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식탁 5
시무라 시호코 글.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09 ― “먹기 전에 진부한 아수라장 좀 벌여도 될까?”
 : 시무라 시호코, 《여자의 식탁》 5권


- 책이름 : 여자의 식탁 (5)
- 글ㆍ그림 : 시무라 시호코
- 옮긴이 : 김현정
- 펴낸곳 : 대원씨아이 (2009.6.15.)
- 책값 : 4200원



 (1) 밥하기와


 엊저녁에 불려놓은 누런쌀로 아침에 밥을 합니다. 옆지기는 당근을 썰어 밥에 얹습니다. 다시마도 굵직하게 잘라 함께 얹습니다. 아주 여린 불로 밥을 끓입니다. 몇 분쯤 지나 보글보글 소리가 나고 밥 익는 냄새가 온 집에 퍼집니다.

 요사이 우리처럼 가스불로 냄비에 밥을 해먹는 분이 얼마나 될까 모르겠습니다마는, 전기밥솥이나 압력밥솥 밥보다 냄비밥이 훨씬 맛이 있으면서 영양소도 부서지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곰곰이 떠올리면, 제가 국민학교 다니던 때에 3학년인가 4학년 때에 학교에서 실과 시간에 밥하기를 가르쳤고, 그무렵에는 한 달에 한 번쯤 학교에서 밥잔치나 먹기잔치라고 해서 우리가 손수 밥하고 반찬하고 하면서 서로 돌려먹기를 하곤 했습니다. 김수정 님 만화 《오달자의 봄》에는 주인공 달자와 펑순이네가 학교에서 밥해서 대접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즈음도 학교에서 이런 실과 수업이 있는가 궁금한데, 초등학교에서는 초등학생 나이에 맞추고 중학교에서는 중학생 나이에 맞추며 고등학교에서는 고등학생 나이에 맞추어 밥하기와 반찬하기를 가르치면서, 어버이 손을 빌지 않고도 살림을 꾸리도록 해 주어야지 싶습니다. 또한, 밥하기를 넘어 청소하기와 빨래하기도 가르치고요.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몸과 마음이 오롯이 튼튼한 사람으로 커야 아름다우며, 어느 누구도 밥을 안 먹고 못 살며 옷을 안 입고 못 사는 한편 잠을 안 자고 못 사니까요.


.. ‘왜 (내가 만든) 이 케이크에 대해 말하지 못했을까? … 그 애 (엄마가 만든) 케이크가 더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만들어 준 케이크를 먹는 평범한 어린애가 더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짠맛이 섞인 케이크를 먹으면서 ‘엄마, 빨리 와’라고 중얼거렸다’ ..  (16∼18쪽)


 어릴 적 일을 되새기면 학교에서 밥하기를 가르치기 앞서, 누구나 집에서 밥하기를 배웠습니다. 밥하기를 배운 다음에는 어머니 일을 거든다며 밥하기를 손수 해 보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밥물을 안치고 끓이지는 못하고, 조리로 돌 고르기를 여느 때에 꾸준하게 하고 나서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밥을 끓였습니다. 우리 집은 압력밥솥을 썼는데, 압력밥솥 추가 치치치 소리를 내며 춤을 추는 내내 옆에서 지켜보면서 기다렸고, 다 되어 뜸을 들이고 나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뚜껑을 열 때 느낌이란!

 그때 학교에서 선생님이 ‘밥할 줄 모르는 사람?’ 하고 물어 보았다고 떠오르는데, 이렇게 물을 때 손을 든 아이는 두엇쯤?

 요즈음 아이들도 밥하기를 어느 만큼은 할 수 있지 않으랴 싶기도 합니다. 전기밥솥은 단추만 누르면 되거든요. 그렇지만 밥물을 맞출 줄 모르는 아이도 많고, 고작 단추 한 번 누르면 되는 밥하기조차 못하는 아이도 많을지 모릅니다. 세탁기도 단추 하나면 끝이지만 단추 한 번 못 누르는 사람이 제법 되거든요.
 





.. “저기, 왜냐고 해도, 일단은 설날 요리의 기본이고, 게다가 오빠도 엄청 좋아하는 거고.” “그래, 남편도 아이도 아버님도 어머님도 다들 좋아해. 근데 난 안 좋아하거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난 평소 때 식사도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가족들이 좋아할 만한 것만 만들고 있어.” “그거야 다들 그런.” “그런 거야? 정말 그래도 되는 거야? 난 애가 생기는 바람에 일찍 결혼해 그대로 주부가 되어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잖아. 대체 나란 인간은 뭔가란 생각이 들어서. 내가, 이렇게, 이렇게 주체성 없는 여자라니.” ..  (24쪽)


 낮에 생협에 가서 인절미를 삽니다. 집에서 홀로 아이를 보고 있을 옆지기가 인절미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저도 배가 고파 몇 점 먹을 생각입니다. 옆지기는 인절미를 반참 삼아 함께 밥을 먹자고 합니다. 그래서 아침에 한 밥에다가 인절미를 반찬으로 삼아 늦은낮밥을 먹습니다. 옆지기는 인절미를 조금씩 끊어 잘근잘근 씹은 다음 아기한테 먹이고 당근 섞은 누런밥 또한 잘근잘근 씹어서 아기한테 먹입니다. 아기는 날름날름 잘 받아먹습니다. 저와 옆지기도 인절미 조금에다가 밥을 먹으니 배가 부릅니다.

 생협 인절미는 2600원이었는데, 생협 아닌 여느 떡집에서는 2000원쯤 받습니다. 적어도 600원은 비싸게 사먹는 셈이라 하겠습니다만, 허튼 쌀로 짓지 않은 떡이요, 농사지은 사람이며 다루어 파는 사람이며 고르게 도움이 되니까 600원을 더 썼다고 해서 아쉽지 않을 뿐더러 즐겁습니다. 게다가 세 식구가 2600원으로 한 끼니 배부를 수 있습니다.

 세 식구가 떡과 밥으로 늦은낮밥 먹는 모습을 사진으로 몇 장 남깁니다. 아기는 열 달째로 접어든다면서 어엿하게 걸상에 앉아 손바닥 장난을 치면서 밥술을 낼름낼름 받아먹는데, 아직은 이런 어린 날을 떠올릴 만큼은 아니겠지만, 나중에 커서 제 어릴 적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 새삼스럽다고 느낄 테지요. 밥자리 사진을 찍으면서 괜히 웃음이 납니다.


.. “이 집, 후르츠 샌드위치가 정말 맛있어. 여기저기 먹으러 다녀 본 내가 장담하는데, 아마 최고일 거야. 봐, 저 두 사람(나를 차고 딴 여자 만나는 놈하고 짝꿍)도 먹고 있잖아. 훗, 내가 알려준 가겐데.” “언니, 진정해.”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왔어, 언니. 일단 먹고.” “음, 먹기 전에, 후타바, 나, 진부한 아수라장 좀 벌이고 와도 될까?” (그러고는 성큼성큼 걸어가, 자기를 차고 다른 여자랑 재미있게 노는 녀석한테 아무 말 없이 따귀를 한 대 때리고 다시 아무 말 없이 제자리로 돌아와서 후르츠 샌드위치를 맛나게 먹는다. 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동생은 여태까지 후르츠 샌드위치를 먹고 싶다거나 맛있다고 느껴 보지 않았지만, 바로 이때부터 자기도 맛있게 먹고 싶어졌다는 생각을 한다.) ..  (75∼78쪽)


 그러고 보니, 제가 어릴 적에는 밥먹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일이 없습니다. 다른 동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삿날에도 사진을 찍지 않았고, 밥먹을 때에도 사진을 찍지 않았으며, 골목에서 놀 때에도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찍는 때는 입학식과 졸업식과 ‘좋다는’ 데 놀러간 날입니다. 여느 자리 여느 때에는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여느 자리 여느 때 이야기는 그날그날 잊어버린 삶이 아니었을까 싶고, 여느 우리 삶은 굳이 돌아볼 값어치가 없다고 여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된 분들로서는 아이와 함께 ‘좋다는’ 데로 데리고 가서 비싼 바깥밥을 사먹이면 ‘당신들로서도 뿌듯하고 아이들로서도 좋아하겠지’ 하고 생각할는지 모르는데, 또 이렇게 생각할 아이도 많을 텐데,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 형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형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돈 잘 버는 작은아버지가 제 국민학교 3학년 때(1984년) ‘뷔페’에 데려간다며 오늘은 아침부터(또는 낮밥부터) 굶고 있으라 했지만, 형과 저는 배가 너무 고파 라면 세 봉지 끓여 형이 두 봉지 제가 한 봉지 먹고 국물에 밥까지 잔뜩 말아 먹었어요(‘뷔페’가 어떤 곳인지 이날 처음 알았고, ‘뷔페’라는 이름도 이날 처음 들었습니다. 그러니 라면국물에 밥까지 말아 배 띵띵 부르도록 먹었습니다). 그러고 저녁에 작은아버지가 우리를 데리러 오셨는데 ‘라면에다가 밥까지 말아먹었다’는 얘기를 듣고, ‘이런 촌놈들!’ 하면서 웃었습니다. ‘뷔페집에 가면 얼마나 맛있는 게 많은데 그런 걸 먹어!’ 했고, 뷔페집에 가서도 ‘고기 많이 먹으라!’고 했지만, 우리 눈에는 고기보다는 여느 때에는 구경할 수 없던 바나나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두 눈이 왕방울처럼 동그래져서 바나나만 한 접시 가득 채워 여러 번 먹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작은아버지는 또다시 혀를 끌끌 찼지만, 그런 혀끌끌은 생각하지도 않고 바나나와 배와 능금만 다섯 접시쯤 먹었던가?

 생일 때라고 뭐 으리으리한 집을 바란 적이 없었고, 저는 크림 들어간 케익은 몸에 맞지 않아 먹지 못한데다가, 잡채 한 접시와 약밥 몇 점이 있으면 좋았습니다. 혀가 짧아 매운 반찬이나 김치는 잘 삭이지 못하면서도, 늘 먹는 밥이면 다 좋았습니다.
 





 (2) 밥먹이기와


 1995년에 부모님 집을 나와 신문사지국에 들어가 먹고살며 일한 뒤로는 언제나 밥을 했습니다. 딱히 밥을 잘하지 않았으면서도 밥당번이 되었습니다. 나이가 어리니 형들이 귀찮은 일을 시킨 셈일 텐데, 군대에 갔다 온 다음에는 호텔조리학과를 다니고 군 취사병으로 있었던 선배가 여러모로 가르쳐 주어 하나씩 익히면서 함께 밥당번을 맡았습니다. 신문사지국을 그만두고 출판사에 들어가 일하던 때에는 한 해 동안 함께 살던 형들을 먹이려고 밥을 했고, 형들이 장가가며 따로 나가면서는 혼자 먹을 밥을 혼자 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집에 냉장고를 들였습니다만, 냉장고가 있다고 해 보아야 냉장고에 넣어둘 만한 먹을거리란 딱히 없었습니다. 그 뒤 첫 혼인을 하고 나서도 밥하기는 제가 맡은 일이었습니다. 혼인살이를 접고 충주 산골마을에서 일할 때에는 밥을 내처 얻어먹었는데, 오랜만에 남이 해 준 밥을 얻어먹어서 그런지 바늘방석에 앉아서 먹는다는 느낌이었고, 제가 먹고픈 대로 조금 모자라게 먹을 수 없었으니 속이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먹여 주는 분으로서는 더 먹여 주고플는지 모르지만, 먹는 저로서는 덜 먹고 덜 쓰면서 몸을 다스리고 싶었습니다. 고향마을로 돌아와 새 혼인을 살아가는 그러께부터는 다시 제 밥을 제가 합니다. 얻어먹기가 끝나니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를 노릇이었으며, 가깝든 멀든 누군가와 함께 먹을 밥을 마련하는 일은 날마다 새로우면서 즐겁습니다. 똑같은 밥차림이라 하여도 날마다 새로운 밥차림이요 언제나 따뜻하게 새로 하는 밥입니다. 똑같이 밥상을 받아도 날마다 고맙게 새로 먹는 밥이요, 이 고마움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 ‘엄마가 집을 나간 것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언니가 초등학교 5학년 때입니다 … 그것은 2월의 쌀쌀한 아침. 난방도 켜지 않고 멍하게 앉아 있는 아빠 모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빠, 엄마는?” “어, 아아, 잠깐 어디 갔어?. 아마 곧 돌아오겠지.” “거짓말.” ‘어느새 옆에 와 있던 언니가 중얼거렸습니다. 아빠 손 밑에 있는 종이가 이혼신고서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도 이제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 ‘역시 제대로 되는 게 없습니다. 역시 우린 글렀습니다. 엄마한테 버림받은 구제불능 우리들.’ “풉, 아하하하하하, 왠지 한심해. 기껏 잡아 온 모시조개가 전부 모래투성이라니. 우린 정말 바보야.” ..  (52∼53, 61∼63쪽)


 그렇다고 제가 밥하기를 잘하는 사람은 못 됩니다. 그저 저 먹을 만큼 할 뿐이요, 제 밥그릇과 옆지기하고 아기 밥그릇까지는 맡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힘이 들어 드러누워 꼼짝을 못하고 있으면 옆지기가 쌀을 불리고 밥을 합니다. 집에서 지짐이도 하고, 가끔 과자도 굽습니다. 생협에서 토막닭을 사서 집에서 몇 번 튀겨서 먹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먹을거리를 장만한다는 일은 내 배를 채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저잣거리 마실을 하며 하나둘 들여다보고 살피는 일이 바탕이 되고, 저잣거리 마실을 하는 동안 쌀이며 다른 먹을거리이며 어떻게 그곳까지 가고 나는 그곳에서 어떻게 장만하는가를 돌아보는 일이 됩니다. 돈 몇 푼 치르면 얼마든지 사다 먹을 수 있는 밥이 아닙니다. 돈이면 다 되는 밥차림이 아닙니다. 집에서 안 차리고 돈 주고 밖에서 사먹어도 그만인 삶은 아닙니다.

 먹는 즐거움만으로 꾸리는 삶은 아니되, 먹는 즐거움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내 삶은 부질없는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먹는 즐거움을 헤아리고 싶으니 밥하는 즐거움을 헤아리고 싶고, 밥하는 즐거움만큼 밥해 먹이는 즐거움을 헤아리고 싶으며, 내가 다루는 먹을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길러서 내 손까지 오는가를 헤아리고 싶습니다.


.. “난 말이죠, 옛날에 이거에 푹 빠져서 마구 먹어댔던 적이 있는데, 엄청나게 살이 쪄서 이러다간 남편이 바람 피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우리 그인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죠 … 미안해요. 사실은 괜찮아요. 좀더 먹는다고 해도. 제대로 각오가 돼 있다면.” ..  (127∼129쪽)
 





 책을 한 권 사서 읽을 때에도 늘 그렇거든요. 저하고 옆지기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책이나 ‘새책방에서 잘 팔리는’ 책에는 눈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읽을 만한’ 책이냐 아니냐를 무엇보다 따집니다. ‘우리가 읽기 힘들어도 우리 아이나 우리 도서관에 찾아올 사람한테 도움이 될’ 책이냐 아니냐를 따집니다. ‘우리 모자란 살림으로도 기쁘게 사 주어 글쓴이와 출판사한테 도움되도록 할’ 책이냐 아니냐를 따집니다.

 이런 책읽음새를 고스란히 밥하기와 밥먹기에 맞춥니다. 빨래하기와 치우기에 맞춥니다. 사람을 만나거나 사귈 때에도 똑같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비손을 할 때이든, 뒷간에서 똥을 눌 때에든, 아기를 씻길 때에든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즐거웁고자 읽는 책이지, 우리 스스로 더 많은 지식을 얻고자 읽는 책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즐거웁고자 차려서 먹는 밥이지, 우리 스스로 배만 부르면 그만으로 먹는 밥이 아닙니다.


.. “얘, 이게 뭐니?” “받았어.” “누구한테?” “스가이네 엄마.” “스가이? 친구니?” ‘아니야. 오늘 잠깐 얘기만 한 거야. 왕따당하는 애랑 엮이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하잖아. 어쩔 수 없으니까. 잊자. 잊어버리자.’ “자.” “아.” “먹을 거지? 네가 받아온 어야. 마멀레이드가 아주 맛있네.” (덥석. 오물오물오물) ‘쓰다. 이게 이런 맛이었나? 이게 이렇게 쓴맛이었나? 이렇게.’ (이튿날 학교 가는 길에서) “안녕, 스가이.” ‘우와, 하야시 패가 봤나? 노려보고 있을까? 우와, 우와, 너무 무서워. 하지만 난 그 마멀레이드를 맛있게 먹고 싶은걸. 제대로 맛있게 먹고 싶어.’ ..  (144∼148쪽)


 제 어린 날, 어머니가 늘 우리를 불러 밥상 차리기를 거들도록 하고, 수저를 놓게 하며, 반찬그릇을 놓고 치우게 했으며, 설거지라든지 여러 가지를 돕도록 한 일이 더없이 고맙다고 느낍니다. 귀찮은 심부름이 아니라, 어머니한테 얻어먹는, 또는 받아먹는 밥그릇 하나가 고마운 만큼, 얼마든지 자잘한 심부름을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찌개를 끓이시는데 뭐 하나 빠져 있다 하면 얼른 저잣거리나 가게로 달려가 후다닥 사 왔고, 옆에서 물끄러미 구경하는 일도 즐거웠습니다. 어머니가 저한테 칼자루를 쥐어 준 적이 있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으나, 어설픕니다만 제 칼질은 어머니 곁에서 빤히 지켜보던 칼질이요, 밥차림이요, 반찬 손질이요, 설거지요, 뒷마무리입니다.


 (3) 만화책 《여자의 식탁》 다섯째 이야기


 만화책 《여자의 식탁》 다섯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앞선 네 가지 이야기 못지않게 다섯째 이야기도 뭉클뭉클합니다. 아니, 앞선 네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고 느끼면서 뭉클뭉클합니다. 어쩌면, 1권보다 2권이, 2권보다 3권이, 3권보다 4권이, 4권보다 5권이 한결 무르익은 그림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1권부터 5권까지 한결같이 애틋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조금 어리숙하면 어리숙한 대로 좋고, 아주 빈틈이 없으면 빈틈이 없는 대로 좋습니다.

 먹을거리 하나에 얽힌, 또는 먹을거리 하나마다 깃든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저 수수하게 풀어놓는 《여자의 식탁》은, 세상에 이름나지 않고 둘레에서 따로 알아주지 않는 수수한 사람들 삶자락마다 웃음과 눈물이 얼마나 넘치도록 많은가를 보여줍니다. 《서양골동 양과자점》 같은 작품은 이런 작품대로 아름답고 재미있고 뜻이 있을 텐데, 꼭 이처럼 뭔가 돋보이거나 남다르거나 톡톡 튀거나 멋스러워 보이지 않는 여느 먹을거리 하나라 하여도 ‘다 다르면서 모두 애틋하면서 언제나 가슴이 찡한 삶’임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 “응? 웬일이냐? 카나에. 이런 곳에.” “아, 아뇨, 그냥.” “조심해라. 얼마 전 이 부근에 치한이 나왔다더라.” “아, 그래요?” “훗, 하긴. 너라면 걱정할 거 없냐?” “아, 아니, 농담이야, 농담.” “핫, 아뇨,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웃지 마. 웃지 말아 줘. 제발. 웃지 마.’ “풉.” ..  (174∼176쪽)


 1권부터 4권까지 보는 동안, 그리고 이번에 나온 5권을 보는 내내, 나아가 앞으로 나올 6권부터 꾸준히 새로 그릴 작품까지, 그린이 시무라 시호코 님은 ‘아무것도 아닌 먹을거리 하나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우리 이야기’라는 말을 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여느 사람들 흔하고 너절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닐 수 없는 사랑스럽고 눈물겹고 웃음짓는 재미난 이야기’라는 말을 건넨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린이가 여자요, 나오는이도 여자이니, 좀더 찬찬히 이 만화를 말하자면 “여자가 차린 밥상”이 아닌 “여자가 하루하루 꾸려 나가는 삶”이라 할 만합니다.

 열네 살 처남한테 ‘나중에 여자친구를 사귈 때 도움이 될 수 있으니 한번 보라’고 건네 보기도 했는데, 온통 남자 목소리가 판을 치고 영화며 연속극이며 책이며 강의며 학문이며 정치며 오로지 남자 목소리가 넘실거리는 이 땅에서 우리 마음을 고즈넉하게 다스리면서 허물없이 어깨동무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를 돌아보고 싶다면, 만화책 《여자의 식탁》을 곰곰이 두어 번쯤 읽어 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섹스는 상대를 좋아하기 때문에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밤, 난 날 위해서 했다. 욕망을 느껴 주길 바랐다.’ ..  (182∼184쪽)


 책을 한 번 덮고, 또 한 번 본 다음 덮고, 다시금 보고 나서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우리 둘레에도 “또다른 ‘여자의 식탁’으로 빚어낼 이야기는 늘 넘치고 있지만, ‘여자의 식탁’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눈길이 없고 찾아보려는 손길이 없으며 귀기울여 들으려는 귓길이 없는 가운데, 머나먼 딴 나라로 넋과 얼을 팔아치우고 있다”고. 앞으로 어느 누가 되든, “내 어머니 밥상”과 “내 동생 밥상”과 “우리 아버지 밥상”과 “우리 할머니 밥상”과 “내 남편 밥상”과 “우리 오빠 밥상” 같은 이야기를 솔솔 풀어낼 수 있기를 꿈꾸고 싶다고. (4342.6.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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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 Pong Pong 3 - 완결
오자와 마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착한 사람, 착한 만화, 착한 웃음과 눈물
 [살가운 만화 47] 오자와 마리, 《PONG PONG》



- 책이름 : PONG PONG (1∼3)
- 글ㆍ그림 : 오자와 마리
- 옮긴이 : 서수진
- 펴낸곳 : 대원씨아이 (2008.9.15.∼2009.4.15.)
- 책값 : 한 권에 4200원씩



 (1) 착한 만화 즐기기


 만화책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밤이 새는 줄 모르며 이야기꽃을 피우곤 합니다. 서로 좋아하는 만화가 비슷하거나 겹치면 여러 날 지치지 않고 이야기나무를 심기도 합니다. 그런데 둘레에 만화 좋아하는 분들이 많기는 하여도 ‘순정만화’를 좋아하는 분은 생각 밖으로 그리 안 많고, 순정만화를 좋아한다고 하여도 제가 즐기는 순정만화와 그분들이 좋아하는 순정만화가 어느 만큼 벌어지기도 합니다.

 나라안 만화로는 김진, 원수연, 박연, 황미나, 김혜린, 강경옥 들을 즐겨 보았습니다. 나라밖이라기보다 일본 만화로는 오사무 야마모토, 준코 카루베, 니노미야 토모코, 미츠하시 치카코, 오자와 마리 들을 즐겨 보고요. 이 가운데 미츠하시 치카코 님 작품은 나라안에 제대로 옮겨지지 않아 거의 헌책방에서 일본판으로 만나 책장을 넘기는데, 일본글을 읽을 줄 몰라도 그림결로도 따뜻함과 수수함을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글은 그 나라 글을 따로 익히거나 번역책을 읽어야 하지만, 사진과 그림과 만화는 그 나라 글을 모르고 번역이 되어 있지 않아도 얼마든지 함께하면서 즐길 수 있다고 할까요.


.. ‘하늘은 맑고 햇볕은 따뜻하고, 완전 데이트하기 딱 좋네. 이런 날, 이런 냄새 나는 사내놈들 틈바구니에서 난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왜 하필 하고 많은 학교 중에 이런 남학교에 왔나 몰라. 이런 산속에선 땡땡이쳐 봐야 할 일이라곤 나물 캐기밖에 없을 텐데.’ ..  (1권 10쪽)


 다만, 순정만화를 그리며 나라안에서 손꼽히는 분들 작품이라고 해서 모두 즐기지는 않습니다. 저한테는 저대로 좋아하는 만화가 있기 때문인데, 어떻게 보면 딱히 ‘순정’만화를 즐긴다기보다, ‘착한’ 만화를 즐겼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란마 1/2》이나 《도레미하우스》 같은 만화를 보면서도 이야기가 퍽 착하다고 느끼면서 좋아했는데(어찌 이 만화들이 ‘착하다’고 할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만화란 누구나 저 보고픈 대로 보고 느끼고픈 대로 느끼기 나름이라는 말씀을 올립니다), 저로서는 착하지 않은 만화에는 그리 눈길이 끌리지 않습니다.

 《로버트 크럼의 아메리카》 같은 작품은 퍽 눈여겨볼 만하다고 느끼면서 즐겨 보기는 했지만, 좀 뾰족뾰족하다고 해야 할까, 어지럽다고 해야 할까,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얼마나 뒤틀렸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니 그 느낌 그대로 만화를 그릴밖에 없었을 텐데, 한 번 덮고 난 뒤로는 다시 들추지 않습니다. 《따끈따끈 베이커리》는 얼핏 느끼기에는 착할 듯 보였지만, 정작 권수를 더해 가면서 짓궂고 억지스러운 대목이 많아 그리 내키지 않았습니다. 이와 견준다면 《딸기 100%》가 한결 나았다고 보는데, 야자와 아이 만화 가운데 《NANA》가 퍽 많이 사랑받고 있지만, 저한테는 《NANA》나 《파라다이스 키스》보다 《내 남자친구 이야기》와 《천사가 아니야》가 훨씬 사랑스럽고 즐거웠습니다. 






.. “미안해. 오오시마. 내가 가서 설명할게. 단장은 내가 아니라 너라고! 지금 바로.” “아냐, 됐어.” “그치만, 그동안 팀을 꾸리고 열심히 애쓴 건 넌데.” “우리 모두지. 모두가 같이 노력한 거잖아.” ‘아아. 바로 이 미소야.’ ..  (1권 41쪽)


 생채기를 남기는 줄거리를 다루기 때문에 ‘착하지 않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길은 두 갈래만이 아니기 때문이요, 세상을 둘로 가른다 할 때에도 ‘까망과 하양’으로만 가를 수 있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흥미 님이 그린 《디스》나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우리 집》은 ‘그림감을 무엇으로 잡든 그림결을 어떻게 펼치느냐’에 따라서 따스함과 수수함은 사뭇 달라짐을 보여줍니다. 송채성 님이 그린 《취중진담》도 그렇습니다. 《쉘 위 댄스?》나 《미스터 레인보우》도 그렇고요. 가난, 아픔, 외로움, 성 정체성, 푸대접, …… 세상을 가르는 수많은 잣대를 만화로 다루든 사진으로 다루든 글로 다루든, 우리가 받아들여 삭여내기 나름입니다.

 그예 뾰족뾰족하게 마주할 수 있으나, 거울처럼 튕겨낼 수 있습니다. 그지없이 넉넉하게 품에 안을 수 있으며, 스스럼없이 껴안을 수 있습니다. 모르는 척 흘려보낼 수 있는 가운데, 깨닫지 못하며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맨발의 겐》처럼 아주 투박하면서도 거칠게 ‘전쟁과 평화’를 담아낼 수 있지만, 《머나먼 갑자원》이나 《도토리의 집》처럼 참으로 부드러우면서 살가이 ‘전쟁과 평화’란 무엇인가를 넌지시 느끼도록 할 수 있어요.


.. “후유코 누나는 했어요?” “어?” “노력요. 토고 선배한테 왜 좋아한다고 말 안 해요.” “그야, 예쁜 앨 좋아하니까. 그리고 약해져 있을 때를 이용하는 건 솔직히 안 내켜. 대학 준비로 바쁘기도 했고.” “그건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요. 억지로 고백할 수 없는 이유를 찾아서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처음부터 포기하고. 그런 건, 무지 꼴사나워요.” ..  (1권 71∼72쪽)


 《게임방 소녀와 어머니》 같은 작품을 보면서, 우리도 이렇게 우리 깜냥껏 재미난 틀을 마련한다면 몹시 애틋하면서 맑은 웃음을 티없는 눈물과 함께 선물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린이가 3권으로 너무 짧게 끝내 버린 대목이 아쉽지만, 한국 만화밭으로는 3권까지 그린 대목이야말로 놀랍다 할 수 있어요. 권수가 늘어날수록 재미가 떨어져 이제는 더 안 보지만, 《알바고양이 유키뽕》 같은 일본 만화는 참 놀라웠습니다. 나라안에도 《납골당 모녀》를 그린 강현준 님이 《cat》을 그렸는데, 집에서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이 꽤 많으면서도 이렇게 재미와 웃음이 톡톡 묻어나게끔 살뜰히 그리는 만화쟁이는 너무 없습니다. 바라보는 눈이 굳었다고 할까요, 느끼는 가슴이 닫혔다고 할까요.

 그렇다 하여 ‘착한’ 만화를 그리는 분들은 바라보는 눈이 말랑말랑하고, 느끼는 가슴이 열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착하게 그릴 줄만 알고 알맹이가 없는 만화도 많으니까요. 그린이 스스로 우리한테 할 말이 있는 가운데 착하게 엮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흐뭇하면서 즐거운 만화, 두 번 세 번 거듭 들여다보며 즐기는 만화가 된다고 봅니다.

 《빈곤자매 이야기》라든지 《빈민의 식탁》 같은 작품이 이런 얼거리에 걸맞는 ‘착한’ 만화입니다. 《여자의 식탁》도 돋보이는 착한 만화이며, 같은 이름으로 된 책이 많은데, 이와시게 타카시 님 《흐르는 강물처럼》도 눈여겨볼 작품입니다. 《내 마음속의 자전거》 또한 따뜻함과 넉넉함과 살가운 들을 듬뿍 담으며 우리한테 ‘야무진 알맹이에 책장 넘기는 재미’를 한껏 북돋우는 작품입니다. 자전거 만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내 마음속의 자전거》와 함께 《스피드 도둑》도 좋아하지만, 저는 《스피드 도둑》은 그리 내키지 않아요. 지나치게 ‘싸움을 붙이’고, ‘서로를 너무 미워한’다는 느낌이 짙으며, ‘더 세고 튼튼하고 커야’지 좋은 듯하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 ‘역시, 오타쿠틱해. 그래도 좋아. 그냥 좋아. 이유 없이 좋아.’ ..  (1권 83쪽)


 애장판으로 다시 나와도 널리 사랑받는 《아기와 나》 같은 작품 또한 제가 아주 좋아하는 ‘착한’ 만화입니다. 《최종병기그녀》를 그린 다카하시 신 님 작품 《좋은 사람》은 책이름부터 ‘착한’ 이야기를 담은 만화라고 보여주는데, 처음부터 ‘할 말’과 ‘보여줄 이야기’가 뻔히 드러났어도 기쁘게 읽었습니다.

 우라사와 나오키 님 《야와라》도 얼핏설핏 느끼기로는 ‘착한’ 쪽으로 흐를 듯했지만, 이 또한 《스피드 도둑》처럼 ‘더 크고 센’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플루토》를 볼 때에도 기쁨이나 반가움보다다는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을 느낍니다(틀림없이 《플루토》를 아주 좋아할 분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이 또한 저는 그리 좋아하지 않고, 잘 그리지도 못했다고 느낍니다). ‘아톰’에서 밑생각을 따오는 대목이야 그린이 자유입니다만, 테즈카 오사무 만화에서 ‘아톰’은 그냥 그런 ‘로봇’이 아니에요. 테즈카 오사무 만화에서 ‘아톰’을 비롯한 수많은 주인공에 어떤 마음과 넋이 담겼는가를 읽어내어야만, 또 느껴야만, 또 내 삶으로 받아들여야만 비로소 ‘아톰을 따왔다’고 스스럼없이 밝힐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붓다》며 《불새》며 《뱀파이어》며 《노만》이며 《미크로이드 S》며 《아야코》며 《넘버 7》이며 《블랙잭》이며, 테즈카 오사무 님 만화에 남달리 스민 사랑과 믿음을 읽어내지 않고서 섣불리 ‘아톰’을 불러오는 일은, 우라사와 나오키 님은 당신 이름만으로도 사랑을 두루 받고 있지만, 스스로 어줍잖은 이름값을 좀더 높이려는 얕은 손길이라고 느낄 뿐입니다.


.. “상대팀 치어리더는 우리와 달리 전부 여학생들로만 구성되어 있대. 우리 팀이 이기지 못하는 건 아마 그것뿐일 거야! 하지만 여장을 하면 틀림없이 그것도 문제없어! 적어도 관객을 웃기는 건 우릴 테니까!” ..  (1권 116쪽)


 《아기공룡 둘리》뿐 아니라 《아리아리 동동》이라든지 《일곱 개의 숟가락》이라든지 《소금자 블루스》라든지 《볼라볼라》라든지 《꼬마 인디언 레미요》라든지 《쩔그렁쩔그렁 요요》라든지 《미스터 점보》라든지 《오달자의 봄》이라든지 《자투리반의 덧니들》이라든지 《홍실이》라든지 《1남3녀 막순이》라든지 《날자 고도리》 같은 작품에 한결같이 흐르는 구수한 사랑과 뜨거운 눈물이란, 내 마음속에 깃든 하느님을 느끼고 네 가슴속에 살아숨쉬는 하느님을 만나는 반가움입니다. 이러한 반가움이 없이 그리는 만화라면 겉보기로는 착해 보이는 만화이지만, 속살은 하나도 착하지 않습니다.

 흔히들 백성민 님 만화를 날카롭고 무섭다고도 하던데, 《장산곶매》와 《삐리》와 《장길산》과 《백범일지》 들에 흐르는 붓질은 더없이 반갑고 기쁜 봄비와 같습니다. 《노을》이나 《부자의 그림일기》를 비롯한 ‘한국현대문학 단편선’ 같은 오세영 님 만화는 얼마나 따뜻하며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착한’ 만화였던가요. 우리 삶터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잡아채는 손길만이 아니라, 우리 삶터 구석구석을 골고루 따스하게 보듬는 손길이기 때문에 이 같은 만화를 그릴 수 있습니다. 지난날 이희재 님이 《간판스타》와 《제비전》과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그리던 손길도 이렇게 따뜻했고, 이상무 님이 그린 《포장마차》도 이와 같이 부드러웠습니다.


.. “남자를 좋아해?” “아니. 그건 아냐. 그래서 밤새 고민했는데, 아마 너니까 좋아하는 걸 거야. 넌?” ..  (1권 192쪽)


 이런저런 까닭 때문에, 저로서는 요즈음 한국 만화를 그리 즐기지 못합니다. 그나마 《내 어머니 이야기》 같은 작품이 나오고, 《옥상에서 보는 풍경》 같은 작품도 나오며, 《꽃》과 《노근리 이야기》 같은 작품도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말 한 마디 넣지 않아도 가없는 사랑과 기쁨을 ‘착하게’ 그려낸 에리히 오저 님 《아버지와 아들》이 다시 태어날 수는 없는지, 아니 한국땅에 걸맞게 그려낼 누군가가 없을지 궁금합니다. 《아즈망가 대왕》이나 《요츠바랑!》처럼 꾸밈없이 우리 삶자락을 담아낼 만화를 아끼고 붙잡을 붓질은 언제쯤 이 나라에서 다시 꽃필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길창덕 님처럼 단출한 붓질로, 윤승운 님처럼 시냇물 같은 붓질로, 또 김동화 님처럼 꽃잎사귀 같은 붓질로 착한 마음을 나누고파 하는 만화는 언제쯤 우리 삶터에서 제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2) ‘오자와 마리’가 바라보는 삶터


 착한 만화를 떠올리며 더듬다 보니 새삼 송채성 님 만화가 생각나고 그립습니다. 둘레에 아는 분들한테 가끔 송채성 님 작품을 선물해 주곤 하는데, 모두들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고 “순정만화잖아?” 하면서 “난 순정만화 안 보는 줄 알면서 왜 이런 책을 읽으라 해?” 하면서 싫어했지만, 막상 만화를 다 보고 나서는 “이런 순정만화도 있구나.” 하면서 “다른 작품 더 없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송채성 님은 이승사람이 아닙니다. 지난 2004년 3월에 저승사람이 되었습니다. 벌써 다섯 해가 지났으니 세월 참 빠르구나 싶은데, 착한 만화를 떠올릴 때마다, 또 《퐁퐁(PONG PONG)》 같은 만화를 만날 때면, 어김없이 송채성 님 만화가 그립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송채성 님이 더 오래오래 살면서 당신 만화밭을 일구었다면, 당신 깜냥껏 《취중진담》을 그리고 《쉘 위 댄스?》처럼 두고두고 명작이라 할 만한 작품을 또 하나 낳을 수 있었을 텐데 싶습니다. 일본에서 오자와 마리 님이 《퐁퐁》을 그린다면, 한국에서 송채성 님이 ‘뭐뭐’를 그린다고 나란히 놓을 수 있었을 테고요.


.. “아, 새가 오네요?” “예. 전에 여기서 가게를 했던 사람이 매일 쌀이랑 빵부스러기를 창가에 올려놨던 모양이에요. 참새랑 개똥지빠귀가 지금도 잊지 않고 찾아오죠. 그래서 저도 예전 주인처럼 빵부스러기를 주고 있어요.” “멋지네요. 잘 먹었습니다. 커피, 정말 맛있었어요.” “또 오세요.” ‘엄마의 뜻밖의 일면을 알게 됐다. 재즈바에 있는 자그만 창문.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틈바구니에 있는 창문이라 낮에도 어두침침하고 별 의미 없는 창이라고 생각했는데, 의미는 있었구나. 엄마도 남몰래 작은 정원같이 안정되고 조용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을 거야.’ ..  (2권 28∼30쪽)


 만화 《퐁퐁》은 ‘남자로 태어났으나 성 정체성은 여자’인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이런 이야기는 꽤 많다 할 수 있는데, 《방랑소년》도 같은 그림감을 다룹니다. 아쉽다면, 《방랑소년》은 권수를 거듭할수록 어영부영 실마리가 흐려지면서 재미가 떨어집니다.

 아직 우리 세상이 사람을 사람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이 좀더 오래도록 길게 펼쳐지지 못하나 싶곤 합니다. 막힌 세상에서는 막히지 않은 꿈을 꾸기도 하지만, 막힌 틀에 매인 채 뾰족뾰족이로 에돌고 마는 사람이 꽤 많거든요. 고달픈 삶이기에 으레 고달픔을 얼굴 가득 담아낸 채 살잖아요. 고달픈 삶이기에 더더욱 홀가분함과 기쁨을 온몸 가득 펼치면서 살지 못하고 말입니다.


.. “오늘 시간 더 있어요?” “있어. 뭐 하고 싶은데?” “저기.” “말로 해. 눈앞에 있으니까.” “그, 그럼, 거, 걸으면서 얘기하기.” “나야 좋지만, 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냐?” “예?” “얼굴이 빨개.” “아, 아픈 건 아니에요. 그건 아마, 아마.” “라면을 먹었기 때문에?” “예? 아아, 아뇨, 그게 아니라. 그건 제가 선배를 좋아히기 때문이에요.” ..  (2권 77∼80쪽)


 모두 세 권으로 이루어진 《퐁퐁》을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낱권으로 하나하나 넘어갈 때마다 주인공 ‘라이조’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듯, 한 계단 두 계단 마음이 자라납니다. 조금씩 내 몸과 마음을 또렷하게 깨닫고, 차근차근 앞으로 살아갈 나날을 다짐합니다. 겉과 속이 다른 채 살아갈는지, 내 꿈을 접은 채 세상이 이끄는 대로 살아갈는지, 겉과 속을 하나로 모둔 채 살아갈는지, 세상 이끌림이 아니라 내 꿈대로 살아갈는지 찾아나섭니다.

 그러면서 부딪힙니다. 맨땅에 머리를 박듯, 달걀이 아닌 맨주먹으로 바위를 치듯 박고 넘어지고 까지고 긁힙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딪히면서, 다치면서, 아파하면서 ‘어린이’에서 ‘푸름이’를 거쳐 ‘어른’ 한 사람이 돼요.

 나를 속이지 않으며, 남을 속이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면서 남을 사랑하는 길을 찾습니다. 나를 믿으면서 남을 믿는 마음이 무엇인가 느끼고, 내 몸과 마음이 하나되도록 하면서 내 삶터에서 나 스스로 아름답고 내 이웃과 함께 모두가 아름다울 자리가 어떠한가를 배웁니다.


.. “난 이렇게 미키랑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걷는 게 좋았어.” “맞다. 그러고 보니 내가 손을 잡으면 항상 꼬옥 마주 잡아 왔었지?” “응, 이런 식으로.” “그래 맞아. 나도 그게 좋았어.” “그건 내가, 어릴 때부터, 항상 길의 가장자리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기분이었기 때문일 거야. 미키랑 있으면 길 가운데를 당당하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그래서 이 손을 절대 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근데 그건 역시 날 속이는 짓이었어. 마음 한구석에선,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미안해.” “하지만, 너한테 마음이 설렜던 거나, 네 덕분에 실연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거, 그리고 널 좋아했던 건, 결코, 거짓이 아니었어.” “응, 알아.” ..  (2권 155∼157쪽)


 《퐁퐁》 3권 마지막을 보면, 주인공 ‘라이조’보다 훨씬 늦게 제 삶과 모습을 느끼고 찾은 ‘토고’ 선배가 속으로 한 마디를 읊습니다. “다시 한 번 너를 만나 다행이었다.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라고.

 착한 만화 《퐁퐁》은 바로, 그린이 오자와 마리 님이 읽는이 우리 모두한테 마음을 건네고파 내놓은 작품입니다. 그린이가 건네고픈 마음이 사랑이었을는지는, 또는 믿음이었을는지는, 또는 다른 마음이었을는지는, 읽는이인 우리 스스로 헤아리고 곱씹고 받아들이기 나름입니다. 






 (3) 새로운 작품을 기다리며


 저는 만화책을 볼 때면, 되도록 잠자리에서 홀로 조용히 보고자 합니다. 또는, 하루일을 마치고 보리술 한 병을 구멍가게에서 사다 마실 때 혼자서 고즈넉하게 보고자 합니다.

 웃음이 터져나올 때 누구 눈치를 안 보고 거리낌없이 웃고 싶거든요. 울음이 솟아날 때 누구 눈치 아랑곳 않고 스스럼없이 울고 싶거든요.


.. “그래서, 답은 나왔어요?” “아니.” “선배는, 뭐든 흑백으로 나눠야 속이 시원한 사람이군요?” “맞아. 옛날부터 그랬어. 답이 안 나오면 잠을 못 자는 편이었지.” “그럼 역시, 제 존재 자체가 선배한테는 이해되지 않을 거예요. 왜냐면, 전 평생 회색이었으니까.” ..  (3권 18∼19쪽)


 실컷 웃게 하고 마음껏 울게 하는 만화는 책상맡에 한 해쯤 올려놓고는 하는데, 이렇게 올려놓으며 날마다 겉그림을 바라보고 때로는 선 채로 한 번 다시 넘기고 나서는 후유 하고 한숨을 쉽니다. 이 만화를 그린 분이 앞으로 어떤 새 작품을 내놓을지 기다려지면서 한숨이 나오고, 앞으로 이분을 비롯해 다른 분들이 다른 새 작품을 내놓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한숨이 나옵니다.


.. “탈의실에 유니폼 준비해 놨을 거야.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올까? 남성용이든 여성용이든 입고 싶은 걸로 입어.” “예. 예?” “고등학교 때 치어리더복 입었었지? 신문에서 봤어.” “아, 그건 그냥 연출로.” “이쪽이야. 이게 여자 거고, 그 옆이 남자 거.” “농담 아니었어요?” “참고로 이건(내가 입은 옷은) 남자 거. 여자 걸 입을 때도 있지만, 거의 이걸 입어. 난 트랜스젠더거든.” “…….” “점장님은 개인을 존중해 주시지.” “여긴, 회색이라도 괜찮군요.” “회색?” “세상은 흑과 백만 인정해 주는 줄 알았어요.” “기왕 중간색을 지칭할 거면 흑과 백 사이보단 홍과 백 사이가 예쁘지 않겠어?” “홍과 백?” “장밋빛깔. 바로 그 입술색 말야.” ..  (3권 28∼30쪽)


 보고 또 보고 다시 보면서 지난날 느낀 벅참과 설렘을 새삼스레 받아들이는 일은 즐겁습니다. 아마 언제까지나 이 마음이 고이 이어갈 수 있다면 참말 기쁠 테지요.

 그런데 오늘 하루 제 마음에 스며든 좋은 ‘착한’ 만화 하나는 갑작스레 뚝 하고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 하나가 나오기까지 그린이는 그동안 숱하게 습작을 했습니다. 다른 작품도 꾸준히 그리는 가운데 비로소 ‘즐겁고 반갑고 기쁘고 좋은 착한’ 만화 하나가 제 품에 안깁니다.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를 그린 카루베 준코 님이 《신ㆍ엄마손이 속삭일 때》를 그린 다음, 《푸른 하늘 클리닉》을 그려내듯, 그리고 또다른 작품을 빚어내려고 애쓰고 있듯,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과 《니코니코 일기》를 그린 오자와 마리 님은 《퐁퐁》을 마무리지으며 《민들레 솜털》을 그리고 있는데, 이 작품을 다시금 끝내면 또다른 작품으로 우리한테 살그머니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제자리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고인 물이 아니니까요. 어느 누구든 흐르는 강물 같은 사람이요, 흐르는 사랑을 널리 나누어 주면서 새로운 사랑을 새삼스레 가슴에 담으면서 기다리니까요.

 착하며 아름다운 만화 《퐁퐁》을 더 오래오래 책상맡에 놓으며 거듭거듭 즐길 수 있습니다만, 또다른 착하며 아름다운 만화가 저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책꽂이에 보기 좋게 꽂아 놓은 다음, 저부터 스스로 새로운 만화길을 찾도록 기지개를 켜야겠습니다. (4342.5.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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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2 - 다시 페르세폴리스로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최주현 옮김 / 새만화책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바보 어른’이 아닌 ‘숨쉬는 참사람’으로 거듭나다
 [살가운 만화 45] 마르잔 사트라피, 《페르세폴리스 2》


- 책이름 : 페르세폴리스 2
- 그린이 : 마르잔 사트라피
- 옮긴이 : 최주현
- 펴낸곳 : 새만화책 (2008.4.15.)
- 책값 : 12000원



 (1) 한국을 못 보는 눈은 이란을 못 본다


 만화책 《페르세폴리스》 1권은 2005년 10월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2권은 세 해가 거의 지난 2008년 4월에 나옵니다. 2005년 10월에 1권이 나온 뒤로 곧 2권이 나온다고 했으나 그 ‘곧’은 한 달 두 달 늦어지고 미루어지고 하다가 한 해 두 해가 되었고, 비로소 2008년 4월에 마무리가 됩니다.

 이토록 늦어진다면 출판사는 살림이 괜찮은가 걱정이 되고, 자칫 2권이 빛을 보지 못하는 가운데 모두 사라지지 않느냐 근심이 되었습니다. 한두 권짜리가 아닌 열 권 스무 권 넘는 긴 만화가 때때로 ‘번역을 그만’하면서 더 안 나오는 일이 더러 있기 때문입니다. 요사이 다시 나오기는 하지만, 《피아노의 숲》 같은 만화도 꽤 오랫동안 뒷권이 안 나와서 ‘설마 그 어중간한 가운데 이야기가 끝나 버렸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 “너희들 그거 알아? 이란에는 크리스마스가 없어…….” “스키 타러 간다고? 좋겠다!” “별로, 그저 그렇지 뭐.” “이란의 새해는 3월 21일이고, 그 ……” “나는 앙시에 갈 건데, 알프스랑 별로 안 멀잖아. 우리 만나도 되겠다.” ..  (18쪽)


 만화책 《페르세폴리스》는 한국 만화밭에 퍽 낯설게 느껴질 만한 책입니다. 이야기도, 만화결도, 그린이 고향나라도 모두 낯설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배울 수 있는 ‘이란’이라는 나라는 고작 ‘석유가 많이 나는 중동에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들은 이란사람이 이란말을 쓰는지 무슨 말을 쓰는지 배우지 않습니다. 나라안에는 ‘이란말’을 가르치는 대학교가 꼭 한 곳 있습니다만, 이 이란말을 가르치는 대학교에서조차 ‘이란이라는 나라에 이란말이 따로 있음’을 모르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한 학년에 고작 서른 학생뿐이고, 이 가운데 몇몇은 얼마 다니지 않고 그만두니, 몇 천에 이르는 ‘그 학교 대학생’이라 해서 이란말을 가르치는 학과를 눈여겨보거나 곰곰이 들여다볼 일은 없어요. 또한, 이란말을 배웠다고 하여 이란 대사관에서 일할 수 있느냐 하면, 아니면 이란 문학을 우리 말로 옮기는 일을 할 수 있느냐 하면, ‘아니올시다’이곤 합니다.

 저는 네덜란드말이라는 바깥말을 한동안 배웠는데, 이 학과에서 배울 때까지, ‘안네 프랑크’가 네덜란드사람인 줄 몰랐고, 일기를 네덜란드말로 쓴 줄도 몰랐습니다. 이제는 절판되어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네덜란드말에서 우리 말로 옮긴 딱 하나 있는 번역책’은, 이 학과 교수인 김영중 님이 옮긴 판입니다. 다른 번역책은 ‘독일 번역판을 한국말로 옮기’거나, ‘일본 번역판을 한국말로 옮긴’ 책일 뿐입니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제법 많이 읽었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작품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이분은 스웨덴사람이라 모든 문학을 스웨덴말로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분 작품을 우리 말로 옮긴 분들은 ‘독일 번역책을 우리 말로 옮기’거나 ‘일본 번역판을 우리 말로 옮기기만’ 했지, 제대로 된 ‘스웨덴판 번역책’은 아주 드뭅니다(저는 딱 한 권 가지고 있습니다. 1982년에 종로서적에서 옮긴 《말괄량이 삐삐》는 판권에 스웨덴책에서 곧바로 옮겼다고 밝혀져 있습니다).


.. 루시아의 가족은 이란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매일, 나를 알고 싶어하는 삼촌이나 고모네에 초대되었다. 나의 독일어 실력은 아주 기본적이었고, 그들의 독일어는 독특했다. 불어권의 스위스에서 4년을 보낸 한 사촌이 내 통역자 역할을 자청하며 즐거워했다. 우린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학교 친구들이 좋아하는 전쟁이나 죽음과 같은 주제에 대해선 한 번도 다루지 않았다 ..  (22쪽)


 우리는 이란이라는 나라를 거의 모릅니다. 그리고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알아서 무엇 하느냐고 여깁니다.

 우리는 네덜란드라는 나라 또한 거의 모릅니다. 굳이 알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네덜란드 지식은 거의 겉핥기일 뿐, 제대로 된 네덜란드 지식을 아는 사람이란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국가대표 축구팀을 이끈 감독 몇 사람이 네덜란드사람이었으나 이이들 이름을 ‘네덜란드말’로 적거나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모두 ‘영어 투로 읽고 말했’습니다. 이분들 스스로 네덜란드말이 아닌 영어만 쓰기도 했지만, 우리 나라에 버젓이 네덜란드말을 가르치는 대학교가 있음에도, 그 학교에서는 통번역 학생을 길러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있다 하여도 사회나 나라에서 안 씁니다.

 우리 나라에서 쓰이는 바깥말은 오로지 영어입니다. 다음은 일본말입니다. 그리고 중국말과 프랑스말쯤입니다. 독일말과 러시아말이 더러 쓰여도 그렇게까지 잘 쓰이지 않습니다. 중남미 문학을 읽자면 스페인말을 북돋워야 하고, 서양 옛 문화와 역사를 헤아리자면 그리스말이나 이탈리아말도 키워야 할 테지만, 이와 같은 바깥말을 골고루 가르치는 배움틀은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뿐더러, 애써 배워도 써먹을 자리가 없습니다.

 그래, 우리가 아무리 이란 삶과 사회와 문화와 역사를 샅샅이 살펴서 올바르게 안다 한들, 한국땅에서는 그예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지식부스러기가 될 뿐입니다.


..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 했고, 나의 과거를 없애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무의식이 그걸 다시 불러왔다. 급기야 국적을 속이기까지 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어느 파티에서, “넌 어디서 왔어, 마리-잔느?” “난 프랑스인이야.” “아, 그래? 프랑스인치곤 재미있는 억양이구나.” 당시엔 이란은 ‘악의 전형’이었고, 이란인이라는 것은 견디기 힘든 무거운 짐이었다. 거짓말하는 게 그 짐을 지는 것보다 더 쉬웠다 … 그리고 저녁에 집에 와서 나는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렸다. ‘언제나 네 존엄성을 잃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라!’ ..  (45쪽)


 생각해 보면, 이란 삶과 사회와 문화와 역사를 바로 꿰뚫는 눈길만 쓰레기 대접이지 않습니다. 한국 삶과 사회와 문화와 역사를 올바로 헤아리는 눈길 또한 제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나 나라나 정부에서는, ‘올바른 눈길’과 ‘곧은 매무새’와 ‘착한 마음’을 바라지 않거든요.

 돈 잘 버는 매무새를 바라고, 돈을 바라보는 눈길을 바라며, 돈을 키우는 마음을 바랍니다.

 우리 스스로도 더 많은 돈을 바라는 데다가, 더 많은 돈을 준다 하면 얼씨구나 하고 달겨듭니다. 집도 돈이요 학교도 돈이요 옷과 밥도 돈이며, 사람 또한 돈으로 재고 따집니다.

 돈이 되는 일이면 붙잡고, 돈이 안 되는 일이면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들여다보는 기사거리만 언론매체에서 다루고, 사람들이 적게 들여다보는 기사거리는 언론매체에 실리는 법이 없고, 실려도 코딱지 만한 자리를 겨우 얻습니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 한들, 아무리 아름다운 이야기라 한들, 한국 사회뿐 아니라 한국에 사는 우리 스스로 아끼지 않습니다.


.. “그래도 이곳은 테헤란 북쪽이지. 남 테헤란의 가난한 동네로 가 보면 거의 하나같이 무슨무슨 순교의 거리로 불린단다. 사람들은 왜 8년 동안 전쟁을 했는지 잊어버렸어. 왜 그들의 아이들이 죽었는지. 이번 전쟁은 전적으로 이란과 이라크 양쪽 군대를 파괴하고 재정비하려는 것뿐이었지. 이란 군은 1980년대에 중동에서 가장 강성한 군대였고, 이라크 군은 이스라엘에게 현실적인 위협이 될 수 있었으니까. 서구는 이 두 편에게 무기를 팔았고, 우리는 이 우스운 게임에 말려들어갈 만큼 멍청했던 거고. 아무런 명분 없는 8년 간의 전쟁이라니. 그래서 정부는 길 이름을 순교 어쩌구 하는 것으로 바꾸어,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하려고 하는 거야. 아마도 그들은 이 부조리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요, 하지만 다른 것도 있었어요. 오후에 텔레비전에서 자기 자식들의 죽음으로 기쁨이 충만했다는 어머니들을 봤거든요. 그게 신앙심에서 나온 건지 거짓인지, 난 모르겠어요.” “어느 정도는 둘 다일 수 있을 거야. 10년 동안 그 순교자들이 별 5개짜리 천국에 산다고 믿게 하려고 했잖아! 그동안 전쟁은 지옥 같았거든! 네가 알았다면 ……. 정전 직전 몇 달 동안은 가장 참혹했단다.” “이야기해 줘요, 아빠, 듣고 싶어요.” ..  (103쪽)


 우리 스스로 아름답게 살고자 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착하게 살고자 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슬기롭게 살고자 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어깨동무하며 살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같은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기운을 얻습니다. 비정규직뿐 아니라 정규직도 길거리로 내몰리는 가운데 다부지게 싸움을 맞아들인 아줌마 아저씨들은, 스스로 부딪히고 피가 터지고 머리가 깨지면서 세상을 제대로 보게 되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당신 스스로도 ‘이제부터는 바보가 되지 않’고자 다짐하고, 당신들이 낳아 기르는 ‘아이들 또한 바보가 되지 않으면서 살아가기’를 꿈꿉니다.

 아주 적은 숫자라 할지라도, 찬밥 대접이 되고 푸대접이 되고 똥대접이 되는 사람들이 밑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세상을 깨닫습니다. 당신들 스스로 돈바라기 삶자락에 매여 톱니바퀴로 굴러가기만 하던 얼거리를 박차고 나옵니다. 당신들을 돕는 손길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지만, 스스로를 스스로 돕습니다. 남이 도와주는 당신들 삶이 아니라, 스스로 돕는 당신들 삶입니다.


.. 쿠웨이트 이민자들은 알아보기 쉬웠다. 오랜 기간 동안 전쟁을 겪은 이후 경제적으로 피폐해진 이란인들과 달리, 그들은 최신형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그들을 접했던 것은 어느 여름날 거리에서였다. 이 기분 나쁜 일을 쿠웨이트를 잘 아는 삼촌에게 말하자, 이렇게 말해 주었다. “여느 아랍 국가들이 그렇듯, 쿠웨이트에서는 워낙 여성의 권리가 박탈되어 있어서, 밖에서 콜라를 마시며 걷는 여자는 그들에게 매춘부로 보일 수밖에 없단다.” ..  (170쪽)


 만화책 《페르세폴리스》에 나오는 주인공 또한, 스스로를 스스로 돕습니다. 1권에서는, 또 2권에서도 어느 만큼 이야기가 흐르는 동안, 주인공은 ‘얼토당토않은 곳에서 내빼려’고만 했습니다. 벗어나려고만 했고, 잊으려고만 했습니다.

 스스로를 잊고, 제 식구와 동무를 잊고, 제 고향과 나라를 잊으려 했습니다.

 어디론가 떠나면 길이 열리리라 믿었고, 이곳만 아니면 꿈을 펼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여자로 태어난 몸은 이란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생각은 생각이 아니라 사회며 세상이며 여자는 사람이 아닌 이란 터전이었기 때문에, 《페르세폴리스》 주인공이 괴로운 나날을 보낸 일은 아주 마땅했다고 느낍니다.


.. “할머니.” “아이구, 얘야! 무슨 일 있니?” “할머니, 너무 끔찍해요.” “그 머리에 쓴 우스꽝스런 천쪼가리는 좀 벗으면 안 돼? 나를 밀실 공포증에 시달리게 한다니깐!” “왜? 뭐가 그렇게 끔찍해?” “그거야? 네가 ‘끔찍하다’는 게? 어이구! 괜히 겁먹었네. 난 또 누가 죽은 줄 알았지.” “난 레자(지금 남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요. 아무래도 우리 이혼해야 될 것 같아요.” “내가 심장이 안 좋다는 걸 너도 알잖니! 그깟 이혼으로 그렇게 울어? 잘 들으렴! 나도 이혼했어. 55년 전에. 그 시대엔 아무도 결혼을 깨지 않았어. 하지만 난 언제나 짜증나는 남자랑 사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고 생각한단다!” “네,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 첫 결혼은 두 번째를 위한 연습장이란다. 다음 번엔 더 만족스러울 게다. 그렇게 우는 거 보니, 아마도 아직 그를 사랑하고 있는 모양이다! 꼭 지금 당장 레자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법은 없어. 시간을 갖고 잘 생각해 보고, 정말 그를 원하지 않으면 그때 떠나라! 이가 썩었으면 뽑아내야지!” ..  (183쪽)


 그래도 주인공한테는 슬기로운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슬기롭게 키운 할머니가 있습니다. 벼랑으로 굴러떨어지던 주인공은 아버지와 어머니, 또 할머니한테서 기운을 얻습니다. 아니, 벼랑으로 굴러떨어진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용을 쓰며 다시 기어오르는 기운을 스스로 내게 됩니다. 또는, 그 벼랑으로 다시 올라가기보다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가시밭길이라 하더라도 제 나름대로 새 길을 뚫어 보고자 다짐하게 됩니다.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당신 꿈을 붙안고 살면서 당신 아이를 길렀고, 당신 아이는 또 당신 아이대로 스스로 꿈을 붙안고 살면서 당신 아이를 낳아 이 아이한테도 스스로 제 꿈을 찾아서 펼치도록 기릅니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는 딸이 됩니다. 태어난 해와 곳은 모두 다르고, 겪고 치러야 할 고비는 저마다 달랐지만, 바라보는 곳은 다르지 않습니다.

 스스로 찾고 스스로 일으키고 스스로 가꾸는 삶으로 아름다운 곳을 바라보는 세 사람 눈길은 언제나 한 자리에 있습니다.


 (2) 숨쉬는 어른이 되어 가는 《페르세폴리스》


 만화책 《페르세폴리스》에는 이야기가 아주 많이 실려 있습니다. 만화라는 틀을 빌었으나, ‘이야기책’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빼곡한 글이 실려 있습니다. 《페르세폴리스》를 제대로 읽어내자면, 그림은 그림대로 넘겨보면서 글은 글대로 꼼꼼하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만을 보아서는 안 되고, 어느 한 가지에 매여서도 안 됩니다.

 숨을 쉴 수 없도록 막힌 곳에서 태어나 자라야 했던 그린이 숨결을, 칸 가득 채워진 깨알 같은 글씨를 또박또박 읽어 나가면서 한 쪽 두 쪽 더디게 넘기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자주 일어났다. 예를 들면, 하루는 치과에 들러야 했는데, 수업이 예상 밖으로 늦게 끝났다. 갑자기 확성기에서 어떤 목소리가 울렸다. “파란 옷 입은 여자 분, 뛰지 마세요! 파란 옷을 입은 여자 분! 뛰지 마십시오! 야! 거기 파란 옷! 뛰지 말란 말야!” ‘나?’ “아가씨, 왜 뛰는 겁니까?” “너무 늦었어요! 버스를 잡아야 한다구요.” “아, 그렇지만, 당신이 뛸 때 당신의 뒤쪽이 움직이잖아요. 어떻게 말해야 하나. 적나라하다는 거죠!” “그럼 당신들이 내 궁둥이를 쳐다보지 않으면 될 거 아냐!” 내가 너무나 소리를 크게 질렀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체포하지도 않았다 … 정권은 잘 알고 있었다. 집을 나서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 ‘내 바지가 충분히 긴 건가? 베일이 잘 씌워졌나? 화장한 게 너무 진한가? 나를 채찍으로 때리면 어쩌지?’ 들을 던지는 사람은, 더 이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나의 사상의 자유는 어디 있지? 나의 언론의 자유는? 내 삶은 살 만한 걸까? 정치범들은 어떻게 된 걸까?’ ..  (150∼151쪽)


 1969년에 태어나 어린 나날을 보내다가 전쟁 불길에서 몸을 빼내어 유럽나라에서 지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여러 해를 보내면서 뼛속 깊이 아픔과 생채기를 받지만, 이 아픔과 생채기를 스스로 다시금 우뚝 서려는 눈물로 삭이는 이야기가 담기는 만화 《페르세폴리스》입니다.

 주인공은 더는 내빼지 않고자 이란으로 돌아왔지만, 다시는 내빼지 않으려고 다시 이란을 떠납니다. 주인공한테는 자기가 어디에 발을 붙이고 있느냐보다도 자기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훨씬 큰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아버지만큼이라도 튼튼해지자면, 할머니만큼이라도 당찬 사람이 되자면, 아직은 너무 어리고 철없는 풋내기임을 깨닫고 ‘더 배우’려고 새 길을 나섭니다.


.. “20일 동안 난 그가 영웅이라고 생각했는데!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그 번지르르한 빈말들을 봐! 자기 부인에게 말 한 마디 하게 놔두질 않잖아! 아, 이란 남자들이라니!” “그런 말 마! 이건 이란 남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야. 남자들은 모두 다 그래. 2년 전에 스페인 외교관이랑 사귀었는데, 겉보기엔 나은 것 같았지만 속은 다 똑같더라.” “여기선 모든 법이 남자들 편이잖아! 만약 어떤 남자가 15명의 여자 앞에서 여자 10명을 죽인다 해도, 누구도 그에게 유죄 선고를 내릴 수 없어. 왜냐하면, 살인 사건에 대해서 우리 여자들은 증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지! 게다가 이혼할 권리도 남자들에게 있어. 설령, 남자가 이혼을 허락한다고 하더라도 자식에 대한 권리는 남자들에게 있지! 어떤 종교인이 이 법을 정당화시키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남자는 씨앗이고, 여자는 그 씨앗이 자라는 땅이래. 그러니까, 아이는 당연히 아빠에게 속한다는 거야! 믿을 수 있니? 난 더 이상 못 참겠어! 이 나라를 뜰 거야!” ..  (187쪽)


 그러나 주인공은 아버지만큼이나 할머니만큼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주인공 스스로도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 또래가 이란에서 사람다움을 간직하면서 살아가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깨닫고 익히면서 살아나갑니다. 할머니는 할머니 또래가 이란에서 사람됨을 잃지 않으면서 뿌리박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부딪히면서 배우고 살아왔습니다. 주인공은 주인공대로 고향나라 이란이 볼썽사나운 꼬락서니로 나뒹굴기를 바라지 않는 한편, 이란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디딘 지구라는 땅떵어리에서 저마다 볼썽사나운 꼬락서니가 아닌, 아름다운 몸짓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란 남자만 얼간이가 아니라 스페인 남자도 얼간이요 프랑스 남자도 얼간이입니다. 그러면 한국 남자는 어떻겠습니까. 일본 남자는? 중국 남자는? 미국 남자는? 아니, 남자와 여자 울타리를 넘어 이 땅에 발딛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어떻게 제 삶을 꾸리고들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다움을 스스로 즐기며 이웃과 넉넉히 나누고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고운 목숨임을 깨닫듯 이웃 또한 고운 목숨임을 깨닫고 있을까요.

 입에 발린 평화만 외치는 우리는 아닌가요. 겉치레 자유와 민주를 들먹이는 우리는 아닙니까. 껍데기 평등과 생태를 내세우는 우리는 아니온지요.


.. “너희들 그거 느꼈는지 모르겠는데, 걔는 자기 나라나 부모 얘긴 절대로 안 해.” “당연히 그렇겠지! 전쟁을 겪었네 하는 거 다 거짓말이야. 그게 다 관심을 끌려고 그러는 거라구.” “어쨌든 걔 부모도 걔한테 관심이 없는 게 분명해. 아니면 왜 애를 혼자 외국에 보냈겠어?” “너희들, 입닥쳐! 아니면 내가 닥치게 해 줄까! 나는 이란인이고 그게 자랑스럽다구!” “쟤, 완전 돈 거 아냐?” ..  (46∼47쪽)


 다시 ‘페르세폴리스’로 돌아온 《페르세폴리스》 주인공은 고향나라 이란을 사랑합니다. 고향나라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고향나라가 어처구니없이 굴러떨어지거나 비뚤어지거나 얼빠진 모습으로 치닫는 일을 슬퍼합니다. 고향나라 사람들이 제 넋과 얼을 잃고 스스로 바보가 되어 가는 모습을 가슴 아파합니다.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 ‘이란사람’인 스스로가 더 단단해지고 따뜻해져야겠다고 느낍니다.

 우리 사는 이 땅에서도, 우리가 우리 고향나라를 더욱 사랑한다면, 아니 참다이 사랑한다면 오늘날과 같이는 살아가거나 정치꾼을 뽑거나 입시지옥을 붙잡고 있거나 돈벌이에만 눈이 벌건 채로 억눌려 있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고향마을 사람을 사랑한다면, 아니 아름다이 사랑하는 마음결이라면, 다른 이 얘기를 하기 앞서 우리 스스로 제 삶을 고치고 키우고 북돋우며 날마다 새로워지고 애쓰리라 봅니다. 어린이였던 ‘마르잔 사트라피’는 《페르세폴리스》 2권을 거치며, 드디어 어른이 되었습니다. (4342.4.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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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09-04-10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런 만화책이 있었는지 오늘에야 알았는데
참... 멋진 만화책이네요... ^^

따뜻한 4월인데 '잔인한 4월'이란 말에 공감하게 되는 날이라서
님 블로그 찬찬히 보고 있습니다

다시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책은 정말 훌륭한 친구네요.

잘보고 갑니다 ^^

숲노래 2009-04-14 14:50   좋아요 0 | URL
만화책 전문가게를 가지 않고는, 좋은 만화를 놓치게 된답니다~~
ㅠ.ㅜ
 
어시장 삼대째 21 - 노르웨이의 어프로치
하시모토 미츠오 지음 / 대명종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따끔하면서 아름다운 만화 하나
 [살가운 만화 44] 미츠오 하시모토, 《어시장 삼대째 (21)》



- 책이름 : 어시장 삼대째 (21)
- 그림 : 미츠오 하시모토
- 글 : 마사하루 나베시마, 카즈토 쿠와
- 옮긴이 : 편집부
- 펴낸곳 : 대명종 (2008.10.30.)
- 책값 : 3800원



 (1) 그림과 말 하나마다 따끔한 만화


 띄엄띄엄 끊일 듯 이어지면서 나오는 만화책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덧 25권까지 옮겨진 만화로, 이 만화를 처음 알게 되어 1권부터 읽어 오는 여러 해 동안 ‘틀림없이 만화는 훌륭하지만, 널리 사랑받을 수 있을까? 글쎄, 아무래도 더 번역을 안 하고 사라질 듯한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만화책을 스물세 권째 장만한 만화가게에서도 이 만화가 ‘새로 나올 때’ 딱히 돋보이는 자리에 올려놓고 알리지 않았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서 어느 한 번도.

 그러나 이 만화는 여러 해 동안 숨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돋보이는 자리에 올려놓지 않아도 꾸준히 사랑받을 만한 만화로 여겼는지 모르고, 그렇게 구석진 자리에 꽂혀 있어도 소리 소문 없이 사랑하는 손길이 가 닿았는지 모릅니다.


.. “이건 트롤이라는 녀석이지. 북유럽 민화에 나오는 요정이라고 할 수 있네. 숲과 산속에 살면서 사람을 골리기도 하고 돕기도 하지. 어린아이들을 좋아하고, 자연과 요정에 경의를 표하는 인간들에게 행운을 준다고 하더군.” “요정…이요? 그런데 별로 귀엽진 않네요. 좀 음침한 느낌.¨ …후후, 그렇지만 이 트롤은 노르웨이사람들에겐 무척 사랑받는 특별한 존재라네. 그걸 알고 나니 나도 귀엽게 느껴지더군.” “그래요?” “우리가 잊고 있던 무언가를, 이 트롤은 노르웨이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상징이라네.” ..  (10쪽)


 아기를 낳아 기르느라 만화책을 제대로 돌아볼 겨를이 없던 지난 반 해 동안, 이 만화, 끊일 듯 이어지는 만화 《어시장 삼대째》가 21, 22, 23권이 잇달아 나와 있었습니다.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렀구나 싶고, 그렇게 긴 세월을 까맣게 잊고 살았구나 싶으며,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그처럼 사랑하고 아끼는 만화가 꾸준히 나오고 있었는데 몰라봤다 싶어 미안합니다.

 가방이 다른 책으로 무겁고 살림돈은 바닥을 헤매고 있으나, 기꺼이 세 권을 집어듭니다. 서울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길에 꺼내어 읽을까 하다가 그만둡니다. 다른 만화와 달리 《어시장 삼대째》 같은 만화를 전철길에서 읽다 보면 그만 눈물이 주르르 흘러서 남우세스럽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두 번 겪고 나서는 《어시장 삼대째》는 반드시 집에서, 그리고 잠자기 앞서와 새벽에 일어나서만 펼칩니다.


.. “그럼 여기선 그 자연산 연어를 먹지 않나요?” “자연산 연어를 먹어요?” “제가 이상한 말을 한 건가요?” “자연산 연어를 먹는 건 곰뿐이에요! 당신 곰인가요?” “고, 곰? 이해가 안 가네. 양식 연어는 잘 먹으면서 자연산 연어는 왜 곰의 먹이로 생각하는 거지?” … “하하하, 여기서도 낚시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잡은 연어를 먹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연산 연어는 시장에 나오질 않습니다. 모두가 먹는 연어는 이런 팜(양식장)에서 키운 것들이죠.” “왜죠?” “야생의 곰이 야생의 연어를 먹는 건 자연계의 섭리죠. 인간이 거기에 개입하면 그 균형이 깨집니다.”..  (33, 50쪽)


 어느새 스물다섯 권째 나오는 《어시장 삼대째》인데, 책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어시장에서 삼대째 일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어시장 이야기가 나오며, 물고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시장에서 다루는 물고기는 한두 가지가 아니요, 일꾼도 한두 사람이 아니니, 적어도 100권쯤은 너끈히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루는 사람에 따라 200권도 낼 수 있으리라 봅니다.

 다만, 이렇게 권수를 늘릴 수는 있다고 하여도 깊이와 너비를 고루 갖추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땀을 쏟아야 할 뿐 아니라, 이 하나에 온몸과 온마음이 깃들어야 합니다. 땀방울이 바쳐지지 않는 만화는 우리한테 눈물방울을 뽑아낼 수 없습니다.


.. “여기선 모든 양식장에서 사용되는 먹이를 국가기관이 엄격히 조사해서 허가한 것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먹이는 열처리로 살균하고 항생물질 등의 약품도 전혀 들어가질 않습니다 …… 인간이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겁니다.” … “또 이 지역은 비가 많이 오는 지역입니다. 그 비와 녹은 눈이 암벽을 통해 풍부한 미네랄을 품은 다음 흘러내려 항상 신선한 바다를 유지시켜 줍니다.” ..  (43, 48쪽)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나(또는 할머니 어머니 나, 또는 할아버지 어머니 나), 이렇게 세 집안에 걸쳐서 이어오는 중간도매상을 하는 ‘삼대째’는 만화책이 25권에 이르도록 어시장에서 ‘새내기’나 ‘풋내기’ 소리를 듣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도 새내기요 풋내기라고 생각하고 있고, 이런 생각은 바로 ‘언제나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로 이어집니다. 처음 보는 물고기가 있으면 꾸지람을 듣더라도 만져 보고 여쭈어 보고 손수 사들여서 끓이거나 저며 보거나 삶아 보거나 구워 보거나 합니다. 먹어 보지 않고서는 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몸으로 배우는 물고기에서, 머리로 배우는 물고기로 나아갑니다. 물고기 맛을 알고 잘 다룬다고 하여 훌륭한 일꾼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욕심에 따라서 바다밭이 말라 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살필 줄 알아야 하는 한편, 가게 매출을 올리자면서 아무렇게나 사들이거나 다룰 수 없습니다. 나아가, 고기잡이하는 사람들 삶을 껴안고, 나라밖 고기잡이 참모습을 돌아보면서, 주인공이 사는 일본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가를 되짚습니다. 어시장 삼대째인 자기 스스로도 어떤 삶을 꾸려야 하는가를 돌아봅니다. 이리하여, 22권을 보면, “전 제 아이에게 풍요로운 바다와 생선 문화를 남겨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제 아이가 어시장 사대째가 되어 주길 바라구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전 그걸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137쪽)” 하고 당차게 외칩니다.


.. “이 신문기사를 보면 유엔에서 국민이 풍요롭게 사는 나라의 랭킹이 나왔는데, 노르웨이가 6년 연속 1위를 차지했어.” “그래요?” “그런 노르웨이사람들의 오락이라면 자연과 접하는 것이라는군. 여가를 즐기기 위해 숲의 오두막에서 불편한 생활을 하거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즐긴다고 하네.” … “지금까지 노르웨이 연어에 유해물질과 약품이 남아 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답니다.” “만약 발견되면 그 양식업자는 바로 라이센스가 취소되고 영업정지를 당하게 됩니다.” ..  “난 여기에 와서 다시 노르웨이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느꼈네. 이곳 수산업의 대단한 점은, 정부와 국민과 학교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야.” … “불필요한 인공구조물로 꽉 찬 일본의 해안선과는 다른 자연 그대로의 피욜도, 모두가 협력해서 미리 자연을 보호하고자 과감하게 금어 조치를 내리는 정부, 제가 여기서 느끼고 본 것은 모두 자연과 공존하려는 수산업의 현주소였습니다.” ..  (64, 69, 79, 84쪽)


 이어가려는 마음은 가꾸는 마음입니다. 지키려는 마음은 바로 이곳 이때에 즐기려는 마음입니다. 물려주려는 마음은 고마워하는 마음입니다. 나누려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만화로 들려주는 어시장 이야기는 어시장 사람들이 어떻게 바다와 우리 삶터를 사랑하는 길을 찾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만화 바깥 우리들로서는 우리가 저마다 발딛고 선 자리에서 어떤 이웃과 어떤 매무새로 서로 사랑을 나누면서 서로한테 즐거울 길을 찾느냐 하는 물음표입니다.

 혼자만 잘 살겠다는 밥그릇 지키기가 아닙니다. 나와 이웃 모두 잘 살자는 밥그릇 가꾸기입니다. 혼자만 배부르면 된다는 밥그릇 지키기가 아닙니다. 나와 이웃이 다 함게 즐거웁되 배곯는 사람이 없도록 하자는 밥그릇 보듬기입니다.


.. “이 낡은 목조 건물이 수산선진국의 최첨단 연구소?” “이 건물은 전통 있는 무역상의 창고를 개축한 겁니다. 13세기에 지어진 한저 상인의 집이 지금도 레스토랑과 선물 가게로 사용되듯이, 우리는 낡은 건물을 소중히 여기죠. 좀 불편해도 수리하면서 사용하자는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오래된 건물이 많이 남아 있었네요. 전부 다시 짓는 우리완 다른 느낌입니다.” ..  (66쪽)


 《어시장 삼대째》 22권을 보면, 어시장 사대째가 될 어린이 입을 빌어, “전 소용없단 생각이 들어요. 일본에서 MSC는 확산될 수 없어요. 아까 그 사람들 앞이라 말은 안 했지만, 생산자의 의식이 강해도 소비자의 인식이 낮은데 효과가 있을까요? 아저씨도 본 적이 있잖아요. 마트나 수퍼에서 도시락이나 우유를 살 때, 모두 안쪽에 있는 유효기간이 긴 걸 찾잖아요. 금방 먹을 거고 마실 건데, 그것 때문에 많은 음식과 우유들이 버려지고 있어요. 언젠가는 그 일들이 자신들의 발목을 잡게 될걸 알면서도 그러죠. 그런 일본에서 MSC 따윈 무시될걸요.(111∼112쪽)” 하고 따끔한 한 마디를 합니다. 이 어린이 말에는 22권이 끝나고 23권이 되도록 뾰족한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 나오기 어렵지 않으랴 싶습니다.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일본이라고 하여도, 깨우친 생산자만큼 따라가는 소비자가 많지 않음은 어쩔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깨우치지 않는 생산자도 아직은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 나라는 어떠할까요. 우리 나라에서 깨우친 생산자는 얼마쯤 될까요.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깨우친 소비자는 또 얼마쯤 될까요.

 우리는 어느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일는지요.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어느 자리에 서도록 이끌고 있는 어른일는지요. 우리는 어느 자리에서 무엇을 즐기는 사람일는지요.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어느 자리에서 무엇을 즐기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고 있는 어른일는지요.


 (2) 그림과 말 어느 자리나 애틋한 만화


 《어시장 삼대째》는 어느 한편으로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만화입니다. 그러면서 ‘홀가분’하게도 하는 만화입니다. 권수가 늘어나는 모습을 보고 새로 나오는 만화를 집어들어 펼치면, ‘이 권수에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겠지’ 하고 헤아리게 되고, 꼭 그 헤아림대로 줄거리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다 알 만한 이야기가 펼쳐져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웃음을 빼는 대목은 그리 안 많으나 곳곳에서 웃음이 묻어나도록 엮여 있는 한편, 눈물을 빼는 대목이 참으로 많습니다.

 슬픈 눈물이 아닌 아름다운 눈물로, 괴로운 눈물이 아닌 기쁜 눈물로.


.. “어이가 없군. 내가 이런 녀석에게 졌다니 한심해. 삼대째, 자넨 맛으로만 생선을 보나?” “왜 화를 내시는지…….”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곰치를 요리해 주는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거야! 내 말을 모르겠으면 오토메에게 물어 봐!” ..  (168쪽)


 만화를 넘기며, 또 만화를 덮으며 생각합니다. 그린이와 글쓴이는 어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았기에 이렇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 하고. 그린이와 글쓴이 어버이는 어떤 분이었기에 이런 마음결을 담아내도록 아이들을 돌보고 키울 수 있었을까 하고.

 고되고 벅찬 삶을 겪어냈다 하더라도 그 고되고 벅참을 짜증이 아닌 사랑으로 펼쳐 보이는 힘이 반갑습니다. 기쁘고 고마운 삶을 맞아들였다 하더라도 그 기쁨과 고마움을 지루하거나 어설픈 붓끝이 아니라 애틋하며 싱그럽게 담아내 보이는 기운이 좋습니다.

 어려움은 어려움대로 껴안고, 수월함은 수월함대로 부둥켜안는다고 할까요. 슬픔은 슬픔대로 힘이 되고, 기쁨은 기쁨대로 빛이 된다고 할까요.


.. “하지만 시어머니도 유미코 씨보다 더 곰치를 무서워하고 싫어하셨습니다. 그래도 유미코 씨를 위해, 귀여운 손자를 위해 곰치를 손질하고 요리했던 겁니다.” ..  (184쪽)


 삶이 묻어나는 만화이기에 즐겁게 장만하여 읽습니다. 삶이 배어든 만화이기에 깊은 맛을 느끼며 읽습니다. 삶이 삭여진 만화이기에 둘레에 널리 알리면서 읽습니다. 삶이 곧 만화로 다시 태어났기에 책꽂이 잘 보이는 자리에 꽂아 두고 도서관 손님들한테 읽힙니다.


.. “찰가자미국이 정말 맛있는 걸 알겠네요.” “삼대째는 드시지도 않았는데…….” “이시쿠라 씨 얼굴이 무지 편해졌거든요.” … ‘왜 이렇게 먼 기억까지 생각나는 거지? 이 맛은 그저 맛있기만 한 게 아니야! 그리움이야!’ ..  (130, 134쪽)


 그러고 보면 우리한테는 동해와 남해와 황해가 있습니다. 골골마다 냇물이 흐릅니다. 바다물고기와 민물고기가 고루 있습니다. 바닷가마을마다 어시장이 있고 갖은 물고기가 우리 밥상에 오릅니다. 그렇지만, 바다 이야기가 만화로 그려지는 일이 드뭅니다. 어시장 이야기가 만화로 담기는 일이 드뭅니다. 고기잡이 삶이 만화로 새로 빚어지는 일이 드뭅니다. 물고기 하나를 우리와 마찬가지로 감싸안으면서 사랑으로 바라보는 만화를 구경하기란 아주 힘듭니다.

 늘 곁에 있어도 모르는 우리들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언제나 함께 있어도 알뜰히 여기지 않는 우리들이라고 해야겠습니다. 한결같이 이웃으로 있으나 한결같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우리들이라고 해야겠습니다. 뭐가 그리 바쁘신 우리들인지, 뭐가 그리 알아야 할 일이 많은 우리들인지, 뭐가 그리 다른 큰일이 많은 우리들인지, 뭐가 그리 대단한 우리들인지 알 노릇은 없습니다만.


.. “이시쿠라 씨는 요리사라서 내가 모자라지만, 찰가자미 요리는 자신이 있거든요. 찰가자미 요리를 못하면 시집을 못 간다고 할머니가 가르쳐 줬죠.” “유코도 할머니를 좋아하는구나.” “예, 어릴 때 부모님이 일 때문에 바빠서 할머니가 절 돌보셨어요. 내 찰가자미 요리는 우리 할머니 솜씨랍니다.” ..  (100쪽)


 어제 하루와 오늘 하루,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있을 우리 아이가 먼먼 뒷날 “우리 할머니 사랑이에요”나 “우리 할아버지 사랑이에요” 하면서 두 손 모두어 내밀 그 자리에 깃들 무엇은 어떻게 자리매겨질까 슬며시 궁금해집니다. 그때까지 아이를 사랑으로 알뜰살뜰 보듬어야 할 테고, 그때까지 어버이 된 몸으로서 아프지 말고 튼튼히 잘 살아야겠지요.

 아이와 함께 즐거울 길을 찾으면 삶은 즐겁고, 아이와 같이 아름다울 길을 살피면 삶은 아름다워진다고 느낍니다. 만화책 《어시장 삼대째》는 1권부터 21권에 걸쳐, 그리고 22권과 23권과 24권과 25권에서도, 또 앞으로 나올 수많은 뒷권에서도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길을 당신들 나름대로 고이 엮어내어 보여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만화를 호수가 빠지지 않도록 잘 챙겨서 모아 놓고, 다가올 앞날을 기다립니다. 아이가 스스로 이 만화를 끄집어 내어 읽을 그 앞날을. (4342.3.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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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하면 용감하다
이두호 지음 / 행복한만화가게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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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74 ― 만화쟁이가 되고 싶으면 먼저 사람이 되자
 : 이두호, 《무식하면 용감하다》


- 책이름 : 무식하면 용감하다
- 글ㆍ그림 : 이두호
- 펴낸곳 : 행복한만화가게 (2006.3.2.)
- 책값 : 9800원



 (1) 우리가 걷는 길


 만화를 그리는 이두호 님은 이제 ‘만화쟁이’ 아닌 ‘교수님’입니다. 스스로 ‘교수’라는 이름보다 ‘만화가 선생’이라는 이름이 더 반갑다고 하는 이두호 님입니다마는, 만화쟁이가 대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날이 올 줄은 거의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봅니다. 이제는 으레 교수가 되고 있는 사진쟁이들이지만, 사진쟁이가 대학교에서 ‘사진학과 교수’가 될 줄 알았던 사람은 거의 없었으리라 봅니다. 그저 사진을 찍는 사람이었을 뿐이고, 사진을 찍어 무슨 밥벌이가 되느냐 여겨졌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그림 그리는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테며, 글쓰는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 세상이 문화와 삶을 바라보는 틀이 아주 더디지만 하나둘 넓어지면서, 다 다른 자리에서 제 깜냥껏 애쓰는 사람들 목소리가 조금씩 스며들고 있습니다.


.. “공모전에 갔다 오냐?” 풀죽은 모습으로 겨우 대답을 하자 선생님이 물었다. “이리 와 앉아 봐라. 그래, 어떻드나?” “부끄럽습디더. 다른 애들 그림은 크기도 하고 다 잘 그렸는데 제 그림은 쪼매나고 못 그렸고 보기도 싫고 낯 뜨거워 죽겠습디더.” “왜 낯 뜨겁드나?” “지 그림이 너무 초라해서예.” 남무오 선생님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내가 언제 한 번이라도 니 그림에 손질해 준 적 있었나? …… 한 번도 없지?” “예.” “거기 일등 한 그림 봤제? 그거 걔가 그린 것 같더나?” “정말 잘 그렸습디더.” “아니다. 내 보니까 니가 젤 잘 그렸어! 니 그림은 니가 다 그린 거 아이가! 니 그림이 진짜로 제일 잘 그린 기다! 그러니까 그 그림에 대해 신경 쓰지 마라. 상 받고 안 받고는 한 개도 안 중요하다.” ..  (22쪽)


 그런데 이와 같이 다 다른 목소리가 스며드는 크기는 얼마쯤일까요. 다 다른 목소리가 우리 삶터 곳곳에 스며들기는 하는데, 이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들은 어떤 매무새일까요. 우리 스스로 다 다른 목소리를 얼마나 잘 듣고 있는지요.

 말로는, 또 글로는 다 다른 목소리를 높이 여긴다고 내세우면서, 정작 우리 스스로는 하나도 안 바뀐 채 살아가지는 않나요. 우리 스스로 다 다른 목소리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매무새라면, 아이들을 초중고등학교에조차 안 보낼 수 있는 한편, 대학교라는 데에 굳이 보낼 까닭이 없다고 여기면서, 이런 생각을 생각이 아닌 삶으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구태여 학원에 안 보낼 수 있습니다. 집에서 어버이 스스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이웃집 어른한테 배우도록 할 수 있고, 다른 고장 어른한테 배우도록 아이를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억대 연봉 받는 회사원이 되기를 꿈꾸는 우리 어버이라면, 아이들을 제도권 입시지옥에 빠져들도록 내밀게 됩니다. 학원에서 영어니 수학이니 논술이니 가르치도록 등을 떠밀고 맙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늘 한 번 올려다보지 못하게 꽁꽁 틀어쥐면서 교과서와 참고서와 문제집에만 머리를 파묻게 합니다. 대학교 들어가는 그날까지 ‘네 푸른 날을 버리라’는 터무니없는 어버이 욕심을 아이한테 짓눌러 집어넣습니다.


.. 내 기억으로 나는 어머님을 거역한 적이 거의 없다. 어떤 결정을 할 때도 이게 어머님이 기뻐하실 일인가를 먼저 떠올리곤 했다. 그러니 못된 짓은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님이 얼마나 속상해 하실까를 생각하면 도저히 나쁜 짓을 할 수가 없었다 … 우리 동네 건너편에는 피난민 판자촌이 있었는데, 그렇다고 우리동네 형편이 난민촌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어둠에 잠긴 마을을 내려다보면 망망한 검은 바다 위에 반딧불 하나가 깜박깜박 하고 있었다. 바로 우리 집이었다. ‘아, 어머니 우리 어머니!’ 다른 집들은 기름을 아끼느라 불을 꺼 놓아 동네 전체가 깜깜했지만, 어머님이 내가 올 시간에 맞추어 불을 켜 놓고 기다리시는 우리 집은 늘 환했다. 마치 등대 같았다. 배가 바른 길로 들 수 있도록 인도하는 등대 말이다. 그 불빛을 보면 언제나 가슴속이 아주 환하고 따뜻해졌다. 어머니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절대로 주무시는 법이 없었다 … 내가 일곱 살쯤이었을 때 동네에 매촌이라는 공용 종이 있었다. 한 40살쯤 되었는데, 마을의 궂은일은 다 맡아서 했었다. 우리 또래 애들한테도 꼬박꼬박 인사를 했는데, 내가 지나가면 ‘도련님 나오셨습니까’라고 인사하곤 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께서는 나한테 매촌이 종이기는 해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셨다. ‘오냐’ 하지 말고 ‘예’라고 존칭을 쓰라고 했고, ‘매촌아’ 하고 이름도 막 부르지 않도록 나한테 교육을 시켰다 ..  (37, 42, 177쪽)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삶입니다.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2009년 3월 19일 하루는 딱 한 번일 뿐입니다.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열다섯 살 나이는 딱 한 번 거쳐 지나갈 뿐입니다. 열세 살도, 열여섯 살도, 열아홉 살도 한 번일 뿐입니다. 스무 살이나 스물두 살이나 스물다섯 살이 두 번 찾아올까요?

 세상을 참다이 살아가는 길을 뒤늦게 깨달아 나이 예순에도 젊음을 누리기는 하지만, 나이 열일곱에는 열일곱에 걸맞는 푸름을 누리고, 나이 스물일곱에는 스물일곱에 걸맞는 젊음을 누려야 할 우리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월은 한 번이요 공부는 언제라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랑말랑한 머리일 때 시험성적을 더 잘 낼 수 있다고 합니다만, 이와 마찬가지로 말랑말랑한 머리일 때 세상경험을 더 치러내면서 더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나거나 거듭날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영어를 가르치면 영어를 더 잘할 수 있듯이, 어릴 때 우리 말을 올바르게 가르치면 우리 말을 잘못 쓰는 법이란 없으며, 어릴 때 착하고 바른 마음이 깃들도록 이끌면 아이들이 어긋날 일은 거의 없습니다.

 나이에 맞는 길은 언제나 한 번뿐이요, 하고픈 일은 언제가 되든 아주 넉넉하고 신나게 할 수 있습니다. 나이 마흔에도 대학생이 될 수 있고, 나이 쉰에 대학생이 된다고 나무랄 사람이 없습니다. 외려 늦깎이로 공부할 때 더 잘해 내고 훌륭히 치르는 사람을 보는 우리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 남 선생님과 유명수 선생님이 술을 마시다 의견충돌로 다투신 적이 있었다. 유명수 선생님이 내가 재주가 있다면서 서울로 데려갔으면 좋겠다고 하신 모양이다. 그러자 남 선생님은 완강히 반대하셨다. 유명수 선생님이 당신은 왜 아이의 앞길을 막으려 하느냐고 따지자, 남 선생님은 두호가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면서 커야지, 당장 돈 몇 푼 생긴다고 보낼 수는 없다고 하셨다 … 세월이 지난 다음 생각해 보니, 당시 내 그림은 기교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깊이가 없었다. 더 치열하게 작업해서 주제에 천착해야 했는데 그걸 하지 못했다. 아무도 내게 깊이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해 주지 않아, 내 그림에서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  (53, 56쪽)


 그림이 좋아 그림길로 가겠다는 이들은 어떤 어려움을 치러야 한다 할지라도 어릴 적부터 그림길을 걷습니다. 글길을 걷든 사진길을 걷든 똑같습니다. 종교길을 걷든 철학길을 걷든 학자길을 걷든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옳은 공부길이 아닌 돈바라기 공부길이거나 이름바라기 공부길일 때에는 다릅니다. 옳은 그림길이나 옳은 글길이 아닌 돈바라기 그림길이나 이름바라기 글길일 때에는 다릅니다.

 스스로 아름다움을 찾아나서는 길이었을 때에는 수많은 가시밭길이 제 삶을 가꾸어 주는 좋은 길입니다만, 스스로 돈과 이름 따위를 꿈꾸며 걷는 길이었을 때에는 수많은 가시밭길이 가시와 같이 몸에 꽂히거나 박히면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가시들은 뒷날 내 이웃들이 뾰족뽀족 찔리도록 합니다. 나 스스로 못 느끼지만 이웃들은 피를 흘리며 아프게 되는 가시가 내 몸뚱이에 촘촘히 박혀 있게 됩니다.


.. 이 집을 찾아갈 때는 배가 고파서 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 댁에서 밥을 맛있게 먹을 때는 주린 배속에 먹을 게 들어가니 행복한 기분마저 든다. 그러나 밥숟가락을 놓는 순간부터 자괴감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단지 밥을 얻어먹기 위해 남의 집을 찾아왔다는 사실이 창피해지는 것이다. 모멸감에 가까운 그 느낌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 참담함이었다. 나는 배고픔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안다. 굶주림은 사람에게서 염치를 앗아가고 이성을 마비시킨다 … 목이 메었다. 우리의 가난도 목이 메었고, 이 가난을 함께 견디는 친구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도 목이 메었다. 우리는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꾸역꾸역 입에 빵을 들이밀었다. 눈에서는 괜한 눈물이 소리 없이 흘렀다 ..  (74∼76쪽)


 아름다움을 찾아 길을 걷는 사람은 돈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이 걷는 길에는 돈이 저절로 따라옵니다. 많든 적든 언제나 알맞춤하게. 그래서 아름다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늘 가난을 옆에 끼고 살면서도 가난을 흐뭇하게 받아들일 뿐 아니라, 가난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를 뼈속 깊이 고맙게 느낍니다. 있으면 있는 만큼 누리거나 나누고, 없으면 없는 대로 누리거나 나눕니다.

 이와 달리 아름다움이 아닌 돈을 찾아 길을 걷는 사람은 틀림없이 돈을 움켜쥡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거머쥐지 못합니다. 아름다움이란 움켜쥐거나 거머쥘 수 없는 넋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껍데기와 몸뚱이를 돈으로 처바르며 곱게 보이고자 애쓰지만, 겉치레 예쁜 매무새는 오래 버티기 어려울 뿐더러 스스로 짐지어내기에도 벅찹니다. 무엇보다도 속알맹이 아름다움이 아닌 겉치레 예쁨이기 때문에, 제 주머니에 돈이 아무리 많이 넘쳐도 많은 줄 느끼지 않습니다. 더 가지려 하고 더 누리려 합니다. 혼자서만. 이웃한테 나누려는 마음은 쥐뿔만큼도 없는 가운데. 죽는 날까지 돈굴레와 이름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그 좁은 굴레가 아주 너른 세상이라도 되는 듯 잘못 알기 마련이고. 나중에는 잘못 아는 줄조차 느끼지 못하고.

 아름다움을 찾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따로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았어도, ‘가난 = 하늘나라 들어가는 열쇠’임을 삶으로 곰삭이며 어깨동무를 합니다. 돈을 찾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수없이 하느님 말씀을 듣고 또 들었어도 ‘가난 = 어린이 마음 = 하느님 마음’인 줄을 깨닫지 못합니다. 지식으로는 알아도 몸으로는 모릅니다. 지식은 돈과 같이 넘치지만, 사랑은 하나도 없고 믿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2) 내가 걷는 길


 저는 대학교를 잠깐 다니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처음부터 안 들어갔다면 훨씬 나았을 텐데, 잠깐 몸을 담근 일도 여러모로 세상을 보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만큼 얻은 무엇이 있는 만큼 잃는 무엇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짧지 않은 여러 해에 걸쳐 더 너른 세상을 더 다부지게 두 다리로 디디면서 지낼 수 없었으니까요.

 옆지기는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졸이고 옆지기는 중졸인 셈인데, 고등학교를 사이에 그만둔 옆지기가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왜 나는 이렇게 고등학교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눌려 지냈으며, 그 굴레를 떨치고 일어나며 떳떳하고 당차게 살아갈 힘을 못 내었는가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때 고등학교를 떨쳐냈다면 훨씬 더 이 땅을 사랑할 길을 찾았을 테며, 더더욱 이웃을 어깨동무할 길을 찾았으리라 보거든요. 다만, 그 길을 못 갔기 때문에 그 길대로 갔으면 좋았으리라는 꿈을 가끔 꾼다고 하여도 지금 걷는 제 길을 더 힘껏 가자고 다짐합니다. 못 간 길을 아쉬워할 겨를에 지금 가는 길을 더 즐겁고 힘차게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 만화가가 되기로 작정하고 나서 어떤 만화가가 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우선은 싫증을 내지 않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우리 나라 역사물이 좋겠다 싶었다. 옛날이야기나 역사, 오래된 물건들을 좋아했기에 그런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 고단하고 어렵게 살던 사람들,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휘말려 어쩔 수 없는 고통을 겪지만 바른 방향으로 이끌려고 애쓰는 사람들, 아름다운 사람들, 추한 사람들, 양반, 노비, 비렁뱅이, 기생, 농민, 화적, 보부상,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이 다양하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 보고 싶었다 … 편집자가 부탁하는 것은 거절하고 역사물만 그리겠다고 우겼으니, 아무개는 이제 배가 부른 모양이라는 빈정거림도 감수해야 했다 … 처음 독대를 등장시켰을 대 왜 이렇게 못생기게 그렸냐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편집장도 원고를 받아들고 하는 말이, “이게 주인공인가요? 왜 하필 주인공을 못생기게 그렸습니까?” 하고 물었다. 내가 답하길, “못생긴 놈이 잘생긴 놈을 이기면 더 재밌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못생긴 사람이라고 세상에 좋은 일 못하라는 법도 없고, 잘나지 못하라는 법도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중요한 것은 만화 내용에 어떤 캐릭터가 근본적으로 만느냐가 우선적인 것이고, 또한 못생긴 것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캐릭터를 멋있게 잘 그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력 있는 인물을 그리는 게 중요하다 ..  (117∼134쪽)


 둘레에서는, 그러니까 아버지라든지 피붙이라든지 저를 아끼고 걱정해 주시는 여러 분들은 ‘아직 늦지 않았으니 대학교 졸업장’을 따라는 말씀을 해 주십니다. 그 졸업장이 없으면 우리 사회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면서, ‘어른이 하는 말이니 들으라’고들 말씀합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참말 저를 걱정해 주시는 ‘어른’이라 한다면, 졸업장 없이도 이 나라 이 땅에서 아름답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애써 주셔야 하지 않느냐고. 졸업장 있는 사람만 높임을 받는 이 나라 이 땅이 아니라, 졸업장 없는 어느 누구이든 제 솜씨와 재주와 깜냥으로 아름답고 싱그러이 일하고 놀고 어울릴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셔야 하지 않느냐고.

 우리가 서로 똑같은 사람으로서 사랑스럽고 거룩하다면, 사람으로 보아야지 졸업장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맨몸뚱이 사람으로 보아야지 돈주머니를 보아서는 안 됩니다. 속에 깃든 마음과 넋을 읽어야지 얼굴과 몸매를 읽어서는 안 됩니다.


..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놀란 사실 중 하나는, 평생 그림을 그려야 하는 만화가를 지망하면서도 기본적인 그림 실력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만화가를 지망한다면 그림의 기초는 확실하게 다져져 있는 상태에서 기술적인 문제들을 고민해야 하는데, 뜻밖에도 기초 실력이 탄탄한 학생이 드물었다 …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면 많다고 줄여 달라는 부탁을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기성 만화가들은 대개 하루 종일 작업을 한다. 마감이 다가오면 몇날 며칠 밤샘도 한다. 이미 일정 수준에 이른 그들이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아직 한참 실력을 연마해야 할 학생들이 과제조차 힘겨워 하면, 어떻게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따라잡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보다 더 나은 작품을 내놓아야 하는데 말이다 ..  (266∼267쪽)


 가끔 ‘국졸이면서 대학 교수가 되었다’느니 ‘고졸이면서 대학 교수가 되었다’느니 하는 신문기사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깟 가방끈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이런 어이없는 기사를 쓰느냐 싶은데, 사람이 할 줄 아는 재주와 나눌 줄 아는 슬기로 ‘교사’가 되든 ‘교수’가 되든 해야지, 가방끈이 길면서 재주와 슬기 없는 사람이 교수 되는 일을 꾸짖을 줄 알아야지, 가방끈은 있되 재주도 슬기도 갖추지 않는 이가 함부로 초중고등학교 교사일을 맡는 일을 가로막을 줄 알아야지 …….

 우리 아이를 보면서 걱정이 많이 되는 대목은 다른 데에 있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훌륭하고 아름다이 ‘교사라 하는, 하늘이 내려준 거룩한 일’을 맡은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마는, ‘교사 = 쇠밥그릇’으로 아는 분 또한 그지없이 많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중고등학교에서, 우리 아이뿐 아니라 이웃 아이들이 사람된 그릇을 익힐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살가운 벗을 사귀며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나눌 수 있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체벌이 아닌 폭력이 버젓이 이루어지는 우리 나라요, 교육이 아닌 입시만 판치고 있는 우리 나라요, 어버이들 얕은 욕심에 따라 찌들고 무너지고 아파하는 아이들이 넘치는 우리 나라입니다. 이런 가운데 이 나라 이 땅에서 조용히 머물면서 오순도순 살고픈 작은 꿈을 어떻게 ‘학교에서 보내는 긴 나날’ 동안 다치지 않게 할는지는 알 노릇이 없어요.


.. 지적한 장면들은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일부러 넣은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진행상 꼭 필요했기 때문에 들어간 장면들이다. 표현수위도 어느 누가 보아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스포츠신문의 독자는 성인들이다. 신문이라는 특성상 아이들이 볼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은 해야 하지만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작품에서 이 정도 표현을 못한다면 어떻게 작품을 하겠는가? 열심히 그림을 그려야 할 시간에 작품에 대한 기본 이해조차 못하는 사람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는 처지가 한심스럽게 여겨졌다 … 대체 내가 무슨 일 때문에,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와 있는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지루한 조사가 계속되었다. 말도 안 되는 억지소리를 듣고 있으니 만정이 떨어졌다. 대한민국에서 만화를 그리고 있는 내가 초라했다. 조사가 끝나고 내가 물었다. “내가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할 말이 있으면 하십시오.” “내가 지금 몇 시간 와서 조사를 받았는데, 여기 왜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태 만화를 그리면서 내 만화를 한 번도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내 만화를 보면서 컸습니다. 다른 집 아이들에게도 조금도 거리낌없이 보여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일로 와야 한다는 게 환멸스럽습니다.” … 전화는 며칠이 지나서야 걸려왔다. “혹시 신문사에서 연락을 받았습니까?” “못 받았는데요.” “이 선생님의 〈째마리〉가 기소되었습니다.” “…….” “검찰청에 와서 서약서를 써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슨 서약인데요?” “신문연재 만화를 청소년에 유해하지 않게 그리겠다는 서약서요.”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여태까지 그린 만화를 다 부정하란 말인가? 화가 치밀어올랐다. “못 쓰겠으니 마음대로 하시오!”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런 세상에서 만화를 그리는 나 자신만이 아니라 만화가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화가 없는 세상에 가서 만화를 모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 202년 4월, 5년이나 질질 끌었던 재판이 무죄로 판명이 났다. 정말 지리하고 분통터지는 세월이었다. 이 기나긴 세월 동안 만화가들의 창작 의욕은 뿌리째 흔들렸으며 자존심은 무참하게 짓밟혔다 … 작가인 내가 봐도 눈살 찌푸려지는 작품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일일이 작품에 대해 간섭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간섭과 규제를 하다 보면 끝이 없고, 규제를 받는 환경에서는 제대로 된 작품도 나올 수 없다 ..  (232∼234, 239, 249쪽)


 저와 옆지기는 법이 없는 삶을 꿈꿉니다. 우리 스스로 법에 매이지 않으면서 살고자 합니다. 평등법이 있다고 하여 평등을 지키려는 삶이고 싶지 않습니다. 평등법이 없어도 평등 그대로 녹여내며 살아갈 뿐입니다. 평화법이 없어도 평화를 즐기고 나누며 살아갈 뿐입니다. 국가보안법이 있다 한들 이 따위 법이란 지키지 않을 생각인 한편, 생각조차 할 값어치가 없다고 느낍니다. 옳지 않은 집시법에 매여야 할 까닭이 없고, 우리 몸을 망가뜨리는 예방주사나 의료보호법을 따를 쓸모가 없다고 봅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나라에서 못박거나 벌금을 매긴다고 해서 쓰레기를 안 버리는 우리 삶이 아닙니다.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우리 마음을 다치게 할 뿐더러, 우리 터전을 어지럽히기 때문에 쓰레기를 안 버립니다. 헤프게 쓰고 넘치게 즐기다가 마구 버리지 않는 우리 삶입니다만, 처음부터 헤프게 쓸 돈이 있지 않게끔 주머니를 가볍게 합니다.

 석유를 비롯한 지구자원이 걱정이 되니, 자가용을 몰지 않을 뿐더러 자전거를 타거나 두 다리로 걷습니다. 1회용품이란 쓸 일도 없지만 처음부터 쓰지 않게끔 수저와 도시락통을 챙기며 다닌다든지, 가방이나 주머니에는 언제나 장바구니가 한둘쯤 들어 있습니다. 1회용품이 쓰이는 자리에 처음부터 아예 안 갑니다. 큼직한 할인마트에서 싸구려로 사들이는 물건이 없으니 집에 냉장고를 모실 까닭이 없고, 책읽기와 이야기나누기로도 하루해가 짧은 만큼 텔레비전을 들일 까닭이 없습니다. 손으로 빨래하는 기쁨을 빼앗기기 싫으니 세탁기를 쓰지 않는 가운데, 걸레 빨아 무릎 꿇고 마루와 방을 훔치는 즐거움을 놓치기 싫으니 청소기를 쓰지 않습니다. 이보다, 애먼 전기를 이런 데에서 흘려보내는 일은 마음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 철저히 작품 위주로, 예술지향주의로 갈 사람은 가고 그것을 접목해서 상업적으로 갈 사람은 또 그렇게 가면 된다. 그것을 한번 느껴 보지 못하고 상업적으로 가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나의 이러한 생각을 정부의 만화 관계자에게 말하고 제안을 했다. 만화축제나 전시에 비용을 낭비하지 말고 많은 젊은 작가들을 외국에 보내 주자고.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어렵다는 것이다. 사람을 보내는 것은 당장의 가시적 성과가 눈에 드러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만화가들의 생각이 바뀐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  (303∼304쪽)


 3000원짜리 고무신 한 켤레로 한 해 동안 즐겁게 걸어다닙니다. 구멍난 양말을 아무렇지 않게 신고 다닙니다. 많이 해진 가방을 틈틈이 기우면서 메고 다닙니다. 너무 오래 타서 고장난 자전거를 손질하고 매만지며 살금살금 타고 다닙니다. 굴러다니는 비닐봉지를 곱게 접어 가방에 챙겨 놓고 여러 해에 걸쳐 되씁니다. 길바닥에 널리는 일수명함을 주워 책갈피로 삼습니다.

 가난해서 아끼며 살자가 아닙니다. 가난하지 않아도 사람이 살아가는 바른 길이라고 느끼니 아끼며 살자입니다. 아끼며 살기에 나눌 수 있습니다. 아끼며 살기에 노상 즐겁습니다. 아끼며 살기에 허튼 데에 마음 빼앗길 일이 없고, 얕은 데에 끄달리지 않습니다. 아끼며 살기에, 내 삶뿐 아니라 옆지기 삶과 아이 삶을 사랑할 가장 아름다운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아주 환하고 밝게 느끼면서 하루하루가 언제나 새롭고 싱그럽습니다.


 (3) 만화쟁이 발자취 《무식하면 용감하다》


 이두호 님이 만화를 그리며 살아온 발자취를 담은 이야기책 《무식하면 용감하다》를 읽습니다. 글쟁이들이 글쓰며 살아온 발자취는 아주 흔하게 나와 있고, 그림쟁이와 사진쟁이가 살아온 발자취 또한 어렵잖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만, 어쩐지 만화쟁이 발자취를 찾아보기란 너무 힘듭니다. 만화평론 하는 이들이 만화쟁이 삶을 살펴보고 낸 책은 있어도, 만화쟁이 스스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은 아주 드물어요. 이웃나라 만화쟁이 데즈카 오사무 님 이야기책이 우리 말로 옮겨지기는 해도, 우리 만화쟁이 스스로 엮어내는 이야기책은 어인 일인지 나오지 않습니다.


.. 책보를 가지고 가서 모래를 퍼다가 학교 운동장에 씨름판을 만들기도 했다. 하루 종일 백사장에 있어도 놀거리는 무궁무진했다. 뛰어놀기도 지치면 가만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모래에 누워서 바라보는 하늘은 언제나 표정이 풍부했다. 하늘의 구름만 보아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갖가지로 모양이 바뀌는 구름은 얼마나 다채로웠던가. 하늘의 구름을 보면서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펴다가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부드럽게 흘러가는 강물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잘 때도 있었다. 모래밭은 따스하고 아늑했다 ..  (12쪽)


 만화를 그리던 분들이 대학 교수가 되기도 하는 마당에, 이런 털털하고 수수한 이야기책이 못 나오는 까닭이 무엇인가 싶어 아쉽습니다. 만화쟁이 삶은 만화쟁이 스스로 펼쳐 보여야 할 텐데, 만화쟁이 스스로 펼쳐 보이지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그만큼 만화쟁이 삶은 팍팍하고 고단하다는 뜻이라 할 텐데, 그 팍팍함과 고단함이 ‘없으리라 생각’하며 만화쟁이 길을 걸었던 분은 없지 않았을는지요. 그리고 그 팍팍함과 고단함이 있기에 더욱더 만화라는 한길을 당차고 꿋꿋하게 걸을 수 있지 않았을는지요.

 잘나서 쓰는 글이 아니고, 못나서 못 쓰는 글이 아닙니다. ‘무식하’면 무식한 대로 쓰고, 똑똑하면 똑똑한 대로 쓰면 됩니다. 잘난 척이 아니요 못난 척이 아닙니다. 나라고 하는 한 사람이 어떻게 삶을 꾸리면서 내 일을 즐겨 왔음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덧바를 이야기 없고 덜어낼 이야기 없습니다. 고스란히 들려주는 이야기로 숨김없이 밝히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여러 테두리에서 생각하노라면,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우리한테 더없이 알뜰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책입니다. 그런데, 이두호 님 이야기책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만화쟁이 한길을 담은 책을 넘어, 한 사람이 제 넋과 얼을 다부지게 지키면서 걸어온 길을 애틋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책입니다.


.. 나는 어디를 가든지 눈에 띄는 책이 있으면 우선 사 놓는다. 신기하게 이렇게 사 둔 책은 반드시 어디에선가는 써먹게 된다 … 내 작품에는 아버지들이 술 마시는 묘사가 아주 실감나게 잘 되어 있다. 우리 아버지가 술 드시는 걸 늘 봤기 때문이다. 리얼리티가 저절로 살아난다고 할까. 작품을 할 때는 열과 성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가의 경험이 작품에 녹아들어야 좋은 작품이 된다. 창작을 하는 사람은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여행을 많이 해야 한다는 이유가 이러한 데 있다 … 지금은 모르는 단어를 컴퓨터로도 검색할 수 있어 편리하지만, 종이로 된 사전은 그 나름의 맛이 있다. 컴퓨터로 검색하면 찾고자 하는 단어만 뜨지만 종이를 넘기면 그 주변의 단어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앞뒤 페이지도 들춰보게 되어 우연찮게 마주치는 단어들이 많다. 마치 감자나 고구마를 거두어들일 때처럼 한 단어를 찾으면 그와 연관된 많은 단어들이 줄줄이 달려 올라오는 것이다 ..  (150, 152, 172쪽)


 만화를 좋아하기에 만화쟁이 이두호 님 작품을 좋아했고, 이두호 님 삶과 만화와 길이 담긴 《무식하면 용감하다》를 좋아합니다. 만화에 담긴 사람들 삶을 좋아하기에, 이두호 님 만화에 담긴 사람들 삶을 좋아했고, 《무식하면 용감하다》에 담긴 만화쟁이 한 사람 삶을 좋아하게 됩니다.

 책을 덮으며, 이 책에서 이두호 님이 우리한테 들려주고 싶던 당신 길과 생각이 무엇이었을까를 가만히 되짚습니다. ‘만화쟁이에 앞서 사람이 되자’는 당신 길이 아니었을까 싶고, ‘만화를 그리면서도 내가 사람임을 잊지 말자’는 당신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4342.3.1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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