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또 그리고 2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정은서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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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64



삶을 그리는 길

― 그리고, 또 그리고 2

 히가시무라 아키코 글·그림

 정은서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4.11.12.



  그림을 그리는 길은 아주 쉽습니다.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면 됩니다. 그리고 싶지 않은 대로 그리려 하면, 그림은 아주 어렵습니다. 남이 시키는 대로 하자면, 이때에도 그림은 아주 어렵습니다. 그림을 그리려 하는 까닭은, 내가 그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붓질이 서툴건 데생이 어설프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그리려 하는 이야기를 그려야 합니다.


  미술대학교가 많고, 미술대학교를 나온 사람이 많으며, 미술학원이 많고, 미술학원에서 배운 사람은 많은데, 막상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스스로 꿈이나 사랑이 없기 때문이요, 스스로 지으려 하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솜씨나 재주를 배우는 사람은 많으나, 정작 스스로 어떤 이야기를 이루려 하는가를 생각하는 사람은 대단히 드뭅니다.



- ‘캔버스에 칠한 색이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리면 그릴수록 초조해져서, 캔버스 색은 점점 탁해졌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림에는 그리는 사람의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10쪽)

- “하야시! 자화상을 그려라!” “예? 시, 싫어요. 자화상이라니, 촌스럽.” “그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 잔말 말고 그리라면 그려!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려라! 거울을 보고 그리라고!” (60∼61쪽)



  무엇을 그려야 할까요? 빼어난 솜씨를 보여주어야 할까요? 뛰어난 재주를 자랑해야 할까요? 미술학원에서는 ‘솜씨가 좋다’는 그림이나 작품을 길가에 늘어놓곤 합니다. 아무래도 그러할 테지요. 미술학원에서는 그저 솜씨와 재주만 닦달하니까요. 미술대학교에서는 예술을 가르치거나 북돋웁니다. 이야기나 꿈이나 사랑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대학교를 보면 ‘예술대학’이라는 이름이 붙는 곳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림’이 아닌 ‘예술’을 다루려 합니다. 이러다 보니, 대학생이 되건 대학원생이 되건, 입시생이 되건 입시준비생이 되건, 모두 ‘예술’만 바라봅니다. 삶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삶을 이루는 사랑과 꿈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삶을 이루는 사랑과 꿈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 아니라면 살아서 숨쉬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 아닐 때에는 한결같이 흐르지 못합니다. 이야기가 잇는 그림이 아니기에 한때 반짝하듯이 솟을는지 모르나 이내 사그라듭니다.


  그림 한 점에 몇 억원이라 하는 돈으로 팔려야 대단하지 않습니다. 돈을 받고 팔리도록 하는 물건을 만들어야 하기에 그리는 그림이 아닙니다. 스스로 삶을 짓는 길에 꿈과 사랑을 아름답게 여미려는 뜻으로 그리는 그림입니다.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가르치는 그림이 아니라, 이야기를 사랑과 꿈으로 녹여서 새롭게 빚는 숨결이 되려고 가르치는 그림입니다.



- ‘잘나고 예쁜 친구들에게 미야자키의 촌구석 화실에서 만년 추리닝 차림에 죽도나 휘두르는 조폭 같은 선생님에게 맞아 가며 매일 죽어라 데생을 했다는 말은, 그런, 그런 나의 과거는, 구질구질해서 죽어도 말하기 싫어.’ (136쪽)



  히가시무라 아키코 님이 그린 만화책 《그리고, 또 그리고》(애니북스.2014) 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 그리는 아줌마가 스스로 되짚는 이녁 삶이 만화책에 짙게 드러납니다. 꽤 오랫동안 ‘스스로 안 밝히고 싶’던 구질구질한 이야기라 할 만하지만, 곰곰이 보면 하나도 안 구질구질합니다. ‘하야시’한테 그림을 가르친 시골마을 아저씨는 ‘그림이 무엇인지 들여다본’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야시한테 ‘그림을 그리는 몸짓’을 제대로 받아들이도록 다그쳐요. ‘그림을 마주하는 숨결’을 제대로 갈고닦도록 이끌지요.



- “붓빨이통은 어디다 둔 거야? 응? 이건 또 뭐야? 왜 이렇게 더러워? 잘 들어! 도구 손질도 제대로 못하는 놈은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없어! 붓이든 물감이든 다 비싸니까 아껴 가며 써야지! 팔레트도 매일 손질하면 몇 년이고 몇 십 년이고 사용할 수 있어!” “저, 선생님, 목소리가 너무 커요. 누가 오면 어떡해요.” “게다가 이 그림은 뭐야? 데생이 엉망이잖아! 당장 고쳐! 정중선이 어긋났잖아! 눈앞에 모델이 있는데 왜 이렇게 어긋나게 그린 거야?” (144∼145쪽)



  ‘만화가가 된 하야시’한테 그림을 가르친 시골마을 아저씨는 하야시가 ‘만화가’가 되든 다른 사람이 되든 대수롭게 여길 일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만화도 그림이고, 그림도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지을 수 있을 때에 그림이고, 그림으로 이야기를 짓는 사람은 그림꾼이면서 살림꾼이고, 바야흐로 ‘사람’입니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짓지 못하는 사람은 재주꾼이나 솜씨쟁이일 뿐 아니라, ‘전문가’입니다.


  우리는 전문가 아닌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재주꾼이나 솜씨쟁이가 아니라 ‘살림꾼’이면서 ‘이야기꾼’인 ‘그림꾼’이 될 노릇입니다.


  《그리고, 또 그리고》를 보면, 하야시는 언제나 핑계를 대면서 툴툴거립니다. 모든 일에 핑계를 대려 합니다. 이녁 삶을 그대로 바라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1990년대 끝무렵에도 ‘일본에서 만화가가 되겠다는 말이 창피하다’고 여긴다는 대목은 놀랍기까지 합니다. 1940년대나 1920년대도 아니고 1990년대 끝무렵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스스로 울타리에 가두거나 굴레로 짓누른 생각 때문에, 둘레에 있는 다른 사람을 괴롭힌 결을 언제쯤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까요. 너무 힘이 든다 싶으면, 1940년대나 1920년대 일본에서 ‘전쟁 미치광이 권력자한테 짓밟히면서도 만화를 그리던 사람’을 떠올리면서 새롭게 두 주먹을 불끈 쥘 수 있어야 합니다. 하야시가 즐겁게 보는 만화책을 그린 앞사람이 저마다 어떤 꿈을 가슴에 품으면서 씩씩하게 한길을 걸었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마 셋째 권부터 이런 이야기가 찬찬히 흐르리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스스로 둘러댄 온갖 핑계를 하나씩 털면서 ‘내 모습 그대로 들여다보기’를 하는 나날을 뒷권에서 보여주리라 생각합니다. 4348.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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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주인 1
시노하라 우미하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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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62



책을 읽는 사람

― 도서관의 주인 1

 시노하라 우미하루 글·그림

 윤지은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2.7.15.



  책은 누구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책을 쓴 사람이 임자라 할 만할까요, 책을 펴낸 사람이 임자라 할 만할까요, 아니면 책을 사고파는 책방지기가 임자라 할 만할까요. 아니면 책을 장만해서 읽는 사람이 임자라 할 만할까요.


  임자는 한 사람일 수 있으나, 한 사람에서 그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온누리 모든 책은 ‘책을 쓴 사람’한테서 비롯할 테지만, 책을 써서 엮고 펴내면, 이때부터는 이 책을 다루거나 마주하는 모든 사람이 임자가 됩니다.


  책을 쓴 사람은 이웃과 어우러지는 삶에서 슬기를 얻기에 책을 쓸 수 있습니다. 책을 펴내는 사람은 새로운 이야기를 이웃과 나눈다는 마음이기에 책을 펴낼 수 있습니다. 책을 사고파는 사람은 이웃한테 새로운 이야기를 알릴 수 있다는 생각이기에 책을 사고팔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기쁘게 맞아들일 수 있구나 하고 여기면서 한 권 두 권 꾸준히 책을 장만할 수 있습니다.



- “여기에 있는 책을 모두 읽기라도 했어? 읽어 본 적도 없는 책을 우습게 여기다니, 멍청하기 짝이 없군!” (10쪽)

- “당신이 책을 고르는 게 아냐. 책이 당신을 선택한 거지.” (22쪽)





  시노하라 우미하루 님이 빚은 만화책 《도서관의 주인》(대원씨아이,2012) 첫째 권을 읽습니다. 도서관이라는 곳을 놓고 볼 적에 누가 ‘임자’인가를 보여주는 만화책입니다. 도서관은 어떠한 곳인가를 밝히는 만화책이고, 도서관이 맡는 몫을 보여주는 만화책이며, 도서관에서 만나는 책이 우리 삶과 어떻게 잇닿는가 하는 대목을 이야기하는 만화책입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도서관은 ‘시험공부 하는 데’가 아닙니다. 도서관은 ‘내 것이 아니니까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되는 책’이 있는 데가 아닙니다. 도서관에서 행정을 맡는 사람은 책을 몰라도 되지 않으며, 대학교를 마쳤다거나 직급이 높다고 해서 관장 자리를 잘 지킬 수 있지 않습니다.


  책을 아끼거나 사랑할 줄 알아야 도서관을 지킬 수 있다고 할 텐데, 책에 먼지가 앉지 않도록 하거나 책이 안 다치게 하는 일이 ‘책사랑’이 아닙니다. 책에 깃든 숨결을 이웃과 살가이 나누는 몸짓이 책사랑입니다.



- “이 막대한 책 속에서 자기만의 한 권을 발견하는 것, 완전히 보물찾기잖아. 그 즐거움을 빼앗으면 어쩌자는 거야!” (33쪽)

- “어쩐지 다 읽어 버리면 아까울 것 같아.” “안심해. 《보물섬》을 다 읽으면, 또 새로운 책을 빌리러 오면 돼. 여기에는 이렇게나 너를 기다리는 책이 많아.” (40∼41쪽)



  책을 읽는 사람은 줄거리를 꿰는 사람이 아닙니다. 온갖 책을 잔뜩 읽었기에 ‘책을 읽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지식을 쌓으려고 읽는 책이 아닙니다. 삶을 가꾸는 길에 동무로 삼으려고 만나는 책입니다. 읽고 또 읽는 책이 아니라, 읽으면서 웃으려는 책이요, 읽는 동안 생각을 새롭게 깨우려고 하는 책입니다.


  어느 책 한 권을 마쳤으면 다른 책이 기다리겠지요. 그러나, 어느 책 한 권을 다시 읽어도 새로운 이야기가 흐릅니다. 읽은 책을 되읽으면서 새로운 숨결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한테는 더 많은 책이 있어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한테는 마음을 살찌울 책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한테는 푸른 숲과 같은 책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숲에서 자라는 나무처럼, 도서관은 푸른 숨결 그득한 책을 건사하는 곳입니다. 숲에서 자라는 나무에 찾아드는 새처럼, 도서관을 지키는 임자란 맑게 노래하고 밝게 웃는 숨결입니다.





- “무슨 소리야? 여기는 자습실이 아니야. 도서관이다. 너희들처럼 여기 책을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 녀석들이 자리를 잡아도 되는 시험공부 장소가 아니라고!” (61쪽)

- “아저씨가 말하는 건 도서관이 아니에요. 그냥 책이 들어 있는 상자야!” (78쪽)



  만화책 《도서관의 주인》을 곰곰이 헤아립니다. 책을 한결 깊고 넓게 마주하려는 눈길이나 손길이 잘 드러납니다. 다만, 조금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도서관에 깃드는 책은 수만 수십만 수백만 권이지만, 이 모든 책을 골고루 다루지 않아도 도서관이 어떤 곳인지 밝힐 수 있고, 도서관에 깃든 책이 우리 삶을 어떻게 어루만지는가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수북한 책더미가 아닌, 온누리를 찬찬히 밝히는 별빛 같은 책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아닌, 온누리를 저마다 밝히는 숨결입니다. 여기 한 사람이 있어 책 한 권을 만나고, 저기 두 사람이 있어 책 두 권을 마주합니다. 책을 쓰다듬는 손길이 따사롭습니다. 4348.2.3.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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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소리 2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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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61



노래 한 마디에 싣는 마음

― 순백의 소리 2

 라가와 마리모 글·그림

 이상은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2.25.



  마음을 담아서 말을 하면, 이 말을 듣는 사람뿐 아니라, 이 말을 하는 사람부터 즐겁습니다. 마음을 담아서 말을 할 적에는, 웃음이나 눈물이 저절로 흐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깃든 말은 우리 모두를 아름답게 살리거든요. 아름답게 살리는 말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킵니다. 새로운 바람은 너와 나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고, 이 징검다리는 서로서로 따사로운 사랑으로 피어납니다.


  마음을 담아서 노래를 하면, 이 노래는 듣는 사람뿐 아니라, 이 노래를 하는 사람부터 기쁩니다. 마음을 실어서 노래를 할 적에는, 웃음이나 눈물이 시나브로 흐릅니다. 참으로 그렇지요. 마음이 깃든 노래는 우리 모두를 곱게 살립니다. 곱게 살리는 노래는 새로운 숨결이 됩니다. 새로운 숨결은 너와 나 사이에 무지개를 놓아, 이 무지개는 서로서로 넉넉한 보금자리로 이어집니다.



- “형이 와 있는 동안엔 한 번도 안 켰죠? 들려주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었을까요?” (11쪽)

- “동피가 째졌네.” “만든 지 오래됐으면 그리 된다.” “어째서?” “가죽은 살아 있으니까. 오랫동안 바람을 안 쏘인기다.” (37∼38쪽)




  백 마디 말이 아니어도 넉넉합니다. 한 마디나 두 마디 말이어도 넉넉합니다. 마음을 담을 수 있는 말이면 언제나 넉넉합니다. 긴 노래나 멋진 노래가 아니어도 반갑습니다. 널리 알려진 노래가 아니어도 되고, 사랑을 실어 부르는 노래이기만 하다면, 우리는 서로 살갑게 어깨동무를 할 수 있습니다. 노래에 깃든 넋이 환한 날갯짓으로 구름 너머로 올라가서 맑은 햇발로 온누리로 퍼집니다.


  그러니, 아이한테 들려주는 말뿐 아니라 어른끼리 나누는 말을 살뜰히 주고받을 노릇입니다. 글을 쓸 적이든, 보고서나 논문을 쓸 적이든, 신문글이나 이런저런 보도자료를 쓰든, 어떤 글이든 마음을 담아서 쓸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말과 글은 돈을 벌 생각이 아니라 삶을 지을 생각으로 나누니까요. 삶을 지을 수 있는 말과 글일 때에 꽃답게 피어나면서 작은 씨앗으로 흙 품에 안깁니다.



- ‘그 애가 듣고 있던 것은, 그 프레이즈는. 할배의 즉흥이었다. 이상하다. 할배의 소리를 아는 사람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니.’ (60쪽)

“사와무라는? 어느 정도 켤 수 있어?” “그걸 멀쩡히 켜는 건 무리다. 게다가 나는, 내 마음이 그 곡을 못 따라간다.” (90쪽)

- “카미키 세이류에게 들려주긴 뭘 들려주겠노? 뭐한다꼬? 누굴 위해 켜야 하는지 모를 때는, 나는 켤 수가 없다. 그런 기분인데 내가 우째 마에다한테 ‘켜 주마’ 하고 말하겠나 말이다.” (123쪽)





  라가와 마리모 님이 빚은 만화책 《순백의 소리》(학산문화사,2013) 둘째 권을 읽습니다. 둘째 권에서는 주인공 아이가 할머니 앞에서 샤미센을 켜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아이는 왜 할머니 앞에서 샤미센을 켤까요. 아이는 왜 할아버지를 떠올리려 할까요. 아이는 왜 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소리를 이웃한테 들려줄까요. 아이는 왜 ‘내 소리’를 찾으려 할까요.


  실마리는 오직 하나입니다. 사랑입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사랑합니다. 동무도 이웃도 사랑합니다. 누구보다 아이는 제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짓고 싶습니다. 그래서, 샤미센 켜는 길에 서고 싶고, 샤미센으로 꿈을 짓고 싶습니다.



- “자기가 못하는 걸 해 달라고 누가 부탁하면, 니는 우얄래?” “안 할 걸요?” (130쪽)

- “담긴 ‘마음’의 크기는 아느냐 모르느냐 차이다. 하지만 켜 보지도 않고 겁낼 건 없데이. 할매한테는 니 ‘춘효’를 들려 드리면 되잖겄나. 할매가 가진 우리 할배의 기억에, 니가 들어가면 되는 기라.” (137쪽)




  바람이 부는 날에는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습니다. 바람이 멎은 날에는 조용한 노래를 듣습니다. 바람은 나뭇가지를 간질이면서 살랑살랑 새로운 노래를 들려주고, 바람은 풀잎을 어루만지면서 살풋살풋 새삼스러운 노래를 들려줍니다.


  구름이 짙은 날에는 구름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습니다. 구름이 없는 날에는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들이 노래를 베풉니다. 구름은 구름대로 구름노래를 베풀고, 뭇새는 뭇새대로 날갯짓을 노래처럼 베풉니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면서 노래가 흐릅니다. 어버이가 부엌에서 밥을 지으면서 노래가 흐릅니다. 수저가 딸각이면서 노래가 되고, 이불을 여미면서 노래가 됩니다. 모든 삶은 모든 노래요, 모든 이야기는 모든 숨결입니다.



- ‘60년 넘게 할배의 소리를 기억하던 사람.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춘효’를 만들어 낸 할아버지의 마음을.’ (186∼187쪽)

- “그 사람의 음색은 따뜻하고, 살아갈 용기를 주었지. 네 음색에는 아픔을 어루만지는 따뜻함이 있어. 소리의 혼이 네게 이어져 내려간 게지. 오늘, 옛날과 지금이 이어져서 행복하구나. 정말 고맙다.” “저야말로, 고맙습니더.” “이젠 잠드는 게 무섭지 않아. 앞으로는 좋은 꿈을 꿀 테니.” (206∼207쪽)



  나는 내 노랫가락을 찾습니다. 너는 네 노랫가락을 찾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제 노랫가락을 찾아서 길을 걷습니다. 누구는 빙 돌아서 갈 수 있고, 누구는 차근차근 오솔길을 갈 수 있습니다. 숲길을 지나는 사람이 있고, 숲속에서 낮잠을 실컷 잔 뒤 다시 길을 나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이 저마다 다른 꿈을 짓는 하루입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이 오늘 하루 새롭게 아침을 열면서 가꾸는 삶입니다. 오늘 켜는 샤미센과 어제 켠 샤미센이 다를 테고, 오늘 들려주는 샤미센과 모레에 들려줄 샤미센이 다를 테지요. 우리는 누구나 날마다 새롭게 자라는 맑은 넋이니까요. 4348.2.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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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스기 가의 도시락 4
야나하라 노조미 지음, 채다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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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58



곁에서 지켜보며 배우는 삶

― 다카스기 家의 도시락 4

 야나하라 노조미 글·그림

 채다인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2.3.25.



  새벽바람이 상큼합니다. 내 몸을 구석구석 훑으면서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으려는 새벽바람이 상큼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이 새벽바람을 차갑거나 서늘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마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차갑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 차갑지 않고, 서늘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에 서늘하지 않습니다.


  아침노을이 퍼지면서 뜨는 해가 맑습니다. 내 눈을 가만히 틔우면서 뜨는 해님이 반갑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이 아침노을과 해님을 썩 안 반갑게 여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침노을을 바라보면서 오늘 하루 누릴 삶을 짓고, 해님이 솟는 기운을 느끼면서 아침에 함께 나눌 밥을 헤아립니다. 기쁘게 맞이할 새로운 하루를 생각한다면 하루는 온통 기쁨입니다. 즐겁게 누릴 새삼스러운 하루를 살핀다면 하루는 그예 즐거움입니다.



- ‘이 나라의 손님은 나의 손님. 이 고장의 손님은 나의 손님. 이 집의 손님은 나의 손님.’ (9쪽)

- “쿠루리, 사 가지고 가자. 그래도 확실히 이득이라고. 마루미야, ‘이득’이라는 건 ‘싸다’는 것과는 다른 거야.” “그럼 이득이라는 건 뭔데요?” (42쪽)





  새벽에 누런쌀을 씻습니다. 누런쌀로 밥을 지어서 먹으려면 한참 불려야 합니다. 아침에 누런쌀밥을 먹자면 엊저녁에 불려야 했는데, 엊저녁에 짓고 남은 밥이 있어서, 낮에 새밥을 짓기로 하고, 아침에는 엊저녁 밥으로 새로 지으려 합니다. 갓 지은 밥은 보슬보슬 김이 솟는 맛이 있고, 찬밥은 요모조모 손을 써서 남다른 밥을 짓는 맛이 있습니다.


  늘 먹는 밥이지만 늘 다른 밥입니다. 늘 짓는 밥이면서 늘 새로운 밥입니다. 오늘 나는 어제와 다른 나요, 오늘 나는 새로운 모레로 가는 나입니다. 그래서 내가 짓는 밥은 날마다 다르면서 새롭습니다. 내가 곁님과 아이들하고 나누는 밥은 언제나 새삼스러우면서 즐겁습니다. 어떤 밥이든 지을 수 있고, 어떤 맛이든 누릴 수 있습니다. 어떤 밥이든 기쁘며, 어떤 날이든 웃고 노래하면서 엽니다.



- ‘또 미야 누나 덕이라고 하면 학생회도 있지, 쿠루리가 입후보라니! 그 덕에 친구도 생겼으니 수학여행도 즐겁게 보낼 거야. 미야 누나의 기억이 쿠루리를 기르고 있다.’ (79쪽)

- “그렇게 휘둘리며 살았지만, 그만큼 여러 가지 경험을 했고, 무엇보다 일에 열중하는 아버지는 저에게 있어 자랑스러운 존재였어요.” (83쪽)






  야나하라 노조미 님이 빚은 만화책 《다카스기 家의 도시락》(AK커뮤니케이션즈,2012) 넷째 권을 읽습니다. 삶을 사랑으로 지으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아침저녁으로 사랑을 생각합니다. 삶을 기쁨으로 지으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하루 내내 기쁨을 살핍니다. 삶을 노래로 지으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노래가 가득합니다.


  우리는 삶을 무엇으로든 지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미움이나 시샘이나 짜증으로도 하루를 지을 수 있습니다. 설렘이나 두려움이나 반가움으로도 하루를 지을 수 있습니다. 다툼이나 나눔이나 아름다움으로도 하루를 지을 만합니다. 어느 것을 내 숨결로 삼아서 하루를 짓든 늘 내 하루입니다.



- ‘미야 누나의 기억이 쿠루리를 이끄는 것처럼, 장소에 새겨진 기억이나 마음이 주는 소박한 은혜. 숫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알고 싶어서 연구자가 되었다.’ (88∼89쪽)

- ‘이곳에서 쿠루리가 성장해 가는 걸 보고 싶은 것이다. 바로 내가.’ (91쪽)





  아이가 어버이 곁에서 하루를 지켜봅니다. 어버이도 아이 곁에서 하루를 지켜봅니다. 서로 지켜보면서 하루가 흐릅니다. 서로 지켜보면서 삶을 배우고 사랑을 물려받으며 꿈을 품습니다.


  새벽바람으로 아이들을 학교나 학원에 넣는다면, 아이들은 학교나 학원에서 삶과 사랑과 꿈을 살핍니다. 그런데 학교나 학원에서 입시교육만 시킨다면, 아이들은 삶과 사랑과 꿈을 살필 겨를이 없이 쳇바퀴를 돕니다. 머리를 모두 열어 생각을 짓기보다는 늘 똑같은 시험공부만 되풀이하니까, 머리가 제대로 열리지 않습니다.


  시험공부는 새롭지 않습니다. 새롭지 않은 시험공부를 늘 똑같이 해야 할 적에는, 사람들 머리가 그만 닫힙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머리를 얼마 못 쓰는 까닭은 늘 똑같은 쳇바퀴를 돌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을 하지 못해서 머리를 못 쓰지 않아요. ‘새로운 사랑과 꿈’을 키우지 못하니 새로운 하루가 되지 못해요.





- “오늘 만든 차조기말이, 꽤 인기가 좋았지. 또 기회가 있으면 만들어 줄게.” “받는 것보다, 같이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143∼144쪽)

- “니이는 태어날 때부터 계속 자연이라는 선생님에게서 배워 왔잖아.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커다란 지식을.” (166쪽)



  고등학교를 마친다거나 스무 살이 되어야 어른이지 않습니다. 나이가 차면 그저 나이가 찰 뿐입니다. 철이 들어 머리에 슬기로운 생각을 심을 수 있으면, 나이가 어리더라도 철이 든 사람입니다. 철이 들지 않아 머리에 슬기로운 생각을 못 심으면, 나이가 많더라도 철이 안 든 사람입니다.


  철이 든 사람이 어른이고, 철이 안 든 사람은 철부지입니다. 철이 안 들면서 걱정만 많은 사람은 애늙은이입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이든 될 수 있습니다. 철이 안 들 수도 있고, 철이 들 수도 있습니다. 삶을 노래할 수도 있고, 삶에 지칠 수도 있습니다. 어느 길이든 나쁘지 않습니다. 어느 길에서든 넉넉하게 배웁니다. 무엇을 배우는지 찬찬히 지켜보면서 내 하루를 따사롭게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요. 4348.2.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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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여우 4
오치아이 사요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59



우리 멋진 아이들

― 은여우 4

 오치아이 사요리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4.9.30.



  곰곰이 돌아보면, 나는 모든 것을 다 아는데, 그동안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내가 모든 것을 다 알듯이, 내 둘레에 있는 모든 이웃과 동무도 ‘모든 것을 다 압’니다. 내 이웃과 동무 가운데에는 이녁이 모든 것을 다 아는 줄 슬기롭게 알아채거나 깨달은 분이 있을 테고, 아직 받아들이지 않은 분이 있을 테며, 잘못 받아들인 분이 있을 테지요. 이를 미처 헤아리지 못한 분이 있을 테고요.


  어떤 모습이든 모두 아름답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줄 알아챌 적에도 아름답고, 아직 이를 안 알아채더라도 아름답습니다. 저마다 스스로 짓는 삶이니까요.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은 ‘모르는 것이 없’는 줄 압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뿐 아니라, 돌이나 나무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줄 알기도 해요. 새나 구름이 우리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는가를 환하게 알아챌 수 있고, 연필이나 책하고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을 만합니다.





- “국자를 망가뜨린 건 확실히 잘못한 일이지만, 중요한 건 그걸 반성하고 사과하는 마음이란다. 그러니까 여우님도 용서해 주실 거야.” (31쪽)

-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건 매우 멋진 일이란다. 할머니 때는 웬만해서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좋아하는 사람과 맺어질 수 없는 시절이었지! 그러니까 좋아하면 솔직하게 고백해도 돼. 언젠가는 나나미 너를 좋아해 줄 여자애가 나타날 거야.” (60쪽)



  나한테는 작은 노트북과 태블릿이 있습니다. 내 작은 노트북은 올해로 열두 해째 함께 지냈지 싶습니다. 작고 가벼운 노트북인데, 두 아이와 다니며 가방 짐을 줄이려고 더 가벼운 태블릿을 장만했어요. 이러다 보니 노트북을 쓸 일이 없습니다. 이 아이(작은 노트북)한테는 참 미안한 일이지만 이리 되고 맙니다. 그런데 새로 장만한 태블릿이 곧잘 말썽을 일으켰어요. 안 켜지거나 안 꺼집니다. 왜 이럴까,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새로 장만한 기계인데, 어쩜 이렇게 ‘말을 안 들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 생각이 바로 이 아이(새 태블릿)를 그러한 말대로 이끌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내 생각을 불태우기로 합니다. 내가 스스로 품은 생각인 ‘힘들다’와 ‘말을 안 듣네’라는 두 마디를 마음속으로 활활 불태웁니다. 이러고 나서 ‘사랑스럽다’와 ‘착하다’와 ‘고맙다’ 세 마디를 마음속에 담습니다. 태블릿을 내 무릎에 얹은 다음, 태블릿 화면에 내 오른손을 대고서 이 세 마디를 한동안 마음으로 읊었어요. 이렇게 있는 동안 태블릿 화면이 두근거린다고 느꼈고, 꽤 따스한 기운이 퍼지고 난 다음에 전원 단추를 눌렀지요. 그러니, 이때부터 여태까지 아주 잘 켜지고 잘 꺼집니다.



- “네가 결정한 일이라면 아빠는 뭐든지 응원할게.” (81쪽)

- “엄마가 했으니까 나도 되고 싶었고, 엄마가 했던 일을 알고 싶었어. 지금도 무녀를 동경하고 신에게 봉사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 무녀가 아니라, 나는 분명 ‘엄마’가 되고 싶었던 거야.” (84∼85쪽)





  오치아이 사요리 님이 빚은 만화책 《은여우》(대원씨아이,2014) 넷째 권을 읽습니다. 만화책 《은여우》에 나오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사랑스럽고 멋집니다. 어버이와 동무와 이웃한테서 사랑을 받으니 사랑스러울 수 있으나, 아이들 스스로 사랑스럽습니다.


  남한테서 얻는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에서 길어올리는 사랑입니다. 남이 해 주기를 바라는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 이루거나 바라는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스러운 사람은 스스로 사랑스럽습니다. 멋진 사람은 스스로 멋집니다. 놀라운 사람은 스스로 놀랍습니다. 남이 북돋우거나 추켜세우기에 멋지거나 놀랍지 않아요. 스스로 삶을 북돋우거나 끌어올릴 줄 알기에 멋지거나 놀라븝니다.



- “여자라서 처음에는 남편에게 신사를 맡기고, 저는 무녀를 하려고 했는데, 그것보다는 제 스스로 신직이 되어 신사를 잇고 싶어요.” (138쪽)

- “애 나름대로 고민해 결정한 일이잖아. 그럼, 그걸 인정해 주는 게 어른 아냐?” (144쪽)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는 두 아이도 언제나 멋지고 사랑스럽습니다. 나와 곁님이 낳은 두 아이인 터라 멋지거나 사랑스럽지 않아요. 아이들 스스로 멋지고 사랑스럽습니다. 이웃에 있는 다른 아이라든지, 마을에 있는 다른 아이(우리 마을에는 아이들이 없고 면소재지나 읍내에만 아이들이 있지만)도 스스로 멋지고 사랑스럽지요.


  그런데, 이러한 멋과 사랑은 예전부터 느끼면서 알기는 했을 텐데, 예전에는 제대로 못 느끼거나 미처 알아채지 못한 모습이 많구나 싶습니다. 내가 나 스스로 얼마나 멋지고 사랑스러운가를 그동안 꾹꾹 눌러서 밟기만 했듯이, 내 둘레에서도 수많은 이웃과 동무가 이녁한테서 멋지거나 사랑스러운 모습을 이녁 스스로 꾹꾹 눌러서 밟기만 하는구나 싶기도 해요.


  사회에서 억누르고 학교에서 짓누릅니다. 정치와 문화로 억누르고, 제도와 틀로 짓누릅니다. 참말 온갖 사회의식이 우리를 누르거나 밟으려고 해요.




- “긴타로, 나는 애당초 평범한 여우야. 산에서 들에서 그저 가족들과 함께 살았지. 인간과 똑같아. 하지만 신의 사자가 된 뒤로 비로소 알았어. 인간이란 매우 깊고 복잡한 존재라는 것을.” (175쪽)

- “인간은 신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마치 갓난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이 되지. 긴타로, 나는 내가 신의 사자가 된 이유를 알고 싶어. 인간은 신에게 무엇을 기원하고 생각하는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신이 내게 무언가를 보여주려 하고 있는 건지.” (178쪽)



  다 함께 아름답게 사는 길은 아주 쉽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 우리는 다 함께 아름답게 살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 함께 아름답게 살지 못해요. 남이 나를 사랑할 때에 아름다운 삶이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할 때에 아름다운 삶입니다.


  다만, 내가 나를 사랑하더라도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바라보고 알아야지요. ‘좋아하다’나 ‘좋다’는 마음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어느 한 사람한테 끌리는 마음이 아닙니다. 사랑은, 어느 한 사람을 ‘내 것’으로 거머쥐려는 마음이 아닙니다. 사랑은, 어느 한 사람과 살을 섞으려는 마음이 아닙니다. 사랑은, 내가 나를 아끼면서 내 이웃과 동무를 아끼려는 마음이요, 서로 거룩한 넋인 줄 느끼면서 따사롭게 안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4348.1.2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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