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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먹는 법 - 든든한 내면을 만드는 독서 레시피 땅콩문고
김이경 지음 / 유유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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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95


‘모른다’는 말을 뚝 그치려고 읽는 책
― 책 먹는 법: 든든한 내면을 만드는 독서 레시피
 김이경 글
 유유 펴냄, 2015.8.24. 1만 원


  ‘책을 왜 읽는가?’ 하고 묻는다면, 저는 ‘배우려고’라는 짤막한 말을 하겠습니다. 배우려는 뜻에서 책을 읽는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하고 그림책을 함께 읽을 적에도 아이에 앞서 어른인 나 스스로 새롭게 배우려고 합니다. 재미난 만화책을 읽는다고 할 적에도 심심풀이라고 느끼지 않아요. 이 책 하나가 나한테 가르치는 이야기가 있기에 즐겁게 읽어요.

  인문책만 우리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모든 책은 저마다 다른 사람들 살림살이를 우리한테 넌지시 가르치는구나 하고 느껴요.

  ‘왜 시골에서 사는가?’ 하고 물을 적에도, 저는 ‘배우려고’라는 짤막한 말을 합니다. 물이 맑고 바람이 깨끗한 시골이기에 시골에 산달 수 있습니다만, 이보다 시골에서 시골살이랑 시골살림을 배우려는 뜻이 한결 짙어요.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되새기면서, 앞으로 걸어갈 길을 꿈꾸고, 오늘 걷는 길을 마주하려는 뜻에서 늘 하루를 새롭게 배워요.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온 제가 안방에서 국어 교과서 같은 걸 큰소리로 읽으면, 안방 옆의 낮고 어둑한 부엌에서 일하시던 어머니는 아주 가끔 “참 잘 읽는구나!” 혼잣말처럼 감탄하시곤 했습니다. (9쪽)

제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책을 읽었을 때 제게는 간절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첫 물음은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였습니다. (13쪽)


  김이경 님이 쓴 《책 먹는 법》(유유,2015)을 읽습니다. 이 책을 읽는 뜻도 매한가지입니다. ‘배우려고’ 읽어요. 저는 한 해에 적게 읽으면 천 권 즈음 읽고, 넉넉하게 읽으면 이천 권 즈음 읽기도 하는데, 책을 아무리 많이 읽건 말건 새로 배울 만한 이야기를 느끼기에 새삼스레 이 책도 들추고 저 책도 들춥니다. 이 책에서는 이 책을 쓴 분이 즐겁게 걸어가며 지은 살림을 보면서 배워요. 저 책에서는 저 책을 쓴 분이 기쁘게 사랑하며 지은 삶을 보면서 배우고요.


책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좀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부족한 지식과 모자란 경험을 채우고 자신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요량이 있기에 책을 읽고 배우는 것이지요. (29쪽)

저는 독자에게는 오독하지 않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권위에 짓눌리지 않는 자유로운 독서는 지지하지만 이런 적극적인 독해와 무관한 오독은 마ㄸ당히 피해야 합니다. (41쪽)


  《책 먹는 법》을 쓴 김이경 님은 ‘책을 왜 읽는가?’ 하고 스스로 물으면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김이경 님은 이 물음에 먼저 “좀더 나은 인간이 되”려는 뜻이라고 밝힙니다. 이러면서 ‘자유로워지는 길’을 찾으려고 책을 손에 쥐었다고 해요.

  아마 책에서는 ‘자유로 가는 길’을 환하게 밝히거나 보여주지 않았으리라 느껴요. 책을 읽는 동안 김이경 님 스스로 이 대목을 넌지시 깨닫거나 시나브로 알아챘으리라 느껴요. 나 아닌 남이 걸어온 길이 고스란히 드러난 책을 읽는 동안 내 마음을 한결 단단히 추스르고 한껏 새롭게 가다듬자는 마음이 되었으리라 느낍니다.

  내가 얼마나 모자란가 하고 책을 읽는 내내 헤아리기에, 책을 덮고 나서 이 모자란 모습을 채우고 가꾸며 북돋우려고 땀을 흘릴 만하지 싶어요. 좋은 거울이 되는 책이요, 즐거운 길동무가 되는 책이지 싶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이런 배움의 일부이며, 자신의 무지를 일깨워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생각, 다른 지식, 다른 믿음이 불러일으키는 의심과 두려움을 ‘틀렸다’고 치부하거나 눈을 감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똑바로 바라봄으로써 오히려 더 큰 세계 안에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 독서를 하는 것이지요. (65쪽)


  책을 읽으면서 내 어리석음을 깨닫는다면, 이러면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만한 슬기를 곱씹는다면, 나 아닌 남을 널리 아우르거나 껴안는다면, 참말 우리는 얼마나 멋진 사람이 될 만할까요?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사람들 생각과 꿈과 사랑을 새롭게 마주하면서 아끼는 숨결이 된다면, 참으로 우리는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이 될 만할까요?

  시샘하는 마음에서는 책을 못 읽어요. 아니, 시샘하는 마음에서는 아무것도 못 배워요. 고개를 숙이면서 새로 배우려 하기에 책을 읽어요. 배우자고, 삶을 짓자고, 익히자고, 살림을 짓자고, 이렇게 스스로 되뇔 적에 비로소 책을 읽을 만하지 싶습니다.


흔히들 노는 게 재미있다고 하지만 정말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건 몰랐던 것을 아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80쪽)

문학은 인간의 조건에 대한 통찰력, 세계를 다르게 보는 눈,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는 힘을 키워 줍니다. 그리고 그 힘은 문학이 사람을 읽는 눈을 길러 주는 데에서 나옵니다. 나를 읽고 너를 읽고 우리와 그들의 세상을 읽으면서, 각자의 삶과 그 삶들이 한데 어울려 만드는 이 세상을 더 깊고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요. (139쪽)


  《책 먹는 법》이라고 하는 자그마한 책은, 참으로 “책 먹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마음을 알뜰살뜰 일구도록 책을 먹자고 이야기합니다. 이제껏 몰랐던 것을 느끼면서 배우자고 이야기합니다. 너와 내가 서로 얼크러지는 이 땅을 더 깊고 너른 터로 가꾸는 길에 한 손을 보탤 만한 꿈을 짓는 마음으로 책을 읽자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나한테 새로운 책 한 권을 선물합니다. 나는 나한테 오래된 책 한 권을 선물합니다. 새로운 책에서는 새로운 삶을 배우며 읽습니다. 오래된 책에서는 오래된 살림을 배우며 읽어요.

  구속 수감된 옛 대통령한테 책 한 권 부치고 싶습니다. ‘모른다’는 말을 일삼은 그분은 참말 ‘모르실’ 테니, 이제부터 ‘알고’ 느껴서 ‘배우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잘잘못을 떠나서 이웃을 사랑하고 이 땅을 아낄 줄 아는 마음을 작은 책 한 권을 곁에 놓으면서 차분하고 조용히 새롭게 배우면 좋겠습니다. 2017.3.31.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이야기/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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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 다양하고 지속 가능한 출판을 위하여
니시야마 마사코, 김연한 / 유유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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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82



하루키 책 100만 권 팔아서는 책마을이 죽는다

―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니시야마 마사코 글·사진

 김연한 옮김

 유유 펴냄, 2017.1.14. 16000원



  몇몇 언론사에서 ‘새로 나올 하루키 책’을 놓고서 말이 많습니다. 하루키 책이 새로 한국말로 나오면 ‘100만 권’쯤 넉넉히 팔릴 만하리라는 말이 돕니다. 100만 권쯤 팔리는 책이 있다면 한국 책마을이 살아날는지 꽃피울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하루키 책이 100만 권 팔린다면, 이는 한 군데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으로 100만 권입니다.


  한 사람 책이 한 군데 출판사에서만 나오며 100만 권이 팔리면 책마을이 살아날 수 있을까요? 책마을에 도움이 될까요? 글쎄, 저는 고개를 가로젓겠습니다. 하루키이든 아무개이건, 한 사람 책이 100만 권이 팔리기보다는, 한국 작가 100사람 책이 100군데 출판사에서 나와, 저마다 1만 권 팔릴 수 있다면, 이리하여 ‘100 작가 100 출판사 1만 권’으로 100만 권이라는 숫자가 사람들 손에 간다면, 이때에 비로소 이 나라 책마을이 살아날 만하다고 말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일도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든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고 싶었습니다. 집에서는 엄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거든요. 그게 제 안에서 꼭 지키고 싶은 규칙이었어요. 설마 제가 그렇게 변할 줄은 몰랐습니다 … 저에게 아이가 없었다면 그림책 서가에는 가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그림책 서가를 벗어난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읽을거리에 ‘그림’이 있는 책이란 이미지요 … 모든 것을 감수하고 앞으로 5년, 10년 팔고자 한다면, 제가 100퍼센트 만족하는 책이어야 일이 괴롭지 않아요. (22, 27, 36쪽/야스나가 노리코)



  니시야마 마사코 님이 쓴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유유,2017)이라는 책을 읽어 봅니다. 혼자서 일하거나 두세 사람이 일하는 자그마한 출판사 이야기가 흐르는 책입니다. 도쿄 한복판이 아니어도 즐겁게 작은 출판사를 열어서 씩씩하게 책길을 걷는 사람들 이야기가 흐르는 책입니다.


  더 많은 책을 팔겠다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 이야기가 이 책에 흐릅니다. 더 아름다운 책을 엮고 펴내어, 이 아름다운 책을 책방 일꾼이 기쁘게 팔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이 책에 흐릅니다. 더 잘 팔리는 책에는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한 번 펴냈으면 100년이나 200년쯤 판이 안 끊어지도록 읽히고 사랑받을 만하게 단단하고 알차며 아름다운 책을 짓겠다는 사람들 이야기가 이 책에 흘러요.



“내일은 눈 오니까 쉬자” 하고 말할 수 있는 사장이 몇이나 될까요. 사장조차 자유롭지 않은 회사에서 도대체 누가 자기 뜻대로 할 수 있을까요? (48쪽/도요다 쓰요시)


《하마유리 시절에》는 회전이 빠른 도심지에서 사고가 정지된 사람들에게 생각할 자극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출간했습니다. 저 자신도 일깨우면서요 … 한 권 한 권 책을 낼 때마다 관련된 분들과 친해지고 따스함을 느낄 수 있어서 기쁩니다. (70, 76쪽/기요타 마이코)



  ‘빨리’를 외치지 않는 작은 출판사 일꾼은, 그렇다고 해서 ‘느리게’를 외치지 않습니다. 일본 책마을 가운데 작은 자리를 일구는 분들은 ‘아름답게’를 노래합니다. 짤리도 느리게도 아니에요. 외침도 아니에요. 그예 ‘아름답게 노래하기’입니다. 여기에 ‘즐겁게 춤추기’입니다. 덧붙여서 ‘신나게 꿈꾸기’예요. 그리고 ‘어깨동무하며 함께 웃기’예요.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바다를 보면서 사무실에 출근합니다. 막차 시간 신경 쓰지 않고 일할 수 있어서 좋아요 … 어쩌다 보니 가마쿠라로 왔지만, 기분 좋게 일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저에겐 중요했어요 … 당연한 것을 의심하는 마음을 잊기 싫어서 의사 표명의 한 수단으로 띠지를 빼기로 했어요. 띠지가 있어야 잘 팔린다는 근거 없는 안도감을 없애고 싶었습니다. (87, 100쪽/우에노 유지)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을 읽으면서 이 대목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한 작가 책을 100만 권을 팔려는 뜻은 아예 처음부터 안 품는다고 합니다. 한 작가 책을 열 해에 걸쳐 1만 권을 팔 수 있기를 바라는 뜻을 곱씹어 봅니다. 한 해에 열 작가 책 열 가지를 만 권씩 팔겠노라 하는 마음을 되새겨 봅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터전에서 다 다르게 살림을 지어요. 다 다른 마을에서 다 다른 이야기가 피어나면서 다 다른 아름다움이 깨어나요.


  우리가 나아갈 아름다운 길은 어디일까요? 우리가 누릴 기쁜 삶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가 함께할 따스한 사랑은 무엇일까요?


  요즈음 한국에서는 전국 곳곳에 자그마한 마을책방이 하나둘 문을 엽니다. 열 해쯤 앞서를 떠올리면, 전국 곳곳에서 작은 마을책방이 다 죽고 문을 닫는다고 했어요. 참말로 얼마 앞서까지 한국에서는 전국 어디에서나 ‘마을책방이 문을 닫고 자취를 감춘’ 이야기로 떠들썩했어요. 그런데 요새는 전국 어디에서나 ‘마을책방이 새롭게 문을 열며 활짝 기지개를 켜는’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회사는 사람이 전부이기 때문에 모든 구성원이 날마다 성장한다고 믿고 가야 출판의 밝은 미래로 이어집니다 … 젊은 편집자도 처음부터 “잘 팔릴 책을 만들어”라는 말을 숱하게 듣다가 가장 중요한 감성이 충분히 자라기 전에 ‘판다’는 가치만을 위해서 일하는 로봇이 됩니다. (128, 142쪽/미시마 구니히로)


우리가 믿을 건 작가의 힘이 담긴 사진집뿐이에요. 즉 잘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보다 압도적으로 좋은 작품을 만드는 일만이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밝혀 줄 겁니다. (164쪽/히메노 기미)



  지난날 마을책방하고 오늘날 마을책방을 가만히 맞대어 봅니다. 지난날 마을책방에 놓인 책은 거의 모두 참고서나 학습지였습니다. 여기에 잡지 조금, 베스트셀러 조금 있었어요.


  오늘날 마을책방은 지난날하고 사뭇 달라요. 오늘날 전국 곳곳에서 문을 여는 마을책방 가운데 참고서나 학습지를 들이는 데는 눈 씻고 찾아볼 수조차 없습니다. 지난날 마을책방에는 책꽂이가 빽빽하도록 온갖 참고서와 학습지가 있는데다가 베스트셀러하고 몇몇 인기 잡지만 있었지요. 그렇지만 오늘날 마을책방에는 어떠한 참고서도 학습지도 안 들여놓아요. 게다가 오늘날 마을책방에서는 베스트셀러조차 거의 안 들일 뿐 아니라 몇몇 인기 잡지를 찾아볼 수조차 없어요.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더 눈여겨보아야지 싶어요. 지난날 마을책방에서 사람들은 어떤 책을 장만하거나 살폈을까요? 오늘날 마을책방에서 사람들은 어떤 책을 장만하거나 살필까요?


  책이란 무엇인지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책방이란 무엇인지 이제 다시 생각해 보아야지 싶습니다. 마을에 깃든 책방은 얼마만 한 크기이면 되고, 어떤 책을 얼마쯤 갖추면 될는지 곰곰이 따져 보아야지 싶습니다.



파는 사람도 이 책을 좋아하고, 사는 사람도 한 권 더 사서 다른 이에게 선물할 정도로 좋아하는 작품을 목표로 삼고 싶어요 … 수익 때문만이 아니라 이렇게 좋은 작품을 (작가한테서) 받았으니 더 많은 분에게 보여 드리고 싶어서요. (223쪽/다니카와 메구미)



  오늘날 한국에 새롭게 문을 여는 마을책방은 지난날하고 아주 다르게 참고서랑 학습지를 안 다루다 보니 책꽂이가 퍽 널널합니다. 책꽂이로 우리 눈을 고단하게 하지 않아요. 이러면서 걸상을 넉넉히 둡니다. 책꽂이를 줄이고 책걸상을 놓아요. 그리고 베스트셀러가 아닌 ‘마을책방지기가 사랑하는 책’을 놓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 새롭게 문을 여는 마을책방은 참말로 ‘마을’에 깃드는 책방입니다. 서울에서든 부산에서든 똑같은 책만 있는 책방이 아닌, 서울 다르고 부산 다르고 대구 다르고 포항 다르고 광주 다르고 전주 다르고 대전 다른 ……, 이제 오늘날 새로운 마을책방은 이 마을책방이 뿌리를 내리려는 고장에서 태어나는 책에 눈길을 둡니다. 마을에서 함께 짓는 이야기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에 나오는 일본 1인 출판사 대표는 우리 둘레에서 흔히 볼 만한 수수한 아저씨이거나 아줌마이거나 아가씨이거나 사내입니다. 걸어서 집하고 일터 사이를 오갑니다. 바닷바람을 마시면서 자전거를 달려 집하고 일터 사이를 오갑니다. 베스트셀러로 한몫 잡으려는 살림은 처음부터 생각조차 안 합니다. 아름다운 책을 마을에서 지어내어 이웃들하고 나누려는 마음으로 책을 보듬습니다.



내가 서점을 사랑하는 까닭은 그곳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서점에서 샀기 때문에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그 사람이 권한 책이니까 소중히 읽는다. 책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서점 직원들이 ‘팔고 싶다’고 생각하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94쪽/도이 아키후미)



  한국 책마을은 이제 첫 걸음을 새롭게 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키 새책을 놓고 선인세가 20억 원을 웃돌 듯하다는 말이 많습니다. 참 미친 짓입니다. 이런 짓은 더없이 미친 짓인 줄 알아채고 느껴야지 싶습니다. 한 사람 책을 놓고 20억 원을 미리 치른 뒤에 100만 권 넘게 팔려고 하는 장사는 제발 그만두어야지 싶습니다. 한국 책마을 모두 뜻을 모아 ‘하루키 책 선인세 계약’을 어느 곳에서도 안 할 수 있기를 빕니다. 하루키 책을 한국말로 내려 한다면, 선인세 계약 없이 내도록 해야지 싶어요.


  하루키 책에 20억 선인세를 들일 돈이 있다면, 이 돈으로 적어도 젊은 작가 스무 사람한테 1억 씩 주면서 아름다운 책을 느긋하게 짓도록 북돋울 수 있어요. 또는 젊은 작가 이백 사람한테 천만 원씩 주면서 아름다운 책을 넉넉하게 짓도록 북돋울 만합니다.


  베스트셀러로는 책마을이 살아나지 못합니다. 몇 가지 책만 유통시켜 떼돈을 거머쥐려는 대형서점하고 대형출판사 주머니만 살찌우겠지요. 우리가 책마을을 살리면서 책을 즐기는 아름다운 뜻을 나누려 한다면, 작은 마을책방과 출판사와 작가가 서로 아끼고 돕는 작은 마을살림으로 이야기꽃을 지피는 길로 가야지 싶어요.



책의 절반은 머리로 만들지만, 절반은 손으로 만든다는 걸 느끼고서야 제 안에서 충돌했던 두 세상이 서로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83쪽/아사노 다카오)



  깨어나야지요. 눈을 떠야지요. 마을을 바라보고 삶을 헤아려야지요. 우리가 저마다 손수 짓는 기쁨으로 어깨동무를 해야지요. 작은 출판사 천 군데에서 해마다 다섯 가지쯤 새로운 책을 내놓아 이 책들을 해마다 만 사람한테 이어 줄 수 있기를, 이렇게 한 해에 만 사람을 잇는 책이 백 해라는 시간에 걸쳐 판이 안 끊어지고 이어질 수 있기를, 이리하여 ‘100만 권 팔리는 책’이 하루아침에 100만 권이 아니라, 백 해에 걸쳐서 백만 사람한테 백만 가지 이야기꽃으로 피어날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모든 책이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다 다른 사람들한테 베풀면서 기쁘게 노래로 퍼질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즐겁게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2017.3.18.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유유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고맙게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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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알기 아까운 책 읽기의 비밀
이태우 지음 / 연지출판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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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읽기 삶읽기 285



아름답기에 혼자 읽을 수 없는 책

― 혼자 알기 아까운 책 읽기의 비밀

 이태우 글

 연지출판사 펴냄, 2015.8.1. 12000원



  누가 저한테 ‘책을 왜 읽으셔요?’ 하고 여쭈면, 저는 다음처럼 이야기합니다. ‘저는 책을 읽는다기보다 마음을 읽어요’라든지 ‘저는 이 책을 거쳐서 사랑을 읽어요’라든지 ‘저는 이 책이라는 껍데기를 손에 쥐고서 아름다운 삶을 읽어요’라든지 ‘저는 책을 가슴에 품으면서 따뜻한 숨결을 읽어요’라고요.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저한테는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 아이들하고 나누는 살림도 책읽기이고 책쓰기예요’라든지 ‘파랗게 눈부신 하늘도 멋진 책이랍니다’라든지 ‘새봄에 돋는 싱그러운 풀을 보노라면 이토록 사랑스러운 책이 어디에 더 있나’라든지 ‘겨울을 딛고서 피어나는 봄꽃을 마주하면서 즐겁게 책읽기를 해요’라고요.



나는 무료인 무가지 신문에서 별로 좋은 정보를 가져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공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시간과 기회비용이기 때문이다. 신문은 유료로 구독할 때 가치 있는 정보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19쪽)


독서는 배우려는 의지만 있다면 최고의 학습 수단이 될 수 있다. (27쪽)



  이태우 님이 쓴 《혼자 알기 아까운 책 읽기의 비밀》(연지출판사,2015)을 읽으며 책이란 무엇이고 책읽기란 어떤 살림인가 하고 새삼스레 돌아보니다. 책이름에서 엿볼 수 있기도 한데, 참말로 아름다운 책은 혼자만 읽기에 아까워요. 이 아름다운 책을 이웃한테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 사랑스럽고 이 멋지고 이 기쁘고 이 따뜻하고 이 훌륭하고 이 놀랍고 이 대단한 책을 이웃한테 알려주면서 함께 읽고 싶어요.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그냥 책만 읽고 그치지는 않으시리라 생각해요. 책을 읽은 즐거운 느낌을 이웃이나 동무한테 알려주시겠지요. 책을 선물할 때도 있고, 함께 책방마실을 할 때도 있어요. 이웃이나 동무가 어느 책을 고르도록 이끌 때도 있지요. 



책을 읽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신을 발견하고 싶기 때문이다. (64쪽)


잠들기 전 가볍고 재미있게 본 책은 꿈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75쪽)



  《혼자 알기 아까운 책 읽기의 비밀》이라는 책을 쓴 분도 이야기하는데, ‘거저 신문(무가지)’에서는 값있는 정보를 얻기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아무 값을 치르지 않고 손에 쥐노라면 어느새 아주 가볍게 툭 털어버리고 말지 싶어요. 두고두고 건사하면서 되읽을 만한 이야깃거리가 못 되는 ‘거저 신문’이지 싶어요.


  생각해 봐요. 큰 도시에 넘치는 그 거저 신문을 살뜰히 챙겨서 날마다 되읽는 분이 있을까요? 거저 신문을 날마다 되읽으면서 무엇을 얻을 만할까요? 아침 정보가 저녁에는 ‘죽은 정보’가 되고 마는 오늘날 사회에서, 어제 정보는 이튿날 ‘낡은 정보’로 바뀌는 오늘날 흐름에서, 거저 신문은 어떤 구실을 할까요?


  우리가 무엇을 읽어야 한다면 자꾸 읽고 거듭 읽는 동안 늘 새로운 마음이 북돋우는 이야깃거리여야지 싶습니다. 한 번 슥 훑고서 다시 펼쳐 볼 만하지 않다면, 이는 거저 신문뿐 아니라 책일 적에도 뜻없는 노릇이지 싶어요.



하루 중 가장 편한 시간대에 책을 펼쳐라. 그 순간부터 당신은 새로운 세계를 만날 것이며 인생의 변화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126쪽)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자신만의 목차를 만든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저자가 쓴 책을 자신의 시각으로 다시 본다는 말이다. (131쪽)



  책 한 권을 고를 적에도 늘 이 대목을 생각해야지 싶어요. ‘나는 이 책을 한 번 읽고서 다시 안 볼 생각인가?’ 하고요. ‘나는 이 책을 오늘 다 못 읽고 이달에 다 못 읽어도 두고두고 책상맡에 놓으면서 기쁨을 맛볼 만한가?’ 하고요. 덧붙여 ‘나는 이 책을 앞으로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아이들은 이 책을 나중에 새로운 아이들한테 다시 물려줄 만할까?’도 생각해 보아야지 싶어요.


  한 번 읽고 사라지는 책, 이른바 ‘한 번 소비되고 잊히는 물건’이 아닌, 우리 삶을 새롭게 북돋우는 이야깃거리다운 책을 손에 쥐어야지 싶습니다. 더 많은 책이 아닌, 더없이 아름다운 책을 집어야지 싶어요. 더 많은 책을 읽기보다, 더없이 사랑스럽게 책을 읽어야지 싶어요.



책을 읽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다. 배움에 뜻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잡고 펼치며 그 세계로 빠져든다. (164쪽)



  우리는 배우고 싶어서 책을 읽습니다. 배우고 싶지 않다면 책을 안 읽어요. 오늘날 무척 많은 분들이 책을 안 읽거나 못 읽는다면 ‘새로 배우는 기쁨’이 없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새로 배우는 기쁨을 누릴 만한 겨를이 없기에 책을 못 읽거나 안 읽을 수 있어요. 새로 배우는 동안 얼마나 기쁘면서 아름다운 삶이 되는가를 아직 누려 본 적이 없는 터라 책읽기하고 멀리 떨어졌을 수 있고요.


  곰곰이 보면 그렇지요. 수많은 아이들이 고등학교 다닐 무렵까지 책을 제법 읽지만,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생이 되면 책을 거의 다 놓아요. 대학교를 다니고서 회사에 들어갈 적에도 책을 참 많이 내려놓지요. 이제 ‘더 배울(공부할) 일이 없다’고 여겨 버리거든요.


  그러나 대학생이 되어도 배울(공부할) 일이 많아요. 학과 공부만 배움이 아니거든요. 삶을 배우고 사랑을 배웁니다. 나와 이웃을 배웁니다. 마을과 나라와 지구와 우주를 배워요. 그리고 너랑 내가 맺는 사랑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살아갈 먼 앞날을 배워요.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되어도, 노동자나 농사꾼이 되어도, 여느 집살림꾼이나 교사가 되어도, 우리는 늘 새롭게 배워야 새롭게 일할 수 있다고 느껴요. 새롭게 배우는 사람이 이웃을 아끼는 마음이 되지 싶어요. 새롭게 배우는 사람이 평화와 민주와 평등으로 나아가는 길을 슬기롭게 열려고 땀을 흘리지 싶습니다. 2017.3.11.흙.ㅅㄴㄹ


  그나저나 말을 조금 더 가다듬어 쉽게 쓸 수 있었을 텐데 싶습니다. 한 가지만 보기를 들면, '책읽기(책 읽)'하고 '독서'를 자꾸 오락가락하면서 글을 쓰는데, '책읽기' 하나만 써도 됩니다. 글에서 힘을 빼고 부드럽고 쉽게 쓴다면, 글쓴이 뜻을 한결 널리 펼 만하다고 봅니다.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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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쳔 Question 2017.1.2 - Vol.06
인터뷰코리아 편집부 / 인터뷰코리아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삶읽기 292



아름다운 길을 묻는 새로운 잡지

― 월간 《QUESTION》(퀘스천)

 6호. 2017년 1·2월 합본호

 1만 원



  묻는 잡지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선 길을 묻고, 어제 우리가 걸어온 길을 물으며, 앞으로 우리가 걸어갈 길을 묻는 잡지입니다. 이 잡지는 지난 2016년 여름에 7·8월 합본호를 내며 처음으로 선보였고, 다달이 차근차근 여러 사람들 목소리를 담아내어 묻습니다. “왜?”냐고 묻고, “어떻게?” 하고 다시 물어요.


  1호에는 윤호섭, 하랄드 마이어, 페터 슈나이더, 이호철, 박희석, 조벽, 김연순, 김윤식, 유두현, 김시종, 김석범, 김종길 같은 사람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냈습니다. 삶을 놓고, 숲을 놓고, 문학을 놓고, 예술을 놓고, 시를 놓고, 제주와 4·3을 놓고 이야기가 흐릅니다.


  2호에는 성귀수, 백원근, 채윤일, 차장섭, 이근이, 고영재, 박이소 같은 사람들이 조곤조곤 목소리를 냅니다. 꿈을 놓고, 책을 놓고, 연극을 놓고, 농사를 놓고, 길을 놓고, 시골을 놓고 이야기가 흘러요.


  3호와 4호에서도 이야기는 고이 흐릅니다. 숨을 거두고 저승으로 간 사람이 남긴 발자국을 놓고, 사람답게 살아갈 터를 놓고, 이 나라를 놓고, 종이와 나무를 놓고, 문명과 문화를 놓고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목소리를 한 가지씩 털어놓습니다.



“일본어는 띄어쓰기가 없잖아요. 글자를 좍 메워 놓았는데 참 신기해요. 그게 답답하게 느껴지질 않는다는 겁니다. 그 일본어 조판 장비를 제가 공부를 좀 했습니다. 조판기를 만들려면 조판 코드라고 하는 걸 집어넣어서 짜야 하니까요. 옛날에는 조판 코드를 다 입력해서 붙이고 떨어뜨리고 했잖아요. 아, 그 섬세함이 정말 무섭더라고요. 너무너무 뛰어나요. 게다가 우리 한글은 전혀 다르니까요.” (22쪽, 김태정)



  이제 막 태어난 잡지 《QUESTION》(퀘스천)에 담기는 목소리는 우리 사회에서 한복판을 가로지를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바깥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목소리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 틀을 이룬 사람들이 내고, 어느 목소리는 그동안 우리 사회 바깥에서 조용히 삶을 지은 사람들이 냅니다.


  《QUESTION》 6호(2017년 1·2월 합본호)는 ‘태시스템 대표’ 김태정 님 목소리로 첫머리를 엽니다. ‘태시스템’은 글꼴을 빚어서 나누는 일을 하는 곳이라고 해요. 글을 담는 글씨가 우리 눈에 한결 잘 들어오도록 북돋우는 일이 ‘글꼴 빚기’라고 할까요.


  말은 생각을 담습니다. 글은 말을 담아요. 글꼴이나 글씨는 글에 깃든 숨결을 살려 줍니다. 다 다른 글꼴이나 글씨는 다 다른 사람들이 짓는 생각을 다 다르게 보여주는구나 싶어요.



“얼마 전에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모 신문에다. 거기 문화센터가 있으니까요. 한번 같이 해 볼까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 늘 하는 얘기지만 이상하게 신문은 좋은데 사람들은 거기가 별로야. 모 신문은 신문은 별론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좋은 거야. 하하하. 아주 인간적이고 대화도 잘 통하고 …… 여튼 잘 얘기를 하다가 중단이 됐어요. 그때는 정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참 좋아하는 신문인데 왜 이런 사람들밖에 안 뽑나 …… 아니면 좋은 사람들인데 신문이 이렇게 만들었나 이런 생각이 들게 하더라고요.” (35쪽, 김태정)



  오랜 나날 한글 글꼴을 빚은 분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글꼴을 빚은 분은 사람을, 책을, 말을, 사회를, 문화를, 정치를, 신문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글꼴지기가 느끼는 ‘신문은 별론데 사람은 좋다’는 모습하고 ‘신문은 좋은데 사람은 별로야’라는 모습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신문도 좋고 사람도 좋은 길로 어떻게 하면 나아갈 만할까요?


  ‘유니버설 발레단’ 단장 문훈숙 님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들어 봅니다. 발레를 오래 하면서 프랑스 무대에도 올라 보았다는 문훈숙 님은 발레는 누구나 쉽게 즐길 만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대부분 발레에 대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대사가 있어요. 발레리나가 대사를 하지는 않지요. 그러나 손 동작을 보시면 됩니다. 손 동작으로 대사를 하거든요. 그걸 ‘발레 팬터마임’이라고 해요.” (39쪽, 문훈숙)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보실 때는 자막이 필요하잖아요. 예를 들어 이탈리아어나 영어로 뮤지컬이 나오면 번역을 해야 하는데, 발레는 그 어떤 자막도 필요가 없죠. 그냥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즉흥적으로 보이는 감정, 보이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끼면서 특별한 해석 없이 그거를 즐기시면 되거든요.” (41쪽, 문훈숙)



  사진이나 그림을 놓고도 ‘말이 없이 즐길 수 있다’고 해요. 나라마다 쓰는 말이 달라도 사진 한 장이나 그림 한 점은 ‘말로는 나타낼 길이 없는 너른 이야기’를 담아낸다고도 합니다. 발레는 어떤 춤사위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 줄 만한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바라보는 아름다움에서 우리 삶을 즐겁게 짓는 이야기를 어떻게 찾을 만한가 하고도 헤아려 봅니다.


  가만히 보니 잡지 《QUESTION》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물을’ 뿐 ‘정답’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다른 꿈을 키우면서 살아가는 자리를 살피면서 조곤조곤 묻습니다. 어느 한길을 걸어온 사람들은 이분들이 여태 키운 꿈과 사랑이 무엇인가를 다시 조곤조곤 들려주어요. 이것이 맞거나 저것이 틀리다는 이야기가 아닌, 이렇게 살며 이러한 살림을 배우고 저렇게 넘어지며 저러한 사랑을 익혔노라는 이야기가 이 잡지에 흐릅니다.



“나이 드신 분들도 있지만 젊은 예술가들도 순응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인재라는 건 아니지만, 인재가 없어요. 요즘은 공무원들도 젊은 청년들, 시민단체들, 예술가들과 같이 기획하고 축제를 만들고 싶어 해요. 기존에 행사들을 더 업그레이드 시키려고 하고, 그러나 쉽지는 않지요. 그걸 깨야죠. 그걸 제가 깨 나가야죠.” (64쪽, 강혁)



  ‘더미 산수화’를 그린다는 강혁 님은 ‘더미더미’ 쌓는 그림에 우리 이야기와 이녁 이야기를 싣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늘 살아내지만 미처 느끼지 못하는 대목을 그린대요. 그림지기 스스로 살아가면서 더 깊이 되새기고픈 대목을 함께 그리고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기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스스로 아프거나 기쁜 이야기를 그립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아직 이루지 못했으나 앞으로 이루려고 하는 꿈을 그립니다.


  붓을 잘 놀리기에 그림지기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붓놀림이 어수룩하거나 느리더라도 스스로 담아내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적에 그림을 그리지 싶어요. 예술이나 문화를 하려는 그림이 아니라, 꿈으로 나아가는 삶을 지으려는 발판인 그림 그리기라고 생각해요.



“병풍은 말 그대로 바람 막는 물건 아닙니까! 바람막이면서 거기에 좋은 시가 있고 산수가 있고 꽃이 있고, 그 앞에 보루 방석 딱 펴놓고서 세배도 받고 그러는 거지요. 그런데 지금은 제사 지낼 때 쓰는 걸로 착각들을 해요.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목기 장사하는 분들이 목기 팔면서 병풍을 추가로 팔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 어떤 식으로 제작했냐면, 그림을 전부 인쇄를 해서 그냥 한 장 딱 붙이면 끝이야. 그렇게 해서 그걸 10만 원, 20만 원에 파니까 사람들이 사는 거지.” (105쪽, 송산)



  표구를 하는 일을 오래도록 해 온 ‘송산방’ 윤종건 님은 병풍하고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날 흔하게 퍼진 병풍은 처음 병풍을 마련해서 세울 적하고 너무 달라졌다고 합니다. 지난날에는 병풍 하나를 아무렇게나 세우지 않았대요. 그저 빨리 많이 찍어대는 병풍이란 없이, 언제나 이 하나에 모든 숨결을 담아서 빚으려고 했답니다.


  가만히 따지면 병풍만 하나하나 알뜰히 빚던 지난 살림이지는 않아요. 지난날에는 옷 한 벌도 이 옷을 입을 사람을 헤아려서 지었어요. 공장에서 기계로 뚝딱 찍어내는 똑같은 옷이 아니었지요. 뜨개질을 하는 뜨개옷도 도안에 따라 똑같이 뜨는 옷이 아니에요. 도안을 보며 뜨개를 하되, 뜨개옷을 입을 사람 몸크기를 살펴서 코를 살짝 보태거나 빼면서 알맞게 맞추어요.


  날마다 먹는 밥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배만 채우려고 밥을 지어서 먹지 않아요. 아이한테 밥을 지어서 먹이는 어버이는 오직 제 아이를 바라보면서 밥을 지어요. 수저를 쥐어 기쁘게 밥그릇을 비울 아이가 웃는 얼굴을 마음으로 그리면서 밥을 짓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오늘날 ‘하나를 바라보는 마음’을 잊거나 놓치면서 너무 빠르게 내달리지 싶어요. ‘한 사람을 마주하는 넋’을 잃거나 빼앗기면서 자꾸 첫마음하고 멀어지지 싶어요.



“지난 1월 3일, 국내 서적 도매상 업계 2위인 송인서적이 최종 부도처리 되었다 … 문체부는 잇따라 관련 출판업계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지만, 피해 당사자 입장에서 서류를 자세히 살펴보면 역시 생색내기용에 불과한 것을 깨닫고는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재고서적 회수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마저도 매우 절망적이다 … 묻고 싶었다. 우리 잡지를 전국 서점에 일일이 배포해 주었던 이 착한 회사는 왜 문을 닫게 됐을까? 아직 한 번도 반품받지 못했던 우리 잡지의 지난 호들은 어떤 물류창고에서 떨고 있는 것일까?” (8쪽)



  잡지 《QUESTION》 6호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QUESTION》  6호 첫머리를 보면 올 2017년 1월에 송인서적이 부도가 나면서 이 잡지사가 얼마나 힘든가 하는 대목이 몇 줄로 나옵니다. 이 몇 줄로는 궁금함을 풀 수 없어서 편집주간 민병모 님한테 ‘여쭈어’ 보았습니다. 《QUESTION》 편집주간 민병모 님은 ‘부도난 송인서적’에서 아직 ‘책 팔린 돈을 결재를 안 해’ 주었다고 합니다. 1호부터 5호까지 내는 동안 전국 책방에 이 잡지를 배본은 해 주었되, ‘몇 부가 팔렸고, 팔린 돈이 얼마인가’를 알 길이 없다고 해요. 더구나 그동안 낸 잡지도 송인서적 창고에 꽁꽁 묶인 채 돌려받지 못해서 갑갑한 노릇이라고 합니다.


  도매상 부도 때문에 큰일을 치른 출판사가 이 잡지사 한 곳뿐이 아니라 1000군데에 이른다니 참으로 아득합니다. 책이 잘 팔리기만 하면 도매상이나 서점 부도란 없을까요? 책이 잘 팔리기만 하면 도매상이나 서점은 결재를 잘 해 줄까요? 한국에서는 그저 많이 잘 팔기만 해야 살아남을 값어치가 있을까요?


  삶을 묻고, 살림을 물으며, 사랑을 묻는 책 하나가 한국에 오롯이 서기란 어려운 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삶을 삶답게 가꾸어 온 사람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묻고, 살림을 살림답게 일구려 땀을 흘린 사람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물으며, 사랑을 그야말로 사랑스럽게 지으려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은 살뜰한 이야기를 알뜰히 엮으려고 하는 잡지 한 가지가 한국에 씩씩히 서기란 힘든 일인가 모르겠습니다.



“이 잡지의 이름은 ‘QUESTION’이다. 우리는 매달 10개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평소에 잊고 있는 질문, 빠트린 질문, 우리가 생각하기엔 중요한 질문들이다. 우리는 정통파 투수를 자처하며, 직구 위주로, 정직하게 던져 볼 생각이다. 우리의 질문에 대한 대답 중엔 정답도 오답도 없을지 모른다.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도 있을 테니까.” (1호 머리말/편집주간 민병모)



  묻고 또 물으니 스스로 실마리를 찾으리라 봅니다. 묻고 다시 묻기에 우리는 저마다 수수께끼를 풀 만하리라 봅니다. 묻고 거듭 묻는 사이 사람들은 누구나 제 길을 제 손으로 지을 적에 가장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줄 깨달으리라 봅니다.


  잡지쟁이도 독자도 한마음이 되겠지요. 물으면서 배워요. 물으면서 나아가요. 묻고 또 묻는 사이에 어느덧 의젓하고 다부지게 노래할 수 있어요.


  잡지 《QUESTION》이 꾸준히 묻고 되물으면서 우리 삶자리에 촛불 하나로, 등불 하나로, 별빛 하나로, 햇볕 한 줌으로 깃들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7.2.8.물.ㅅㄴㄹ



[‘퀘스천’을 정기구독 하려면] 

전화 : 02-393-1295

누리편지 : paranink@hanmail.net

값 : 한 해에 10만 원

계좌 : 국민은행 011201-04-178342 (민병모)

누리집 : www.question.or.kr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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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은 : 시간 - 프루스트의 서재, 그 일년의 기록을 통해 되찾은 시간
박성민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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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75



그냥 책이 좋아 금호동에 마을책방을 열다

― 되찾은: 시간

 박성민 글

 책읽는고양이 펴냄, 2016.11.20. 13800원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 자그마한 책방이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2015년 1월에 문을 열었고, 오늘도 그 자리에서 즐겁게 하루를 연다고 합니다. 이 작은 책방은 〈프루스트의 서재〉이며, 책방지기는 책방읽기를 되도록 날마다 쓰려고 했대요. 비록 책방일기를 날마다 쓰지 못했으나 2015년 한 해 동안 마을에서 조그맣게 연 책방을 돌본 살림을 《되찾은: 시간》(책읽는고양이,2016)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이 가게를 지나갔으면 좋겠다. 아니,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책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14쪽)


책을 사고파는 것을 떠나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은 나와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의 안부를 묻는 것 같다. (32쪽)



  책방지기 박성민 님은 “되찾은: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시간을 되찾았다고 하는데, “되찾은:”처럼 말소리를 길게 늘입니다.


  무엇을 되찾았을까요. 그동안 무엇을 잃고 지냈기에 책방지기로 한 해를 보내면서 시간을 되찾았다고 말할까요. 이제 2015년은 다 지났고 2016년도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는데, 두 해 동안 책방을 돌본 나날은 책방지기 박성민 님한테 ‘어떤 삶을 되찾도록 도와준 날’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는 온라인이 값싸고 편해 보일지는 몰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 있는 것이다. (68쪽)


카드 서명을 해 달라고 했을 때 아저씨는 어쩔 줄 몰라했다. 자세히 보니 오른쪽 손가락을 두 개 잃었다. 대신 내가 손가락으로 원을 두 번 그려 서명을 했는데 아저씬 가장 아름다운 서명을 봤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아닌 나의 낙서가 아저씨에겐 가장 아름다운 서명이 되었다. (139쪽)



  책방지기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책방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누구나 책을 좋아해 주기를 바랍니다. 누군가 틀림없이 ‘인터넷’ 나들이가 아닌 ‘두 다리’ 나들이로 책을 만나고 싶어 하리라 여깁니다. 그저 책을 좋아해 주면서, 이 마음 그대로 삶을 사랑하면서 책 한 권에서 기쁨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라요.


  그러고 보면 ‘인터넷 아닌 두 다리 나들이’로 책방을 찾아올 낯선 책손을 기다리려는 마음으로 서울 금호동 한켠에 자그맣게 책방을 열 수 있었을 테지요. 책방지기 스스로 조용히 책을 좋아하고, 금호동에 사는 마을 이웃님이 책을 좋아해 주며, 다른 마을이나 고장에 사는 분들이 나긋나긋 서울 금호동으로 책방마실을 오면서 책이 참 좋네 하는 마음이 되어 주기를 바라지 싶습니다.



동네에서 책방을, 인문학 서점을, 중고책을 다루는 것은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좋기 때문이다. 그냥 좋다. 나에게 맞다. (180쪽)


시에서 도서관의 확충과 재정을 지원한다면, 도서관은 지역서점을 통해 책을 구비할 것이고, 지역 서점은 안정적으로 다양한 출판사의 책들을 소개하고 판매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서점을 살리는 길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책이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을 이용하면 되는 것이다. (236∼237쪽)



  《되찾은: 시간》이라는 책방읽기를 쓴 책방지기 박성민 님은 수수하고 투박하게 ‘좋다’ 한 마디를 들려줍니다. 책방을 연 까닭은 “책방이 좋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다른 까닭이 없다고 합니다. 대단하거나 으리으리하거나 멋들어진 까닭이 아니라, “그냥 (책이) 좋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책방을 열었다고 해요.


  이렇게 스스로 좋은 마음이 되어 마을책방(지역서점)을 꾸리다 보니, 마을책방을 살리는 길도 저절로 느낀다고 합니다. 우리 스스로 ‘내 삶터나 일터하고 가장 가까운 곳’으로 책방마실을 다니면 마을책방은 저절로 살아날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대단한 정책이나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곁에 사랑스레 깃든 책터를 바라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찾을 수 있다면 참으로 시나브로 마을책방이 살아나리라 생각해요.



잊지 않고 찾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기쁘다. 먼 걸음으로 찬바람을 헤치고, 낯선 동네의 풍경을 눈길로 보듬고 와 줘서 고맙다. 따뜻한 차 한 잔에 묵은 이약기를 풀어낼 때 나의 안부를 너에게 묻고, 너의 안녕을 나에게 답해 주어서 좋다. 내가 바라는 것, 이 순간에 다 있다. (245쪽)



  책방을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 손님이 있습니다. 디지털이나 인터넷이 춤추는 오늘날에도 잊지 않고 종이책을 읽어 주는 이웃이 있습니다. 아무리 아파트가 크게 올라서더라도 조그맣게 자리를 가꾸면서 문을 여는 마을책방이 있습니다.


  더 많은 책을 읽어야 더 똑똑해지지 않겠지요? 더 커다란 책방이 들어서야 마을이 더 살아나지 않겠지요? 책 한 권으로도 마음이 넉넉할 수 있어요. 작은 마을책방 한 곳으로도 마을살림이 곱게 피어날 수 있어요. 《되찾은: 시간》이라는 책방일기는 아주 넌지시 살그마니 슬쩍 조용히 얌전히 가만가만 빙그레 책노래를 부르는구나 싶습니다. 고흥에서 서울로 마실을 가는 길에 넌지시 살그머니 슬쩍 조용히 얌전히 가만가만 빙그레 시골노래를 부르며 책방마실을 해야겠습니다. 2016.11.30.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을 말하는 책/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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