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책방 책방일지 - 동네 작은 헌책방 책방지기의 책과 책방을 위한 송가頌歌
조경국 지음 / 소소책방(소소문고)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18



작은 헌책방에서 길어올리는 이야기꽃

― 소소책방 책방일지 1호

 조경국 글·사진

 소소문고 펴냄, 2015.6.30. 1만 원



  경남 진주는 여러모로 예쁜 곳이라고 느낍니다. 진주를 가로지르는 남강도 예쁘고, 남강을 둘러싼 나무도 예쁘며, 남강 숨결을 느끼면서 이곳에서 삶을 짓는 사람들도 예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쁜 고장에 아기자기하게 깃들어 ‘마을 책살림’을 가꾸는 조그마한 책방도 예뻐요.


  진주 고속버스터미널 건물 2층에 〈소문난 책방〉이 있습니다. 남강 다리 둘레에 〈동훈서점〉이 있습니다. 봉곡광장 네거리 한쪽에 〈형설서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건너편 2층에 〈소소책방〉이 있습니다.


  이들 헌책방은 저마다 다른 숨결로 책을 다룹니다. 저마다 아기자기하면서 알뜰살뜰 책을 아끼는 손길로 책손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네 군데 헌책방을 찾아나서려고 기쁘게 진주마실을 할 만하고, 진주사람은 네 군데 헌책방을 신나게 나들이를 할 만합니다.



지난 시절 즐거이 다녔던 책방들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중앙서점, 문화서점, 지리산, 송강서점, 그 외 사라진 많은 책방들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을 채우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기억조차 선명하지 않습니다. 사라지기 전에 글 한 줄, 사진 한 장이라도 남겨 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6쪽)




  《소소책방 책방일지》(소소문고,2015) 1호를 읽습니다. 진주에 있는 예쁜 헌책방 네 곳 가운데 2013년 11월 11일에 문을 연 〈소소책방〉 책방지기 조경국 님이 글을 쓰고 사진을 넣어서 엮은 ‘헌책방 잡지’입니다.


  헌책방을 이야기하는 잡지로는 서울에 있는 〈공씨책방〉에서 모두 아홉 권으로 선보인 《옛책사랑》이 있습니다.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나왔습니다.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에서 모두 열한 권으로 선보인 《우리말과 헌책방》도 있습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나왔습니다. 여기에, 진주에서 곱게 책살림을 가꾸는 〈소소책방〉이 《소소책방 책방일지》라는 이름으로 2015년 여름에 ‘헌책방 잡지’ 1호를 선보입니다. 예쁜 책살림에 걸맞게 예쁜 꾸밈새로 태어난 자그마한 책은 앞으로도 한결같이 이야기꽃을 길어올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현재 책방은 완전 난리법석입니다. 새해를 맞아 서가를 더 들이기 위해 내부 정리 중입니다. 계속 책은 느는데 공간이 부족해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다음주까진 아마 어수선하겠군요. 공방에서 열심히 서가를 만들고 있는데, 혼자서 하고 있는지라 진도가 더딥니다. (14쪽)



  헌책방 〈소소책방〉 책방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곳 누리집(http://sosobook.co.kr)에 들어가면 읽을 수 있습니다. 헌책방 책살림을 꾸리는 책방지기 가운데 ‘책방일지(책방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책방일지를 쓰더라도 공책에만 쓰시곤 하는데, 서울 홍은동에 있는 〈기억속의 서가〉 책방지기 한 분은 책방 누리집(http://cafe.naver.com/daeyangbook)에 틈틈이 책방 이야기를 올립니다.





제가 보기에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도서관이나 책방에 부모님이 함께 가는 겁니다. (40쪽)


이리저리 골목을 훑으며 책방이 있는지 찾았지만 건물 안에 번듯하게 있는 책방은 딱 두 군데였고, 대부분은 사진처럼 난전을 펼쳐놓고 책을 팔았다. 추위도 아랑곳 않고 사진 속 책방 어르신은 책읽기에 몰두했다. 손님이 와도 조용히 인사만 건네고 읽기를 계속했다. 책방지기의 제일 큰 즐거움은 책을 파는 데 있지 않고, 들어온 책들을 열심히 읽는 데 있다는 것을 무시로 깨닫는다. (54쪽)



  작은 헌책방에서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작은 헌책방을 가꾸는 일꾼이 책을 만지면서 느낀 온갖 생각을 갈무리해서 ‘이야기씨’를 책시렁마다 심으면, 작은 헌책방으로 찾아온 책손은 책시렁을 살며시 둘러보면서 ‘이야기씨’를 얻고, 이 이야기씨는 무럭무럭 자라서 잎이 돋고 꽃이 핍니다. 책방지기하고 책손이 도란도란 생각을 주고받는 사이에 이야기꽃은 고요히 지고, 이야기꽃이 지면서 ‘이야기알(이야기 열매)’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작은 헌책방에서 ‘이야기씨’란 무엇일까요? 바로 책 한 권입니다. 작은 헌책방 일꾼은 ‘버려진 책’을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살핍니다. ‘되살릴 책’을 차곡차곡 그러모아서 정갈하게 닦고 손질합니다. 헌책방지기 손을 탄 책 한 권(이야기씨)는 헌책방 책시렁에 얌전히 놓이고, 이 책을 알아보려고 책방마실을 한 사람(책손)은 기쁘게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가슴에 책 한 권을 품습니다.


  책손이 책방마실을 하면서 가슴에 책 한 권을 품기에, 비로소 이야기씨가 싹을 틀 수 있습니다. 책손이 책 한 권을 장만해서 첫 쪽을 넘기기에, 비로소 ‘싹이 튼 이야기씨’에 잎이 돋습니다. 책손이 책 한 권을 즐겁게 읽는 동안 이야기꽃이 피어나고, 책손이 마지막 쪽을 덮고서 눈을 가만히 감고 생각을 갈무리하는 사이에, 어느덧 이야기알이 맺혀요.


  씨앗을 심어서 싹이 트고 잎이 돋으며 꽃이 피도록 마을 한쪽에서 ‘이야기밭’이요 ‘이야기터’ 구실을 하는 곳이 바로 ‘마을책방(동네책방)’입니다. 작은 책방 한 곳은 작은 텃밭 구실을 할 뿐 아니라, 작은 이야기터 노릇을 합니다. 아주 많은 사람이 모일 만한 광장은 못 되지만, 여러 사람이 도란도란 모여서 웃음꽃으로 이야기잔치를 벌이는 다락방 같은 자리가 되는 마을책방입니다.




“아빠, 왜 사람 죽이는 이런 책을 읽어?” 아이가 서가에 있는 책들을 보고 물었습니다 … 대답은 “공부하려고.”였죠. 궁색한 대답이긴 하나 일부 사실이긴 합니다. 하지만 명쾌하게 이 책들을 읽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더군요. 아이가 고개를 갸웃하곤 더 이상 호기심을 보이지 않은 것이 다행이랄까요. (84쪽)


달력이나 질긴 사료부대 속종이를 잘라 책싸개를 했죠. 이렇게 쓰고 보니 굉장히 오래된 일인 듯하군요. 제가 나이를 그리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먼 옛날 옛적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분이군요. 하하, 며칠 전 아이에게 새 교과서 책싸개를 해 줄까 물었는데, “촌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14쪽)



  진주에 있는 예쁜 헌책방 〈소소책방〉 책방지기는 이녁이 삶으로 늘 마주하고 겪는 이야기를 수수하게 들려줍니다. 딸아이하고 나눈 이야기를 적고, 혼자서 생각에 잠긴 이야기를 적으며, 책 한 권을 읽다가 깨달은 이야기를 적습니다.


  책을 둘러싼 이야기를 책방일지로 남긴 뒤, 《소소책방 책방일지》로 묶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책방지기 스스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돌보는 작은 책터에서 피어나는 모든 노래를 글 한 줄하고 사진 한 점으로 갈무리합니다.


  무엇보다도 이제껏 ‘다른 사람이 쓰고 엮고 펴낸 책’을 다루는 책방이었으면, 앞으로는 ‘책방지기가 손수 쓰고 엮고 펴낸 책’을 함께 다루는 책방이 됩니다.


  바로 이 책방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나눕니다. 바로 이곳 진주에서 책방을 가꾸는 마음을 실은 책을 나눕니다.




헌책방은 버려질 책들의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350권쯤, 꽤 많은 책이 들어왔는데 차에서 책을 내리며 바로 분류 작업을 했습니다. 폐지 모으는 어르신께서 버릴 책은 바로 챙겨 달라 부탁하셔서 책방으로 들이지 않고 바로 길에서 버릴 책, 살릴 책을 나눴습니다. 가져온 책 절반 넘게 어르신께 드렸습니다. 헌책방 책방지기로 보람을 느낄 때는 내 손을 거치지 않았으면 폐지가 되었을 책들을 살렸을 때죠. (117쪽)



  책은, 많이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책은, 즐겁게 읽으면 됩니다. 책은, 꼭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책은, 사랑으로 읽으면 됩니다. 책은, 지식이 아닙니다. 책은, 스스로 지식을 찾는 길에 동무가 되어 주는 숨결입니다. 책은, 결과가 아닙니다. 책은, 꿈을 이루는 삶길을 걸어가면서 생각을 북돋우는 이웃입니다.


  어떤 책을 손에 쥐든, 책을 손에 쥔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서 ‘책이 달라집’니다. 즐겁게 노래하는 마음으로 책을 손에 쥐면, 어떤 책을 읽더라도 가슴 가득 즐거움이 샘솟습니다. 시무룩하거나 슬픈 마음으로 책을 손에 쥐면, 어떤 책을 읽더라도 마음자리에 시무룩하거나 슬픈 기운이 감돕니다.


  슬픈 책이나 기쁜 책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슬픈 마음일 때에는 책을 슬프게 읽고, 기쁜 마음일 적에는 책을 기쁘게 읽습니다. 너르고 따스한 마음일 때에는 책을 너르고 따스하게 맞아들이고, 아프거나 지친 마음일 적에는 책을 아프거나 지친 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게 더 큰 이유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존’을 위해 늦게까지 일할 수밖에 없는 경쟁 사회에선 저녁이 있는 삶을 찾는다는 건 사치에 가깝습니다. 주말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 예전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던 시절을 되돌아보면 독서가 쉽지 않더군요. 일이 아니더라도 저녁엔 무어 그리 약속이 자주 잡히는지. 책을 펴는 시간은 집에 돌아오고 한밤이 되어서야 가능할 때가 많았습니다. (159쪽)



  책을 즐겁게 읽으면서 삶을 즐기는 사람이 차츰 늘어날 수 있기를 빌어요. 책을 사랑스레 읽으면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꾸준히 늘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마을에 깃든 작은 헌책방이나 새책방으로 책마실을 다니는 사람이 차근차근 늘어날 수 있기를 꿈꾸어요. 경남 진주에 있는 예쁜 헌책방 〈소소책방〉에서 빚은 《소소책방 책방일지》는 인터넷서점에서 장만할 수 있지만, 일부러 진주마실을 하면서 책방에서 손수 장만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도 자그마한 책방은 기쁘게 노래하는 마음으로 문을 엽니다. 서울에서 인터넷신문 기자로도 일했고, 사진책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기도 한 〈소소책방〉 책방지기인 조경국 님은 어릴 적부터 가슴속에 품은 꿈을 마흔 살 나이가 되어서 이루었다고 합니다. 어떤 꿈을 꾸었을까요? 책방지기가 꿈이었고, 헌책방 책방지기가 온누리에서 가장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꿈을 날마다 삶으로 누리는 책방지기가 빚는 조촐한 글과 사진으로 묶은 《소소책방 책방일지》는 눈부시게 피어난 꽃으로 겉그림을 꾸밉니다. 언제나 꽃 같은 마음이요, 언제나 꽃 같은 책방이며, 언제나 꽃 같은 이야기입니다. 4348.7.22.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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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07-22 14:17   좋아요 0 | URL
지난번에 숲노래님께서 소소책방에 다녀오신 이야기를 쓰셨지요~?^^
책이 책표지도 아주 예쁘고 미리보기로 본 내용도 참 좋네요.^^
감사히 담아갑니다~*^^*

숲노래 2015-07-22 17:00   좋아요 0 | URL
사진가이기도 하고, 책쟁이이기도 하며, 두 딸 아버지이기도 하고, 시골내기다운 투박한 웃음으로 헌책방지기를 하면서, 글도 쓰고, 이것저것 삶을 즐기는 사람이 진주 한켠에서 빚는 이야기가 appletreeje 님 가슴에도 아름답게 스며들 수 있기를 빌어요~~

책읽는나무 2015-07-22 16:05   좋아요 0 | URL
`소소하다`란 말을 좋아합니다.
책 제목이 제가 좋아하는 단어가 들어갔네요^^
우리동네 찻집중 `소소봄`이란 찻집이 있어요~~저는 지나면서 항상 그이름이 예뻐 소소봄~소소봄~읊어 봅니다.
소소책방도 괜찮은데요?^^
진주에 살았다면 한 번 들러보고 싶은 책방이네요~

숲노래 2015-07-22 17:01   좋아요 0 | URL
저는 `소소하다`라는 한자말보다는
`수수하다`라는 한국말을 좋아하는데,
가만히 보면,
`소소하다`는 `수수하다`보다 여린 말로도 여길 만해요.

어찌 보면, 한겨레는 옛날부터 `수수하다-소소하다`를 한 갈래로 썼을는지 몰라요.
진주에 살지 않으시더라도,
일부러 이 책방 때문에 진주마실을 해 보실 수 있어요~

린다 2015-08-23 11:43   좋아요 0 | URL
점점 책방들이 없어지는 현실이 슬프네요.. ㅠㅠ 그래도 아직까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행복합니다! 분위기가 너무 좋네요ㅎㅎㅎㅎ!

숲노래 2015-08-23 12:26   좋아요 0 | URL
그래도 씩씩하게 새로 여는 책방도 언제나 있어요.
아름다운 책방에서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하루를 즐거이 가꿀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고맙습니다 ^^
 
책여행자 - 히말라야 도서관에서 유럽 헌책방까지
김미라 지음 / 호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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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56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책들
― 책 여행자
 김미라 글
 호미 펴냄, 2013.12.24.

 


  김미라 님이 쓴 《책 여행자》(호미,2013)를 읽습니다. 김미라 님은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녔고, 여러 나라 책방을 찬찬히 돌아보았다고 합니다. 지구별을 떠도는 책을 만났고, 스스로 지구별을 누비면서 책 하나 깃드는 삶자리를 마음으로 받아들였다고 해요.


  책은 여행을 합니다. 책이 하나 태어나기까지 숲에서 오래오래 자라다가 잘린 나무가 책이 되니, 종이에 어떤 이야기가 얹히든, 모든 책은 여행을 합니다. 기나긴 나날 새들 노랫소리를 듣고 살던 나무입니다. 오랜 나날 풀내음을 맡고 햇볕을 먹으며 빗물을 마시던 나무입니다. 온갖 짐승들 나고 자라는 삶을 지켜본 나무요, 숱한 벌레들 한살이를 바라본 나무입니다.


.. 한 책에서 다른 책으로 옮겨 가는 동안 어느덧 나는 키가 쑥쑥 자라나 글씨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 드넓은 바다를 건너 이 높은 히말라야까지 오게 된 이 책들은 대체 어떤 기억을 담고 있을까 … 인간은 책을 남겼다. 그리고 책은 우리에게 희망을 남겨 주었다 … 이 비극의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렇게 과격하게 테러를 행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이 책을 제대로 읽어 본 일이 없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  (8, 12, 19, 23쪽)


  푸릇푸릇 풀이 돋습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덮인 땅이 아닌 흙으로 된 땅에서는 한겨울에도 푸릇푸릇 풀이 돋습니다. 우리 집 마당 한쪽 쪼개진 틈에서 풀이 돋고, 대문 아래쪽 시멘트 갈라진 자리에서 풀이 돋습니다. 날마다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대문 아래쪽에서 유채풀과 갓풀이 씩씩하게 잎사귀를 벌립니다. 집 둘레 흙땅에서도 갓풀은 검푸르게 잎사귀를 키웁니다.


  조물조물 올라오는 쑥풀을 바라봅니다. 뒤꼍 매화나무 가지마다 불긋불긋 조그마한 봉오리가 오릅니다. 이 봉오리마다 새봄에 고운 꽃잎을 벌리겠지요. 봄바람 따라 살랑살랑 향긋한 매화내음을 나누어 주겠지요.


  작은아이를 안고 후박나무 봉오리와 동백나무 봉오리를 만지도록 합니다. 큰아이는 키가 제법 크니 스스로 봉오리를 만져 보라고 말합니다. 두 나무 모두 겨우내 짙푸른 잎사귀를 달고, 새봄부터 천천히 봉오리를 터뜨립니다. 동백나무가 먼저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후박나무는 천천히 꽃봉오리를 터뜨려요.


  동백꽃은 사람들이 곧 알아챕니다. 동백꽃을 보면서 꽃놀이를 즐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와 달리 후박꽃이 필 적에 알아채거나 알아보는 사람은 드뭅니다. 후박꽃이 지고 후박알 맺힐 적에 알아채거나 알아보는 사람 또한 드뭅니다. 그러나, 후박꽃이 피면서 후박알 맺힐 적에 누구보다 멧새가 곧바로 알아채요. 누구보다 멧새들은 후박알을 먹으려고 후박나무를 찾아듭니다.


.. 같은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을 때마다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새로움이 발견된다 … 지금까지 어떤 책을 금지한다고 해서 읽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책을 읽도록 강요한다고 해서 영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 상상력 없이는 아무리 위대한 예술 작품이라도 사람을 편협하게 만들고 만다 … 고전이 이토록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읽고 또 읽게 만드는 숨겨진 힘이 있어서가 아닐까 … 여행하는 동안에는 글을 쓰지 않았다. 아니 쓸 수가 없었다. 그냥 나는 걷고, 보고, 듣고, 느끼기에만 충실했고,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이란, 그 순간들의 경험이 다였다 ..  (25, 36, 39, 59, 76쪽)


  매화꽃이 질 무렵 매화잎이 돋습니다. 매화잎이 돋고 매화꽃이 저물면서 매화알이 익어요. 처음에는 푸르딩딩한 빛이요 차츰 누르스름한 빛입니다. 매화알도 살구알처럼 노오란 빛이 맑으면서 곱지요. 다만, 매화알은 살구알처럼 달콤하지 않습니다. 살구알은 달면서 시큼한 맛이 좋아 먹지만, 매화알은 이도 저도 아닌 맛이 돌아요.


  사람들은 봄에 으레 벚꽃이나 매화꽃을 보며 즐거워 합니다. 벚꽃이나 매화꽃이 지면 꽃놀이는 한동안 잊습니다. 그런데, 꽃이 진 뒤에도 잎빛은 곱습니다. 파랗게 눈부신 하늘빛과 푸르게 빛나는 새잎 빛깔은 무척 잘 어울려요. 여기에, 푸른 빛에서 노르스름 익는 열매빛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립니다.


  고들빼기라든지 씀바귀라든지, 사람들은 흔히 뿌리만 캐서 먹습니다. 고들빼기잎이나 씀바귀잎을 먹는 사람은 드뭅니다. 고들빼기꽃이나 씀바귀꽃을 곱다고 들여다보는 사람도 드물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즐겨 찾아서 먹지 않으니 고들빼기잎이나 씀바귀잎이 써요. 사람들이 늘 들여다보면서 꾸준히 뜯어서 먹으면 고들빼기잎이나 씀바귀잎도 쓰지 않습니다. 스스로 즐겨먹지 않으니 쓴맛만 짙어요.


  민들레잎도 즐겁게 뜯어서 먹을 적에 쓴맛이 감돌지 않으면서 싱그러워요. 토끼풀잎도, 괭이밥풀잎도 모두 똑같아요. 즐겁게 자주 먹으면 싱그러운 풀맛이지만, 눈여겨보지 않거나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저 쓰기만 한 맛이 되고 말아요.


.. 정말 중요한 것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미련을 두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 내가 노란 조명을 나지막이 켜 놓고 밤이 늦도록 책을 읽는 걸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 어떤 빛보다도 나를 깨우는 푸른 새벽 햇살만큼 설레게 하는 건 없다 … 시간이 흘러 영어를 배우게 되고 수업도 따라가게 되면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유명한 회사에 취직할 가능성이 높아져서도 아니고 외국인한테 척척 말을 걸 수 있게 되어서도 아니었다. 세상에 내가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점이 단연 최고로 신나는 일이었다 ..  (125, 133, 176쪽)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입니다. 나무 한 그루는 수백 해나 수천 해를 살아갑니다. 나무 한 그루가 스러져 죽어도 새로운 나무들이 뒤이어 자랍니다. 나무마다 푸른 바람을 내뿜고 푸른 열매를 내놓습니다.


  나무를 마주하는 사람은 모두 다릅니다. 시골에서 나무를 마주하는 사람이 있고, 도시에서 나무를 마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즐겁게 나무를 마주하는 사람이 있으며, 아무 생각 없이 나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풀입니다. 풀포기는 수천 수만 수억 포기 골고루 돋습니다. 피고 지고 또 피고 지면서, 돋고 시들고 또 돋고 시들면서, 들과 숲에 푸른 옷을 입혀요.


  풀을 먹는 사람은 다 다릅니다. 시골에서 집 둘레 풀을 그날그날 뜯어서 먹는 사람이 있고, 도시에서 가게에 찾아가 풀을 사다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손수 씨앗을 뿌려 푸성귀를 얻는 사람이 있고, 풀씨 스스로 날려 돋은 풀을 고맙게 얻어서 먹는 사람이 있어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책입니다. 내가 읽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내가 읽어도 그 자리에 있어요. 내가 읽은 책은 우리 집 책꽂이에 깃들고, 내가 읽지 않은 책은 새책방이나 도서관 책시렁에 깃들다가, 누군가 따사로이 내민 손길을 타고 이웃집 책꽂이에 깃듭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저마다 다릅니다. 스스로 책값을 벌어서 한 권씩 사서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책을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버이한테 돈이 많아 어느 책이든 걱정없이 사서 읽는 사람이 있고, 어버이한테 돈이 없어 어느 책이든 걱정하며 구경조차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 눈을 돌려 보니 작은 책방 한쪽에서 어머니가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고 있다. 그 이야기에 온갖 표정을 지으며 빠져드는 아이의 모습을 본다 … 골목을 돌 때마다 새로운 서점이 나타나는 이 경이로운 도시는 … 이 공간에서 만나는 소설이든 비소설이든, 난해한 철학서든 아기자기한 요리책 들은 누군가가 읽고 좋았던 기억이 담겨 있다 ..  (191, 196, 259쪽)


  책은 누가 읽을까요. 책방은 어떤 곳일까요. 책을 많이 읽은 사람 넋은 어떠할까요. 책방에는 어떤 책이 모일까요. 책을 쓰는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까요. 책방을 꾸리는 사람은 이웃들한테 어떤 책을 알려주고 싶을까요.


  책은 누가 안 읽을까요. 책방이 없는 마을은 어떤 삶터일까요. 책을 못 읽거나 안 읽은 사람 얼은 어떠할까요. 책방이 없는 마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가슴에 담으면서 살아갈까요.


  《책 여행자》라는 책은 어떤 책이 될까 생각합니다. 《책 여행자》라는 책을 책꽂이에 건사하는 책방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까 생각합니다. 《책 여행자》라는 책을 쓴 분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합니다. 《책 여행자》를 읽은 내 이웃들은 어떤 빛을 가슴에 새기면서 오늘 하루를 누릴까 생각합니다.


  박주가리 씨앗을 후후 불며 마당에서 날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그믐을 지나 보름으로 다가서는 달빛을 가만히 느끼며 생각합니다. 설을 앞두고 할머니 할아버지 뵈러 길을 나서기 앞서, 일찍 잠들려 하지 않으면서 더 놀고 더 조잘조잘 노래하려는 아이들을 다독이며 생각합니다. 방바닥에 불을 넣으며 생각합니다. 설거지를 하며 생각합니다. 빨래를 하며 생각하고, 다 마른 옷가지를 개며 생각합니다.


  책은 어디에서 태어날까요. 책은 어디로 흐를까요. 책에 스민 이야기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 손길을 타면서 어떤 사랑꽃으로 새로 태어날까요.


  풀씨가 날려 풀밭이 넓어집니다. 꽃씨가 날려 꽃밭이 넓어집니다. 나무씨가 퍼져 숲이 깊어집니다. 책씨가 한 사람 두 사람 손길을 거쳐 널리 퍼지면서 책숲이 이루어집니다. 4347.1.2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을 말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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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스스로 즐기는 책벌레 만들기
김서영 지음 / 국민출판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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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54

 


잘 노는 아이가 책을 잘 읽는다
― 아이 스스로 즐기는 책벌레 만들기
 김서영 글
 국민출판 펴냄, 2011.6.10.

 


  아이들한테 “놀아라. 신나게 뛰놀아라. 마당에서 실컷 뛰놀아라.” 하고 말하는 어버이나 어른은 얼마나 있을까요. 예전에는 어른들이 아이들더러 “밖에 나가 놀아라.” 하고 으레 말했습니다. 이제 어른들은 아이들더러 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공부해라. 학원에 가라. 숙제 해라.” 하는 세 가지를 말합니다.


.. 아이들이 이렇게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책 좀 읽어라.” 하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어른들 때문은 아닐까 … 아침 자습시간에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는 했지만, 그저 책만 읽으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언가 모를 그 이상야릇한 기분의 정체가, 아이들의 책읽기 속에 함께 들어가지 못한 나 자신 때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아이들에게 “책 읽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 함께 책 읽을까?”라고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  (21, 28쪽)


  잘 노는 아이가 책을 잘 읽습니다. 잘 놀지 못하는 아이는 책을 잘 읽지 못합니다. 놀지 않고 책만 보는 아이는 ‘책이라는 지식그물’에 사로잡힙니다. 책을 읽는 까닭은 ‘책만 읽어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스스로 겪기 어렵거나 못 겪을 만한 일이 있어, 내 이웃과 둘레 삶자락을 한결 넓고 깊이 헤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남극이나 북극에 모든 사람이 다 가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프리카 들판이나 중남미 마추픽추에 모든 사람이 다 가 보기는 어렵습니다.


  책으로 칠레 어린이를 만나요. 책에서 노르웨이 푸름이를 만나요. 책으로 아이슬란드 벗을 사귀어요. 책에서 베트남 푸름이와 어깨동무를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지구별 여러 동무와 이웃을 만나는 한편, 내가 태어나기 앞서 살아온 사람들 발자취를 헤아립니다.


  그런데, 책을 읽는 까닭은 ‘오늘 이곳에서 즐겁게 살아갈 빛’을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책만 파고들려고 책을 읽을 수 없어요. 그러니까,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먼저 신나게 뛰놀아야 합니다. 한 시간 신나게 뛰놀고 나서 십 분쯤 책을 읽으면 됩니다. 두 시간 개구지게 뛰논 뒤에 이십 분쯤 책을 펼치면 됩니다.


  퍽 어린 아이라면 50분 놀고 10분 책과 사귀면 즐거워요. 좀 자란 아이라면 40분 놀고 20분 책과 사귈 만해요. 열대여섯쯤 되는 푸름이라면 30분 놀고 30분 책과 사귈 만합니다. 그런데, 책읽기가 놀이하기보다 더 길거나 많으면 자칫 흔들릴 수 있습니다. 책은 40∼50분 읽으면서 놀이는 고작 10분조차 안 한다면, 이 아이는 몸이 어떻게 될까요.


  한창 뛰고 놀며 몸을 살찌우고 튼튼하게 가꿀 아이들은 하루에 여덟 시간이나 열 시간쯤은 뛰고 놀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할 일이란 먹고 놀고 자고, 이 세 가지입니다. 이 가운데에 살짝 책읽기를 끼워넣습니다.


.. 재미있는 책을 읽은 날에는 어김없이 책 이야기가 아이들의 일기에 등장한다 … 부모가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면 아이에게도 자신 있게 권할 수 있고, 아이도 무척 재미있게 읽을 것이다 … 5학년 오원이는 학급에서 재미있게 읽은 책을 샀다고 자랑한다. 다 읽은 책을 왜 사느냐고 물으니 대답이 기특하다. “저는 좋은 책은 꼭 가지고 싶거든요.” ..  (24, 37, 71쪽)


  아이들이 텃밭을 일구도록 한다면,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텃밭을 곱게 일구는 슬기와 버릇을 익힙니다. 아이들을 자전거수레나 샛자전거에 태워 함께 마실을 다니면, 아이들은 자전거를 익숙하게 받아들입니다. 어버이나 어른이 아이들을 자가용에만 태워 돌아다녀 버릇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걷거나 자전거를 달리는 보람과 뜻과 넋을 배우지 못합니다.


  어릴 적부터 영어를 배우면, 영어를 한결 잘 배울 만할 테지요. 그래요, 영어를 잘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영어를 잘 배워서 어디에 쓸까요? 키가 크나요? 몸이 튼튼하나요? 마음이 착하나요? 생각이 깊나요?


  아이들은 무엇보다 몸이 튼튼하게 자라야 합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몸을 알뜰살뜰 씩씩하게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착한 넋과 맑은 얼로 참답고 올바른 마음과 생각을 키울 수 있어야 합니다.


  살가운 마을과 따사로운 보금자리에서 사랑을 누리면서 자라는 아이들일 때에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어른들부터 스스로 살가운 마을 되도록 일구고 따사로운 보금자리 되도록 가꿀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이러는 동안 살며시 책읽기를 곁들일 노릇이라고 느껴요.


.. 초등학생들에게 장래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이 연예인, 선생님, 과학자,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독서지도를 하고 나서는 색다른 직업을 말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바로 ‘작가’다 … 많은 아이들이 듣기를 좋아한다. 목소리에 자신이 없다고?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의 목소리’이기 때문에, 또 ‘엄마의 목소리’이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다. 들려주기는 아이를 집중하게 하고, 글자만 쫓는 아이들의 눈을 그림으로 옮겨주기도 한다 … 아이들과 독후감을 써 보면서 느낀 한 가지는 평소 글쓰기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아이라도 책에 대해 충분히 공감한다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  (92, 115, 182쪽)


  집과 학교에서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김서영 님이 빚은 《아이 스스로 즐기는 책벌레 만들기》(국민출판,2011)를 읽습니다. 아이들이 집과 학교에서 ‘책과 어떻게 사귈 수 있는가’를 밝히고, ‘책을 즐겁게 사귀는 길’을 찬찬히 들려줍니다. 이 책에 나오듯이 아침에 딱 10분씩 아이와 함께 책을 누릴 수 있으면 좋지요.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앞서 10분씩 아이와 함께 책을 누려도 좋아요. 아침저녁으로 20분만이라도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아이하고 책을 누리면 좋습니다.


  다만, 책 한 권을 읽히거나 함께 읽더라도 사랑스레 나눌 노릇이에요. 훌륭하다고 하는 책이라 하더라도 사랑스레 나누지 못하면 아이들은 고운 이야기밥을 먹지 못해요. 그리고, 아이들한테 책을 읽히는 까닭은, 아이들만 책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이들과 함께 어른들도 책을 읽을 노릇이에요.


  아이들한테 읽힐 책은 어른들이 먼저 다 읽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읽는 책은 어른들도 다 함께 읽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만화책을 보면 어른들도 만화책을 보아야지요. 아이들이 즐겁게 보는 만화책뿐 아니라, 아이들이 아직 모르는 아름다운 만화책을 보아야지요. 아이들이 참말 재미나며 아름답고 멋진 만화책을 깨닫고 누릴 수 있도록 ‘학습만화’아닌 ‘참된 만화책’을 제대로 알려주고 보여줄 뿐 아니라, 함께 만화책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지요.


.. 결혼하고 남편에게 “첫째는 딸을 낳아 희망이라 하고 둘째는 아들을 낳아 찬이라 하자. 그러면 우리는 희망찬 엄마 아빠가 되는 거고, 우리 집은 희망찬 가족이 되는 거잖아.”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 학교에서 아이들을 처음 만나면 내 이름과 함께 ‘희망찬샘’이라는 닉네임도 알려준다. 여기서 ‘샘’은 선생님의 ‘샘’이 아니라, 고여 있지 않고 언제나 퐁퐁 솟아나는 샘물의 ‘샘’이라고 말해 준다 … 믿어 주고, 격려하기! 그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 ..  (110, 114, 187쪽)


  김서영 님은 이녁 스스로 ‘희망찬샘’이라는 이름을 누립니다. 아이들 이름인 희망이요 찬이기도 하지만, 희망이 찬 샘물과 같이 맑고 밝게 흐르는 넋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려는 마음을 품습니다. 이 마음은 집과 학교에서 아이들 가슴속으로 살포시 스며들리라 느낍니다. ‘희망찬샘’이라는 이름 그대로 아이뿐 아니라 어른 스스로도 즐거우면서 고운 빛이 늘 감돌 만하리라 느낍니다.


  아이들도 저마다 저희 이름을 새롭게 하나씩 지을 수 있어요.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이름 하나하고, 아이들이 ‘앞으로 사랑하며 살아갈 내 하루’를 돌아보면서 스스로 품는 꿈을 담는 이름 하나, 이렇게 두 가지 이름으로 즐겁게 배우고 뛰노는 이야기를 누린다면 아주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 책 읽는 아이가 자라면 책 읽는 어른이 된다 ..  (201쪽)


  사랑받는 아이가 사랑받는 어른이 될 뿐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어른이 됩니다. 꿈을 키우는 아이가 꿈을 꾸는 어른이 될 뿐 아니라, 이웃이 꿈을 꾸도록 돕거나 손길 내미는 착한 어른이 됩니다. 웃고 노래하면서 노는 아이들이 웃고 노래하면서 일하는 어른이 됩니다.


  숲내음 누리는 아이들이 숲을 지키는 어른 됩니다. 나무를 아끼는 아이들이 나무를 보살피는 어른 됩니다. 오늘날 이 사회에 4대강사업 같은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까닭을 헤아려 봐요. 숲과 나무와 들과 바다와 냇물을 제대로 아끼거나 사랑하지 못한 채 학교교육만, 지식교육만 잔뜩 받은 아이들이 끔찍한 일 저지르는 어른이 되지 않을까요. 책은 책대로, 삶은 삶대로, 놀이는 놀이대로, 사랑은 사랑대로, 꿈은 꿈대로, 아이와 어른이 나란히 아름답게 가꿀 수 있기를 빌어요.


  잘 노는 아이가 책을 잘 읽습니다. 잘 놀면서 책을 잘 읽은 아이가 사랑을 따사롭게 나눌 수 있습니다. 잘 놀면서 책을 읽어 사랑을 따사롭게 나누는 아이가 이 지구별을 곱게 돌보는 한길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4347.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을 말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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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01-09 12:05   좋아요 0 | URL
잘 노는 아이가 성격도 좋지요.
어릴 적부터 영어 배우게 하는 것, 반대합니다.
차라리 영어 배우는 시간에 책과 친하면 좋을 텐데요...

숲노래 2014-01-09 13:05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아름다운 삶을 배우고,
어른들은 아름다운 삶을 가르칠 수 있기를 빌어요..

2014-01-20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4-01-20 11:20   좋아요 0 | URL
힘든 해도 있고 덜 힘든 해도 있으리라 생각해요.
올 한 해 예쁘면서 기쁜 일이
솔솔 찾아들어
아름답게 누리시리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 한 출판편집자의 회상
오쓰카 노부카즈 지음, 송태욱 옮김 / 한길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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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43

 


‘책도시’ 만든다는 헛발질
―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오쓰카 노부카즈 글
 송태욱 옮김
 한길사 펴냄, 2007.11.10.

 


  오쓰카 노부카즈 님이 쓴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한길사,2007)라는 책을 읽습니다. 책 앞자락은 오쓰카 노부카즈 님이 처음 출판사 편집부에 들어가서 겪거나 한 일을 조곤조곤 밝혀 적습니다. 책 하나 엮어 이 땅에 내놓는 즐거움과 기쁨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책 만들었다’ 하는 이야기만 줄줄이 나옵니다. 이녁이 만든 ‘책 목록’만 길게 나옵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이 책은 글쓴이 ‘회고록’입니다. 책이름은 ‘책으로 찾아가는 꿈나라’이지만, 어떤 꿈나라로 나아가려 했는가 하는 대목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어요. 이를테면, “출판이란 원래 수수하고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일이다. 편집자는 보이지 않게 시중드는 사람이다. 출판계는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 구멍가게에서 다시 출발해도 좋지 않을가 싶다(14쪽).” 같은 이야기나, “세상에는 일류 식당이 아니라도 심도 싶은 논의를 하는 곳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회의가 끝나고 나서 어떤 선배한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48쪽).” 같은 이야기라든지, “아니, 편집자는 인류 가운데 천재가 몇 명 있고, 어떤 천재가 몇 번째인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건 좀 이상하다. 그런 건 본질적인 게 아니잖아.’라는 것이 처음에 느낀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며칠간 계속해서 생각하는 중에 어쩌면 편집자란 끊임없이 그렇게 커다란 기준으로 사물을 판단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61쪽)” 같은 이야기는 곰곰이 생각할 만합니다. 수수하고 작은 일에서 책빛이 살아나고, 으리으리한 요리집 아니어도 아름다운 생각 피어나며, 책마을 일꾼이란 언제나 꾸준히 새로 배우는 사람입니다.


  책을 천 권이나 만 권쯤 내놓은 출판사이기에 좋거나 훌륭하거나 아름답지 않습니다. 책을 한 권이나 열 권쯤 겨우 내놓은 출판사이기에 안 좋거나 안 훌륭하거나 안 아름답지 않습니다.


  책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책을 마주하는 매무새를 살필 노릇입니다. 그러니까, 시골에서는 흙을 어떻게 다루거나 마주하는가를 살필 노릇이에요. 흙을 엉터리로 망가뜨리면서 농약과 화학비료 쏟아붓고는 ‘소출이 많다’고 해서 이런 분들을 추켜세울 수 없습니다. 거두는 곡식이나 열매는 많아도 땅이 죽어요. 다시 말하자면, 책을 많이 팔았다 하지만, 책마을과 책밭을 망가뜨리는 길을 걷는다면, 이런 책장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그저 이름 알려지고 돈 벌면 그만일까요? 흙을 망가뜨리면서 흙일이라 할 수 없듯, 책밭 어지럽히면서 책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 신참 편집부원이 학자와 작가, 그것도 두 대가의 논의에서 미묘한 주름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이래서야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 나는 담당 편집자로서 특별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직 그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역할에 충실했고, 그가 집필을 위해 필요로 하는 책(대부분 서양책)을 가능한 한 빨리 입수하려고 애썼을 뿐이다 ..  (37, 58쪽)


  얼마 앞서부터 이 나라 도시들이 ‘책도시’라는 이름을 내걸려 애씁니다. 여기도 책도시요 저기도 책도시입니다. 그런데, 이들 책도시 가운데 책방이 제대로 있는 데가 드뭅니다. 책도시라면, 사람들이 책을 즐겁고 넉넉히 만날 수 있도록 책방이 마을마다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서관은 책을 어디에서 사나요. 출판사마다 하나하나 찾아다니거나 전화를 해서 한 권씩 사나요. 학교에서는 책을 어떻게 갖추나요. 학교도서관지기가 출판사를 하나하나 알아보거나 전화로 주문해서 한 권씩 갖추나요.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있고, 책을 파는 책방이 있으며, 책을 건사하는 도서관이 있습니다. 절판된 책과 다 읽은 책과 반품을 하거나 폐기해야 하는 책을 내보낼 적에 이 책들 받아들일 헌책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책을 쓰는 사람이 있어요. 책도시라는 이름을 붙이려 한다면, 이 모두가 골고루 있어야 하고, 저마다 즐겁게 살림 꾸릴 수 있어야 하며, 서로 오순도순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책도시라 하면서 이 여러 이음고리를 알차게 얼싸안는 곳은 어디에 있을까요. 한국에서 책도시라 할 만한 곳이 한 군데라도 있을까요. 경기도 파주에는 출판사 건물 꽤 많지만, 막상 책방이 제대로 없습니다. 책을 쓰는 사람이 지낼 만한 터전이 없습니다. 파주 책도시에는 어떤 도서관이 있을까요. 출판사마다 다 다른 책을 내는데, 다 다른 빛깔로 나아가는 전문도서관이 한 군데라도 있는가요.


.. 첫 번째인 6월의 여행에서 나는 부피가 크지 않은 촘스키 문헌 몇 권만 가지고 도쿄를 뒤로 했고, 때로는 사마르칸트의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서, 또 어떤 때는 티엔샨 산맥 기슭에 있는 마을에서 촘스키를 읽는 신선한 체험을 했다 … “하지만 편집자야 뭐 결국 패재바 아닌가요?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니까요.” 나는 이 말을 듣고 놀랐다. 분명히 편집자였다가 소설가가 되거나 학자가 되는 예가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말한 대로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편집자의 일은 작가나 연구자의 일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  (192, 218쪽)


  구태여 책도시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책도시라는 이름을 붙이는 곳치고 ‘사람들이 책을 즐겁게 널리 읽거나 나누는 곳’은 없다고 느낍니다. 사람들이 워낙 책하고 등지며 살아가니 어쩔 수 없이 책도시라는 이름을 내거는구나 싶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길은 하나입니다. 책도시 이름표 붙이는 데에 헛돈 쓰지 말고, 시장과 공무원과 교사부터 책을 읽으면 돼요. 책도시 행사를 하는 데에 헛돈 쓰지 말고, 그저 조용히, 시장이든 군수이든 공무원이든 교사이든 정치꾼이든, 모두들 책을 사서 읽는 데에 돈과 품을 들이면 돼요.


  먼저 책을 읽어야 독서토론회를 하든 책읽기모임을 합니다. 먼저 책을 읽어서 집집마다 서재를 갖추어야 작가초대이든 작가강연이든 할 밑틀이 생깁니다. 이름난 작가이든 이름 덜 난 작가이든, 이들이 쓴 책을 읽고 나서 작가를 불러야지요. 이런 행사 저런 잔치 크게 벌인대서 책도시 될 턱이 없습니다.


.. 그 후 30년쯤 지나 21세기로 접어든 무렵 오노 씨 부부와 함께 신슈로 여행을 갈 기회가 있었다. 그때 “예전에 오사카에서 오노 선생님께 호되게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덕분에 어떻게든 편집자의 길을 걸을 수 있어서 지금은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고 내가 말했더니, “그런 실례를 면전에 대고 했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역시 저도 그땐 젊었나 보군요.”라고 오노 씨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 ‘브랜드’나 ‘간판’은 단순히 그것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끊임없이 재생산해야 비로소 브랜드나 간판을 유지할 수 있고, 나아가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  (446, 447쪽)


  450쪽 가까운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를 읽으며 스물∼서른 쪽 즈음에서만 ‘책 만드는 넋과 땀방울’ 이야기를 읽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회고록을 옮겼기에 이러한 모양새가 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런 회고록까지 꼭 옮겨야 했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책 많이 읽었다는 사람이 ‘난 이 책도 읽고 저 책도 읽었지’ 하고 떠벌이면 옆에 있는 사람은 무척 따분합니다. 책읽기는 책자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출판사 편집자로 뼈를 묻은 사람 이야기라면 ‘난 이 책도 만들고 저 작가도 만났지’ 하고 읊기만 하면 곁에 있는 사람은 하품만 납니다. 책삶 아닌 책목록으로 뭘 어쩌라고요.


  온삶 걸쳐 엮은 책 가운데 꼭 한 가지 이야기만 들려주어도 됩니다. 책 하나에 바친 땀방울을 들려줄 수 있으면 됩니다. 책도시 되고 싶다면? 이것저것 안 해도 돼요. 책도시 이름을 걸려 하는 곳에서 태어나 글이나 그림이나 만화나 사진을 빚는 일꾼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찾아서 아끼고 돌볼 수 있으면 됩니다.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아닌, 시장이나 군수 스스로 읽은 아름다운 책 하나를 널리 나누면서 사랑하는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사랑으로 가꾸는 책도시입니다. 꿈으로 여는 책나라입니다. 돈으로도 이름으로도 껍데기로도 힘으로도 이룰 수 없는 책나무입니다. 사랑 담은 씨앗 한 톨 심어 두고두고 지켜보면서 보살피는 따사로운 손길로 이루는 책나무예요. 책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랄 때에 비로소 책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4346.11.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을 말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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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사서 - 21명의 사서들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사서의 세계 부키 전문직 리포트 15
이용훈 외 지음 / 부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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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30

 


도서관을 지키는 마음
― 사서가 말하는 사서
 이용훈과 스무 사람
 부키 펴냄,2012.12.20./13000원

 


  《사서가 말하는 사서》(부키,2012)라는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은 앞으로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싶은 푸름이한테 ‘도서관 사서가 하는 일’을 알려주는 길잡이 구실을 하는구나 싶습니다. 사서가 되려면 무엇을 잘 살피고 배워야 하는가,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면 어느 대목을 잘 헤아리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가, 책을 어떻게 마주하고 사람들과 어떻게 사귈 때에 즐거운가, 같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도서관 사서는 정규직일까요, 비정규직일까요. 아마 정규직도 있을 테고 비정규직도 있을 테지요. 오늘날은 어느 일자리라 하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리니까요. 책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책일 텐데, 책을 다루는 사람들은 사뭇 다른 대접을 받아요.


.. 교육이 끝나고 분임 토의를 할 예정이었으나 도서관의 필요성에 대한 교관들의 강력한 문제 제기로 분임 토의 자체가 불가능해 대신 전체 토론 시간을 가졌다. 그들의 눈에 나는 교도소의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에 불과했다. 또 업무 과부하로 힘든 그들에게 새로운 업무는 전혀 달갑지 않았다 ..  (56쪽)


  《사서가 말하는 사서》라는 책에 나오는 도서관 사서는 공공기관이나 학교나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혼자서 도서관을 열어 꾸리는 사람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아파트나 골목집에서 방 한 칸을 ‘열린 도서관’으로 꾸며서 마을 이웃과 만나는 ‘도서관지기’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혼자서 기나긴 해에 걸쳐 그러모은 책으로 씩씩하게 여는 서재도서관이라 할 전문도서관 이야기도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작은도서관(열린 도서관)이나 서재도서관이나 전문도서관은,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마친 뒤 ‘직업(일자리)’을 찾을 푸름이한테는 그리 걸맞지 않을 만한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요. 왜냐하면, 작은도서관을 꾸리면 돈을 벌지 못할 테고, 서재도서관이나 전문도서관을 열자면 스무 해나 서른 해쯤 오래도록 한결같이 책을 사서 읽고 모아야 하거든요. 푸름이한테 ‘꿈’을 들려주는 책이라면 이러한 대목을 짚을 테지만, ‘일자리(돈을 벌 자리)’를 알려주는 책이라면 이 같은 대목을 짚기는 어려우리라 봅니다.


.. 어린이가 도서관 그리고 책을 처음 만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안내를 하는 이가 바로 사서인 ‘나’라는 사실이었다 … 아이들도 어쩌면 그와 같지 않을까. 기어다니던 아이가 어느 날 걸음마를 하고 발에 힘을 주어 생애 처음으로 걷거나 뛰게 된다. 다리에 힘이 실리고 발이 바닥에 닿아 쿵쾅거리는 느낌이 얼마나 신기할 것이며, 그와 같이 신기한 것들로 가득한 세상으로 뜀박질해서 나아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울까. 영화를 본 후 내가 그간 아이들을 너무 몰랐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아이들의 위치에 서 보니, ‘도서관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해. 그러니까 안 돼!’라는 규칙을 적용하기가 힘들어졌다 ..  (63, 67쪽)


  《사서가 말하는 사서》라는 책에 나오는 사서들은 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다닌 뒤 사서자격증을 딴 사람들입니다. 참말, 도서관 사서가 되자면, 대학교를 다녀야 하고, 관련 학과에서 배워야 하며, 자격증을 따야 해요.


  여기에서, 나는 한 가지를 곰곰이 헤아려 보고 싶습니다. 도서관이든 책방이든 책을 다뤄요. 책은 출판사에서 만들지요. 출판사는 작가이든 학자이든 여느 사람이든, 누군가 쓴 글을 받아서 책을 만듭니다. 그런데, 출판사 대표이든 편집자이든 영업자이든, 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다닌 사람은 그리 안 많습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 가운데 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다녔거나 사서자격증을 딴 사람은 얼마 안 됩니다. 책을 그러모은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다녔거나 사서자격증 딴 사람이 꽤 많을 테지만, 막상 ‘책을 쓰고 만들며 엮어 사고파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아예 대학교조차 안 다닌 사람들이 퍽 많아요.


.. 도서관만큼은 아이들에게 천국이다. 도서관에선 시험도, 등급도, 차별도 없다. 책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읽을 책이 쌓여 있는 도서관은 천국”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천국에서 근무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서관이 진정한 천국이라면 서비스를 받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도 천국이어야 한다. 나에게 도서관은 천국이다(물론 어떤 사서교사는 도서관이 전쟁터라고 한다). 천국에서 근무를 하니, 아이들이 나에게 천사이기를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 같다 ..  (152쪽)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책을 지키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책을 알려주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책을 말하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책으로 삶을 일구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책과 함께 사랑을 나누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책에 깃든 꿈을 사람들하고 함께 일구는 곳입니다.


  《사서가 말하는 사서》라는 책은 푸름이들한테 ‘앞으로 얻고 싶은 일자리’를 밝히거나 알리는 구실을 맡는 대목에서 참 값어치 있구나 싶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으레 의사이니 판사이니 검사이니 변호사이니 하면서, 돈·이름·힘 거머쥐는 대목만 아이들한테 보여주려 하거든요. 아기자기하면서 어여쁜 일자리라 할 도서관 사서 이야기를 즐겁게 들려주는 책은 이제껏 없었다고 느껴요.


  다른 한편으로는, ‘일자리 테두리를 넘어서는’ 대목은 짚지 못하기에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대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 가운데 ‘도서관 사서’를 꿈꾼다면? 어떤 기관이나 학교에서 일자리를 얻지 않고도 ‘도서관을 누리거나 즐기는 길’을 걷고 싶다면?


  꼭 공무원이 되어야 할 아이들은 아니에요. 애써 자격증을 따서 어떤 관리직이 되어야 할 아이들은 아니에요. 삶을 사랑하면서 밝히는 길 걸어가면 어여쁜 아이들이에요. 꿈을 키우면서 노래하는 길 닦으면 즐거운 아이들이에요.


.. “여보세요, 여기 방송사인데요, 지금 지방에 촬영 차 왔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길인데요, 장서각에 잠깐 들러 고문헌 좀 촬영하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만 공문을 보내셔야 합니다.” “잠깐 들러 촬영만 하면 되는데 무슨 공문입니까?” 이런 전화는 화가 나기에 앞서 안타깝다. 고문헌은 문화재다. 문화재라는 것이 지나다가 불쑥 들러서 볼 수 있을 만큼 그렇게 하찮은 존재는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결례는 없다 ..  (211∼212쪽)


  푸름이한테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마음’을 조금 더 찬찬히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도서관 사서뿐 아니라, 공무원이건 교사이건 국회의원이건 시장이나 군수이건, 어느 자리에서건 즐거운 마음 되어 아름다운 삶길 걷도록 북돋우는 책을 우리 어른들이 베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가꾸고 살찌우면서, 삶을 누리고 빛내는 길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빌어요. 흙일꾼과 고기잡이 삶을 이야기할 수 있고, 집살림 꾸리는 사람들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으며, 나무를 돌보고 풀을 뜨는 사람들 넋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저런 전문직에서 일해도 좋을 테지만, 이에 앞서 어떤 삶을 어떻게 아끼며 보듬을 때에 가슴 깊이 따사로운 사랑 샘솟는가 하는 대목을 이야기한다면, 더없이 반갑습니다. 4346.3.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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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8 10:28   좋아요 0 | URL
'맑은 날엔 도서관에 가자'라는 책을 반쯤 보았는데 좋았던 것 같아요.
이따 다시 나머지를 읽어야겠어요.

숲노래 2013-03-28 10:45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군요.
맑은 날, 즐거운 날,
기쁜 날, 슬픈 날,
좋은 날, 아름다운 날,
언제나 사랑스러운 넋 북돋우는 이야기벗과 책 있으면
하루하루 웃음꽃 피어나리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