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도 서점 이야기 오후도 서점 이야기
무라야마 사키 지음, 류순미 옮김 / 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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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5.12.

인문책시렁 183


《오후도 서점 이야기》

 무라야마 사키

 류순미 옮김

 클 2018.11.5.



  《오후도 서점 이야기》(무라야마 사키/류순미 옮김, 클, 2018)를 읽는 내내 ‘우리나라 마을책집 이야기’를 우리 손으로 쓰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려나 하고 돌아보았습니다. 이곳저곳 조금 다녀 보고서 가볍게 쓰는 사람은 제법 있습니다. 그렇지만 스무 해나 서른 해나 마흔 해나 쉰 해를 고이 책집마실을 이으면서 이 발자취를 차곡차곡 그리거나 펼치는 사람은 몇 손가락으로 꼽기조차 어렵지 싶습니다. 예전부터 이 대목을 느꼈어요. 제가 처음 책집마실을 다닌 때는 또렷하지 않으나 두 가지가 떠올라요. 하나는 우리 언니가 만화책을 사오라고 시킨 적이 있고, 둘은 우리 어머니가 여성잡지를 사오라고 시킨 적이 있어요. 두 때에는 제가 볼 책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직 저 혼자서 주머니에 돈을 움켜쥐고서 심부름을 했어요. 심부름이지만 혼자 집부터 마을책집까지 갔고, 거스름돈은 잘 챙겼는지, 언니하고 어머니가 시킨 대로 잘 샀는지를 헤아리면서 손바닥이 땀이 잔뜩 났어요. 일고여덟 살이나 예닐곱 살이었을 텐데, 예전에는 이만 한 나이인 어린이도 심부름을 곧잘 했어요. 마을가게를 다녀오는 일이니 모두 이웃이요, 마을길이니 눈에 선하거든요. 다만 언니나 어머니가 손을 잡고 이끌지 않기에 두근두근하지요.


  이때부터 치면 제가 책집마실을 다닌 지는 마흔 해가 넘을 텐데, 이동안 들르거나 거친 즈믄(1000) 곳이 넘는 숱한 책집하고 얽혀 ‘우리나라는 일본하고 비슷하면서 사뭇 다른 결’이 있어요. 고장마다 다 다르게 흐르는 책집 숨결이 있습니다. 《오후도 서점 이야기》에 나오기도 하는데, 어느 나라 어느 책집이건 마을에서 함께 나이가 들고 철이 들고 삶이 흐릅니다. 함께 늙고 함께 자라며 함께 노래하지요. 기쁘거나 슬프거나 같이 누려요. 오래오래 흘러 먼지나 더께가 쌓이기도 하지만, 오래오래 흐르기에 외려 반드르르 빛이 나기도 합니다.


  이제는 책집을 닫은 숱한 지기님, 어느새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숱한 지기님, 이제 막 책집을 연 푸릇푸릇한 지기님, 이러구러 스무 해 남짓 책집살림을 지은 여러 지기님, 이 모든 책집지기님은 마을지기이자 마을이웃입니다. 마을사람이자 마을일꾼이에요. 그렇기에 《오후도 서점 이야기》 첫자락에 나오고 줄거리를 받치는 ‘책도둑’ 이야기를 놓고 그렇게나 많은 이들이 ‘책도둑을 붙잡고서 외려 새뜸(신문)이나 누리집(인터넷)에서 손가락질을 받은 책집지기’를 그렇게 따스하 보듬으려고 하는 눈빛이 흐른다고 느껴요.


  책을 훔쳐서 돈을 모으려고 한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뒷삶이 있겠지요. 책을 훔치기까지 해서라도 돈을 모아야 한다고 얽매였겠지요. 그러나 책은 아무나 못 훔칩니다. 책을 읽고 아는 이가 아니고서는 못 훔치지요. 팔아서 값이 될 만한 책을 알아보는 눈이 없다면 책을 못 훔치거든요. 그렇다면 이들은 왜 책도둑이 될까요? 책을 내려놓고서 스스로 살림을 짓는 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한 탓입니다. ‘책은 읽었으되 삶을 사랑하는 몸짓’은 기르지 못한 탓입니다. 책을 읽어 ‘좋은 이야기’는 두루 누렸으나 막상 마음으로 하나도 못 삭인 탓입니다.


  큰고장을 떠나 시골에서 새롭게 책집지기가 된 젊은이를 그리는 《오후도 서점 이야기》입니다. 끝맺음이 좀 엉성했는데, 이러구러 이 젊은이는 꼭 큰고장 책집지기가 아니어도 좋은 줄 깨달아요. 책집에는 책손이 더 많이 찾아와야 하지 않고, 책집은 책을 더 많이 갖추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아채지요.


  마을책집은 큰책집이 아닙니다. 마을책집은 마을책집이에요. 마을사람이 언제든지 가뿐하게 찾아와서 ‘한 자락을 사도 좋’고,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를 몇 마디 해도 좋’은 쉼터입니다. 책집은 어른한테도 쉼터이지만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더없이 좋은 쉼터입니다. 둘레를 보셔요. 어린이나 푸름이가 마음놓고 찾아갈 만한 곳이 마을에 어디 있나요? 찻집이나 술집이나 밥집은 어린이나 푸름이가 혼자 찾아가서 쉴 만한 데가 못 됩니다. 노래집도 그렇지요. 가만히 하루를 돌아보고 마음을 차분히 달래면서 다리를 쉬고 생각을 가다듬을 싱그러운 쉼터는 바로 마을책집입니다. 이 마을책집 곁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면 아주 좋을 테지요.


ㅅㄴㄹ


책 한 권을 도난당하면 그 책값을 메우기 위해 다른 책을 도대체 몇 권이나 팔아야 하는 것인지. (36쪽)


“그까짓 책 도둑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치들은 상식도 없고 상상력도 없는 멍청이야.” (70쪽)


“내용에 감동받아 이 책을 팔고 싶다고 생각하는 서점 직원이 만드는 띠지에는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그런 띠지를 보면 소노에는 눈이 부셨다. 손으로 만지면 온기가 느껴질 것만 같았다.” (123쪽)


‘아니다. 책은 서점 서가에 그대로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생물과 마찬가지다.’ (186쪽)


“오후도가 없어져도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살 수 있지만 노인과 어린아이는 그럴 수가 없어요.” (192쪽)


오후도는 손님과 마음을 키우는 서점이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 문화를 키우고, 고향 사람들에게 좀더 나은 생활과 행복한 삶을 안겨주고 싶은 바람을 품고 존재하는 서점이었다. (274쪽)


“저는 시간을 들여 조금씩 《4월의 물고기》를 판매할 생각이니 염려 마시고요. 말 그대로 오후도의 명물,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선물’ 같은 책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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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의 기분 - 책 만들고 글 쓰는 일의 피 땀 눈물에 관하여
김먼지 지음, 이사림 그림 / 제철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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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님이 조금 더 속내를 들추면서

책노래를 들려주면 좋았을 테지만

여러모로 아쉽지만

이쯤으로도 나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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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5.2.

인문책시렁 178


《책갈피의 기분》

 김먼지

 제철소

 2019.4.29.



  《책갈피의 기분》(김먼지, 제철소, 2019)은 책을 엮는 일꾼으로서 돌아보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모든 책에는 여러 마음이 흐르는데, 글쓴이 마음·읽는이 마음·엮는이 마음·펴낸이 마음을 비롯해서 책이 된 나무가 품는 마음에, 나무가 우거진 숲에 흐르는 마음에다가, 나무 곁에서 돋는 풀꽃이랑 벌나비에 풀벌레 마음까지 흐릅니다. 어느 한 가지 마음만 흐르지 않습니다.


  다만 책이 되려면 줄거리를 이룰 글이나 그림이나 빛꽃이 있어야 할 테니, 지은이가 꼭 있어야지요. 지은이가 있으면 글·그림·빛꽃을 살필 일꾼이 있어야 하며, 엮는 일꾼이 살핀 꾸러미를 종이에 얹도록 땀을 쏟는 펴낸이가 있어야 합니다. 얼핏 보자면 책 하나는 지은이 이야기 같지만, 지은이 한 사람 이야기일 수 없다고도 할 만해요. 줄거리는 지은이가 살아내며 겪은 이야기가 바탕인데, 이 이야기를 여민 사람들 손길이 훅훅 묻어나거든요.


  잘 꾸몄든 좀 엉성하게 여미었든 대수롭지 않아요. 손길이 묻어난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아이가 뭘 잘 해야 하지 않아요. 아이는 투박한 손길이든 수수한 손길이든 놀라운 손길이든 어버이한테서 사랑받으면서 하루를 반갑게 맞이하고 기쁘게 뛰놀기에 아름답게 자라요.


  흔히 ‘책갈피’란 낱말로 가리키는 살림은 ‘책살피’라고 써야 맞다고 합니다. 그러나 ‘살피·갈피’를 나란히 써도 좋다고 생각해요. 굳이 한 낱말만 써야 할 까닭이 없을 뿐더러, 우리 나름대로 수수하거나 투박하게 새길을 찾을 만해요. 그렇기에 잘나가는 책뿐 아니라 잘 안 나가는 책이어도, 우리한테 이야기를 사근사근 들려주는 온갖 책이 태어나지요. 모든 책에는 저마다 이야기가 있으니, 모든 책을 다 다른 펴냄터에서 다 다른 하루를 맞이하면서 엮는 손길은 저마다 살뜰하다고 느껴요.


  비록 돈벌이에만 치우친 책이라 해도, 외곬로 치닫는 생각을 쏟아내는 책이라 해도, 엉뚱하거나 틀렸다고 할 줄거리로 참을 뒤집어씌우는 책이라 해도, 이 모든 책은 숲에서 옵니다. 어느 책을 손에 쥐든 우리는 ‘숲을 손에 쥐고서 가슴에 품고 마음에 새기는 하루’를 누려요. 자, 그러니 오늘은 어떤 숲을 우리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삶을 노래하려는가를 생각해요. 즐겁게 놀고,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읽고, 즐겁게 덮고, 즐겁게 집안일을 하고, 즐겁게 꿈꾸면서 하루를 짓기로 해요.


ㅅㄴㄹ


초대박 난 베스트셀러를 진행하지도 않았고,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 만한 유명 출판사에 다니지도 않았는데, 이런 내가 편집자 이야기를 책으로 써도 되는 걸까? (61쪽)


한 시간가량 걸리는 출퇴근길에서 절대로 책을 펴지 않는다. 온종일 들여다보고 온 것이 책이고, 내일 또 파묻혀야 되는 것이 책이라고 생각하니 그만 질려버리는 것이다. (83쪽)


언제는 잘못된 표현이라더니 이제 와 올바른 표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신조어나 줄임말이 갑자기 표준어가 되고, 띄어쓰기가 갑자기 허용되고, 외래어 표기법이 갑자기 바뀌고……. (88쪽)


건강을 해쳐가며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일한 결과물을 그 누구도 자랑스럽거나 떳떳하게 여길 수 없었다. 대신 사장님의 차가 바뀌었다. 사장님보다 더 원망스러웠던 건 나 자신이었고, 나 자신보다 더 원망스러웠던 건 독자들이었다. 아무렇게나 만들어도 많이 팔려버리는 책이 있다는 사실은 신입사원 김먼지에게 너무 큰 충격과 상처를 안겨주었다. (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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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은 힘이 세다 - 홀로 여행자의 제주서점 탐방기
장지은 지음 / 책방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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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3.20.

인문책시렁 171


《작은 책방은 힘이 세다》

 장지은

 책방

 2020.9.6.



  《작은 책방은 힘이 세다》(장지은, 책방, 2020)를 읽다가 문득 ‘독립출판물’이란 이름을 붙이는 책을 생각합니다. 굳이 이렇게 이름을 붙여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이웃님이 보기에 ‘독립출판물’일 책을 1995년부터 혼자 쓰고 엮고 내놓아 둘레에 돌리거나 팔기도 했지만, 저는 ‘독립출판물’이란 이름을 떠올린 적이 없어요. 그저 책이라고 여기고 바라보았습니다.


  이름난 곳에서 내든, 이름이 안 난 곳에서 내든, 혼자 내든, 여럿이 뜻모아 내든, 모두 똑같이 책입니다. 이렇게 해야 책이 되지 않아요. 국립중앙도서관에 넣어야 책이 되지 않습니다. 얇거나 두껍거나 책입니다. 값싸거나 비싸거나 책입니다. 종이에 이야기를 얹든, 천에 이야기를 담든, 모두 책입니다.


  한자말 ‘독립’은 우리말로는 ‘홀로서기’입니다. 홀로선다고 할 적에는 눈치를 안 볼 뿐 아니라, 홀로 가볍게 날아오르듯 즐겁게 노닌다는 뜻입니다. 돈으로 사고파는 장사를 헤아려야 하기에 따로 ‘일반책·독립출판물’로 나눌 수 있겠지만, 굳이 이렇게 가를 까닭이 없이 ‘책을 다루는 곳’이라고만 하면 넉넉하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저 책이거든요. 모두 책이거든요. ‘출판·물’이 아닌 책이거든요. ‘매물·물건’이 아닌 우리가 저마다 다르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저 즐거이 담은 책이에요.


  제주에 깃든 책집을 찬찬히 다닌 이야기를 조촐히 여민 《작은 책방은 힘이 세다》입니다. 지난 2006년에 나온 《씨앗은 힘이 세다》란 책이 문득 떠오릅니다. 책집이 크든 작든 모두 힘있습니다. 센지 여린지 모르겠지만 ‘힘이 있’습니다. 이 힘은 더 많이 파는 힘이 아니요, 더 잘나가거나 잘난 힘이 아닙니다. 언제나 마을에서 오롯이 이웃을 사랑하고 동무를 마주하는 기운이지 싶습니다. 몸으로 쓰는 힘이 아닌, 마음으로 나누는 기운이 흐르는 책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마을책집’이란 이름을 쓸 뿐, ‘동네책방·독립서점’ 같은 이름을 안 씁니다. 책집으로 태어난 바로 그날 그곳에서 어디나 똑같이 ‘홀로서기’를 했어요. 그리고 그 마을에서 징검돌이자 쉼터이자 모임터이자 만남터 노릇을 해요. 크든 작든 모두 기운이 포근히 흐르면서 마을에서 노래가 빛나는 책집이니 마을책집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쪼록 힘보다는 숨결을 느끼고 크거나 작다는 겉모습이 아닌 마음빛을 누리는 마을책집을 꾸리고 나누고 누리며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책방으로 가는 힘이 세기 때문에 작은 책방은 힘이 세다. 나는 이 힘세고 작은 책방들이 날마다 부단히 씩씩하길 바란다. (7쪽)


집으로 걸어가는 5분 동안 나는 중얼거렸다. 딜다보다. 그 말은 나도 알던 말, 내 고향에서 나도 쓰던 말. (19쪽)


그저 ‘남들만큼’ 보고 느끼면서 사는 시대가 저물었다. 독립출판물을 발견하고 읽을수록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제는 ‘남들만큼’이 아니라 오직 ‘나답게’ 수집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살아남는다. (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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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32


《책이 모인 모서리 여섯 책방 이야기》

 소심한책방·손목서가·고스트북스·달팽이책방·유어마인드·동아서점

 2019.12.27.



  《책이 모인 모서리 여섯 책방 이야기》(소심한책방·손목서가·고스트북스·달팽이책방·유어마인드·동아서점 쓰고 펴냄, 2019)는 여섯 책집이 글을 한 자락씩 나누어서 이야기를 엮어냅니다. 여섯 곳에서 저마다 다르게 꾸리는 책살림에 맞추어 마을에서 노래하는 책빛을 풀어냅니다.


  여섯 책집이 길어올린 여섯 이야기는 바로 이 여섯 책집에서 만나는 조그마한 꾸러미입니다. 저는 여섯 책집 가운데 〈달팽이책방〉에서 내는 ‘달팽이신문’에 한손을 보태는 읽새(독자)이기에 ‘달팽이신문’을 받을 적에 책도 얹어서 보내 달라고 여쭈었습니다.


  자그마한 꾸러미는 여섯 빛깔 책노래를 조촐히 들려주는데, 여섯 빛깔 책집은 따로 낱책을 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곳뿐 아니라 모든 마을책집은 다 다른 마을에서 다 다른 눈빛으로 다 다른 책빛을 마주하기 마련이니, 한 해치 이야기이든 다섯 해치 이야기이든 열 해치 이야기이든 주섬주섬 여미어 소담소담 엮어서 선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마을책집은 마을에서 이야기를 길어올리며 마을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쉼터이자 배움터이자 모임터이자 생각터이자 나눔터이자 숲터라고 느낍니다. 거의 서울에 몰린 출판사에서 내놓는 책도 한켠에서 다루되, 책집 스스로 짓는 이야기를 책집마다 스스로 조촐히 여미어서 선보인다면 훨씬 좋아요. 오로지 마을책집 목소리만 담아내는 새뜸(신문)이나 달책(잡지)이 있어도 좋겠지요.


  우리는 굳이 품이며 길삯을 들여 이웃 마을책집으로 찾아갑니다. 오늘날 새삼스레 책으로 마음을 나누는 이웃이기에 사뿐사뿐 반가이 찾아갑니다. 앞으로도 책으로 마음을 가꾸고픈 이웃이니 살몃살몃 바람을 타고 구름이랑 놀면서 신나게 찾아갑니다.


  자, 생각해 봐요. ‘교보문고 부산집’이나 ‘영풍문고 광주집’이나 ‘알라딘 전주집’을 찾아가면 재미있나요? 그저 시끌벅적 어수선할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어떤 책을 어떤 이야기로 마주할 적에 즐거우며 사랑스러운가 하는 이야기를 한 줌조차 못 누리지 않나요? 마을 한켠에 책집이 있기에, 이 책집 한 곳으로 마을빛이 새롭습니다. 책 하나를 씨앗으로 삼아 마을을 새롭게 짓는 바탕인 책밭이자 책숲인 책집입니다.


ㅅㄴㄹ


“거기서 뭘 파우과?” “책이요, 시나 소설 같은, 책을 팔아요.” “그럼 장자, 맹자도 있수과?” “아니요. 그런 책은 없어요.” “논어나 주역 같은 책을 팔아야 진짜 서점이지.” (25쪽)


어린이책을 많이 읽어 보고 싶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어린이책을 읽은 기억이 거의 없다. (57쪽)


나는 내가 보낼 시간을 책으로 산다고 생각한다. (63쪽)


대형서점들은 베스트셀러와 신간을 가장 먼저 눈에 띄게 배치한다. 인터넷서점과 오프라인 대형서점은 그런 의미에서 비슷한 라인업을 갖춘 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팔기로 결정한 책과 그들의 사람들의 눈에 잘 띄게 선전하기로 결정한 책이 아니면 총판이 공급조차 거부하는 시스템이라니. (68쪽)


울진에서 온 아이들에게 포항은 대도시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공이란 얼마나 상대적인 일인가. 나는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성공한 사람이었다. (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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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바침 - 결코 소멸되지 않을 자명한 사물에 바치는 헌사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지음, 리네 호벤 그림,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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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54


《책에 바침》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글

 리네 호벤 그림

 김인순 옮김

 쌤앤파커스

 2020.2.10.



  《책에 바침》(부르크하르트 슈피넨 글·리네 호벤 그림/김인순 옮김, 쌤앤파커스, 2020)을 읽으며, 이 책은 책이라는 길을 기리는 꾸러미가 될 수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글님 나름대로 여러 자리 여러 책을 짚어 나가는데, ‘짚는구나’ 싶을 뿐, 책하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펴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는구나 싶거든요.


  책을 몇 자락 놓은 길손집(게스트하우스)이 제법 있습니다. 길손집에 묵으며 ‘길손집 책시렁’을 둘러볼 적에 ‘나를 사로잡을 만한 책’을 만나기란 참 힘들었습니다. 글님도 이렇게 느끼네 싶어 새삼스러운데,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웃나라에서도 ‘길손집 책시렁’은 엇비슷하네 싶군요. 길손집이란 곳은 느긋이 오래 지내도록 이끌기보다는 살짝 머물다 떠나도록 하는 곳이기에, 오래 머물지 못하도록 따분하거나 얼른 손을 뗄 만한 책을 두는 마음일까요.


  《책에 바침》 첫머리는 1900년으로 접어들 무렵까지 말하고 수레를 널리 쓰던 터전을 대놓고 나무라고 비웃습니다. 요즈음 씽씽이하고 찻길하고 갖가지 살림을 기리거나 높이는데, 1900년 무렵 사람들이 바보스럽고 어리석다고 핀잔하는 이야기에 섬찟합니다. 지난날이나 오늘날이나 저마다 다르게 가꾸는 삶길이요 삶터입니다. 지난날 사람들이 부리던 말이 곳곳에 똥을 누더라도, 이 말똥은 말려서 땔감으로 삼습니다. 말똥은 안 더럽습니다. 씽씽이가 내뿜는 매캐한 방귀야말로 더럽지 않나요?


  더 높은 책도, 더 낮은 책도, 더 좋은 책도, 더 나쁜 책도 없겠지요. 때랑 곳에 따라 바라거나 찾는 책이 있을 뿐이겠지요. 다만, 이름값에 매인 책이 있고, 장삿속에 빠져든 책이 있고, 벼슬자리를 노리는 책이 있고, 나라에 빌붙어 떡고물을 바라는 책이 있습니다. 눈속임이나 거짓말로 뒤덮는다든지, 이웃한테서 훔친 이야기를 슬쩍 끼워넣은 책이 있습니다.


  《책에 바침》은 ‘덩이가 된 꾸러미’인 책은 여러모로 짚으려 하면서, 정작 ‘종이꾸러미가 된 나무하고 숲’은 거의 못 짚거나 안 짚습니다. 숲이 없이 책이 태어날 길이란 없고, 책이라는 이야기꾸러미를 읽으면서 삶과 넋을 살찌우는 사람이 나아갈 길이란 슬기롭게 살림을 사랑하는 생각길일 텐데, 책 곁에서 숲을 헤아리지 못하는 대목도 허전합니다.


  나무가 자라고 우거지고 풀밭이 퍼지고 들짐승이며 새가 노닐기에, 이 별은 푸르게 빛나면서 사람은 이 곁에서 숨을 쉽니다. 우람하게 퍼진 숲이 있기에, 사람은 나무 몇 그루를 얻어 집을 짓고 세간을 짜고 종이를 얻어 글을 쓰고 책을 묶습니다. 나무하고 숲을 새삼스레 헤아리면서 사랑하는 착하고 참한 마음빛을 가꾸는 길동무가 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대목을 놓친다면 “책에 바침”이라는 말은 쳇바퀴에 갇힌 말잔치(이론·탁상공론)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1900년경의 사람들이 말에게 품었던 신뢰와 믿음에 대해 비죽이 웃게 된다. 그 신뢰와 믿음이 옳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17쪽)


나는 그 책을 얼마나 애지중지했던가! 그 책을 읽는 것은 일종의 엄숙한 예배를 드리는 것과도 같았다. (67쪽)


나는 한 번도 그런 게스트하우스 도서관에서 읽은 책들에 매료된 적이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런 책들은 겸손함을 길러 준다. 그 책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보게 작가 양반, 하늘과 땅 사이에는 당신이 당신의 세계 속에서 꿈꿨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책들이 있다네.” (100쪽)


제후들의 통치가 막을 내림과 동시에 개인적으로 소장했던 많은 책들이 공공도서관으로 이관되었다.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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