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 놀부전 - 新 고전열전
고우영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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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90



‘새로운 눈길’로 바라보는 ‘삶’

― 놀부전

 고우영 글·그림

 애니북스 펴냄, 2008.12.26.



  고우영 님이 새롭게 빚은 만화책 《놀부전》(애니북스,2008)을 읽습니다. 우리는 흔히 ‘흥부전’으로만 알고, ‘흥부 이야기’만 생각하지만, 고우영 님은 흥부 이야기에 가려진 놀부 이야기를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새로운 만화를 빚습니다.


  흥부 이야기는 무엇이고, 놀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흥부는 어떤 삶을 누렸고, 놀부는 어떤 삶을 누렸을까요? 흥부는 그저 마음씨가 착한 사람이었을까요? 놀부는 마냥 마음씨가 모진 사람이었을까요? 흥부 이야기는 어떤 눈길로 바라본 이야기일까요? 놀부 이야기라면 우리는 어떤 눈길로 바라볼 만할까요?



- “이 봐. 엄마. 새 꽃을 꺾었지. 그리구 까마중 먹어 엄마. 있잖아, 접때 엄마 묻던 날, 엄마 줄려구 까마중 많이 땄었는데, 놀부 짜식이 깽깽거려서 내가 콱 먹어 버렸다. 화가 나서 그랬지 뭐.” (23쪽)

- ‘바보 같은 기집애. 어쩌자고 그 험한 산을 저 혼자서 다녔다는 거야! 바보 같은 기집애. 제, 그 작은 몸으로 엄마 무덤을 덮어서 비를 가리겠다는 거야? 바보 같은 기집애! 제까짓게 덜컥 감기에나 걸리지 별 수 있겠어?’ (43쪽)





  고우영 님이 빚은 만화책에는 놀부와 놀순이가 나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시골일을 하는 놀부와 놀순이가 나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사람들이 흔히 듣거나 아는 흥부 이야기에 ‘흥부가 하는 일’은 제대로 안 나옵니다. 흥부가 흙을 짓거나 가꾸는 이야기라든지, 흥부가 비탈밭을 일군다거나 기름진 논밭을 가꾸려고 힘쓰는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제비다리를 고친 흥부 이야기는 들을 수 있으나, 놀부와 흥부를 낳은 어버이 이야기는 들을 수 없습니다. 놀부와 흥부 사이에 다른 형제나 누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같은 이야기는 들을 수 없습니다. 두 아이 어버이는 어떤 삶을 지었을까요. 두 아이 어버이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쳤을까요. 왜 큰아들 놀부는 커다란 집과 너른 들을 건사하면서 살고, 작은아들 흥부는 보잘것없는 집에 땅뙈기도 없이 살까요. 우리는 이 수수께끼를 어느 만큼 헤아리거나 살피면서 두 사람 이야기를 들여다볼까요.



- “저희들이 할 테니까, 주인님은 좀 쉬십시오.” “그런 소리들 말게. 신성한 근로의 즐거움을 자네들만 독차지하려는 거냐?” “남들 보기에 뭣해서 그럽니다.” “게으름 피우는 것도 하늘에 죄 짓는 일이 된다네.” (84쪽)

- 땅문서가 건너가고, 흥부는 신이 났다. “너희들 어딜 가니?” “읍내에 갑니다.” “거긴 뭣하러?” “독립 기념으로 자축파티를 하러 갑니다.” (91쪽)




  우리는 흥부를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익히 들은 흥부 이야기는 참말 흥부 이야기가 맞을까요? 우리는 놀부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우리가 으레 들은 놀부 이야기는 참으로 놀부 이야기가 맞을까요?


  놀부와 흥부는 형과 동생이라 하는데, 두 사람은 왜 따로 지내면서 한 사람은 굶고 한 사람은 안 굶을까요. 한 사람은 왜 아이를 안 낳고 한 사람은 왜 아이를 자꾸 낳을까요.


  놀부와 흥부를 낳은 어버이는 두 아이를 가르치거나 기를 적에 어떤 마음이었을까 궁금합니다. 흥부는 형 놀부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놀부는 동생 흥부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둘은 서로 아낄 줄 모르는 사이일까요, 아니면 마음으로 깊이 아끼는 사이일까요? 우리가 읽거나 듣는 ‘흥부 이야기’에 가려진 깊은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잊거나 잃은 ‘놀부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요? 놀부와 흥부라는 두 사람 발자취를 떠나,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지거나 어깨동무하는 사랑 이야기를 잊거나 잃지는 않았을까요?



- “하여간 비닐재배 그거 우리도 해 볼 만 하던데요?” “쏴랍! 쌰꺄!” “엄동설한에도 시금치, 파, 상치, 깻잎, 막 키워서 시장으로 반출시켜요.” “스키야! 원래 식물이란 햇볕을 받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따뜻한 계절에 자라야만 사람 몸에 이로운 거야!” “그러나, 비닐 재배, 저 사람들, 눈부신 흑자를 올리고 있던데요?” (134쪽)

- “우리야 배가 좀 고플 뿐이지, 자유가 있잖아! 이 보라구! 청풍 맑은 집 속에 아이들과 함께 편히 누워 있잖소?” “편해요?” “편하지! 마음이 편하니 몸도 편하고 몸이 편하니 말도 편하다.” “아이들을 굶주리게 하면서 마음이 편해요?” “말이 그렇다는 것 아닌가!” (157쪽)





  고우영 님이 빚은 《놀부전》에 나오는 놀부는 착하면서 듬직합니다. 그저 시골내기로서 착하면서 듬직합니다. 만화책 《놀부전》에 나오는 흥부는 약삭빠르면서 못 미덥습니다. 《놀부전》에 나오는 놀부는 온 집안을 두루 살피면서 깊이 마음을 쓸 줄 알고, 흥부는 집안일에는 젬병일 뿐 아니라 노닥거리기만 즐길 뿐입니다. 어버이가 힘껏 일군 땅이 넓다 보니 놀부는 이 땅을 잘 건사하려고 마음을 쓰는데, 흥부는 넉넉한 삶을 탱자탱자 보내려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놀부는 차츰 걱정이 늘어납니다. 아버지를 걱정하고 어린 동생을 걱정합니다. 놀부는 착한 마음이지만 걱정이 늘고 느는 삶이 됩니다. 흥부는 바보스럽지만 걱정이 없습니다. 땅이고 돈이고 털어먹기 일쑤이지만 언제나 걱정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손에 흙을 안 묻힐 생각입니다. 약삭빠르게 머리를 쓰면서 살 생각입니다. 흥부한테는 걱정이 없고, 걱정이 없는 만큼 이웃이나 동무나 형이나 누이를 생각하는 마음까지 없습니다.



- “아, 문 열어! 문!” “어떤 개망나니 같은 놈이 와서 무조건 문을 열라는 거야? 너는 예의도 범절도 없냐?” “아쭈 아쭈? 요놈 보게? 넌 아래위도 없냐?” “나라에는 왕이 주인이요, 집에서는 가장이 주인이다! 나는 이 집의 가장이므로 이곳의 주인이다. 너는 뭐냐?” (184쪽)

- “아버지가 물려주신 땅을 이렇게 알뜰히 지키며 가꾸며 열심히 살아가는 큰아들은요, 오늘날 촌놈 농사꾼 바보 얼간이가 되어 초가집에서 푸성귀 먹고 삽니다.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사치와 낭비만 일삼던 둘째 놈은요, 형이 베풀어 준 도움 속에서 나태하게만 살더니 저런 갑부가 되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입니까? 예? 아버지. 동생이 잘 사는 것이 배가 아파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은 아픕니다만, 허나 제가 싫은 것은요, 어째서 일만 하던 개미는 초라해지고, 깽깽이 켜던 여치는 얼어죽지 않고 아방궁에 살게 됩니까?” (188쪽)




  걱정이 많던 놀부는 《놀부전》 끝자락에서 걱정을 비로소 털어냅니다. 마음속에 깊이 또아리를 틀었던 걱정과 시름을 말끔히 털어냅니다. 바야흐로 놀부는 시골에서 수수하게 삶을 사랑하는 투박한 시골내기로 나아갑니다. 흥부는 흥부대로 노닥거리는 재미로 죽 나아갑니다. 흥부한테는 ‘죽은 어버이와 누이’ 생각이 없고, ‘시골에서 흙을 파는 형’ 생각도 없습니다. 흥부는 제 꾀를 잘 살린 대로 어마어마한 돈을 누리고, 흥부네 아이들은 버릇없이 큽니다.


  ‘원작’과 대면 여러모로 비틀거나 고친 《놀부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새롭게 읽어서 새롭게 지은 이야기라고 해야 더 알맞으리라 느낍니다. 시골지기 놀부와 도시내기 흥부를 슬기롭게 바라보면서 멋스럽게 빚은 만화책인 《놀부전》이라고 느낍니다.


  놀부는 늘 생각과 생각을 거듭하면서 ‘삶찾기’로 나아갑니다. 흥부는 늘 꾀와 꾀를 거듭하면서 ‘삶놀이’로 나아갑니다. 어느 쪽이 낫거나 나쁘거나 궂거나 좋지 않습니다. 그저 ‘다른’ 삶입니다. 4348.3.29.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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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마이 로마이 1 테르마이 로마이 1
야마자키 마리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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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88



바라고 찾으며 생각할 때에 온다

― 테르마이 로마이 1

 야마자키 마리 글·그림

 김완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1.3.25.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일만 합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일은 못 하기 마련입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이에요. 생각을 하지 않는데 알 수 없으니까요. 생각을 하지 않아서 알 수 없으면, 코앞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알아채지 못해요. 이를테면, 나비가 번데기를 벗고 깨어나는 줄 모른다면, 코앞에서 번데기가 꼬물거리면서 톡 벌어져서 나비가 나와도 못 알아챕니다. 비행기를 모르면, 비행기가 낮게 날면서 내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릴 적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고 벌벌 떨면서 땅바닥에 납작 엎드리겠지요.



- “그러고 보니 요즘 이 근처에 새 테르마이가 생겼다며?” “아, 베수비우스 화산 벽화가 있는 거기 말이지?” “뭐라더라? 거기서 목욕 마치면 나오는 음료가 이 세상 물건이란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맛있다더군!” (32쪽)

- ‘그때 그 평안족 사내는 무언가 조그만 도구를 써서, 뾱 하고 쉽게 뚜껑을 땄다. 가공할 평안족! 그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아직도 산처럼 쌓여 있겠군!’ (35쪽)




  생각하는 사람이 삽니다.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살면서도 죽은 모습과 같습니다. 바라고 찾으며 생각할 때에 삶이 있습니다. 바라지 않고 찾지 않으며 생각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아무런 삶이 없습니다.


  오늘날 학교교육을 보면, 제도권사회는 우리한테 아무것도 안 가르칩니다. 제도권사회는 사람을 길들이려 할 뿐입니다. 참다운 가르침이란 ‘스스로 생각하기’를 해낼 수 있도록 이끕니다. 참답지 못한 학교교육이요 제도권사회이기 때문에, ‘틀에 박힌 지식’만 달달 외워서 입시지옥에 갇힌 채 생각을 하나도 스스로 안 하도록 내몰기만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생각을 잊거나 잃으면, 정치권력과 사회권력과 경제권력이 시키는 대로 종살이를 하며 쳇바퀴만 뱅뱅 돌 테니까요.



- ‘이렇게 풍광 수려한 곳에 테르마이를 설치하다니. 그리스인들도 혀를 내두를 미적 감각이다. 그래, 이곳이라면 벽으로 에워싸인 인공 테르마이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해방감을 맛볼 수 있겠어. 겉보기에는 우리 로마인보다도 훨씬 하등인 인종인 듯하나, 절대 얕잡아볼 수 없겠는걸.’ (61쪽)

- ‘우리 로마인이 수도니 거대 건축물을 개발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평안족은 원시적 이점의 편리함에도 눈을 돌려 이렇게 획기적인 야외 테르마이를 만들었다니!’ (63쪽)





  야마자키 마리 님이 빚은 만화책 《테르마이 로마이》(애니북스,2011) 첫째 권을 읽습니다. 먼 옛날 로마에서 로마사람이 즐기는 목욕탕과 얽혀 오늘날 일본에서 일본사람이 즐기는 목욕탕을 빗대어 ‘차원 여행’을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먼 옛날 로마사람은 먼 뒷날 일본으로 넘어가서 여러 가지 ‘현대 목욕 시설’을 돌아보고 나서, 이를 옛날 로마에 고스란히 받아들입니다.



- ‘이제 좀더 쓰기 편한 때밀이 도구가 고안되어야 하지 않을까?’ (83쪽)

- ‘아아, 고능하다면 이러한 알 수 없는 것들을 모조리 모아다 로마로 가져가고 싶다. 언뜻 괴상망측한 모습을 하고 있어도 모종의 가공할 요소를 겸비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87쪽)



  먼 옛날 로마에서는 먼 뒷날 일본에서 만든 여러 가지를 배워서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먼 뒷날(오늘날)’이라고 하는 일본은 어떠할까요. 일본은 오늘 바로 이곳에서 모든 것을 처음으로 만들었을까요? 아니면, 오늘날 일본에서도 ‘차원 여행’을 하면서 ‘먼 뒷날’로 날아가서 본 것을 오늘 이곳에 고스란히 옮겼을까요?


  아이들이 널리 읽는 만화책 《도라에몽》을 보면, 도라에몽은 진구 책상서랍으로 들락거리면서 ‘먼 뒷날’ 것을 아무렇지 않게 가져옵니다. 다만, 오늘날 진구는 먼 뒷날 것 가운데 어느 것도 이곳에 받아들여서 새로 가꾸거나 누리지는 않습니다.


  바흐라고 하는 사람은 꿈에서 하늘나라 소리를 듣고는 이를 노래로 지었다고 합니다. 바흐 말고도 수많은 사람이 꿈에서 ‘다른 차원 이야기’를 보고 나서 이곳에서 ‘다른 차원 이야기’를 받아들여서 펼쳤다고 합니다.





- “내 생각에 로마에 가장 필요한 것은 확장보다도 제국 내의 평화유지. 어떻게 그 평화를 유지할지를 생각하기 위해 나는 이 섬을 만든 것일세. 하지만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밖으로 목욕하러 나가기가 귀찮아지거든. 바깥의 대형 테르마이에서는 집중력도 산만해져 사색에 잠길 수가 없네!” (117쪽)

- ‘신께서 무슨 의도로 나를 이 세계에 보내셨는지는 모른다. 허나 겁을 먹고 이 자리에서 물러나선 안 된다는 것은 자명한 노릇.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곳에 있는 것 이상의 테르마이를 폐하게 만들어 드려, 로마를 더 큰 번영으로 이끌어야만 한다!’ (128쪽)



  ‘책’을 처음으로 묶거나, ‘종이’를 처음으로 뜨거나, ‘연필’을 처음으로 깎거나, ‘글’을 처음으로 짓거나, ‘말’을 처음으로 뱉은 사람들은 저마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알아서 펼쳤을까요? 그들은 그저 어느 날 스스로 이 모두를 알아챘을까요, 아니면 꿈에서 보았을까요, 아니면 다른 어느 별에서 이곳에 넌지시 알려주었을까요?


  만화책 《테르마이 로마이》는 그저 그린이 생각으로만 빚은 재미난 책이라고만 느끼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나도 곁님도 아이들도 꿈을 꾸면서 ‘그동안 미처 몰랐던 대목’을 보면서 배웁니다. 우리들 누구나 꿈에서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배웁니다. 꿈이 아니더라도 문득문득 놀라운 이야기가 우리 머릿속에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어떻게 수많은 이야기가 우리한테 왔을까 궁금하면서도, 이 많은 이야기는 우리가 스스로 바라고 생각했기에 차근차근 우리한테 올 수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테르마이 로마이》에 나오는 건축기사도 건축기사 스스로 새로운 목욕탕을 끝없이 생각하고 찾고 살피고 헤아렸기에, 차원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었구나 싶습니다. 4348.3.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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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코형사 ONE코 9
모리모토 코즈에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84



함께 일하는 사이라면

― 개코형사 ONE코 9

 모리모토 코즈에코 글·그림

 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2.15.



  모리모토 코즈에코 님 만화책 《개코형사 ONE코》(대원씨아이,2015) 아홉째 권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원코’라는 형사는 개코입니다. 개처럼 생긴 코가 아닌, 개처럼 냄새를 맡는 코입니다. 사람이면서 개처럼 냄새를 잘 맡아서, 냄새로 여러 가지 실마리를 풀고, 막히거나 어려운 고비를 넘깁니다. 다만, 냄새는 잘 맡는데, 이래저래 덜렁거리고, 앞을 잘 내다보지 못한 채 섣불리 덤비기도 합니다.



- “아, 그럼 당신이 원코? 어머, 귀여워라.” “네? 아잉 몰라. 선배, 지금 저 말 들으셨어요?” “옷 칭찬이잖아.” (7∼8쪽)

- “전 반장님이 그럴 분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는 거예요! 사모님이 불쌍하잖아요. 반장님의 건강을 그렇게 걱정하시는데.” “그러다가 만약 진짜 바람이라면 어쩌려고? 반장님한테 바람 피우지 말라고 말할 거야?” “당연하죠!” (17쪽)




  ‘개코형사’인 ‘원코’는 제 솜씨를 아낌없이 뽐냅니다. 냄새 하나만으로도 실마리를 잡을 수 있으니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다른 일은 그리 잘 하지 못합니다. 다른 형사도 가만히 보면 저마다 잘 하는 일이 있어요. 그런데 다른 형사도 잘 하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누구한테나 뛰어난 솜씨가 한 가지 있으면서, 조금 어수룩하거나 많이 어설픈 대목이 있습니다. 잘 하는 솜씨는 서로 북돋우고, 어수룩하거나 어설픈 대목은 서로 감싸면서 채워 줍니다. 함께 모임이나 모둠을 이루어 돕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일을 해냅니다.



- “사람이 한 명 죽었어요. 범인은 고작 푼돈 때문에 노인을 죽인 인간이에요. 뭔가 아시면 부디 말씀해 주세요.” (57쪽)

- “아베 유타, 진짜 못 말릴 녀석이구만. 넌 지난 6년 동안 뭔가 하나라도 배운 게 없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던 게냐?” “시끄러! 시끄럽다고! 네놈 때문에 그 망할 여자를 죽이지 못했어! 빌어먹을!” “그거 참 안됐군.” (72∼73쪽)




  아주 솜씨가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혼자 모든 일을 다 풀는지 모릅니다. 아주 빼어난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한테서 도움을 안 받을는지 모릅니다. 깊은 멧골에서 혼자 지내는 사람이라면 밥도 옷도 집고 손수 건사할 테니, 굳이 다른 사람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나, 손수 삶을 지으면서 지내는 사람도 낱낱이 따지면 모든 일을 혼자 해내지는 못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해님이 비추어야 하고, 비가 와야 하며, 바람이 불어야 하고, 풀과 나무가 자라야 하며, 새와 벌레가 있어야 하고, 흙이 기름져야 하는데다가, 냇물과 샘물이 흘러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서 서로 돕고 기대는 삶을 이룹니다. 사람과 사람은 다른 이웃인 숲과 들과 온누리하고 이어지면서 서로 돕고 기대는 삶을 이룹니다.



- “새벽에 정원을 파다니 딱 봐도 이상하잖아요.” “꽃이라도 심으려던 게 아닐까?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까.” (95쪽)

-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원코가 걱정돼서 그냥 둘 수 없었던 거죠? 부럽다.” “아니거든! 너희가 바보라서 그래! 정원에 몰래 들어가서 원코한테 냄새 맡아 보라고 시킬 생각인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116쪽)





  삶을 이루는 바탕은 사랑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웃이 되어 어깨동무를 할 적에는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짝짓기 같은 살섞기가 아닌, 마음과 마음으로 서로 아낄 줄 아는 사랑입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뭇느낌이 아닌, 마음으로 손을 맞잡을 줄 아는 사랑입니다.


  개코형사가 일을 풀 적이든, 다른 형사가 실마리를 찾을 적이든, 사건이나 사고를 풀려는 뜻만으로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웃을 믿고, 나 또한 서로 이웃이 되며, 저마다 살가운 동무가 될 수 있는 마음일 때에 함께 일을 합니다.



- “당연히 너도 원코랑 뜻을 함께하는 줄 알았거든.” “하긴 뭘해요.” “원코는 아직도 혼자서 냄새를 맡고 다니는 모양이던데.” “예?” … “그 녀석은 자신이 맡은 냄새에 확신을 가지고 있잖아? 넌 우리보다 원코와 더 오래 알고 지냈으니 그 녀석의 코를 믿고 함께 행동하는 줄 알았지.” (147∼148쪽)




  운동선수는 운동을 하는 선수입니다. 운동을 할 적에 남몰래 나쁜 짓을 한다든지 꾐수를 쓴다면, 이녁은 운동도 안 하는 셈이요 선수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여느 회사원과 공무원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규칙이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떳떳한 삶으로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규칙이나 원칙이라서 지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왜 나쁜 짓을 굳이 몰래 하려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저마다 착한 마음이 되어 즐겁게 일한다면, 규칙이나 원칙이 있을 까닭이 없어요. 우리는 모두 법 없이 아름다운 삶을 이룰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따로 법이 없어도 아름답게 아끼고 어깨동무를 할 때에 사랑이 싹터요.


  그러니까, 법을 어긴다든지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법을 어긴 잘못’이나 ‘범죄를 저지른 나쁜 일’ 때문에 붙잡혀서 감옥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범죄자 스스로 삶을 아끼지 못하고 사랑이 없는 모습’을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나쁜 짓은 언젠가 들통이 납니다. 나쁜 짓은 냄새가 나기 마련이니, 개코형사 같은 사람이 있어서 이를 샅샅이 찾아내기 마련입니다. 남몰래 숨어서 나쁜 짓을 일삼아서 성적이나 결과나 성과만 내려고 한다면, 이런 껍데기로는 내 삶조차 북돋우지 못합니다.


  꽃내음이 향긋하게 퍼질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을 걸을 노릇입니다. 함께 일하는 사이라면, 함께 삶을 지으려는 이웃이라면, 함께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동무라면, 우리는 아름다운 웃음꽃을 피울 노릇입니다. 4348.3.24.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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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선셋 코다마 유키 단편집 2
코다마 유키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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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87



저물녘에 고운 해를 보다

― 뷰티풀 선셋

 코다마 유키 글·그림

 이정원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1.7.8.



  여덟 살 어린이가 휘파람을 불려고 합니다. 여덟 살이어도 휘파람을 솜씨있게 잘 부는 아이가 있고, 아직 휘파람을 어떻게 내는지 알아채지 못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마흔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휘파람을 부는 어른이 있고, 여든 살이 되어도 도무지 휘파람을 못 부는 어른이 있습니다.


  휘파람을 불 수 없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나도 마흔 살까지는 내 혀와 입술과 입으로는 휘파람을 못 불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마흔 줄을 넘어선 뒤 숨쉬기를 새롭게 가다듬던 어느 날, 내 입에서 휘파람 소리가 터졌습니다. 휘파람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마흔 해 넘게 휘파람하고 담을 쌓았는데, 나는 어떻게 하루아침에 휘파람을 불 수 있을까요? 이제껏 내 혀와 입술과 입으로는 휘파람을 불 수 없겠거니 여겼는데, 나는 어떻게 이 혀와 입술과 입으로 휘파람을 불 수 있을까요?



- ‘아아, 안 되겠어. 눈길이, 눈길이 자꾸 그쪽으로 가 버리는걸.’ (13쪽)

- ‘어느 순간부터 무척이나 냉정해져 있었다. 평소에 짝사랑했던 선생님과 느닷없이 드라이브를 하게 되었으니 정신없이 떨렸었지만, 그것은 끓는점에 닿아 있던 내 마음을 단번에 영하로 떨어뜨렸다. 내가 타기 전부터 컵 거치대에 놓여 있던 빈 음료수 캔. 거기에 남아 있는 붉은 립스틱 자국.’ (47∼48쪽)





  다섯 살 어린이가 춤을 추려고 합니다. 누구한테서 배운 춤이 아니라 저절로 나오는 춤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본 춤이 아니라 스스로 우러나오는 춤입니다. 우리는 연예인이나 춤꾼이 보여주는 어떤 ‘틀에 박힌’ 몸짓을 따라해야 하지 않습니다. 이런 춤 저런 춤을 학원을 다니면서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춤은 늘 우리 몸에서 흐릅니다. 우리가 스스로 춤을 안 느끼려고 하니 춤을 못 춥니다. 우리가 스스로 춤을 생각하려 하지 않으니 춤을 안 춥니다.


  남이 하는 몸짓을 따라할 때에 춤이 되지 않습니다. 이때에는 시늉이나 흉내일 뿐입니다. 춤은 시늉도 아니고 흉내도 아닙니다. 춤은 그저 춤입니다. 내 몸에서 흐르는 기운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받아들여 살릴 때에 춤이 됩니다.


  노래도 이와 같습니다. 말도 이와 같습니다. 생각과 사랑도 모두 이와 같습니다. 언제나 나한테 있어서 고요히 흐르는 결을 읽을 수 있어야, 휘파람을 불고 춤을 춥니다. 내 숨결을 차분히 헤아릴 수 있어야, 꿈을 꾸고 사랑을 합니다.



- ‘아이들은 낮에 어른들은 밤에 노인들은 아침에 논다. 그럼 중학생은? 그들이 가장 빛나는 시간은 언제일까.’ (5쪽)

- “그, 그 정도 키스가 뭐 어떠냐고 생각했겠지만! 중학생이라고 얕보는 거 아냐!” (80∼81쪽)




  코다마 유키 님 만화책 《뷰티풀 선셋》(애니북스,2011)을 읽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책이름이 영어로 ‘뷰티풀 선셋’이었으면, 한국에서도 이를 그대로 영어로 적을 수 있을 테지만, ‘아름다운 저녁놀’이라든지 ‘해질녘 고운 빛’ 같은 이름으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사람은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툭툭 영어를 쓰거든요.


  그런데, 한국말을 쓰려고 해도 한국말사전이 몹시 얄궂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저물녘’ 한 마디는 한국말사전에 나오지만, ‘해질녘’과 ‘동틀녘’은 안 나옵니다. 더군다나 ‘해지다’라는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없고, ‘동트다’와 ‘저물다’ 두 가지만 한국말사전에 나와요. 그렇지만 ‘동트다 + 녘’은 ‘동틀 녘’으로 띄어서 적으라 하고, ‘저물다 + 녘’은 ‘저물녘’처럼 붙여서 쓰라고 하는 정부 맞춤법이에요. 아주 뒤죽박죽인 한국말사전이라서, 정부 맞춤법대로 하자면 ‘해 질 녘, 동틀 녘, 저물녘’처럼 적어야 하는데, 참으로 말이 안 되는 맞춤법입니다.


  아무튼, 바보스러운 한국말사전은 덮고, 우리는 아름다운 ‘해질녘’과 ‘동틀녘’과 ‘저물녘’을 누리면 됩니다.




- ‘똑같이 살아 있는 인간인데도 이렇게나 감촉이 다르다니. 할아버지도 예전엔 아키토처럼 뜨겁고 믿음직한 몸으로 살아갔겠지.’ (114쪽)

- ‘아담과 이브 사이에, 깊디깊은 틈이 있을까?’ (148쪽)



  해질녘에 붉게 물드는 하늘빛이 아름답습니다. 동틀녘에 붉게 물드는 하늘빛도 아름답습니다. 저물녘에 차츰 붉게 물들면서 수없이 새로운 빛깔로 달라지는 하늘빛은 그지없이 아름답습니다.


  그러면, 이 빛은 왜 우리한테 아름다울까요. 해가 뜨고 지는 빛은 왜 우리한테 뜨겁게 파고들까요. 햇빛은 우리한테 어떤 숨결로 스며들어서 새로운 느낌을 자아낼까요.


  만화책 《뷰티풀 선셋》에 나오는 사람들이 웃거나 웁니다. 기쁨에 웃고 슬픔에 웁니다. 한창 웃다가도 아주 조그마한 일에 걸려서 그만 웁니다. 한창 낯을 찡그리면서 슬프다가도 아주 조그마한 일을 겪으며 갑자기 웃습니다.




- ‘이 아이도 저 아저씨도 저 사람도 모두 저마다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누군가가 있겠지. 입 냄새 나는 이 사람조차? 이 전철에는 수많은 사랑이 들어차 있는지도 몰라.’ (158∼159쪽)

- ‘켄이 혼자 노는 모습은 지금 봐도 무척이나 즐거워 보여서, 나도 모르게 …….’ (179쪽)



  웃음과 울음 사이에는 아무것이 없습니다. 어떤 실마리가 있어야 웃지 않고, 어떤 실타래가 엉켜서 울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웃고 싶기에 웃습니다. 나 스스로 울고 싶기에 웁니다. 아무리 기쁜 일이 있어도 웃지 않으면서 기쁨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어요.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울지 않으면서 슬픔을 삭이는 사람이 있어요. 왜냐하면, 기쁨도 슬픔도 모두 우리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을 그대로 맞아들이니 따로 웃음이나 울음이 아니더라도 기쁨을 기쁨대로 누리고, 슬픔을 슬픔대로 맛봅니다. 이러면서 찬찬히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어느 흐름에도 들뜨지 않으면서 흐르는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이리저리 뭇느낌에 휘둘리다가 어느덧 사랑길로 접어드는 사람은 고요하면서 차분하게 마음을 다스립니다. 고요하면서 차분한 마음이 되면, 웃음짓는 낯이나 눈물짓는 낯이 아니면서 아름다운 몸짓이 되어요.


  네 사랑과 내 사랑이 만나고, 내 사랑이 네 사랑한테 갑니다. 우리 사랑은 이곳에서 손을 맞잡습니다. 붉게 물들면서 아름답게 지는 해를 바라보듯이, 우리는 고요하고 차분하게 사랑을 짓는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4348.3.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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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하셨어요? Buonappetito!
야마자키 마리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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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86



함께 먹는 밥 한 그릇

― 식사는 하셨어요?

 야마자키 마리 글·그림

 정은서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3.9.6.



  아이들과 밥을 먹다 보면, 아이들이 얌전히 밥상맡에 앉아서 밥그릇을 비우는 모습을 보기 참 어렵습니다. 참말 그렇게 몸이 근질근질한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면 곧바로 내 어릴 적을 돌아봅니다. 나는 어릴 적에 어떠했는지 생각합니다. 오늘 내 앞에 있는 아이들을 꾸짖거나 나무라지만, 막상 나도 이 아이들만 한 나이에는 밥상맡에서 온몸이 근질거려서 밖에 나가서 뛰놀고 싶지 않았나 하고 돌아봅니다.


  아주 배가 고팠으면 밥술을 뜨느라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참말 아주 빠르게 밥그릇을 비웁니다. 그런데 제법 배가 고프더라도 밥술만 마냥 뜨지 않습니다. 몇 숟갈 먹고 나서 숨을 돌리면, 아 조금 놀아 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나무라지요. 밥을 다 먹고 놀라면서 나무랍니다. 그러면 다시 밥그릇에 고개를 처박지만, 이내 고개를 살며시 들고 놀이를 찾습니다. 이러다가 또 꾸지람을 듣고, 또 놀려 하고, 또 꾸지람을 듣고 …….


  아이들과 밥을 먹으면서 밥상을 치우는 날은 거의 없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제대로 밥에 마음을 못 쓴 탓이라고 할 텐데, 더 생각해 보니, 나부터 어릴 적에 ‘꼼짝없이 밥상맡에 앉아서 밥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움직이지 못하던 일’이 아주 힘들었구나 싶습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우리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놀다가 먹다가 다시 놀다가 먹도록 두는구나 싶습니다.



- ‘몰랐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케첩이 들어가면 요리로 쳐주지도 않는구나. 속는 셈치고 일단 먹어 봐.’ (7쪽)

- ‘이탈리아에서는 ‘쌀’로 만든 도시락이란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물건인 모양이다.’ (19쪽)





  밥을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어도 즐겁습니다. 반가운 이와 함께 있으면, 밥을 함께 먹으면서 아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즐겁습니다. 그저 한자리에 있기만 하면서 즐겁습니다.


  그런데, 안 반가운 이하고 밥을 먹으면, 밥을 먹는 내내 이야기를 나누어도 몸이 고단합니다. 마음이 맞지 않는 이하고 밥을 먹는 자리에 있으면, 그야말로 몸둘 바를 모릅니다. 한입으로는 밥을 먹지만 제대로 씹는지 삼키는지 잘 모릅니다.


  밥상맡에서 으레 생각에 잠깁니다. 왜 반가운 이와 있을 적에는 이야기를 나누어도 즐겁고 안 나누어도 즐거울까요? 왜 안 반가운 이와 있을 적에는 이야기를 안 나누면 답답하고 이야기를 나누어도 답답할까요?



- ‘포르치니가 입에 들어 있는 동안이라면 아마 어떤 악담이나 욕설도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엄마가 늙어서 다 죽어 가면 포르치니를 입 안에 집어넣어! 알았지?” “뭣? 싫어, 진짜 싫어! 쪽팔려서 싫어!” (42∼43쪽)

- ‘하우스메이트였던 비슷한 처지의 고학생들과 주머니를 탈탈 털고, 아이디어를 긁어모아 조금이라도 맛있게 먹으려고 노력했다. 장담했던 대로 티나는 초라한 재료만 가지고도 맛있는 요리를 만들었다. 빈궁한 이탈리아의 식생활에 익숙해지고 10년이 지나 오랜만에 일본에 귀국해 보니(1995년),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 있어서 놀랐다.’ (61쪽)




  야마자키 마리 님이 빚은 만화책 《식사는 하셨어요?》(애니북스,2013)를 가만히 읽습니다. 그린이가 이탈리아에서 가난한 살림을 꾸리면서 그림을 한창 배우던 무렵에 어떻게 지냈는가 하는 이야기를 살짝 우스꽝스레 보여주는 만화입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살림돈이 죄 바닥이 나서 쫄쫄 굶어야 했을 적에 더없이 고단하면서 힘들었을 텐데, 이 만화책으로만 본다면, 고단하고 힘들면서도 서로 웃고 이야기꽃을 피웠구나 싶습니다. 기쁨도 나누고 슬픔도 나눈다고 할까요. 없는 돈으로도 함께 누릴 밥을 짓고, 더 적은 돈으로 더 많이 먹을 밥을 푸짐하게 짓는 길을 자꾸자꾸 생각한다고 할까요.



- ‘《맨발의 겐》의 비참한 내용에 전율하면서도, 페이지를 넘길수록 겐과 똑같은 공복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겐과 똑같은 음식이 먹고 싶어. 얼마 안 되는 쌀을 병에 넣고 몽둥이로 빻은 후, 거의 맹물이나 다름없는 죽을 쑨다.’ “아아, 끝내준다!” ‘돌이켜보면 내가 자극을 받는 건 검소하고 소박한 것들뿐이네. 참으로 신기한 심리다. 호화로운 요리보다 절박한 상황 속의 검소한 요리.’ (70쪽)





  야마자키 마리 님이 가난하지 않았으면 그림을 배웠을까 안 배웠을까 궁금합니다. 가난하지 않았어도 그림을 배웠다면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궁금합니다. 모자라거나 아쉬운 것 하나 없이 이탈리아에서 그림을 배우다가 만화를 그렸다면, 이녁은 우리한테 무엇을 보여주는 만화를 그렸을까 궁금합니다.


  더 헤아려 보면, 열일곱 살 나이에 혼자 이탈리아로 떠나서 그림을 배우겠다고 하는 아이를 둔 이녁 어버이부터 재미있고 대단합니다.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조차 안 마친 나이인데, 이러한 나이에 먼 나라로 열 해 동안 배움마실을 혼자 떠나도록 할 만한 어버이는 얼마나 있을까요. 야마자키 마리 님은 이녁이 겪은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는데, 이녁 어버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만화로 그려 보아도 무척 재미있으면서 남다르리라 느낍니다. 어떻게 배움마실을 떠날 수 있었고, 어떻게 열네 살에 혼자 유럽여행을 떠날 수 있었으며, 어릴 적에는 집에서 어버이한테서 무엇을 보고 듣고 배우고 물려받으면서 삶을 지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그려서 선보일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진작 나왔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 “이거든 저거든 다 똑같은 쌀 아닌가?” “당신은 몰라.” “내는 안다! 이탈리아 요리에서도 자료가 생명인걸! 말해두겠는데, 우리 집도 재료를 까다롭게 따져 가며 먹는다구! 우리 밭만 봐도 알 수 있잖아?” (86쪽)

- ‘리오에서 현지 친구와 합류 … 브라질 여성은 몸매 관리에 무척 신경을 쓴다. 그리고선 끝이 안 보이는 리오의 해안을 몇 km나 파워 워킹 … 그 후 우리는 슈하스코라는 브라질식 스테이크 식당으로 연행되었다 … 슈하스코 다음엔 삼바 그룹의 콘서트로 연행되었다. 2시간 내내 춤 췄을 무렵, 친구가 드디어 복통과 피로로 쓰러졌다. 이런 스케줄이 열흘이나 계속된 덕분에, 코끼리처럼 먹고 마셨어도 내 체중은 확 줄어든 것이었다.’ (123∼125쪽)




  배가 부르게 먹든 배를 곯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엄청난 밥을 먹든 꾀죄죄한 밥을 먹든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함께 먹는 밥이 맛있습니다. 함께 누리는 밥이 즐겁습니다. 함께 지어서 함께 차리고 함께 즐긴 뒤에 함께 치우는 밥상이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요리사가 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으리으리한 식당이나 레스토랑이나 호텔에 가 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류 요리사한테서 대접을 받아 보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사랑을 담은 밥을 즐기면 되고, 우리는 서로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밥을 먹으면 됩니다.


  물 한 잔을 마셔도 웃으면서 마시면 내 몸에 새로운 기운이 샘솟습니다. 밥 한 술을 떠도 웃으면서 먹으면 내 마음에 새로운 사랑이 솟아납니다.


  비싼 밥이 아닌 따스한 밥이 고맙습니다. 멋진 밥이 아니어도 넉넉한 손길로 나누어 주는 밥 한 술이 반갑습니다. ‘밥은 먹었니?’ 하고 건네는 말 한 마디에는 언제나 깊고 너른 사랑이 묻어나기 마련입니다. ‘밥부터 먹고 하자.’ 하고 들려주는 말 한 마디에는 늘 따사롭고 너그러운 숨결이 깃들기 마련입니다. 4348.3.2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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