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왕국 11
라이쿠 마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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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01



삶과 웃음

― 동물의 왕국 11

 라이쿠 마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10.25.



  아이들을 데리고 면소재지 놀이터에 옵니다. 두 아이는 어느새 맨발이 되어 놀이터 모래밭을 달립니다.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는 사월입니다. 이 아이들은 집에서도 마당을 맨발로 달립니다.


  맨발이 되면 땅바닥을 훨씬 가까이에서 느낍니다. 땅빛을 느끼고, 땅숨을 느끼며, 땅결을 느낍니다. 땅내음을 맡고, 땅노래를 부르며, 땅놀이를 짓습니다.


  가만히 따지면, ‘노는 아이’한테는 따로 놀이터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즐겁게 놀거든요. 놀이기구가 꼭 있어야 하지 않고, 놀잇감을 이모저모 갖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맨손으로도 온갖 놀이를 하고, 맨몸으로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뛰놉니다.



- “난 나야! 쿠오우의 옛날 친구 대신이 아니라고!” (12쪽)

- “한 번에 태어나는 족제비 새끼 수도 줄어들지 몰라.” “응? 왜지? 그건 좀 섭섭한데.” “왜냐하면 원통한 죽음이 사라져 어른까지 자랄 테니까. 코끼리나 소는 보통 한 마리씩 낳거든.” “그런가. 섭섭하긴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좋은 일이군. 먹잇감을 놓고 형제가 다툴 일도 없을 테고, 형제를 갖고 싶으면 그때마다 낳으면 되니까. 무엇보다 그곳에 원통한 죽음은 없을 테니! 그저 웃는 아이들뿐. 재밌군! 정말 기분 좋다, 타로우자!” (44∼45쪽)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놉니다. 놀 수 있는 사람이 웃습니다.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살림을 알뜰살뜰 가꿉니다. 살림을 알뜰살뜰 가꿀 수 있는 사람이 웃습니다.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웃습니다.


  꼭 학교에 가서 뭔가를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굳이 책을 펼쳐서 읽어야 뭔가를 알지 않습니다. 웃고 노래하면 다 알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 무엇이든 알아냅니다. 기쁘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하루를 고마이 받아들이면, 보금자리가 학교이고 마을이 학교이며 들과 숲이 학교입니다.



- ‘키메라 세포 전체가 오한과 떨림에 휩싸이며, 죽음에 대한 위험에 비명을 질렀다.’ (66쪽)

- ‘나무늘보에겐 가혹한 훈련 방법이었지만, 나무늘보가 가진 무력한 운명에 대한 분노가 고통을 날려버렸다.’ (87쪽)




  라이쿠 마코토 님이 빚은 만화책 《동물의 왕국》(학산문화사,2013) 열한째 권을 읽으면, 지구별 뭇짐승이 한자리에 모여서 씩씩하게 힘을 모으는 밑힘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찬찬히 보여줍니다. 지구별 뭇짐승은 ‘키메라’하고 맞서면서 저마다 목숨을 겁니다. 죽을 수도 있다고 느끼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지구별 뭇짐승은 저마다 제 ‘새끼(아이)’를 생각하거든요. 어미(어버이)로서 키메라하고 싸우다가 숨을 거둘 수 있지만, ‘내(어버이)’가 숨을 거두어도, 아이들은 앞으로 사랑과 평화로 가득한 아름다운 지구별에서 서로 돕고 아끼면서 살 수 있기를 바라요.



- “왜 그런 일을 하려는 거지?” “죽은 엄마와 함께 그렸던 꿈이니까.” (115쪽)

- ‘그래, 난 그때의 네 얼굴에서 빛을 봤다. 적끼리 서로 웃게 만들고, 이 세상의 규칙을 당연하다는 듯 바꾼 네 미소에 난 목숨을 걸 결심을 했다.’ (127쪽)





  함께 웃으면서 살아가는 꿈이 있기에 어떤 가시밭길이든 씩씩하게 갑니다. 서로 도우면서 기쁘게 웃는 꿈이 있기에 모진 어려움도 꿋꿋하게 받아들입니다.


  사랑을 가슴에 품기에 새롭게 기운을 내고, 꿈을 마음에 담기에 새삼스레 기운을 끌어냅니다. 오순도순 어울리면서 나누는 이야기가 즐거우니까 언제 어디에서나 어깨동무를 하면서 한길을 함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전쟁으로는 평화를 누리지 못합니다. 날카로운 발톱과 어금니가 있다 하더라도 내 몸과 아이들 몸을 지킬 수 없습니다. 내가 나를 지키고 아이들을 지키자면, 발톱이나 어금니가 아니라 오직 사랑과 꿈을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 “내겐 없는 송곳니와 발톱으로, 그 녀석은 이 세상을 바꿀 거야! 죽이게 놔두지 않아! 죽이게 놔두지 않는다! 이 세상을 내게 준 타로우자를!” (182쪽)





  어버이한테 돈이 많아야 아이들이 잘 자라거나 예쁘게 크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이름난 사람이거나 힘이 세어야 아이들이 튼튼히 자라거나 멋있게 크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아이들이 똑똑하지 않습니다. 어버이한테 자가용이 있어야 걱정없이 나들이를 다니지 않습니다.


  어버이 가슴에는 맨 먼저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어버이 가슴에는 사랑스러운 꿈이 흘러야 합니다. 어버이 가슴에는 사랑스러운 꿈이 웃음꽃으로 피어나야 합니다. 어버이 가슴에는 사랑스러운 꿈이 웃음꽃으로 피어나는 이야기가 샘솟아야 합니다.


  삶과 웃음은 언제나 함께 있습니다. 삶과 웃음은 늘 한동아리가 되어 우리 모두한테 새 숨결을 베풉니다.살면서 웃고, 웃으면서 삽니다. 살면서 사랑하고, 사랑하면서 삽니다. 살면서 꿈꾸고, 꿈꾸면서 삽니다. 4348.4.1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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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가면 1
스즈에 미우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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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99



첫걸음을 내딛으려는 꿈

― 유리가면 1

 미우치 스즈에 글·그림

 해외단행본팀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0.4.30.



  아기가 첫걸음을 뗍니다. 아기는 걷고 싶기 때문에 첫걸음을 뗍니다. 첫걸음을 뗀 아기는 몇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자빠지거나 주저앉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기운을 내어 일어서려 합니다. 날마다 더 기운을 내고 또 기운을 내어 두 걸음과 세 걸음을 잇달아 내딛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한참 지났어도 어떤 일이든 잘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 하는 사람은 잘 하니까 어떤 일이든 그야말로 기운차게 뻗습니다. 잘 못하는 사람은 잘 못하니까 어떤 일이든 주눅들 수 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이 일 저 일 맞아들입니다.


  어느 일을 맞아들이건, ‘잘 할까, 못 할까’를 따지면, 나는 늘 ‘잘 할는지, 못 할는지’와 같은 굴레에 사로잡힙니다. 어느 때에는 잘 하겠지만, 어느 때에는 잘 못하겠지요. 어느 때에는 잘 하면서 기쁠 테지만, 어느 때에는 잘 못하면서 슬플 테지요.



- “나, 할 거야! 몽땅 배달할게!” “마야!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호낮서 120군데나 배달할 순 없어!” “난 할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꼭 〈춘희〉 입장권을 줘.” (23쪽)

- “단념해. 너한테 연극 구경은 과분해. 배달이나 하는 주제에 건방지게.” (34쪽)

- “어떻게 비비 역을 연구했지?” “연구라니, 그런. 단지 TV나 코미디 같은 걸 보고.” “그렇다면 넌 사람들 흉내를 내고 있는 것뿐이야. 비비를 연기하는 건 너야. 비비의 심리를 파악하지 못하면 비비의 가면을 쓸 수가 없는 거야.” (84쪽)





  걸음은 잘 걸어야 하지 않습니다. 걸음은 꼭 뚜벅뚜벅 걸어야 하지 않습니다. 걸음은 굳이 반듯하게 걸어야 하지 않습니다. 걸음은 그저 걸으면 됩니다. 이렇게 걷든 저렇게 걷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빨리 걷든 느리게 걷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갈 길을 걸어가면 돼요.


  걸어가다가 넘어질 수 있어요. 걷다가 담벼락에 꽈당 부딪힐 수 있어요. 가던 길이 끊어져서 멀리 에돌아 가야 할 수 있어요. 아무튼 다 됩니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어요. 나는 내 길을 갈 수 있으면 됩니다.


  내 삶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누구나 제 길을 제 힘으로 가면 되는데, 때때로 ‘제 숨결’을 잊거나 놓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생각 때문에 그만 쭈뼛거립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바보스럽게 바라보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면서 그만 움찔합니다.



- “하지만 알고 계세요? 마스미 씨, 오노데라 씨. 저 애는, 〈춘희〉의 무대를 단 한 번 본 것뿐이에요. 그런데도 3시간 반짜리 무대의 대사를 한 마디, 한 구절도 틀리지 않고, 배우들의 연기 포즈까지 통째로 암기해 버린 겁니다.” (56∼57쪽)

- ‘연극! 연극에 나간다! 내가! 처음이야! 남에게서 칭찬받은 것은.’ (61쪽)

- ‘선생님이 날 비비 역으로 정한 건 우리 집이 가난하기 때문? 다른 역할은 의상비가 많이 드니까?’ (63쪽)





  나는 다른 사람 눈치에 따라 걸어야 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내 걸음걸이가 예쁘면, 참말로 내 삶도 예쁘다고 할 만한지 생각해 봅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내 걸음걸이가 미우면, 참으로 내 삶도 밉다고 할 만한지 생각해 봅니다.


  내 젓가락질이 서툴어 보인다고 하면, 나는 젓가락질을 ‘잘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젓가락질을 못 하니까 밥을 못 먹을까요? 내 삽질이 어설퍼 보인다고 하면, 나는 삽질을 ‘잘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삽질을 못 하니까 나무를 못 심을까요? 자전거가 익숙하지 않아서 두발자전거를 도무지 못 타는 사람이 있어요. 두발자전거를 도무지 못 타는 사람이니까, 이 사람은 자전거를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요?



- “연기하기에 따라서 이 역은 주역보다 더 주목을 받게 될지도 몰라.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무시당하게 될지도.” “아줌마.” “말해 두는데 마야, 배역의 좋고 나쁨은 문제가 안 돼. 맡겨진 역을 멋지게 연기해 내면 되는 거야. 무대 위로 한 걸음 나서면, 그때부터 넌 이미 네 자신이 아닌 거다.” (64쪽)

- ‘모습을 감추고 가면을 쓴다. 그 여자의 기분으로, 그 여자의 성격으로, 그 여자의 마음으로!’ (66쪽)

- 기타지마 마야, 13세. 아빠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자그마한 중국요리집의 보잘것없는 더부살이 종업원. 그 아침, 뭐 하나 볼 것 없는 이 작은 소녀의 가슴속에 정열적인 불새 한 마리가 눈을 떴다.“ (71쪽)





  미우치 스즈에 님 만화책 《유리가면》(대원씨아이,2010) 첫째 권을 새롭게 읽습니다. 아직 모든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은 《유리가면》인데, 1970년대에 처음 나온 이야기를 2010년대에 새삼스레 다시 들춥니다. 예전에 다 읽은 이야기이지만,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서 천천히 첫 쪽부터 새롭게 읽어 봅니다.


  《유리가면》에는 커다란 기둥 구실을 하는 아이가 둘 나옵니다. 아이 하나는 스스로 언제나 기쁨을 노래하면서 삶을 누리려 하면서 ‘둘레 기운’을 고스란히 받아들입니다. 아이 둘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피를 되새기면서 더 빼어난 연극배우가 되려는 꿈을 키웁니다. 아이 하나는 기쁨과 노래와 삶으로 연극길을 걷습니다. 아이 둘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피를 더 끓어넘치게 하려는 삶으로 연극길을 걷습니다.



- 극단원들의 비웃는 소리 따위는 마야에게 전혀 들리지 않았다. 다만, 아유미의 훌륭한 연기만이 온통 마음속을 차지하고 있을 뿐. (138쪽)

- “봄밤의 공기는 정말 상쾌해. 잠이 싹 달아나네. 뭐 좋아! 첫 열차가 다닐 때까지 철길을 따라 걸어가지 뭐. 자! 도쿄를 향해 출발!” (158쪽)

- “어째서 좀더 관대한 눈으로 이 애를 봐주지 않는 겁니까? 왜 이 애 안에 잠자고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 보려고도 하지 않는 겁니까? 이 애가 아무 쓸모도 없는 애인지 어떤지, 나라면 단 하나의 재능이라도 찾아내서 키워 줄 수 있어요.” (178쪽)




  두 갈래로 다른 두 사람 가운데 어느 한쪽이 높거나 낫거나 뛰어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두 갈래로 다른 두 사람은 그저 두 갈래로 다를 뿐입니다. 다른 아이 눈치를 본다면 내 연극길을 갈 수 없습니다. 다른 아이가 잘 하는구나 싶은 대목을 흉내내려 한다면 내가 잘 하는구나 싶은 대목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한 번 본 연극을 통째로 외울 수 있다고 해서 대단하거나 훌륭하지 않습니다. 이 아이는 그저 ‘한 번 본 연극을 통째로 외울’ 뿐입니다. 어느 아이는 연극을 수없이 보았어도 대사 한 줄조차 제대로 못 외울 수 있습니다. 대사 한 줄조차 제대로 못 외운다고 해서 연극을 못 하거나 어설피 하지 않습니다. 그저 대사를 잘 못 외울 뿐입니다.


  값진 냄비를 써야 밥을 더 잘 하지 않습니다. 익숙한 냄비만 써야 밥을 더 잘 하지 않습니다. 밥 한 그릇은 언제나 우리 손길로 짓고, 우리 마음으로 지으며, 우리 사랑으로 짓습니다. 손길과 마음과 사랑이 고루 어우러지는 살림이 된다면, 어떤 냄비를 쓰고 어떤 불을 지피더라도 맛있는 밥 한 그릇을 짓습니다.




- “얼굴은 배우의 생명이에요. 끓는 물을 뒤집어쓰고 얼굴에 화상을 입으면 그 아이의 일생은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180쪽)

-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올라가는 것뿐! 그리고 지금은 그 첫걸음!” (185쪽)



  저마다 꿈으로 나아가려고 첫걸음을 뗍니다. 첫걸음이 놀랍도록 대단해서 눈부실 수 있고, 첫걸음이건 두걸음이건 세걸음이건 그저 자빠지거나 넘어지기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든 아랑곳할 일은 없습니다. 어떤 모습이든 나는 내 길을 가면 되고, 내 길을 사랑하면 되며, 내 길을 씩씩하게 보듬을 수 있으면 됩니다.


  첫발을 내딛으면서 두발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처음 한 번 씩씩하게 발을 내딛었으면, 이제부터 언제나 새롭게 한 발씩 내딛을 수 있고, 바야흐로 걸음이 됩니다.


  걸음은 어설퍼도 됩니다. 걸음은 매끄럽거나 멋있어도 됩니다. 어떤 걸음이라 하든, 내가 이 길을 왜 걷고 어디로 걷는가를 알면 됩니다. 내가 걷는 길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웃고 노래할 수 있으면 됩니다. 꿈으로 가는 길에서는 늘 웃음노래가 환하게 퍼집니다. 4348.4.1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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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5-04-10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린 시절 잠 안 자고 읽었던 그 만화네요.

숲노래 2015-04-10 22:13   좋아요 0 | URL
연극과 삶을 그리는
앞자락은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느껴요.
마무리를 안 짓는 요즈음은... 여러모로 아쉽고요...
 
네가 사는 꿈의 도시 4 - 완결
야치 에미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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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97



무엇을 하고 싶은가

― 네가 사는 꿈의 도시 4

 야치 에미코 글·그림

 박혜연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04.7.30.



  햇볕이 내리쬐는 날은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저 햇볕이 나기만 하더라도 즐겁습니다. 가뭄이 들어 땡볕만 내리쬔다면 이런 말을 함부로 못 할 테지만,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햇볕이 고루 내리쬐는 날은 더없이 아름다우면서 상큼합니다. 이렇게 햇볕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날에는 이불을 마당에 널면서 춤을 춥니다. 더 말리고 싶은 옷가지를 바깥에 내놓으면서 활짝 웃습니다.



- “애당초 이런 곳을 빌릴 돈 같은 거.” “또 돈 얘기니? 꿈이 없는 애로구나.” (21쪽)

- “또 히로오의 가게 찾기니?” “좀처럼 마음에 드는 가게가 없네요.” “그런 일을 해도 히로오는 기뻐하지 않을 것 같은데.” (48쪽)





  햇볕을 쬐며 춤을 추면 새도 우리 집 둘레에 내려앉아 노래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다른 노래를 들려줍니다. 가만히 해바라기를 하는데 우리 집 마당을 제비 두 마리가 재빠르게 가로지릅니다. 옳거니, 요 며칠 사이에 이른새벽에 ‘그동안 기다리던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바로 이 제비 두 마리였구나 싶습니다.


  제비 두 마리가 우리 집 마당이나 지붕을 가로지를 적마다 곧이어 참새 여러 마리가 지붕이나 전깃줄이나 우듬지에 올라가서 짹짹거립니다.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는 마치 ‘이 집은 우리가 깃들어 지내기로 했으니 너희는 오지 마’ 하고 을러대는 느낌입니다. 제비더러 이 집에서 함께 살자는 소리로는 들리지 않습니다.


  참새와 제비는 한집에서 살 수 있을까요? 참새와 제비는 서로 가까이에서 지낼 수 있을까요?


  둘이 사이좋게 못 지내라는 법은 없다고 느낍니다. 둘이 살가이 못 지낼 까닭은 없다고 느낍니다. 참새가 먹이를 찾는 곳이랑 제비가 먹이를 잡는 곳은 다르니까요. 참새와 제비는 서로 다른 삶을 누리니까요. 서로 어떻게 다른 삶인 줄 헤아리면서 찬찬히 마주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한집살이가 될 만하리라 느낍니다.





- ‘내가 하고 싶은 건, 천이나 실을 나의 색으로 물들이는 것. 바라는 색으로 꿈꾸는 색으로 행복한 색으로 물들이는 거야. 그리고 그거라면 어디서든 할 수 있어. 어디에서든.’ (57쪽)

- “저 아이가 본심을 말할 때마다 어째서 난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그건 네가 저 아이의 어머니이기 때문이지.” (59쪽)



  야치 에미코 님이 빚은 만화책 《네가 사는 꿈의 도시》(서울문화사,2004) 넷째 권을 읽습니다. 넷째 권에서 길면서 짧은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네가 사는 꿈의 도시》라는 책이름처럼, ‘네가 사는 곳’은 ‘꿈나라’입니다. 책이름에서는 ‘도시’라고 나오지만, 도시라기보다는 ‘터’요 ‘자리’입니다. 둥지나 보금자리라고 할까요. 너와 함께 내가 있어서 아름다운 둥지이거나, 내가 너와 함께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보금자리라고 할까요.



- “앉아서 졸기라도 했다면 모포 같은 걸 덮어줬을 텐데. 이제 와 생각하는 거지만, 모포 같은 구실이 없더라도 말을 걸어 줬더라면 좋았겠다 싶어.” (77쪽)

- “그런 건 직접 본인한테 말해야만 하는 거지. 그리고 쳇바퀴 도는 질문의 해답도 본인에게 들어야만 하는 것이고.” (83쪽)

- ‘그렇다면 그걸로 좋아! 그걸 확인하러 가는 거야. 안 그러면 내가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어!’ (99쪽)





  우리는 다 함께 씩씩합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삶을 짓기에 씩씩합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기운찹니다. 춤을 추면서 살림을 가꾸기에 기운찹니다.


  새와 함께 봄을 노래합니다. 풀벌레와 함께 봄을 춤춥니다. 나무와 풀이랑 어우러지면서 봄을 기쁨으로 맞이하면서 웃습니다.


  구름이 하얗고 하늘이 파랗습니다. 구름이 싱그럽고 하늘이 해맑습니다. 햇볕이 따뜻하고 바람이 싱그럽습니다. 이 아름다운 하루를 맞이할 수 있는 이곳에서 기쁘면서 웃음이 넘치는 사랑이 솟아납니다.



- “아아, 생각났어. 너도 저런 식으로, 따뜻하고 무척 부드러웠어.” (129쪽)

- “집은 사는 사람이 없으면 죽어버리니까요. 누군가 생명을 불어넣어 주지 않으면.” “무너지기 직전이었던 오두막을 필사적으로 사람 사는 집으로 바꿔버렸던 사람을 한 명 알고 있습니다. 굉장히 편안한 곳이라서 어느새 모두가 모이는 장소가 되어버렸죠.” (135쪽)

- ‘이 길을 사토시 씨도 걸었을까? 이 빗줄기를 맞았을지도 몰라. 지금은 이렇게 쓸쓸한 풍경이지만, 분명 개이면 틀림없이 아름다운 곳일 거야.’ (166쪽)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내가 나한테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마당에서 아이들과 놀면서 생각합니다. 어떤 놀이를 해야 웃음이 나올까요? 어떻게 놀아야 춤사위가 저절로 이루어지면서 해님을 노래하거나 제비와 손을 잡을 수 있을까요?


  바람을 가르는 제비는 홀가분합니다. 바람을 노래하는 새는 가붓합니다. 구름을 타고 하늘숨을 마시는 멧비둘기는 가볍습니다. 매화꽃은 모두 졌지만, 곧 모과꽃이 터지려고 합니다. 모과나무는 해마다 더 많은 꽃을 터뜨립니다. 올해에는 지난해와 견줄 수 없이 엄청난 모과꽃봉오리가 터질 듯 말 듯 부풉니다. 이듬해에는 또 올해와 견줄 수 없이 어마어마한 모과꽃봉오리가 맺히겠지요.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다시금 묻습니다. 나는 봄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나는 봄을 노래하면서 살아가려 합니다. 나는 봄을 꿈꾸고 사랑하면서 작은 새들과 하늘을 씩씩하게 가르려고 합니다. 4348.4.9.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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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플레이소녀 2
요시즈키 쿠미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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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89



네 꿈과 내 꿈은 늘 하나

― 플레이 플레이 소녀 2

 요시즈키 쿠미치 그림

 하시모토 히로시·와타나베 켄사쿠 글

 서울문화사 펴냄, 2015.2.27.



  나무는 씨앗으로 심을 수 있고, 나뭇가지로 심을 수 있습니다. 가지치기를 한다면서 솎아낸 나뭇가지를 건사해서 옮겨심으면 이 나뭇가지는 어느새 씩씩하게 뿌리를 내려 새로운 나무 한 그루로 우뚝 섭니다.


  나무를 옮겨심을 적에는 땅을 깊이 팝니다. 나뭇가지 아래쪽이 새로운 뿌리로 튼튼하게 설 수 있도록 깊이 심습니다. 나무가 스스로 씨앗을 떨구어 새로운 나무로 자라도록 할 적에는, 씨앗이 땅에 포근히 안겨 천천히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립니다. 나무씨앗은 처음부터 싹을 틔우거나 뿌리를 내리지 않습니다. 찬찬히 쌓이는 나뭇잎과 풀잎이 삭고 썩어서 새로운 흙이 될 무렵 께어나고, 다람쥐나 들쥐가 먹이로 삼아 땅에 파묻어 주면 고요히 잠들어서 쉬다가 어느새 씩씩하게 깨어납니다.


  씨앗으로 돋은 어리고 작은 나무를 바라봅니다. 이 어리고 작은 나무가 우람하게 서는 어른나무가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는 지 헤아립니다. 내가 손수 옮겨심은 작은 나무를 바라봅니다. 이 작은 나무는 곧 줄기가 굵어지고 새로운 가지를 죽죽 내놓습니다.



- “넌 왜 모두가 지금까지 탈락하지 않았는지 알아?” “예? 그, 그건, 으음?” “잘 들어 류타로. 너희들은 한 명도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빠지지 않은 거야.” (5쪽)

- ‘그 연습시합 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던 내 목소리는 결국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하지만 많이 노력하고 연습해서, 만약 내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닿았더라면, 그것은 정말로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을지도 몰라.’ (22쪽)





  가느다란 줄기를 쓰다듬고, 여린 잎을 어루만집니다. 내 몸에서 흐르는 기운을 어린나무한테 옮깁니다. 작은 나무가 커다란 나무로 자라면서 나누어 줄 푸른 바람을 꿈꿉니다.


  나무 앞에 서서 노래를 부릅니다. 나무가 내 노래를 듣고 기쁘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나무 옆에 서서 춤을 춥니다. 나무가 내 춤을 보고 즐겁게 크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을 불러 아이들과 함께 나무 앞에서 노래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나무 곁에서 춤을 춥니다. 아이들과 나무 둘레에서 놀고, 떨잎을 주워 나무 둘레로 옮깁니다.



- “괜찮아! 우리가 먼저 믿지 않으면, 기적은 시작되지 않아!” (41쪽)

- “주장, 언제까지 연습할 겁니까? 벌써 11시예요. 그만 돌아가죠.” “시끄러워! 응원단보다 먼저, 우리가 집에 갈 수는 없잖아!” (43쪽)

- “으, 음치는 여전하지만, 하지만, 응원가는 못 불러도 상관없어요. ‘영혼’만 담겨 있으면! 그러니까 이렇게 형편없는 나도 좋아하는 노래를 당당하게 부를 수 있어서 지금 무척 행복해요!” (66쪽)





  하시모토 히로시 님과 와타나베 켄사쿠 님이 글을 쓰고, 요시즈키 쿠미치 님이 그림을 그린 《플레이 플레이 소녀》(서울문화사,2015)는 둘째 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굵으면서 짧게 이야기를 끝맺습니다. 응원단을 이끄는 가녀린 아이가 씩씩한 젊은이로 우뚝 서는 이야기를 담는 《플레이 플레이 소녀》입니다.


  가녀린 아이는 스스로 가녀리다고 여기면서 아무것도 못 합니다. 그러나, 가녀린 아이가 저 스스로 얼마나 가녀린가 하는 대목을 깨달은 뒤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가녀린 모습을 바보스레 돌아본다거나 슬프게 되새기지 않습니다. 오늘 이곳에서는 가녀린 모습이지만, 앞으로는 이 땅에서 홀로 서서 씩씩하게 살아갈 꿈을 짓습니다.



-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 매일 필사적으로 연습하고, 다 같이 실력을 높이려고 노력하는데, 그건 오로지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서인가요? 관현악부는 그렇게 작은 물에서 놀면서 만족하는 겁니까?” (69쪽)

- ‘그래, 응원의 힘에는 당연히 한계가 있다. 아무리 응원단이 혼을 담아도 뒤집을 수 없는 현실이 반드시 찾아온다. 하지만 그런 때, 응원단이 자기들이나 동료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여 가야 할 것인가. 응원단이란 무엇을 응원해야 하는 것인가, 응원단이란 무엇인가.’ (130∼131쪽)





  응원단으로 뛰는 아이들은 동무들한테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 동무들이 새롭게 기운을 차리도록 이끄는 아이들이 응원단입니다. 그러면, 응원단 아이들은 어떠한 숨결이어야 할까요? 응원단 아이들이 스스로 기운차지 않다면, 다른 동무한테 기운을 끌어내지 못하겠지요. 응원단 아이들이 스스로 씩씩하지 않다면, 다른 동무더러 씩씩하라고 말하지 못하겠지요. 응원단 아이들이 스스로 꽃처럼 피어나지 않는다면, 다른 동무가 꽃처럼 스스로 피어나도록 기운을 북돋우지 못하겠지요.


  다시 말하자면, 응원단이 되어 힘차게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은 누구보다 ‘나 스스로’를 담금질합니다. 응원단 아이들은 바로 ‘나부터 스스로 씩씩하게 서도록’ 온힘을 기울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응원단은 아무도 응원하지 않습니다. 응원단은 그저 스스로 서서 스스로 외칠 뿐입니다. 경기장에 나서는 선수는 어떠할까요? 경기장 선수도 저 스스로 서서 경기를 벌입니다. 남이 내 자리에 들어와서 경기를 맡아 주지 않습니다. 선수인 내가 경기장에서 스스로 기운을 끌어내어 움직입니다.



- “응원이란, 먼저 동료와 손을 마주 잡는 것. 옆의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는 것. 혹시 멀리 있어서 어깨동무를 할 수 없어도, 목소리로 대지를 뒤흔들어, 마음을 전달하는 것! 그리고 상대와 단단히 이어져 있으면, 그 마음은 반드시 힘이 되어 나에게 돌아옵니다.” (135∼136쪽)

- “우리는 무엇을 응원하러 왔나? 우리는 야구 시합을 응원하러 온 것이 아니다! 착각하지 마라! 묵묵히 열심히 싸우는 ‘사쿠라기 고교의 친구’를 응원하러 온 것이다!” (147∼149쪽)





  네 꿈과 내 꿈은 늘 하나입니다. 우리는 경기에서 이기라고 응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시험을 잘 치르라고 응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돈을 잘 벌라고 응원하지 않습니다. 응원을 하는 뜻은 오직 하나입니다. 너와 나는 서로 아름다운 숨결이요 동무이자 사람이라는 대목을 깨달아 기쁘게 노래하려는 뜻입니다.


  삶을 짓는 기쁨을 누리기에 응원을 할 수 있습니다. 삶을 짓는 기쁨을 알아차렸기에 신나게 응원을 합니다. 삶을 짓는 기쁨을 혼자 붙잡거나 가둘 뜻이 없으니, 활짝 웃고 어깨를 펴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만화책 《플레이 플레이 소녀》에 나오는 가녀린 아이들은 바로 이 아이들 스스로 너무 기운이 없이 어설프게 살아온 줄 깨달으면서 눈을 뜹니다. 내가 나를 찾을 적에 나부터 기쁘고, 내가 나를 찾는 기쁨으로 웃을 적에, 내 둘레에 있는 동무도 스스로 기운을 내면서 웃습니다.


  언제나 함께 흐르는 꿈이고, 늘 함께 자라는 사랑입니다. 4348.4.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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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빵 6
토리노 난코 지음, 이혁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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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96



새와 사람이 사는 곳

― 토리빵 6

 토리노 란코 글·그림

 이혁진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1.9.25.



  나무가 없는 곳에는 새가 없습니다. 나무가 없으면 새가 깃들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있는 곳이어야 새가 있습니다. 나무가 있어야 새가 깃들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는 나뭇가지에 앉아서 날개를 쉽니다. 짝을 찾아서 노래를 하고, 짝을 찾지 않아도 노래를 합니다. 나무에 사는 벌레를 살피며 콕콕 찍어서 먹고, 짝을 지어 알을 낳을 즈음에는 깃털과 잔가지를 그러모아 둥지를 엮습니다.


  숲이 있을 때에 나무가 있고, 나무가 있을 때에 새가 있으며, 새가 있을 때에 노래가 있습니다.



- 어차피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그저 매일을 살아간다. 평범한 풍경 달력이 사실은 무척 좋았다 … 국내선을 타고 훗카이도 상공을 날았을 때, 나는 이미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계절의 방’의 원형은 옛날에 살던 작은 마을의 작은 보육원 홀이다. 나의 일부는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 머무르며, 아직 보지 못한 세계를 올려다보고 있다. (3∼4쪽)





  나무가 없는 곳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무가 없으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나무가 없어도 사람들은 잘만 살 수 있는 듯이 여깁니다. 집이나 동네에 나무 한 그루 없으면서 연필과 종이와 책을 쓰고, 나무 한 그루 없는데 책걸상을 쓰며, 나무 한 그루 없는데 참말 이것저것 다 하는 듯합니다.


  사람은 나무그늘에서 더위를 식힙니다. 사람은 나무열매를 따서 먹습니다. 사람은 마른가지를 그러모아 불을 지핍니다. 사람은 우람한 나무를 베어 집을 짓습니다.


  숲이 있을 때에 나무가 있고, 나무가 있을 때에 사람이 있으며, 사람이 있을 때에 삶이 있습니다.



- 주택가를 조금 벗어난 곳에는 오래된 커다란 감나무가 여기저기 남아 있다. 옛날에는 열매로 곶감을 만들었을 테지만, 지금에 와선 일부러 올라가 따려는 사람도 없어져 열매가 푹 익는다. 다양한 새들을 먹이고 있는 모양이다. 먹을 만큼 먹은 새들이 떠나가고 빨갛고 투명한 열매에 아쉬운 듯 머뭇거리는 석양빛이 비치면, 큰 나무 한가득 등불이 켜진다. (12쪽)




  토리노 란코 님이 빚은 만화책 《토리빵》(AK커뮤니케이션즈,2011) 여섯째 권을 읽습니다. 만화책 《토리빵》을 빚은 아가씨는 새를 아끼고 보살핍니다. 사람이 굳이 새한테 먹이를 챙겨 주지 않아도 될 노릇이지만, 도시에서 새는 먹이를 찾기 어렵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사람들이 도시를 이루려고 숲을 밀고 들을 짓밟았기 때문이에요. 숲이 그대로 있으면 새는 먹이 걱정이 없이 오붓하게 어울려 지낼 테지만, 숲이 사라지거나 망가지니까 새는 겨우내 힘든 하루를 보냅니다.


  새는 ‘공장에서 찍은 것’을 못 먹거나 안 먹습니다. 새는 숲이나 들에서 난 것을 먹습니다. 아주 마땅합니다. 사람은 무엇을 먹을까요? 사람은 공장에서 찍은 것도 더러 먹을 수 있으나, 사람도 숲과 들에서 난 것을 먹습니다. 숲과 들이 있어야 집을 짓고 밥을 지으며 옷을 지어요.



- 고양이는 추우면 달라붙는다. 십자매와 동박새도 달라붙는 걸 좋아한다. 참새는 무리지어 있지만 미묘한 간격을 유지. 그리고, 오리는 물가 블록을 좋아한다. 푹신푹신하니까 함께 달라붙어 있으면 따뜻할 텐데, 라고 생각해 만져 봤더니 표면이 얼었다. 서로 달라붙는 게 따뜻한 것은 열이 방출된다는 증거. 물새의 단열 효과는 완벽하다! (33쪽)





  숲에서 삶을 짓던 사람은 언제나 나무를 아끼면서 새를 이웃으로 삼았습니다. 새를 살가운 이웃으로 삼은 사람은 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다가 이 노랫소리를 슬기롭게 익히기도 합니다. 새가 서로 속삭이는 말을 귀여겨들었으니 이 말을 똑같이 노래할 수 있어요. 예전에는 새 노랫소리를 내면서 새를 끌어들일 줄 아는 사람이 퍽 많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 소리를 흉내낼까요? 자동차 달리는 소리를 흉내낼까요? 승강기가 오르내리는 소리를 흉내낼까요?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대중노래를 흉내낼까요?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사람들 목소리를 흉내낼까요?


  가만히 돌아보면, 예전에는 새노래뿐 아니라 바람노래를 고스란히 따라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풀잎이 사각이는 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많았고, 개구리나 매미가 노래하는 소리라든지,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 삼백초와 함께 골칫거리 취급을 받는 쇠뜨기이지만 나는 꽤 좋아한다. 이런 ‘분해놀이’도 할 수 있고. 예전에 도쿄에서 쇠뜨기로 가득 찬 공터를 본 적이 있다. 민들레 한 포기도 없어, 완벽한 진녹색!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쇠뜨기는 오래되어 말라붙은 고무처럼 딱딱하니까 누군가 들어가서 밟았다면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겠지. 초여름이 되면 쇠뜨기는 너무 자라서 푸석푸석해지고 만다. 그것은 봄에만 볼 수 있는 정원. 사람도 새도 꽃도 들어가서는 안 되는, 완벽한 녹색의 성역. (68쪽)





  새봄이 된 사월 첫머리에 들마실을 하면서 뱀밥을 뽑아서 먹습니다. 땅을 뚫고 솟은 모습인 쇠뜨기는 싱그러우면서 맑은 맛입니다. 뱀밥은 사람도 즐기지만 벌레도 즐겨요. 속속 솟은 쇠뜨기를 가만히 살피면, 벌레 먹은 자리가 꽤 있습니다.


  벌레 먹은 풀잎일수록 맛난 풀잎이라는 뜻입니다. 벌레가 잘 안 먹는 풀잎이라면 사람한테도 그리 맛있지 않은 풀잎이라는 뜻입니다. 벌레 먹는 열매도 사람한테 맛난 열매입니다. 벌레 안 먹는 열매라면 사람한테도 안 맛있을 만한 열매라는 뜻이에요.


  사람이 살 만한 곳은 언제나 새가 살 만한 곳이었습니다. 새가 살 만한 곳도 언제나 사람이 살 만한 곳이었어요. 그러면, 오늘날 도시에 가득한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은 새한테 얼마나 살 만한 곳이 될까요. 맨땅이 없는 도시는 새한테 얼마나 즐거운 곳이 될까요.


  우리 집 처마에 있는 제비집은 새끼 제비가 고스란히 물려받아서 이듬해에 새로 찾는 터전이 됩니다. 물려줄 만한 집을 튼튼하게 지어 기쁘게 물려주는 제비입니다. 우리 사람은 어떤 집을 마련해서 어떤 아이한테 어떻게 물려주는지 궁금합니다. 4348.4.4.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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