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이야기 8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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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17



아이들이 입을 옷을 그리며 살림을 짓다

― 신부 이야기 8

 모리 카오루 글·그림

 김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6.3.30. 7500원



  요즈음 들어 큰아이는 새롭게 뜨개질에 눈을 뜹니다. 지난해에 어머니한테서 코를 잡는 뜨개질을 익히기는 했는데 얼마 못 가서 다른 놀이에 빠져서 코잡기를 어느새 잊었어요. 이러다가 요즈음 들어서 다시 뜨개바늘을 손에 쥡니다. 어머니가 실을 엮고 속에 솜을 채운 ‘집인형(수제인형)’을 지어서 선물했기 때문입니다. 큰아이는 어머니가 여러 날에 걸쳐서 한 코 두 코 찬찬히 떠서 지은 뜨개인형을 보고는 아주 반했어요. 작은아이도 이 뜨개인형에 몹시 반한 나머지, 어디를 가든 꼭 뜨개인형을 챙깁니다. 이리하여 큰아이는 다시 뜨개바늘을 손에 쥐면서 실엮기부터 합니다. 인형한테 줄 목도리를 조그맣게 뜨고, 아이 손에 끼울 가락지를 신나게 떠요.



“싫어하지는 않지만, 생각대로 잘 안 되니까, 자꾸 짜증이 나서!” “새를 자수로 놓으면 즐거워요!” “아, 네, 그렇군요.” (48쪽)


“어머니가 되면 가족을 부양하니 모든 일에 책임을 가져야만 하지. 태어날 아이에게 입혀 준다는 생각으로 해 보거라.” “아이.” “응? 상상이 안 가느냐?” “그럼 누군가 가까운 사람을 생각하며 수를 놓아 봐.” “그게 더 잘 될 게다.” (53쪽)



  모리 카오루 님이 빚은 만화책 《신부 이야기》(대원씨아이,2016) 여덟째 권을 읽습니다. 19세기 중앙아시아를 터전으로 삼아서 이야기를 펼치는 만화책입니다. 이 만화책을 그리는 분들(작가와 도움이 모두)은 참으로 ‘죽어 나겠네’ 하고 느끼면서 읽는 만화책입니다. 왜냐하면, 이 만화책에 나오는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입는 옷은 모두 ‘손으로 바느질을 해서 무늬를 박은 옷’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든 배경에 나오는 사람이든 모두 ‘손바느질로 무늬를 알뜰히 넣은 옷’을 입는 사람들만 나오니까, 한 칸을 그리려고 해도 여러 사람이 수없이 그리고 다시 그려야 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만화책 《신부 이야기》 여덟째 권에서는 ‘파미르’라는 아가씨가 주인공이 됩니다. 아직 ‘신부’는 아니지만 앞으로 ‘신부가 될 아가씨’이지요. 그런데 이 아가씨는 ‘가시내는 모두 손바느질로 옷이며 옷감이며 깔개며 이불이며 살림이며 떠야 하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자랐건만, 뜨개질 솜씨가 영 시원찮습니다. 빵반죽은 무척 훌륭히 잘하는데, 가만히 앉아서 차분히 바늘을 놀리는 데에는 아주 서툴어요.



‘뭐, 그대로 하라는 말씀은 없었으니까, 슬쩍 비슷하게 하면 되겠지.’ “간단히 때울 생각만 하다간, 언제까지고 늘지 않을 게다.” (79쪽)


“정말 예뻐요.” “하지만, 아직도 많이 남았는걸요.” “뭐, 처음에만 힘들 뿐이지. 한 번 할 수 있게 되면 그 후로는 점점 편해지거든. 게다가 말이다, 이런 건 매일 쓰는 물건이야. 볼 때마다 참 잘 만들었구나, 생각할 수 있어서 좋지 않으냐.” (91쪽)



  바느질을 하는 젊은 아가씨가 나오는 만화책을 읽다가 우리 아이들을 문득 바라봅니다. 한 코 두 코 잡으면서 실을 엮어서 뜨개질을 익히려는 손놀림을 바라봅니다. 처음에는 실가락지일 뿐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실가락지가 발판이 되어 앞으로 깔개도 뜰 수 있고, 목도리도 인형도 뜰 수 있겠지요. 스스로 입을 옷도 스스로 뜰 수 있을 테고요.


  나도 어릴 적에 국민학교를 다니며 실과 수업에서 뜨개질을 했습니다. 다만, 실과 수업을 하던 학기에만 한 달 즈음 하고 그쳤을 뿐이에요. 교과서에 나온 수업이었으니 1980년대 학교에서도 열 살 안팎 아이들이 뜨개질을 배웠어요. 학교 앞 문방구에서 대바늘도 팔고 실도 팔았어요.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목도리나 장갑이나 양말쯤은 으레 ‘집옷’으로 떠서 입곤 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1950년대 무렵이라면 ‘옷을 사서 입는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으리라 느껴요. 더 거슬러 올라가서 1900년대 첫무렵이라든지 1800년대라 한다면, 누구나 제 옷은 제가 스스로 지어서 입었어요.


  여기에서 더 헤아리면, 지난날에는 뜨개질이나 바느질만 스스로 하지 않았습니다. 천뿐 아니라 실까지 손수 얻었어요. 풀줄기에서 섬유질을 뽑아낸 뒤에, 이 섬유질을 말리고 다스려서 물레를 잣지요. 물레를 자은 뒤에는 베틀을 밟아요. 베틀을 밟아서 천을 짜고 나서야 비로소 바느질을 해요.



‘이대로는 안 돼. 무슨 수를 써야 해! 나는, 성격을 바꾸겠어. 나는 나의 이상형인 내가 되겠어.’ (168쪽)



  나는 오늘 어버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옷을 손수 지어서 아이들한테 입히지 못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어릴 적에 뜨개옷을 제법 지어서 입혔습니다. 이러다가 옷짓기가 너무 힘들다면서 나중에는 그냥 사서 입자고 하셨어요.


  나는 사내로 태어났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옷을 손수 지어서 입자는 생각을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돈을 들여서 사서 입으면 되고, 아니면 이웃한테서 물려받아서 입으면 되리라 여겼어요. 화학섬유로 공장에서 찍은 옷인지, 아니면 들에서 자란 풀에서 얻은 실로 손수 짓는 옷인지 제대로 가리지도 못하면서 살았어요.


  아이들이 입을 옷을 그리며 살림을 짓는 길이란 무엇일까요. 아이들이 늘 손으로 만지면서 놀 인형을 어떻게 지을 때에 즐거울까요. 좋은 옷이나 인형을 ‘돈을 넉넉히 벌어서 사서 쓰는 일’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나는 아직 실을 풀줄기에서 섬유질로 얻어서 물레도 잣거나 베틀도 밟는 길까지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실하고 바늘을 장만해서 뜨개질이나 바느질은 할 수 있습니다. 뜨개질하고 바느질부터 하나씩 제대로 새롭게 익힐 수 있습니다. 아이하고 어버이가 처음부터 모두 새롭게 배운다는 마음으로 옷짓기를 할 수 있습니다.


  만화책 《신부 이야기》에 나오는 파미르 아가씨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면서 새롭게 바느질을 하려고 애쓰듯이, 파미르 아가씨가 스스로 ‘새로운 나’로 거듭나려고 하듯이, 나도 올해부터 새로운 살림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많이 서툴고 모자라기에 돈으로 사서 써야 할 일도 있을 텐데, 아직 많이 서툴고 모자라더라도 손으로 기쁘게 지어서 쓰는 살림으로 나아가자고 다짐합니다. 2016.4.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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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애벌레 말캉이 2 - 심심한 건 더 못참아!
황경택 글.그림 / 소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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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16



내 모습은 바로 ‘나를 낳은 엄마 모습’

― 꼬마 애벌레 말캉이 2

 황경택 글·그림

 소나무 펴냄, 2010.12.12. 9500원



  노랑나비도 흰나비도 깨어나서 날아다니는 봄입니다. 노랑나비하고 흰나비는 고흥에서 삼월 첫머리에도 반가이 보았고, 사월에도 기쁘게 봅니다. 삼월 첫머리에 깨어난 노랑나비라면 이월부터 번데기를 틀었다는 뜻이고, 한겨울에도 애벌레로 살았다는 뜻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겨울에도 갓이나 유채는 씩씩하게 돋습니다. 네 철 푸른 나무는 한겨울에도 짙푸른 잎을 매답니다. 이른봄에 나비로 깨어나려고 하는 애벌레로서는 아무리 추운 겨울이어도 먹을거리가 있는 셈입니다. 모든 풀이 다 시들어서 죽지는 않으니까요. 게다가 이월부터 돋은 쑥에도 온갖 애벌레가 꼬물꼬물 붙어서 기어다녔어요. 어느 아이는 나비로 깨어날 애벌레일 테고, 어느 아이는 나방으로 깨어날 애벌레예요.



“똥이 더러운 거라면, 똥을 만드는 동물도 더러운 게 아닐까? 난 똥을 치워 주잖아.” “넌 먹잖아!” “내가 없다면, 이 세상엔 똥이 가득할 거야.” “설마. 그 많은 똥들을 혼자 다 먹냐?” (17쪽)


“난 밤에 짝을 찾으려고 불빛을 만들어내지.” “짝은 찾아서 뭐 하게?” “알 낳지.” “왜 다들 알을 낳으려는 걸까?” “내가 죽으면 내 대신 살아가야지.” “안 죽으면 되잖아?” “안 죽는 건 없어.” “난 안 죽어. 천재니까!” ‘저거 바보 맞네.’ (33쪽)



  엊저녁에 집에서 나방 한 마리를 봅니다. 집안에서 나방을 보기는 올들어 처음입니다. 나비뿐 아니라 나방도 깨어날 때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바깥에서는 파리도 몇 마리 날아다닙니다. 벌도 부산하고 파리도 부산해요. 저마다 새로운 숨결로 새봄을 맞이하느라 부산해요.


  황경태 님이 빚은 만화책 《꼬마 애벌레 말캉이》(소나무,2010) 두 권을 읽으면서 나비하고 나방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꼬마 애벌레는 ‘뽕나무 애벌레’입니다. 마침 우리 집 뒤꼍에는 제법 큰 뽕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이 뽕나무 둘레에는 뽕잎을 먹는 애벌레가 꽤 많습니다. 만화책 《꼬마 애벌레 말캉이》에 나오는 주인공 애벌레는 우리 집 둘레에서 흔히 보는 숱한 애벌레 가운데 하나라고 할 만해요.



“나도 엄마한테 신호 보낼 거야. 어떻게 하는 거야?” “넌 안 돼.” “난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어.” (37쪽)


“우린 왜 먹어야 할까?” “낸들 아냐.” “왜 그럴까? …… 난 안 먹을래! 생명을 해치는 일, 난 안 해!” “너, 먹지?” “생각해 봤는데, 난 풀밖에 안 먹어.” “풀도 생명이야. 생명은 다 같아. 너도 나도 풀도 다 같은 생명이야.” (85∼86쪽)



  두 권에 이르는 만화책 《꼬마 애벌레 말캉이》에 나오는 말캉이는 처음에는 뽕나무하고 이야기를 섞습니다. 뽕나무한테서 ‘말캉이’라는 이름을 얻은 애벌레는 나무 곁에서 나뭇잎만 먹으며 살기보다는 ‘너른 바깥누리’를 겪고 싶습니다. 씩씩하게 나무를 타고 땅바닥으로 내려서요. 다만, 하루 사이에 내려서지 못하고, 이틀에 걸쳐서 힘겹게 내려섭니다.


  문득 우리 집 애벌레를 떠올립니다. 애벌레는 하루 만에 나무에서 땅바닥으로 내려올 수 있을까 하고.


  애벌레는 ‘작은 벌레’라고 하는 뜻처럼 작습니다. 뽕나무 곁에서 자라는 애벌레도 참으로 작습니다. 십 미터쯤 되는 나무에서 땅바닥으로 내려오자면 한참 걸린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달팽이보다는 빨라요. 꼬물꼬물 기는 몸짓이지만 이틀까지 걸려서 땅바닥으로 내려오리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다만, 한곳에서 빙글빙글 돌 수 있어요. 때로는 ‘수많은 발’을 잘못 놀리는 바람에 하늘을 가르며 바닥에 톡 떨어지기도 해요. 지난해 봄에는 바람이 퍽 가볍게 불던 날씨인데에도 애벌레가 그만 땅바닥에 톡톡 떨어지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방법이 있다. 네 엄마가 누군지 아는 방법!” “그, 그게 뭔데?” “네가 엄마가 되어 보면 알지!” (90쪽)


“그럼 이상한 걸 먹냐?” “그런 건 아니지만.” “사랑스러운 걸 먹는 거야. 먹는 건 사랑스러운 거야!” (107쪽)



  누군가는 이 애벌레를 징그러이 여길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똥을 핥는 파리’를 더럽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벌레는 나뭇잎을 알맞게 갉아서 먹을 뿐 아니라, 나무꽃이나 풀꽃이 꽃가루받이를 하도록 해 줍니다. 파리가 똥을 핥기에 사람이나 짐승이 누는 똥이 흙으로 돌아가서 풀하고 나무가 새롭게 기운을 낼 수 있습니다.


  애벌레가 없어서 나비나 나방이 깨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셔요. 매화나무도 능금나무도 배나무도 귤나무도 오얏나무도 살구나무도 복숭아나무도 …… 모두 사람이 손으로 하나하나 꽃가루받이를 해야 합니다. 밤나무도 잣나무도 은행나무도 참나무도 벚나무도 사람이 하나하나 손을 써서 꽃가루받이를 해야 할 테고요. 바람도 꽃가루받이를 시켜 준다고 하지만, 크고작은 날벌레하고 풀벌레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애벌레와 날벌레가 너무 늘지 않도록 새가 함께 있어야지요.


  함께 사는 지구별이자 숲이고, 함께 어우러지는 보금자리이자 마을이라고 할 만해요. 그래서 작은 애벌레는 나무한테서도 삶을 배우고, 이웃 여러 벌레랑 짐승한테서도 삶을 배웁니다. 사람도 다른 사람만 스승으로 삼지 않아요. 사람도 풀이나 꽃이나 나무한테서도 배우고, 작은 벌레한테서도 배웁니다.



“아, 졸려. 근데, 뭔가 막 하고 싶다. 실 뽑기! 위로 갈 거야.” “왜 갑자기?” “나도 몰라. 그냥 뭐가 하고 싶어졌어. 본격적으로 실 뽑기를 하고 싶다.” (136∼137쪽)


“난, 암컷이었어. 엄마가 될 거야. 엄마가 나를 낳았듯 멋진. 아, 지금 내 모습은 엄마의 모습?” (165쪽)



  만화책 《꼬마 애벌레 말캉이》에 나오는 애벌레는 너른 바깥누리를 돌아다닌 끝에 뽕나무한테 돌아갑니다. 바깥누리를 돌아다니면서 사귄 여러 동무한테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길을 배웠고, 다시 돌아온 뽕나무한테서 ‘꿈꾸면서 잠드는 하루’를 새삼스레 배웁니다.


  이윽고 이 애벌레 말캉이는 스스로 번데기를 틀어서 깊이 잠들어요. 오랫동안 꿈나라를 헤맨 끝에 가만히 깨어나요. 날개를 단 눈부신 몸으로 일어나지요. 그러고는 어느 때에 문득 깨닫습니다. ‘아, 나는 나를 낳은 엄마처럼 엄마가 되었구나!’ 하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우리를 낳아서 우리는 저마다 즐겁고 씩씩하게 살다가 어머니나 아버지가 됩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된 우리는 다시 아이를 낳고, 이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새로운 어머니나 아버지가 됩니다. 작은 애벌레는 작은 애벌레답고 수많은 이웃한테서 삶을 배워서 사랑을 키웠고, 사람은 사람대로 숱한 이웃한테서 살림을 배워서 사랑을 키웁니다. 모든 목숨이 싱그러이 깨어나서 무르익는 사월을 맞이하여 힘차게 기지개를 켭니다. 새와 풀벌레가 노래하듯이, 나도 아이들하고 노래하는 살림을 꿈꿉니다. 알에서 깨어나는 어린 새하고 번데기에서 거듭나는 새로운 나비와 나방처럼, 나도 날마다 껍데기를 벗고 슬기로운 어른이자 어버이로 힘차게 서자고 다짐합니다. 2016.4.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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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11 - 완결
토우메 케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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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15



좋아하는 사람 곁에서 즐겁게 노래하기

―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11

 토우메 케이 글·그림

 이상은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6.2.25. 6000원



  아이들은 저희하고 함께 노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어머니랑 아버지가 저희하고 함께 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른들은 저마다 할 일이 있기에 좀처럼 아이들하고 놀 겨를을 못 내기 일쑤입니다. 아이들을 보살피거나 먹여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놀이보다는 으레 일이 앞서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은 저희랑 함께 놀 어버이를 기다립니다. 가만히 지켜보면서 기다립니다. 아이들은 어머니랑 아버지가 저희를 마주보면서 기쁨으로 좋아해 주며 함께 놀 날을 가만히 기다립니다.



‘먼 길을 돌아서 수많은 굴레를 짊어지고 왔구나. 우리들.’ (10쪽)


“도쿄로 돌아가고 싶지?” “이제 됐어. 너와 상관없는 일이야.” “우리는 여기서 자랐기 때문에 이곳에 애착이 있어. 하지만 오빠는 저쪽에 소중한 사람이 있잖아? 남편이 하고 싶은 일은 여기서도 할 수 있어. 오빠가 희생하면 그이도 마음이 불편할 거야. 그런 건 아버지도 바라지 않으실 테니까.” (57쪽)



  토우메 케이 님이 빚은 만화책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학산문화사,2016) 열한째 권을 읽습니다. 열다섯 해 남짓 잇던 이야기는 이제 마무리를 짓습니다. 권수로 치면 열다섯 해 남짓에 걸쳐 열한 권이니, 무척 더디게 이야기가 흘렀다고 할 만합니다. 이 사람하고 저 사람이 맺는 이야기가 흐르는 만화이고, 이 사람하고 저 사람 사이에서 따스한 바람이 불다가 서운한 바람이 부는 이야기가 흐르는 만화입니다. 이제 마지막 열한째 권에 이르러 ‘저마다 좋아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놓고 뚜렷하게 한 걸음씩 떼는 모습이 드러납니다.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하면서 흔들리는 삶이 아니라, 망설이지 않고 씩씩하게 한 걸음을 내딛으려는 모습이 나와요.



“이 주변에는 볼 게 없는데.” “괜찮습니다. 산이나 들, 논밭을 구경하고 싶어요.” (73쪽)


‘이것저것 고민해도 결국 다다르는 곳은 내 영혼이 원하는 장소.’ (190쪽)



  어느 모로 본다면, 이 사람도 좋고 저 사람도 좋을 수 있어요. 그래서 이 사람 곁에도 있고 저 사람 곁에도 있을 만합니다. 여러 사람을 가까이에 두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서로 동무가 되어 함께 지낼 만해요. 사람살이가 꼭 짝짓기를 해야 하는 얼거리가 아니니, 굳이 ‘너랑 나만’이라고 하는 틀에 사로잡혀야 하지 않습니다. 사람살이에는 ‘짝’만 있지 않고 ‘동무’가 함께 있어요. ‘이웃’이 있지요. 동무도 ‘너나들이’ 같은 이가 있으며, 말동무나 길동무나 일동무나 꿈동무가 있어요.


  그러니 내 마음에 드는 어느 한 사람이 있을 적에, 또는 내 마음을 사로잡는 여러 사람이 있을 적에 잘 살피거나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짝’으로 두려는가? 모든 사람을 ‘동무’로 사귀려는가? 오직 한 사람만 ‘짝’으로 두려는가? 다른 동무가 없이 짝꿍만 있으면 되는가?



“나는, 나를 받아들여 준다면 당장이라도 갈 거야. 내가 도망친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미나토는 자기 자신에게 달렸잖아.” (82쪽)


“곁에 있어 주면 그걸로 충분해. 멀리서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아. 곁에 있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돼. 그렇잖아. 곁에 있을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이야.” (84쪽)



  만화책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는 가장 훌륭하거나 멋진 길을 밝히거나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만화책에서 몇 가지를 넌지시 짚습니다. 첫째, 누가 누구를 좋아하든 ‘내 넋이 가장 포근하게 쉬면서 즐거운 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둘째, ‘내가 살아가는 기쁨은 바로 내가 스스로 찾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셋째, 마음에 드는 모든 사람을 짝꿍으로 혼자 차지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아름다운 이웃하고 동무를 즐겁게 아끼면서 살뜰히 마주할 수 있는 마음이 되자고 말해요.



“어중간한 어른인 우리들은, 머리로만 지나치게 생각하고 있어. 이렇다 할 인생 경험이 없으니까. 그렇지?” (142쪽)


“‘행복’이란 뭘까요?” “그건 하루(주인공 이름, 그러니까 주인공 스스로)가 아니면 알 수 없어.” (164쪽)



  사랑은 머리로 알 수 없습니다. 아무렴, 그렇겠지요. 사랑은 가슴으로 알 테지요. 사랑은 마음으로 알 테고, 사랑은 깊은 넋으로 깨닫겠지요. 머리로 이모저모 아무리 따진들 사랑을 알 길이 없으리라 느껴요.


  기쁨도 이와 같아요. 기쁨을 머리로 알 수 없으리라 느껴요. 돈이 많아야 기쁨일까요? 이름을 드날려야 기쁨일까요? 엄청난 힘을 부려야 기쁨일까요? 아니겠지요?


  아이들은 두 손을 꼬옥 잡고 마당에서 빙글빙글 돌아도 까르르 웃음꽃입니다. 아니, 아이들은 내가 손가락 하나만 들어서 옆구리를 살짝 찔러도 깔깔깔 웃음바다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들이 춤잔치나 노래잔치를 베풀어 주어야 웃지 않습니다. 그저 곁에 있기만 해도 웃음이 퍼집니다.


  즐겁게 밥을 짓고, 즐겁게 빨래를 합니다. 즐겁게 씨앗을 심어 밭을 돌봅니다. 즐겁게 자전거를 몰며 나들이를 누립니다. 즐겁게 뒷산에 올라 봄꽃을 만납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곁에 둘 수 있는 기쁨을 새롭게 되새기면서, 오늘 하루도 빙그레 짓는 ‘웃음살림’을 가만히 그립니다. 2016.3.2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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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초밥왕 7 - 애장판
다이스케 테라사와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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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614



‘작은’ 마음으로 짓는 ‘사랑스런’ 밥

― 미스터 초밥왕 7

 테라사와 다이스케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3.5.25. 6000원



  김치 한 접시하고 밥 한 그릇을 올린 밥상이 있습니다. 가난한 살림이기에 이 같은 밥상이 될 수 있고, 수수한 한 끼니를 바라기에 이러한 밥상이 될 수 있어요. 가난하지만 김치 한 접시하고 밥 한 그릇으로도 기쁘면서 고마운 마음이 될 만합니다. 가난하기에 김치 한 접시하고 밥 한 그릇으로는 도무지 성이 차지 않아서 짜증스럽거나 싫을 만합니다. 살림이 매우 넉넉하지만 밥상은 늘 수수할 수 있어요. 살림이 매우 넉넉한데에도 짠돌이나 짠순이가 되어 밥에는 도무지 마음을 안 쓴다고 여길 수 있어요.


  김치 한 접시하고 밥 한 그릇을 올린 밥상은 어떤 마음으로 차렸을까요? 네 가지로 적어 본 매무새는 저마다 어떤 마음일까요? 마지못해서 차린 밥상이라면 그야말로 마지못해서 먹으리라 느껴요. 기쁘게 온 사랑을 쏟아서 차린 밥상이라면 참말로 기쁘게 온 사랑을 누리면서 수저를 들리라 느껴요.



“고생이라니? 내가 아플 때, 넌 그 무거운 등짐을 지고 대합을 날라 줬잖아. 너는 내 아들이나 마찬가지야. 이런 효자를 위해 엄마가 무슨 일인들 못 하겠니?” (21∼22쪽)


“아주머니의 간장 덕분에 이건 거예요.” “무슨 소리! 이런 게 없었어도 어차피 네 실력으로 이겼을 거야.” (36쪽)



  테라사와 다이스케 님이 빚은 만화책 《미스터 초밥왕》(학산문화사,2003)을 다시 읽습니다. 일곱째 권에서 흐르는 ‘작은 마음’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리가 서로서로 나누는 작은 마음을 돌아봅니다. 등짐을 짊어지면서 일을 맡아 주는 작은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간장 한 병을 건네려고 땀을 듬뿍 쏟은 작은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코마사 형은 ‘마무리의 일품’으로 대체 뭘? 뭘 만드셨어요?” “별로 대단할 것도 없어. 평범한 박고지말이였으니까.” (49쪽)


“좋은 초밥이란 비싼 재료나 기발한 요리법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야. 아무리 시시한 재료라도, 정성을 다하면 얼마든지 맛있는 초밥이 될 수 있어!” (74쪽)


“이렇게 작은 초밥 하나지만, 이 안에는 부모님이며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단 말이에요. 하지만 도련님은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도 모르세요!” (96쪽)



  고급 요리집이라면 ‘고급 요리’를 차리겠지요. 그러면 고급 요리는 어떤 요리일까요? 값비싸거나 값진 재료를 쓰면 고급 요리가 될까요? 눈부신 재료나 돋보이는 재료를 쓰면 고급 요리가 될까요?


  수수하거나 값싼 재료로는 고급 요리를 차리지 못할까요? 투박하거나 흔한 재료로는 고급 요리를 할 수 없을까요?


  고급 요리가 아니라면 어쩌면 ‘저급 요리’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고급하고 저급을 가르는 잣대란 무엇일까요? 값이 비싸다면 고급이 될는지요? 값이 싸다면 저급이 될는지요? 누군가는 값에 따라 고급하고 저급을 나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값이 아니라 ‘밥짓는 살림꾼 손길’을 헤아리면서 고급하고 저급을 가릴는지 몰라요. 왜냐하면, 어느 눈길로는 비싼값을 치러야 하는 밥이 고급이라 여길 수 있고, 어느 눈길로는 값이 아닌 고운 손길로 알뜰히 지은 밥이 고급이라 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네가 뭘 할 수 있는지, 마음을 다해 생각해 보는 거야!” (107쪽)


“요시노 초밥 아주머니에게 살아갈 기력을 되찾아 주기 위해, 그리고 물론 나 자신을 위해! 그 싹눈파를 내가 재현해야 돼!” (182쪽)



  손수 심어서 거둔 남새가 맛있는 까닭을 알려면, 참말로 손수 씨앗을 심어서 남새를 길러 보아야 합니다. 손수 사랑을 기울여서 씨앗을 가린 뒤에 심어야 하고, 손수 땀을 흘리며 남새를 돌봐야 하며, 손수 기쁜 웃음을 지으며 열매를 거두어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손수 알뜰살뜰 품을 들여서 다듬고 손질하여 밥을 차려야지요.


  밥 한 그릇에는 오롯이 우리 손길이 깃들어요. 이도 저도 스스로 하지 않고 돈만 치러서 사다가 먹는다면 ‘심고·가꾸고·거두고·짓는’ 손길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도, 이 네 가지 손길이 없어도 ‘차리는’ 손길은 있는데, 집밥이 아닌 바깥밥을 먹으면 ‘차림손(차리는 손길)’마저 내 마음을 들이지 못합니다.



“맛은 결정적으로 달라요! 흙에서 가꾼 노지재배 싹눈파가 압도적으로 맛있다구요!” (191쪽)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은 좋으나, 수업으로 익힌 기술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212쪽)


‘쇼타. 도쿄와 오타루는 정말 멀지만, 내 응원의 목소리가 들리니? 힘내, 힘내, 쇼타! 뒤돌아보지 말고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 (297쪽)



  집에서 부엌데기로 지내야 하는 몸일 적에는 ‘남이 해 준 밥’이면 다 맛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참말 ‘남이 해 준 밥’이면 다 맛이 있을는지 아리송해요. 왜냐하면, 저는 ‘남이 해 준 밥’은 고마우면서 맛있고, ‘내가 손수 지은 밥’은 즐거우면서 맛있다고 느끼거든요. 남이 해 주기에 더 맛있지 않고, 또 덜 맛있지도 않습니다. 바깥밥은 고마우면서 맛있는 밥이요, 집밥은 즐거우면서 맛있는 밥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나중에 우리 집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이 아이들이 저희 손으로 밥을 차려서 나한테 내민다면, 이때에는 ‘고마움 + 보람 + 사랑’이 고루 어우러진 맛있는 밥이 되리라 느껴요.


  밥을 먹을 적에는 몸을 살리는 영양소를 받아들이는데, 이때에 마음을 살리는 사랑도 함께 받아들이지 싶습니다. 밥 한 그릇을 먹는 일이란 몸하고 마음을 함께 살리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이리하여, 고급 요리가 되는 길이란 고마움도 기쁨도 즐거움도 보람도 함께 담으면서 사랑을 함께 싣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된장국하고 김치 한 접시도 얼마든지 고급 요리가 될 수 있고, 봄날에 누리는 쑥떡이나 쑥버무리도 언제나 고급 요리가 될 만하리라 느껴요.


  밥짓는 살림꾼 마음이 깃들기에 고급 요리이지 싶습니다. 밥짓는 살림꾼 웃음이랑 노래가 감돌기에 고급 요리이지 싶어요. 우리 어머니도 이웃 어머니도 예부터 ‘고급 요리’를 아이들한테 베풀었습니다. 나도 오늘 우리 아이들한테 내 모든 사랑을 싣는 ‘즐거운 밥’을 ‘맛있는 아침’이자 ‘맛난 저녁’으로 차려서 베풉니다. 작은 마음이 하찮아지지 않도록, 작은 마음이 그대로 작은 숨결이면서 사랑스러운 꿈이 되도록 밥을 지어서 함께 누립니다. 2016.3.15.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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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 동경대 가다! 21 (신장판) - 완결, KBS 드라마 '공부의 신' 원작
미타 노리후사 지음, 김완 옮김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10



우리 삶은 언제나 배우는 하루

― 꼴찌, 동경대 가다! 21

 미타 노리후사 글·그림

 김완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2010.1.4. 4500원



  미타 노리후사 님이 빚은 만화책 《꼴찌, 동경대 가다!》(랜덤하우스코리아,2010)는 모두 스물한 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책이름에 잘 나오듯이 ‘학교 꼴찌’인 아이를 어떻게 일본 동경대에 넣느냐 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입니다. 다만, 이러한 줄거리를 다루기는 하되 그림결은 몹시 엉성합니다. 이 만화책을 보신 분이라면 이 대목을 아주 또렷하게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림결은 안 느끼고 이 만화책을 볼 수도 있을 테지요. 어떻게 꼴찌가 동경대에 들어가느냐 하고 궁금해 한다든지, 공부법을 배우려고 하는 분이라면 그림결이 이렇거나 말거나 대수롭지 않겠지요.



“세상에서 말하는 기적이란 다 그런 거다. 요란 떨 만한 것도 못 돼. 너희들은 이제 이 정도 기적은 언제든 일으킬 수 있다는 소리야.” (28∼29쪽)


“이 학교는 가르치는 보람이 있어요. 학생과 선생님들이 점점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요.” (38쪽)


“결국, 공부란 꾸준히 성실하게 한 사람이 제일 잘 하는 거였어.” (45쪽)



  이 만화책에는 네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첫째, 동경대에 붙는 여학생입니다. 이 아이는 술집에서 일하는 어머니하고 둘이서 사는데, 늘 학교 밖으로 떠도는 하루를 보내는데 ‘이대로 나아갈 수는 없다’는 다짐으로 공부에 온힘을 쏟기로 해요.


  둘째, 동경대 시험을 쳤으나 아깝게 떨어진 남학생입니다. 이 아이는 너무 으리으리한 집안에 너무 으리으리한 형 때문에 어릴 적부터 주눅이 들었어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는 푸념으로 맴돌다가 마음을 다잡기로 하고 동경대 시험을 치렀고, 재수를 하기로 다짐합니다.


  셋째, 월급쟁이로 지내는 학교 교사입니다. 꼴찌는 그저 꼴찌일 뿐이고, 문제아는 그냥 문제아일 뿐이라고 여기는 교사예요. 이러한 교사가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저 스스로 얼마나 어리숙한 굴레에 갇혔는가를 깨닫습니다.


  넷째, 두 아이를 동경대에 넣으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이녁은 ‘시험 문제 잘 풀도록 돕는 강사’를 끌어들이기도 하고, 스스로 강사 노릇을 하면서 두 아이를 갈고닦도록 북돋웁니다. 아마 이 사내 스스로 고단한 길을 걸었기에 공부하는 길도 가르칠 수 있겠지요.



“넌 1년간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 그것만으로도 이 아버지는 기쁘다.” (64쪽)


“시험을 치는 건 그 애들이지. 마지막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어.” (71쪽)


‘시험을 보길 잘 했어. 이제까지 노력하길 정말 잘 했어. 그리고 마지막, 내 힘을 모두 쏟아부어야지.’ (130∼131쪽)



  만화책에 나오는 말로도 엿볼 수 있듯이, 공부는 ‘늘 꾸준히 하는’ 사람이 잘 합니다. 벼락치기로 하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라 ‘시험 치르기’일 뿐이에요. 그래서, 여느 때에 늘 스스로 배우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새롭게 배우지요. 새롭게 배우면서 삶은 기쁨으로 거듭나고, 기쁨으로 거듭나는 삶에서는 언제나 노래가 흘러요.


  다시 말해서, 대학교에 붙느냐 떨어지느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스스로 온힘을 다해서 공부를 했다면, 대학교 시험에 떨어졌어도 씩씩하게 두 차례 세 차례 다시 맞설 수 있어요. 스스로 온힘을 다해서 공부를 하지 않았으면, 대학교 시험에 붙었어도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는지를 모릅니다.



“결과는 떨어졌지만 실패는 아니야. 아주 조금 부족했을 뿐이지. 그동안 쌓인 노력은 실패가 아니니까.” (209쪽)



  우리는 늘 배워요. 성공에서도 배우고 실패에서도 배웁니다. 배우지 못하는 사람한테는 삶이 없습니다. 배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삶은 ‘겪음(경험)’이라고 해요. 성공도 겪는 일이고, 실패도 겪는 일이에요. 누군가는 한 번 해 보면서 뜻을 이루고, 누군가는 열 번이나 백 번쯤 해 본 끝에 뜻을 이루어요.


  어느 길이 훌륭할까요? 네, 모든 길이 저마다 훌륭합니다. 어느 길이 아름다울까요? 네, 스스로 배우려고 땀흘리면서 웃고 노래하는 길이 아름답습니다. 2016.2.2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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