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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쳔 Question 2017.1.2 - Vol.06
인터뷰코리아 편집부 / 인터뷰코리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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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92



아름다운 길을 묻는 새로운 잡지

― 월간 《QUESTION》(퀘스천)

 6호. 2017년 1·2월 합본호

 1만 원



  묻는 잡지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선 길을 묻고, 어제 우리가 걸어온 길을 물으며, 앞으로 우리가 걸어갈 길을 묻는 잡지입니다. 이 잡지는 지난 2016년 여름에 7·8월 합본호를 내며 처음으로 선보였고, 다달이 차근차근 여러 사람들 목소리를 담아내어 묻습니다. “왜?”냐고 묻고, “어떻게?” 하고 다시 물어요.


  1호에는 윤호섭, 하랄드 마이어, 페터 슈나이더, 이호철, 박희석, 조벽, 김연순, 김윤식, 유두현, 김시종, 김석범, 김종길 같은 사람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냈습니다. 삶을 놓고, 숲을 놓고, 문학을 놓고, 예술을 놓고, 시를 놓고, 제주와 4·3을 놓고 이야기가 흐릅니다.


  2호에는 성귀수, 백원근, 채윤일, 차장섭, 이근이, 고영재, 박이소 같은 사람들이 조곤조곤 목소리를 냅니다. 꿈을 놓고, 책을 놓고, 연극을 놓고, 농사를 놓고, 길을 놓고, 시골을 놓고 이야기가 흘러요.


  3호와 4호에서도 이야기는 고이 흐릅니다. 숨을 거두고 저승으로 간 사람이 남긴 발자국을 놓고, 사람답게 살아갈 터를 놓고, 이 나라를 놓고, 종이와 나무를 놓고, 문명과 문화를 놓고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목소리를 한 가지씩 털어놓습니다.



“일본어는 띄어쓰기가 없잖아요. 글자를 좍 메워 놓았는데 참 신기해요. 그게 답답하게 느껴지질 않는다는 겁니다. 그 일본어 조판 장비를 제가 공부를 좀 했습니다. 조판기를 만들려면 조판 코드라고 하는 걸 집어넣어서 짜야 하니까요. 옛날에는 조판 코드를 다 입력해서 붙이고 떨어뜨리고 했잖아요. 아, 그 섬세함이 정말 무섭더라고요. 너무너무 뛰어나요. 게다가 우리 한글은 전혀 다르니까요.” (22쪽, 김태정)



  이제 막 태어난 잡지 《QUESTION》(퀘스천)에 담기는 목소리는 우리 사회에서 한복판을 가로지를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바깥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목소리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 틀을 이룬 사람들이 내고, 어느 목소리는 그동안 우리 사회 바깥에서 조용히 삶을 지은 사람들이 냅니다.


  《QUESTION》 6호(2017년 1·2월 합본호)는 ‘태시스템 대표’ 김태정 님 목소리로 첫머리를 엽니다. ‘태시스템’은 글꼴을 빚어서 나누는 일을 하는 곳이라고 해요. 글을 담는 글씨가 우리 눈에 한결 잘 들어오도록 북돋우는 일이 ‘글꼴 빚기’라고 할까요.


  말은 생각을 담습니다. 글은 말을 담아요. 글꼴이나 글씨는 글에 깃든 숨결을 살려 줍니다. 다 다른 글꼴이나 글씨는 다 다른 사람들이 짓는 생각을 다 다르게 보여주는구나 싶어요.



“얼마 전에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모 신문에다. 거기 문화센터가 있으니까요. 한번 같이 해 볼까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 늘 하는 얘기지만 이상하게 신문은 좋은데 사람들은 거기가 별로야. 모 신문은 신문은 별론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좋은 거야. 하하하. 아주 인간적이고 대화도 잘 통하고 …… 여튼 잘 얘기를 하다가 중단이 됐어요. 그때는 정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참 좋아하는 신문인데 왜 이런 사람들밖에 안 뽑나 …… 아니면 좋은 사람들인데 신문이 이렇게 만들었나 이런 생각이 들게 하더라고요.” (35쪽, 김태정)



  오랜 나날 한글 글꼴을 빚은 분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글꼴을 빚은 분은 사람을, 책을, 말을, 사회를, 문화를, 정치를, 신문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글꼴지기가 느끼는 ‘신문은 별론데 사람은 좋다’는 모습하고 ‘신문은 좋은데 사람은 별로야’라는 모습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신문도 좋고 사람도 좋은 길로 어떻게 하면 나아갈 만할까요?


  ‘유니버설 발레단’ 단장 문훈숙 님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들어 봅니다. 발레를 오래 하면서 프랑스 무대에도 올라 보았다는 문훈숙 님은 발레는 누구나 쉽게 즐길 만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대부분 발레에 대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대사가 있어요. 발레리나가 대사를 하지는 않지요. 그러나 손 동작을 보시면 됩니다. 손 동작으로 대사를 하거든요. 그걸 ‘발레 팬터마임’이라고 해요.” (39쪽, 문훈숙)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보실 때는 자막이 필요하잖아요. 예를 들어 이탈리아어나 영어로 뮤지컬이 나오면 번역을 해야 하는데, 발레는 그 어떤 자막도 필요가 없죠. 그냥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즉흥적으로 보이는 감정, 보이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끼면서 특별한 해석 없이 그거를 즐기시면 되거든요.” (41쪽, 문훈숙)



  사진이나 그림을 놓고도 ‘말이 없이 즐길 수 있다’고 해요. 나라마다 쓰는 말이 달라도 사진 한 장이나 그림 한 점은 ‘말로는 나타낼 길이 없는 너른 이야기’를 담아낸다고도 합니다. 발레는 어떤 춤사위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 줄 만한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바라보는 아름다움에서 우리 삶을 즐겁게 짓는 이야기를 어떻게 찾을 만한가 하고도 헤아려 봅니다.


  가만히 보니 잡지 《QUESTION》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물을’ 뿐 ‘정답’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다른 꿈을 키우면서 살아가는 자리를 살피면서 조곤조곤 묻습니다. 어느 한길을 걸어온 사람들은 이분들이 여태 키운 꿈과 사랑이 무엇인가를 다시 조곤조곤 들려주어요. 이것이 맞거나 저것이 틀리다는 이야기가 아닌, 이렇게 살며 이러한 살림을 배우고 저렇게 넘어지며 저러한 사랑을 익혔노라는 이야기가 이 잡지에 흐릅니다.



“나이 드신 분들도 있지만 젊은 예술가들도 순응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인재라는 건 아니지만, 인재가 없어요. 요즘은 공무원들도 젊은 청년들, 시민단체들, 예술가들과 같이 기획하고 축제를 만들고 싶어 해요. 기존에 행사들을 더 업그레이드 시키려고 하고, 그러나 쉽지는 않지요. 그걸 깨야죠. 그걸 제가 깨 나가야죠.” (64쪽, 강혁)



  ‘더미 산수화’를 그린다는 강혁 님은 ‘더미더미’ 쌓는 그림에 우리 이야기와 이녁 이야기를 싣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늘 살아내지만 미처 느끼지 못하는 대목을 그린대요. 그림지기 스스로 살아가면서 더 깊이 되새기고픈 대목을 함께 그리고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기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스스로 아프거나 기쁜 이야기를 그립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아직 이루지 못했으나 앞으로 이루려고 하는 꿈을 그립니다.


  붓을 잘 놀리기에 그림지기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붓놀림이 어수룩하거나 느리더라도 스스로 담아내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적에 그림을 그리지 싶어요. 예술이나 문화를 하려는 그림이 아니라, 꿈으로 나아가는 삶을 지으려는 발판인 그림 그리기라고 생각해요.



“병풍은 말 그대로 바람 막는 물건 아닙니까! 바람막이면서 거기에 좋은 시가 있고 산수가 있고 꽃이 있고, 그 앞에 보루 방석 딱 펴놓고서 세배도 받고 그러는 거지요. 그런데 지금은 제사 지낼 때 쓰는 걸로 착각들을 해요.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목기 장사하는 분들이 목기 팔면서 병풍을 추가로 팔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 어떤 식으로 제작했냐면, 그림을 전부 인쇄를 해서 그냥 한 장 딱 붙이면 끝이야. 그렇게 해서 그걸 10만 원, 20만 원에 파니까 사람들이 사는 거지.” (105쪽, 송산)



  표구를 하는 일을 오래도록 해 온 ‘송산방’ 윤종건 님은 병풍하고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날 흔하게 퍼진 병풍은 처음 병풍을 마련해서 세울 적하고 너무 달라졌다고 합니다. 지난날에는 병풍 하나를 아무렇게나 세우지 않았대요. 그저 빨리 많이 찍어대는 병풍이란 없이, 언제나 이 하나에 모든 숨결을 담아서 빚으려고 했답니다.


  가만히 따지면 병풍만 하나하나 알뜰히 빚던 지난 살림이지는 않아요. 지난날에는 옷 한 벌도 이 옷을 입을 사람을 헤아려서 지었어요. 공장에서 기계로 뚝딱 찍어내는 똑같은 옷이 아니었지요. 뜨개질을 하는 뜨개옷도 도안에 따라 똑같이 뜨는 옷이 아니에요. 도안을 보며 뜨개를 하되, 뜨개옷을 입을 사람 몸크기를 살펴서 코를 살짝 보태거나 빼면서 알맞게 맞추어요.


  날마다 먹는 밥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배만 채우려고 밥을 지어서 먹지 않아요. 아이한테 밥을 지어서 먹이는 어버이는 오직 제 아이를 바라보면서 밥을 지어요. 수저를 쥐어 기쁘게 밥그릇을 비울 아이가 웃는 얼굴을 마음으로 그리면서 밥을 짓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오늘날 ‘하나를 바라보는 마음’을 잊거나 놓치면서 너무 빠르게 내달리지 싶어요. ‘한 사람을 마주하는 넋’을 잃거나 빼앗기면서 자꾸 첫마음하고 멀어지지 싶어요.



“지난 1월 3일, 국내 서적 도매상 업계 2위인 송인서적이 최종 부도처리 되었다 … 문체부는 잇따라 관련 출판업계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지만, 피해 당사자 입장에서 서류를 자세히 살펴보면 역시 생색내기용에 불과한 것을 깨닫고는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재고서적 회수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마저도 매우 절망적이다 … 묻고 싶었다. 우리 잡지를 전국 서점에 일일이 배포해 주었던 이 착한 회사는 왜 문을 닫게 됐을까? 아직 한 번도 반품받지 못했던 우리 잡지의 지난 호들은 어떤 물류창고에서 떨고 있는 것일까?” (8쪽)



  잡지 《QUESTION》 6호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QUESTION》  6호 첫머리를 보면 올 2017년 1월에 송인서적이 부도가 나면서 이 잡지사가 얼마나 힘든가 하는 대목이 몇 줄로 나옵니다. 이 몇 줄로는 궁금함을 풀 수 없어서 편집주간 민병모 님한테 ‘여쭈어’ 보았습니다. 《QUESTION》 편집주간 민병모 님은 ‘부도난 송인서적’에서 아직 ‘책 팔린 돈을 결재를 안 해’ 주었다고 합니다. 1호부터 5호까지 내는 동안 전국 책방에 이 잡지를 배본은 해 주었되, ‘몇 부가 팔렸고, 팔린 돈이 얼마인가’를 알 길이 없다고 해요. 더구나 그동안 낸 잡지도 송인서적 창고에 꽁꽁 묶인 채 돌려받지 못해서 갑갑한 노릇이라고 합니다.


  도매상 부도 때문에 큰일을 치른 출판사가 이 잡지사 한 곳뿐이 아니라 1000군데에 이른다니 참으로 아득합니다. 책이 잘 팔리기만 하면 도매상이나 서점 부도란 없을까요? 책이 잘 팔리기만 하면 도매상이나 서점은 결재를 잘 해 줄까요? 한국에서는 그저 많이 잘 팔기만 해야 살아남을 값어치가 있을까요?


  삶을 묻고, 살림을 물으며, 사랑을 묻는 책 하나가 한국에 오롯이 서기란 어려운 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삶을 삶답게 가꾸어 온 사람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묻고, 살림을 살림답게 일구려 땀을 흘린 사람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물으며, 사랑을 그야말로 사랑스럽게 지으려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은 살뜰한 이야기를 알뜰히 엮으려고 하는 잡지 한 가지가 한국에 씩씩히 서기란 힘든 일인가 모르겠습니다.



“이 잡지의 이름은 ‘QUESTION’이다. 우리는 매달 10개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평소에 잊고 있는 질문, 빠트린 질문, 우리가 생각하기엔 중요한 질문들이다. 우리는 정통파 투수를 자처하며, 직구 위주로, 정직하게 던져 볼 생각이다. 우리의 질문에 대한 대답 중엔 정답도 오답도 없을지 모른다.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도 있을 테니까.” (1호 머리말/편집주간 민병모)



  묻고 또 물으니 스스로 실마리를 찾으리라 봅니다. 묻고 다시 묻기에 우리는 저마다 수수께끼를 풀 만하리라 봅니다. 묻고 거듭 묻는 사이 사람들은 누구나 제 길을 제 손으로 지을 적에 가장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줄 깨달으리라 봅니다.


  잡지쟁이도 독자도 한마음이 되겠지요. 물으면서 배워요. 물으면서 나아가요. 묻고 또 묻는 사이에 어느덧 의젓하고 다부지게 노래할 수 있어요.


  잡지 《QUESTION》이 꾸준히 묻고 되물으면서 우리 삶자리에 촛불 하나로, 등불 하나로, 별빛 하나로, 햇볕 한 줌으로 깃들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7.2.8.물.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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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편지 : paranin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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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 : 국민은행 011201-04-178342 (민병모)

누리집 : www.question.or.kr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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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은 : 시간 - 프루스트의 서재, 그 일년의 기록을 통해 되찾은 시간
박성민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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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75



그냥 책이 좋아 금호동에 마을책방을 열다

― 되찾은: 시간

 박성민 글

 책읽는고양이 펴냄, 2016.11.20. 13800원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 자그마한 책방이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2015년 1월에 문을 열었고, 오늘도 그 자리에서 즐겁게 하루를 연다고 합니다. 이 작은 책방은 〈프루스트의 서재〉이며, 책방지기는 책방읽기를 되도록 날마다 쓰려고 했대요. 비록 책방일기를 날마다 쓰지 못했으나 2015년 한 해 동안 마을에서 조그맣게 연 책방을 돌본 살림을 《되찾은: 시간》(책읽는고양이,2016)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이 가게를 지나갔으면 좋겠다. 아니,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책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14쪽)


책을 사고파는 것을 떠나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은 나와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의 안부를 묻는 것 같다. (32쪽)



  책방지기 박성민 님은 “되찾은: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시간을 되찾았다고 하는데, “되찾은:”처럼 말소리를 길게 늘입니다.


  무엇을 되찾았을까요. 그동안 무엇을 잃고 지냈기에 책방지기로 한 해를 보내면서 시간을 되찾았다고 말할까요. 이제 2015년은 다 지났고 2016년도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는데, 두 해 동안 책방을 돌본 나날은 책방지기 박성민 님한테 ‘어떤 삶을 되찾도록 도와준 날’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는 온라인이 값싸고 편해 보일지는 몰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 있는 것이다. (68쪽)


카드 서명을 해 달라고 했을 때 아저씨는 어쩔 줄 몰라했다. 자세히 보니 오른쪽 손가락을 두 개 잃었다. 대신 내가 손가락으로 원을 두 번 그려 서명을 했는데 아저씬 가장 아름다운 서명을 봤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아닌 나의 낙서가 아저씨에겐 가장 아름다운 서명이 되었다. (139쪽)



  책방지기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책방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누구나 책을 좋아해 주기를 바랍니다. 누군가 틀림없이 ‘인터넷’ 나들이가 아닌 ‘두 다리’ 나들이로 책을 만나고 싶어 하리라 여깁니다. 그저 책을 좋아해 주면서, 이 마음 그대로 삶을 사랑하면서 책 한 권에서 기쁨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라요.


  그러고 보면 ‘인터넷 아닌 두 다리 나들이’로 책방을 찾아올 낯선 책손을 기다리려는 마음으로 서울 금호동 한켠에 자그맣게 책방을 열 수 있었을 테지요. 책방지기 스스로 조용히 책을 좋아하고, 금호동에 사는 마을 이웃님이 책을 좋아해 주며, 다른 마을이나 고장에 사는 분들이 나긋나긋 서울 금호동으로 책방마실을 오면서 책이 참 좋네 하는 마음이 되어 주기를 바라지 싶습니다.



동네에서 책방을, 인문학 서점을, 중고책을 다루는 것은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좋기 때문이다. 그냥 좋다. 나에게 맞다. (180쪽)


시에서 도서관의 확충과 재정을 지원한다면, 도서관은 지역서점을 통해 책을 구비할 것이고, 지역 서점은 안정적으로 다양한 출판사의 책들을 소개하고 판매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서점을 살리는 길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책이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을 이용하면 되는 것이다. (236∼237쪽)



  《되찾은: 시간》이라는 책방읽기를 쓴 책방지기 박성민 님은 수수하고 투박하게 ‘좋다’ 한 마디를 들려줍니다. 책방을 연 까닭은 “책방이 좋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다른 까닭이 없다고 합니다. 대단하거나 으리으리하거나 멋들어진 까닭이 아니라, “그냥 (책이) 좋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책방을 열었다고 해요.


  이렇게 스스로 좋은 마음이 되어 마을책방(지역서점)을 꾸리다 보니, 마을책방을 살리는 길도 저절로 느낀다고 합니다. 우리 스스로 ‘내 삶터나 일터하고 가장 가까운 곳’으로 책방마실을 다니면 마을책방은 저절로 살아날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대단한 정책이나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곁에 사랑스레 깃든 책터를 바라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찾을 수 있다면 참으로 시나브로 마을책방이 살아나리라 생각해요.



잊지 않고 찾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기쁘다. 먼 걸음으로 찬바람을 헤치고, 낯선 동네의 풍경을 눈길로 보듬고 와 줘서 고맙다. 따뜻한 차 한 잔에 묵은 이약기를 풀어낼 때 나의 안부를 너에게 묻고, 너의 안녕을 나에게 답해 주어서 좋다. 내가 바라는 것, 이 순간에 다 있다. (245쪽)



  책방을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 손님이 있습니다. 디지털이나 인터넷이 춤추는 오늘날에도 잊지 않고 종이책을 읽어 주는 이웃이 있습니다. 아무리 아파트가 크게 올라서더라도 조그맣게 자리를 가꾸면서 문을 여는 마을책방이 있습니다.


  더 많은 책을 읽어야 더 똑똑해지지 않겠지요? 더 커다란 책방이 들어서야 마을이 더 살아나지 않겠지요? 책 한 권으로도 마음이 넉넉할 수 있어요. 작은 마을책방 한 곳으로도 마을살림이 곱게 피어날 수 있어요. 《되찾은: 시간》이라는 책방일기는 아주 넌지시 살그마니 슬쩍 조용히 얌전히 가만가만 빙그레 책노래를 부르는구나 싶습니다. 고흥에서 서울로 마실을 가는 길에 넌지시 살그머니 슬쩍 조용히 얌전히 가만가만 빙그레 시골노래를 부르며 책방마실을 해야겠습니다. 2016.11.30.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을 말하는 책/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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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맹호 자서전 책
박맹호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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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67



‘서울대·술·족벌’ 빼고는 이야기가 없을까

― 책, 박맹호 자서전

 박맹호 글

 민음사 펴냄, 2012.12.7. 18000원



  민음사라는 출판사를 연 박맹호 님이 쓴 《책, 박맹호 자서전》(민음사,2012)을 읽었습니다. 출판사를 열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고, 곁님이 얼마나 알뜰히 살림을 도와서 출판사를 버틸 수 있었으며, 첫 책을 내고 새로운 책을 꾸준히 내는 동안 둘레에서 얼마나 따스히 돕는 손길이 있었는가를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비룡소’가 성장해 감에 따라 이제 비룡소라는 보은의 작은 마을은 전국 단위 혹은 글로벌 차원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셈이다. (7쪽)


후일 출판사 이름을 ‘백성의 소리’라는 뜻의 ‘민음사’로 지은 것도 《수호지》의 영향이 컸다. (21쪽)



  《책》을 읽으면서 ‘비룡소’라고 하는 이름을 어린이책 출판사 이름으로 붙인 까닭도 헤아려 봅니다. 작은 시골마을에 있는 못이었다고 하니 ‘비룡못’이었을까요. 《책》이라고 하는 책은 ‘책’ 만드는 일을 하던 한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을 보여준다고 할 만할 텐데, 다른 분은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그리 재미나게 읽지는 못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책을 짓는 보람’이나 ‘책에 깃든 이야기’보다는 ‘책을 얼마나 많이 팔았는가’ 같은 이야기가 이 《책》을 거의 다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요가》로 얼마간 모아 놓은 돈까지 모두 날려 버렸다. 다시 신동문의 소개로 일본에서는 큰 인기를 끌었다는 5권짜리 《서유기》를 무단으로 번역해 출간했지만 그것마저 나가지 않았다. (62쪽)


좋은 책은 언젠가 독자들이 알아줄 것이고 반드시 팔리게 마련이라는 소극적 사고방식으로는 격류를 헤쳐 나갈 수 없었다. 좋은 책을 출판하는 것은 훌륭한 출판사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그 책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필사적인 노력을 통해 충분조건을 채우지 않으면 출판사는 좋은 책을 출판하고도 오히려 쇠퇴하기 쉽다. (119쪽)



  박맹호 님은 ‘좋은 책 내기’보다는 ‘책을 널리 팔기’에 더 무게를 둡니다. 아무래도 이런 생각으로 그동안 ‘책 짓기’ 아닌 ‘책 만들기’를 한 터라, ‘엄청난 선인세’를 내놓는 다툼을 벌이기까지 하고 말았을 테지요. 바깥으로 알려지기는 ‘엄청난 선인세’ 몇 가지일 터이나, ‘엄청나지 않아도 대단한 선인세’를 치르고서 ‘선인세 값을 거두어들이려’고 광고를 얼마나 많이 해야 했을까요.



그때 민음사에 들어와서 나를 경영 면에서 돕고 있던 장남 근섭이 대표를 맡아서 두 해 동안 운영했는데, 전문가들의 평은 좋았으나 시장에서 독자를 설득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고급 아동 도서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209쪽)


근섭은 민음사의 현대화를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자회사인 황금가지를 맡아 몇 해 동안 계속해서 밀리언셀러를 쏟아내 민음사 출판 그룹의 재정을 탄탄하게 받쳐 주었다. (213쪽)


사이언스북스는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 대학원에서 미디어아트를 공부한 막내 상준이 맡아서 의욕적으로 일들을 벌여 나가고 있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민음사 총괄 사장으로 임명되어 민음사 사업도 함께 돌보고 있다. (221쪽)



  박맹호 님은 이녁 아이들한테 출판사를 ‘물려주었다’는 이야기를 《책》 곳곳에 적습니다. 그리고 박맹호 님은 ‘서울대 출신’이라는 대목을 너무 자주 되풀이해서 밝힙니다. 더욱이 ‘서울대 불문과’가 아닌 ‘서울대 문리대 불문과’라고 따로 ‘문리대’라는 이름을 더 넣어서 이녁 학력을 적어요.


  《책》이라고 하는 책은 ‘어떤 책을 만든 발자국’을 적바림했다고 할 만할까요. 이 책은 앞으로 사람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물려줄 만하다고 할 만할까요.


  책 한 권을 알뜰히 사랑하면서 독자와 만나는 이야기는 《책》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책 한 권을 가슴으로 사랑하면서 작가와 어울리는 이야기는 《책》에서 만나기 어렵습니다. 이름난 몇몇 작가나 정치인하고 어울리던 술자리 이야기는 《책》에서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를 둘러싼 인맥과 학맥 이야기는 《책》에서 퍽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민음사라는 출판사가 내놓은 책으로 목록을 꾸며도 낱권책 하나가 나올 만큼 되는데, 민음사라는 출판사가 걸어온 길에서 ‘책’을 말하는 일이란, ‘회장’이라는 이름과 ‘출판 재벌’이 되고팠던 마음에서는 좀처럼 쉽지 않았네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책을 둘러싼 이야기는 그야말로 아주 많고 넘칠 텐데요. 2016.8.29.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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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서재 - 정여울 감성 산문집, 개정판
정여울 지음, 이승원.정여울 사진 / 천년의상상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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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62



한 손은 텃밭 일구고, 다른 한 손은 마음밭 가꾸고

― 마음의 서재

 정여울 글

 이승원·정여울 사진

 천년의상상 펴냄, 2015.2.9. 15000원



  시골집에서 귀를 기울이면 새벽부터 밤까지 온갖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여름에는 몇 가지 도드라진 소리가 있으니, 새벽부터 해거름까지 들리는 헬리콥터 소리입니다. 시골에 뭔 헬리콥터 소리가 나느냐 하면, 나날이 시골마을 어르신들은 몸소 농약을 뿌리기 어렵다 보니, 농협 무인헬리콥터를 빌어서 농약을 뿌립니다. ‘항공방제’를 하는 소리가 새벽부터 들려요.


  농약철이 되어 곳곳에 농약바람이 불면서, 이 마을 저 마을 항공방제를 하는 무인헬리콥터가 수없이 뜨면, 그야말로 귀가 따갑고 눈이 따가울 만합니다. 그런데 항공방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항공방제를 하기 앞서 하늘을 신나게 가르던 제비가 자취를 감추고, 해오라기도 부쩍 줄며, 숱한 멧새도 더는 마을로 내려오지 않습니다. 잠자리하고 나비도 줄어들며, 귀뚜라미와 개구리 울음소리도 감쪽같이 사라지지요.



나는 잠시 새로운 책에 대한 조바심을 내려놓고 오직 내가 읽은 책들로만 이루어진 작고 아름다운 마음의 도서관을 가꾸기로 했다. (20쪽)


눈에 보이는 공간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관계의 빈 공간’이 필요하다. (67쪽)



  여름이 한창 무르익는 요즈음 새벽부터 해거름까지 온갖 소리를 듣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나 스스로 마을 언저리에서 퍼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그 소리에 사로잡힙니다. 나 스스로 아이들을 더 살가이 바라보면 아이들 말소리 웃음소리 노랫소리만 귀에 들립니다. 바깥소리가 안 들려요.


  부엌에서 도마질을 하면 내 귀에는 도마질 소리가 들립니다. 여름이라 아이를 무릎에 앉히기는 힘들지만, 대청마루에 나란히 앉아서 그림책을 넘기면 종이가 팔랑 넘어가는 소리만 들려요. 그리고 아무리 항공방제가 춤을 추더라도 우리 집 마당하고 뒤꼍을 찾아오는 온갖 멧새가 있어요. 모과알이 굵는 소리라든지, 석류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풋감이 떨어지며 지붕을 때리는 소리라든지, 물까치가 무화과를 쪼는 소리도 들을 수 있어요. 바야흐로 하얗게 터지려는 솔꽃(부추꽃) 소리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정여울 님이 쓴 《마음의 서재》(천년의상상,2015)를 읽으면서 문득 ‘마음으로 듣는 소리’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정말 우리는 사돈의 팔촌보다 더 머나먼 연예인들의 정보는 샅샅이 꿰고 있으면서 정작 주변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경험을 듣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 것 같다. (118쪽)


우리가 누군가에게 기적 같은 사랑을 베풀 수 있다면, 그건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신성한 힘’이 아닐까. (134쪽)



  책을 바탕으로 가벼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마음의 서재》는 정여울 님 스스로 ‘더 많은 책을 소개하는 정보’가 아니라 ‘마음으로 읽은 책을 홀가분하게 이야기로 엮자’는 생각으로 쓴 글이라고 합니다. 새로 쏟아지는 수많은 책을 가리거나 훑어서 들려주는 이야기도 나쁘지 않을 테지만, 누구보다 ‘책을 좋아하는 내(정여울) 마음’을 읽으면서, 이 마음결에 기쁨이 솟도록 북돋우던 책에 서린 숨결을 말해 보자는 뜻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서재》라고 하는 책은 우리한테 넌지시 말하는 셈입니다. ‘더 많은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를 굳이 찾아서 읽지 않아도 된다’고, ‘바빠서 한 주에 책 한 권 못 읽어도 된다’고, 그예 홀가분한 넋을 고요히 바라보면서 살림을 즐겁게 짓는 길을 걸으며 책 한 권을 곁에 두자고 하는 이야기인 셈이에요.



인어공주는 신분상승을 위해 목숨을 거는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아니라, 모두가 ‘이룰 수 없다’고 말하는 꿈, 누가 봐도 불가능한 꿈을 향해 묵묵히 전진하는 사람들의 영원한 친구다. (153쪽)


괴물과 마주친 자들은 그를 목격하자마자 냅다 도망치거나 다짜고짜 공격한다. 괴물의 겉모습을 볼 수 없었던 눈먼 노인만이 그의 대화 상대가 되어 준다. (204쪽)



  나는 바람소리를 들으려고 시골에서 삽니다. 자동차나 손전화나 텔레비전 소리를 들으려고 시골에서 살지 않습니다. 나는 깊은 숲에서 솟는 맑고 시원한 골짝물을 마시려고 시골에서 삽니다. 댐에 가둔 물을 시멘트관으로 수백 킬로미터를 이어서 흐르도록 하는 수돗물을 마시려고 시골에서 살지 않아요. 나는 손수 밭을 가꾸면서 풀·흙·꽃·나무를 보살피려는 마음으로 시골에서 삽니다. 유기농도 화학농도 아니라, 손수 짓는 살림을 꿈꾸며 시골집을 보듬으려 합니다.


  이리하여 내가 손에 쥐어 읽는 책은 바로 시골바람을 기쁨으로 북돋우는 길동무 같은 책입니다. 내가 나한테 사랑스러운 이웃님한테 건네거나 선물하고 싶은 책은 늘 숲바람이 시골에서 도시로 불어서 우리 모두 맑은 숨을 쉴 수 있도록 이끄는 파란하늘 같은 책이에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은 ‘TV에 나오는 맛집’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손님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영업시간에는 촬영을 금지할 정도로 고객중심주의를 고수한다. (252쪽)


제대로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인간의 영혼은 병들게 되어 있다는 것을. 너무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면 관계가 파탄 날 수 있고, 너무 간접적으로 에둘러 표현하면 솔직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어렵다. (277쪽)



  가만히 헤아립니다. ‘맛집’에서 가서 ‘맛밥’을 먹는 일은 나쁘지 않아요. 그러나 나로서는 우리 보금자리를 ‘사랑집’으로 일구면서 ‘사랑밥’을 먹는 살림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 맛나거나 좋은 밥보다는, 즐겁거나 기쁨이 샘솟는 웃음으로 누리는 밥을 지어서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어떤 책을 읽을 적에 마음을 곱게 살찌울 만할까요? 아마 모든 사람한테는 다 다른 책이 걸맞으면서 아름답겠지요? 다른 사람 앞에서 뽐내려는 서재가 아니라 ‘마음을 스스로 가꾸는 서재’일 적에 아름답습니다. 《마음의 서재》라는 책에서도 밝히듯이,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마음을 가꿀 수 있도록 생각을 일깨우는 책 한 권을 곁에 두면 됩니다. 한 손에는 책을 쥐고, 한 손에는 호미를 쥡니다. 한 손으로 텃밭을 일구고, 한 손으로 마음밭을 일굽니다. 2016.7.29.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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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 세상에서 제일 작은 서점 울랄라의 나날
우다 도모코 지음, 김민정 옮김 / 효형출판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60



책에 담은 마음을 사랑하는 작은 헌책방

―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우다 도모코 글

 김민정 옮김

 효형출판 펴냄, 2015.11.25. 13000원



  오키나와에 있다는 작은 헌책방 ‘울랄라’를 꾸리는 아가씨가 틈틈이 쓴 ‘헌책방 일기’를 엮은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효형출판,2015)라는 책이 있습니다. 글을 쓴 우다 도모코 님이 아니더라도 오키나와에는 헌책방이 있었고, ‘일본에서 가장 작은 헌책방’은 이녁이 아닌 이녁보다 앞서 그곳에서 헌책방을 연 분이 한동안 꾸리셨다고 해요.


  그런데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어서 꾸린 이야기’를 헌책방지기가 스스로 쓴 일은 아마 거의 없었지 싶습니다. 우다 도코모 님은 한 해 반 즈음 헌책방을 꾸리면서 겪거나 듣거나 마주한 이야기를 조그마한 책에 조촐하게 담아요.



오키나와의 특산물은 망고와 진스코뿐만이 아니다. 오키나와에 관한 책을 빼놓을 수 없다. (11쪽)


아시아와 일본 무역의 중계지였던 류큐 왕국. 그런 류큐 왕국을 닮은 서점을 만들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류큐 왕족이나 호족에게 야단을 맞으려나. 어쨌거나 즐거운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26쪽)



  ‘오키나와’라고 하는 이름은 ‘일본’에서 붙였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오키나와가 아닌 ‘류큐’라는 이름으로 살아왔어요. 일본은 그곳 사람들을 식민지처럼 다루었고,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서 진 뒤에 류큐라고 하는 오키나와를 미국한테 ‘미군 기지’이자 ‘미국 땅’으로 내주었어요. ‘오키나와’가 ‘일본 본토’로 다시 들어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오키나와를 ‘똑같은 일본’으로 여기지만, 오키나와는 ‘일본하고 말도 사람도 삶도 살림도 무척 다릅’니다. 일본이면서도 일본하고 멀고, 일본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터이나 일본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러니까 오키나와다운 이야기가 물씬 흐르는 오키나와예요.



“왜 헌책방을 열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일반 서점은 취급하는 책이 정해져 있어요. 오키나와 책은 일반적인 경로로는 유통되지 않거나 절판된 책이 많은데 일반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어서 아쉬웠어요.” (61쪽)


처음엔 누군가에게 야단을 맞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는데 금세 당당하게 읽게 되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시장의 거리에 앉아 책을 읽는 것도 일종의 독서 캠페인이 아닐까. 물론 그 효과는 미지수겠지만. (144쪽)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를 쓴 젊은 아가씨는 씩씩한 헌책방지기입니다. 이러면서 책을 사랑합니다. 즐겁게 읽고, 즐겁게 다루며, 즐겁게 팔아요. 즐겁게 새 헌책을 장만하고, 즐겁게 새 손님을 맞이하며, 즐겁게 새 이야기를 누립니다.


  헌책방이 조그맣게 깃든 저잣거리에서 이웃 아저씨나 아주머니하고 살가이 어울립니다. 헌책방을 지키면서 즐거이 책을 읽을 뿐 아니라, 노래 공연도 더러 꾀하고, 여러모로 아기자기한 일도 벌입니다. 저잣거리 한쪽에서 젊은 이야기꽃을 새삼스레 터뜨립니다.


  한국에서도 이처럼 젊은 아가씨가 씩씩하게 헌책방을 열 만할까요?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가 아니라, 보은이나 장흥이나 성주 같은 작은 시골에서 헌책방을 열 만할까요? 신안에 있는 작은 섬에서, 또는 제주나 울릉 같은 섬에서, 아니면 지리산이나 오대산이나 계룡산 같은 짙푸른 숲을 둘러싼 멧골에서 이쁘장하게 헌책방을 열면서 책손을 기다릴 수 있을까요?



모두 새 책처럼 깨끗했다. 책을 소중하게 다루는 사람이구나. 아는 사람한테서 책을 사는 게 가장 어렵다. 애써 가져온 성의에 답하면서 나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얼마가 적당한지 고민해야 한다. (163쪽)


기사에 손님이 나올 때가 있어 꼭 훑어본다는 얘기를 듣고 감탄했다. 미용실에는 다양한 손님이 찾아올 것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자 스태프가 미용실에서 구독하는 잡지 《BRUTUS》의 ‘책방이 좋다’ 특집을 들고 왔다. “오키나와 책방이 세 곳이나 소개되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상기된 얼굴이었다. (175쪽)



  고작 두 평짜리 헌책방이라고 하지만, 크기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두 평이 아닌 스무 평쯤 되어야 훌륭하지 않아요. 스무 평도 아닌 이백 평쯤 되어야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만한 곳이 되지 않습니다. 이백 평이든 스무 평이든 두 평이든, 이러한 헌책방을 가꾸는 일꾼이 스스로 즐거움과 웃음과 사랑으로 살림을 돌볼 적에 비로소 사람들 발길이 이어져요. 더 많은 책을 갖추지 않더라도 괜찮지요. 책방지기 스스로 알차게 가꾸고 매만지고 돌보고 아끼는 책방일 적에 책손은 꾸준히 그곳을 찾아갈 수 있어요.


  헌책방은 아니지만 독립책방이 꾸준히 늘어요. 마을마다 있던 작은 마을책방이 거의 다 사라졌지만, 예전과 다르면서 새로운 책쉼터(북카페)도 꾸준히 늘어요. 책만 팔아서 장사를 할 만한지는 아직 잘 모른다고 여길 만하지만, 책사랑 이 마음을 고이 이어갈 수 있으면 전국 어느 곳에서나 아름다우면서 살뜰한 책마을이나 책터가 생길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3년간 탄 자전거는 이미 세 번이나 펑크가 난 터라 그다지 소중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3개월 전에 큰 바구니로 바꾸고 나서 애착이 좀 생겼다. 자전거에 책을 많이 실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야 헌책방 주인용 자전거 같다고 혼자 들떠 있었다. 내 자전거는 누가 가져간 것일까? 애들 장난일까? 아니면 지나가던 사람이 화가 나서 어딘가에 버린 것일까? (185쪽)


손님은 정년까지 신문사에서 일했다고 한다. 25일에 월급을 타면 바로 책을 사러 갔다. 책장을 채워가는 즐거움에 가슴이 벅찼다고 한다. “책에는 사람의 마음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직접 저자를 만나러도 가는 거지요.” (190쪽)



  글쓴이는 한 해 반 즈음 헌책방지기로 일하면서 작은 책 하나를 써냈으니, 앞으로도 헌책방 일기를 꾸준히 쓰면서 새로운 책을 찬찬히 내놓을 만하리라 봅니다. ‘헌책방 10년’ 일기도, ‘헌책방 20년’ 일기도, 또 ‘헌책방 30년’ 일기나 ‘헌책방 40년’ 일기도 오키나와 한쪽 저잣거리 조그마한 헌책방에서 태어날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종이에 담은 이야기를 아끼고, 종이로 빚는 살림을 사랑하며, 종이로 나누는 꿈을 노래하는 크고작은 수많은 헌책방이 새롭게 빛을 볼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6.7.13.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사진은 효형출판에서 고맙게 보내 주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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