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푸공의 아야 2
마르그리트 아부에 지음, 이충민 옮김, 클레망 우브르리 그림 / 세미콜론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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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할 일이 없을 때에 사람들은

― 요푸공의 아야 2

 마르그리트 아부에 글

 클레망 우브르리 그림

 세미콜론 펴냄, 2011.2.18.



  할 일이 없을 때에, 사람들은 참말 할 일이 없어서 무엇이라도 하려고 합니다. 그 일이 옳은지 그른지 좋은지 나쁜지 아름다운지 안 아름다운지 따지지 않습니다. 너무 따분하고 재미없고 심심한 나머지 어떤 일이라도 하려고 합니다.


  할 일이 있을 때에, 사람들은 참말 할 일이 있어서 아무 일이나 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제 할 일을 합니다. 아주 마땅하지요. 스스로 즐겁게 할 일이 있는데 왜 아무 일이나 건드릴까요.


  ‘할 일’이란 ‘직업’이 아닙니다. ‘할 일’이란 ‘돈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할 일’이란 스스로 삶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기쁘게 짓는 일입니다. ‘할 일’은 언제나 새롭게 마주하면서 웃음과 노래로 누리는 아름다운 일입니다.



- “자네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시골의 친척들을 잊지 않고. 마을을 떠나면 마음도 떠나는 게 보통인데 말이야. 자네와 가족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비네.” “감사합니다, 아저씨. 속담에도 있잖아요. 파리는 아무리 급해도 똥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법이죠!” (12쪽)

- “아주아, 누가 보비의 진짜 아버지인지 그냥 실토해. 간단하잖아.” “그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아주아, 넌 인생을 뭐 하러 그렇게 복잡하게 살아?” “빈투, 네 일 아니라고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 “아주아, 빈투 말이 맞아. 보비는 지나가다 자꾸 들르는 그 사람 닮았잖아.” “아야, 돌려 말할 것 없어. 그냥 마마두라고 해.” (19쪽)





  마르그리트 아우에 님이 글을 쓰고, 클레망 우브르리 님이 그림을 그린 《요푸공의 아야》(세미콜론,2011)라는 만화책 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코트디브아르라는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 이야기가 흐르는 만화라고 해서 가만히 눈여겨봅니다. 그런데 이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들 ‘할 일’이 없습니다. 커다란 회사를 꾸리는 사람이든, 커다란 회사에서 어느 지사장을 맡는 사람이든, 그저 빈둥거리는 사람이든,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는 사람이든, 길거리에서 먹을거리를 구워서 장사하는 사람이든, 참말 다들 ‘할 일’이 없습니다. 이러면서 ‘돈’을 바라고 ‘놀이’를 바랍니다. ‘새로운 일’이 아니라 ‘뭔가 짜릿한 어떤 일’을 바랍니다.



- “얘는 왜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우는 거야?” “배고파서 그래. 불쌍한 것. 업어 줘야겠다. 근데 넌 어디 가는데?” “나 파리지앵이랑 약속 있어.” “빈투! 그 남자는 또 어디서 만났어?” (35쪽)

- “너 좀 맘에 든다?” “귀찮게 좀 하지 마. 요푸공 남자들은 왜 하나같이 이렇게 야만적이야?” “뭐? 왜 사람을 무시하는 건데?” “야, 나는 이런 동네 남자들과는 볼일 없어. 나는 파리에서 온 것들만 상대한단 말이야.” “아, 그래? 그래서 뭐, 파리에서 온 차라도 있다는 거냐?” “넌 귀가 먹었냐? 애인이 파리에서 왔다고. 날 파리로 데려가서 같이 살 거라고! 그러니 넌 그냥 찌그러져 있어!” “음, 파리만 상대한다, 사람한텐 찌그러져라. 무서운 여자네.” (65쪽)




  코트디브아르라는 나라는 언제부터 이런 모습이었을까요? 프랑스라는 나라가 없을 적에도 이런 모습이었을까요? 서양사람이 전쟁무기를 앞세워서 문명이라는 허울을 붙인 온갖 종교와 교육을 들이밀 적부터 이런 모습이 되었을까요?


  손수 밥을 지어서 먹는 사람한테는 늘 ‘할 일’이 있습니다. 손수 밥을 짓는 사람은 손수 옷을 짓고, 손수 옷을 짓는 사람은 손수 집을 짓습니다. 이리하여 밥과 옷과 집을 손수 짓는 사람은 언제나 삶을 손수 짓습니다.


  ‘할 일’은 남이 나한테 주지 않습니다. 나는 남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삶을 가꿀 만한 일을 스스로 찾습니다. 나는 내 숨결을 아끼면서 사랑으로 밝힐 일을 스스로 일굽니다.


  어느 만큼 나이가 찬 가시내랑 사내가 살을 섞어야 재미있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살을 섞고 저기에서 살을 섞을 때에 재미나지 않습니다. 남이 차려 주는 밥을 먹어야 기쁘지 않고, 남이 갖다 바치는 옷을 입어야 신나지 않아요.



- “여자애가 그렇게 데리고 다니기 부끄러운 애야? 오빠는 어떻게 여자를 한 번도 집에 안 데려와?” “양파 썩는 거나 신경 쓰고 나는 좀 내버려둬.” “걱정 마. 보비와 나는 어떻게든 헤쳐나갈 테니까. 보비가 있는 게 다행인 줄 알아. 아이 앞이라 욕 안 하고 참는 거라고. 얘가 얼마나 순진한지 알아? 들쥐처럼 남들 눈을 피해 다니는 놈들하고는 다르다고!” “아주아,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그 쥐새끼가 썩으면 냄새가 진동하게 될걸!” (98쪽)





  스스로 ‘할 일’이 없으니 제자리를 잃고 떠돕니다. 떠도는 사람들은 제 할 말을 잊거나 잃습니다. 제 할 말을 잊거나 잃기에 거치거나 쓸쓸한 말이 튀어나옵니다. 내가 스스로 나를 아끼지 못하기에, 내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한테 따사롭게 말을 건네지 못합니다.


  지구별에서 어느 나라가 아름다운 삶을 누릴까 궁금합니다. 번쩍거리는 자가용을 몰고, 번쩍거리는 넓은 시멘트 아파트에서 살면 아름다울까요? 온갖 전쟁무기를 갖춘 엄청난 군대가 나라를 지켜 주는 곳에서 살면 평화로울까요? 국민투표로 뽑힌 정치 일꾼이 모든 법을 이녁 마음대로 지어서 온갖 세금을 주무르면서 경제개발을 하고 스포츠와 영화를 키우면 재미있을까요?


  사랑이 사랑을 낳습니다. 꿈이 꿈을 낳습니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습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서는 사랑이 흐르지 않습니다. 꿈이 없는 곳에서는 꿈이 흐르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없는 곳에서는 이야기가 흐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알록달록 눈부신 옷을 차려입더라도, 마음에 사랑이나 꿈이 없으면 아무런 이야기가 없습니다. 겉치레로 번드레레하고 꾸미는 말은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삶을 가꾸지 않으면서 입만 놀리는 말로는 아무런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이 살을 섞으니 ‘바람둥이’가 되고, 서로 바람둥이로 하루를 지새우니 아름다운 노래가 없습니다. 만화책 《요푸공의 아야》는 현대문명과 물질문명과 도시문명이 치닫는 막다른 벼랑을 낱낱이 보여주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4348.2.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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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여우 5
오치아이 사요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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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69



이 길을 가면서 보는 한 가지

― 은여우 5

 오치아이 사요리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4.11.30.



  귀를 기울이면 온갖 소리가 내 귀로 스며듭니다. 어느 소리는 높고 어느 소리는 낮습니다. 어느 소리는 고요하구나 싶고, 어느 소리는 우렁차구나 싶습니다. 이 소리를 좋게 받아들이거나 나쁘게 여길 수 있을 테지요.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가 생각합니다. 어느 소리가 좋다면 왜 좋고, 어느 소리가 나쁘다면 왜 나쁠까요. 어느 소리가 반갑다면 왜 반갑고, 어느 소리가 거슬리다면 왜 거슬릴까요.


  모든 소리는 노래입니다. 소리는 그대로 소리이면서 노래입니다. 모든 소리가 노래인 까닭은 모든 소리에는 이야기가 깃들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야기는 우리가 저마다 살면서 누리는 온갖 꿈과 사랑이 서립니다.


  시골에서 아침마다 듣는 멧새 노랫소리도 노래요, 보일러가 돌아가는 소리도 노래이며, 아이들이 길게 하품을 하면서 일어나는 소리도 노래입니다. 노래가 아닌 소리가 없기에, 어떠한 소리이든 노래로 듣지 못한다면, 나한테는 노래가 없다는 뜻입니다.



- “역시 제일 먼저 오면 기분이 좋다니까!” (13쪽)

- “하아, 모처럼 사토루의 멋진 무대인데 응원하러 갈 수가 없다니.” “아니, 출전한다뿐이지, 이길지 질지도 모르는데요.” “그렇지 않아!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걸!” “승패는 상관없어!” (27쪽)





  어두운 밤에 촛불 한 자루를 켭니다. 촛불 한 자루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한참 촛불을 바라보노라면, 촛불이 어느새 둘로 갈립니다. 왜 둘로 갈릴까 하고 갸우뚱하게 여기면서 눈을 끔뻑이지만, 촛불은 늘 둘로 갈립니다. 살그마니 눈을 돌려 다른 것을 쳐다봅니다. 다른 것은 둘로 안 갈립니다. 오직 촛불만 둘로 갈립니다.


  가까이에서 촛불을 바라보든 멀리 떨어져 촛불을 바라보든, 촛불은 늘 둘로 갈립니다. 이리하여, 촛불을 곰곰이 지켜보기로 합니다. 둘로 갈라져 보이는 촛불은 나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는지 지켜보고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둘로 갈라져서 춤을 추는 촛불은 나한테 어떤 노래를 들려줄까 하고 마주하면서 기쁘게 맞아들이기로 합니다.


  촛불은 불꽃입니다. 촛불은 불춤입니다. 촛불은 불노래입니다. 촛불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이 스르르 녹고, 촛불을 지켜보면서 내 생각이 새롭게 깨어납니다. 오늘 하루를 여는 내 마음이 새롭게 거듭나도록 이끌고, 오늘 하루를 닫는 내 마음이 고요히 잠들도록 돕습니다.



- “다른 녀석들은 네가 걱정하는 것만큼 신경 안 써. 그리고 세상도 전혀 달라지지 않아. 스스로 제일 만족할 수 있도록 하면 돼.” (29쪽)

- “신의 도움으로 이기면 뭐 하겠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니까, 나머지는 순리대로 되겠지. 그저 전부 쏟아낼 뿐이야. 그러면 앞으로도 계속 전진할 수 있을 것 같거든.” (41∼42쪽)





  오치아이 사요리 님이 빚은 만화책 《은여우》(학산문화사,2014) 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은여우》 다섯째 권에서는 이 만화를 이루는 여러 아이들 가운데 ‘사내 아이’가 홀가분하게 일어서서 웃으면서 걸어가는 길을 보여줍니다. 처음으로 홀가분하게 서려 하는 만큼 이리 흔들리거나 저리 설레기도 하지만, 떨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이때에 이 아이를 둘러싼 이웃과 동무와 님은 웃음과 노래로 이야기를 건네요. 모든 삶은 ‘즐거움’이니, 이 즐거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함께 웃고 노래하자고 이야기를 건넵니다.



- “내가 아직 못 미더울지도 모르지만, 그때까지 걱정하지 말고. 지켜봐 줘.” (55∼56쪽)

- “신사는 신을 만나러 오는 곳이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단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오시는 분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 (79쪽)

- “우리는 우연히 이런 형태로 지상에 머물렀어. 신안을 가진 인간이 우리와 이어지듯, 신의 사자도 신과 인간을 이어주기 위해서 말이야. 역할을 마치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뿐이지. 모두 어떤 형태로든 이곳에 있는 똑같은 영혼이니까. 그 이후에는 신이 있는 똑같은 세계. 또 다시 어떤 형태로 변할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그 앞에도 ‘즐거움’은 있다고 생각해.” (158쪽)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내 삶입니다.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내 삶입니다. 그런데, 삶에서는 잘 되거나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모두 ‘그대로 될’ 뿐입니다. 이를 곰곰이 바라봅니다. 높이 뛸 수 있고, 높이 안 뛸 수 있습니다. 밥을 지을 수 있고, 밥을 태울 수 있습니다. 국이 싱거울 수 있고, 국이 짤 수 있습니다. 언제나 기쁘게 맞이하는 하루요 삶이며 살림입니다.


  처음 글씨를 쓰는 아이들 손놀림은 익숙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흐르고 이레가 흐르며 달포가 흐르고 몇 해가 흐르는 사이, 아이들 손놀림은 야무지고 단단합니다. 나도 아이들과 함께 글놀이와 그림놀이를 하면서 내 손놀림은 다부지고 든든합니다.


  함께 짓는 하루이고, 함께 가꾸는 삶입니다. 함께 웃고, 함께 노래하는 하루입니다. 함께 꿈꾸고, 함께 사랑하는 살림입니다.



- ‘엄마나, 긴타로, 모두 그 이후가 똑같다면, 그, 훨씬 나중에라도, 또 언젠가, 긴타로를 만날 수 있을까?’ (160∼161쪽)

- “우리가 지금 이렇게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시간을 받았다는 것이, 기적일지도 몰라.”



  이 지구별에서 우리가 걷는 길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누리는 기쁨입니다. 내가 스스로 짓는 기쁨입니다. 어떤 길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내가 걸어가면 바로 길이 됩니다. 내가 걸어가지 않으면 언제나 길이 없습니다. 걸으면 길이요, 걷지 않으면 길이 아닙니다.


  할 수 없는 일이란 없습니다. 하지 않는 일만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바로 내가 기쁘게 손수 하는 일입니다. 만화책 《은여우》에 나오는 젊고 푸른 아이들이 스스로 짓고 스스로 노래하는 새로운 길을 나도 기쁘게 지켜보면서 함께 웃고 노래합니다. 바야흐로 겨울이 저물면서 새로운 봄이 우리 곁에 찾아옵니다. 아침볕이 곱고, 아침바람이 포근합니다. 4348.2.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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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희 9
강경옥 글.그림 / 팝툰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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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71



너를 만나기까지

― 설희 9

 강경옥 글·그림

 팝툰 펴냄, 2013.3.4.



  순천에서 고흥으로 나들이를 오신 이웃님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뱀과 개구리와 들딸기가 얽힌 이야기를 듣다가 빙그레 웃음이 터집니다. 참말 그렇지 하면서 절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들딸기가 돋는 곳에는 으레 뱀이 나옵니다. 뱀이 나오는 곳에는 으레 개구리가 삽니다. 들딸기가 넝쿨줄기를 뻗는 데는 사람들이 가시에 긁히거나 찔리니 딸기를 훑을 때가 아니면 좀처럼 다가가지 않는 자리이고, 이런 곳에는 개구리가 깃들기 일쑤예요. 들딸기는 물기 적은 데에서도 줄기를 뻗지만, 물기 많은 곳이나 도랑 둘레에 아주 흐드러집니다. 이래저래 들딸기와 개구리와 뱀은 함께 어우러집니다.


  그나저나 왜 웃음이 터졌느냐 하면, 이웃님이 뱀과 개구리를 이야기했기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뱀과 개구리는 ‘시골’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오늘날이요, 나는 오늘 시골자락에서 사니까 으레 뱀과 개구리를 만나는데, 고흥으로 나들이를 오신 순천 이웃님도 ‘순천 시골자락’에서 지내시니까, ‘시골내음’이 흐르는 이야기를 나누는구나 하고 느껴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 ‘거침없이 애정을 표현하는 리카 앞에서 난 왠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건 마치 내 애정을 표현하면 안 된다는 압박이랄까.’ (38쪽)

- “하지만 그럼 너는 전생의 꿈에서 연인이어서 사귀자는 거지. 지금 내가 진짜로 좋아서 사귀자는 건 아니라는 거야?” “진짜로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가 중요해졌어?” “당연하잖아! 네가 말한 내 전생이야 어쨌건 나는 나거든. 난 과거의 사람이 아니야! 다른 사람으로 생각해서 사귀자는데 기분 좋을 리 없잖아!” “알아. 알고 있어. 넌 너야. 그럼 넌 내가 좋다는 거야?” (45∼46쪽)




  내가 시골에서 살기에 시골 이야기를 나눌 적에 즐거울 수 있습니다. 내가 도시에서 산다면 시골 이야기를 나누다가 웃음이 터질 일은 드물리라 느낍니다. 내가 아파트에서 산다면 아마 이웃들과 아파트 이야기를 나눌 테지요. 내가 운동경기를 좋아한다면 이웃들과 운동경기 이야기를 나눌 테고, 내가 사진을 좋아한다면 이웃들과 사진 이야기를 나눌 테며, 내가 정치에 눈길을 둔다면 이웃들과 정치 이야기를 나눌 테지요.


  아이들과 시골에서 삶을 짓는 하루에 눈길을 둔다면, 나는 내 이웃님하고 기쁘게 ‘시골에서 삶짓기’란 무엇인가를 놓고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아이들과 곁님하고 시골에서 삶을 노래하는 하루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나는 내 모든 이웃님하고 언제나 즐거이 ‘시골에서 노래하는 삶’은 얼마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가를 놓고 이야기잔치를 벌입니다.


  내 마음이 가는 흐름에 따라 내 삶을 손수 짓습니다. 내 이웃도 이녁 마음이 가는 흐름에 따라 이녁 삶을 손수 짓습니다. 이리하여, 나와 이웃(나와 너)은 마음과 마음으로 만납니다. 나와 너(나와 이웃)는 나이나 재산이나 권력이나 학력이나 이런저런 겉모습이 아닌 마음으로 만납니다. 나와 이웃(나와 너)은 성별도 지역도 신분도 계급도 아닌, 오롯한 사람으로서 만납니다.



- ‘애정이란 게 누가 더 많이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 것인 건가?’ (56쪽)

- ‘만약 가능하다면 나와 함께 세상을 구원한다는 연애를 하면 어때요?’ (65쪽)





  강경옥 님 만화책 《설희》(팝툰,2013) 아홉째 권을 곰곰이 되새깁니다. 열한째 권까지 나온 《설희》를 모두 읽고 나서 아홉째 권을 다시 넘기니, 이야기 얼거리가 살짝 성기거나 조금 늘어지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조금 더 단단하게 틀을 짜서, 한결 더 빠르면서 야무지게 엮을 수 있을 텐데, 어딘가 아무래도 끈이 풀린 듯합니다. 이를테면, 만화에 나오는 스물 갓 넘은 젊은이들이 차라리 더 가볍게 말을 섞고 어우러지다가 차츰 삶을 깊이 들여다보려 하면서 차근차근 철이 드는 얼거리를 보여준다든지, 나이를 떠나 모든 주인공이 더 꼼꼼하고 야무지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더 깊고 너른 마음읽기를 보여준다든지, 어느 한쪽으로 또렷하게 만화 얼거리를 짜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무심코 튀어나와 버렸지만, 사실 난 계속 그걸 생각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90쪽)

- ‘그럼 도대체 설희는 어떤 마음으로 세이를 보는 걸까? 스물한 살의 나는 이런데, 도대체 얼마를 살았을지 모를 설희가 세이에게 가진 감정은 무엇일까? 전생의 감정?’ (117쪽)



  만화책 《설희》에 나오는 ‘눈아이(설희)’는 사백 해나 오백 해쯤 죽음이 없이 살아왔다고 할 만합니다. 이동안 눈아이는 다른 사람이 죽고 나면서 ‘되살이(윤회)’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그런데, 되살이로 새롭게 사는 이들은 예전 삶을 좀처럼 떠올리지 못합니다. 틀림없이 되살이로 이 땅에 다시 왔으나 예전 삶을 도무지 떠올리지 못해요.


  예전 삶을 떠올리지 못하는 이들이 예전 삶을 떠올릴 수 있다면, 이들은 이제껏 몇 차례에 걸쳐서 몇 해쯤 되살이를 했을까요? 설희도 ‘죽음 없는 삶’을 사오백 해를 누리기는 했으나, 이러한 ‘죽음 없는 삶’에 앞서 얼마나 기나긴 나날에 걸쳐서 되살이를 했을까요?


  우리한테 나이란 무엇일까요? 나이가 쉰 살이면 많을까요? 나이가 여든 살이면 많을까요? 고작 열 살이나 스무 살이라 하더라도, 그동안 지나온 되살이를 치면 오천 살이나 오만 살쯤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스스로 떠올리지 못할 뿐, 우리는 그동안 온갖 삶을 죄다 누리면서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지난날 어느 곳에서 어떤 사람으로서 무슨 일이나 짓을 했을까요?




- ‘밖에는 눈이 오고, 여기엔 희망이 있는 것 같은, 왠지 따스한 분위기.’ (178쪽)



  우리는 지난날에 몹시 바보스럽거나 멍청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매우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제만 돌아보면서 ‘예전이 좋았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곳을 또렷하게 바라보면서 ‘오늘 이곳에 내 삶을 새롭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게 짓겠어’ 하고 다짐할 수 있습니다.


  만화책 《설희》에 나오는 ‘눈아이’는 ‘너’를 만나려고 이곳에서 새롭게 살려 합니다. 눈아이하고 만난 ‘나’는 어제와 오늘과 모레를 잇는 삶에서 무엇이 참이고 거짓이며,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는지 아직 갈팡질팡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살면 어제를 바꿀 수 있을까요?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살아도 모레에 죽고 다시 태어나면 또 바보스러운 짓을 할까요? 오늘부터 앞으로 언제까지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게 삶을 짓는 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이제부터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게 삶을 짓는 길을 걸으면, 어제까지 내가 보여준 모든 바보스럽거나 멍청한 발자국을 돌이키거나 새롭게 추스를 수 있을까요? 만화책 《설희》는 이러한 실타래와 수수께끼를 앞으로 어느 만큼 풀거나 맺을 수 있을까요? 4348.2.2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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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 양장 합본 개정판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자크 로브.뱅자맹 르그랑 글, 장 마르크 로셰트 그림, 이세진 옮김 / 세미콜론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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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70



쳇바퀴에서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

― 설국열차

 장마르크 로세트 그림

 자크 로브·뱅자맹 르그랑 글

 이세진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3.7.29.



  빗소리 사이사이 멧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따스한 비가 내리니 멧새도 이 비를 맞으면서 마실을 다닐까요. 가만히 귀를 기울여 멧새가 어떤 마음으로 노래를 들려주는지 헤아립니다. 우리 집 마당과 뒤꼍을 오가는 수많은 멧새는 어떤 날갯짓을 하면서 비를 긋거나 먹이를 찾는지 살펴봅니다.


  설날이 지나갑니다. 남녘 시골자락은 겨우내 얼음이 안 얼기도 했지만, 설날이 지나며 내리는 비는 아주 포근한 봄비로구나 싶습니다. 아직 이월이니까 겨울이라 할 텐데, 이 겨울 끝자락에 내리는 빗줄기는 봄이 바로 코앞에 있다고 알리는 비요, 따스한 기운이 골고루 퍼지면서 씨앗이 깨어나도록 북돋우는 숨결이라고 느낍니다.



- “이봐요, 진실을 외쳐야죠! 당신들을 억압하고 바퀴 달린 수용지에 가둬 놓은 자들에 맞서 당당히 부르짖어야지요!” “?” “일단은 당신의 석방을 촉구하겠어요. 이런 감금은 용납할 수 없어요. 중위를 만나서 해명을 들어야겠어요!” (17쪽)

- “당신은 그곳 생활을 잘 알잖아? 왜 말을 안 해? 그들도 수용지에서 나오고 싶어 하잖아. 왜 그들을 옹호하거나 도우려 하지 않는 거야?” “입 다물어.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55쪽)





  오늘은 다른 날보다 흙이 더 폭신합니다. 아침 낮 저녁으로 뒤꼍으로 가서 우리 집 나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온몸으로 느낍니다. 참말 폭신한 이 뒤꼍을 괭이로 갈 날이 곧 다가오겠다고 느낍니다. 올해에 우리 집 아이들과 즐겁게 뿌릴 씨앗을 생각하면서 설렙니다.


  흙에서 나무가 자라고, 흙에서 풀이 돋습니다. 흙에서 자라는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흙에서 돋는 풀이 꽃을 피워 고운 열매, 이른바 풀알, 다른 이름으로는 곡식을 맺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무열매와 풀열매를 먹습니다. 나무열매와 풀열매를 바로 먹지 않더라도 짐승이나 물고기를 거쳐서 먹습니다. 바다도 그냥 바다만 있어서는 바다가 싱그러울 수 없어요. 비바람을 타고 숲에서 흙이 끊임없이 바다로 흘러들기 때문에 바다에도 새로운 숨결이 피어나서 모든 물고기와 바닷말이 살아서 숨쉴 수 있습니다.



- 칸막이로 나뉘고 꽉 막힌 이 세상에서 부자나 가난뱅이나 객차의 벽만 보고 살기는 마찬가지. (66쪽)

- “꼬리칸에서 죽어 간 사람들은 왜 죽었는지 알아? 배가 고파서? 추워서? 병으로? 아니. 그들은 살해당한 거야!” (81쪽)





  자크 로브·뱅자맹 르그랑 님이 글을 쓰고, 장마르크 로세트 님이 그림을 그린 《설국열차》(세미콜론,2013)를 읽습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만화책을 읽을 무렵이든, 이 만화책을 바탕으로 찍은 영화가 극장에 걸쳤을 때이든, 나는 만화책이나 영화에 눈길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 만화책은 그리 깊거나 넓게 이야기를 건드리지 못했으리라 어렴풋하게 느꼈거든요. 아직 읽지도 않은 만화책을 어떻게 느꼈느냐고요? 알고 보니, 이 만화책은 예전에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세미콜론에서 나온 만화책은 ‘다시 펴낸 책’입니다. 그러니, 나는 현실문화창조에서 처음 펴낸 만화책으로 《설국열차》를 한참 앞서 읽었고, 예전에 이 만화책을 읽으면서 좀 어설프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사회도 정치도 교육도 문화도 예술도 과학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면서 어수룩하게 건드리다가 어영부영 끝을 맺는구나 하고 느꼈기에, 이런 어설픈 만화책이 다 있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 “왜 그래요? 조금 전부터 통 말이 없군요. 무슨 문제라도?” “왜냐고요? 모르겠소? 우린 여기서 한가롭게 식탁에 앉아 지배인이 가져오는 고급 요리와 포도주 비슷한 혼합 음료를 마시고 있잖소. 감미로운 배경 음악까지 깔고. 젠장, 여긴 도대체 어떤 세상이지? 지금이 언제요? 내가 꿈을 꾸는 거요? 시간을 벗어나 버린 기분이요!” (71쪽)

- “섹스와 강간, 상상할 수 있는 체위와 방식은 모두 다 동원됩니다! 불안과 권태를 이기는 데에는 그게 최고니까. 섹스도 일종의 마약이죠. 대마초나 비프시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73쪽)





  만화책 《설국열차》를 보면, ‘앞칸 사람’이든 ‘뒷칸 사람’이든, 하나같이 ‘살섞기(섹스)’에 빠져듭니다. 앞칸이든 뒷칸이든, 사람들 스스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몸에 따라 움직입니다. 마음에 생각을 짓지 않습니다. 그때그때 몸이 바라는 대로 움직일 뿐입니다. ‘인류 멸종’을 앞두고 기차에 허둥지둥 오르기만 했을 뿐이요, 삶을 어떻게 짓거나 가꾸어야 하는가를 하나도 헤아리지 않아요.


  설국열차에 오른 사람은 지구별이 모두 꽁꽁 얼어붙었으리라 여깁니다. 그럴밖에 없어요. 이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은 오직 기찻길뿐이거든요. 기찻길 너머로는 어느 누구도 가 보지 못하고, 가 볼 엄두를 못 냅니다. 설국열차에 탄 이들은, 기찻길이 난 도시와 도시 사이를 달리기만 합니다. 스스로 도시를 벗어나서 숲으로 갈 생각을 조금도 안 합니다.



- “톰, 브래디. 헛수고를 했군요. 살아 있는 사람은 없어요. 자동 시스템이에요. 막막하군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지요, 퓌그?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진실을 말해야지, 브래디. 진실. 여기까지 와서 노래밖에 못 건졌다고.” (250쪽)



  숲에도 겨울이 있습니다. 그러나, 숲에 겨울이 있어도 숲은 꽁꽁 얼어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땅에서 샘솟는 물은 겨울에도 얼지 않습니다. 아무리 추워도 샘물은 안 업니다. 졸졸졸 골짝물과 시냇물이 흐릅니다. 이 물기운을 받아 숲이 겨울에도 살아서 움직입니다. 이 물기운이 있기에 겨울잠을 안 자는 숲짐승이 겨우살이를 합니다.


  전쟁무기 때문에 ‘인류문명’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설국열차만 남습니다. 그래요, 문명과 물질은 모두 사라졌어요. 그러면, 문명과 물질이 모두 사라졌으니 인류가 끝났을까요? 아니지요. 문명과 물질에 기댄 사람들만 사라졌습니다. 설국열차에 탄 사람들은 저희를 기차 바깥으로 꺼내줄 만한 ‘다른 문명이나 물질’을 바랍니다. 이러다가 모두 굶어죽거나 얼어죽지요.


  스스로 삶을 지으려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문명과 물질을 내다 버리고, 맨몸으로 숲을 짓거나 가꾸면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이러면서 그저 살섞기에 매달립니다. 이런 사람들이 뭘 할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죽을 테지요. 그뿐입니다. 만화책도 영화도 그저 그뿐입니다. 삶을 그리지 못하는 사람한테는 꿈이 없고, 삶을 그리지 않는 사람한테는 사랑이 안 보입니다. 4348.2.2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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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여자회 방황 3
츠바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68



나는 너와 사이좋은 동무

― 제7여자회 방황 3

 츠바나 글·그림

 박계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3.10.30.



  놀이동무는 함께 놉니다. 일동무는 함께 일합니다. 길동무는 함께 길을 걷습니다. 생각동무는 함께 생각합니다. 꿈동무는 함께 꿈꿉니다. 책동무는 함께 책을 읽습니다. 만화동무는 함께 만화를 그리거나 읽고, 삶동무는 함께 삶을 가꿉니다. 어깨동무는 서로 어깨를 겯으면서 나아가고, 소꿉동무는 기쁜 놀이를 함께 지으면서 어린 날 꿈을 키웁니다. 배움동무는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길에서 웃습니다. 웃음동무는 함께 웃지요.


  놀이동무는 하나일 수 있고, 둘일 수 있습니다. 일동무는 셋일 수 있고, 넷일 수 있어요. 길동무는 여럿일 수 있으며, 하나일 수 있습니다. 생각동무나 꿈동무나 삶동무 모두 여럿일 수 있는 한편, 하나일 수 있어요.


  동무는 아주 많아야 넉넉하지 않습니다. 동무는 하나만 있기에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습니다. 동무는 가까이에 있기도 하고, 멀리 있기도 합니다.



- “나 항상 이사 다녀서 친구가 전혀 안 생겨서, 외로워서.” “아, 그럼 나랑 같네! 나도 옛날에 이사를 자주 다녀서 줄곧 친구가 없었는데. 하지만 지금은 친구가 생겨서 매일 즐거워! 괜찮아, 괜찮아!” “거짓말쟁이. 혼자서 어슬렁거렸잖아.” (18쪽)

- ‘몇 년이나 몇 년이나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은 커다란 공간에는 세계의 고독이 천천히 쌓여 가고, 그것이 결정화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가 관측한 시점에 또다시 형태를 잃거나 혹은 반대로 부풀어버린다.’ (88쪽)



  나한테는 동무가 있습니다. 먼 데서 사는 동무가 있고, 곁에 있는 동무가 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도 나한테는 동무이고, 곁님도 나한테는 동무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들이나 곁님 나이를 딱히 헤아리지 않으면서 살기 때문이고, 날마다 삶과 살림을 함께 나누는 숨결이기 때문입니다.


  동무 가운데에는 나이가 같은 동무가 있어요. 또래동무입니다. 그러니까, 동무라 할 적에는 나이가 크게 벌어질 수 있고 비슷하거나 같을 수 있어요. 이웃도 이와 같아요. 나이가 엇비슷해야 이웃이지 않아요. 서로 돈(재산)이 비슷하기에 이웃이지 않아요. 서로 같은 일을 하기에 이웃이지 않고, 한 마을에 함께 살아야 이웃이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즐겁게 돕고 어깨를 겯는 마음일 적에 이웃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상냥하고 기쁘게 손을 맞잡는 마음일 적에 동무입니다. 그래서, 아이와 어버이는 서로 살붙이로 지내면서 동무이고 이웃입니다. 서로 아끼고 돌볼 줄 아는 사랑이자 노래입니다.



- ‘정말로 나는 어디에서 온 거지? 그렇게 생각했다. 언제나 나는 이방인.’ (137쪽)

- “확실히 아빠 회사는, 생활이 편해지는 도구를 많이 만들고 대단하지만, 아무리 세상에 편리한 것이 넘쳐흘러도, 아무리 유리한 제도에서 매일이 충족된다고 해도, 언제까지고 이런 옛날 전쟁에 관한 거나 공부해야 하는 건 어째서야? 매일 보건소에서 동물들이 죽어 가는 것도 어째서야? 왜 이사 가야 하는 거냐고!” (146∼147쪽)



  츠바나 님 만화책 《제7여자회 방황》(대원씨아이,2013) 셋째 권을 읽습니다. 《제7여자회 방황》 셋째 권에서는 이 만화책을 이루는 두 아이 가운데 한 아이가 어떤 삶을 누리면서 생각을 가꾸었는가 하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어버이를 따라 내내 보금자리를 옮겨야 했던 아이한테는, 그러니까 ‘보금자리’가 없습니다. 마음을 놓거나 붙이거나 가꿀 만한 겨를이 없습니다. 둘레에서도 이 아이한테 따사롭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사랑이 흐르지 않은 삶이었고, 노래가 흐르지 않는 나날이었습니다.



- ‘사이토는 누구야? 이노우에는 누구냐고? 사토라는 이름은 몇 십 명이나 있었고, 누구 누군지 모르겠다. 좀더 일찍 버렸으면 분명 가벼웠을 텐데. 이런 것 받은 순간부터 이미 필요없었는데!’ (149쪽)

- ‘내가 갈 고등학교에는 처음에 친구 한 명씩 짝 지워 주는 나한테 유리한 제도가 있고, 나에게 있어서 그 상대가 반드시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친구가 될 테니까, 그러니까 그것을 믿는 나는 꽤 좋은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 내 길을 믿고 있다. 나는 그런 꿈 많은 여자아이. 불평하지 말라고.’ (152쪽)



  나는 너와 사이좋은 동무입니다. 나는 너를 생각하는 넋입니다. 나는 너하고 함께 놀려 하며, 나는 너하고 함께 살려 합니다. 함께 꿈을 키우고, 함께 사랑을 가꾸어, 함께 노래와 춤을 누리려 합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우리는 모두 동무입니다. 바로 오늘 여기에서 우리는 모두 지구사람이고 지구동무이며 지구이웃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불어, 숲내음이 골고루 퍼집니다. 언제나 바람이 흘러, 바다내음과 들내음이 지구별에 가득 깃듭니다. 새 아침이 싱그럽습니다. 4348.2.1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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