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유교수의 생활 24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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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40



앞길을 생각하면서 신나서 살아간다

― 천재 유교수의 생활 24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신현숙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4.6.25.



  익숙한 대로 어떤 일을 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익숙한 대로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어떤 일을 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아서 때로는 틀리거나 어긋날 수 있으니까요.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 나오는 유택 교수는 어떤 길을 걷는다고 할 만할까요? 늘 똑같은 때에 일어나서 똑같은 몸짓으로 걷는다면, 늘 똑같은 때에 잠들고 똑같은 때에 밥을 먹고 하는 흐름이라면, 이러한 삶은 ‘익숙한’ 대로 지낸다고 할 만할까요?



“너희 아버지가 ‘위대하다’는 전제 자체를 난 동의할 수 없어. 적어도 이 학교에서는 짐도 베티도 짐의 아버지도 알렌 중령도 단지 담당한 역할만 다를 뿐, 우린 다 같은 인간에 지나지 않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 사람이 알렌 중령에게 직접 하면 돼.” (11쪽)


“산타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없다는 것도 증명되지 않았어. 그런 이상 산타의 존재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야.” (11∼12쪽)



  어느 모로 본다면 유택 교수는 ‘익숙한’ 대로 사는 듯합니다. 유택 교수를 둘러싼 사람들은 이녁을 ‘익숙한’ 대로 ‘똑같이’ 산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나 유택 교수는 달라요. 유택 교수는 스스로 ‘익숙한’ 대로 어떤 일을 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유택 교수로서는 다른 사람 눈치를 보아야 할 까닭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 보이는 겉모습에는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보거나 저렇게 보거나 따질 일이 없어요.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꿈을 꾸면서 새롭게 이루려는 생각을 마음에 품지요. 그래서 ‘겉모습’은 남들한테 익숙한 똑같은 몸짓처럼 보이지만, 유택 교수 마음속은 늘 새롭게 들끓거나 춤을 추어요.



“그러고 보니, 자넨, 종전 날 기쁜 듯이 거리를 걷고 있던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지?”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뭐?” “조금 더 먼 미래를 보고 싶고, 알고 싶었습니다.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면 너무 신나서 죽을 수가 없습니다.” (26∼27쪽)


“일본인은 예부터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 살면서 바람과 나무, 물과 대지 등 삼라만상에서 신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들의 아픈 곳을 달래 주고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팔백만의 신의 존재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기독교도 인정합니다.” (48쪽)



  날마다 익숙한 일을 한다면 하루가 흐르고 또 하루가 흐르더라도 새로울 수 없습니다. 날마다 똑같은 일을 한다면 날짜가 바뀌더라도 새로운 일이란 없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누린다면 하루하루 늘 새로운 바람이 불어요. 그러니까 유택이라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이 대목을 바라보는 셈입니다. 어제하고 오늘은 똑같을 수 없다고 여기지요. 스무 해를 살았으면 지난 스무 해 동안 ‘똑같은 날이란 한 번도 없었다’고 깨달아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숨결이 흐르고, 모든 하루는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흐르며, 모든 마음은 저마다 새로운 꿈이 흐른다고 할 만하지요.



“그 불빛을 보고 모두가 떠올린 건 공습의 불길이야. 이글거리면서 타들어가서 나중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불길.” “그런 걸 상상한 아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가 상상한 건 축복의 따뜻한 불빛입니다.” (61쪽)


“잘 들어, 미네타로.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만나면서 또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거야.” (155쪽)



  날마다 새롭게 배우면서 날마다 새롭게 꿈꿀 수 있기에 삶을 짓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배우려 하지 않는데다가 날마다 새로운 꿈이라고는 없기 때문에 삶을 짓지 않아요. 《천재 유교수의 생활》 스물넷째 권에 나오는 ‘알렌 중령’은 ‘늘 똑같을 뿐인 날’이라고 바라봅니다. 이녁을 둘러싼 사람도 ‘언제나 똑같이 그 자리에 머물 뿐’이라는 생각을 아주 단단히 붙잡습니다.


  알렌 중령으로서는 어릴 적에 겪은 어떤 일을 ‘이녁이 배울 수 있는 가장 크고 높은 생각’으로 여깁니다. 그 자리에서 한 걸음조차 더 나아가려 하지 않아요. 그래서 알렌 중령한테는 달력 날짜는 대수롭지 않아요. 모두 똑같으니까요. 여름이든 겨울이든 그저 똑같을 뿐이에요.



“조금 더 오래 살면 난 얼마만큼의 걸작을 남길 수 있을까? 하지만 헛간에서 지하실로 연결되는 마지막 방을 꾸미면서, 난 문득 깨달았다. 내 생애 최고의 걸작은 너라는 것을.” (189∼190쪽)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배웁니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만나더라도 못 배웁니다. 서로 사람과 사람이라는 숨결을 알아차리거나 느낀다면 이때부터 배웁니다. 서로 사람과 사람이라는 숨결을 읽지 않거나 보려 하지 않는다면 조금도 안 배웁니다.


  사람 사이에 높고 낮음이 없어요. 사람 사이에 크고 작음이 없어요. 우리가 스스로 이를 바라볼 수 있으면 날마다 무럭무럭 자랍니다. 우리가 스스로 이를 바라보려 하지 않으면 언제나 제자리걸음이거나 쳇바퀴에서 맴돕니다. 2016.7.28.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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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사와는 맛있게 먹는 얼굴을 사랑한다 1
야마다 레이 지음, 김보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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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38



‘주부’ 또는 ‘살림꾼’이 꿈인 남자 고등학생

― 나루사와는 맛있게 먹는 얼굴을 사랑한다 1

 야마다 레이 글·그림

 김보미 옮김

 AK코믹스 펴냄, 2016.7.25. 5500원



  야마다 레이 님 만화책 《나루사와는 맛있게 먹는 얼굴을 사랑한다》(AK코믹스,2016) 첫째 권을 읽다가 생각합니다. 이런 만화가 다 있네 하고요. 그렇지만 참으로 이런 만화가 있을 만할 뿐 아니라, 이제 우리 삶이나 살림은 좀 바뀌거나 새롭게 거듭나야지 싶습니다.


  ‘가정 주부’는 가시내만 맡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한자말로는 ‘가정 주부’입니다만, 한국말로는 ‘살림꾼’이에요. 오늘날 한국 사회나 일본 사회에서 ‘가정 주부’는 으레 가시내만 도맡아야 하는 일로 여깁니다. “아저씨 가정 주부”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예부터 ‘살림꾼’은 사내나 가시내 사이에 금을 긋지 않는 이름이었어요. 살림을 알뜰히 꾸리는 사람은 누구나 살림꾼이에요. 어른뿐 아니라 아이한테도 이 살림꾼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어요. 살림이 야무지고 손끝이 알뜰하며 마음결이 야무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림꾼이 되었어요.



‘갑작스럽지만 나는 맛있게 밥을 먹는 여성이 좋다. 맛있게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 좋다! 그리고 그 모습을 매일 바라보는 것이 내 꿈이다! 그 꿈을 빨리 이루기 위해서, 그래! 나는 주부가 될 거다!’ (30∼31쪽)



  만화책 《나루사와는 맛있게 먹는 얼굴을 사랑한다》에 나오는 나루사와는 고등학생이라고 합니다. 어릴 적에 어떤 큰 생채기를 입은 아이인 듯한데, 이마 한복판에 커다란 흉터가 있어요. 이마에 남은 흉터는 그저 겉으로 보이는 흉터일 텐데, 이 아이는 마음에 흉터보다 더 커다란 생채기가 있구나 싶습니다. 겉으로는 동무들이 무섭게 여기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도 여리면서 착한 숨결이지 싶어요.


  아무튼, 이 아이 나루사와는 사내입니다만 ‘가정 주부’, 그러니까 ‘살림꾼’을 꿈꿉니다.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운동선수나 정치인 같은 직업을 바라지 않아요. 집에서 밥을 짓고 살림을 꾸리는 즐거운 보금자리를 꿈꿉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므라이스는 오랜만이네. 꽤 잘 만들어졌어. 엄마 맛에 가까워졌는지도.’ (54쪽)


‘아아, 사상 최대로 실망스러운 방식으로 먹는 사람이 옆집에 살고 있었다니.’ (79쪽)



  시골집에서 아이들을 늘 돌보면서 건사하고, 모든 밥이나 살림도 도맡는 아버지인 내 모습을 돌아보면서 만화책을 새삼스레 읽어 봅니다. 어느 모로 보면, 나도 ‘가정 주부’ 노릇을 합니다. 집에서는 가정 주부요, 밖에서는 한국말사전을 쓰는 일을 하지요. 집 안팎 모두 신나게 할 일이 많으니 하루 내내 언제나 바쁘거나 부산해요. 그러나 이런 집 안팎 두 가지 일이 바쁘거나 힘들더라도 딱히 다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일이 힘들면 그저 힘들 뿐, 이 일을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하루가 고단하면 그저 고단해서 밤에 곯아떨어질 뿐, 이 일을 누군가한테 맡기거나 떠넘기고픈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서 차리면서 즐거워요. 나는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면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릅니다. 나는 살림을 꾸리고 바깥일을 모두 도맡으면서 씩씩하게 어깨를 폅니다.


  밥짓기란, 살림하기란, 이리하여 내 보금자리를 내 손으로 가꾸면서 사랑하는 길이란, 가시내나 사내 가운데 한 사람만 맡아야 할 일이 아니라고 느껴요. 가시내도 사내도 서로 즐겁게 집안일하고 집밖일을 익히고 배우면서 나누어야지 싶어요.


  두 어버이 가운데 한 사람이 돈만 벌어와야 하지 않아요. 두 어버이 가운데 한 사람이 밥만 차려야 하지 않아요. 두 어버이는 저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어야 하고, 두 어버이는 저마다 슬기롭게 보금자리를 가꾸는 마음이 되어야지 싶습니다.



“밥이 왔어요!” “있지, 아키. 그건 엄마 역할 아니야? 아키는 지금 아빠잖아.” “응? 그런가. 상관없잖아. 아빠가 만들어도!” “치이. 그럼 내가 할 일이 없잖아.” “후유는 ‘회사’에 가는 거야!” (103쪽)



  만화책 《나루사와는 맛있게 먹는 얼굴을 사랑한다》는 재미나게 이야기를 엮습니다. ‘맛있게 먹는 얼굴을 사랑’하는 고등학교 사내 아이 나루사와는 ‘손수 밥을 지어서 차려 주기를 몹시 즐깁’니다. 다만, 맛있게 먹어 주는 꾸밈없고 해맑은 얼굴을 보여줄 적에만 밥짓기를 즐겨요. 맛없이 먹는다든지, 아무 낯빛이 없이 먹으면, 아주 끔찍하게 싫어해요.


  참으로 그렇지요. 온마음을 기울여서 밥을 지었는데, 이 밥을 아무 낯빛이 없이 그냥 입에 넣기만 하면, 밥을 지은 사람으로서 보람이 없다고 여길 만해요.


  우리가 먹는 밥은 ‘영양소’이기만 하지 않거든요. 우리가 먹는 밥은 영양소일 뿐 아니라 ‘사랑’이거든요. 밥을 짓는 따사로운 손길이 스미면서 사랑으로 이루는 밥 한 그릇이라고 느껴요. 살림꾼이 되는 사람은 바로 ‘언제나 사랑을 나누는 일을 즐겁게 하는’ 몫을 맡는다고 느껴요. 그러니까 이 만화책에 나오는 사내 아이는 바로 이 ‘사랑’을, ‘살림꾼으로 나누고 싶은 사랑’을 생각하는 숨결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만화책으로만 그치는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참말로 우리 사회에서 모든 사내와 가시내가 저마다 즐겁게 밥을 짓고 살림을 지을 수 있기를 빕니다. 사내도 가시내가 상냥하게 웃고 노래하는 마음으로 밥짓기랑 살림짓기를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2016.7.23.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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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포 시노부의 보석상자 2
니노미야 토모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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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37



네가 돌멩이를 바라보는 마음

― 전당포 시노부의 보석상자 2

 니노미야 토모코 글·그림

 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6.3.15. 5000원



  나한테는 보석이라고 하는 돌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한테뿐 아니라 곁님한테도 보석이라고 하는 돌이 딱히 없습니다. 우리 살림집에는 따로 보석이라고 하는 돌이 없는 셈입니다.


  보석이라고 하는 돌이 비싸기에 우리 집에 없지는 않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따로 보석에 마음을 주지 않을 뿐입니다. 모든 돌이 저마다 다르면서 고운 보석과 같다고 여길 뿐이에요. 그리고 곁님과 내가 서로 보석과 같은 숨결이요, 아이들도 저마다 보석과 같은 넋이라고 느껴요.



“옛날 사람들은 조개 안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진주를 찾아서 수도 없이 바다 속으로 들어갔겠지. 그런 식으로 이렇게 정신이 아득해질 개수의 진주를. 당시에는 다이아보다 소중히 여겼던 이유를 알 것 같아.” (12쪽)


“남겨진 돌에는 그게 뭐든 메시지가 있는 법이구나.” (153쪽)



  니노미야 토모코 님이 빚은 만화책 《전당포 시노부의 보석상자》(대원씨아이,2016) 둘째 권을 읽습니다. 둘째 권에서는 보석을 둘러싸고서 ‘더 많은 돈’을 노리려는 사람들 이야기가 흐릅니다. 한쪽에서는 보석 하나에 그리움과 사랑을 담아서 아끼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그리움이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고 돈으로 따지는 값어치를 바라봐요.


  보석은 아무 말이 없어요. 보석은 그저 그대로 있어요. 그렇지만 보석도 우리하고 똑같은 숨결이기 때문에 ‘따스한 사람’ 곁에서는 따스한 기운이 흘러요. 차가운 사람 곁에서는 차가운 기운이 흐르고요.



“소중한 사람에 대한 마음이 담긴 반지. 절대로 놓으려고 하지 않더군요.” (72쪽)


“그런데, 시노부. 이 에메랄드 때문에 카페가 불황이었던 게 아니라, 불황이어도 망하지 않았던 건 이 에메랄드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아.” (118쪽)



  아이들은 때때로 어버이나 이웃이나 동무한테 멋진 선물을 베풉니다. 돈 값어치로 대단한 멋진 선물이 아닌, 마음으로 따스한 기운을 담은 선물이에요. 즐겁게 웃으면서 기쁘게 노래하는 숨결을 고이 담은 선물이지요.


  우리가 서로 주고받을 만한 선물이라면 바로 이런 것이어야지 싶습니다. 더 값나가는 선물이 아니라, 따스하게 사랑을 담은 선물을 주고받을 적에 아름답게 웃는 살림이 되리라 느껴요.



“형님들은 돈이 곤란할 때 말고는 집에 오시지 않았으니 모르시겠지만, 어머님이 ‘사전 처분’ 하셨어요.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모두가 지옥처럼 싸웠잖아요. 말했어요. ‘팔아버리고 다 어머님이 쓰세요’라고.” (129쪽)



  어버이는 아이한테 돈을 물려줄 수 있어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돈을 물려받기를 바랄 수 있어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돈이 아닌 사랑을 물려줄 수 있어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돈이 아닌 사랑을 물려받을 수 있어요.


  니노미야 토모코 님은 익살맞으면서 재미나게 전당포 이야기를 만화로 빚습니다. 보석 하나에 깃든 이야기를 되짚으면서 오늘 우리가 즐겁게 살림을 짓는 길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건드려 줍니다.


  자, 보석 하나로 겉모습을 꾸미겠습니까? 아니면, 사랑으로 내 온몸을 따스히 어루만지겠습니까? 2016.7.19.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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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애벌레 말캉이 1 - 궁금한 건 못참아!
황경택 글.그림 / 소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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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36



‘한 달’을 사느냐, ‘일곱 해’를 사느냐

― 꼬마 애벌레 말캉이 1

 황경택 글·그림

 소나무 펴냄, 2010.12.12. 9500원



  아이들은 낮이나 밤에 좀처럼 잠들려 하지 않습니다. 두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로서 아이들이 낮잠이나 밤잠을 들려 하지 않으면 퍽 고단합니다. 아이들은 더 놀고 싶다는 말을 하지만 틀림없이 졸린 눈이요 몸이면서도 자꾸 놀려 하니 고단하지요.


  잠을 안 자려 하는 아이들은 ‘자는 때’가 아깝다고 여깁니다. 우리 아이들뿐 아니지요. 나도 어릴 적에 이 아이들 같았어요. 한잠이라도 덜 자면 한동안이라도 더 놀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열 살이나 스무 살을 지날 즈음에도 조금이라도 덜 자면서 조금이라도 더 깨어서 지내려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무튼 나를 보호해 줘서 고맙다.” “너 스스로 보호한 거야.” “내가 스스로 보호했다고? 야, 난 태어날 때부터 천재구나!” (14쪽)


“꺼억, 잘 먹었다.” “아예 다 먹지 왜 남겼니?” “어, 그럴까 했는데.” “날 걱정해서 그랬구나?” “아니, 배불러서.” (17쪽)



  황경택 님이 빚은 만화책 《꼬마 애벌레 말캉이》(소나무,2010) 첫째 권을 조용히 읽어 봅니다. 이 만화책에는 ‘갓 깨어난 애벌레’가 나옵니다. 이 애벌레는 이제 막 깨어났어도 잎을 갉아먹지요. 다른 벌레나 나무나 새하고 말도 섞어요. 우리들 사람으로 치면 삼백예순닷새를 살아내야 한 살입니다만, 이 애벌레로서는 하루를 살았어도 ‘할 것’을 다 해요. 그러나 아침에 깨어나서 이제 겨우 낮을 지나가는 한삶을 누리니까 저녁이나 밤을 모르지요. 다른 벌레나 나무나 새는 ‘하루’뿐 아니라 ‘한 해’도 알지만 애벌레는 몰라요. 겪은 일이 없거든요.



“너 같은 곤충이 없으면 식물들은 열매를 맺지 못해. 그럼 식물들이 사라지겠지? 그럼 동물들도 살 수 없어. 그래서, 네가 아주 강하다는 거야. 뭔 말인지 알지?” “아니, 모르겠어.” (58쪽)


“낮과 밤을 합치면 하루야. 그 하루가 또 오는 거야. 그게 바로 내일이야.” “……. 넌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마 경험해 보면 너도 알게 될 거야.” (62쪽)



  하루를 오롯이 살아 보지 못한 애벌레로서는 ‘하루’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어요. ‘밤’이나 ‘잠’이나 ‘꿈’도 알 길이 없어요. 문득 우리 아이들을 돌아봅니다. 이제껏 날마다 낮밤으로 잠이나 꿈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들려주는데, 아이들은 낮에도 밤에도 졸린 눈을 껌뻑이거나 비비면서 더 놀려 합니다. 그래요, 밤도 잠도 꿈도 아직 잘 모르니 여러 해에 걸쳐 밤이나 잠이나 꿈을 이야기해 주었어도 아직 알아차리지 못해서 밤에 고요히 눈을 감고 잠들면서 꿈꾸는 하루로 고이 쉬려고 안 할 만하겠구나 싶어요.


  우리는 무엇을 알까요? 우리는 무엇을 겪었을까요? 우리는 어떤 일을 겪고 나서 그 일을 조금 더 잘 안다고 할 만할까요? 우리는 어떤 일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겪더라도 제대로 못 느끼거나 못 알아채는 살림은 아닐까요? 겪으면 더 제대로 알 수 있다지만 겪으면서도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는 나머지 못 배울 수 있어요.



“근데, 이 풀이, 넌 맛있어?” “응. 맛있어. 아주 아주.” “아냐, 맛없어!” “맛있어!” “되게 맛없어!” “되게 맛있어!” (72쪽)


“사실, 네가 날 수 있을지 그것도 잘 모르겠어.” “난 날 거야!” “왜?” “난 날고 싶으니까.” (140쪽)



  만화책 《꼬마 애벌레 말캉이》를 읽으면서 새삼스레 생각해 봅니다. 나도 어릴 적에는 매미가 땅속에서 너무 오래 잠자다가 고작 한 달밖에 못 사네 하고 여겼어요. 어느 매미는 자그마치 열일곱 해나 잠을 자다가 기껏 한 달을 사네 하고 여겼어요.


  그렇지만 매미로서는 다르게 바라보거나 여길 수 있어요. 매미로서는 땅속에서 꿈을 꾸며 지내는 나날이 ‘오롯이 살아가는 숨결’일 수 있어요. 사람 눈으로 보자니 매미는 ‘고작 한 달’을 살지만, 매미 눈높이와 삶자리에서 본다면 ‘고작 한 달’이 아니라 ‘넉넉히 일곱 해’나 ‘즐거이 열일곱 해’일 만합니다.


  잠자리도 개구리도 하루살이도 모두 그렇지요. 사람 눈으로 섣불리 ‘잠자리 나이’나 ‘개구리 나이’나 ‘하루살이 나이’를 따질 수 없으리라 느낍니다. 모든 목숨붙이는 저마다 다른 살림을 나고 태어나면서 저마다 즐겁게 저희 삶을 짓고 저희 사랑을 나누리라 느껴요.



“한 달 살기 위해 7년을 기다려?” “아니. 그게 아니라, 7년을 살기 위해 한 달을 기다리는 거야. 지금의 나는 알을 낳기 위해 잠시 이 몸을 만든 거야.” (144쪽)



  만화책 《꼬마 애벌레 말캉이》를 읽는 어린이는 이 책에 깃든 이야기를 얼마나 스스로 잘 알아낼 수 있을까요? 또는 이 만화책을 어버이가 함께 읽어 본다면, 어버이는 아이한테 어떤 이야기를 새롭게 헤아리면서 찬찬히 들려줄 만할까요?


  우리는 ‘다른 사람 눈길’에 따라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마음을 기울이며 사랑을 꽃피우는 대로 산다고 느껴요. 사람이 매미를 어떻게 보든 매미는 매미 나름대로 즐거우면서 새로운 살림이에요.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보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기쁘면서 새로운 삶이요 사랑이에요.


  이제 아이들을 이끌고 자전거를 달려서 바닷가로 나들이를 다녀올까 하고 생각합니다. 밥도 든든히 먹였고, 설거지와 빨래도 말끔히 마쳤고, 햇볕도 따뜻하고, 모두 좋습니다. 바람도 살랑살랑 싱그러이 불어요. 아이들이 오늘 하루 누리는 놀이와 살림을 아이들 가슴맡에 기쁜 웃음으로 아로새길 수 있기를 빕니다. 어버이인 나도 내 가슴맡에 오늘 하루 일손과 살림을 신나는 노래로 아로새기려 합니다. 2016.7.17.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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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형태 7 - 완결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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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13



모든 소리를 들어 보렴

― 목소리의 형태 7

 오이마 요시토키 글·그림

 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10.31. 5500원



  오이마 요시토키 님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대원씨아이,2015)는 모두 일곱 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이 만화책은 열너덧 살부터 읽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만화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는 열너덧 살이 넘는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서 마주하는 일일 뿐 아니라, 초등학교에서도 흔히 마주하는 일이 되리라 느낍니다.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아이들 이야기요,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짓으로 아프거나 슬픈 아이들 이야기이거든요.



‘진정한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진정한 ‘모두’는 다 죽고 마는 걸까.’ (7쪽)


“난 이제 괜찮아. 그럭저럭.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말고. 나도 한마디 할게. 니시미야. 니시미야. 미안해.” (28∼29쪽)


“내 딴에는 네 목소리를 듣는다고 들었지만, 사실은 착각이었어. 그럴수밖에. 얘기해 주는 게 전부일 리가 없는데 그게 그 사람의 전부라고 착각하고.” (30쪽)



  한때 다른 동무를 따돌리거나 괴롭히던 아이 가운데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 따돌림을 받거나 괴롭힘을 받는 아이로 바뀝니다. 어느 한 아이를 함께 따돌리거나 괴롭히던 수많은 아이들은 어느 날부터 갑자기 ‘그냥 착하고 얌전한 아이’인 척을 합니다. 어른들 앞에서는 갑자기 이처럼 겉모습을 바꾸더니 어른들이 없는 뒤에서는 ‘새로운 아이’를 짓궂으면서 끔찍하게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짓을 해요.


  다만 이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는 만화가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참말로 벌어진 일을 만화로 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만화책에 흐르는 이야기와 엇비슷한 수많은 ‘따돌림·괴롭힘’ 이야기가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널리 있다고 느낍니다.


  ‘왕따’나 ‘이지메’나 ‘집단 따돌림’이란 말이 없던 내 국민학교 적을 돌아보아도, 그무렵에 ‘반 따돌림’이나 ‘학교 따돌림’을 받는 아이가 있었어요. 집이 가난해서 차림새가 꾀죄죄하다든지, 얼굴이 못생겼다든지, 힘이 여리면서 너무 순둥이 같은 아이라든지, 이런 아이들이 반이나 학교에서 참말로 아프게 따돌림을 받았어요. 게다가 이렇게 따돌림을 받는 아이들한테 부드러이 다가서서 돕거나 말을 섞으면 이런 아이도 따돌림을 받았지요. 나는 ‘반 따돌림’이나 ‘학교 따돌림’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따돌림을 받는 아이한테 부드러이 다가서다가 놀림이나 따돌림을 받은 일이 꽤 잦았습니다. 그리고 따돌림을 받는 아이한테 부드러이 다가선 뒤에 ‘나를 다시 본 아이들’도 더러 있었어요.



“울어서 될 일이면, 울었으면 좋겠어. 나한테 오늘 이후로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좀더 모두와 함께 있고 싶어. 많은 걸 얘기하고, 또 놀고도 싶어. 그걸 도와줬으면 좋겠어, 네가. 살아가는 걸 도와줬으면 좋겠어.” (38∼39쪽)


‘오늘부터 제대로 모두의 얼굴을 보고 인사하자. 그리고 듣자. 모두의 목소리를. 좋은 소리든 싫은 소리든.’ (65쪽)



  내 어릴 적을 더 더듬어 봅니다.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받는 아이들은 학교랑 집 사이에서 늘 혼자 다녔어요. 하루 내내 늘 혼자 책상맡에 조용히 앉아서 지내요. 체육 시간에도 혼자 바깥에서 맴돌고, 낮밥을 먹는 때에도 그야말로 고개를 폭 숙이고 조용히 수저질만 해요.


  내가 왜 그렇게 했는지 나로서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혼자 구석진 곳에 있는 아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를 불러서 함께 밥을 먹는다든지, 동무들하고 도시락을 들고 책상을 붙여서 함께 밥을 먹는다든지, 체육을 할 적에 이 아이를 우리 편에 끼우고 내가 공받이를 해 주거나 일부러 이 아이하고 쉽게 죽거나 한다든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좀 멀어지지만 이 아이네 집 언저리까지 함께 걸어가 보거나 하곤 했어요.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런 일을 국민학교 여섯 해 동안 퍽 자주 하면서 한 가지를 느꼈어요.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받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더없이 착한 아이들이고 집에서 여러모로 어머니 아버지를 도와서 살림을 많이 맡기도 하고 집에서 동생들을 얼마나 아끼고 살뜰히 보살피는지 몰라요. 게다가 이 동무들은 집에서는 ‘학교에서 보여주지 않는’ 엄청나게 해맑은 낯빛으로 웃음을 지으며 재잘재잘 수다쟁이로 지내더군요.



“고민이라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거랑 어머니가 바라는 거랑 둘 중 어느 쪽으로 할지? 그야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야지. 안 그랬다간 후회할걸. 나도 전력으로 응원할게.” (122∼123쪽)


“엄마는 왜 이 일을 할 생각을 했어?” “재밌을 것 같아서.” (144쪽)



  나는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를 일곱 권째 읽는 동안 한 권마다 퍽 오랫동안 찬찬히 삭였습니다. 나는 어릴 적에 반이나 학교 동무를 얼마나 아끼는 아이였는가 하고 돌아보았습니다. 따돌림을 받는 아이하고 때로는 툭탁거리며 싸움질을 하기도 했고, 싸움질을 그친 뒤에는 서로 마음을 풀고 예전보다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기도 했어요.


  이때에 내가 느낀 한 가지가 있다면, 누군가를 따돌리는 아이는 집에서 그리 사랑받지 못하는 하루를 누리는구나 싶었어요. 누군가한테서 따돌림을 받는 아이는 집에서는 학교와 달리 밝으면서 홀가분하게 동생을 따스히 이끌었어요.


  어릴 적에는 노느라 바빠서 여기까지만 얼핏 느끼고는 거의 잊었습니다. 이러다가 《목소리의 형태》라는 만화책을 천천히 읽고 되새기면서 ‘동무와 동무 사이’를 새삼스레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가 동무이고, 동무를 사귀는 마음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보았어요. 내가 아끼는 동무는 누구이고, 나를 아끼는 동무는 누구인가 하고 생각해 보았지요.



‘중학교 시절, 나 자신의 미래는 보잘것없는 것이 되리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상상 속의 미래도 몹시 눈부셔 보인다. 아찔하리만치 희망으로 가득하다. 내가 옛날 니시미야를 싫어했었던 것처럼, 이 문 너머에 있는 것은 분명 쓰라린 과거일 것이다. 그래도 또 하나 있는 것이 있다. 가능성이다. 그것은 언제든 열 수 있다. 살아 있는 한.’ (186∼187쪽)



  나는 국민학교라는 곳을 마친 지 거의 서른 해가 되었습니다. 내 어릴 적 동무뿐 아니라 나도 참 나이를 먹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내가 신나게 뛰놀던 어릴 적 나이를 누리며 무럭무럭 자랍니다.


  우리는 서로 어떤 사이가 되어야 즐거울까요? 우리는 왜 누군가를 따돌리거나 누군가한테서 따돌림을 받아야 할까요? 즐겁게 어우러지면서 어깨동무를 하면 안 될까요? 모든 목소리를 고루 들으면서 다 함께 아끼는 마음이 되면 아름답지 않을까요?


  얼굴이 이쁘장해야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착할 때에 아름다운 사람이리라 느낍니다. 동무들 목소리를 꾸밈없이 고루 들을 뿐 아니라, 바람과 구름과 풀과 나무와 꽃과 잠자리와 참새와 지렁이 목소리도 두루 들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고우면서 슬기로운 마음이 되리라 느낍니다.


  오늘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속삭입니다. 얘들아, 우리 사랑스러운 아이들아, 우리를 둘러싼 수만은 아름다운 숨결이 우리한테 베푸는 소리를 들어 보렴. 개구리뿐 아니라, 빗물뿐 아니라, 바람뿐 아니라, 나무뿐 아니라,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많은 숨결이 나누어 주는 소리를 함께 들어 보자. 2016.7.12.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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