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소리 13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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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25



아파도 웃으면서 새 노래로 자라는 사람들

― 순백의 소리 13

 라가와 마리모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6.4.25. 4800원



  노래대회가 있습니다. 노래로 이기느냐 지느냐 하고 겨루는 대회가 있습니다. 서로 즐겁게 노래를 부르거나 나누면서 아름다운 삶을 북돋우는 자리가 아니라, 누가 더 목소리를 잘 뽑느냐를 겨룬다든지, 누가 더 악기를 잘 켜느냐를 겨루는 자리가 있어요.


  노래대회에서 으뜸이 되면 이름을 드날리거나 돈을 잔뜩 거머쥔다고 합니다. 노래대회에서 버금을 해도 훌륭하고 딸림을 해도 대단하지만, 으뜸이 아닌 버금이나 딸림이 된다면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아니, 사람들은 흔히 “1등을 놓친다” 같은 말을 써요. 노래부르기에까지 차례를 매겨서 누구는 1등이고 누구는 2등이며 누구는 3등이라고 금을 긋습니다.



‘공기가 으르렁댄다. 타누마의 소리를 듣는 것은 처음이다. 프레이즈 하나만으로도 그 탁월한 능력을 알 수 있다.’ (9쪽)


‘선생님, 저도 코스케만할 때는 굉장했는데, 그렇게 기뻐해 주셨던가요?’ (23쪽)



  아이들이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은 저절로 우러나와서 노래를 부릅니다. 놀다가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다가 노래를 부릅니다. 게다가 밥을 먹다가도 노래를 부릅니다. 마을 어귀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가는 길에서도 노래를 부릅니다. 시골버스에서 시골 할머니는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목소리를 느끼고는 어느 때에는 “오냐, 잘 부른다. 더 불러 봐.” 하고 웃고, 어느 때에는 “시끄럽게 뭔 노래!” 하면서 꾸짖습니다. 또 어느 때에는 꾸짖는 할머니나 할아버지 옆에서 “애들 목소리 듣기 좋은데 왜 못 부르게 하쇼?” 하고 다른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나무라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노래란 무엇일까요? 노래는 언제 부를까요? 악기로 켜는 노래는 또 무엇일까요? 악기로 켜는 노래는 언제 켤 만할까요?


  라가와 마리모 님이 빚은 만화책 《순백의 소리》(학산문화사,2016) 열셋째 권을 읽으면서 ‘노래부르기’하고 ‘악기 켜기’를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이 노래하고 악기를 놓고 솜씨를 겨루는 대회를 생각해 봅니다.


  즐거움이 우러나와서 부르는 노래일 때하고, 아주 훌륭하거나 멋지다는 말을 듣는 노래일 때에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나 ‘노래를 듣는 사람’이 얼마나 즐겁거나 신날까 하고도 생각해 봅니다.



‘천재? 장래? 메이저? 머리로 답을 찾아 헤메고, 자기를 비하하며 자신을 누르려 했다.’ (48쪽)


‘타이가 씨의 소리다. 겉치레 없이 즐겁게 연주하는, 타이가 씨의 소리.’ (77쪽)



  라가와 마리모 님이 빚은 만화책에 나오는 젊은이들은 샤미센이라는 일본 악기를 켭니다. 대회에 나와서 으레 1등을 밥먹듯이 하는 젊은이가 있고, ‘천재’라는 아이들한테 늘 꺾이면서 ‘자기비하’를 일삼던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천재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웃하고 신나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마음껏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래대회에 나와서 그저 언제나처럼 ‘우승후보답게 빼어난 솜씨를 선보이는’ 사람이 있어요. 노래대회에서조차 그저 언제나처럼 ‘이웃하고 신나게 어깨동무를 하듯이 즐겁게 악기를 켜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승후보는 우승후보답게 1등을 쉽게 거머쥡니다. 즐겁게 악기를 켜는 사람은 순위발표를 보지도 않고 대회장에서 나갑니다. 순위발표를 볼 생각이 없었다면 대회에도 안 나갈 노릇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대회에 일부러 나간 그 사람은 ‘오랫동안 스스로 억눌렀던 자기비하’라는 굴레를 깨고 싶어서 대회 무대에 한 번 서 보았어요.



“내 소리가 할배 소리 같드나?” “아니.” “그럼, 내 안에서 할배가 없어졌드나?” “형은 할배의 소리로 자랐다 아이가.” “음, 그래.” (137쪽)


“타이가 씨가 지금, 사와무라에게 샤미센을 지도하시나요?” “나? 설마.” “그럼 누구한테서 배운 거랍니까?” “지금까지의 ‘만남’에서 아닐까?” (186쪽)



  이제껏 열두 권에 이르는 낱권책이 나왔고, 어느새 열셋째 권이 나온 《순백의 소리》를 가만히 되새깁니다. 머잖아 열넷째 권도 나올 테고, 아마 스무 권 즈음까지 꾸준히 나올 듯합니다. 열셋째 권까지 한 권씩 찬찬히 돌아보니, 권마다 조금씩 다르게 삶과 살림과 사랑을 노랫결에 담아서 들려주는구나 싶습니다. 사람들이 노랫가락에 제 마음과 느낌과 생각을 담는 걸음걸이를 넌지시 들려주는구나 싶어요.


  노래나 악기는 누구한테서 배울까요? 대단한 스승한테서 배울까요? 아니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람’한테서 차근차근 배울까요? 또는 사람뿐 아니라 바람소리한테서도, 나뭇소리한테서도, 꽃소리나 풀소리한테서도, 벌레나 새나 짐승 울음소리한테서도 배울까요?


  나는 ‘썩 잘 부르는 노래’인지 아닌지 잘 모릅니다. 나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닐 적에 음악 실기시험에서 늘 ‘바닥 점수’를 받았습니다. 어쩌면 나는 ‘노래 못 부르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면 되게 좋아합니다. 웃고 춤추며 노래하는 아버지를 아이들이 참 좋아합니다.


  아버지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자전거를 달릴 적에도 노래합니다. 오르막에서 숨이 턱에 닿아도 기운을 내어 씩씩하게 노래를 하지요. 오랫동안 자전거를 달려서 다리힘이 풀려도 새삼스레 힘을 뽑아서 나긋나긋 노래를 하지요. 이 때문인지 몰라도, 아이들은 시골버스뿐 아니라 고속버스에서도, 기차에서도, 전철에서도, 참말 언제 어디에서나 제법 큰 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만화책 《순백의 소리》에 나오는 여러 젊은이들은 ‘아픔을 먹으면서 이 아픔을 새로운 노래로 삭이는’ 숨결을 보여주어요. 아이들은, 그저 즐겁게 노는 아이들은, 대회나 겨루기를 모르는 아이들은, 참말로 티없이 맑고 싱그럽게 노랫가락에 웃음을 담아서 사랑을 들려주려 한다고 느낍니다. 2016.5.3.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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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맨션 7 - 완결 토성 맨션 7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송치민 옮김 / 세미콜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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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24



내 마음에 낀 때를 닦는 창문닦이

― 토성 맨션 7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송치민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5.4.15. 9000원



  ‘첫 걸레질’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내 마음속에는 아주 아스라하지만, 우리 어머니가 으레 걸레질을 하면서 방바닥을 훔치는 모습이 고이 흘러요. 내가 갓난쟁이일 무렵인지, 아니면 방바닥을 기어다니던 무렵인지, 아니면 두어 살이나 서너 살 무렵인지, 아니면 예닐곱 살 무렵인지 잘 모릅니다만,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방바닥을 훔치면 방바닥이 반들반들해지던 모습이 떠올라요. 걸레질을 마친 자리가 얼마나 곱게 빛나고 매끄럽던지, 일부러 어머니 뒤를 좇으면서 방바닥에서 뒹굴며 놀던 일도 떠오릅니다.


  마치 마법사와 같았다고 할까요? 어쩜 이렇게 깨끗하면서 환히 빛나도록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느새 하루하루 흐르더니 내가 우리 어머니처럼 방바닥을 훔치고 걸레를 빨며 집안일을 건사하는 어버이 자리에 섭니다.



‘시간은 흐르고 있어. 천천히 확실히. 나도 멈춰 서 있지는 않았을 거다.’ (9쪽)


“소타 씨와 다른 분들을 믿고 다녀올게요. 아버지가 본 풍경이 어떤 것이었는지 저는 보고 싶어요.” (45쪽)



  이와오카 히사에 님 만화책 《토성 맨션》(세미콜론,2015) 일곱째 권을 읽고 나서 오래도록 이 책을 책상맡에 두면서 ‘닦는 일’을 돌아보았습니다. 모두 일곱 권으로 마무리짓는 이야기 《토성 맨션》입니다. 지구라는 별이 너무 더러워지고 망가진 탓에 아무도 지구에서 숨을 못 쉬고 못 살고 말아서, 그만 지구를 떠나 지구 바깥에 ‘고리’ 같은 건물을 올려서 산다고 하는 줄거리를 들려주는 만화예요.


  그런데 말이지요, 지구를 떠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 지구 밖에서도 ‘창문을 닦’습니다. 우주에서 떠도는 먼지가 있다면서, 이 먼지가 창문에 들러붙는다고 해요. 그러니까 ‘우주에 있는 건물 창을 닦는 창문닦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화책입니다.


  이른바 ‘우주 창문닦이’인 셈이니 ‘여느 창문닦이’하고는 퍽 다를 만합니다. 크기가 다르다고 할까요. 그러나 우주 창문닦이로 일하든, 높은 건물에서 창문을 닦는 일을 하든, 두 자리 모두 아슬아슬해요. 줄을 놓친다든지 줄이 끊어지면 목숨을 잃어요. 아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구하기 전에, 스스로를 구하려고 하지 않았다.’ (83쪽)


‘마사에의 꿈을 뺏은 건 누구지? 내 꿈은 뭐였지? 단 한 사람의 죽음으로 내 세계는 변했다.’ (95쪽)


‘내가 아무리 작다고 해도, 작으면 좁은 곳도 빠져나갈 수 있어. 그러니까 괜찮아.’ (105쪽)



  만화책 《토성 맨션》에 나오는 창문닦이는 모두 ‘하층 주민’입니다. 하층 주민인 창문닦이는 ‘상층 주민’이 사는 곳에 있는 창문을 닦습니다. 하층 주민은 하층 창문을 닦지 못합니다. 하층 주민이 사는 곳에 있는 창문을 닦기에는 너무 위험하기에 아무도 하층 창문을 닦지 못한다고도 해요. 더군다나, 상층 주민은 저희 건물 창문을 스스로 닦지도 못한다고 하는군요.


  그러니까,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우주에서도 계급과 신분으로 갈린 채 서로 다른 자리에서 사는 셈입니다. 상층 주민은 우주에서 ‘별을 보며’ 사는데, 하층 주민은 우주에서 살지만 막상 ‘별조차 못 보고’ 살아요. 우주에서도 전깃불을 밝혀서 살아요. 하층 주민은 햇볕하고는 동떨어진 데에서 어두움에 갇힌 채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득 돌아봅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지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과학기술은 발돋움했기 때문에 ‘대기권 바깥’에 우주 건물을 지어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주 건물에서 밥을 얻고 아기를 낳으며 살림을 꾸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 만한 과학기술은 있지만 서로 평화롭거나 아름다운 삶터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어요. 상층하고 하층이 갈린, 위층하고 아래층이 있어서 ‘도드라진 차별’이 있는 사회입니다.



‘아버지, 저는 다른 방법으로 같은 장소에 설 거예요. 좇고 뛰어넘어서 설명 목표가 없어지더라도, 저의 미래는 계속됩니다. (191쪽)



  하층에서 늘 어둠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은 장비를 단단히 챙겨서 상층으로 가서 창문닦이 일을 합니다. 상층 주민은 남(하층 주민)이 닦아 주는 창문을 올려다보면서 별바라기를 합니다. 상층 주민으로서는 하층 주민이 없으면 창문이 지저분해지다가 꽉 막히겠지요. 이뿐 아니라 상층 사회를 버티는 온갖 시설이나 문화도 하층 주민이 여러 가지 밑바닥 일을 맡아 주기 때문에 누릴 수 있어요.


  더 생각해 본다면, 돈이나 권력이 있어서 ‘손에 흙이나 물을 안 묻히’고도 깨끗한 옷과 집과 밥을 얻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만화책 이야기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그래요. 부자나 권력자 자리에 있는 사람은 쌀이나 고기나 푸성귀가 어떻게 나는지조차 몰라도 맛나거나 기름진 밥을 먹어요.



“왜 저렇게 링(우주 건물)이 아름다운지 아세요?” “응? 왜지?” “링이 아름다운 건 창문닦이가 창을 닦기 때문이죠.” (238∼239쪽)



  만화책 《토성 맨션》은 상·하층 계급 얼거리를 비판하거나 따지는 이야기를 다루지는 않습니다. 이 만화책은 오늘날 지구 사회가 이 모습 그대로 흐른다면 앞으로 모든 사람이 지구를 떠날 수밖에 없는 날을 맞이하겠다는 생각을 다룹니다. 그리고 앞으로 ‘모두 지구를 떠나는 날’을 맞이한다면, 그때에도 사회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한 채 계급 사회 멍에를 그대로 짊어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다루지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 이런 바보스러운 계급 사회 멍에를 푸는 실마리는 ‘가장 작고 수수한 아이’ 손에 있다는 대목을 다뤄요. 이른바 ‘기성 사회 고정관념’에 물들지 않고 스스로 꿈을 새롭게 품는 아이가 씩씩하게 첫 한 발을 내디디면서 둘레 어른들을 조용히 일깨운다는 대목을 다루지요.


  일곱 권에 이르는 만화책을 마무리짓는 자리에서 주인공 아이는 ‘우주 건물’에서 비행선에 몸을 싣고 ‘붉은닥세리(불모지) 지구’로 날아갑니다. 붉은닥세리 지구에 닿은 주인공 아이는 먼 옛날에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는 지구라는 곳에 처음으로 두 발을 디디면서 ‘우주 건물’을 바라보았고, 이 우주 건물이 아름답게 빛나는 모습을 올려다보면서 “창문닦이가 창을 닦기 때문”에 저렇게 아름답게 빛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나는 이 대목을 읽다가 아주 조용히 책을 덮고 아스라히 먼 옛날 모습을 떠올렸어요. 그리고 바로 오늘 이곳에서 내가 손수 걸레를 빨아 집안을 훔치는 모습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작은 걸레를 아이한테 맡기면서 함께 먼지를 훔치는 집일을 되새깁니다. 방바닥에 내려앉은 먼지는 걸레로 훔치고, 마음에 끼는 먼지는 사랑으로 닦습니다. 마당에 떨어지는 가랑잎은 빗자루로 쓸고, 마음에 도사리는 응어리나 미움이나 생채기나 아픔은 언제나 사랑으로 다스립니다.


  나는 내 마음에 끼는 먼지를 씩씩하게 닦아 낼 줄 아는 ‘창문닦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2016.4.3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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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왕국 9
라이쿠 마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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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21



다른 울음소리 알아듣기

― 동물의 왕국 9

 라이쿠 마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2.12.25.



  어버이가 아이를 보살필 수 있는 까닭은 아이가 빈틈없이 말을 하기 때문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아기는 입으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말을 해요. 아기 티를 벗고 아이로 자랄 적에도 입으로 읊는 말보다 마음으로 들려주는 말이 더욱 깊고 넓습니다.


  어버이 자리에 서는 사람은 언제나 ‘마음읽기’를 하면서 아이를 보살핍니다. 이러는 동안 아이도 어버이 마음을 가만히 읽으면서 사랑을 느끼지요. 어버이하고 아이는 입으로 나누는 말을 넘어서는 ‘마음으로 나누는 말’을 함께 나누면서 보금자리를 가꾼다고 할 만합니다.



“넌 역시 약하군. 어째서 내 앞에 나선 거지? 날 죽일 힘도 없으면서.” (14쪽)


“예전에 나의 친구들도 네 녀석들에게 많이 잡아먹혔지만, 난 그 미움을 버리고, 너희와 함께 사는 길을 택했다.” (37쪽)


“네가 기적의 아이냐? 좋은 표정이다. 잘못된 길로 가지 마라.” (57쪽)



  만화책 《동물의 왕국》(학산문화사,2012) 아홉째 권은 다 다른 짐승들이 다 다른 울음소리를 내지만, 다 같은 마음이 될 수 있다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키메라하고 맞서 싸우는 동안 차츰차츰 한몸이 되었고, 어느덧 한마음에 가까이 다가섭니다. 이 지구라는 별에서 사람하고 짐승이 왜 따로 있는가를 생각하고, 사람도 짐승도 모두 같은 숨결이라는 대목을 생각하며, 모든 목숨이 서로 아끼면서 어우러질 수 있는 길을 생각합니다.



“타로우자가 뭘 줬는데?” “그저 도와주고 먹을 걸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줬어.” (75쪽)


‘들렸다. 뭐라고 울었는지 알아들었어. 울음소리가 다른데도 전해졌다. 캐서린의 생각.’ (174쪽)



  어버이가 아이 울음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어버이 노릇을 못 합니다. 아이가 어버이 울음소리를 느끼지 못한다면 아이로서는 이 땅에서 사랑을 찾지 못하면서 무섭거나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만화책 《동물의 왕국》은 ‘사람이 스스로 만들고 만 죽음기계’ 때문에 사람 스스로 죽음길로 가고 마는 바보짓을 ‘끝없는 싸움판’을 그려내면서 보여준다고 할 만합니다. 그래서 이 만화책을 아이들한테 읽히기는 어렵고, 어른들도 쉽게 읽을 만하지는 않습니다.


  가만히 살피면, 만화책은 죽고 죽이는 싸움판을 낱낱이 그리는데, 우리 사회는 겉속이 다른 수없는 싸움판이라고 할 만합니다. 사회도 정치도 문화도 교육도 온통 싸움판이기 일쑤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시험성적을 놓고 싸워야 하고,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얼굴이나 몸매를 가꾸는 싸움을 벌여야 하며, 어른은 그야말로 돈을 어느 만큼 더 버느냐 마느냐 하는 싸움을 벌입니다.


  우리는 서로 어떤 목소리인가를 읽고픈 마음이 없을까요? 우리는 서로 목소리를 읽을 마음이 없을까요?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자급자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만, 서로 아끼며 보살필 줄 아는 사랑을 품는 자급자족을 하는 길을 갈 때에 비로소 사람다운 모습이리라 생각합니다. 2016.4.1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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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3시의 위험지대 2
네무 요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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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47



옛날 내 모습을 너한테서 느끼며

― 오전 3시의 위험지대

 네무 요코 글·그림

 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1.12.15. 5500원



  《오전 3시의 무법지대》에 이어서 나온 《오전 3시의 위험지대》를 2권까지 읽고 3권은 더 읽지 않는다. 2015년에 4권까지 나왔는데 3권은 장만했으나 따로 손이 가지 않는다. 이 만화책이 아예 못 볼 만큼 재미없는 만화라고 여기지는 않으나, 줄거리나 흐름이 너무 뻔하게 흐르겠구나 하고 느끼다 보니, 구태여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할까.



‘아, 젠장, 옛날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정말이지, 짜증난다.’ (18쪽)


‘자신의 모습을 바꾸지 않으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니, 그거야말로 거짓 아닌가. 하긴, 어차피 내가 바뀌어 봤자.’ (20쪽)



  어떤 책을 읽든 ‘책을 이루는 이야기’에서 ‘오늘 내 삶을 되새기는 생각’을 엿본다. 이러한 생각을 엿보면서 새삼스레 기운을 내기도 하고, 미처 나 스스로 깨닫지 못한 대목을 곱씹기도 한다. 《오전 3시의 무법지대》2권에서는 두 마디를 가만히 헤아려 본다. 누군가한테서 ‘어리숙했던 옛날 내 모습’을 고스란히 보는 일이란 짜증스러울 수 있다. 그리고, 이 짜증은 어느새 ‘지켜보는 눈길’이 되면서 ‘따스한 사랑’으로 바뀌곤 한다. 때로는 그냥 짜증만 더 커지면서 골부림이 될 수 있을 테고.


  그리고, 내가 스스로 ‘내 모습은 바뀔 턱이 없어’처럼 생각한다든지 ‘내가 바뀌어 보았자 딱히 뾰족한 수가 있겠어’처럼 생각한다면 이 생각처럼 나아간다. 나 스스로 나를 안 믿고 안 사랑한다면, 누가 나를 믿거나 사랑하겠는가. 내가 나를 좋아해 주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좋아해 주거나 아낄 수 있겠는가. 2016.4.1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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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여우 12
오치아이 사요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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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19



생각을 지어 새로운 길을 걷는다

― 은여우 12

 오치아이 사요리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11.30. 5000원



  씨앗에서 싹이 트는 모습을 지켜보면 무척 재미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 작은 씨앗을 그저 땅에 묻을 뿐이지만, 이 작은 손짓으로 새로운 숨결이 깨어나요. 더욱이 작은 씨앗 한 톨은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서 위로 옆으로 퍼지면서 꽃을 피우지요.


  땅에 씨앗을 심어서 틔우듯이, 사람은 마음에 생각을 심는다고 느낍니다. 작은 씨앗이 고운 꽃을 피워서 넉넉한 열매를 맺듯이, 사람은 작은 생각 한 가지에 고운 꽃을 피워서 너른 꿈을 이루리라 느낍니다.



“신을 믿고 섬기는 일, 인간과의 사이를 이어주는 일, 신과 함께 사는 일. 나도 줄곧 집에서 느껴 온 것에 대한 답이 나온 것 같아서.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 곳을 너와 함께 보며 갈 수 있다면.” (12쪽)



  오치아이 사요리 님이 빚은 만화책 《은여우》(대원씨아이,2015) 열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열둘째 권에서는 ‘일본 신사’를 돌보는 일을 맡은 아버지가 어떤 꿈을 품고서 이 일을 했는가 하는 옛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처음에는 ‘일본 옛술’을 담가서 마을에 파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내였고, 그저 집안일을 잇겠거니 하고 여기면서 살다가 ‘신사집 딸’한테 마음이 끌려요. 어릴 적부터 ‘나중에 집안일을 물려받겠구나’ 하고 느끼면서 ‘내 앞날을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살던’ 아이는 ‘마음이 끌리는 사람’을 만나면서 비로소 생각을 처음으로 품습니다. 어떤 생각을 품느냐 하면 ‘그냥 이대로 아무 생각이 없이 집안일을 물려받아도 내 삶이 즐거울까?’ 하는 생각을 품어요. 이러고 나서 이 생각을 잇고 가꾸고 가다듬고 돌아보면서 ‘내가 스스로 여는 내 삶길은 무엇일까?’ 하고 다시 스스로 수수께끼를 냅니다.



“아빠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해. 아직 먼 미래의 일이고 어떻게 될지는 신만이 알고 계시겠지. 뭐, 어떻게든 될 거야.” (51쪽)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한때의 감정인지는 지금 본인이 누구보다 깊이 생각하고 있겠죠. 그러니 어떻게 되든 이쪽도 그저 지켜볼 생각입니다.” (56쪽)



  어버이가 잘 가꾸어 놓은 집안일을 물려받는 일은 이 일대로 즐거울 만합니다. 아이가 어버이하고는 다른 길을 새롭게 갈고닦으면서 씩씩하게 나아가려는 일은 이러한 일대로 즐거울 만해요. 어느 쪽이든 즐겁고, 어느 길이든 기운을 내어 나아가면 돼요. 집안일을 물려받더라도 이 집안일에 어떤 넋이 깃들었는가 하는 대목을 생각할 노릇이고, 내 길을 내가 새롭게 닦으려 한다면 이러한 삶에서도 스스로 어떤 꿈을 가꾸면서 웃음꽃을 피우려 하는가를 생각할 노릇이에요.



“유코는 이곳을 무척이나 소중히 여겼기에 제게도 소중한 곳이 됐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둘이 함께 이곳을 지켜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88쪽)


“인간은 태어날 때 신의 세계에서 왔다가, 죽으면 신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하거든. 할머니도, 신이 되어서 지켜보고 계실 거야. 우리 모습도.” (139쪽)



  생각을 지어서 새로운 길을 걷습니다. 생각을 짓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못 걷기도 하지만, 이냥저냥 흘러온 길에서도 기운을 내거나 웃음을 틔우기가 수월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밥 한 그릇을 지을 적에도 생각을 해야 밥맛이 나요. 옷 한 벌을 빨 적에도 생각을 해야 한결 깔끔하면서 고운 옷으로 보듬을 수 있어요. 가벼운 놀이를 할 적에도 생각을 해야 신나게 웃고 뛰놀 만해요.

  만화책 《은여우》는 열두 권에 이르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동안 톡톡 튀거나 대단하다 싶은 대목을 건드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씨앗을 땅에 심어서 가꾸는 흐름처럼, 우리가 마음에 심을 고운 생각을 어떻게 다스리면서 스스로 기운을 내고 활짝 웃느냐 하는 대목을 건드립니다.


  주어진 길대로 가든, 새로운 길을 내든, 아이들이 스스로 마음자리에 꿈씨를 심을 수 있으면 됩니다.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마을에서든, 아이들은 슬기로운 어버이 곁에서 삶을 생각하는 기운을 물려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2016.4.1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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