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풀무질 - 동네서점 아저씨 은종복의 25년 분투기, 행복한아침독서 추천도서
은종복 지음 / 한티재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204


책도둑이 책손으로 바뀌는 ‘풀집’이 있다
― 책방 풀무질 : 동네서점 아저씨 은종복의 25년 분투기
 은종복 글, 최종규 사진
 한티재, 2018.4.1.


  자그마한 책집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자그마한 곳은 아닙니다만, 참말로 자그마해서 한 사람이 서도 차고, 두 사람이 서면 꽉 차며, 세 사람이 서면 몸을 틀 수 없는데, 너덧 사람이 서면 그야말로 옴쭉달싹 할 수 없던 곳입니다.

  어떻게 자그마한 책집이 책장사로 살림을 꾸릴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천 평이나 이천 평쯤은 되어야 책을 넉넉하게 꽂고 걸상을 널널하게 두어 손님을 잔뜩 끌여들어 장사를 잘할 만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어요.


남쪽은 사회주의를 안을 수 있는 민주정부가 들어서야 하고 북쪽은 자본주의를 품을 수 있는 사회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 둘째는 남북 모두 군대를 없애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미쳤다고 말을 할 것이다. 중미에 있는 코스타리카는 군대가 없다. (210쪽)

코스타리카는 500만 명이 안 되는 작은 나라다. 한반도 남녘은 5천만이 넘고 남북이 갈라져 있어서 그 나라와 똑같이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삶도 바뀌지 않는다. 투표장에 나가는 마음이 기쁘고 즐거우려면 ‘테러방지법’ 같은 백성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법을 더 만들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는 교육이 있어야 한다. (196쪽)


  자그마한 책집을 꾸린 일꾼은, 젊어서 소설쓰기를 꿈꾸었다고 합니다. 자그마한 책집지기는, 마음으로만 소설쓰기 꿈을 품으면서 틈을 내어 쪽글을 씁니다. 원고종이로는 서너 쪽, A4종이로는 한 쪽이 될 글을 씁니다. 짤막하게 쓰니 쪽글이요, 이 쪽글을 100장씩 200장씩 뽑아서 책손한테 나누어 줍니다. 책집 곁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는 책손한테도, 먼길을 마다 않고 찾아오는 책손한테도 쪽글을 건넵니다.

  작은 책집지기가 쓰는 쪽글은 대수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읽을거리가 얼마나 넘치는데요. 신문도 많고 책도 많습니다. 더욱이 책집 곁에 있는 대학교에는 교수님도 많습니다.

  그런데 숱한 신문이며 책이며 교수님이며 지식인이 있으나, 우리 삶터 구석구석을 못 짚을 때가 있고, 안 건드릴 때가 있습니다. 섣부른 소리로 여기거나 이 나라에는 안 어울린다고 여겨서 손사래치는 글도 있어요. 작은 책집지기는 책으로 마주하는 모든 이웃하고 쪽글을 나눕니다. 책을 읽어서 생각을 새롭게 지펴도 좋다고 여기고, 쪽글을 쪽틈 내어 읽고서 생각을 새롭게 밝혀 주기를 바랍니다.


얼마 앞서 프랑스에 다녀온 일이 있었다. 도시 골목마다 책방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프랑스는 완전도서정가제를 20년도 전부터 해 오고 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나라에서는 책방을 새로 열려고 하면 나라에서 우리나라 돈으로 10억 원을 10년 거치, 10년 상황, 무이자로 빌려준다. 책방을 해서 돈을 많이 벌거나 건물을 사는 일은 없지만 책방을 한다고 망하는 일도 없다. (205쪽)

사람이 꼭 책을 읽어야 세상이 맑고 밝아지고, 스스로가 맑고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대학 앞에 책방이 없다는 것은 그 나라가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173쪽)

사람들이 읽지 않으면 책이 더 이상 나오지 않듯이, 사람들이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싸게 사면 동네책방은 사라진다. 동네책방이 사라진 동네, 동네에 복덕방·머리방·소주방·전자놀이방만 보이는 나라는 좀 슬프지 않은가. (174쪽)


  《책방 풀무질》(은종복, 한티재, 2018)을 읽습니다. 서울 성균관대 곁에 있는 책집 〈풀무질〉 이야기를 담은 자그마한 책입니다. 작은 책집 이야기를 작은 일꾼이 쓰고, 작은 출판사에서 꾸렸습니다.

  자그마한 책에 깃든 이야기는 자그마한 목소리입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적은 글이 아니라, 가볍고 산뜻한 봄바람처럼 나긋나긋하게 스며들 만한 목소리로 적은 글입니다.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면서 쓰고 나누는 글이 아닌, 우리가 저마다 제 삶자리에서 조용히 돌아보면서 생각을 밝혀서 우리 보금자리하고 마을을 곱게 지어 보자는 뜻을 나누는 글입니다.


지금 학생들은 돈 많이 주는 기업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영혼도 팔 수 있다고 달려든다. 이것이 노예가 아니고 무엇인가.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이런 노예를 만들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학령공부는 떨어져 대학엔 못 들어간다. 대신 사람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찾는다. 하늘과 바람과 땅과 구름과 강과 바다 속에서 배우며 자라서 아이들 마음은 따뜻하다. (149쪽)


  《책방 풀무질》을 얼핏 읽는다면 목소리가 세지 않느냐고 여길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군대를 없애자’는 이야기라든지 ‘제도권학교로는 안 된다’는 이야기라든지 ‘대학교가 대기업 밑을 핥는 듯한 장사판이 된다’는 이야기는 매우 세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책집 풀무질 일꾼은 왜 이러한 이야기를 쪽글로 써서 책이웃하고 나누려고 할까요?

  풀무질 일꾼 은종복 님은 스스로 ‘풀벌레’라는 이름을 씁니다. 풀벌레로서 풀숲에서 살아가며 바라보는 삶이 있습니다. 풀벌레가 작은 풀잎 하나로 제 숨결을 잇고 풀노래를 부를 수 있듯, 우리가 저마다 어떤 보금자리를 짓고 어떤 마을을 가꾸고 어떤 나라를 품을 적에 늘 아름다울 만한가를 생각해 봅니다. 혼자 풀숲을 차지하려는 풀벌레가 아닌, 온갖 풀벌레가 알맞게 자리를 누리면서 갖은 풀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쁨을 헤아려 봅니다.

  이러면서 묻지요. 군대가 꼭 있어야 하는가 하고, 군대에 얼마나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지를 생각해 보자고, 평화하고 군대는 얼마나 맞닿느냐고, 나라마다 서로 군대를 차츰 줄이거나 아예 없애면 온나라가 얼마나 넉넉한 살림이 되어 즐거울 수 있을까 하고, 못 이룰 만한 일이 아닌 해 볼 만한 꿈이라고 생각해 보자고.


권정생 선생님은 며칠 뒤 내 꿈에 나타났다. “선생님, 뭐하세요?” “응, 종복이 왔나. 여기다 호미를 빠뜨렸네.” 나는 잠시 주춤하다 바지를 걷고 물 속에 들어가서 호미를 찾아 드렸다. 선생님은 고맙다고 하면서 멀리 걸어갔다. 그러다 다시 발길을 돌려 나에게 오셨다. “이것은 자네가 써야 할 것 같네. 좋은 것이니까 소중하게 간직하게.” (99쪽)

나는 글을 쓸 때 세 가지를 생각한다. 첫째는 초등학교 5학년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쓴다. 둘째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 쓴다. 셋째는 A4 한 장 분량으로 짧게 쓴다. (126쪽)


  제가 〈풀무질〉이라는 책집을 처음 만나던 무렵, 이곳 아이는 매우 어렸습니다. 〈풀무질〉 책손으로 이곳을 드나드는 동안 학교에 처음 들었고, 졸업장을 받지 않는 학교에 다녔으며, 어느새 스무 살이 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동안 책집지기는 곁님을 만나고 아이를 낳으며 살림을 돌보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모르던 살림을 보았고, 배우는 살림이 늘었으며, 하나하나 맞아들이는 새로운 길에서 얻은 즐거움이 새삼스레 쪽글 이야기로 태어났습니다.

  풀무질지기 풀벌레 님은 ‘한국말을 아름답게 살려서 글을 쓴다’고는 여길 수 없습니다. 풀벌레 님릉 스스로 한국말을 아름답게 살려서 쓴다고 밝힙니다만, 아직 아름답게 살려서 쓴 글은 아닙니다. 다른 글이에요. 어떤 글인가 하면, ‘한국말을 아름답게 살려서 쓰고 싶은 글’입니다. 늘 꾸준히 새로 배워서 글을 쓰려고 합니다. ‘아름다운 글’이 아닌 ‘아름답고 싶은 글’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풀벌레 님이 쓰는 글은, 집과 마을과 나라가 ‘아름답게 나아가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담은’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가 공기업을 사기업으로 만든 것이나 노동유연화를 한다면서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많은 세상을 만든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제주에 해군기지를 만들기로 한 것이나 평택에 미군기지를 만든 것, 한국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것, 국가보안법을 없애지 못한 것, 이라크에 군인을 보낸 것을 생각하면 분을 참을 수 없다. 물론 제주 해군기지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마무리를 했지만 그 계획을 세운 것은 노무현 정부다. (86쪽)


  책집지기가 목소리를 냅니다. 책집지기가 쪽글을 써서 나누는 글은 읽는이가 200∼300쯤 됩니다. 신문 구독자 숫자에 대면 턱없이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이 팔리는 책에 대어도 매우 적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작고 낮은 목소리로 씨앗을 뿌립니다. 책으로 읽는 눈을, 책집에서 바라보는 눈을, 곁님하고 아이랑 살림을 지으면서 배운 눈을, 대학교 옆자리에서 오랜 나날 책집을 꾸리며 지켜본 눈을, 맑은 마음인 책이웃한테서 맞아들인 눈을, 이 나라가 평화롭게 거듭나기를 바라는 눈을, 한 줄 두 줄 찬찬히 적바림해서 씨앗을 뿌립니다.


혹시 그가 이 글을 읽고 책방에 다시 와서 “제가 1994년 봄에 시집을 훔쳤다가 돌려준 사람이에요!”라고 말을 하면 내 마음이 어떨까. 그렇게 마음이 고우니 아마 좋은 시인이 되었으리라. 나는 이런 힘을 받고 책방 풀무질을 힘차게 꾸린다. 책방에서 마음 다치는 일이 있으면 그를 떠올리고 마음을 달랬고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짓고 혼잣말을 한다. “그래도 양심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 책방에 그처럼  눈빛 맑고 목소리 고운 사람들이 더 많이 오잖아.” (40쪽)


  자그마한 책집인 〈풀무질〉인데 이곳에 와서 책을 훔치는 이가 곧잘 있다고 합니다. 먹고살기 얼마나 팍팍한 나라이면 작은 책집에까지 와서 책을 훔쳐다가 되팔아 돈을 벌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요, 제법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책도둑 가운데 어떤 이가 ‘훔친 책을 돌려주려’고 찾아왔으며, 나중에는 ‘책을 사 가는 손님’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책도둑이 책손으로 바뀌지는 않았다지만, 책도둑이 책손으로 바뀔 수 있는 곳이라면, 작은 책집이 품은 책을 다시 돌아보고 새로 헤아리며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하지 싶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책을 장만해서 어떻게 읽을 적에 즐거울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어떤 삶을 지으면서 책 하나를 곁에 두어 어떤 꿈을 품을 적에 아름다울까요? 우리는 한 손에 무엇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무엇을 쥐는가요?

  책집지기 풀벌레 님은 언제나 “맑고 밝게”를 말합니다. 스스로 맑고 밝게 살기에 “맑고 밝게”를 말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책집지기 풀벌레 님 스스로 “맑고 밝게”를 소리내어 입으로 말하는 동안 맑고 밝게 생각하고 꿈꾸며 책살림을 짓겠다는 길을 걷습니다. 꿈을 소리내어 말하면서 꿈길로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그리고 이 꿈을 다시 쪽글로 옮기면서 책이웃 모두한테 다 같이 아름다운 꿈길로 어깨동무하면서 나아가자는 뜻을 들려줍니다.

  책도둑이 책손으로 바뀌는 ‘풀집’처럼, 이 나라 사람들 마음에 고운 숨결이 흐르는 ‘풀나라’가 될 수 있기를 빌어요. ‘풀마을’이 되고 ‘풀별’이 되기를 빕니다. ‘풀집’도 ‘풀누리’도 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8.4.1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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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헌책방 - 모리오카 서점 분투기
모리오카 요시유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한뼘책방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201


책 하나 쥐고 가볍게 이야기꽃
― 황야의 헌책방
 모리오카 요시유키/송태욱 옮김
 한뼘책방, 2018.1.25.


나는 생활비를 삭감하더라도 예산을 초과해서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에도 시대의 책이 길거리에 나뒹굴고 있는 진보초는 그것만으로도 굉장하다. (43쪽)

카페 리오의 종업원에게 임시 수입 5만 엔이 생겨 전부터 구하고 싶었던 책을 구입한 경위를 이야기하니 의외로 “그렇게 책을 사 읽어서 무얼 하려고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48쪽)


  일본 도쿄에서 ‘모리오카 서점’을 꾸리는 분은 처음부터 ‘책 한 가지만 파는 곳’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처음에 온갖 책을 잔뜩 들여놓지도 않았다고 해요. 처음에는 책하고 오랜 골목길을 좋아하는 나날을 누렸고, 이러다가 도쿄 진보초에서 오래된 헌책집에서 일자리를 얻어 여러 해 동안 책집지기 일을 익혔다고 합니다. 이 같은 길을 거쳐 혼자 책집을 내려는 뜻을 펴 보았고, 유럽으로 날아가 ‘책집에 놓을 사진책을 짐수레 가득 장만해’서 일본으로 돌아오기도 했다지요.

  그렇지만 책장사는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손님이 너무 없을 뿐 아니라, 다달이 달삯을 치러야 할 날은 참 빠르게 다가왔대요.


(잇세이도 서점에) 입사하고 나서 일주일쯤은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일찌감치 가게 하나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부하고 있었지만 통하지 않았다. 가끔 물어오는 책 제목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104쪽)

전무에게 의논하자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겸허하게 말할 수 있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네. 동서고금의 책 중에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것은 1퍼센트도 안 되거든.” 하며 깨우쳐 주었다. (118쪽)


  《황야의 헌책방》(모리오카 요시유키/송태욱 옮김, 한뼘책방, 2018)은 ‘한 번에 한 가지 책만 파는 곳’으로 모리오카 서점을 꾸리기까지 책집지기로서 어떤 삶을 일구었나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 까맣게 모르던, 아니 아예 생각조차 않던 젊은이가 만난 사람하고 지켜본 오랜 골목길을 이야기합니다. 으레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고, 돈이 생기면 헌책집에 들러 값싸게 하나둘 사서 모으는데, 이러다가 1941년에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즈음 그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궁금해서 옛 신문을 뒤적여 보면서 지난날 그대로 따라해 보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따라하던 때에, 일본에 진주만에 폭탄을 떨구기 하루 앞서 나온 신문에 ‘잇세이도 서점’이라는 곳에서 “헌책 삽니다”라는 광고를 실은 모습을 보았대요. 일본이란 나라는 전쟁 한복판에서도 책을 사서 읽고 내고 썼을 뿐 아니라, 헌책집에 책을 내놓고 사러 갔구나 싶어 모리오카 요시유키 님 스스로도 무척 놀랐다고 합니다.


“여기서 고서점을 하고 싶습니다.” 그 사람은 생각했던 대로 가게 주인 우치다 씨였다. 우치다 씨는 “이 건물은 쇼와 2년, 그러니까 1927년에 세워졌는데 이곳에서 고서점을 한다면, 하기에 따라서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153쪽)


  도쿄에 있는 커다란 헌책집에서 일하는 동안 ‘도무지 모르고 낯선 책’이 너무 많아 한동안 어쩔 줄 몰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책’이란 손에 쥐는 모래알처럼 아주 적기 때문에, 모르면 모른다고 밝히면서 새로 배우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군요.

  오늘날 같은 모리오카 서점이란, 이 책집지기가 이제껏 마주한 사람과 삶과 책과 마을이 모두 어우러져서 비롯했구나 싶습니다. 온누리 모든 책 가운데 알 수 있는 책이란 매우 적으니, 이 매우 적은 책 가운데 책집지기가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책 하나를 두는 곳으로 꾸리면서, 이 책집을 전시관으로 함께 삼을 수 있다지요.

  뭔가 더 많이 갖다 놓지 않고, 뭔가 더 단출히 꾸미면서 책과 삶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이끈다고 할 만합니다. 더 많이 읽거나 갖추기보다는 우리 눈앞에 있는 책과 삶을 더 찬찬히 지켜보면서 아끼자는 뜻이기도 하리라 봅니다.


서점을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나자 내 표정에는 완전히 패배감이 떠돌았다. 입을 벌려 웃을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역시 너무 조급하게 일을 진행한 것이다. 계획성이 없었다. 손님이 오지 않으니 당연히 책도 팔리지 않았다. (184쪽)


  처음부터 모두 알 수는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처음에는 마냥 즐거운 길을 찾아서 오랜 골목을 거닐고, 곁일을 하며 번 돈으로 책 몇 권을 장만합니다. 옛 신문을 도서관에서 복사해 읽다가 얼결에 커다란 헌책집 일꾼 가운데 하나로 뽑혀서 한동안 일합니다. 책을 좋아하던 때에 마주하던 책하고는 달라도 너무 다른 헌책집 책을 만지면서 ‘모르는 것투성이’라서 늘 배워야 하는 줄 깨닫고, 손수 헌책집을 차리고 보니 미처 살피지 않은 대목이 참으로 많아서 이리 부딪히고 저리 깨지면서 시나브로 길을 찾습니다.

  《황야의 헌책방》이라는 이름은 아무것도 없다 싶은 벌판에 선 모습을 빗대지 싶은데, 아무것도 없다 싶은 벌판이기에 지쳐서 쓰러져도 혼자 쓰러지면 될 뿐이라는 마음으로 무엇이든 차근차근 지어 보는 삶도 함께 빗대었구나 싶습니다.

  아직 아무도 해 보지 않았어도 되어요. 그렇게 해서는 돈을 못 번다는 소리를 들어도 되어요. 헌책집 한쪽을 전시관으로 삼아도, 이러다가 ‘한 번에 한 가지 책만 파는 곳’으로 바꾸어도 되지요. 다만 숱한 가시밭길을 거쳐서 여기에 이릅니다.


오후부터 저녁까지 기본적으로 가게를 보는 일에는 변함이 없지만, 전시회도 열자 매일 사람들이 가게를 찾아오게 되었다. 거기에서 대화가 이어지기도 했다. 개업 초기 손님이 아무도 오지 않을 때는 창밖으로 흐르는 가메지마가와를 바라보며 갈매기에게 땅콩을 던져주며 마음을 달랬는데 상황이 크게 변했다. 손님 중에는 회화나 조각, 도예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 그리고 카메라맨이나 디자이너가 많았다. 손님이 전시 장소로서 가게에 흥미를 보이게 되었고, 가게 안의 갤러리는 손님의 다음 스텝을 위한 발판 역할을 했다. (202쪽)


  한국에서 마을책집이 하나둘 늘어납니다. 더 많은 책을 건사하지 않는 작고 상냥한 마을책집입니다. 큰책집은 자꾸 더 커다란 책집이 되려 하고, 전국 곳곳에 새끼가게를 줄줄이 엽니다만, 전국 마을책집은 골목 귀퉁이라 할 만한 데에 조그맣게 문을 엽니다.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이란 바로 ‘더 큰, 더 많은, 더 이름난’이 아닌 ‘알맞은, 상냥한, 즐거운’인 줄 느끼는 분들이 새로운 책살림을 짓는구나 싶습니다.

  언뜻 보면 쓸쓸하거나 거칠거나 터무니없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알맞고 상냥하며 즐거운 마을책집에는 골목이며 마을을 천천히 거닐어 사뿐사뿐 다가오는 이웃이 책손으로 깃들 수 있습니다. 아직 장사는 만만하지 않을 수 있지만, 더 키워서 더 팔아서 더 드날리려는 물결에 휩쓸리면 이웃을 만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책집지기로서도 골목이나 마을하고 이웃이 되지 못합니다.

  따뜻하며 싱그러운 바람이 책집 골목에 붑니다. 이 바람을 품고서 이웃님이 책손으로 찾아갑니다. 두 손 가득이 아닌, 한 손에 가볍게 책 하나를 쥐고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2018.3.20.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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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톡톡 내 마음에 톡톡
정봉남 지음 / 써네스트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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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94


눈을 가만히 감고 그림책을 느낍니다
― 그림책 톡톡 내 마음에 톡톡
 정봉남
 써네스트, 2017.10.25.


  아이들이 매우 어렸을 적에는 무릎에 앉히거나 품에 안고서 그림책을 읽어 주곤 했습니다. 큰아이부터 글을 깨쳐서 스스로 읽을 줄 안 뒤로는 그림책을 읽어 줄 일이 드뭅니다. 아이 스스로 읽으며 아이 스스로 헤아리고 즐겨요.

  그러나 짐짓 모른 척하면서 소리를 내어 그림책을 읽으면 아이들은 어느새 곁으로 다가옵니다. 제법 큰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읽어 줄게’ 하고 말하지 않고 그냥 소리를 내어 읽으면 말결에 이야기에 책에 끌려서 찰싹 달라붙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정말 마음을 담아 전해 준 책들은 아이들이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그때 선생님이 책 읽어 주다가 울었잖아요. 그래서 안 잊혀져요. 그때 참 좋았어요. 살면서 힘들 때는 그 책 생각해요.” 하고 고백합니다. 세상의 어떤 고백이 이보다 더 고마울 수 있을까요. (57쪽)


  순천에서 기적의도서관 지기로 일하는 분이 《그림책 톡톡 내 마음에 톡톡》(정봉남, 써네스트, 2017)을 써냈습니다. 순천으로 책방마실을 가서 이 책을 만났습니다. 도서관지기로 일하는 정봉남 님은 도서관지기로서 온갖 행정을 맡기도 해야 할 테지만, 도서관 책손인 아이들을 맞이하여 그림책을 읽어 주는 일을 무척 좋아한다고 합니다.

  아이를 곁에 앉히고, 또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또는 아이하고 나란히 바닥에 드러누워서 그림책을 소리내어 읽어 본 분이라면 잘 알리라 생각합니다. 여러 눈이 그림책을 지켜보면서 여러 귀가 우리 말소리를 듣는 자리란 대단히 싱그러우면서 즐거운데다가 사랑스럽지 싶어요.

  그림책 함께 읽기란, 이야기 한 자락을 펼쳐서 서로 마음으로 즐겁게 하루를 돌아보도록 북돋우는 놀이요 배움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는 그림책을 앞에 놓고서 줄거리를 받아먹고, 줄거리를 읊는 소릿결을 받아들입니다. 어른은 쉽고 단출하면서 깊고 너른 줄거리를 새롭게 되새기고, 아이 눈높이에 맞도록 말마디를 가다듬는 길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1994년 칼데콧 영예 도서에 오른 이 책은 어두워진 마음에 자그마한 빛을 비추는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등불 하나하나가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작은 불꽃이라고 여기면서 온 정성을 다해 불을 켜는 페페, 그 아이가 우리들의 마음에도 반짝 불을 밝힙니다. (86쪽)

햇살 같은 이야기와 따사로운 색감의 그림들, 아이들의 표정, 책에서 나는 냄새, 책을 읽고 난 뒤의 떨림 같은 게 내 안에 모아진 겨울의 양식인가 봅니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오래오래 곱씹으며 영혼의 양식을 채우는 일, 책읽기는 그래서 즐거운 체험입니다. (114쪽)


  《그림책 톡톡 내 마음에 톡톡》은 도서관지기로서 아이들하고 즐겁게 읽은 그림책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때로는 슬프게 읽은 그림책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때로는 판이 끊어져 더 만나기 어려운, 다시 말해서 아이가 그 그림책을 장만해서 집에서 더 자주 보고 싶으나 새책집에서 더 다룰 수 없는 그림책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열 해 남짓 시골집에서 아이들하고 그림책을 읽는 어버이로서, 제가 즐기는 그림책을 도서관지기 이웃님은 어떻게 즐기셨나 하고 맞대면서 이 책을 읽어 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스무 살이나 마흔 살을 넘더라도 저는 꾸준히 그림책을 즐기려고 생각하기에, 제가 머잖아 할아버지가 되어도 어떤 그림책을 손에 쥐면서 기쁘게 삶을 되비출 적에 슬기로운 어른으로 하루를 지을 만한가 하고 그리면서 이 책을 읽습니다.


소년은 숲으로 가 바구니를 짜기 시작하고, 그날 밤 바람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아버지와 아저씨들처럼 바람이 선택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희미한 달빛 속에서 모든 나뭇잎들이 소년에게 절하는 것처럼 보이는 마지막 장면에선 내 마음에 눈물 한 방울이 또로록 떨어집니다. (191쪽)

“나는 모든 색깔을 좋아해. 볼 수는 없지만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감으로 세상 모든 색깔을 느낄 수 있거든. 너도 눈을 감고 느껴 봐!” 우리도 눈을 감고 봄빛 환한 세상의 색깔들을 온몸으로 느껴 봐요. (222쪽)


  동화책도 그림책도 줄거리로만 읽을 수 없습니다. 그림책은 짧은 글에 펼친그림으로 담아내는 이야기 얼거리입니다만, 멋진 붓놀림만으로 그림책을 읽을 수 없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림책은 누구보다 어린이한테 맞추는 책인 터라, 아무 낱말이나 말씨를 섣불리 담아낼 수 없는 책이기도 해요. 가장 쉬우면서 부드럽고, 가장 맑으면서 따사로우며, 가장 고우면서 사랑스러운 말을 살려서 담아낼 책이 그림책이기도 하다고 느낍니다. 이러한 얼거리에서 이야기 재미를 톺아보고 줄거리에 흐르는 생각을 새롭게 엿봅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아버린 할머니는 낯설고 힘든 일을 자청해서라도 손녀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능력은 바로 사랑일 것입니다. (304쪽)

누구는 고독을, 누구는 친밀감을, 누구는 관계를, 어떤 이는 존재의 가치를 느낄, 넉넉한 해석의 자유가 가득한 책. (400쪽)


  아이들하고 그림책을 읽다가 까르르 웃기도 하고, 눈물방울 또로록 떨구기도 하는 도서관지기란 얼마나 살가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관장·사서 같은 이름을 떠나 다 같은 ‘책지기’로서, ‘책님’으로서, ‘책벗’으로서, 그림책 읽는 기쁨하고 보람하고 뜻을 곰곰이 짚고 싶습니다.

  그림책을 짓고 엮어서 펴낸 뒤에, 이 그림책을 아이하고 읽는 까닭이라면, 아이한테 가르치면서 어른으로서도 새로 배울 사랑을 다시 그리려는 뜻이지 싶습니다. 지식을 가르치는 그림책이기 앞서 사랑을 가르치는 그림책이라고 느껴요. 정보를 알려주기 앞서 사랑을 노래하는 그림책이라고 느낍니다.

  우리는 그림책 하나를 두고두고 되읽으면서 뭇생각을 받아들이거나 가꿉니다. 외로움도, 넉넉함도, 어깨동무도, 나눔도, 웃음꽃도, 눈물나무도, 그림책 하나를 발판삼아서 사이좋게 주고받습니다. 그림책을 만나려고 톡톡 두들기듯 다가섭니다. 그림책에 깃든 이야기밥을 먹으려고 마음을 톡톡 두들겨서 엽니다. 2018.3.5.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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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나?
김건숙 지음 / 바이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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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95


책방이란, 이야기가 흐르는 숲이 있는 보금자리
― 책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나?
 김건숙 글·사진
 바이북스, 2017.8.10.


서점이라는 공간이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해 주는 곳임에는 틀림없다. 그 안에 있기만 해도 책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다. (19쪽)


  시골에서는 책방마실을 하자면 매우 먼 길을 나섭니다. 시골 면소재지에는 책방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시골 읍내에 책방이 있는 곳은 드뭅니다. 드문드문 있어도 참고서 아닌 책을 살뜰히 다루는 책방을 마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수험서 아닌 읽을거리다운 책을 갖춘 시골에서 산다면, 이러한 시골은 매우 알뜰한 고장이라고 여깁니다.

  저는 전남 고흥에서 살기에 책방마실을 하자면 적어도 이웃 고장 순천을 다녀옵니다. 시골집에서 읍내를 거쳐 순천으로 책방마실을 다녀오려면 하루를 오롯이 써야 하고, 찻삯으로 2만 원 남짓 듭니다. 혼자 다녀온다면 이만 한 마실삯이지만, 아이를 이끌고 다녀오자면 바깥밥을 먹어야 하니 몇 곱으로 마실삯을 들입니다.

  책방마실을 하려고 마실삯을 제법 쓰면서 생각하곤 합니다. 누리책방에서 책을 장만한다면 우표값조차 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을책방으로 나들이를 다녀오면 ‘책으로 쉬는 터전’을 누립니다. 시끌벅적한 한길에 있는 책방에서조차 고즈넉한 기운이 흐르며 넉넉하지요. 우리가 책을 손에 쥐어 읽는 뜻이라면, 책이 깃든 터전이 베푸는 즐거운 맛을 온몸으로 담고 싶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표지가 잘 보이도록 전면으로 세워놓은 책들을 보니 아무 책이나 들고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44쪽)

과거의 저자 강연은 청중이 너무 많은 까닭에 저자가 일방적으로 강연을 한 다음 말미에 서너 명의 질문을 받는 식으로 진행했다. 동네서점에서는 북토크 형식으로 많이 진행되고 서점의 단골 고객들이 많이 참여하므로 대체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이다. (64쪽)


  《책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나?》(바이북스, 2017)는 책을 사랑하는 분이 멀고 가깝고를 따지지 않고 ‘책이 있는 곳’을 즐거이 누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참말 그렇지요. 책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책방이 가깝든 멀든 따질 일이 없습니다.

  멧골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아무리 먼 멧골이라도 기꺼이 찾아가요. 지리산이든 설악산이든 태백산이든 북한산이든, 어느 고장 어느 산이든 신나게 찾아가서 하루를 누릴 뿐 아니라, 여러 밤을 한데에서 지새울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를 다녀올 적에도 이와 같아요. 즐겁게 마실을 다닙니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발걸음도 이와 같고요.

  예전에는 한자말로 ‘애호가’ 같은 말을 썼다면,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터전을 가꾸면서 새롭고 이쁘게 ‘즐김이’나 ‘사랑이·사랑꾼’ 같은 말을 씁니다. ‘책즐김이’가 되고 ‘책사랑꾼’이 됩니다. ‘골목즐김이·골목사랑꾼’이나 ‘멧골즐김이·멧골사랑꾼’이 되어요.


책이야 인터넷서점에서 살 수가 있다지만 서점 안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추억과 책 문화는 어디에서 만들까? 유럽은 죽어 가는 시골마을을 살리고 지역 주민들의 풍요로운 삶을 되찾기 위해 책마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파주출판도시는 “도심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면서 사업을 영위하기 어려웠던 한국 출판 산업 육성조치의 일환으로 정부가 싼값에 토지를 불하해 준 산업 지원책”이었다고 한다. (90쪽)

나는 ‘타샤의책방’에 붙어 있는 “집필 클럽”이라는 단어를 보고 조앤을 떠올렸다. 조앤이 힘든 삶을 글과 함께 극복하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세우는 데 도움을 준 공간은 바로 마을의 카페였다. (173쪽)


  2010년대로 접어들기 앞서까지 ‘새책방’을 놓고 나라 곳곳을 마실하는 걸음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새책방이라면 나라 어디를 가나 똑같거나 엇비슷한 책을 놓을 뿐이었거든요. 이무렵까지만 해도 나라 곳곳에서 책방마실을 하는 발걸음이라면 고장마다 다 다르면서 재미나고 알찬 ‘헌책방’을 마실하는 발걸음이 있었습니다. 참말로 고장마다 마을헌책방은 그 고장 글꾼이나 사진꾼이나 그림꾼이 즐겨찾는 책터이면서 쉼터이고 모임터 구실을 했습니다. 고장 글꾼이 낸 시집이나 고장 사진꾼이 낸 사진책을 찾으려면 고장마다 헌책방을 찾아가야 했어요.

  요즈음은 마을책방(독립서점)에서 제 고장 글꾼이나 사진꾼이나 그림꾼 책을 따로 한 자리를 마련해서 잘 보이도록 놓곤 합니다. 사뭇 달라졌어요. 고장에서 조용히 글이나 사진이나 그림을 짓는 분들은 바코드를 붙이지 않는 책을 흔히 냅니다. 모든 책이 굳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들어가야 할 까닭이 없어요. 작게 열 사람이 나눌 책을 지을 수 있고, 넉넉히 백 사람쯤 나눌 책을 지을 수 있습니다.

  요즈음 마을책방은 바로 이처럼 ‘작게 나누는 제 고장 이야기’를 느긋하게 펼쳐서 넉넉하게 보여주고 다루는 이음터 노릇을 톡톡히 합니다. 이제 책방마실을 새롭게 할 만한 문을 여는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 곳곳에서 제대로 마을책방·고을책방을 꾸리는 길이 열린다고 할 수 있어요.


진보초의 고서점들을 구경하고 다니다 보면 얼마나 책을 정갈하게 진열해 놓았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올 것이다. (221쪽)

도쿄에서 가장 땅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긴자에 단 한 종류의 책만 팔 생각을 한 이 배짱 두둑한 주인장 덕에, 세계의 많은 사람들도 이와 같은 즐거운 상상도 하고 색다른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려고 할 것이다. (260쪽)


  《책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나?》를 읽다 보면 한국 곳곳에 있는 마을책방 이야기 곁에 일본 여러 곳에 있는 마을책방 이야기가 흐릅니다. 한국하고 다른 일본 책살림을 엿보면서, 앞으로 한국 마을책방이 어느 대목에서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서 한결 튼튼히 거듭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살며시 비춥니다.

  일본에는 한국문학을 다루는 책방도 있다고 해요. 일본에서 일본책 아닌 한국책을 다루는 셈입니다. 멋지지요. 한 가지 책만 다루는 책방도 있다고 해요. 이 또한 멋집니다.

  가만히 보면 요즈음 마을책방은 더 많은 책을 갖추려 하지 않습니다. 모든 마을책방이 처음 문을 연 뒤로 책을 조금씩 더 갖추기는 하지만, 책꽂이를 빨리 채우지 않습니다. 차근차근 채워요. 책손이 바란다고 해서 모든 책을 다 갖추려 하지 않습니다. 모든 책을 다 갖추려고 하는 아주 커다란 책방이 아닌, 마을에서 마을 나름대로 새롭게 이야기를 지피는 쉼터·모임터·만남터·이음터 구실을 하는 새로운 책터가 되려고 하는 만큼, 책방지기 나름대로 눈썰미를 키워서 하나하나 느긋하게 갖춥니다.

  이 대목도 눈여겨볼 만해요. 그동안 여느 새책방은 ‘많이 팔 수 있는 널리 알려진 책’을 잔뜩 들여놓고는 정작 제대로 펼치지 않기 일쑤였어요. 이러다가 잔뜩 반품하지요. 책손은 책손대로 어떤 책이 들고 나는가를 살피기 어려우면서, 출판사로서는 새책이 자꾸 반품으로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모든 새책방은 모든 새책을 다 갖출 수 없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해마다 100권 200권 300권 …… 엄청나게 쏟아내는 큰 출판사 책만 갖추려 해도 300평짜리 책방마저 턱없이 모자랍니다. 책방지기는 저마다 눈썰미를 키워서 스스로 책을 고르거나 가려서 갖출 수 있어야 해요. 책손은 바로 책방지기 눈썰미를 믿고, 이 가운데에서 마음을 살찌울 읽을거리를 살핍니다.


고즈넉한 메구로가와의 거리, 잔잔히 흘러나오는 서점 안의 음악, 조용하고 깔끔한 매장에 유유히 흐르던 전광판, 서가에 꽂혀 있는 여러 예술서 등의 이미지가 긴 여운으로 남게 된 ‘카우북스’는 나카메구로 주민들에게 ‘영혼의 미술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318쪽)


  ‘영혼의 미술관’이란 우리 넋을 아름답게 북돋우는 보금자리와 같지 싶습니다. 마음을 가꾸는 터전이요, 마음을 돌보는 쉼터요, 마음을 사랑하는 자리요, 마음에 사랑을 심는 보금자리인 책방 하나이지 싶습니다. 아직 모든 고장이나 고을에 마을책방이 태어나지는 못했습니다만, 머잖아 이 나라 골골샅샅 이쁘며 사랑스러운 마을책방이 두루 자리를 잡고 뿌리를 뻗으리라 생각합니다.

  수험서나 교재가 아닌 책을 놓는 마을책방이 퍼질 만하리라 생각해요. 대학입시나 자기계발을 훌훌 벗어던지고, 삶을 짓는 즐겁고 슬기로운 마음을 가꾸는 길동무가 될 마을책방이 서울뿐 아니라 시골에도 하나둘 싹트리라 생각합니다. 숲에서 자라던 나무를 베어 종이로 삼아 묶은 살뜰한 이야기꾸러미인 책이 있는 곳이란, 바로 숲을 옮겨놓은 터전일 테니, 책방에 깃드는 분이라면 누구나 ‘책이 되어 준 나무’를 만나는 셈이라고 느껴요. 곧 책방이란 ‘이야기가 흐르는 숲이 있는 보금자리’라고 할 만합니다. 책사랑꾼이란 숲사랑님이겠지요. 2018.1.14.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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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
이소이 요시미쓰 지음, 홍성민 옮김 / 펄북스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87



마을도서관은 책 하나를 촛불로 키운다

―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

 이소이 요시미쓰 글/홍성민 옮김

 펄북스, 2015.9.15. 13000원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접어들고서 2010년대로 이르는 동안을 가만히 되새깁니다. 이 스무 해 사이에 한국에서는 마을책방(동네책방)이라고 하는 곳이 대단히 많이 문을 닫았습니다. 이제 마을에서 자그마한 책방은 책을 팔아서 먹고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았어요. 참고서 장사조차 안 된다고들 했지요.


  이 흐름은 틀리지 않다고 느껴요. 더욱이 이 흐름은 우리한테 앞으로 새로운 마을책방이 서야 한다는 뜻이라고도 느껴요. 이제는 참말로 큰책방이든 작은책방이든 서울책방이든 마을책방이든 ‘참고서에 안 기대고 오로지 책다운 책으로 마을이웃을 만나는 새로운 책방으로 거듭날 노릇’이라고 할까요. 마을책방이 마을에서 제대로 버티거나 뿌리를 내리려면 참고서를 책꽂이에서 털어낼 노릇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참고서라고 해서 나쁠 일은 없겠지요. 다만 한국 사회에서 참고서란, 거의 모두 대학입시에서 쓰고, 대학입시는 아이들을 줄세우는 계급장을 가르는 구실을 했어요. 배움길에 도움(참고)이 되는 책인 도움책(참고서)이 아닌, 그저 대학입시 시험공부 문제풀이에만 치우친 책이라면, 앞으로는 사람들이 이러한 책에 등을 돌리기 마련이라고 할 만해요. 오늘날 새로운 마을책방은 학습·입시 참고서에서 벗어나 ‘삶에 길동무가 되는 도움책’을 갖추는 길로 거듭나야 하고, ‘작은 사람이 마을에서 손수 살림을 짓는 길에 벗님이 되는 도움책’을 나누는 길로 거듭나야지 싶기도 합니다.



내가 먼저 그에게 나의 꿈을 말했다. “길모퉁이마다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싶어! 그곳에서 서로 배움을 나누는 작은 모임을 열고 싶어! 동네도서관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47쪽)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배움을 나눌 기회를 얻고 싶었다. 거기에는 번듯한 장소가 없어도 된다. 책은 각자 갖고 오면 된다. 결국, 문제는 자금이 아니었다. (49쪽)



  2010년대가 깊어 갑니다. 마을책방은 꾸준히 늘어납니다. 서울에서든 지역에서든 마을책방 이름을 걸고 새롭게 문을 여는 젊은 책방지기는 거의 모두 책방에 ‘참고서를 안 둡’니다. 오늘날 마을책방은 대학입시하고 얽힌 수험서는 아예 책방에 안 들여요. 이뿐 아니라 자기계발을 다룬 책도 거의 안 들이다시피 하지요. 학습만화까지도 책방에 안 들이고요.


  오늘날 마을책방은 참고서를 털어내면서 널찍하게 마련한 아기자기한 자리에 독립출판물을 꽤 넉넉하게 두곤 합니다. 오랜 출판유통을 거스를 뿐 아니라 아주 작고 수수하게 짓는 작고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작고 수수한 책을 즐거이 놓아요. 이뿐 아니라 마을 작가 책을 발판으로 마을 이야기를 수수하게 나누는 작은 이야기판을 꾸준하게 마련해요.


  이러한 모습을 돌아보노라면 우리 사회가 아름다운 길로 한 발짝씩 다가서네 싶어서 반갑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더라도 한 걸음씩 씩씩하게 내디딘다면 시나브로 멋진 새터를 지을 만하지 싶어요.



동네도서관은 사람의 힘을 믿고, 꿈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활동이다. 자신이 먼저 용기 내어 첫걸음을 떼면 반드시 함께하는 사람이 생긴다. (61쪽)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서 우주를 이야기하고, 인근의 절과 들판에서 책을 읽고, 도서관으로 돌아와 스튜와 와인을 즐기며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88쪽)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펄북스, 2015)를 읽으면서 마을도서관을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이 책은 마을책방 아닌 마을도서관을 이야기합니다만, 오늘날 새로운 마을책방을 가만히 돌아보아도 서로 맞물리는 대목이 있다고 느껴요. 온누리를 바꿀 만한 마을도서관하고 마을책방은 늘 함께 있을 테니까요. 마을책방이 서는 마을에 마을도서관이 섭니다. 마을책방 일꾼이 마을지기 노릇을 맡을 수 있는 마을에 마을도서관도 마을지기 노릇을 나란히 맡습니다.


  작고 수수한 마을사람이 손수 지은 이야기를 책으로 여미어 마을책방에 두어요. 마을사람이 지어 마을책방에 놓는 책은 이른바 ‘마을책’이라 할 수 있어요.


  와! 생각해 봐요.


  마을사람이 마을살림을 엮어서 마을책을 짓고는 마을책방에 두어요. 마을이웃이 마을책을 장만하는 돈은 ‘마을돈’이 되어 마을살림을 새로 가꾸는 밑돌이 되기도 합니다. 마을책이 하나둘 늘면 마을사람은 마을에서 지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마을도서관을 꾸릴 만해요. 마을마다 마을꽃이 피고 마을노래가 흐릅니다. 이리하여 이 마을은 이 마을대로 거듭나고 저 마을은 저 마을대로 자라나요.



(병원) 투석센터는 기존 건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커다란 책장을 놓을 공간이 부족했다. 고심 끝에 복도를 따라 속이 깊지 않은 책장을 만들기로 했다. 책은 앞표지가 보이도록 진열했다. 덕분에 복도에 책을 전시하는 형태가 되었다. 거기에 그림 솜씨 좋은 수위가 실력을 발휘해 책을 기증한 의사와 직원의 얼굴 그림을 그려 책 옆에 붙여 주었다. (95쪽)


도쿠시마 현에도 개인 집을 동네도서관으로 꾸민 사람이 있다. 지역에 따로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지 않아도 동네도서관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113쪽)



  대단한 도서관을 대단한 건물로 지은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입니다. 마을사람 몇몇이 뜻을 모아서 마을사람을 비롯한 숱한 다른 이웃한테 이야기씨앗을 심을 수 있는 즐거움을 다루는 책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책 하나로 나라를 바꾸는 길을 보여준다고 할 만합니다. 촛불 한 자루로 나라를 바꾸는 길을 우리가 스스로 열었듯, 이제는 책 하나로 얼마든지 마을뿐 아니라 나라를 바꿀 수 있는 길을 우리가 스스로 찾아서 열 수 있다고 할 만해요.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말을 흔히들 하는데요,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읽을 만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책을 바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읽을 만한 아름다운 책을 아직 못 만나서, 또 읽을 만한 사랑스러운 책을 아직 겪지 못해서, 적잖은 사람들은 책을 못 사귄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럴 만도 하지요. 초·중·고등학교에서 입시에 짓눌리는 어린이나 푸름이는 책다운 책을 가까이할 겨를을 내기 힘듭니다. 게다가 입시 공부에 너무 괴로운 탓에 책다운 책을 선뜻 집고 싶지 않아요. 스무 살 풋풋한 나이까지 책을 가까이하지 못하는 삶을 보낸다면 앞으로도 책을 가까이하기는 어려울 만합니다. 꼭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삶을 밝히는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책이 한두 권이나 열 권 즈음 있을 수 있는데, 아주 많은 사람들은 아름다운 한 권이나 사랑스러운 두 권을 못 만나기 일쑤라는 뜻이에요.



현대의 생활환경은 대중을 철저히 ‘이용자’로 만들고 있다. 행정이나 기업에서 모든 시설과 서비스를 준비하고 우리는 그 시설과 서비스를 그저 이용할 뿐이다. 이것은 언뜻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반대로 참여의식을 떨어뜨려 매사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129쪽)


동네도서관에는 당연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참가하는데, ‘책’보다 우선하는 것이 ‘사람’이다. (188쪽)



  마을도서관은 더 많은 손님이 드나들도록 해야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마을사람을 하나하나 고이 헤아리면서 느긋하게 책을 마주하고 넉넉하게 마음을 가꾸도록 북돋우는 쉼터나 우물가 같은 자리입니다.


  더 큰 건물이 아니어도 될 마을도서관입니다. 더 많은 책이 없어도 될 마을도서관입니다. 마을사람이 가벼운 차림새로 찾아가서 가볍게 한두 시간을 책으로 쉬며 마을노래를 부를 수 있으면 됩니다. 때로는 다른 고을 손님이 찾아와서 하루를 묵으며 ‘이 마을에 깃든 아름다운 숨결’을 느끼도록 할 만한 마을도서관이에요.


  어쩌면 우리는 저마다 마을도서관이 될 수 있어요. 우리 집에 있는 책 몇 권을 마당에 책꽂이를 짜서 평상 곁에 두면서 작은 도서관이 될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담을 허물어 열린 주차장으로 삼기도 하는데요, 담을 허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담을 허문 자리에 책꽂이 한 칸을 짜 놓을 수 있어요. 작은 마을가게 한쪽에 책꽂이 한 칸을 두는 마을도서관을 삼을 수 있습니다. 마을가게에 들러 담배 한 갑을 사는 길에도 살짝 시집 한 권 집어서 시 몇 꼭지를 읽을 수 있지요.


  마을 건널목에도 걸상하고 책꽂이를 두어 ‘건널목 도서관’을 꾸릴 수 있습니다. 마을사람이 늘 드나드는 버스 타는 자리에도 걸상하고 책꽂이를 두고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가볍게 책 몇 줄을 읽는 ‘버스 기다리는 도서관’을 꾸릴 수 있습니다. 도시에는 길거리에 나무를 심어 가꾸는데요, 서른 해나 쉰 해쯤 잘 자란 나무라면 그늘이 매우 좋아요. 이 나무 그늘 밑에 걸상 하나랑 책 몇 권이 어우러진 ‘나무 밑 도서관’을 골목마다 꾸며 볼 수 있습니다.


  나라나 지자체에서 마을가꾸기에 돈을 안 쓴다고 탓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을사람 스스로 작고 이쁘게 마을도서관을 하나둘 마련해서 알뜰살뜰 누릴 수 있으면 돼요. 손에 쥐는 책 하나가 촛불이 될 수 있습니다. 손에 쥐는 책 하나로 이 나라를 새로 일으키고 아름답게 바꾸어 내는 촛불물결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2017.10.1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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