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가면 4
스즈에 미우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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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10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

― 유리가면 4

 미우치 스즈에 글·그림

 해외단행본팀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0.4.30.



  아무리 맛난 밥을 먹더라도 몸이 꽁꽁 묶였다면, 밥맛이 없습니다. 으리으리한 호텔에 묵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한 발짝조차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면, 으리으리한 호텔은 감옥입니다. 온갖 시설을 훌륭하게 갖춘 학교라 하더라도 입시지옥만 바라본다면, 온갖 시설은 모두 부질없습니다. 읽은 책이나 갖춘 책이 많아도 지식을 머릿속에만 담으면서 자꾸 다른 책을 장만하기만 한다면, 수많은 책과 지식은 모두 덧없습니다.



-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너무나 밝은 저 웃음은. 나와 같은 역을 하게 되어 벌벌 떨며 불안해 할 줄 알았더니. 마치, 마치 나 같은 건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한 저 웃음. 이 아유미 따위는.’ (11쪽)

- “극단 온딘이 어떤 〈키 재보기〉를 하는지, 아유미가 어떤 미도리를 연기하는지, 나하고는 상관없어. 나는 내 미도리를 연기할 뿐.” (30쪽)




  미우치 스즈에 님 만화책 《유리가면》(대원씨아이,2010) 넷째 권을 읽으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유리가면》에 나오는 츠기카게 님과 마야는 연극을 둘러싸고 고단한 가시밭길을 걷습니다. 두 사람을 비롯해서 다른 여러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과 못살게 구는 무리가 있습니다. 삶에서 연극을 빼면 아무것도 없다고 할 만한 두 사람한테서 연극을 빼앗으려고 하는 모질거나 못난 사람과 무리라고 할까요.


  그런데, 츠기카게 님이나 마야는 둘레에서 아무리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더라도 다시 일어섭니다. 다시 일어서면서 웃고, 다시 기운을 차릴 뿐 아니라, 이제껏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모습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 “아유미와 경쟁한다니 역시 뛰어난 재능을 가진 굉장한 미인이겠지?” “그냥 평범한 여자애지요. 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숨기고 있는 소녀라고 할까.” (49쪽)

- “이곳에서 당신과 겨루다니, 재미있게 됐군요.” “겨뤄? 일부러 같은 연극을 고르고, 무대 연습을 못하게 조작하고, 우리 순서를 온딘의 바로 뒤로 잡고, 뒷공작이 대단하시던데. 사실은 내가 두려운 거겠지. 오노데라 씨.” (74∼75쪽)





  곰곰이 따지면, 츠기카게 님이나 마야가 아무 볼 일이 없을 만큼 하찮다고 여긴다면, 이 둘을 괴롭힐 사람도 못살게 굴 무리도 없습니다. 이 두 사람은 아주 대단하기 때문에 자꾸 괴롭히려 합니다. 괴롭혀서 쓰러뜨리려 하고, 못살게 굴어서 무너뜨리려 하지요.


  그리고, 두 사람은 아주 대단한 숨결과 넋으로 연극길을 걷기 때문에, 둘레에서 이 둘을 아무리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든 끄떡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아파서 울고, 때로는 슬퍼서 넘어지지만, 언제나 새롭게 기운을 차리는 두 사람입니다. 언제나 새삼스레 웃음꽃을 피울 줄 아는 두 사람이에요.



- “아유미의 완벽한 연기도 멋지지만, 하지만 이 아이의 미도리도 신선해 보이지 않아? 아유미가 이 장면에서 어렴풋한 성숙미를 느끼게 했던 것에 비하면, 이건 과연 소녀의 사랑이구나, 하는 느낌이군요.” (92쪽)

- “나 왠지, 아유미보다 이 마야라는 애의 미도리에 더 호감이 가는데.” “왜일까? 아유미 쪽이 훨씬 예쁘고 연기력도 있는데, 이쪽 미도리가 더 매력적으로 보여. 불가사의해, 이 아이.” (102쪽)





  〈홍천녀〉라는 연극을 선보인 츠기카게 님한테 사람들이 끌린 까닭이나, 마야가 보여주는 연극에 사람들이 끌리는 까닭은, 밑바탕이 같습니다. 두 사람은 빈틈없는 무대보다 아름다운 무대를 보여줍니다. 츠기카게 님은 빈틈없는 모습까지 있으면서 아름다운 무대를 보여주었다면, 마야는 아직 아름다운 무대만 보여줄 수 있으나, 마야와 맞서는 아유미를 바라보면서 마야도 ‘빈틈없이 보여주는 무대’를 차근차근 꿈꾸면서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그리고, 아유미라는 아이도 마야를 맞잡이로 바라보고 살피면서, 아유미한테는 없으면서 마야한테 있는 숨결이나 넋이 무엇인가를 하나씩 깨달으려고 합니다. 아유미는 오늘 이곳에서 보여주는 무대만으로도 빈틈이 없지만, 빈틈없는 연기만으로는 사람들 가슴을 울리거나 건드릴 수 없는 줄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아무리 빈틈없이 연기를 하더라도, 빈틈없는 연기는 ‘빈틈없는’ ‘연기’일 뿐인 줄 천천히 알아차리려 합니다.


  그렇다고 빈틈없는 연기가 나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빈틈없는 연기는 늘 빈틈없는 연기에서 맴돌 뿐입니다. 빈틈없는 연기는 나빠질 일이 없습니다만, 이와 마찬가지로 좋아질 일도 없습니다. 나빠지지도 않으나 좋아지지도 않기 때문에, 빈틈없는 연기를 지켜보는 사람은 늘어나지 않습니다.


  숨결이 없고 살내음이 없으며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숨결이 없는 빈틈없는 연기는 곧 질리기 마련입니다. 살내음이 없는 빈틈없는 연기는 머잖아 지치기 마련입니다. 사랑이 없는 빈틈없는 연기는 이내 시들기 마련입니다.




- “대단해, 저 애. 그냥 절을 하는 것만으로 관객의 주목을 한몸에 받다니. 멋지게 관객의 호흡을 붙잡았어.” “아유미도 참, 우연일 뿐이야.” “그렇겠지. 본인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119쪽)

- “마야, 연극을 하고 있을 때의 너는 볼품없는 아이가 아니야. 연극을 할 때면 항상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야. 어떤 때는 시골 아가씨, 어떤 때는 말괄량이 마을 처녀. 왕여노롣, 요정으로도, 우등생도 될 수 있고 우주인도 될 수 있어. 천 가지, 만 가지의 가면을 쓰고 천 가지, 만 가지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거야. 남들은 그저 한 사람으로서 단 하나의 인생을 살아갈 뿐이지만, 넌 달라. 얼마나 다양하고 얼마나 멋진 일이냐! 연극을 해라, 마야! 그래야 넌 비로소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어. 그 안에서 살아감으로써 비로소 너라는 인간의 가치가 나타나는 거야.” (158∼159쪽)



  사랑은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습니다. 사랑은 장마가 들어도 곰팡이가 피지 않습니다. 사랑은 배고파도 힘들지 않습니다. 사랑은 가난해도 어렵지 않습니다. 사랑은 아무 배운 지식이 없어도 어리석지 않습니다. 사랑은 외딴 곳에 있어도 쓸쓸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아무리 먼 길을 걸어도 다리가 아프지 않습니다.


  사랑은 바로 삶을 이루는 기둥이요 뼈대이며 살점이고 모든 빛과 고요입니다. 사랑은 바로 삶을 키우는 노래이고 춤이며 웃음이자 이야기입니다.


  《유리가면》에 나오는 마야한테는 ‘사랑’이 있습니다. 남녀 사이에 오가는 짝짓기 같은 사랑이 아닙니다. 고요하면서 그윽한 사랑입니다. 따스하면서 너른 사랑입니다. 고마우면서 반가운 사랑입니다. 꿈으로 나아가는 날갯지이 되는 사랑입니다. 4348.5.2.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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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가면 3
스즈에 미우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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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08



빛나는 얼굴

― 유리가면 3

 미우치 스즈에 글·그림

 해외단행본팀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0.4.30.



  놀이는 스스로 짓습니다. 남이 시켜서 하는 놀이는 재미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나거나 대단한 놀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기쁘게 하는 놀이가 아니라면 재미없습니다.


  일은 스스로 찾아서 합니다.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은 힘겹습니다. 아무리 쉽다고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즐겁게 하는 일이 아니라면 고단하기 마련입니다.


  재미나게 노는 아이들은 얼굴이 환하게 빛납니다. 재미있게 일하는 어른들은 얼굴이 맑게 빛납니다. 우리는 저마다 아름답게 빛나는 숨결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스럽게 고요한 바람입니다.




- ‘바보같이. 그 애가 실수를 잘 얼버무렸다고 해서, 왜 내가 안심이 되는 거지?’ (9쪽)

- ‘평소엔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돌멩이처럼 수수하고 튀지 않는 보잘것없는 소녀인데. 어째서일까. 극이 진행되면서 점점 저 아이, 빛나고 있어!’ (26쪽)



  미우치 스즈에 님 만화책 《유리가면》(대원씨아이,2010) 셋째 권을 읽습니다. 셋째 권에 접어든 《유리가면》에서 ‘마야’라는 아이는 연극밭에 발을 더 깊게 내딛습니다. 이제부터 더욱 씩씩하게 연극길을 걷습니다. 학교에서 학과공부는 아주 어수룩하지만, 연극 무대에서는 어느 누구보다 돋보이면서 아름답습니다. 방정식 하나를 못 외워서 쩔쩔매지만, 연극 무대에서 외는 이야기는 토씨 하나도 안 틀립니다. 연극 무대에 서는 마야는 모든 사람 눈길을 한몸에 사로잡습니다.





- ‘이게 무슨 짓이지? 꽃다발이라구? 지금까지 어떤 여자에게도 꽃 따위를 보낸 적이 없는 내가? 그것도 열 몇 살짜리 소녀에게.’ (46∼47쪽)

- ‘마야, 묘한 아이야. 학교 공부는 방정식 하나 제대로 못 외우면서, 드라마의 대사는 단번에 외우다니. 정말 희한한 녀석이야.’ (55쪽)



  누군가는 연극 무대에서 쩔쩔매겠지요. 그리고, 연극 무대에서 쩔쩔매더라도 학과공부는 눈부시게 잘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춤이나 노래에는 영 어수룩할 테지요. 그러나, 춤이나 노래는 어수룩하더라도 글을 잘 쓰거나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어요. 집살림 가꾸는 일에는 어수룩하지만, 자전거를 매우 잘 타는 사람이 있습니다. 괭이질이나 호미질은 어수룩하지만, 아이들과 잘 어울려 노는 어른이 있습니다. 회사원으로도 공장 노동자로도 일이 아주 어수룩하지만, 밥을 잘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총이나 활을 다룰 줄 모르지만, 풀과 나무를 사랑하면서 아끼는 사람이 있어요.


  다 다른 사람이 어우러지는 삶자리요, 다 다른 사람이 저마다 빛나는 삶터입니다. 다 다른 사람이 어울리는 지구별이요, 다 다른 사람이 저마다 제 꿈을 키우는 별나라입니다.




- ‘그래, 연극이라면 나도 그럴 수 있어. 연극이란 재미있어. 차례차례로 여러 가지 인물이 될 수 있는걸.’ (101쪽)

- ‘어째서 이 세상에 그런 아이가 있는 거지? 예쁘고 영리하고 유복한 가정. 게다가 연기의 천재. 어째서 난 그렇게 태어나질 못했지?’ (146쪽)

- ‘그래 움직임도, 아주 작은 동작의 차이로 여러 가지 성격을 표현해 낼 수 있는 거야. 성격을 만든다! 그렇다! 성격을 만들어 낸다! 어째서 몰랐을까?’ (152∼153쪽)



  마야라는 아이는 연극에서 재미를 느낍니다. 마야가 갈 길은 학과공부가 아닙니다. 연극입니다. 마야한테 심부름을 시키는 사람은 한숨을 쉬어야 합니다. 마야는 다른 일은 그야말로 어수룩하거든요. 청소도 어수룩하고 밥도 어수룩합니다. 도무지 연극이 아니고는 제대로 할 줄 아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 둘레를 살펴보면, 마야처럼 어느 한 가지를 눈부시게 잘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아직 어느 한 가지를 잘 하는’지 알 길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대로 제 솜씨를 드러내지 못하면서 숨을 죽이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제대로 제 기쁨과 즐거움으로 나아가지 못하면서 학과공부에 얽매여 시험지옥과 입시지옥에 휘둘리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얼굴로 지내야 아름다울까요? 스스로 가장 재미난 일이나 놀이를 누리는 얼굴로 지내야 아름답겠지요. 아이들은 어떤 낯빛으로 노래하거나 춤출 때에 예쁠까요? 대중노래나 연속극을 흉내내는 노래나 춤이 아닌, 스스로 사랑스러운 꿈으로 나아가는 노래와 춤을 누릴 수 있을 때에 예쁘겠지요.





- “그게 어쨌다는 거냐? 우리는 우리야! 다른 사람들이 뭘 하든 무슨 상관이야!” (106쪽)

- “아유미는 분명 뛰어난 재능을 갖추고 있다. 완벽한 미도리를 연기하겠지. 원작 속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미도리 그 자체를. 완벽한 미도리, 그것이 천재의 한계라는 거다. 결코 그 이외의 것은 될 수 없다는 얘기지.” (161쪽)



  마야와 달리 ‘아유미’는 천재입니다. 아유미와 달리 ‘마야’는 삶을 연극으로 누리는 아이입니다. 천재인 아유미가 보여줄 수 있는 연극은 ‘빈틈없는 무대’입니다. 삶을 연극으로 누리는 마야가 보여줄 수 있는 연극은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무대’입니다. 아유미는 백 번이나 천 번을 무대에 올라도 언제나 ‘똑같이 빈틈없는’ 무대를 보여줄 테고, 아유미는 백 번 무대에 오르면 백 가지 무대를 보여주고 천 번 무대에 오르면 천 가지 무대를 보여줄 만합니다.


  어느 쪽이 더 훌륭하거나 멋지다고 할 수 없습니다. 두 아이는 저마다 다른 삶으로 태어나서 저마다 다른 길을 스스로 씩씩하게 걷습니다. 4348.5.2.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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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가면 2
스즈에 미우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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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07



처음에 마음이 있다

― 유리가면 2

 미우치 스즈에 글·그림

 해외단행본팀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0.4.30.



  자전거를 달린다고 즐거운 마음이 되지 않습니다. 두 다리로 걷는다고 즐거운 마음이 되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타거나 버스를 탄다고 즐거운 마음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스스로 즐거운 마음일 때에 즐겁습니다. 내 마음이 즐겁지 않다면, 둘레에서 나한테 온갖 선물을 베풀어도 하나도 안 즐겁습니다.


  내 마음이 괴롭다면, 어떤 일을 해도 괴롭기 마련입니다. 내 마음이 어둡다면, 주머니에 돈이 가득 들었어도 괴롭기 마련이에요. 삶은 늘 마음에 따라 흐릅니다. 삶은 언제나 마음에 따라 바뀝니다. 삶은 노상 마음결처럼 피거나 지면서 움직입니다.



- “목구멍으로 소리를 내면 안 돼! 단전으로 소리를 내는 거다!” (7쪽)

- “지금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와의 단절. 돌아갈 곳이 없는 것! 산에 대한 두려움을 알기 시작했을 때 뒤를 돌아보고 그곳에 따뜻한 집의 불빛이 보인다면 어떡하겠나. 되돌아갈 길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이를 악물고서 올라가겠지.” (12쪽)




  미우치 스즈에 님 만화책 《유리가면》(대원씨아이,2010) 둘째 권을 곰곰이 읽습니다. 《유리가면》 둘째 권에서 ‘마야’는 연극과 연기에 천천히 눈을 뜹니다. 이제껏 연극을 마냥 좋아하기만 했으나, 이제부터 연극에 온마음을 담는 길을 걷습니다. 그동안 연극을 즐겁게 구경했다면, 앞으로는 연극을 기쁘게 선보이는 길을 걸어요. 이리하여 언제나 배웁니다. 모든 가르침을 척척 받아들입니다. 아주 늦게 연극길을 걸은 마야라고 할 테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새로우면서 재미있습니다.



- ‘같은 말이지만 의미가 틀려. 말의 음정, 그리고 악센트가 틀려. 아주 작은 차이인데도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모, 몰랐어. 지금까지 단어 같은 걸 너무나 무관심하게 썼구나.’ (27쪽)

- ‘모두, 모두들 날 응원하고 있어. 이런 일은 태어나서 처음이야. 어렸을 적부터 언제나 아무것도 못해서 엄마한테도 무시당해 왔는데.’ (57쪽)

- ‘엄마, 나 연기가 좋아! 나도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을 것 같아.’ (66쪽)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에 ‘똑같은 말’은 없습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합니다. 소리값이 같아도 말뜻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소리값이랑 말뜻이 같더라도 말느낌이 다르기 마련이에요. 말을 하는 자리에 따라서 이야기가 달라지고, 말을 하는 사람에 따라서 생각이 바뀝니다.


  말 한 마디는 천 냥 빚이 될 수 있으면서,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습니다. 말 한 마디로 사랑을 심을 수 있으면, 말 한 마디로 사랑을 깰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천 냥 빚도 되면서 천 냥 빚을 갚는 말은 ‘아무것’이 아니면서 ‘모든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말 한 마디는 아주 대수롭지 않을 수 있으면서 대단히 거룩할 수 있습니다. 밥 한 그릇은 하찮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대단할 수 있어요.



- ‘기막힌 무대 의상이야. 잠옷에 띠라니. 하지만, 얼마나 행복한 듯 웃고 있었던가, 그 소녀는. 집을 나와서 고생도 많을 텐데. 어째서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 웃음을 짓는 거지?’ (100쪽)

- ‘이상한 일이지. 이러고 있노라면 모든 것을 잊게 되고 마음이 차분해져. 내 서툰 연기도, 베스의 역할에 대한 것도. 지금까지 너무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게 아닐까?’ (130쪽)




  마음을 읽기에 이야기가 됩니다. 마음을 읽기에 연극을 하고 영화를 찍습니다. 마음을 읽기에 책과 글이 태어나고, 마음을 읽으니까 사회와 정치가 이루어집니다.


  마음을 읽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마음을 읽지 못하면서 하는 일이란, 기계가 굴러가는 얼거리라고 할 만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하는 일이란 마음으로 하는 일이요, 마음으로 나누는 꿈이며, 마음으로 짓는 노래입니다.


  만화책 《유리가면》은 바로 이 대목을 늘 짚습니다. 연극을 잘 하는 사람은 솜씨나 재주가 뛰어나기만 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느끼고 읽어서 가슴에 담을 수 있기에 연극을 할 수 있습니다. 네 마음을 내 마음으로 삼아서 움직일 수 있으니 연극이 됩니다. 네 마음이 흐르는 결을 살펴서 어깨동무를 할 수 있으니 연극이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 ‘그래, 처음에 마음이 있고, 말과 움직임이 있다! 처음에 마음이 있고!’ (131쪽)

- “마야, 아파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 괴로움을 모르는 거야. 그건 당연한 거야, 마야. 많은 연기자들은 아픈 사람을 보고 거기서 배우는 것뿐이야.” (161쪽)




  처음에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이 있기에 몸짓이 생깁니다. 마음이 있기에 생각을 담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있기에 생각을 이곳에 담아서 삶을 짓습니다. 마음이 없다면 생각을 담지 못합니다. 흐르거나 떠도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요 밭이라고 할 마음이 있기에, 우리는 저마다 새롭거나 재미나거나 기쁘거나 멋지거나 아름다운 생각을 여기에 담아서 날마다 환하게 웃거나 노래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이 있기에 이야기가 생깁니다. 마음이 있기에 생각을 담아서 차근차근 엮고 짜서 삶이 드러나면, 언제나 아기자기하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없습니다. 마음이 없으면 그야말로 어느 것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있기에 모든 것이 하나둘 피어나고, 마음이 있기에 날마다 아침이 밝습니다.


  마음이 아픈 이웃을 생각하고, 마음이 홀가분한 이웃을 헤아립니다. 마음이 들뜬 이웃과 마실을 다니고, 마음이 차분한 동무와 오늘 이곳에서 손을 마주 잡습니다. 4348.5.1.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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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린네 17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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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05



그리운 너를 만나고 싶어서

― 경계의 린네 17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3.25.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5) 열일곱째 권을 읽습니다. 열일곱째 권에 흐르는 이야기를 찬찬히 살피니, 모두 ‘만남’과 얽힌 삶입니다. 가슴속에 담은 뜻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하거나 밝히지 못해 응어리로 남은 아이들이 나옵니다. 가슴속 말을 들려주지 못한 탓에 그만 ‘넋’이 몸에서 빠져나와서 이리저리 떠돌기도 합니다.


  부끄럽거나 쑥스러워서 차마 말을 못 할 수 있습니다. 애써 말을 하더라도 저쪽에서 콧방귀를 뀔까 걱정해서 말을 못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미루고 미루다가 끝내 말을 못 할 수 있습니다.





- “저, 하지만, 이대로 이승에 머물러 있어 봤자, 여자친구 유미도 이미 저승에 가 있을걸, 매미니까.” “응, 이미 환생까지 마쳤을 것 같은데.” (21쪽)

- “이 낫은 악령에 오염된 영철로 만들어졌다고?” “알겠다. 그래서 다른 사신의 낫을 공격하는 거구나.” (31쪽)



  사람은 누구나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옆사람이 어떤 마음인지 못 읽기 마련이고, 스스로 생각을 키우지 않으면, 둘레에서 어떤 마음으로 나와 마주하는지를 도무지 모를 수 있습니다.


  네 마음을 읽으려면 내 마음부터 열어야 합니다. 네가 내 마음을 읽으려면 너도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서로 마음을 열지 않으면 마음으로 이야기를 못 나누고, 아무런 마음도 못 읽어요.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려는 넋일 때에 비로소 마음과 마음이 만납니다.





- “우연히?” “그 부분을 들어야겠는데.” “린네 님, 저승의 주보관에 도둑이 들었대요.” (66쪽)

- ‘이것도 사례금 천 엔, 아니 너를 억울한 저주에서 풀어 주기 위해서야!’ (89쪽)

- “쥬몬지, 사람을 깔보면 곤란해.” “아니, 상품으로 받을 팥빵이 머리에 꽉 차 있잖아?” “우선 이 숭고한 영을 구하는 게 도리지.” (105쪽)



  마음에 맺힌 이야기가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에 맺힌 이야기를 풀어야지요. 그러면, 마음에 맺힌 이야기는 누가 풀까요? 바로 내가 풉니다. 그런데, 아직도 부끄럽거나 쑥스럽다면? 누군가를 불러서 너와 나 사이에서 다리가 되어 주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누군가 너와 나 사이에서 부드러운 징검돌이 되어 주기를 바라면서, 천천히 말길을 틀 수 있습니다.


  말과 말이 오갈 수 있는 길이 열려야 마음을 나눕니다. 마음과 마음이 홀가분하게 드나들 길이 있을 때에 비로소 사랑을 꽃피웁니다.


  너를 만나고 싶다는 그리움을 꽁꽁 가두거나 묶으면, 그만 억눌립니다. 그리움을 풀지 못하면, 그예 터지고 맙니다. 곪은 데는 덧나고, 다친 데는 도지며, 아픈 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맑은 바람이 부는 곳에서 생채기와 앙금과 응어리를 드러내어야 합니다. 따사로운 햇볕을 쬐면서 몸을 다스려야 합니다. 싱그러운 물을 마시면서 삶을 가꾸어야 합니다.






- “이대로 돌아가려고?” “쥬몬지를 깨울까?” “아니, 괜찮아. 우연히 만났을 뿐이고, 썩 친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래, 얼른 돌아가야지.” (162쪽)

- “이대로 돌아가 봤자 해결되는 건 없어. 그건 사카키, 너도 알고 있겠지? 너는 자기 생령을 전혀 컨트롤 못하고 있어. 왜냐면 네 생령은 훈련으로 다루게 된 것이 아니라, 저절로 튀어나온 거니까.” (177∼178쪽)



  사랑이 피어나는 자리에서 삶이 피어납니다. 삶이 피어나는 자리에서 이야기가 피어납니다. 이야기가 피어나는 자리에서 웃음이 피어납니다. 웃음이 피어나는 자리에서는 다시 사랑이 피어납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기쁘게 삶을 지을 수 있기를 빕니다. 앙금을 모두 털면서 어깨를 활짝 펼 수 있기를 빕니다. 4348.4.25.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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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족 2015-04-26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어 보여요

숲노래 2015-04-27 08:29   좋아요 0 | URL
재미있고 뜻있기도 한 만화입니다
 
삽질의 시대 사계절 만화가 열전 3
박건웅 지음 / 사계절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04



‘삽질’은 나쁜 일은 아니지만

― 삽질의 시대

 박건웅 글·그림

 사계절 펴냄, 2012.4.10.



  나무를 심으려면 삽질을 해야 합니다. 구덩이를 깊게 파야 하지요. 삽차를 부르면 나무심기도 스윽스윽 곧 끝날 테지만, 손으로 삽질을 하자면 제법 품을 들여야 합니다. 삽차를 부르면 이마에 땀 한 방울 안 흘리지만, 손으로 삽질을 하자면 구슬땀을 흘려야 합니다. 삽차를 쓰면 손에 흙 한 톨을 안 묻힐 테지만, 손으로 삽질을 하자면 온몸이 흙투성이가 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나무를 심으면 아이들도 삽질을 하고 싶어서 춤을 춥니다. 저희한테도 삽을 달라고 노래합니다. 그래, 너희도 삽질을 해 보렴, 하고 삽을 건넵니다. 아이들은 서로 좋아서 하하 웃으면서 삽을 들고 영차 땅에 포옥 찍습니다. 무른 땅이라면 제법 박히지만 딱딱한 땅이면 겉만 조금 쫍니다. 오래도록 삽질을 거들지 못하지만 몇 삽을 뜨면서, 아이들도 나무심기를 함께 하는 셈입니다.


  다시 삽을 돌려받은 뒤 아이들한테는 물을 떠오라고 시킵니다. 아이들이 물을 떠오면 구덩이에 물을 붓도록 하고 나무를 심습니다. 흙을 구덩이에 넣습니다. 발로 다집니다. 이제 삽을 씻고 나무를 쓰다듬습니다. 나무한테 말을 겁니다. 자, 우리 집에서 즐겁게 살자, 우리 집에서 기쁘게 뿌리를 내리자, 우리 집에서 멋있게 자라자.



- “선생님, 아이 손을 그렇게 잘라도 괜찮습니까?” “물론입니다. 손 하나 없다고 죽지는 않습니다.” (10쪽)

- “전염병을 일으키는 악의 세력이 있습니다!”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바로 촛불을 든 저 마녀입니다!” (28쪽)




  박건웅 님이 빚은 만화책 《삽질의 시대》(사계절,2012)를 펼칩니다. 첫 쪽부터 흠칫 놀랍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그저 ‘만화이니까 그리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말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야기는 빗대는 이야기로 흐릅니다. 어떤 이야기는 굳이 안 빗대는 이야기로 흐릅니다. 이를테면, 아이 손목을 자르고, 아이 눈과 입을 꿰매며, 아이 귀를 자르는 첫 이야기는 ‘빗대는’ 이야기입니다. 더없이 끔찍한 이야기라 할 텐데, 막상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 손과 발을 꽁꽁 묶을 뿐 아니라, 눈과 입을 다 막기까지 합니다. 입시지옥으로 아이들을 꽁꽁 묶지요. 입시지옥에서 벗어나면 취업지옥으로 들들 볶아요. 취업지옥에서 나오면, 도시마다 아파트 전월세 지옥으로 끌어들입니다. 게다가 서울 같은 큰도시는 언제나 교통지옥입니다. 모두 지옥이에요.


  아무개를 믿으면 하늘나라로 가고, 아무개를 안 믿으면 불구덩이로 간다고 하지요. 곰곰이 따지면, 아무개를 믿건 안 믿건 한국 사회는 불구덩이인 꼴입니다. 자유와 권리는 꽁꽁 틀어막힌 채 의무와 책임이라는 굴레만 뒤집어써야 하는 얼거리입니다.



- “원래 선진국에서도 다 걸리는 병이라서 조금만 지나면 마 괜찮아질 겁니다.” “당신이 농민이요?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발생하면 강력한 행정처분을 내릴 테니 각오하시오!” (48쪽)

- “그래도 평생 동안 저렇게 놔둘 수는 없지 않을까요?” “거참 짜증나네! 선생님은 몇 살까지 사실 거예요?” “네? 글쎄요, 한 70살까지요? 근데 왜 물어 보세요.” “앞으로 문제가 생기더라도 100년 뒤에나 생기는 거니까, 우리랑 상관없어요. 그건 후대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요.” (69∼70쪽)





  만화책 《삽질의 시대》는 어느 분이 대통령 자리를 지킬 적 이야기를 그린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어느 한 분이 대통령 자리를 지킬 적에만 ‘이 만화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쥐’로 빗대는 그분이 대통령으로 있을 적에 4대강사업 같은 끔찍한 ‘시멘트 막삽질’이 있었는데, 그분이 대통령이 아닌 때에도 수없이 ‘시멘트 막삽질’이 있었습니다. 요즈음에도 ‘시멘트 막삽질’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시멘트 막삽질’ 뿌리는 꽤 멉니다. 옛날에는 시골 사내를 나라에서 끌어들여 성곽을 세우고 궁궐을 넓혔습니다. 성곽은 이웃나라한테서 나라를 지킨다는 뜻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만, 성곽쌓기에 끌려간 시골 사내 가운데 수십 해 동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이 많고, 성곽쌓기를 하다가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나라를 지킨다는 뜻은 나쁘지 않습니다만, 젊을 적에 부역으로 끌려가서 늙은 할아버지가 되어야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들 ‘백성’한테는 어떤 삶이 있던 셈일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성곽쌓기에 끌려가지 않으면, 병졸로 끌려갑니다. 이래도 끌려가고 저래도 끌려가면서 고향을 잃어야 하던 ‘백성’이 대단히 많아요.


  일제강점기에는 징용으로 끌려가서 전쟁무기 만드는 공장에서 허덕이고, 탄광에서 굴러야 했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뒤에는,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면서 마을마다 고샅을 시멘트로 바꾸고, 흙집도 허물어 시멘트집으로 바꾸며, 지붕은 슬레트(석면)로 바꾸라고 닦달했습니다. 요새는 논도랑도 흙이 아닌 시멘트도랑으로 바꿉니다.



- ‘화려한 스케일과 선정적인 장면을 보여줘도 개미들은 보지 않았다. 그 안에는 진실이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116쪽)

- ‘도시 안에는 가방끈이 긴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는 가짜 가방을 메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가방끈이 길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가방끈이 더 길다고 싸우는 사람도 있었다.’ (158쪽)





  삶을 가꾸는 삽질은 아름답습니다. 삶을 짓는 삽질은 구슬땀이 피어나면서 사랑스럽습니다. 삶을 돌보는 삽질은 손수 이루는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삶과 동떨어진 삽질은 아픕니다. 삶을 짓밟는 삽질은 이웃을 괴롭힙니다. 삶을 저버리는 삽질은 아무한테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렇지만 삽질이 그치지 않습니다. 돈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에 삽질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삽질은 참말 돈이 될까요? 삽질로 돈을 거머쥐는 사람은 참말 즐거울까요? 혼자서 100억이니 1000억이니 1조이니 거머쥔다면, 이녁은 언제나 탱자탱자 신나게 놀면서 삶을 아름답게 지을까요? 돈을 더 많이 끌어모으면 끌어모을수록 오히려 ‘돈으로 둘러싸인 감옥’에 갇히는 꼴은 아닐는지요? 알맞게 벌어서 알맞게 쓰는 삶이 아니고, 아름답게 벌어서 아름답게 나누는 삶이 아니라면, 돈벼락을 맞고 그만 골로 가지는 않을까요?



- ‘어느 날이었다. 학교가 마트로 변해 있었다.’ (180쪽)

- ‘불만이 있어도 사장님이 우리에게 월급을 주고 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와 보니, 회사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211쪽)





  만화책 《삽질의 시대》은 ‘창작’입니다. 그런데, 글하고 그림이 함께 어우러지는 만화가 되다 보니, 이 만화책에서 흐르는 ‘한국 사회 이야기’는 그지없이 끔찍하거나 그악스럽게 보인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어렵도록 하는 사회를 매섭게 꾸짖는데, 이 만화를 아이들한테 섣불리 보여주기는 어렵습니다. 어쩌면, 어른들도 이 만화를 쉬 읽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틀림없는 이야기요, 손가락질받을 만한 잘못을 꾸짖는 만화인데, 숨이 턱 막힙니다.


  책을 덮고 오래도록 생각에 잠깁니다. 거짓을 그린 만화가 아니라 참을 그린 만화인데, 왜 이렇게 숨이 막힐까요. 억지스레 그린 만화가 아니라 꾸밈없이 그린 만화인데, 왜 이렇게 가슴이 갑갑할까요.


  아무래도 ‘쥐’로 나오는 목숨이 너무 안쓰러워 보입니다. ‘쥐’ 둘레에 달라붙어서 팥고물을 받아먹으려고 하는 목숨이 대단히 불쌍해 보입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쥐’는 그렇게 살아서 무엇이 즐겁거나 기쁠는지 모르겠습니다.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손에 쥔 ‘쥐’한테 이웃이나 동무는 없겠지요. ‘쥐’ 곁에는 모두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더 가로채거나 거머쥐려는 맞잡이만 가득 있겠지요. 홀가분하게 춤추거나 노래하거나 사랑하거나 꿈꿀 만한 어깨동무는 하나도 없겠지요.


  ‘시멘트 막삽질’을 하는 사람은 노란민들레도 흰민들레도 그저 시멘트를 들이부어서 다 죽입니다. ‘시멘트 막삽질’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숨막히는 길로 가고 맙니다.


  이제 부디 막삽질도, 시멘트 막삽질도 그칠 수 있기를 빌어요. 꽃을 심고 풀을 아끼며 나무를 돌보는 삽질이 되기를 빌어요. 손수 조그맣게 집을 지어서 아름답게 살림을 가꾸는 삽질이 되기를 빌어요. 아이들과 함께 삽질을 하면서 숲을 푸르게 돌보는 삶이 되기를 빌어요. 4348.4.23.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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