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小출판사 순례기 - 출판정신으로 무장한
고지마 기요타카 지음, 박지현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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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읽기 삶읽기 114] 고지마 기요타카, 《일본 소출판사 순례기》

 


  저마다 책을 읽습니다. 스스로 가장 마음에 든다 여기는 책을 읽습니다. 소설책이든 자기계발책이든 스스로 가장 눈길이 닿기에 살포시 집어들어 읽습니다. 일 때문이든 독후감 때문이든, 스스로 어느 책 하나 읽어야겠다고 느끼기에 읽습니다.


  저마다 집을 마련합니다. 맞돈을 치러 내 집으로 마련하든 달삯을 치르며 지내든 누구나 제 집을 마련합니다.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도 하고, 달동네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다닥다닥 붙은 조그마한 집에 딸린 방 한 칸짜리 보금자리일 수 있고, 옥상에 있는 방 한 칸짜리 보금자리일 수 있습니다. 도시 한복판 보금자리일 수 있으며, 도시 변두리 보금자리일 수 있고, 시골마을 보금자리일 수 있어요.


  저마다 삶을 누립니다. 즐겁거나 기쁘게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고, 슬프거나 괴롭게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쁘거나 고단하게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고, 느긋하거나 흐뭇하게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어요. 따사로운 햇살과 같이 삶을 누릴 수 있고, 상큼한 바람과 같이 삶을 누릴 수 있어요.


.. 편집부 다섯 명, 모두 열 명이 근무하는 사쿠힌샤처럼 작은 출판사는 전통이라는 게 없는 만큼 편집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고가 직접 반영된다 … 작은 출판사지만 사쿠힌샤는 스스로에게 어려운 숙제를 내며 수준 높고 매력적인 양서를 간행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하고 있다 ..  (16, 19쪽)


  사람들이 책을 읽습니다. 이를테면 《우리 글 바로쓰기》 같은 책을 읽습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녁 말글을 슬기롭게 헤아립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무것도 느끼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얼마쯤 읽다가 덮고는 하품을 합니다. 때로는 《우리들의 하느님》 같은 책을 읽기도 하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책을 읽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이 책에서 빛을 느껴 삶을 새롭게 가다듬습니다. 누군가는 이 책 줄거리를 알뜰히 풀어놓으나 삶은 그대로입니다. 누군가는 ‘한 해 독서계획’으로 이 책을 읽을 뿐, 스스로 삶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한 해 독서계획’이라든지 ‘백 권 읽기’라든지 ‘천 권 읽기’란 덧없는 외침과 같구나 싶습니다. 책이란 어떤 틀을 세우면서 읽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책은 삶과 같아요. 삶을 어떤 틀을 세우면서 누릴 수 없어요. 어떤 틀에 따라 움직이거나 흐르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사랑하는 결에 따라 움직이거나 흐르는 삶이에요. 어떤 틀에 따라 읽거나 아로새기는 책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사랑하는 결을 북돋우거나 살찌우면서 마음을 넉넉하고 아름답게 돌보는 책이에요.


  곧, 책을 읽으며 지식이 늘지 않습니다. 책을 가까이하며 똑똑해지지 않습니다. 책을 더 많이 읽기에 정보를 가득 누리지 않습니다. 책과 함께하는 삶이라서 슬기롭지 않습니다.


.. 책방에 다니며 그저 책을 보기만 해도 자신이 정화되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듯했다 … “책을 만들기 위해 편집이 있고 독자에게 책을 전달하기 위해 영업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모두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책을 만듭니다. 정말 이상해요.” ..  (20, 38쪽)


  지식을 바라는 사람은 지식을 얻겠지요. 정보를 꾀하는 사람은 정보를 쥐겠지요. 자격증을 따고 싶은 사람은 자격증을 따요. 시험성적 높이고 싶은 사람은 시험성적 높일 수 있어요.


  그런데, 삶이란 무엇일까요. 내 삶 한 자락에서 내가 누릴 빛은 무엇일까요. 나는 무엇을 하면서 내 사랑을 다스리고 내 꿈을 키울까요. 내가 즐길 사랑은 무엇이요, 내가 가꿀 꿈은 무엇일까요.


  내 삶에서 지식이 가장 대수롭다 할 만할까요. 내 삶에서 정보를 가장 크게 북돋아야 할까요. 내 삶을 사랑 아닌 독후감 같은 책으로 채워야 하나요. 내 삶을 꿈 아닌 자기계발 같은 책으로 엮어야 하나요.


  책을 읽으려고 하기 앞서, 나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책을 읽고 싶다면, 나 스스로 내 삶을 어떻게 일구려 하는가를 살펴야 한다고 느낍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을 누리려 한다면, 나 스스로 어떤 사랑과 꿈으로 하루를 빛내려 하는가를 깨달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 어린이들이 싫어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주입식 교육이 아닐까 … 나가오는 마르크스나 루소의 사랑을 지식으로만 가르치는 교수들에게 불만을 갖고 있었다. 경제학 이론과 생활인으로서의 접점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  (40, 50쪽)


  책읽기와 책쓰기는 같습니다. 책을 장만해서 읽는 사람은 삶을 빛내며 읽는 사람입니다. 책을 엮어 책방에 내놓는 일꾼 또한 삶을 빛내며 쓰는 사람입니다. 출판사 일꾼이든 글을 쓰는 일꾼이든, 저마다 삶을 빛내는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니까, 책을 빚는 일이나 밥을 짓는 일이나 같아요. 책을 읽는 일이나 아이를 돌보는 일이나 같아요. 책을 쓰는 일이나 아이를 가르치는 일이나 같아요. 모든 일이 한동아리가 되어 흐릅니다. 모든 일이 한 물결처럼 움직입니다.


  책을 읽으며 삶을 읽고, 삶을 읽으며 생각을 읽습니다. 생각을 읽으며 내 이웃을 읽고, 내 이웃을 읽으며 풀과 나무를 읽습니다. 풀과 나무를 읽으며 햇살과 바람을 읽고, 햇살과 바람을 읽으며 흙과 벌레를 읽어요. 바야흐로 지구별을 읽습니다. 이윽고 목숨을 읽습니다. 비로소 사람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읽습니다.


  어린이책을 읽든 만화책을 읽든, 책을 읽는 길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찾는 데로 이어집니다. 어느 책을 쓰든, 곧 사람들 스스로 어느 글을 쓰든, 또는 어느 책을 빚든, 모든 삶과 넋과 일은 한 갈래에서 만나요. ‘사람이 무엇인가’를 찾고 ‘사랑이 무엇인가’를 밝히며 ‘꿈이 무엇인가’를 들려줘요.


.. 마이너리티적 발상이 각광받을 것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상업출판사에서 마이너리티적 기획은 하지 않는다. 독자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진정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만든 책은 보면 알 수 있다. 판권을 보거나 책을 잡은 순간 느낄 수 있다 ..  (134, 153쪽)


  책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삶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책을 참답게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삶을 참답게 좋아합니다. 책을 마주하는 결이 삶을 마주하는 결입니다. 어느 책을 골라서 읽느냐 하는 매무새는 어느 이웃을 생각하거나 살피느냐 하는 매무새입니다.


  책만 알뜰히 아끼지 못합니다. 밥만 알뜰히 짓지 못합니다. 자가용만 알뜰히 돌보지 못합니다. 내 아이들만 알뜰히 보살피지 못합니다. 책한테 하듯 지구별한테 해요. 책하고 마주하듯 둘레 사람하고 마주해요. 책 한 권 장만하는 매무새가 저잣거리에서 물건 하나 장만하는 매무새예요. 책을 읽어 삭히는 몸가짐이 이웃사람 말을 듣고 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몸가짐이에요.


  책 하나에 깃든 ‘글쓴이 넋’이나 ‘책마을 일꾼 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요. ‘책을 읽는 내 마음대로’ 바라보는가요? 글을 쓰거나 책을 엮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를 살피면서 바라보는가요?


  고지마 기요타카 님이 쓴 《일본 소출판사 순례기》(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2007)를 읽습니다. ‘소출판사’라니, 소를 잡는 출판사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일본사람은 ‘小’라 말할 테지만, 한국사람은 ‘작은’이라 말하잖아요. 한국사람 읽을 책이라면 ‘작은 출판사’라 말해야지요.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가만히 헤아립니다. 이 책에 나오는 ‘작은 출판사’는 하나도 작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출판사’일 뿐입니다. 크거나 작다는 갈래는 어느 누구도 나누지 못해요. 그저 출판사요 그저 책을 빚습니다. 널리 팔리는 책이라서 ‘큰’ 책이 되지 않고, 적게 팔리는 책이라서 ‘작은’ 책이 되지 않아요. 언제나 책이에요. 많이 팔린 책이라서 사람들이 ‘옳게’ 읽거나 ‘슬기롭게’ 아로새겨서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찾아 씩씩하게 거듭나도록 이끌까요.


  《일본 소출판사 순례기》는 재미나게 쓴 책이라고 느낍니다. 스스로 가고 싶은 길을 가는 출판사 일꾼을 만나는 이야기를 담았기에 재미나게 쓴 책이라고 느낍니다. 다만, 글쓴이는 짚어야 할 대목을 짚지 못합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어떤 즐거운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는가를 또렷하게 짚지 못합니다. 출판사가 처음 생긴 때가 언제요, 어떻게 해서 생겼으며, 그동안 어떤 책을 냈는가 하는 이야기는 그리 재미나지 않고 즐겁지 않은데다가 궁금하지 않아요. 다 다른 출판사 일꾼이 다 다른 사랑과 꿈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털어놓도록 이끌면서, 이 생각을 알뜰살뜰 담을 때에 이 책이 참으로 빛날 수 있으리라 느껴요. 왜냐하면, 책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잖아요. 그러면, 수많은 출판사 일꾼들이 ‘책을 어떻게 좋아하’고 ‘책을 얼마나 좋아하’며 ‘책을 좋아하는 꿈’을 둘레 이웃하고 어떻게 나누려고 책을 만드는가 하는 대목을 건드리며 책을 꾸며야지요. 책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녁이 살아가는 마을도 참으로 좋아하고, 이녁을 둘러싼 이웃도 참으로 좋아해요. 책을 참으로 좋아하듯 멧새 한 마리를 참으로 좋아할 테고, 풀벌레 노랫소리 한 가락을 참으로 좋아하겠지요. (4345.9.1.흙.ㅎㄲㅅㄱ)

 


― 일본 소출판사 순례기 (고지마 기요타카 글,박지현 옮김,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2007.3.10./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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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과 도 - 울자, 때로는 너와 우리를 위해
윤미화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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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느낌글(서평)'은 나중에 따로 쓸 생각이지만, 이에 앞서, 내 책을 다룬 꼭지에서 잘못 적은 대목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렇게 붙인다. 부디 잘못 적은 곳은 낱낱이 바로잡아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바로잡은 결과를 '실물'로 나한테 보내 주기 바란다.

 

..

 


 파란여우(윤미화) 님, 《독과 도》를 읽다가
 ― 《사진책과 함께 살기》 잘못 다룬 곳 짚기

 


  2012년 6월 15일에 나온 《독과 도》(북노마드)를 읽다가, 내가 쓴 책 가운데 하나인 《사진책과 함께 살기》를 다룬 대목을 자꾸 잘못 말하기 때문에, 몇 가지 바로잡고자 이 글을 쓴다. 벌써 종이에 찍혀 나온 《독과 도》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달리 어찌할 길이 없으니, 이렇게 ‘바로잡기’를 한다.


 01. 책이름 잘못 적음
  알라딘서재에서 ‘된장’이라는 이름을 쓰는 내(최종규)가 지난 2010년에 내놓은 책 가운데 하나는 《사진책과 함께 살기》이다. 그런데, 파란여우(윤미화) 님이 쓴 《독과 도》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진 책과 함께 살기”로 적는다. 왜 띄어쓰기를 바꾸는가? 게다가 ‘사진집’은 붙여서 적으면서 ‘사진 책’은 띄어서 써야 할 까닭이 있을까? 내가 인천에서 2007년부터 꾸리다가 2011년에 전남 고흥으로 옮긴 서재도서관은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이다. 내 서재도서관 이름을 밝힐 때에도 ‘사진 책’을 띄어야 할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 머리말을 살피면, 머리말 끝자락에 ‘사진책’이라는 낱말을 일부러 쓰려고 한 까닭을 밝혔다. 한국 사진문화를 한 걸음 나아가게 하고 싶기 때문에 ‘사진책·사진밭·사진말·사진읽기·사진찍기·사진마을’ 같은 새 낱말을 나 스스로 지어서 썼다. 이와 같은 대목을 처음부터 옳게 살피지 않는다면,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 담은 줄거리와 고갱이는 어떻게 돌아볼 수 있을까.


 02. 사진책 비평 갈래
  파란여우 님은 234쪽에서 “‘사진 책 서평집’이라는 장르는 물론 없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있다. 없을 까닭이 없으며, 없어야 할 까닭도 없다. 이 갈래로 나온 책이 한국에는 몇 가지 없고, 도서관 분류법에 제대로 나누어지지 않았대서 이 갈래가 없다 할 수 있을까. ‘사진책 서평’이란 곧 ‘사진읽기’를 뜻하고, ‘사진비평’이다. 사진책을 말하는 책이 바로 사진비평인데, 이러한 갈래가 없다는 말은 할 수 없다.


 03. 헌책방에서 건진 사진 책 위주로 썼다 (234쪽)
  《사진책과 함께 살기》는 모두 1·2·3부로 나눈다. 이 가운데 3부는 ‘새책방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사진책만 다룬다. 1부는 도서관에서 찾아볼 만한(그러나 아직 한국 도서관에서는 알뜰히 못 갖추는) 사진책을 다룬다. 2부는 사진책을 널리 장만할 수 있는 좋은 헌책방을 소개하면서, 이 헌책방에서 장만한 사진책을 다룬다. “헌책방에서 건진 사진 책 위주”란 무엇일까? 더욱이, “헌책방에서 건진”이라는 말마디는, 이렇게 ‘건지기’까지 품을 많이 팔아야 하거나 다른 책들은 썩다리라는 뜻을 풍긴다. 나는 헌책방을 다닐 때에 “책을 건진” 적이 없다. 《독과 도》라는 책을 쓴 분이 내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이를 모르지 않으리라. 나는 언제나 “책을 살” 뿐이다. 살림을 장만하듯 “책을 장만한”다.


 04. 글쓴이의 주관적 견해가 많은 (234쪽)
  모든 글은 스스로 쓰니까 모든 글은 ‘주관’이다. 《독과 도》는 주관인가 객관인가? 《독과 도》를 쓴 사람 눈길로는 ‘주관’이라 하더라도, 이 주관이란 무엇인가. 게다가, 서평이든 비평이든 모든 ‘평가’란 주관이 내리는 평가이지, 객관이 내리는 평가일 수 없다. 스스로 읽은 다음 느낌을 말하는 일이 평가요, 서평이나 비평이 된다.


 05. 사진의 속내를 통해 (235쪽)
  내가 쓴 글이라면서 따온 대목인데, 나는 이 책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 ‘토씨 -의’하고 ‘통(通)해’라는 말투를 어느 한 곳에서도 안 썼다. 그런데 갑작스레 이런 말투를 ‘내가 쓴 말투’인 듯 따온글로 적어 놓았다. 몇 쪽에 이런 말투가 나오는지 밝혀 주기를 바란다(교정지에서 바로잡았으나 출판사에서 나한테 말하지 않고 이런 말투로 책을 냈으면, 내 책 또한 새로 고쳐야 하니까). 글쓴이 말투가 아닌 글을 마치 따온글이라면서 함부로 적는 일은 올바르지 않다.


 06. 상업광고에서 나타나는 감각적인 스타일은 애초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사진은 여러 갈래이고, 사진책도 여러 갈래이다. 상업사진과 상업사진책을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 안 다루었대서 내가 이러한 갈래에 아예 눈길을 안 둔다는 투로 말하는 일은 얼마나 올바른 서평이나 비평이 될까. 내 알라딘서재(blog.aladin.co.kr/hbooks)에서 사진책 비평 게시판에 올린 글을 읽으면 알 테지만, 나는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이나 ‘사진을 말하는 책’을 모두 다룬다. 다만, 이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는 상업사진이나 상업사진책은 굳이 안 다루어도 된다고 여겼고, 출판사에서도 이렇게 하자 해서 이와 같이 나왔을 뿐이다. 책 하나만 서평으로 다룬다 하더라도, 어느 책 하나를 쓴 사람이 펼치는 ‘글누리(작품세계)’를 찬찬히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07. 인천 배다리 골목길에 살면서
  사람은 ‘골목길’에서 살 수 없다. 내가 쓴 다른 책 《골목꽃,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에서도 여러 차례 밝히지만, 사람은 ‘골목동네’에 산다. ‘길’은 오가는 자리이다. 그리고, 나는 ‘배다리 골목동네’에만 살지 않았다. 내가 산 곳은 ‘인천 골목동네’이고, 배다리 헌책방거리 한쪽에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를 세 해 반 열다가 시골로 삶터를 옮겼다.


 08. 사진 책 도서관 (235쪽)
  앞서 내 책 이름에서도 말했지만, 내 책이름도 이름이고, 내 도서관 이름도 이름이다. 이름을 옳게 읽지 못하고 옳게 말하지 못하는 일이란 더없이 슬프다. 내 도서관은 ‘사진책 도서관’이다.


 09. 최종규는 골목을 수집하는 사람이다 (236쪽)
  비평이나 감상은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비평과 감상을 들을 사람’ 눈높이에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란 이야기를 내 보금자리에서 사진으로 찍었을 뿐, 나는 어떠한 모습도 그림도 ‘수집’한 적이 없다.


 10.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 다룬 이야기는 대개 ‘잊혀 가는 것들’이거나 ‘이미 잊은 것들’이다. 그래서 책은 굴피집 사진과 지금은 원로가 된 복서들로부터 시작한다 (237쪽)
  거듭 말하지만, 비평이나 감상은 자유다. 그러나 ‘잘못 읽기’는 자유가 아니다. 내 책 《사진책과 함께 살기》는 잊혀진 이야기를 한 가지도 다루지 않는다. 내 책 《사진책과 함께 살기》는 오직 ‘사진’을 다룬다. 오직 ‘사진’을 다루기 때문에, 사진책과 사진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매우 대단한 《굴피집》이 첫머리에 들어갔고, ‘일본 사진문화’를 돌아보면서 ‘한국 사진문화’를 견주는 첫 책으로 ‘일본 사진쟁이가 찍은 한국 권투선수 이야기’ 사진책 이야기 또한 첫머리에 들어갈 만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제대로 읽어야지, 잘못 읽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굴피집》은, 내가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 다룬 37권 사진책 가운데 첫째 꼭지였으나, 《Korean Boxer》는 여섯째 꼭지이다. 여섯째 꼭지로 다룬 글은 맨 처음에 나오는 글이 아닌데, 왜 파란여우 님이 이렇게 글을 썼는지 아리송하다.


 11. 1967년에 나온 주한미군 기념사진 책 《더이상 우리를 슬프게 하지 말라》에는 주한미군 범죄 행위가 붙어 있다고 한다 (237쪽)
  주한미군 기념사진책 이름은 《7th BN(HAWK) 2nd ARTY》이다. 왜 엉뚱한 이름을 붙였을까? 《7th BN(HAWK) 2nd ARTY》라는 사진책을 이야기하다가, 끝자락에 오연호라는 기자가 쓴 《더이상 우리를 슬프게 하지 말라》라는 책 이야기를 살짝 곁들였다. 두 가지 책을 헷갈려서 섞으면 안 된다. 이 대목 또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마치 내가 엉뚱한 글을 쓴 사람처럼 되고 만다.


 12. 최종규는 헌책방 순례자다. 지금은 사라진 책이거나 품절된 책을 다루는 그는 이미 헌책방을 주제로 한 책을 펴냈다 (237쪽)
  나는 ‘헌책방 순례자’가 아니다. 나는 새책방도 가고 헌책방도 간다. 나는 “책방에 책을 사러 가는 사람”이다. 헌책방에 순례하러 다니지 않는다. 더구나, 나는 “내가 읽을 책을 사는” 사람이지, 사라지거나 없어진 책을 다루지 않는다.


 13. 《우리말과 헌책방》
  내 책 가운데 하나 이름을 또 잘못 적었다. 내가 한동안 내던 1인잡지 이름은 《우리 말과 헌책방》이다. 나는 ‘우리 말’처럼 띄어서 적는다. 왜냐하면, ‘우리 글’, ‘우리 옷’, ‘우리 문화’, ‘우리 강’, ‘우리 겨레’처럼 띄어서 적는 말법이 올바르기 때문이다.


 14.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 언급한 대부분 사진 책이 헌책방에서 찾은 책이다 (237쪽)
  앞에서 이 말이 잘못이라고 밝혔으니 덧붙이지는 않는다. 왜 이런 터무니없는 말을 《독과 도》라는 책에서 자꾸 이야기하는지 궁금하다.


 15.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까지 (237쪽)
 일본 ‘아이돌 화보집’ 《I♥U》를 말하는 듯한데, 이 사진책은 ‘실제 중학생’을 ‘아이돌 그라비아 사진책’으로 만드는 일본 사진문화를 돌아보면서, 한국에서 상업사진을 하는 이들이 사진책을 빚으려고 얼마나 애쓰거나 어떠한 눈길로 사진책을 빚는가 하는 이야기를 할 때에 다루었다.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이라니, 참 듣기에 남우세스럽다.


 16. 최종규가 최민식의 《HUMAN》을 두고 쓴 글이다 (239쪽)
  그러나, 이 따온글은 최민식 님이 손수 쓴 글이지, 최종규가 쓴 글이 아니다. 최종규가 쓴 글인지 최민식이 쓴 글인지 헷갈릴 만큼 책을 제대로 안 읽었는가.


 17. 케빈 카터 사진 이야기 (240∼241쪽)
  케빈 카터 님이 찍은 사진은 그이가 찍은 수많은 사진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 사진과 얽힌 이야기를 더 꼼꼼히 더 널리 더 찬찬히 헤아린 다음 고쳐쓰기를 바란다. 파란여우 님은 케빈 카터 님이 ‘어린 소녀’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적는데, 케빈 카터 님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지 ‘자원봉사자’가 아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곳에는 도움을 받아야 할 아이가 한둘이 아니라 수백 수천인데, 어느 한 아이만 도와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케빈 카터 님은 ‘사진을 찍으며 그곳 아이들을 돕는 사람’이다. 케빈 카터 님이 찍은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가슴속으로 따스한 사랑을 불러일으키면서, 그곳 아이들을 돕도록 이끄는 사람이다. 그 아이를 비롯해 다른 아이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돕는다’면 훨씬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을 테지만, 이런 ‘가설’은 함부로 들추지 않기를 빈다. ‘외신 전속 사진가’이든 ‘프리랜서 사진가’이든, 저마다 계약한 회사에 보내줄 사진을 찍는 사람이기에, 부자도 아니고 시간도 넉넉하지 않다. 사진가한테 왜 자원봉사자 노릇을 바라는가. 그곳에 있는 다른 자원봉사자가 이 아이를 알아보지 못한 일을 탓해야 하지 않는가. 아이를 돕지 않고 사진만 찍었다고 손가락질할 수 없다. 아이를 도울 어버이와 자원봉사자가 어디에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곧, 케빈 카터 님 사진을 파란여우 님이 이야기하면서 “사진 찍기에 앞서 사진 읽기가 안되는 현실을 개칸하는 최종규는 사진 학교의 꼬장꼬장한 훈장님 같다(241쪽)” 같은 대목은 하나도 올바르지 않다. 최종규는 케빈 카터 님 사진과 삶을 파란여우 님이 《독과 도》에서 적은 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최종규가 마치 이렇게 ‘훈계하는 훈장님’이라도 되는 듯 끼워넣는 일은 바람직하지도 옳지도 알맞지도 않다. 나는 케빈 카터 님 사진을 ‘파란여우 님 말처럼 비판’하지 않는다.


 18. 최종규의 책에선 회화적 이미지를 찾기는 어렵다. 요컨대 《사진책과 함께 살기》는 사진 생태학적 해석에 가까운 평론을 펼친다 (242쪽)
  모든 사진은 ‘회화’를 보여준다. 모든 사진은 ‘이미지’이다. 어떤 사진을 들여다보든 ‘회화 이미지’를 찾기 마련이다. 이러한 회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달리 느낀다. 그래서 나는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는 ‘주관 감상’을 따로 적지 않았다. 파란여우 님은 《사진책과 함께 살기》가 ‘주관 해석’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어떤 사진 어떤 책 어떤 작품’을 놓고도 ‘주관 해석이나 감상’을 달지 않았다. 부디, 내 책을 제대로 읽고서 제대로 이야기해 주기를 바란다. ‘주관 해석이나 감상’은 사진을 보는 사람들 몫이기에, 굳이 어떤 비평가나 평론가가 애써 안 밝혀도 된다. 시를 읽는 사람이 시를 느끼지, 평론가가 시를 느끼는가. 아니, 평론가가 느낀 시를 독자가 똑같이 느껴야 하는가. 평론가는 다른 대목을 말하는 사람이다. 시를 평론하든 사진을 평론하든 똑같다. 파란여우 님은 사진책을 평론하는 일을 너무 모르는구나 싶다. 더군다나,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서 다룬 여러 사진책 가운데 《Photograms of the year 1929》라는 사진책을 다룬 꼭지는 안 읽으신 듯하다. 다른 사진책에서도 어엿하고 번듯하게 숱한 ‘회화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데, 파란여우 님 스스로 못 느끼거나 안 느끼면서, 이처럼 말하는 일이야말로 ‘주관 해석과 감상’이라고 느낀다. 그나저나, ‘사진 생태학적 해석’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19. 우리나라 독자로부터 인기를 얻었던 에두아르 부바 사진 책 《뒷모습》도 벗은 사진을 표지로 삼았다 (244쪽)
  틀린 말이다. 프랑스에서 나온 이 사진책은 ‘발레하는 소녀’ 뒷모습이 표지로 들어간다(이 얘기는 내 알라딘서재에도 사진을 올리면서 밝힌 적 있다). 한국판을 펴낸 출판사에서 ‘한국 (남자) 독자 눈길을 사로잡아 책을 많이 팔려는 생각’으로 표지 사진을 바꾸었을 뿐이다.


 20. 결국 최종규가 말하는 사진의 정수란, 삶에서 그대로 보여주는 날것이자 삶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다. 최종규는 이럴 때 ‘사진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246쪽)
  파란여우 님 ‘주관 해석과 감상’을 존중하고 싶다. 《독과 도》라는 책은 틀림없이 파란여우 님 ‘주관 해석과 감상’으로 이루어진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말하는 ‘아름다운 사진’이란 “삶에서 그대로 보여주는 날것”이 아니다. “삶에 대한 한없는 애정”도 아니다. 또한, 이럴 때 “사진을 즐길 수 있”지도 않다. 나는 어느 사진책을 비평하거나 다루더라도 언제나 이야기하는데, ‘스스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만큼 사진을 찍는다’고 밝힌다. 다큐사진이든 상업사진이든 언제나 이와 같다. 사진기를 손에 쥔 이가 모델을 얼마나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마음결에 따라 사진이 달라진다. ‘사진 의뢰한 회사’에서 이래저래 조건을 붙인다 하더라도,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 매무새와 삶이 어떠한가에 따라 사진이 달라지지, 기계질에서 사진이 달라지는 일은 없다. 모델은 마네킹이 아닌 사람이니까. 사람 아닌 마네킹을 찍어도 똑같다. 애써 사람인 사진가가 사진을 찍어야 할 까닭이 없다면, ‘사진 의뢰하는 회사’는 왜 비싼값을 치르면서 여러 이름나거나 훌륭한 사진가를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맡기겠는가. 사진을 어느 사진가한테 맡기지 말고, 자동사진기로 찍어도 될 노릇 아닌가. 회사마다 스스로 사진을 찍으면 될 노릇 아닌가. 나는 ‘날것 사진’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날것을 찍으면 그냥 날것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스스로 즐기고 싶은 사진을 찍고 싶으면, 삶을 즐기고 사랑을 즐기면 된다. 스스로 좋아하고 싶은 사진을 찍고 싶으면, 삶을 좋아하고 사랑을 좋아하면 된다. 이런 이야기와 ‘날것’ 얘기는 한참 동떨어진다.


 21. 끝으로 덧붙이면, 《독과 도》 3부 〈사람을 찍는다는 것은 사랑을 찍는 것〉이라는 자리는 거의 다 내 책 《사진책과 함께 살기》를 놓고 쓴 글인데, 책 뒷날개에 붙은 “파란 여우가 탐닉한 책”에는 수전 손택 책이 실렸다. 꽤나 뜬금없구나 싶었으나, 내 책을 내 책 그대로 즐기지 못했구나 하고 느끼고 보니, 이렇게 뒷날개에 딴 사람 책을 적은 일이 외려 참 고맙구나 싶다.

 

..

 

http://blog.aladin.co.kr/hbooks/5700614

(에두아르 부바 사진책 <뒷모습>이 어떠한 책인가 하는 느낌글을 새로 썼다. 이 글을 함께 읽는다면, 파란여우 님이 내 '사진책'을 이야기하며 든 다른 책들 이야기란 너무 안 어울릴 수밖에 없다고 느끼실 수 있을까... 파란여우 님 또한 <뒷모습>이라는 사진책이 어떤 사진책인지 옳고 바르게 헤아리시기를 바란다. 한국 번역판 <뒷모습>은 표지부터 원본 프랑스책과 달리 잘못 나온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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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러리 앤 리브로 Library & Libro 2012.3
Library & Libro 편집부 엮음 / 도서관미디어연구소(잡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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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도서관과 라이브러리, 책과 리브로
 [책읽기 삶읽기 101] 도서관미디어연구소, 《라이브러리&리브로》 33호(2012.3.)

 

 

 


  도서관과 책을 이야기하는 잡지 《라이브러리&리브로》 33호(2012.3.)를 읽습니다. 2012년 3월에 33호이니 아직 얼마 안 되었지만, 이제부터 꾸준히 내놓을 수 있으면 머잖아 50호를 넘고 100호를 넘으며 200호를 넘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내놓은 책이기에 뜻있거나 값있지 않고, 새로 내놓는 책이기에 어설프거나 어수룩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책이든, 책을 일구는 사람들이 따사롭고 사랑스레 글 하나 빚을 수 있느냐에 따라 뜻이랑 값이 달라집니다.


.. 도서관은 독서실 정도의 개념을 훨씬 뛰어넘어야 한다. 지식을 탐구하는 곳인 동시에, 지식을 얻으려는 사람이 만나고 모이는 곳이 도서관이다. 이 두 속성을 공간적으로 푸는 과정에서 도서관 전체를 하나의 도시처럼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게 되었다 ..  (12쪽/독일 건축가 이은영)


  대학교에 문헌정보학과가 있습니다. 사서자격증이 있고, 나라 곳곳에 크고작은 도서관이 섭니다. 대학교에도 도서관이 있고, 중·고등학교는 입시지옥인 한편 크고작은 도서관을 이럭저럭 갖춥니다. 초등학교에 도서관 마련하는 일이 널리 퍼졌으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한켠에도 아이들 읽힐 책을 꽂곤 합니다.


  사람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자리에는 으레 도서관이나 책꽂이를 갖춥니다. 책으로 사람을 가르치고 책을 들어 사람을 배웁니다. 곧, 책 하나는 이야기 하나 담는 그릇이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틀과 흐름과 넋을 보여주는 길동무나 길잡이 구실을 함께 합니다.


  사람은 어린이일 때나 어른일 때나 배웁니다. 어린이도 서로서로 가르치고, 어른도 서로서로 가르칩니다. 나이 다섯 살이든 열다섯 살이든 마흔다섯 살이든 여든다섯 살이든, 싱그러이 살아가는 넋이라면 언제나 배우고 늘 가르칩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고마움과 즐거움을 누릴 때에는 무엇이든 기쁘게 배우고 예쁘게 가르칩니다. 오늘 하루 어제 하루 고맙고 즐겁게 누린다고 느끼지 못할 때에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어느 것도 가르치지 못해요.


  스스로 즐거울 때에 스스로 즐겁게 배웁니다. 스스로 고마울 때에 스스로 고맙게 가르칩니다. 어떤 지식이라서 배우지 않고, 어떤 지식이기에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떤 자격증을 배우지 않으며, 어떤 자격증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삶을 가르치고 삶을 배워요. 삶을 느끼고 삶을 좋아해요.

 

 


.. 좋은 시는 우리를 무감하게 길들이지 않고 매일 새롭게 아파하며 신생하게 한다 ..  (26쪽/이은정의 시읽기)


  날마다 즐거이 누릴 삶인 줄 느낄 때에는 시를 읽으며 내 넋이 온통 시가 됩니다. 언제나 고맙게 누리는 사랑이라고 느낄 때에는 그림 하나 읽으며 내 얼이 가득 그림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글 한 줄은 글 한 줄이 되어 즐겁습니다. 노래 한 가락은 노래 한 가락이 되어 기쁩니다. 그림 한 장은 그림 한 장이 되어 아름답습니다.


.. 서점에 가서 비닐에 포장된 이 책을 뜯어 보지 말자. 책값을 아까워 하는 사람은 영혼이 가난해진다 ..  (29쪽/류대성의 청소년책 읽기)

 


  논밭에서 땀흘리기를 아까워 할 때에는 곡식이든 푸성귀이든 제대로 얻지 못합니다. 땀방울 알뜰히 흘릴 때에 맛나게 먹을 곡식이랑 푸성귀를 거둡니다. 나무는 언제나 힘껏 길어올린 밥과 물을 가지마다 골고루 보내며 싱그러이 꽃을 피우고 소담스레 열매를 맺습니다.


  아이하고 보내는 나날을 사랑스레 여길 때에 아이가 씩씩하고 맑게 자랍니다. 아이하고 부대끼는 하루를 살가이 보듬을 때에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으면서 큽니다.


  책값을 아깝다 여길 때에는 책으로 일굴 넋이 말라비틀어집니다. 품값을 아깝다 여길 때에는 내 삶이 말라비틀어집니다. 아이하고 손 맞잡으며 마실을 다니거나 아이하고 밭고랑이 나란히 앉아 김매기를 싫어할 때에는 내 밥그릇이 말라비틀어집니다. 아이하고 고운 말 어여쁜 말 섞기를 귀찮다 여길 때에는 내 말이 말라비틀어집니다.

 


.. 지난 2월 24일 ‘손바닥TV’에 출연해서는 “시인이 시는 안 쓰고 왜 그런 곳에 가 있느냐고 하는데, 이게 모두 시”라며 웃었다 ..  (39쪽/송경동 시인 만나기)


  모든 하루가 모든 책입니다. 모든 삶이 모든 이야기입니다. 시가 아닌 삶이란 없습니다. 시로 태어나지 않는 삶이란 없습니다. 시로 빚지 못할 삶은 없습니다. 시로 영글 수 없는 삶이란 없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소설로 태어납니다. 모든 이야기는 인문학이든 과학이든 철학이든 다른 이름 다른 옷을 입고 태어납니다.


  부엌에서 도마질을 하며 시를 쓸 줄 알기에 삶을 쓸 줄 압니다. 아이들을 씻기고 아이들 기저귀를 빨래할 줄 알기에 시를 쓰며 삶을 누릴 줄 압니다. 아픈 몸과 마음을 달래며 끙끙 앓기에 시를 쓰고 삶을 읽을 줄 압니다.


  아이한테는 어버이 말 한 마디가 사랑밥입니다. 어버이한테는 아이 말 한 마디가 믿음밥입니다.

 


.. “이 책을 읽는 분들은 ‘이런 자리에서 이런 영어를 쓰면 안 되겠구나, 이렇게 쓰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생각보다 ‘나 스스로 내 삶을 담으며 사랑할 말을 이렇게 놓치거나, 잃거나, 버렸구나’ 하고 더 깊이 생각하는 넋으로 곱게 추스르면 좋겠습니다.” ..  (42쪽/《뿌리깊은 글쓰기》 소개)


  좋은 마음이 되지 않고서는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합니다. 좋은 넋이 되지 않고서는 좋은 밥상을 차리지 못합니다. 좋은 꿈이 아니고서는 좋은 말이 샘솟지 않습니다.


  삶을 책 하나로 꽃피우는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할까요. 삶을 책 하나로 갈무리하며 열매를 맺으려는 사람들은 어떤 꿈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할까요.


  다달이 나오는 《라이브러리&리브로》 33호(2012.3.)는 어떤 사람들 어떤 삶과 어떤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을까요.

 


.. 우리 도서관(서울시립 어린이도서관)의 요즘 동향을 보면 교과 과정에 연계된 책들이 가장 많이 대출된다. 다른 도서관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몇 학년과 연계된 문학 읽기라든가, 과학 교과서와 연계된 과학 원리와 같은 책들이 대부분이다. 통계를 보는 입장에서 문학이나 학습 원리를 순수하게 바라보았으면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  (84쪽/서울시립 어린이도서관 대표 김윤순)


  아이들이 학교 교과서를 더 잘 외우도록 돕는 부교재 같은 책을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린다 하면, 도서관이 설 뜻은 없다고 느낍니다. 아이들한테 지식을 외우고 점수를 따는 시험만 치르도록 하는 학교라면, 학교가 설 값어치는 없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이 아이들 삶을 사랑하며 아이들 꿈을 밝히는 책을 만나지 못한다면, 아이들 믿음과 이야기를 북돋우는 어버이하고 하루하루 예쁘게 누리지 못한다면, 아이들한테 도서관은 어떤 뜻인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며 동무를 곱게 사귀며 즐거이 어깨동무하지 않고서, 서로 따돌리거나 괴롭히거나 점수따는 겨루기를 일삼는다면, 학교란 이 지구별에서 아무 값어치를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98쪽짜리 조그마한 잡지 《라이브러리&리브로》 하나로 어떤 삶을 밝힐 만할까요. 조그마한 잡지 하나는 사람들 삶에 얼마나 스며들 만할까요. 조그마한 잡지 하나에 서린 이야기 하나는 우리들 아름다운 터전을 얼마나 따사로이 품을 만한 손길이 될까요.

 

  초등학교에 들어서는 ‘잉글리쉬 존’처럼, ‘코리아’ 아닌 한국땅이지만, 도서관보다는 ‘라이브러리’를 말해야 합니다. 책을 책이라 적기보다는 ‘冊’으로 적어야 맛이라 여기는 지식인이 꽤 많고, ‘book’으로 적는 기자가 무척 많으며, 그예 ‘리브로’를 이야기하는 책일꾼이 많습니다. (4345.3.16.쇠.ㅎㄲㅅㄱ)


― 라이브러리&리브로 33호 (도서관미디어연구소 엮고 펴냄,2012.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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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섯 인생 -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홍윤(물만두) 지음 / 바다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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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삶으로 좋은 이야기 피우는 좋은 책
 [책읽기 삶읽기 100] 물만두 홍윤, 《별 다섯 인생》(바다출판사,2011)

 


  스스로 짓고 싶은 삶을 지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키우는 덧없는 생각은 삶으로 짓지 못합니다. 가장 고우며 가장 빛나며 가장 착한 생각은 언제나 삶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어리숙하거나 어리석거나 어설픈 생각은 삶으로 짓지 못합니다.


  좋은 삶이란 따로 없다고 느낍니다. 내가 좋아하는 삶은 있으나, 좋으니 나쁘니 하고 가를 만한 삶은 딱히 없다고 느낍니다. 나 스스로 좋아하기에 내가 바라는 길로 꾸리는 삶이 있어요. 나 스스로 사랑하기에 내 온마음을 기울여 보살피는 삶이 있어요. 나 스스로 좋아하지 않는 나머지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는 삶이 있어요. 나 스스로 사랑하지 못하기에 이냥저냥 흘리고 마는 삶이 있어요.


  삶을 가꾸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라는 말이 있는데, 스스로 제 삶을 좋아할 때에 글을 쓸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으며,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속뜻을 담아요. 삶을 담는 글이기에 앞서, 삶을 좋아할 때에 글을 쓰는 나날이 돼요. 글은 삶을 드러낸다고 말하기 앞서, 글을 쓰려면 스스로 제 삶을 사랑하며 아낄 수 있어야 해요.


.. 10억으로 무얼 하겠는가. 10억을 번 다음에도 행복하지 않다면 말이다 … 낙오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게 어쩌면 누군가의 등을 밟고 올라서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 내가 남긴 날들보다 나를 기다리는 날들이여, 내가 너희를 더 기쁘게 맞이하마. 이제야 그걸 알다니. 나이 든다는 건 좋은 거란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  (14, 33, 217쪽)


  좋아할 수 있는 매무새라면 누구나 내 삶을 글로 담습니다. 좋아할 수 있고 아낄 수 있을 때에는 누구나 내 삶을 글로 차곡차곡 담으며 갈무리해요. 그러나, 좋아할 수 있는 자리를 넘어, 사랑하며 빛내려 한다면 한결 거듭나야 합니다. 이렇게 나 스스로 좋아할 만한 삶을 어떻게 일구고 싶은가 하고 꿈꾸어야 해요. 나 스스로 좋아하며 누릴 삶을 어떻게 짓고 싶은지 생각해야 해요.


  도토리 예배당 종기기 아저씨로 살아가며 할아버지가 된 권정생 님은 언제나 당신 마음밭에 씨앗을 심었어요. 그림책으로도 나오고 만화영화로도 나온 《강아지똥》은 다른 누구도 아닌 권정생 님 스스로를 사랑하며 빚은 글이에요. 이리 구르고 저리 뒹굴며 쓸모없다고 버려진 당신 몸뚱이라 하지만, 이 당신 몸뚱이를 어떻게 아끼고 사랑하며 좋아해야 할까를 생각하고 꿈꾸며 ‘강아지똥’ 하나를 빚었어요. 이 강아지똥이 밑거름이 되어 동시를 쓰고 동화를 쓰며 수필을 썼어요.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을 쓰고 《몽실 언니》를 쓰며 《우리들의 하느님》을 썼어요. 권정생 님 책을 읽는 사람은 많아도 권정생 님 사랑이 무엇인가 하고 함께 읽는 사람은 퍽 드문데, 스스로 가장 사랑하고 싶은 삶을 생각하며 누린 나날이 고스란히 깃든 글줄이라고 읽을 때에 내 마음밭에도 내 손으로 씨앗 하나 심을 수 있어요.


  내가 심을 내 마음밭 씨앗 하나는 내 삶을 가장 예쁘게 빛낼 씨앗 한 알입니다. 때로는 두 알이 될 수 있고, 어쩌면 석 알이나 넉 알이 될 수 있어요. 한 알은 내 삶을 북돋우고 한 알은 들꽃을 빛내며 한 알은 들새를 살찌울 씨앗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석 알 모두 내 배를 불리는 쪽으로 생각할 수 있어요. 어떻게 하든 좋아요. 맨 처음부터 가장 사랑스레 빛날 수 있고, 차츰차츰 고운 빛을 찾을 수 있으며, 느즈막하게 아리따이 빛나는 햇살을 나눌 수 있어요.


.. 안락사에 찬성한다. 아파 보지 않은 사람, 아픈 사람을 돌봐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 장애인을 배려한다고 하더니만 우리 구역 투표소는 계단이 많은 교회였다. 휠체어를 들고 가나, 업고 가나, 장애인은 사람도 아닌가. 장애인이 투표하는 곳에서는 비장애인도 투표할 수 있다. 장애인만 불편할까? 임산부, 노약자 모두 불편하다. 왜 모르는 걸까? … 다른 것보다 장애아 어머니의 마음만 갖는다면, 다리에 점점 힘이 빠져 가는 부모님 생각을 조금만 한다면 이건 분명 고치기 쉬운 일이다. 왜 모든 관공서와 은행 같은 편의 시설에 계단이 있는지 ..  (19, 26∼28쪽)


  날마다 얼마나 괴롭고 힘든 삶자락인가 하는 이야기가 아주 짙게 드러나는 글을 쓴 미우라 아야코 님이 있어요. 한창 눈부시게 빛난다는 아가씨 나이에 그만 드러눕고 말아 일곱 해를 내리 침대살이만 했다던가요. 이제 죽나 저제 죽나 하고 기다려야 하던 눈부신 젊음이었다고 하는데, 당신을 침대에서 일으켜 꽤 기나긴 해를 살아가며 옆지기를 만나고 책을 내놓으며 문학을 일구고 편지를 쓰도록 이끈 힘은 병의원 처방이나 수많은 약품이 아니라고 했어요. 아픈 몸이건 안 아픈 몸이건, 당신이 이 땅에 태어나 이렇게 숨을 쉬고 햇살을 먹으며 바람을 느낄 수 있는 하루란, 얼마나 대단히 고마운 선물이며 아름다운 삶인가 하고 느끼며, 마음속으로 깊이 사랑하고 꿈꾸었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다만, 미우라 아야코 님은 침대에서 일어나 걷고 밥먹으며 여행까지 다닐 수 있었다 하더라도, 이렇게 움직이고 나면 며칠을 드러누우며 쉬어야 했답니다. 이레나 보름을 내리 쉬며 몸을 달래는 일이 잦았다고 해요. 아픈 몸으로 수필을 쓰고 소설을 씁니다. 아픈 몸으로 사랑을 노래하고 믿음을 꿈꿉니다.


  문득 돌아보면, 미우라 아야코 님은 당신 몸이 씻은 듯이 낫기까지는 바라지 않았구나 싶어요. 아픈 몸이든 튼튼한 몸이든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고 여겼으니까요. 아픈 몸이기 때문에 당신 몸을 더 사랑할 수 있다고 깨달았으니까요. 아픈 몸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렇게 아픈 동안 당신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를 더 사랑스레 헤아리며 어깨동무하는 길을 보았다고 하니까요.


  누구라도 몸이 아파 드러누워야 한다면 괴롭겠지요. 나도 몸이 아파 집일을 못하며 꼼짝없이 끙끙 앓아야 하면 괴롭고 힘듭니다. 누가 이 집일을 맡아서 하나 걱정스럽고, 아픈 몸을 쉰다며 드러눕는 일이 안 아픈 몸으로 온갖 집일을 맡아서 할 때보다 훨씬 짐스러우며 무겁다고 느껴요. 그런데, 이렇게 무겁고 짐스러우면서, 어느 한편으로는 몹시 홀가분하고 기뻐요. 내 곁에 좋은 사람이 있어 나를 보살펴 주고, 집일이나 집살림을 거느리니까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제 몫과 길과 삶을 예쁘게 건사하니까요.


  줄 수 있는 사랑은 참 좋은 사랑입니다. 받을 수 있는 사랑 또한 참 좋은 사랑입니다. 돈이 많아 돈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도 좋은 사랑이요, 돈이 없어 돈을 나누어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좋은 사랑이에요. 가난한 살림이란 얼마나 좋은 사랑인가요. 가멸차서 돈을 나누어 주고 싶은 사람이 기꺼이 돈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좋은 빛줄기이거든요. 가난한 살림인 탓에 둘레에서 돈이나 여러 가지를 기쁘게 얻는다면, 받으면서 사랑스럽고, 나한테 주는 사람도 사랑스러운 아름다움을 느낄 테니, 서로 즐거운 나날이 되리라 생각해요.


.. 내가 만든 서재는 내 얼굴이다. 내 얼굴에 남의 눈과 코를 붙일 수는 없는 일이다 … 우리 나라의 장애인 문제는 가정에서부터 생긴다. 장애인 자식을 귀하게 여기면 사회 또한 그들을 귀하게 여길 것이다 … 이사 오면서 옛날 집 사진을 제대로 찍어 놓지 못한 게 제일 안타까웠다. 철문이 나무문으로 바뀔 때도 못 찍고, 장독대도, 펌프가 있던 수돗가도, 아궁이도, 쪽마루도 못 찍었다 … 그동안 안 읽은 책이 얼마나 많을까. 그 많은 책 중에 얼마나 많은 보석이 숨어 있을까. 그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고 빛내지 못한 것이 가슴에 박혀 아프다.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좋은 독자가 아니어서 죄송하다고. 그래도 제발 책을 쓰시라고 말씀드리면 너무 뻔뻔할까? ..  (25, 195, 226, 321쪽)


  창호종이 문살로 아침햇살을 느낍니다. 저 멀리 멧등성이 너머로 새벽마다 보얀 빛이 서립니다. 창호종이 바른 문을 안 열면 희뿌윰히 밝다가는 노랗게 되는 결을 살짝 느끼고, 이내 온 방이 환해지는 빛을 느껴요. 창호종이 바른 문을 열고 대청마루에 앉아 저 먼 멧등성이를 바라보면, 새까만 밤하늘이 보라빛으로 물들다가는 노르스름한 빛깔로 바뀝니다. 이내 발그스름해지다가는 새하얀 빛으로 젖어들고, 시나브로 파아란 하늘이 됩니다. 밤하늘에서는 똑같이 시커멓게만 보이던 구름이 하얀 솜빛이 되는 모양새를 느낍니다.


  밤이 있어 아침이 있습니다. 달이 있어 해가 있습니다. 풀싹이 있어 풀꽃이 있습니다. 열매가 있어 씨가 있습니다. 사내와 가시내는 서로 좋은 짝꿍입니다. 왼손과 오른손은 서로 예쁘게 어울립니다. 아이와 어른은 서로서로 사랑스러운 님입니다. 추운 겨울을 지나 따사로이 누리는 봄입니다. 후끈후끈 달아오른 여름을 지나 시원한 산들바람 보드라이 누리는 가을입니다.


  하루하루 기쁜 꿈입니다. 언제나 좋은 이야기밭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사랑입니다. 늘 빛나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모든 삶은 어여삐 책입니다.


.. 책 사는 돈은 아깝지 않은데, 나 혼자만 보는 게 아까울 때가 있다 …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제목도, 주인공도, 줄거리도 기억 못하게 될지언정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 냄새, 내 기억의 편린 한 조각만 남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내가 책을 통해 얻으려는 것은 어떤 지식도 지혜도 경험도 아닌 나 자신과의 소통, 내 과거와의 만남이다 … 내가 바라는 건 좋은 작품뿐이다 … 책만으로도 좋았던 그때, 아무것도 바라지 않던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사랑받는 것보다 행복하다니까 ..  (44, 46, 265, 273쪽)


  물만두 홍윤 님이 쓴 글을 갈무리해 엮은 《별 다섯 인생》(바다출판사,2011)을 읽습니다. 아픈 몸으로 살아낸 마지막 발자국을 담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문득, 홍윤 님이 아프지 않은 몸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고 할 때에도 이렇게 글을 썼을까 궁금합니다. 아프지 않은 몸으로 글을 썼다면 어떠한 결로 어떠한 꽃을 피우는 삶이었을까 궁금합니다.


  아픈 몸이요 아픈 삶이기에 마지막에 ‘안락사’로 느긋하게 쉬도록 해 줄 수 있는 일을 나쁘게 볼 수 없다는 글줄을 읽다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걷는 길’을 받아들여야겠지만, 나는 ‘안락사’를 받아들일 마음이 없습니다. 나는 꿈을 꾸는 얼굴로 조용히 잠들어 숨을 거둘 생각이거든요. 내 곁 아픈 사람이 아파 괴롭다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힘들지 않습니다. 내가 아파 괴로울 때에 내 곁에 있는 사람이 힘들어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아플수록 하루하루가 더 고맙습니다. 힘들수록 한 시간 한 분 한 초가 더 애틋합니다.


  괴로운 몸이 되는 까닭은 하루라도 더 살고 싶기 때문이에요. 괴롭게 몸부림치는 까닭은 한 분 한 초라도 더 버티고 싶기 때문이에요. 나는 살 만큼 살고서 조용히 삶을 놓고 싶어요. 삶과 다른 누리로 새롭게 이어가고 싶어요. 내 곁 좋은 사람들을 오래오래 바라보며 마음으로 담고 싶어요. 아이들 똥오줌기저귀 빨래하는 일이란 수월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종이기저귀를 쓸 수 없어요. 날마다 내 두 손과 몸뚱이는 아이들 똥오줌 냄새 짙게 배요. 첫째하고 네 해를 똥오줌 냄새를 맡았고, 둘째하고 앞으로 세 해 더 똥오줌 냄새를 맡겠지요.


  좋은 삶을 좋은 사랑으로 빛내고 싶어요.


.. 다른 건 다 지나쳐도 아버지 생신만은 챙겨야 한다. 왜냐하면 울 아버지가 삐지면 무섭기 때문이다 … 아침부터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던 엄마는 활짝 핀 꽃이 눈에 띄어 집에만 있는 내게 보여준다며 사진을 잔뜩 찍어 오셨다 … 내가 안 봐도 감나무에는 감이 열린다 ..  (78, 184, 264쪽)


  수필책이라 할 《별 다섯 인생》을 가만히 덮으며 생각합니다. 홍윤 님은 어떤 꿈을 꾸며 살았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합니다. 아마, 대단하다 싶은, 또는 거룩하다 싶은, 아니면 놀랍다 싶은 꿈을 꾸었을까 안 꾸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바라보는 눈길에 따라 다를 테지만, 삐지는 아버지를 생각하는 삶은 ‘보잘것없’거나 ‘수수하’다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삐짐쟁이 아버지를 생각하는 삶이 참 대단하고 거룩하며 놀랍다고 느껴요. 아침에 쓰레기 버리러 나간 어머니가 꽃 사진 찍어 오는 모습을 생각하는 삶은 ‘하찮’거나 ‘흔하’다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꽃송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삶이 참 예쁘고 사랑스러우며 믿음직하다고 느껴요.


  홍윤 님이 애써 들여다보지 않아도 감나무에는 감꽃이 피고 감잎이 흐드러지며 감열매가 맺습니다. 홍윤 님이 모르는 봄꽃이 온 들판과 멧자락에 가득합니다. 홍윤 님이 굳이 봄들을 누비며 냉이와 달래와 쑥과 씀바귀를 캐거나 뜯지 않더라도, 훙윤 님 어머님이 저잣거리에서 소담스레 장만해서 소담스레 된장국 끓여 내놓을 수 있어요.


  좋은 삶이고, 좋은 사랑이며, 좋은 글입니다. 좋은 사람이며, 좋은 이야기이고, 좋은 책입니다. (4345.3.12.달.ㅎㄲㅅㄱ)


― 별 다섯 인생 (물만두 홍윤 글,바다출판사 펴냄,2011.12.13./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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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 -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책으로는 삶을 배우지 못한다
 [책읽기 삶읽기 95] 장정일,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마티,2011)

 


 소설쓰는 장정일 님이 내놓은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마티,2011)을 읽습니다. 1권에 이은 2권이니 3권이나 4권도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다른 이가 쓴 소설을 퍽 많이 읽습니다. 소설을 비롯해 온갖 책을 꽤 많이 읽습니다. 모든 갈래 수많은 책을 읽는지 어떤지는 잘 모릅니다만, 문학책 테두리에서만 책을 읽지는 않습니다.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은 장정일 님이 읽고 나서 당신 느낌을 밝힌 글을 그러모은 책입니다. 이른바 ‘독서일기’입니다. ‘전문서평’이나 ‘책 비평’이 아닌 ‘읽은이 느낌’을 풀어놓는 글입니다. 서평이나 비평이 아닌 만큼, 책 하나를 둘러싼 장정일 님 생각을 홀가분하게 들려줄 수 있습니다. 서평이나 비평에 매이지 않는 만큼, 책 하나를 한껏 즐거이 돌아보거나 살피거나 말할 수 있습니다.


.. 인문학과 고전이 대학의 울타리를 박차고 나왔다는 것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대학이 죽었다는 것 … 한국인들은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물론이고 대학교에서마저 ‘인간이 자라는’ 교육을 받아 보지 못했다. 즉 시험지옥 속에서 점수 벌레로 사육되면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 삭제된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  (22, 23쪽)


 책을 읽는 사람은 스스로 읽은 책을 두고 ‘좋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안 좋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돈이 아깝구나’ 하고 말할 수 있으며, ‘내 동무나 이웃더러 읽으라 할 수는 없겠네’ 하고 말할 수 있어요.

 

 따로 틀에 매이지 않고 내 느낌을 말하기에 장정일 님 독서일기는 마음 가벼이 읽을 만합니다. 다만, 장정일 님 독서일기를 읽는 사람도 장정일 님처럼 마음 가벼울 때에 홀가분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독서일기를 읽으면서 내 생각을 어떤 틀에 가두려 하지 않을 때라야 즐거이 읽을 수 있습니다. 내 넋을 가꾸면서 내 삶을 일구려 하는 마음가짐을 건사해야 비로소 책읽기를 예쁘게 누려요.


.. 기업이 제공한 친절에 중독되었던 만큼 당신은 기업에 휘둘리기 쉬운 ‘봉’이 된다 … 1921∼29년 즈음엔 기업인들이 전체 대학 이사회의 66퍼센트를 차지했다. 이때는 미국 자본주의가 거대 자본가 중심으로 통합·재편된 때와 겹치는데, 그때부터 거대기업들은 후원을 무기로 좌파 지식인을 색출하고 반자본주의적이라고 보이는 사회과학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 자신들의 계급이익에 유리하도록 철학·심리학·인류학·정치학을 통제했다 ..  (34, 79쪽)


 책 하나를 읽거나 책 여럿을 겹쳐서 읽은 느낌을 풀어놓은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장정일 님은 이 느낌글을 쓰는 힘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하고.

 

 장정일 님은 책을 읽으면서 ‘책 읽은 느낌 적는 글’을 쓰는 힘을 얻었을까요.

 

 사회를 읽고 정치를 읽고 경제를 읽고 문화를 읽고 언론을 읽고 문학을 읽고 교육을 읽는 눈썰미나 눈길이나 눈높이는 ‘다른 책을 읽으’면서 얻었을까요.

 

 책을 읽으면서 얻은 힘이나 눈썰미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며 문득 깨달은 대목이 있을 테고, 책에 밝힌 이야기가 밑거름이 되어 비로소 알아챈 대목이 있겠지요. 그러나, 책으로 얻은 힘이나 눈썰미라 할 만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곧, 장정일 님 스스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몸부림으로 온누리를 읽고 지구별을 헤아릴 수 있구나 싶어요.

 

 삶을 바탕으로 삶터를 읽습니다. 삶을 발판으로 사람을 읽습니다. 삶을 거름으로 삼아 사랑을 읽습니다.


.. 자신의 정치적 대리인을 내세우는 데 실패한 저소득층은 오페라 하우스와 같은 과시적인 문화 시설을 짓기 좋아하는 정채 결정자들의 결정을 바꾸지 못한다 … 황우석 파동은 대한민국 국민을 줄기세포 전문가로 만들고 과학 논문 검증가로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생명 윤리’에 대한 논의는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 교육에서 아이의 선천적인 능력보다 후천적인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용인되는 사회에서라면, 애초부터 ‘슈퍼 베이비’를 만들려는 시도가 지탄받아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  (131, 157, 158∼159쪽)


 책으로는 삶을 배우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책으로는 책을 배운다고 느낍니다.

 

 책에 깃든 이야기를 읽으며 비로소 사람들 살아가는 다른 이야기에 귀기울이면서, 삶과 꿈과 넋과 사랑을 헤아리는 실마리를 얻는다고 느낍니다.

 

 똑같은 줄거리 담은 책이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읽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살아가니 다르게 읽을밖에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른 터전에서 읽으니, 다르게 헤아릴밖에 없습니다.

 

 똑같은 줄거리 담은 책을 누군가는 멧새 노래하는 숲속에서 읽고 누군가는 자동차 빵빵 소리 시끄러우면서 배기가스 자욱한 한길에서 읽는다고 생각해 보셔요. 같은 사람이 이러한 터전에서 읽을 때, 다른 사람이 이와 같은 터전에서 읽을 때, 똑같은 줄거리 담은 책은 그때그때 어떻게 스며들까요.

 

 갓난쟁이하고 하루 내내 부대끼는 사람이 읽는 책, 공무원이 책상맡에서 딱히 할 일이 없어 슬쩍 펼치는 책, 서울로 일하러 가는 서울 변두리(인천, 부천, 수원, 의정부, 구리, 고양, 용인, 성남 같은) 사람들이 지옥과 같다는 전철에서 읽는 책, 고속도로를 달리는 시외버스에서 읽는 책, 회사원이 주말에 도서관에 나들이 가서 읽는 책, 이런 여러 가지 책은 얼마나 같거나 다를 만할까요.


.. 다산의 모든 저작은 유배지라는 열악한 환경과 마음의 괴로움 속에서 쓴 것이다. 그런데 그 초인적인 노력이 한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실학을 설명할 때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 두 아들에게 독서 이외의 다른 살길을 찾아보라고 길을 터주지 못한 것도 실학을 좀더 냉정하게 평가하도록 만든다 … 독서대국! 아마 그때(1970년대)는 여성지가 그 임무를 맡았나 보다. 농담이 아니라 윌리엄 골딩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해, 어떤 여성지는 그의 중편인 〈황제특명전권공사〉를 본문 가운데 별도의 페이지를 만들어 넣기도 했다. 요즘의 여성지는 어떤지…… ..  (222, 266∼267쪽)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보금자리를 튼 터전에서 몸으로 배운다고 느낍니다. 삶을 부대끼며 삶을 배웁니다. 사람을 만나며 사람을 배웁니다. 일을 하며 일을 배웁니다. 놀이를 즐기며 놀이를 배웁니다. 설거지를 하며 설거지를 배웁니다. 빨래를 하며 빨래를 배웁니다. 호미질을 하며 밭을 배웁니다. 책을 읽으며 책을 배웁니다. 노래를 부르며 노래를 배웁니다. 사진을 찍으며 사진을 배웁니다.

 

 글쓰기를 다루는 책을 읽는다면 ‘글쓰기 다루는 책’을 배울 뿐, 글쓰기도 책도 배우지 못합니다. 스스로 글을 써야 글을 배웁니다. 책읽기 드러내는 책을 읽으면 ‘책읽기 드러내는 책’을 배울 뿐, 책읽기도 책도 배우지 못해요. 스스로 책을 읽어야 책읽기나 책을 배웁니다.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책을 읽은 느낌을 책 하나로 그러모읍니다만, 이 책에는 ‘책 읽은 느낌’을 애써 담지 않습니다. 책 하나에 비추어 ‘장정일 님 스스로 이 땅에서 부대낀 삶과 꿈과 사랑’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까, 읽고 싶으면 읽는 책입니다. 그러니까, 책은 안 읽어도 됩니다. 온누리를 배우고 싶으면 온누리를 내 가슴으로 끌어안으면서 살아가면 됩니다. 책을 속깊이 알고 싶으면 독서일기 아닌 ‘책’을 읽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나는 장정일 님 책을 왜 읽었을까요? 한 마디로 갈무리하자면, 장정일 님이 살아가는 매무새를 헤아리고 싶어 이 책을 읽었습니다. (4345.2.2.나무.ㅎㄲㅅㄱ)


―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 (장정일 씀,마티 펴냄,2011.8.5./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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