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 한 출판편집자의 회상
오쓰카 노부카즈 지음, 송태욱 옮김 / 한길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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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43

 


‘책도시’ 만든다는 헛발질
―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오쓰카 노부카즈 글
 송태욱 옮김
 한길사 펴냄, 2007.11.10.

 


  오쓰카 노부카즈 님이 쓴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한길사,2007)라는 책을 읽습니다. 책 앞자락은 오쓰카 노부카즈 님이 처음 출판사 편집부에 들어가서 겪거나 한 일을 조곤조곤 밝혀 적습니다. 책 하나 엮어 이 땅에 내놓는 즐거움과 기쁨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책 만들었다’ 하는 이야기만 줄줄이 나옵니다. 이녁이 만든 ‘책 목록’만 길게 나옵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이 책은 글쓴이 ‘회고록’입니다. 책이름은 ‘책으로 찾아가는 꿈나라’이지만, 어떤 꿈나라로 나아가려 했는가 하는 대목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어요. 이를테면, “출판이란 원래 수수하고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일이다. 편집자는 보이지 않게 시중드는 사람이다. 출판계는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 구멍가게에서 다시 출발해도 좋지 않을가 싶다(14쪽).” 같은 이야기나, “세상에는 일류 식당이 아니라도 심도 싶은 논의를 하는 곳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회의가 끝나고 나서 어떤 선배한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48쪽).” 같은 이야기라든지, “아니, 편집자는 인류 가운데 천재가 몇 명 있고, 어떤 천재가 몇 번째인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건 좀 이상하다. 그런 건 본질적인 게 아니잖아.’라는 것이 처음에 느낀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며칠간 계속해서 생각하는 중에 어쩌면 편집자란 끊임없이 그렇게 커다란 기준으로 사물을 판단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61쪽)” 같은 이야기는 곰곰이 생각할 만합니다. 수수하고 작은 일에서 책빛이 살아나고, 으리으리한 요리집 아니어도 아름다운 생각 피어나며, 책마을 일꾼이란 언제나 꾸준히 새로 배우는 사람입니다.


  책을 천 권이나 만 권쯤 내놓은 출판사이기에 좋거나 훌륭하거나 아름답지 않습니다. 책을 한 권이나 열 권쯤 겨우 내놓은 출판사이기에 안 좋거나 안 훌륭하거나 안 아름답지 않습니다.


  책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책을 마주하는 매무새를 살필 노릇입니다. 그러니까, 시골에서는 흙을 어떻게 다루거나 마주하는가를 살필 노릇이에요. 흙을 엉터리로 망가뜨리면서 농약과 화학비료 쏟아붓고는 ‘소출이 많다’고 해서 이런 분들을 추켜세울 수 없습니다. 거두는 곡식이나 열매는 많아도 땅이 죽어요. 다시 말하자면, 책을 많이 팔았다 하지만, 책마을과 책밭을 망가뜨리는 길을 걷는다면, 이런 책장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그저 이름 알려지고 돈 벌면 그만일까요? 흙을 망가뜨리면서 흙일이라 할 수 없듯, 책밭 어지럽히면서 책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 신참 편집부원이 학자와 작가, 그것도 두 대가의 논의에서 미묘한 주름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이래서야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 나는 담당 편집자로서 특별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직 그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역할에 충실했고, 그가 집필을 위해 필요로 하는 책(대부분 서양책)을 가능한 한 빨리 입수하려고 애썼을 뿐이다 ..  (37, 58쪽)


  얼마 앞서부터 이 나라 도시들이 ‘책도시’라는 이름을 내걸려 애씁니다. 여기도 책도시요 저기도 책도시입니다. 그런데, 이들 책도시 가운데 책방이 제대로 있는 데가 드뭅니다. 책도시라면, 사람들이 책을 즐겁고 넉넉히 만날 수 있도록 책방이 마을마다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서관은 책을 어디에서 사나요. 출판사마다 하나하나 찾아다니거나 전화를 해서 한 권씩 사나요. 학교에서는 책을 어떻게 갖추나요. 학교도서관지기가 출판사를 하나하나 알아보거나 전화로 주문해서 한 권씩 갖추나요.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있고, 책을 파는 책방이 있으며, 책을 건사하는 도서관이 있습니다. 절판된 책과 다 읽은 책과 반품을 하거나 폐기해야 하는 책을 내보낼 적에 이 책들 받아들일 헌책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책을 쓰는 사람이 있어요. 책도시라는 이름을 붙이려 한다면, 이 모두가 골고루 있어야 하고, 저마다 즐겁게 살림 꾸릴 수 있어야 하며, 서로 오순도순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책도시라 하면서 이 여러 이음고리를 알차게 얼싸안는 곳은 어디에 있을까요. 한국에서 책도시라 할 만한 곳이 한 군데라도 있을까요. 경기도 파주에는 출판사 건물 꽤 많지만, 막상 책방이 제대로 없습니다. 책을 쓰는 사람이 지낼 만한 터전이 없습니다. 파주 책도시에는 어떤 도서관이 있을까요. 출판사마다 다 다른 책을 내는데, 다 다른 빛깔로 나아가는 전문도서관이 한 군데라도 있는가요.


.. 첫 번째인 6월의 여행에서 나는 부피가 크지 않은 촘스키 문헌 몇 권만 가지고 도쿄를 뒤로 했고, 때로는 사마르칸트의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서, 또 어떤 때는 티엔샨 산맥 기슭에 있는 마을에서 촘스키를 읽는 신선한 체험을 했다 … “하지만 편집자야 뭐 결국 패재바 아닌가요?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니까요.” 나는 이 말을 듣고 놀랐다. 분명히 편집자였다가 소설가가 되거나 학자가 되는 예가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말한 대로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편집자의 일은 작가나 연구자의 일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  (192, 218쪽)


  구태여 책도시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책도시라는 이름을 붙이는 곳치고 ‘사람들이 책을 즐겁게 널리 읽거나 나누는 곳’은 없다고 느낍니다. 사람들이 워낙 책하고 등지며 살아가니 어쩔 수 없이 책도시라는 이름을 내거는구나 싶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길은 하나입니다. 책도시 이름표 붙이는 데에 헛돈 쓰지 말고, 시장과 공무원과 교사부터 책을 읽으면 돼요. 책도시 행사를 하는 데에 헛돈 쓰지 말고, 그저 조용히, 시장이든 군수이든 공무원이든 교사이든 정치꾼이든, 모두들 책을 사서 읽는 데에 돈과 품을 들이면 돼요.


  먼저 책을 읽어야 독서토론회를 하든 책읽기모임을 합니다. 먼저 책을 읽어서 집집마다 서재를 갖추어야 작가초대이든 작가강연이든 할 밑틀이 생깁니다. 이름난 작가이든 이름 덜 난 작가이든, 이들이 쓴 책을 읽고 나서 작가를 불러야지요. 이런 행사 저런 잔치 크게 벌인대서 책도시 될 턱이 없습니다.


.. 그 후 30년쯤 지나 21세기로 접어든 무렵 오노 씨 부부와 함께 신슈로 여행을 갈 기회가 있었다. 그때 “예전에 오사카에서 오노 선생님께 호되게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덕분에 어떻게든 편집자의 길을 걸을 수 있어서 지금은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고 내가 말했더니, “그런 실례를 면전에 대고 했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역시 저도 그땐 젊었나 보군요.”라고 오노 씨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 ‘브랜드’나 ‘간판’은 단순히 그것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끊임없이 재생산해야 비로소 브랜드나 간판을 유지할 수 있고, 나아가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  (446, 447쪽)


  450쪽 가까운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를 읽으며 스물∼서른 쪽 즈음에서만 ‘책 만드는 넋과 땀방울’ 이야기를 읽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회고록을 옮겼기에 이러한 모양새가 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런 회고록까지 꼭 옮겨야 했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책 많이 읽었다는 사람이 ‘난 이 책도 읽고 저 책도 읽었지’ 하고 떠벌이면 옆에 있는 사람은 무척 따분합니다. 책읽기는 책자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출판사 편집자로 뼈를 묻은 사람 이야기라면 ‘난 이 책도 만들고 저 작가도 만났지’ 하고 읊기만 하면 곁에 있는 사람은 하품만 납니다. 책삶 아닌 책목록으로 뭘 어쩌라고요.


  온삶 걸쳐 엮은 책 가운데 꼭 한 가지 이야기만 들려주어도 됩니다. 책 하나에 바친 땀방울을 들려줄 수 있으면 됩니다. 책도시 되고 싶다면? 이것저것 안 해도 돼요. 책도시 이름을 걸려 하는 곳에서 태어나 글이나 그림이나 만화나 사진을 빚는 일꾼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찾아서 아끼고 돌볼 수 있으면 됩니다.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아닌, 시장이나 군수 스스로 읽은 아름다운 책 하나를 널리 나누면서 사랑하는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사랑으로 가꾸는 책도시입니다. 꿈으로 여는 책나라입니다. 돈으로도 이름으로도 껍데기로도 힘으로도 이룰 수 없는 책나무입니다. 사랑 담은 씨앗 한 톨 심어 두고두고 지켜보면서 보살피는 따사로운 손길로 이루는 책나무예요. 책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랄 때에 비로소 책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4346.11.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을 말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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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사서 - 21명의 사서들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사서의 세계 부키 전문직 리포트 15
이용훈 외 지음 / 부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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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30

 


도서관을 지키는 마음
― 사서가 말하는 사서
 이용훈과 스무 사람
 부키 펴냄,2012.12.20./13000원

 


  《사서가 말하는 사서》(부키,2012)라는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은 앞으로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싶은 푸름이한테 ‘도서관 사서가 하는 일’을 알려주는 길잡이 구실을 하는구나 싶습니다. 사서가 되려면 무엇을 잘 살피고 배워야 하는가,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면 어느 대목을 잘 헤아리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가, 책을 어떻게 마주하고 사람들과 어떻게 사귈 때에 즐거운가, 같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도서관 사서는 정규직일까요, 비정규직일까요. 아마 정규직도 있을 테고 비정규직도 있을 테지요. 오늘날은 어느 일자리라 하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리니까요. 책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책일 텐데, 책을 다루는 사람들은 사뭇 다른 대접을 받아요.


.. 교육이 끝나고 분임 토의를 할 예정이었으나 도서관의 필요성에 대한 교관들의 강력한 문제 제기로 분임 토의 자체가 불가능해 대신 전체 토론 시간을 가졌다. 그들의 눈에 나는 교도소의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에 불과했다. 또 업무 과부하로 힘든 그들에게 새로운 업무는 전혀 달갑지 않았다 ..  (56쪽)


  《사서가 말하는 사서》라는 책에 나오는 도서관 사서는 공공기관이나 학교나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혼자서 도서관을 열어 꾸리는 사람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아파트나 골목집에서 방 한 칸을 ‘열린 도서관’으로 꾸며서 마을 이웃과 만나는 ‘도서관지기’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혼자서 기나긴 해에 걸쳐 그러모은 책으로 씩씩하게 여는 서재도서관이라 할 전문도서관 이야기도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작은도서관(열린 도서관)이나 서재도서관이나 전문도서관은,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마친 뒤 ‘직업(일자리)’을 찾을 푸름이한테는 그리 걸맞지 않을 만한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요. 왜냐하면, 작은도서관을 꾸리면 돈을 벌지 못할 테고, 서재도서관이나 전문도서관을 열자면 스무 해나 서른 해쯤 오래도록 한결같이 책을 사서 읽고 모아야 하거든요. 푸름이한테 ‘꿈’을 들려주는 책이라면 이러한 대목을 짚을 테지만, ‘일자리(돈을 벌 자리)’를 알려주는 책이라면 이 같은 대목을 짚기는 어려우리라 봅니다.


.. 어린이가 도서관 그리고 책을 처음 만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안내를 하는 이가 바로 사서인 ‘나’라는 사실이었다 … 아이들도 어쩌면 그와 같지 않을까. 기어다니던 아이가 어느 날 걸음마를 하고 발에 힘을 주어 생애 처음으로 걷거나 뛰게 된다. 다리에 힘이 실리고 발이 바닥에 닿아 쿵쾅거리는 느낌이 얼마나 신기할 것이며, 그와 같이 신기한 것들로 가득한 세상으로 뜀박질해서 나아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울까. 영화를 본 후 내가 그간 아이들을 너무 몰랐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아이들의 위치에 서 보니, ‘도서관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해. 그러니까 안 돼!’라는 규칙을 적용하기가 힘들어졌다 ..  (63, 67쪽)


  《사서가 말하는 사서》라는 책에 나오는 사서들은 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다닌 뒤 사서자격증을 딴 사람들입니다. 참말, 도서관 사서가 되자면, 대학교를 다녀야 하고, 관련 학과에서 배워야 하며, 자격증을 따야 해요.


  여기에서, 나는 한 가지를 곰곰이 헤아려 보고 싶습니다. 도서관이든 책방이든 책을 다뤄요. 책은 출판사에서 만들지요. 출판사는 작가이든 학자이든 여느 사람이든, 누군가 쓴 글을 받아서 책을 만듭니다. 그런데, 출판사 대표이든 편집자이든 영업자이든, 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다닌 사람은 그리 안 많습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 가운데 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다녔거나 사서자격증을 딴 사람은 얼마 안 됩니다. 책을 그러모은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다녔거나 사서자격증 딴 사람이 꽤 많을 테지만, 막상 ‘책을 쓰고 만들며 엮어 사고파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아예 대학교조차 안 다닌 사람들이 퍽 많아요.


.. 도서관만큼은 아이들에게 천국이다. 도서관에선 시험도, 등급도, 차별도 없다. 책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읽을 책이 쌓여 있는 도서관은 천국”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천국에서 근무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서관이 진정한 천국이라면 서비스를 받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도 천국이어야 한다. 나에게 도서관은 천국이다(물론 어떤 사서교사는 도서관이 전쟁터라고 한다). 천국에서 근무를 하니, 아이들이 나에게 천사이기를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 같다 ..  (152쪽)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책을 지키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책을 알려주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책을 말하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책으로 삶을 일구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책과 함께 사랑을 나누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책에 깃든 꿈을 사람들하고 함께 일구는 곳입니다.


  《사서가 말하는 사서》라는 책은 푸름이들한테 ‘앞으로 얻고 싶은 일자리’를 밝히거나 알리는 구실을 맡는 대목에서 참 값어치 있구나 싶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으레 의사이니 판사이니 검사이니 변호사이니 하면서, 돈·이름·힘 거머쥐는 대목만 아이들한테 보여주려 하거든요. 아기자기하면서 어여쁜 일자리라 할 도서관 사서 이야기를 즐겁게 들려주는 책은 이제껏 없었다고 느껴요.


  다른 한편으로는, ‘일자리 테두리를 넘어서는’ 대목은 짚지 못하기에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대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 가운데 ‘도서관 사서’를 꿈꾼다면? 어떤 기관이나 학교에서 일자리를 얻지 않고도 ‘도서관을 누리거나 즐기는 길’을 걷고 싶다면?


  꼭 공무원이 되어야 할 아이들은 아니에요. 애써 자격증을 따서 어떤 관리직이 되어야 할 아이들은 아니에요. 삶을 사랑하면서 밝히는 길 걸어가면 어여쁜 아이들이에요. 꿈을 키우면서 노래하는 길 닦으면 즐거운 아이들이에요.


.. “여보세요, 여기 방송사인데요, 지금 지방에 촬영 차 왔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길인데요, 장서각에 잠깐 들러 고문헌 좀 촬영하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만 공문을 보내셔야 합니다.” “잠깐 들러 촬영만 하면 되는데 무슨 공문입니까?” 이런 전화는 화가 나기에 앞서 안타깝다. 고문헌은 문화재다. 문화재라는 것이 지나다가 불쑥 들러서 볼 수 있을 만큼 그렇게 하찮은 존재는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결례는 없다 ..  (211∼212쪽)


  푸름이한테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마음’을 조금 더 찬찬히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도서관 사서뿐 아니라, 공무원이건 교사이건 국회의원이건 시장이나 군수이건, 어느 자리에서건 즐거운 마음 되어 아름다운 삶길 걷도록 북돋우는 책을 우리 어른들이 베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가꾸고 살찌우면서, 삶을 누리고 빛내는 길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빌어요. 흙일꾼과 고기잡이 삶을 이야기할 수 있고, 집살림 꾸리는 사람들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으며, 나무를 돌보고 풀을 뜨는 사람들 넋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저런 전문직에서 일해도 좋을 테지만, 이에 앞서 어떤 삶을 어떻게 아끼며 보듬을 때에 가슴 깊이 따사로운 사랑 샘솟는가 하는 대목을 이야기한다면, 더없이 반갑습니다. 4346.3.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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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8 10:28   좋아요 0 | URL
'맑은 날엔 도서관에 가자'라는 책을 반쯤 보았는데 좋았던 것 같아요.
이따 다시 나머지를 읽어야겠어요.

숲노래 2013-03-28 10:45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군요.
맑은 날, 즐거운 날,
기쁜 날, 슬픈 날,
좋은 날, 아름다운 날,
언제나 사랑스러운 넋 북돋우는 이야기벗과 책 있으면
하루하루 웃음꽃 피어나리라 생각해요.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 - 개정판 이상의 도서관 34
최정태 글.사진 / 한길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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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27

 


책이 아름답기에 도서관이 아름답다
―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
 최정태 글
 한길사 펴냄,2006.8.15./2만 원

 


  최정태 님은 외국 사진책 하나 들여다보다가 ‘건물 아름다운 도서관’ 모습을 보고는 흠뻑 빠져듭니다. 사진으로만 이 모습을 볼 수 없다고 여겨 스스로 ‘아름다운 도서관 나들이’를 떠나기로 합니다. 놀거나 쉬려고 외국마실 가는 이들 퍽 많은데, 최정태 님은 당신 두 눈으로 ‘아름다운 도서관 건물’을 즐기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도서관 건물’이 외국 사진책에서뿐 아니라 한국 곳곳에서 볼 수 있기를 꿈꿉니다.


  한국에 있는 도서관을 곰곰이 헤아려 보면, 건물이 아름답다 할 만한 곳은 손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한국에 있는 도서관은 건물부터 아름답지 않고, 책꽂이에 모시는 책도 그리 아름답지 않아요. 도서관을 지키는 분(사서)들 마음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도서관을 꾸리는 정부 관계자나 지역 공무원 마음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는지요.


  해마다 끝무렵 되면 전국 곳곳에서 ‘거님길 돌바닥 바꾸기’가 한창입니다. 이 거님길 돌바닥 바꾸느라 돈을 수십억 또는 수백억 쓴다 할 수 있고, 한 해 두 해 쌓이는 돈을 헤아리면 참 어마어마합니다. 전쟁을 막고자 세운 군부대에 쓰는 나라돈은 대단히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와 달리, 한국에 있는 도서관에서 ‘새로 나오는 책 사들이는 돈’은 아주 적어요.


  그런데, 도서관에서는 해마다 책을 꾸준히 버립니다. 책 살 돈 없다고 걱정하거나 아우성을 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책을 자꾸자꾸 버려요. 왜냐하면, 도서관 건물은 새로 안 짓고, 책을 새로 사들이자면, 새로 사들인 책 놓을 자리가 없어요. 사람들이 잘 찾아서 읽지 않는 책은 버려야 합니다. 옛책을 버리고 새책을 꽂아요. 옛사람 슬기에서 새로운 넋을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한국 도서관에는 옛책이 한결같이 사라져요.


.. 도서관이 아름다워야 하는 것은 그곳이 단지 책을 쌓아두는 창고가 아니라 사람과 책이 만나고 지식과 정보를 교류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 시민에게 도서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데이터가 있다. 뉴옥 시 전체의 도서관 이용자 수는 연간 4100만 명이다. 이 숫자는 시내의 모든 문화시설 이용자와 메이저 스포츠 경기 관전자를 합친 것을 능가한 것이며, 뉴욕 시민의 서비스 평가에서 항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  (8, 22쪽)

 


  아름다운 도서관 건물은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어차피 도서관 건물을 짓는다면 아름답게 지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아름답고 안 아름답고를 떠나, 도서관 건물이 제대로 있어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도서관에서 더는 책을 안 버릴 수 있게끔, 책 둘 자리를 넉넉히 마련하는 한편, 늘어나는 책을 둘 만한 작은도서관을 마을 곳곳 빈집에 마련해서 두기도 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멀리 버스나 자가용 타고 찾아가는 커다란 건물 도서관을 넘어, 마을에서 누구나 어느 때라도 드나들면서 삶과 책을 누릴 만한 도서관이 있어야지 싶어요.


.. 각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저마다 다르듯이 대통령도서관들도 각양각색이다. 부시 도서관은 존슨 도서관에 비해 외양이 화려하고 내부도 호화롭게 꾸며 부시의 개인 홍보실 같기도 하다. 부시가 공직생활에서 이룩한 모든 업적을 각 방마다 나누어서 전시하고, 대통령 전용기와 캠프 데이비드의 집무실 모형을 그대로 옮겨놓고 걸프전 당시 세웠던 ‘사막의 폭풍’ 진지를 축소 재현해 놓은 것이나, 4미터 높이의 ‘베를린 장벽’ 실물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밖에도 대통령 재직시 국민들로부터 선물받은 인형, 장난감 등 흥미로운 소품들도 많이 볼 수 있다 ..  (248쪽)


  이런 건축 양식이나 저런 건축 예술을 뽐내기에 아름다운 도서관이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아마, 건축 양식이나 예술로 따져 아름답다 여길 도서관도 있으리라 생각해요. 다만, 도서관이 아름답다 한다면, 도서관을 찾아가는 사람들 손길이 하나둘 모여 시나브로 아름답게 거듭나지 싶어요. 건물이 허름하다 하더라도, 도서관을 찾아온 사람들이 맑은 눈망울 밝히면서 책 하나에 사랑스레 젖어들 수 있으면, 이곳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도서관 될 수 있지 싶어요.


  100만 권 넘게 책을 건사하는 도서관도 있을 만합니다. 그런데, 1만 권조차 아닌 1천 권 있는 도서관이어도 좋아요. 딱 100권이나 200권 있는 도서관이어도 돼요. 사람들한테 삶을 밝힐 만한 책을 알뜰히 갖추어 문턱이 낮은 마을도서관이면 좋겠어요. 사람들한테 사랑을 일깨울 만한 책을 살뜰히 건사해 시골에서도 시골일 쉬는 틈에 땀을 훔치면서 몇 쪽 넘기다가 평상 나무그늘에서 낮잠 즐길 만한 시골도서관이어도 좋겠어요.


  집집마다 마루 한쪽이 도서관 구실을 해서, 아이도 어른도 텔레비전 아닌 책에 빠져들면서 생각을 추스르고 마음을 살찌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웃이 서로서로 마실을 다니면서 저마다 다른 꿈과 사랑으로 돌보는 책을 기쁘게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 흔히 반만년 역사를 운운하지만 우리는 무덤 속에서 꺼낸 신라 금관이나 백제 유물 등을 전시하고 자랑하는 것 외에는 제대로 우리의 유산을 알리는 것에는 소홀한 것 같다. 우리 앞에 살아 숨쉬며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언어’라고 세계가 경탄하는 ‘한글’을 비롯해, 우리가 생활하는 곳 바로 옆에 존재하는 세계적인 기록물들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258쪽)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한길사,2006 첫/2011 고침)이라는 책이 부질없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그러나, 도서관 건축 양식과 예술, 또 서양도서관이 흘러온 발자취에 좀 지나치게 기울어진 듯합니다. 최정태 님은 도서관 겉모습에만 너무 치우치지는구나 싶어요. 여러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애써 나들이를 했다면, 그 도서관마다 아름답게 건사한 아름다운 책들을 즐겁게 읽고 살피며 마음으로 받아들인 이야기를 몇 줄이나마 적바림할 수 있으면 즐거울 텐데요.


  우리는 도서관에 건축 양식이나 예술을 보러 가지는 않아요. 가끔, ‘건축 예술 즐기는 나들이’를 할 수는 있을 테지만, 도서관에는 책을 즐기러 가요. 책을 즐기는 아름다운 나들이가 되기를 빌면서 도서관 문화를 생각하고 책 문화를 헤아려요.


  책이 아름답기에 책을 건사한 도서관이 아름답습니다. 책이 아름다운 만큼 책을 읽는 사람이 아름답지요. 또, 사람들이 아름답기에 책 하나 아름답게 빚어요. 사람들 스스로 아름다운 삶 누리면서 책 건사하는 도서관을 사랑과 꿈을 담아 아름답게 지으려고 마음을 쏟아요.


  삶과 꿈과 사랑이 있어 책이 태어나고, 도서관이 생깁니다. 삶과 꿈과 사랑을 빛내어 책을 짓고, 도서관을 지킵니다. 나도 내 조그마한 서재를 열어 시골에 도서관 하나 마련했어요. 나도 내가 스무 해 남짓 즐겁게 읽은 책으로 시골마을 사진책도서관 하나 곱게 가꾸어요. 내 둘레 좋은 이웃들도 이녁 서재를 골목도서관이나 시골도서관으로 꾸미어 이웃사랑 이웃잔치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4346.3.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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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15 18:45   좋아요 0 | URL
예.. 정말 커다란 건물 도서관을 넘어, 마을에서 누구나 어느 때라도 드나들면서 삶과 책을 누릴만한 아름다운 도서관을 희망합니다.^^
저도 도서관을 다니지만, 책을 대출해 주는 공공기관이라는...

숲노래 2013-03-15 19:03   좋아요 0 | URL
그렇구나. 그래요.
책을 대출해 주는 공공기관... 그래요.
오늘날 한국 모습이로군요 ㅠ.ㅜ
 
서서비행 - 생계독서가 금정연 매문기
금정연 지음 / 마티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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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22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까닭
― 서서비행
 금정연 글
 마티 펴냄,2012.8.17./13800원

 


  시골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달동네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달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정치꾼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정치꾼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신문기자는 사건 현장과 사고 현장에 발빠르게 찾아갑니다. 그래서, 오늘날 신문에는 사건과 사고 이야기가 아주 잘 실립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 신문기자는 어느 작가 한 사람을 취재한다고 해서 ‘어느 작가 한 사람이 쓴 글과 책을 두루 읽’지 않아요. 무턱대고 찾아가서 무턱대고 물어 봅니다. 곧, 오늘날 신문에는 ‘어느 작가 한 사람 이야기’가 깊거나 넓거나 알차게 실리지 않습니다.


  나는 신문을 안 읽습니다. 신문을 펼친들 읽을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보나 개혁 쪽 목소리를 담는다 하는 신문이라 하더라도 ‘서울이나 큰도시에서 살아가는 진보나 개혁 쪽 목소리’를 담을 뿐입니다. 나는 잡지를 안 읽습니다. 잡지를 펼친들 읽을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잡지에 글을 싣는 분들은 으레 교수이거나 학자이거나 지식인인데, 이들은 모두 ‘서울이나 큰도시에서 살아갈’ 뿐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분이 드물고, 시골사람을 이웃으로 사귀는 분이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곧, 신문도 잡지도 시골마을 시골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아요. 어쩌다 한두 번, 가뭄에 콩 나듯 귀퉁이에 조그맣게 다룰 뿐입니다.


  이제는 이야기하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불거지던 때, 정작 한미자유무역협정 때문에 시골마을이 어떻게 무너지거나 시골사람이 어떻게 힘든가 하는 대목을 옳고 바르며 알차게 담은 신문은 없습니다. 4대강 삽질을 다룬대서, 이 4대강 삽질이 시골마을을 얼마나 망가뜨리고 시골사람을 얼마나 죽이는가를 깊고 넓으며 알맞게 다루는 잡지는 없어요. 왜냐하면, 4대강 언저리 시골에서 살아가며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글로 빚는 분이 아주 드물기 때문입니다.


.. 정작 출간 당시에는 독자들에게 외면당해 생명을 잃은 책이, 희소성으로 인해 뒤늦게 전설의 성배 취급을 받는 일이 이 동네에서는 왕왕 일어나곤 한다 … 하루키는 농담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작품을 사 주는 것은 고맙지만, 프루스트 정도는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 말하자면 K에게는 박노자의 입장에 대해 가타부타할 자신의 입장이랄 게 없었던 것이다 ..  (29, 48, 271쪽)


  나는 퍽 어릴 적부터 ‘아줌마’가 쓰는 글을 좋아했습니다. 예전에는 왜 좋아했는지 잘 몰랐으나, 요즈음은 환하게 깨닫습니다. 아줌마들은 글을 쓸 적에 으레 ‘아이와 복닥이는 하루’ 이야기를 섞어요. 아저씨들은 글을 쓰며 ‘아이와 부대끼는 삶’ 이야기를 거의 못 써요.


  나는 《윤미네 집》이라는 사진책을 볼 적에도 그리 대단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으나, 한국 사회에서는 이만 한 사진책조차 나오기 몹시 어렵기 때문에, 참 훌륭하며 멋스러운 사진책이라고 느낌글을 썼습니다. 왜냐하면, 윤미네 아저씨는 바깥일로 너무 바쁜 나머지 밤늦게 돌아오거나 주말에 겨우 짬을 내어 아이들을 만나요. 하루 스물네 시간 아이들을 만나지 않아요.


  하루 스물네 시간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지만, 늘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기에, 윤미네 아저씨는 윤미가 어릴 적에 ‘매우 재미나며 사랑스러운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얼굴 겨우 보는 아버지인 터라, 윤미는 나이를 먹을수록 ‘아버지 사진기를 안 쳐다보’고 싶습니다. 윤미는 아버지하고 얼굴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가끔 얼굴 스치는데 사진으로만 찍히고 싶지 않아요. 생각해 봐요. 사랑하는 짝꿍 둘이 만나는데, 서로 먼 데 떨어져 지낸 터라 얼굴 보기조차 어렵다면, 이렇게 지내다가 겨우 얼굴 한 번 볼 틈이 났을 때에, 서로 무얼 할까요. 사진을 찍을까요? 아니지요. 조금이라도 더 서로를 바라보며 입을 맞추든 이야기꽃을 피우려 하든 하겠지요. 윤미네 아저씨로서는 ‘딸아이가 자라는 동안 꼭 적바림하고 싶은 때’가 있었겠지만, 윤미한테는 ‘아버지하고 새롭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이 대목을 미처 짚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윤미네 아저씨 아닌 윤미네 아줌마가 사진기를 손에 쥐어 윤미 사진을 찍는다 할 적에는, “윤미네 집” 이야기가 확 달라집니다. 아저씨들 바깥일 얽매인 삶으로는 도무지 못 담고 도무지 생각 못하며 도무지 깨닫지 못할 깊고 넓으며 아름다운 이야기 그득그득 길어올릴 수 있어요.


.. 나는 알아야 했다. 내가 찾는 게 무엇인지를 말해 줄 책을 찾아야만 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까닭도, 낯선 도시를 개처럼 돌아다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으니까 … 가을이 언제나 가을인 것처럼, 김훈은 여전히 김훈이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글자들의 행간을 채우는 것은 도저한 허무다 … 이기적이라고? 하지만 사실이다. ‘광고 속 그들’이 노래하는 대한민국은 소비자의 팀일 뿐이다. 적어도 나의 팀이 아니다 ..  (165, 170, 286쪽)


  겨울비가 내립니다.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에 겨울비가 내립니다. 이 한겨울에 우리 식구는 겨울비를 누립니다. 따스한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니 따스한 겨울비를 누립니다. 추운 곳에서 살아가면 겨울눈을 누리겠지요. 멧자락 시골집에서는 펑펑 쏟아지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볼 테고, 도시 한복판이나 한켠에서는 엉금엉금 기어가는 자동차물결을 바라보겠지요.


  삶에 따라 생각이 달라집니다. 숲이 곁에 있는 삶이라면 숲을 생각합니다. 아파트와 공장이 곁에 있는 삶이라면 아파트와 공장을 생각합니다. 돈을 많이 버는 삶이라면 돈을 생각합니다. 이름값 드날리는 삶이라면 이름값을 생각합니다. 풀밭에서 노래하는 풀벌레를 늘 만나는 삶이라면 풀벌레와 풀노래를 생각합니다. 맑은 냇물이 집 곁에서 흐르는 삶이라면 맑은 냇물을 생각합니다.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아름다운 삶을 부릅니다. 즐겁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즐거운 삶을 부릅니다.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사랑스러운 삶을 부릅니다.


  더 낫거나 더 나쁘다는 삶은 없습니다. 누리고 싶은 삶이 있습니다. 더 기쁘거나 더 슬프다는 삶은 없습니다. 좋아하고 싶은 삶이 있습니다.


.. 그들은 별 생각이 없었거나, 그렇지 않다면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공허한 당위와 텅 빈 대의. 아무려나. K는 상명하달의 관료주의와 권위주의, 거기에 일종의 가족주의가 혼합된 특유의 조직 문화에 진절머리가 나 있던 터였다 … 말하자면 K는 출구 없는 회로에 갇혀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이건 차라리 무척 느린 자살에 가까우니까. 그렇다고 이 모든 일을 당장 그만둘 수는 없다. 지금 당장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것이 바로 K가 ‘만들어 낸’ 현실이었다 … 온몸을 던져서라도 지키고픈 책과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할 수 없는 책에 대한 짐심어린 각자의 이야기들을 듣고 싶은 것이다 ..  (264, 269, 379쪽)


  금정연 님이 쓴 《서서기행》(마티,2012)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책을 말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책이란 삶을 담는 이야기꾸러미인 만큼, ‘삶을 읽는 삶’이요 ‘삶을 말하는 삶’이라고 느낍니다. 곧, 금정연 님으로서는 ‘책을 읽’지만, 늘 ‘삶을 읽’는 나날입니다. 금정연 님으로서는 ‘책을 읽은 느낌을 글로 쓰’지만, ‘삶을 읽은 느낌을 글로 씁’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일이란 삶을 쓰는 일입니다. 누구이든 이녁 삶 아니고는 아무것도 쓸 수 없습니다. 곧, 글쓰기란 삶쓰기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할 적에는 ‘삶을 읽고 삶을 쓴’다고 할밖에 없어요.


  나날이 ‘책 말하는 책’이 자꾸 나오는 까닭은 ‘삶 말하는 삶’이 재미있거나 즐겁거나 좋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책에 얽매이는 삶이 아니라, ‘내 이웃 삶을 좋아하며 마주하는’ 삶입니다. 입으로 말을 주고받아 이야기꽃을 피우듯, 손으로 글을 써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살아가는 모습이 글 한 자락으로 태어납니다. 글 한 자락이 모여 책 한 권으로 태어납니다. 책 한 권을 읽어 새로운 삶을 생각합니다. 새로운 삶을 생각하며 느낌글 하나 갈무리합니다.


  글을 쓰는 까닭이라면 오직 하나 있겠지요. 내가 이렇게 오늘을 살아가니까요. 책을 읽는 까닭이라면 바로 하나 들 만하겠지요. 내가 이렇게 이곳에서 살아가니까요. 삶결이 책결이요, 생각무늬가 글무늬입니다. 삶빛이 책빛이며, 생각자락이 글자락입니다. 4346.1.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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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1-22 14:35   좋아요 0 | URL
"글을 쓰는 일이란 삶을 쓰는 일입니다."
- 저도 글을 쓰면서 결국 제가 세상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구나, 생각 들어요. ^^

숲노래 2013-01-22 18:30   좋아요 0 | URL
그럼요.
그래서 늘 pek0501 님 삶과 생각을 즐겁게 읽습니다~
 
도서관 산책자 - 두 책벌레 건축가가 함께 걷고 기록한, 책의 집 이야기
강예린.이치훈 지음 / 반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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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은 싱그러운 책 읽는 곳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55] 강예린·이치훈, 《도서관 산책자》(반비,2012)

 


- 책이름 : 도서관 산책자
- 글 : 강예린·이치훈
- 펴낸곳 : 반비 (2012.10.25.)
- 책값 : 16000원

 


  도서관은 싱그러운 책을 읽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싱그러운 책이 아니라면 굳이 도서관까지 찾아가서 읽을 까닭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싱그러운 책이 아닐 때에는 대여점에서 빌린다든지 여느 책방에서 사다 읽어도 될 테지요. 그러나, 싱그러운 책이 아니라 한다면, 굳이 내 아름다운 겨를을 내어 읽어야 할까 궁금해요.


  싱그러운 책이기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습니다. 싱그러운 책이기에 새책방에서 주머니를 털어 장만해서 읽습니다. 싱그러운 책이기에 새책방 책꽂이에서 사라진 책을 오랜 품과 겨를을 들여 헌책방을 찾아다니면서 즐겁게 사들여서 읽습니다.


  조금 더 생각한다면, 싱그러운 이야기라고 느낄 때에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어야지 싶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한다면, 싱그러운 이야기를 다룬 책이라고 여길 때에 책방에서 책을 갖추어 꽂아야지 싶습니다. 많이 팔릴 만하거나 널리 읽힐 만하기에 책을 만들 수 있을 테지만, 많이 팔린다거나 널리 읽힌대서 ‘싱그러운’ 이야기가 되지는 않아요. 신문 1쪽에 나오거나 방송 맨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이기에 ‘싱그러운’ 삶이나 사랑이나 꿈을 들려주지는 않아요.


  찬찬히 생각할 노릇이라고 느껴요. 신문 1쪽에 큼지막하게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 몇 가지나 하루 뒤나 한 달 뒤나 한 해 뒤에도 기쁘게 떠올리거나 되새길 이야기가 되나요. 방송에서 흐르는 이야기 가운데 몇 가지나 하루 뒤나 한 달 뒤나 한 해 뒤에서 즐거이 돌아보거나 아로새길 이야기가 되나요.


.. 형무소 옆 도서관에는 책이 수감되어 있는가? 지식이 지혜로 교정될 때까지 책은 세상에서 격리되는가? ‘경성감옥’ 옆에 서 있는 도서관을 보노라니, 자연스레 도서관 역시 감옥처럼 근대적인 ‘훈육’의 공간이라는 것이 떠오른다 … 훌륭한 도서관을 짓고자 하는 건축가라면 그 안에서 사람이 교류하는 구체적인 모습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도서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  (27, 48쪽)


  어느 모로 본다면, 도서관에서는 ‘싱그럽’지 않은 책도 건사할 만합니다. 싱그럽지 않은 책도 알뜰히 갖추면서 ‘책으로 삶을 읽’도록 돕는 구실을 할 수 있어요. 날마다 나오는 신문을 하나하나 모아서 ‘신문으로 사회를 읽’도록 이끄는 몫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다른 눈길로 본다면, 도서관에서 구태여 싱그럽지 않은 책을 건사해야 할까 알쏭달쏭해요. 싱그러운 책만 즐겁게 찾아서 읽는 데에도 온삶을 다 바쳐도 다 못 읽는다 할 만큼 많은데, 꼭 ‘안 싱그러운’ 책을 도서관이 갖추어야 할까요. 지나치게 많은 ‘안 싱그러운’ 책이 가득 꽂히는 바람에, 사람들은 막상 ‘싱그러운’ 책을 못 찾거나 못 보거나 못 느끼지 않나요. 싱그러운 책은 싱그럽지 못한 책 사이에 낑기거나 눌리면서 햇볕을 못 보다가는 ‘대출실적 0’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폐휴지로 버려지지는 않나요.


  굳이 모든 책을 건사해야 한다면, 모든 책을 건사하는 도서관은 딱 한 군데만 있으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딱 한 군데 도서관을 빼고는 ‘싱그러운’ 책만 건사해야지 싶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려는 사람이 “이 책 갖추어 주셔요” 하고 바란다 할지라도, 도서관을 지키는 일꾼이 “갖추기를 바라는 책”을 하나하나 훑으면서 ‘싱그러운’ 책만 추려서 갖추어야 할 노릇이라고 느껴요.


  이러고 나서, 도서관 지키는 일꾼이 할 일이 생깁니다. 무엇이냐 하면, 도서관에서 꾸준히 사들여 갖춘 ‘싱그러운’ 책을 누구보다 도서관 일꾼이 먼저 즐겁게 읽은 뒤에 ‘싱그러운 책을 읽은 느낌’을 글로 써서 ‘도서관신문’이나 ‘도서관잡지’를 만들어야지요.


  ‘새로 들어온 책 목록’만 띄운다면, 도서관으로서 제구실을 못 한다고 느껴요. 출판사에서 쓴 ‘보도자료’만 붙인다면, 도서관 일꾼으로서 제몫을 못 한다고 느껴요.


  도서관 일꾼이란, 도서관에 들여오는 책을 맨 먼저 읽고 ‘줄거리에 깃든 넋’을 받아들인 다음, 이 아름다운 넋을 ‘도서관에 찾아오는 이웃’한테 차근차근 들려주면서, 사람들 스스로 ‘아름다운 넋’을 읽고 되새기면서 새롭게 태어나도록 돕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 도서관 3층으로 올라가면 어른들의 열람실이 나온다. 도서관을 지을 때 공부하는 방을 만들자는 의견도 일부 있었으나, 건축주는 ‘책 읽는 도서관’이어야 한다는 의지가 확고했다고 한다. 전과와 문제집처럼 남이 추려 놓은 지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추려지지 않은 지식과 이야기를 스스로 탐구하는 것이 갖는 힘과 의미를 알리고 싶었겠지 싶어 … 집에서 가져온 책으로 공부하는 열람실, 독서실은 우리 도서관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일제 시절부터 내려온, 근대적인 훈육식 교육 경험을 도서관이 물려받은 결과라고 한다 ..  (32∼34, 45쪽)


  도서관은 싱그러운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싱그럽게 가꾸는 기운을 얻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싱그러운 책을 읽는 까닭은 나 스스로 싱그러운 넋으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싱그러운 눈길로 내 모습을 들여다봅니다. 싱그러운 눈길로 이웃이랑 동무를 사랑합니다. 싱그러운 눈길로 나무와 풀과 꽃을 아낍니다. 싱그러운 눈길로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껴안고, 기름진 들판과 푸른 숲을 어루만집니다.


  싱그러운 책을 읽는 나는 싱그러운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책을 읽기에 거듭나지는 않아요. 책을 읽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 ‘싱그러운 씨앗’ 하나가 움을 터요. 천천히 뿌리를 내리고 찬찬히 줄기를 올리지요. 싱그러운 책을 읽고 싱그러운 말을 나누며 싱그러운 일을 하면서, 시나브로 내 마음속 싱그러운 씨앗이 씩씩하게 자랍니다.


  책에는 길이 없으나, 책을 읽으며 스스로 길을 찾는 기운을 얻습니다. 책에는 길이 없으니, 책을 읽으며 길을 찾다가는 헤매기만 할 뿐이에요. 책을 읽으며 길을 헤매면, 이 책도 읽고 저 책도 읽으며 온갖 책지식을 잔뜩 쌓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책지식으로 무엇을 할까요. 책지식으로는 사랑을 하지 못해요. 책지식으로는 꿈을 꾸지 못해요. 책지식으로는 풀씨를 받지 못해요. 책지식으로는 나뭇가지에 새로 돋는 잎사귀를 느끼지 못해요.


.. 동서양 모두 자연에서 소요하며 책을 읽는 것은 조금 더 높은 경지에 닿고자 하는 마음과 통한다. 자연에서 머리를 맑게 헹구고 책을 읽는 것은 마음을 닦는 일에 가깝다 … 사진책도서관은 최종규 관장님 말씀처럼 ‘육지에서 섬 빼고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인 전남 고흥에 자리잡고 있다. 이 먼 곳까지 작정하고 오는 동안 독자는 사진책을 읽을 마음의 폭을 마련한다. 사진책은 대개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를 읽는 것이다. 느릿한 읽기를 통해서만 이미지를 찬찬히 감상할 수 있다.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시대에도 고흥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이곳에 자리잡았다는 관장님의 말씀은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진책과 분위기가 맞춤하다 ..  (83, 160∼161쪽)


  책을 읽듯 사람을 읽습니다. 사람을 읽듯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듯 꽃을 읽습니다. 꽃을 읽듯 책을 읽습니다.


  가을을 느껴 보셔요. 겨울을 느껴 보셔요. 봄과 여름을 느껴 보셔요. 다 다른 철에 다 다른 날씨를 느껴 보셔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물인지 느껴 보셔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고을에서 다 다른 꿈으로 살아내며 쓴 책을 천천히 읽어 보셔요. 책을 읽을 때에는 숲으로 가서 나무 밑에 앉아 읽어 보셔요. 열 쪽이나 백 쪽쯤 읽었다면 책을 살짝 덮고는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셔요. 구름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바라보고, 들새가 몇 마리쯤 날아가며 노래하는가 들어 보셔요.


  겨울이 코앞이라 풀벌레가 모두 고이 잠들었나 싶다가도, 빈 들판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가느다란 노랫소리가 울려퍼져요. 아마 이른겨울까지 적잖은 풀벌레가 시골마을 들판에서 어여삐 노래를 부르겠구나 싶어요. 들새와 멧새는 한겨울에도 먹이를 찾으며 노래를 부르겠지요. 우리 집 어린 아이들도 마당에서 볼이 빨개지도록 뛰놀며 노래를 부를 테고요.


  책을 읽으며 삶을 읽습니다. 삶을 읽으며 책을 읽습니다. 서로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삶을 읽으려고 책을 손에 쥡니다. 다 함께 어깨동무하는 아름다운 꿈을 그리면서 책을 손에 듭니다.


.. 이렇게 서고에서 길을 잃는 것은 책을 읽는 재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주석이나 인용에 이끌려 다른 책으로 계속 손을 옮기며 책이 열어 주는 여러 갈래의 길로 들어서다 보면 어느새 독자는 수십, 수백 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말을 걸어 오는 저자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된다 … 개인이 구매하기 어려운 책을 도서관이 대신 구비해 주는 것이 옳지만, 도서관으로서는 예산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아무래도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찾는 사람이 많은 책을 더 구입하는 쪽으로 기운다. 그래서 사진책은 어지간한 규모의 도서관이 아니면 만나기 힘들다 ..  (136, 158쪽)


  강예린 이치훈 두 분이 쓰고 엮은 《도서관 산책자》(반비,2012)라는 인문책을 읽습니다. 도서관으로 나들이를 가는 두 분은 건축일을 한다고 합니다. 창녕에서는 도서관을 짓도록 함께 슬기를 모았다고도 해요.


  《도서관 산책자》를 읽으며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서 ‘도서관 나들이’를 할 만할 수 있을까? 한국에 있는 도서관은 ‘서울에 있는 도서관’이랑 ‘부산에 있는 도서관’이랑 ‘순천에 있는 도서관’이 다를까?


  나는 ‘전국 헌책방 나들이’를 즐깁니다. 서울에 있는 헌책방이랑 부산에 있는 헌책방이랑 순천에 있는 헌책방은 책시렁이 저마다 달라요. 남원에 있는 헌책방이랑 진주에 있는 헌책방이랑 춘천에 있는 헌책방은 책꽂이가 사뭇 달라요.


  대전에 있는 헌책방에서는 대전사람들 삶을 헤아리는 책을 만납니다. 전주에 있는 헌책방에서는 전주사람들 삶을 톺아보는 책을 만납니다. 인천에 있는 헌책방에서는 인천사람들 삶을 그리는 책을 만나요.


  도서관은 어떠할까 궁금해요. 인천에 있는 도서관에서는 ‘인천사람 인천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나 자료가 얼마나 있을까요. 의정부에 있는 도서관에는 ‘의정부사람 의정부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나 자료가 얼마나 있을까요. 제주에 있는 도서관에는 ‘제주도 사람 제주도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나 자료가 얼마나 있을까요.


  인문책 《도서관 산책자》에서는 한국에서 도서관은 도서관 아닌 ‘독서실’ 노릇을 한다는데, 이 말은 썩 알맞지 않아요. 왜냐하면 ‘독서실’은 “책을 읽는 방”이거든요. 또 한국사람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려고 해서 말썽이라고 말하지만, 이 말 또한 알맞지 않아요. 왜냐하면 ‘공부’는 “시험점수 더 잘 따려고 문제집이랑 참고서를 외우는 짓”하고 동떨어지거든요.


  무슨 말인가 하면, 한국사람은 ‘도서관’도 ‘독서실’도 ‘공부’도 제대로 몰라요. 도서관이 어떤 책을 건사하며 사람들하고 나누어야 아름다운 책터가 되는가를 깨닫지 않아요. 독서실이라 할 때에는 어떤 곳에 어떻게 마련할 때에 ‘책읽기’ 즐기도록 돕는가를 살피지 않아요. 공부가 무엇이며 공부를 하는 삶은 어떠한 사랑으로 피어나는가를 생각하지 않아요.


  한 마디로 간추리면, 한국에 있는 도서관은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시험지옥 공장’이랄 수 있습니다. 칸막이로 좁게 나누어 조용히 문제집 풀기를 하느라 고개를 처박아야 하는 데는 도서관도 독서실도 아니에요. 이런 곳은 그야말로 불지옥이에요. 가시방석 입시지옥일 뿐이에요.


  강예린 이치훈 두 분은 ‘입시지옥’으로 나뒹구는 데가 아닌, 참말 ‘책읽기’가 싱그러이 숨쉬는 곳을 찾아 “도서관 나들이”를 합니다. 이러면서 “도서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여태껏 “도서관 나들이”를 하면서 “도서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해요. 어쩌면 아예 없는지 몰라요.


  작은 책씨앗 구실을 하는 《도서관 산책자》일 테지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이제 겨우 “도서관 나들이”를 할 만큼 되었다고 할 테지요. 앞으로는 “도서관 한살이”라든지 “도서관 사랑짓기”라든지 “도서관 숲살림”을 다루는 이야기책도 태어날 수 있기를 빌어요. 책으로 읽는 삶을 헤아리고, 책을 발판 삼아 저마다 눈부시게 열어젖히는 고운 생각날개가 이야기숲처럼 흐드러지기를 빌어요. (4345.11.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인문책은 삶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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