒤 내 꿈에 나타났다. “선생님, 뭐하세요?” “응, 종복이 왔나. 여기다 호미를 빠뜨렸네.” 나는 잠시 주춤하다 바지를 걷고 물 속에 들어가서 호미를 찾아 드렸다. 선생님은 고맙다고 하면서 멀리 걸어갔다. 그러다 다시 발길을 돌려 나에게 오셨다. “이것은 자네가 써야 할 것 같네. 좋은 것이니까 소중하게 간직하게.” (99쪽)

나는 글을 쓸 때 세 가지를 생각한다. 첫째는 초등학교 5학년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쓴다. 둘째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 쓴다. 셋째는 A4 한 장 분량으로 짧게 쓴다. (126쪽)


  제가 〈풀무질〉이라는 책집을 처음 만나던 무렵, 이곳 아이는 매우 어렸습니다. 〈풀무질〉 책손으로 이곳을 드나드는 동안 학교에 처음 들었고, 졸업장을 받지 않는 학교에 다녔으며, 어느새 스무 살이 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동안 책집지기는 곁님을 만나고 아이를 낳으며 살림을 돌보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모르던 살림을 보았고, 배우는 살림이 늘었으며, 하나하나 맞아들이는 새로운 길에서 얻은 즐거움이 새삼스레 쪽글 이야기로 태어났습니다.

  풀무질지기 풀벌레 님은 ‘한국말을 아름답게 살려서 글을 쓴다’고는 여길 수 없습니다. 풀벌레 님릉 스스로 한국말을 아름답게 살려서 쓴다고 밝힙니다만, 아직 아름답게 살려서 쓴 글은 아닙니다. 다른 글이에요. 어떤 글인가 하면, ‘한국말을 아름답게 살려서 쓰고 싶은 글’입니다. 늘 꾸준히 새로 배워서 글을 쓰려고 합니다. ‘아름다운 글’이 아닌 ‘아름답고 싶은 글’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풀벌레 님이 쓰는 글은, 집과 마을과 나라가 ‘아름답게 나아가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담은’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가 공기업을 사기업으로 만든 것이나 노동유연화를 한다면서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많은 세상을 만든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제주에 해군기지를 만들기로 한 것이나 평택에 미군기지를 만든 것, 한국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것, 국가보안법을 없애지 못한 것, 이라크에 군인을 보낸 것을 생각하면 분을 참을 수 없다. 물론 제주 해군기지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마무리를 했지만 그 계획을 세운 것은 노무현 정부다. (86쪽)


  책집지기가 목소리를 냅니다. 책집지기가 쪽글을 써서 나누는 글은 읽는이가 200∼300쯤 됩니다. 신문 구독자 숫자에 대면 턱없이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이 팔리는 책에 대어도 매우 적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작고 낮은 목소리로 씨앗을 뿌립니다. 책으로 읽는 눈을, 책집에서 바라보는 눈을, 곁님하고 아이랑 살림을 지으면서 배운 눈을, 대학교 옆자리에서 오랜 나날 책집을 꾸리며 지켜본 눈을, 맑은 마음인 책이웃한테서 맞아들인 눈을, 이 나라가 평화롭게 거듭나기를 바라는 눈을, 한 줄 두 줄 찬찬히 적바림해서 씨앗을 뿌립니다.


혹시 그가 이 글을 읽고 책방에 다시 와서 “제가 1994년 봄에 시집을 훔쳤다가 돌려준 사람이에요!”라고 말을 하면 내 마음이 어떨까. 그렇게 마음이 고우니 아마 좋은 시인이 되었으리라. 나는 이런 힘을 받고 책방 풀무질을 힘차게 꾸린다. 책방에서 마음 다치는 일이 있으면 그를 떠올리고 마음을 달랬고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짓고 혼잣말을 한다. “그래도 양심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 책방에 그처럼  눈빛 맑고 목소리 고운 사람들이 더 많이 오잖아.” (40쪽)


  자그마한 책집인 〈풀무질〉인데 이곳에 와서 책을 훔치는 이가 곧잘 있다고 합니다. 먹고살기 얼마나 팍팍한 나라이면 작은 책집에까지 와서 책을 훔쳐다가 되팔아 돈을 벌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요, 제법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책도둑 가운데 어떤 이가 ‘훔친 책을 돌려주려’고 찾아왔으며, 나중에는 ‘책을 사 가는 손님’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책도둑이 책손으로 바뀌지는 않았다지만, 책도둑이 책손으로 바뀔 수 있는 곳이라면, 작은 책집이 품은 책을 다시 돌아보고 새로 헤아리며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하지 싶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책을 장만해서 어떻게 읽을 적에 즐거울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어떤 삶을 지으면서 책 하나를 곁에 두어 어떤 꿈을 품을 적에 아름다울까요? 우리는 한 손에 무엇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무엇을 쥐는가요?

  책집지기 풀벌레 님은 언제나 “맑고 밝게”를 말합니다. 스스로 맑고 밝게 살기에 “맑고 밝게”를 말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책집지기 풀벌레 님 스스로 “맑고 밝게”를 소리내어 입으로 말하는 동안 맑고 밝게 생각하고 꿈꾸며 책살림을 짓겠다는 길을 걷습니다. 꿈을 소리내어 말하면서 꿈길로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그리고 이 꿈을 다시 쪽글로 옮기면서 책이웃 모두한테 다 같이 아름다운 꿈길로 어깨동무하면서 나아가자는 뜻을 들려줍니다.

  책도둑이 책손으로 바뀌는 ‘풀집’처럼, 이 나라 사람들 마음에 고운 숨결이 흐르는 ‘풀나라’가 될 수 있기를 빌어요. ‘풀마을’이 되고 ‘풀별’이 되기를 빕니다. ‘풀집’도 ‘풀누리’도 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8.4.1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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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헌책방 - 모리오카 서점 분투기
모리오카 요시유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한뼘책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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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201


책 하나 쥐고 가볍게 이야기꽃
― 황야의 헌책방
 모리오카 요시유키/송태욱 옮김
 한뼘책방, 2018.1.25.


나는 생활비를 삭감하더라도 예산을 초과해서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에도 시대의 책이 길거리에 나뒹굴고 있는 진보초는 그것만으로도 굉장하다. (43쪽)

카페 리오의 종업원에게 임시 수입 5만 엔이 생겨 전부터 구하고 싶었던 책을 구입한 경위를 이야기하니 의외로 “그렇게 책을 사 읽어서 무얼 하려고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48쪽)


  일본 도쿄에서 ‘모리오카 서점’을 꾸리는 분은 처음부터 ‘책 한 가지만 파는 곳’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처음에 온갖 책을 잔뜩 들여놓지도 않았다고 해요. 처음에는 책하고 오랜 골목길을 좋아하는 나날을 누렸고, 이러다가 도쿄 진보초에서 오래된 헌책집에서 일자리를 얻어 여러 해 동안 책집지기 일을 익혔다고 합니다. 이 같은 길을 거쳐 혼자 책집을 내려는 뜻을 펴 보았고, 유럽으로 날아가 ‘책집에 놓을 사진책을 짐수레 가득 장만해’서 일본으로 돌아오기도 했다지요.

  그렇지만 책장사는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손님이 너무 없을 뿐 아니라, 다달이 달삯을 치러야 할 날은 참 빠르게 다가왔대요.


(잇세이도 서점에) 입사하고 나서 일주일쯤은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일찌감치 가게 하나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부하고 있었지만 통하지 않았다. 가끔 물어오는 책 제목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104쪽)

전무에게 의논하자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겸허하게 말할 수 있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네. 동서고금의 책 중에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것은 1퍼센트도 안 되거든.” 하며 깨우쳐 주었다. (118쪽)


  《황야의 헌책방》(모리오카 요시유키/송태욱 옮김, 한뼘책방, 2018)은 ‘한 번에 한 가지 책만 파는 곳’으로 모리오카 서점을 꾸리기까지 책집지기로서 어떤 삶을 일구었나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 까맣게 모르던, 아니 아예 생각조차 않던 젊은이가 만난 사람하고 지켜본 오랜 골목길을 이야기합니다. 으레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고, 돈이 생기면 헌책집에 들러 값싸게 하나둘 사서 모으는데, 이러다가 1941년에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즈음 그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궁금해서 옛 신문을 뒤적여 보면서 지난날 그대로 따라해 보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따라하던 때에, 일본에 진주만에 폭탄을 떨구기 하루 앞서 나온 신문에 ‘잇세이도 서점’이라는 곳에서 “헌책 삽니다”라는 광고를 실은 모습을 보았대요. 일본이란 나라는 전쟁 한복판에서도 책을 사서 읽고 내고 썼을 뿐 아니라, 헌책집에 책을 내놓고 사러 갔구나 싶어 모리오카 요시유키 님 스스로도 무척 놀랐다고 합니다.


“여기서 고서점을 하고 싶습니다.” 그 사람은 생각했던 대로 가게 주인 우치다 씨였다. 우치다 씨는 “이 건물은 쇼와 2년, 그러니까 1927년에 세워졌는데 이곳에서 고서점을 한다면, 하기에 따라서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153쪽)


  도쿄에 있는 커다란 헌책집에서 일하는 동안 ‘도무지 모르고 낯선 책’이 너무 많아 한동안 어쩔 줄 몰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책’이란 손에 쥐는 모래알처럼 아주 적기 때문에, 모르면 모른다고 밝히면서 새로 배우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군요.

  오늘날 같은 모리오카 서점이란, 이 책집지기가 이제껏 마주한 사람과 삶과 책과 마을이 모두 어우러져서 비롯했구나 싶습니다. 온누리 모든 책 가운데 알 수 있는 책이란 매우 적으니, 이 매우 적은 책 가운데 책집지기가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책 하나를 두는 곳으로 꾸리면서, 이 책집을 전시관으로 함께 삼을 수 있다지요.

  뭔가 더 많이 갖다 놓지 않고, 뭔가 더 단출히 꾸미면서 책과 삶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이끈다고 할 만합니다. 더 많이 읽거나 갖추기보다는 우리 눈앞에 있는 책과 삶을 더 찬찬히 지켜보면서 아끼자는 뜻이기도 하리라 봅니다.


서점을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나자 내 표정에는 완전히 패배감이 떠돌았다. 입을 벌려 웃을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역시 너무 조급하게 일을 진행한 것이다. 계획성이 없었다. 손님이 오지 않으니 당연히 책도 팔리지 않았다. (184쪽)


  처음부터 모두 알 수는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처음에는 마냥 즐거운 길을 찾아서 오랜 골목을 거닐고, 곁일을 하며 번 돈으로 책 몇 권을 장만합니다. 옛 신문을 도서관에서 복사해 읽다가 얼결에 커다란 헌책집 일꾼 가운데 하나로 뽑혀서 한동안 일합니다. 책을 좋아하던 때에 마주하던 책하고는 달라도 너무 다른 헌책집 책을 만지면서 ‘모르는 것투성이’라서 늘 배워야 하는 줄 깨닫고, 손수 헌책집을 차리고 보니 미처 살피지 않은 대목이 참으로 많아서 이리 부딪히고 저리 깨지면서 시나브로 길을 찾습니다.

  《황야의 헌책방》이라는 이름은 아무것도 없다 싶은 벌판에 선 모습을 빗대지 싶은데, 아무것도 없다 싶은 벌판이기에 지쳐서 쓰러져도 혼자 쓰러지면 될 뿐이라는 마음으로 무엇이든 차근차근 지어 보는 삶도 함께 빗대었구나 싶습니다.

  아직 아무도 해 보지 않았어도 되어요. 그렇게 해서는 돈을 못 번다는 소리를 들어도 되어요. 헌책집 한쪽을 전시관으로 삼아도, 이러다가 ‘한 번에 한 가지 책만 파는 곳’으로 바꾸어도 되지요. 다만 숱한 가시밭길을 거쳐서 여기에 이릅니다.


오후부터 저녁까지 기본적으로 가게를 보는 일에는 변함이 없지만, 전시회도 열자 매일 사람들이 가게를 찾아오게 되었다. 거기에서 대화가 이어지기도 했다. 개업 초기 손님이 아무도 오지 않을 때는 창밖으로 흐르는 가메지마가와를 바라보며 갈매기에게 땅콩을 던져주며 마음을 달랬는데 상황이 크게 변했다. 손님 중에는 회화나 조각, 도예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 그리고 카메라맨이나 디자이너가 많았다. 손님이 전시 장소로서 가게에 흥미를 보이게 되었고, 가게 안의 갤러리는 손님의 다음 스텝을 위한 발판 역할을 했다. (202쪽)


  한국에서 마을책집이 하나둘 늘어납니다. 더 많은 책을 건사하지 않는 작고 상냥한 마을책집입니다. 큰책집은 자꾸 더 커다란 책집이 되려 하고, 전국 곳곳에 새끼가게를 줄줄이 엽니다만, 전국 마을책집은 골목 귀퉁이라 할 만한 데에 조그맣게 문을 엽니다.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이란 바로 ‘더 큰, 더 많은, 더 이름난’이 아닌 ‘알맞은, 상냥한, 즐거운’인 줄 느끼는 분들이 새로운 책살림을 짓는구나 싶습니다.

  언뜻 보면 쓸쓸하거나 거칠거나 터무니없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알맞고 상냥하며 즐거운 마을책집에는 골목이며 마을을 천천히 거닐어 사뿐사뿐 다가오는 이웃이 책손으로 깃들 수 있습니다. 아직 장사는 만만하지 않을 수 있지만, 더 키워서 더 팔아서 더 드날리려는 물결에 휩쓸리면 이웃을 만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책집지기로서도 골목이나 마을하고 이웃이 되지 못합니다.

  따뜻하며 싱그러운 바람이 책집 골목에 붑니다. 이 바람을 품고서 이웃님이 책손으로 찾아갑니다. 두 손 가득이 아닌, 한 손에 가볍게 책 하나를 쥐고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2018.3.20.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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